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9화 (19/147)

<-- 코볼트 마을 습격사건 -->                               우르륵. 바닥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점점 크게 출렁인다. 그 바닥 아래에서 상당한 열기가 올라오고 있다. 떨어져 있는 나에게도 느껴질 정도다. 주변의 얼음은 이미 열기에 녹아 모두 없어졌다.

“그릴리와의 물길.”

그가 혼잣말로 조용히 중얼거리자. 출렁이던 땅바닥이 곧, 거센 해일처럼 치솟더니 엄청난 양의 마그마로 변한다.

“흠!”

족장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마그마를 얼음벽을 세워 막아낸다. 푸악-! 얼음벽은 순식간에 녹아내리지만, 족장은 연달아 두 번을 더 세운다.

차앙-! 차앙-!

그럼에도 마그마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마그마가 닿기 무섭게 녹아내리는 얼음벽을 보며, 마력이 떨어진 건지 틀렸다고 생각한 건지. 족장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다.

저대로면 금방이라도 마그마에 덮쳐질지 모른다.

“족장님 위험해요! 그냥 도망쳐요!”

그러나 그것은 내 기우에 불과했다.

마지막 얼음벽이 마그마에 녹아내리며 사라지는 그 순간! 족장은 자신의 몸을 얼음으로 감쌈과 동시에 서리가 휘모는 얼음살을 발사한다.

화아악! 핑-!

얼음살은 두껍게 밀려드는 마그마를 빠르게 뚫고 지나 파랑드의 심장에 그대로 박혀 들어간다.

“끄……!”

파랑드는 비명을 채 내뱉지도 못하고 온몸이 꽁꽁 얼어붙는다. 파랑드의 몸에선 주변의 마그마를 얼어붙게 할 정도의 차가운 서리가 흘러나온다. 정말 엄청난 위력이다.

하지만 족장도 내내 무사하진 못했다. 자신의 몸의 친 얼음벽은 마그마가 덥쳐침과 동시에 녹아내리며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때, 부상 당한 코볼트 족장을 향해, 그룹장이 커다란 참격을 날린다. 높게 솟은 참격은 바닥의 마그마를 홍해처럼 가르며, 죽음의 사신과 같이 족장의 목숨을 노리고 다가간다.

“안돼, 족장님!”

나는 참격이 지나는 자리로 뛰어간다. 족장이 죽으면 안 된다. 내기? 퀘스트? 그딴 건 지금 순간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냥 내가 하기로 결정한 한 일에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지금의 나를 이끄는 것이다.

촤악-!

내 키보다 큰 참격이 신체를 깊게 갈라놓는다.

“커억!”

-‘959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죽음을 1회 견뎌냈습니다.

역시나 예상했지만, 죽음을 웃도는 피해다. 근성 능력치는 정말 좋구나. 버프의 효과로 다시 한번 풀피가 되었지만, 이제 좀비처럼 살아나는 것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재생 버프가 곧 끝나기 때문에…….

그는 나를 향해 참격을 날린다.

“크읏……!”

날아오는 참격을 간신히 피하자 그 참격이 족장을 향해 날아간다.

“헉!”

생각을 못 했다. 재빨리 방향을 틀어 족장을 향해 달려가지만 참격을 앞지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피잉-!

유리잔 때리는 것 같은 맑은소리와 함께 참격이 단번에 사라진다. 족장이 직접 막아낸 것이다. 족장이 괜히 족장이 아니었지 참……? 나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문득 잊고 있었다.

그러나 그룹장이 족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족장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조금 전의 방어로 마력이 다 떨어진 것일까? 들고 있던 스태프마저 완전히 내린다.

영락없이 죽음을 맞이하려는 자세가 아닌가?!

“이야압!!”

그가 검을 들어내려 친다. 보고만 있을 순 없다.

챙-!

“크아악!”

-833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장검을 이용해 검을 막아내지만, 강한 힘에 밀려 그의 무기가 내 어깨뼈를 부수고 그대로 몸에 박혀 들어간다.

“너……. 날 위해 왜 이렇게까지…….”

뒤에 있던 코볼트 족장이 묻는다. 그렇지만, 대답할 상황이 아니다. 그도 대답이 듣고 싶은 것 같지 않다.

그룹장은 앞을 가로막는 내게 경고한다.

“계속 방해하면, 이대로 죽일 수밖에 없어요. 페널티 얻기 싫으면 포기하세요.”

이런 무지한 인간을 봤나……. 본인이 여태까지 날린 공격들로도 충분히 죽을 수 있는 개복치 같은 인간이 바로 나라는 걸 아직도 잘 모르나 보다.

“그의 말대로야. 나를 위해서 죽음을 자초할 필요 없어…….”

코볼트 족장도 내가 걱정스러운 눈치다. 근데 듣자 듣자 하니 왜들 이래?

“죽긴……! 누가 죽는다는 거야!”

“지금 뭐하는……?”

나는 그룹장이 검을 쉽게 빼낼 수 없도록 어깨에 박힌 칼날을 꽉 잡는다. 그의 검날이 피부를 파고들며 피가 줄어들고 차오르고를 반복한다. 몇 초 안 남은 체력 재생 버프가 끝나면 난 죽을 것이다.

그러기 전에 해야 할 게 있다. 난 족장에게 손을 내민다.

“으윽! 족장님! 목걸이 줘봐요! 저주받은 목걸이! 빨리요!”

내 의도를 이해한 건지 족장은 내 손에 목걸이를 쥐여준다.

모든 신의 저주를 받은 보석. 순수하지 않은 사람이 이 목걸이의 보석을 직접 만지면 모든 신의 저주를 받고 끔찍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래 난 순수하지 않아. 이 세상 순수하기만 한 사람이 얼마나 존재하겠어! 어차피 죽을 거라면 내기라도 지지 않게!

“같이 죽자!”

목걸이 줄을 손에 둘둘 감고 그룹장의 얼굴에 문댄다. 목걸이로부터 오묘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이 느낌은 정말 이상하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목걸이 주변 공간이 회전하듯 일렁거린다.

재생 버프가 곧 끝난다. 그 전에 내가 먼저 죽여야 하는데, 그룹장은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읏! 으윽!!”

그 순간, 그룹장의 몸이 드릴처럼 마구 떨리기 시작한다. 엄청난 떨림이다. 자의적으로 떠는 것이 아닌, 지진 난 대지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심하게 떨린다. 그룹장은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에 당혹스러운 듯하다.

“크으윽…….”

그러나 그 진동으로 인해 나에게 들어오는 피해도 더욱 커지고 있다. 칼을 잡은 그의 손이 점점 풀린다.

“제발 쓰러져……!”

간절한 마음과 달리 체력 재생 버프는 끝났고, 나는 어깨에 박힌 칼날 피해로 인해 그룹장보다 먼저 의식을 잃었다.

*

그래, 나는 순수하지 않아. 하지만… 저주를 받을 만큼 타락하지도 않았어.

-‘죽음을 2회 견뎌냈습니다.’

“으으…….”

어떻게… 된 거지? 나 살아난 건가? 설마 근성 능력으로 또 살아난 거야? 근성 능력치의 수치만큼 최대 3회까지 죽음을 견딜 수 있긴 하다지만, 횟수가 많아질수록 발동률이 높지 않다고 들었는데…….”

“언제까지 누워 있을 생각이냐? 일어나라!”

익숙하게 들려오는 코볼트 족장의 목소리에 나는 상체를 번쩍 일으킨다. 주변을 둘러보니 적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그룹장으로 생각되는 시체를 치우는 코볼트를 보니 요행이 제대로 먹혀든 것 같다.

바닥났던 내 체력은 어느새 가득 차 있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생명의 기운이 내 체력을 가득 채워주고 있다.

코볼트 족장이 죽어가던 날 위해 회복마법을 써준 건가? 인제 보니 내가 살아난 게 근성이 아니라 이 마법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된 거죠?”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너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

그가 내 손을 내려다보며 묻는다. 내 손엔 코볼트 족장이 건네준 목걸이가 여전히 들려 있다. 순수하지 않은 사람이 만지면 죽는다는 보석이 건만 나는 왜 살아있는 걸까? 설마…….

“내가 그 정도로 순수했던 건가?!”

음, 그럴 리는 없……

“웃기는 소리로군!”

스스로 부정하기도 전에 코볼트 족장이 먼저 끼어든다. 당신이 말 안 해도 내가 더 잘 안다고요. 그럼 이 목걸이는 사실 저주를 내리는 게 아닌 건가? 잘 모르겠다. 무슨 이유에서 내가 살아난 건지…….

나는 목걸이를 코볼트 족장에게 건넨다. 그러나 웬일인지 족장은 고개를 젓는다.

“순수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네놈이 그 보석을 만지고도 멀쩡한 걸 보면, 그 보석은 자기가 있을 곳을 직접 정하는 모양이구나. 그건 네가 가져가라. 나도 그걸 볼 때마다 딸 생각이 나서 속이 쓰리니까…….”

나는 보석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벤토리에 집어넣는다. 거절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날 테니……. 탐욕이 아닌, 오직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잠시 후 코볼트 부족원이 웬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 그들은 코볼트 영역까지 들어와서 감금당한 인간들이었다.

코볼트를 죽이려고 영역에 침범한 인간부터, 단순히 모험하다가 잡혀들어온 인간까지 그들이 잡혀 들어오게 된 원인은 제각각이었지만 그럼에도 별 탈 없이 다들 무사한 얼굴이다.

이제 그들과 함께 마을로 내려갈 생각이다. 내게는 아직 마무리할 일이 남아있으니까.

〈목표〉

1.두벤 마을에서 코볼트 무리에 대한 정보를 찾으세요.

2.코볼트 족장을 찾으세요.

3-2.코볼트 족장을 보호하세요.

4.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세요. (신규)

*

나는 잡혀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모든 사실을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믿는 사람들과 믿지 못하는 사람들 반반 나뉘었지만, 나의 호소와 그들이 직접 겪었던 일에 대해 떠올리자 결국, 말을 믿는 쪽으로 여론이 몰리기 시작했다.

마을에 내려와서 그들은 안에 있던 마을 주민들을 불러 모아 즉시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진상을 밝혀낼 길고 긴 청문회가 열렸다.

* * *

“크르르르……. 인간……. 죽여야……. 크르르.”

코볼트 족장은 목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온몸의 털이 모두 타들어 가 검게 그을린 코볼트 하나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불안한 듯 몸을 웅크린 채 떨면서도 입으로는 인간에 대한 원망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아가……. 이제 돌아가자…….”

노쇠한 코볼트 족장의 목소리에 그는 귀를 쫑긋거렸다.

“크르……. 족장님……?”

그러나 족장이 다가오자 그는 네 발로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크르르……! 안돼……! 갈 수 없다. 크르르! 인간! 모두 죽인다…….”

그에겐 인간에 대한 원망이 뿌리 깊게 박혀 들어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도 모른 채. 이빨을 계속 갈았다.

족장은 그런 그가 한없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그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그를 온전히 지켜내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아가……. 오늘이 마지막이란다. 내 딸아이의……. 짝이 된 도리로서… 그 아이가 떠나가는 길에 함께 있어 주어야 하지 않겠니?”

“떠나……? 오늘……?”

코볼트 족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아니야! 크르르…! 떠나지 않아……. 인간들 다 죽인다……! 그래야 떠날 수 있다!

“네가 이럴수록 그 아이는 더욱 힘들어할 뿐이야. 그 아이가 정말로 행복하길 바란다면……. 나와 함께 가자꾸나.”

코볼트는 경계로 긴장시키던 어깨를 이내 축 늘어뜨렸다. 그리곤 자신을 떠난 그녀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떨구었다.

“크르르……. 그녀… 행복해야 해……. 크륵……! 크아아아아!!!”

슬픔이 복받치며 코볼트는 울부짖었다. 목이 터지도록 목이 쉬어서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만큼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그렇게 그곳에선 두 개의 상반 된 슬픈 감정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왔다.

* * *

〈목표〉

1.두벤 마을에서 코볼트 무리에 대한 정보를 찾으세요.

2.코볼트 족장을 찾으세요.

3-2.코볼트 족장을 보호하세요.

4.주민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세요.

5.샤울로드의 고론에게서 완료 보상을 받으세요. (신규)

온 마을 주민 간의 회의가 끝나고 촌장의 아들은 대리 촌장직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잡일을 도맡아서 하기로 했다. 그의 처분이 끝남과 동시에 단체 퀘스트는 마무리됐고, 나는 내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내 퀘스트의 끝과는 별개로 마을 주민들은 서로 의견을 나누며 코볼트 무리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촌장 집을 나서자 익숙한 파티가 눈앞에 지나가고 있다.

“어이 나의 노예들!”

내기에서 진 나의 노예들. 표정들이 많이 썩어있구나. 그러나 그룹장만은 왠지 담담해 보인다.

“내기 진짜 승리하셨네요. 설마 했는데……. 사실 조금 존경스럽네요. 넷이서도 어려운 단체 퀘스트를 혼자서 완료하시다니. 장비랑 레벨 빨도 아니신데 말이에요.”

“오, 그룹장님! 눈치 빠른 아부? 제법 좋았어. 약한 명령 당첨.”

사실 이 사람한텐 별로 악감정이 없어서 마땅히 뭘 시키고 싶지도 않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