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6화 (16/147)

<-- 코볼트 마을 습격사건 -->                               “그럼 확실한 약속의 증표로 제게 키스해주시겠어요?”

“네? 키스요……?”

“우리 고향에선 중요한 약속을 잡으면 키스로 답을 하거든요. 입으로 내뱉은 약속을 입을 통해 맹세하는 거죠.”

물론 말도 안 되는 억지다. 그렇지만 판타지 세계에서 말도 안 되는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

“아……. 그러시면 부디…….”

그녀도 의문을 품지 않는 듯하다. 그녀가 눈을 감고 수줍게 입술을 내민다. 나도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녀와 얼굴을 가까이한다.

“우움……. 움……?”

입을 부담스럽게 오므리네. 뭔가 이상하다. 살며시 눈을 뜨니…….

“뜨앗! 푸엣, 퉷! 이게 무슨 짓이야! 이 녀석아!”

“에, 엘메드!”

집을 뛰쳐나갔던 꼬마가 내 볼때기를 붙잡고 입을 맞추고 있었다. 이 마귀의 자식 같으니……. 언제 또 나타나서는 훼방을 놓는 거야?

“이제 아저씨랑 밥 먹는 건 저에요! 알았죠?! 빨리 대답해요.”

“하아……. 그래, 그래.”

왠지 말려든 것 같아서 한숨만 나온다.

*

“그렇지만, 코볼트 무리는 인간들을 엄청나게 잡아 놓고는 아무 짓도 하지 않더라고요. 무슨 대체 꿍꿍이가 있는 건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라…….”

나는 지금 엘메이에게 코볼트 무리에 대한 정보를 듣고 있다. 그녀는 동쪽 숲 깊은 곳에 버섯을 캐러 갔다가 잡혔었다고 한다.

그녀가 하는 말로는 코볼트 무리에게 잡혀간 인간들이 20명 가까이 되며, 엄청난 마력을 가진 코볼트 족장이 그들을 데리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들이 인간을 잡아가서 실질적으로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그녀가 잡혀있는 동안만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가는 전혀 짐작되지 않는다.

“그게 뭐가 중요해요! 코볼트는 우리 누나를 잡아갔고! 우리 촌장님을 죽이고! 마을 사람들도 많이 다치게 했어요! 코볼트는 나쁜 놈들이에요. 다 죽여야 해요!”

“엘메드, 누나가 나쁜 말 쓰지 말랬지?”

누나의 호통에 엘메드는 입술을 삐죽 내민다. 나는 동생을 야단치는 그녀에게 코볼트 족장의 위치를 묻는다.

“혹시 그 위치가 어디였는지 기억해요?”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워낙 정신이 없던 터라.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촌장님 댁 아드님이라면 아실 거예요. 촌장님께서 코볼트 족장에게 죽임을 당한 이후 그 아드님께서는 코볼트 족장을 세 번이나 찾아갔으니까요.”

“음, 그럼 그분께 한번 가봐야겠군요.”

다음 목적지는 촌장 집인가? 일단 한번 가봐야겠다.

“제가 위치를 잘 모르는데, 엘메이 씨가 함께 가주시면…….

“아저씨! 제가 갈게요! 제가 알려줄게요. 제가 지름길도 알아요!”

아 나 이놈의 꼬맹이가 진짜……. 사사건건 훼방을 놓네.

“저 따라와요. 아저씨!”

꼬마가 날아갈 듯 경쾌한 발놀림으로 먼저 달려나간다. 나로부터 누나를 지켜내서 좋은 건지 코볼트를 잡으러 간다니까 신나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아저씨! 빨리 나와요!”

“간다, 가!”

어지간히도 보챈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가면 섭섭하지.

“엘메이 씨.”

문밖을 나가기 전, 그녀를 부른다. 그녀가 돌아보는 순간.

“네? ……읍?!”

그녀의 입술에 뜨겁고 진하게 입을 맞춘다.

“으음……! 응읏……. 쯉……. 하아…….”

입술을 떼자 그녀가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당혹스럽고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본다.

“식사, 약속한 겁니다.”

문을 나서며, 그녀에게 약속의 의미인 새끼손가락을 흔들어 보이자, 곧 기쁜 듯이 대답한다.

“앗……! 네!”

꼬마야. 그래도 아직은 너보다 내가 한 수 위인 것 같구나.

*

나는 그 길로 처남과 함께 촌장의 집으로 가서 코볼트 족장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마법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인간을 잡아다가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잡아먹는 끔찍한 괴물. 그 어떤 사람들도 그들의 영역에 들어갔다가 무사히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코볼트 족장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 주었다.

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목표〉

1.두벤 마을에서 코볼트 무리에 대한 정보를 찾으세요.

2.코볼트 족장을 찾으세요. (신규)

퀘스트도 갱신됐고, 그럼 슬슬 일어나 볼까? 내가 내기에서 이길 유일한 방법은 족장을 죽이는 것 단 하나다. 다른 놈들처럼 코볼트를 족쳐서 정보를 얻어내는 방법보다는 이게 쉽고 빠르겠지.

그나저나 졸개들도 어마어마하던데, 그 족장은 어느 정도려나……? 그렇게 세다면……. 어떻게 잡아야 하지?

혼자 생각하다 보니 문득, 그 강력하다는 코볼트 족장과 몇 번이나 마주하고도 살아남은 촌장 아들의 비결이 궁금해진다.

“근데……. 올드룬 씨. 올드룬 씨는 어떻게 코볼트 족장과 3번이나 마주하고도 살아남은 거죠?”

“예? 아, 아……. 저… 그게……. 그러니까…… 우, 운이 좋았죠. 뭐. 하하.”

뭐지? 그냥 물어본 건데 왜 이렇게까지 당황을 하는 거지? 굉장히 수상한 반응이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그의 이런 반응을 깊이 생각해보면 분명히 이상한 점이 있다.

아까 엘메이에게 들은 대로면 코볼트 족장은 사람들을 단순히 가둬두고만 있다고 했다. 그런데 올드룬의 말을 들어보면 사람을 학살하다 못해 잡아먹기까지 한다고 했지…….

둘 중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그때, 올드룬이 내 손을 양손으로 잡고 간곡히 부탁한다.

“모험가님! 제발 놈을 쓰러뜨려 주십시오. 놈이 우리 아버지를 끔찍하게 살해한 이후로 저는 매일 같이 악몽에 시달립니다. 마을 주민들도 놈들 때문에 하루하루를 공포 속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놈들을 꼭 처단해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올드룬 아저씨! 이 아저씨가 다 처리할 거예요! 이 아저씨 팬티만 입고 있어서 엄청 빨라요!”

눈물을 글썽거리는 올드룬의 모습에 같이 온 엘메드가 나 대신 나서서 말한다. 제발 조용히 좀 있으면 안 되겠니……?

어쨌거나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 어떤 것이 진실이건 간에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선 코볼트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최선이다.

“떠나시기 전에 잠시만요. 드릴 게 있습니다.”

그가 방에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손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건넨다.

“살아생전 아버지께서 샤울로드 연금술사에게 의뢰해서 만들어 낸 독입니다. 인간에겐 효과가 크지 않지만, 코볼트에겐 그 어떤 독보다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독입니다. 아버지와 저는 비록 사용하는 데 실패했지만, 모험가님께서는 부디 그것으로 코볼트 족장을 끝장내주세요.

〈목표〉

*추가목표 : 올드룬의 독주머니를 이용해서 코볼트 족장을 처치하세요.

독주머니라……. 그것을 손에 움켜쥔 채 촌장의 집을 나선다.

*

코볼트의 영역으로 가는 길에 엘메드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같이 가겠다고 한참을 떼쓰더니만 자기 누나의 말 한마디에 순응하고 얌전해졌다.

“이 독이 잘 먹혀들어야 할 텐데.”

올드룬의 독주머니를 보며 중얼거린다.

[올드룬의 독주머니]

〈내용〉

샤울로드의 한 연금술사가 만들어낸 독이든 주머니이다. 이 독이 일반 생명체의 체내에 들어갈 경우 전신을 5분간 마비시키는 정도지만, 그 대상이 코볼트일 경우 1분 이내 목숨을 잃을 만큼 매우 치명적이다. 약간의 점성이 있으며 사용 시 눈, 코, 입 등. 체내에 들어가지 않도록 취급 주의!

우연한 기회로 얻은 아이템이지만 지금으로써는 코볼트 족장을 잡을 만한 유일한 아이템이니 기댈 수밖에 없다.

사실상 공격 기술도 없고 레벨도 낮고 팀원도 없이 혼자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남들이 코볼트 족장 잡을 때 옆에 껴서 공헌도를 찔끔찔끔 얻어내는 것뿐이지만, 이게 있다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겠다.

“크르르!!”

“아악!”

숲 한편에서는 퀘스트에 참가한 팀들과 강력한 코볼트가 열심히 사투 중이다. 한 명의 인간이 쓰러져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한다. 저 사람은 마무리 당하면 그대로 승천하겠구나. 아까 내 모습 내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코볼트는 그를 지나쳐 뒤의 팀원들에게 달려든다.

“아니, 마무리를 해야지! 전략이 저렇게 부족해서야……. 쯧쯧.”

코볼트에게 쓸데없는 훈수를 늘어놓으며, 조용히 그들을 피해 족장 있는 곳으로 향한다. 저런 잔챙이 코볼트 여럿 잡는 것보다 보스 한 마리가 공헌도 올리는 데는 최고니까.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챙-! 퍼엉!!

“벌써? 이런……!”

근처에 다다르자 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와 폭발음이 연이어 들려온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있었다. 막 타라도 노려야 하는데.

한 대도 안 때리다가 막 타만 친다고 해서 공헌도가 잔뜩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보스급들은 마지막 공격에 대한 공헌도가 꽤 높은 편이다.

“죽어!!”

“크르르!”

상황이 더욱 안 좋아진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그곳엔 무려 두 팀이나 와 있었다. 족장 근처에 2명의 코볼트가 있긴 하지만 쓰러지기 직전이다.

“저 위치면 대충……. 이 나무인가?”

나는 나무를 하나 골라서 기어오른다. 어렸을 땐 자주 타고 놀았지만, 다 커서 나무를 오르려니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나도 늙었나 보다.

내가 나무를 힘겹게 오르고 있는 동안 두 마리의 코볼트 졸개는 쓰러졌고. 두 팀은 코볼트 족장과 싸우고 있었다.

“작열의 사슬!”

촤앙-!

한 사내가 주문을 외우자 그의 무기가 위협적으로 타오르는 사슬로 변한다. 멋있다. 저런 기술은 대체 어디서 배우는 것인가?

“크르! 이곳에 온 걸 후회하게 될 것이다!”

코볼트 족장이 들고 있는 스태프를 내지르자 사슬에 붙은 불이 단번에 꺼지며 사슬을 든 대상까지 얼어붙게 만든다. 뒤이어 스태프를 수평으로 들고 집중하자 곧 앞에 거대한 불공이 생성된다.

불공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얼어붙은 사내를 향해 위협적으로 날아간다. 그때 뒤에 있던 동료가 앞으로 나와 방패를 들고 불공을 막아낸다.

파아아-!!! 불공이 닿아 터지며 엄청난 열기를 내뿜는다. 얼었던 사내는 열기에 상태 이상이 풀리자마자 재빨리 뒤로 빠져 체력을 회복한다.

“조금만 버텨요!”

뒤에서 한 사내가 소리친다. 그때! 방패를 든 사내가 갑자기 돌변하더니, 자기 팀을 향해 달려들며 공격한다.

“으아!”

“왜 그래요?! 우리 같은 팀이에요!”

“보스가 마법 쓴 거 같아요!!”

그곳에 있던 7명 중 2명이 동시에 돌변하더니 자기 팀을 공격한다. 나는 나무에 올라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와… 어마어마하네.”

확실히 보스는 보스다. 적을 자기 팀으로 만드는 능력이라니……. 소름 돋네. 나무의 큰 가지를 타고 그들이 싸우고 있는 머리 위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한다. 내 목표는 오직 코볼트 족장 하나다.

그때, 뒤에서 사람 몸집만 한 검을 들고 내내 가만히 있던 한 명의 유저가 소리친다.

“5초만 더! 거의 다 됐어요!”

말하는 그의 검이 초신성이라도 된 듯 엄청난 빛을 발한다. 보고만 있어도 강대한 힘이 느껴진다. 그 기운을 코볼트 족장도 느꼈는지, 자신의 팀으로 만든 부하를 이용해 그 사내를 공격하게 시킨다.

“다 됐어요!”

말과 함께 그가 움직인다. 무게 때문인지 천천히 걸어가고 있지만 그에게서 엄청난 위압감이 뿜어져 나온다. 설마 저걸로 한 방에 죽이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안 되는데…….

“이야아!!”

콰앙-! 그가 족장의 마법에 걸려 달려드는 팀원을 검 손잡이로 살짝 쳐내자 엄청난 힘이 폭발하며 그를 멀리 튕겨낸다. 그래도 같은 팀인데 너무하지 않나?

아, 나도 이럴 게 아니지. 확실히 검 손잡이만으로도 저 정도 힘이라면 코볼트 족장을 한 방에 보낼지도 모른다. 놈이 죽이기 전에 빨리 독이라도 발라놔야겠다.

이번 내기에서 지면 난 게임 접을 거야. 진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