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27화 (27/147)

<-- 다시 만난 웬수 -->                               -‘시민을 공격하였습니다. 살인을 저지르면 법정 최고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경고 따위 무시하고, 볼에서 피를 흘리는 드웍프에게 다가간다.

“내가 가져다줬던 페로렌 장신구 어딨어? 덕분에 내가 도둑질까지 했잖아. 장신구 다시 내놔. 안 그러면 편히 죽진 못할 거야.”

어차피 목격자만 없으면 내가 이 NPC를 진짜로 죽인다고 해도 신고당할 위험이 없다. 그래서 인적 드문 이런 골목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다.

“크으……. 다, 당신 이거 범죄야!”

“범죄? 그래, 뭐 그렇다고 치자. 근데 목격자가 없으면,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건 아무도 모를걸?”

물론 목격자가 없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계속 범죄를 저지르는 건 위험할 테지만, 나는 이번 딱 한 번만 일을 치를 생각이다. 내 시작을 망쳐 놓은 이 추악한 드웍프를 위해. 그 정도 각오는 되어있다.

“혀, 형님!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그땐 제가 미쳤나 봅니다!”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저자세로 나온다.

“장신구만 돌려주면 살려준다니까?”

물론 거짓말이다. 장신구를 받은 뒤 죽일 것이다. 초보자를 등쳐먹는 NPC는 살려둘 가치가 없다.

드웍프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낸다.

“다른 건 장물아비한테 팔아넘겨서 어디 있는지 저도 잘 모릅니다.”

목걸이를 받아들자, 알맹이 빠진 몸체만 달랑거린다.

“여기 박혀 있던 보석은 어디 갔어?”

“그, 그게……. 팔았습니다.”

그러니까 돈 되는 건 다 팔고.

[아이셀의 그릇]

요구 레벨 : 1

희소성 : ?

〈내용〉

전설적인 세공사 페론드가 만든 아이셀의 그릇. 태초의 여신 그레이아의 최상위 보호 마법인 ‘아이셀’을 모티브 만들었다는 이 금속은, 어떠한 힘과 마법으로도 부술 수 없을 만큼의 강력함이 깃들어 있다.

이 목걸이가 완성되기 직전의 금속 하나만 남았다 이거지?

나는 말 없이 칼을 집은 손을 추켜든다. 그리고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드웍프를 바라본다. 베는 데에 주저하지 말자.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지 않는 한 밟힐 염려는 없어.

“자, 잠시만요. 형님! 장신구는 장물아비를 찾아서 반드시 받아오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정 안되면 돈을 벌어서라도 갚을게요! 저 하드코어 캐릭터란 말이에요. 죽으면 안 돼요. 제발요. 형님.”

“뭐?”

하드코어 캐릭터? NPC에게도 하드코어 캐릭터가 있단 말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 NPC는 한 번 죽으면 끝. 그렇다면 이 녀석 혹시…….

“유저야?”

“네…….”

“진짜?! 그럼 그 퀘스트는 어떻게 한 거야? 나한테 내준 퀘스트.”

“이 게임 유저끼리도 의뢰하고 받을 수 있는 시스템 있어요.”

유저가 퀘스트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니 생소한 시스템이라 다소 놀랐다. 확실히 초보자라면 나처럼 깜빡 속아 넘어갈 것 같다.

“아, 그럼 넌 그 시스템을 이용해서 내 등을 처먹은 거구나?”

“네 바로 그겁니다! 별로 어렵지 않…….”

오냐, 하드코어라고 했겠다? 죽으면 뼈아픈 고통 좀 느끼겠네.

내가 다시금 칼을 들어 올리자, 말실수했다는 걸 급히 깨닫고 나를 쳐다본다.

“형님! 그게 아니라! 아! 안돼요! 형님 한 번만! 아아악!!!”

내려치기 직전, 들었던 칼을 그냥 내린다.

“내가 너를 죽여서 뭐 하겠니?”

한숨을 내쉬며 칼을 집어넣자 드웍프의 낯빛이 도로 환해진다.

“형님! 감사합니다. 진짜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돌려 보내줄 순 없지. 나한테 사기를 친 건 괘씸해서 그냥 못 넘어간다. 죽이진 않더라도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해 먹어야지.

“살려주는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아까 네가 말했던 대로, 그 장물아비 찾아서 페로렌 장신구 찾아와. 못 찾으면 매일 나에게 10만 셀씩 전서구로 보낼 것.”

“10만 셀이나요?”

“그래, 그러니까 가능하면 빨리 찾아와. 만약 정말로 찾아오면 네가 준 돈도 다 돌려줄 게. 정 싫으면 여기서 그냥 죽던가?”

“아, 아니요. 아닙니다. 찾아오겠습니다.”

언제나 말로는 하루 만에도 만리장성을 세우는 게 인간이다. 그렇다면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하나 해두는 게 말의 무게를 실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

퀘스트가 끝나기 전까지는 23분 남았다. 내 앞에는 사지가 꽁꽁 묶인 채 움직이지 못하는 드웍프가 누워있다.

“혀, 형님! 왜 이러십니까?”

“뭐든 확실한 게 좋잖아. 안 그래?”

네놈이 공포에 떠는 모습이, 내 가학심을 불러일으키는구나. 악인을 징벌하고 싶어 날뛰는 가학심 말이다!

“대체, 뭘 하시려고요?!”

써볼 때가 왔다. 내 비장의 마법 기술! 나는 드웍프의 팔목을 잡는다. 그리고 최대한 비장한 표정으로 외친다!

“각인!”

사실 안 외쳐도 되지만, 그냥 멋있잖아.

-‘각인의 흔적이 ‘드웍프’의 몸에 새겨집니다.’

“아아악! 끄아아아악!!! 살려줘!!! 하아아아악!!!”

각인을 시전하자 드웍프는 몸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른다. 그 소리에 당황해서 무심코 손을 놓을 뻔했다. 이거 이 정도로 아픈 거였어? 유저가 이렇게 아파하는 정도라니……. 누가 보면 산채로 사람 태우는 줄 알겠다.

“끄아악!!! 멈춰!! 아아아아악!!!”

이제 시작해서 10분 동안 지속해야 하는데, 족장님은 이런 기술을 대체 누구한테 써먹으라고 가르쳐 준거야? 드웍프가 묶인 몸을 좌우로 비틀면서 내 손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놓치면 각인이 실패하기에 난 더더욱 꽉 붙잡는다.

“미안해! 조금만 견뎌보자!”

“흐아아악! 제발 그만!! 아으으악!!!”

그렇게 10분의 시간이 흐르고…….

-‘드웍프에게 ‘복종의 각인’을 새겼습니다. 이제 각인 대상의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히든 마법 기술‘각인’ 2단계 자질이 개화되었습니다.’

“그… 만……. 쿨럭……. 쿨럭. 흐아…….”

드웍프는 눈물, 콧물, 침, 땀 범벅의 모습이 되어 바닥에 멍한 눈으로 엎어져 있다. 이런 기술인 줄도 모르고 여자한테 함부로 썼다가 큰일 날뻔했잖아 이거? 드웍프한테 썼기에 망정이지…….

뭐 아무튼, 이제부터 대상 정보 확인이 가능하단다. 어디 볼까?

이름: 드웍프 / 레벨: 17 / 몸 상태: 기진맥진

직업: 광부

체력 1730 / 마력 150

힘: 36 / 민첩: 17/ 지력: 9 / 건강: 51

기분: 차라리 죽여줘…….

〈각인 정보〉-1차 각성

호칭: 없음

호감: 20(--) /애정: 0 /헌신: 0 /굴복: 42(+)

복종: 21%

〈신체 정보〉

키: 140cm / 가슴:103cm / 밑가슴 86cm / 허리 95cm / 엉덩이 107cm

〈기교〉

흥정(2), 말재주(4), 잔꾀(4)

궁금하지도 않은 남정네의 신체 치수까지 상세히 나오다니, 그 정도로 친절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각인 정보에 여러 가지가 눈에 보이는데, 도움말의 내용을 대략 살펴보면.

호감: 대화 등의 모든 상호작용으로 상승 및 하락. 최대치 100.

애정: 사랑에 관한 상호작용으로 상승 및 하락. 최대치 100.

헌신: 명령과 수행의 상호작용으로 상승 및 하락. 최대치 100.

굴복: 대상을 억누르는 상호작용으로 상승 및 하락. 최대치 100.

복종: 호감, 애정, 헌신, 복종의 평균치에 따라‘%’ 상승 및 하락. 최대치 100%

저 수치들이 높아지면 내가 각인대상을 굴리기 편해진다는 건데…….

NPC는 프로그램이라 그렇다고 치지만, 유저는 사람인데 어떻게 적용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유저들은 그냥 수치만 적용되는 건지, 수치에 따라 행동도 변하게 할 수 있는 건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생각해보니까 코볼트 족장도 각인 걸었던 유저를 제멋대로 움직이긴 했는데……. 드웍프 굴리다 보면 차차 알게 되겠지 뭐.

근데 막상 드웍프를 보니 굴리기가 미안할 정도의 몰골이 되어있다. 더 미안한 점은 조금 전 획득한 각인의 2단계 개화 능력이 바로.

-‘각인의 흔적이 복종의 각인으로 변화할 때, 대상이 인지하기 어려워집니다. ’

라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앞으로 각인을 시전 할 때 다른 대상들은 이런 고통을 느낄 일 없다는 거 아닐까?

“너 괜찮냐?”

“괜찮……. 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했는데도 괜찮다고 하다니……. 각인 효과 덕인지, 무서워서 그러는 건지 놀라울 정도로 순종적인 모습이다. 그럼 괜찮다니까 각인효과가 어디까지 먹히는지 시험해볼까?

그로부터 다시 8분 뒤.

“참 애매해…….”

“뭐가요. 형님? 저, 이제 옷 입어도 되나요?”

상반신만 탈의한 채 물어오는 드웍프를 보니 인상이 절로 쓰인다. 몸매가 어쩜 저렇게 저질이람?

“입어.”

사실 각인의 효과를 알아내기 위해 드웍프를 대상으로 몇 가지 실험했다.

첫 번째는 자신이 각인에 걸렸는지 아는지 모르는지를 물었는데, 아까 내가 준 고통을 그냥 고문 마법으로 치부하고 있을 뿐. 놀랍게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내 눈엔 녀석의 팔목에 새겨진 각인이 뻔히 보이는데, 드웍프에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다음은 명령에 대해 실험했다. 첫 번째 명령은 지나가는 시민을 아무나 죽여보라는 명령이었지만, 드웍프에게 미쳤냐는 소리를 들었다.

두 번째는 시민을 때려보라고 명령했지만, 자신은 비폭력주의라는 말과 함께 거부했다. 그런 놈이 나한테는 칼을 들고 덤벼? 열 받아서 몇 대 쥐어박았다.

마지막은 옷을 전부 벗어보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복종이 낮아서 거부하는 건지, 유저라 거부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원래 이 정도 말만 듣는 건지 상반신 탈의까지만 허용하더라.

결국, 내 실험은 풀리지 않는 의문 덩어리만 무더기로 쌓아 놓은 채 종료됐다. 코볼트 족장의 각인 같았으면 군소리 없이 수행했을 텐데 확실히 그 정도는 불가능하다.

같은 뿌리를 가진 기술이라지만 그 효과가 달라도 너무 다르니 이거 원……. 그래도 마나가 안 드는 게 어디야.

“근데 왜 갑자기 이런 걸 시키시는 겁니까 형님?”

“그냥, 넌 몰라도 돼.”

“너 근데 몇 살이냐?”

액면가로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자꾸 형님형님 하니까 듣기 거북하다.

“18살입니다. 형님.”

18살? 진짜 어렸네. 근데 얘는 이걸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이 게임은 성인 게임이기 때문에 게임기에 인증된 성인 신분 내용과 접속한 유저가 동일 인물인 경우에만 접속할 수 있다.

간혹, 프로그래머들이 게임기에 내장된 클라이언트 인증 파일을 개조하거나 내용을 변조시키면 미성년자도 접속할 수 있다고는 들었는데, 어쩌면 드웍프도 그런 식으로 접속했나 보다.

“너 미성년자가 성인게임 하면 불법인 거 알아, 몰라?”

“에이, 당연히 알죠. 형님.”

이 뻔뻔한 녀석 좀 보게. 불법을 저지르고도 왜 이렇게 당당한 거야?

“덕분에 어른들의 신문물을 미리 체험하고 있잖습니까? 저는 깨어있는 소년이라고요. 미래의 와이프를 위한 이 노력. 대견스럽지 않습니까?”

“이게 왜 미래의 와이프를 위한 노력이야?”

“에이, 아시면서?”

그러더니 한 손으로 S자를 더듬듯 그리며 나에게 눈을 찡긋거린다. 그 눈길이 왜 이렇게 더럽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요즘 애들 왜 이렇게 타락했어? 물론 나 때도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좋아진 기술력까지 활용하니 더욱 대담해졌구나. 다소 부럽다. 조금만 늦게 태어날걸.

아니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런 아이에겐 반드시 선도가 필요하다. S 뭐시기야 호기심에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사기 치는 건 참된 시민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너 내가 신고하면 게임기 압수당하는 거 알지?”

게임기 가격이 가격인지라 압수당하면, 피눈물 좀 흘릴 것이다.

“에이, 형님 설마. 설마 형님이 절 신고하실 리 없잖습니까?”

얘는 내가 왜 신고를 안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신고하고 싶은 욕망이 가슴속에 뭉개 꽃처럼 피어나는데?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드웍프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절절히 애원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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