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볼트 마을 습격사건 --> 생각은 냉정하게 행동은 열정적으로. 그러나 너무 냉정하게 생각한 탓에 오히려 차갑게 굳어서 멍청하게 돼버린 것 같다.
“자네는 왜 혼자인가? 설마 혼자 지원한 거야?”
두벤으로 떠나는 우올로 갑판에 서서 저 아래 마차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 한 선원이 다가와서는 묻는다.
“네……. 그렇게 됐네요.”
내 처연한 대답에 그는 놀란 얼굴이다. 그만큼 무모하다는 말이겠지. 퀘스트 시작까지 결국 나를 받아 줄 팀원을 찾지 못했다.
당연한 거지만 초라해 보이는 나와, 장비 빵빵한 사람들 사이에선 당연히 장비가 빵빵한 쪽을 택할 테니까.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걸었건만…….
해당 퀘스트의 참가 팀은 8팀. 나 포함 총 9팀. 대부분 3명에서 5명까지 팀을 꾸린 와중에 혼자 참가한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저긴가?”
샤울로드 유저에게 구걸해서 얻은 특제 말린 생선을 뜯으며, 저 아래 마을을 살피고 있다.
“후우…….”
두벤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한숨만 깊어진다. 무슨 생각으로 내가 이 내기를 하자고 했을까? 상식적으로 따져봤을 때 내가 이 내기에서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아니야……. 이런 나약한 생각 집어치우고 승리 방법만 생각하자. 상식적으로 이기는 게 불가능하다면 비상식적인 접근 방법을 생각해야 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
“할 수 없어. 난 할 수 없어……!”
두벤 마을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 앞에 펼쳐지는 참상에 최면을 걸듯 중얼거린다.
“끄아아악!!”
“저, 저놈들이에요! 아저씨. 빨리 무찔러주세요!”
명치 높이쯤 오는 꼬맹이가 갑자기 나타난 코볼트를 잡아달라며 내 등을 떠민다. 그렇지만 난 못해. 그 전에 저게 코볼트가 맞는지 유전자 검사부터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 앞에는 이미 코볼트가 썰어놓은 3명의 머리통이 바닥을 뒹굴고 있다.
코볼트는 대부분 어느 게임에서든 ‘약함’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적이 건만, 저놈은 왜 저렇게 빠르고 강력한 건지 모르겠다.
“크르르르. 인간 놈들… 용서 못 해!!”
인간을 용서 못 하시는 거지요? 그렇다면 오늘부터 인간 안 하겠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개가 되겠습니다. 왈! 왈!
“개 같은 인간……. 절대 용서 못 해!”
예? 뭐라고요? 내 생각을 읽는 거야 뭐야? 그전에 너도 갯과잖아…….
황당함에 표정이 굳어있는데 코볼트가 나를 향해 주먹만 한 손톱 3개를 세우며 달려든다. 키는 작지만, 공격은 너무나 매섭다.
“우앗!”
움직임이 무척이나 빠르다. 내가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앞의 인간들이 손도 못 쓰고 죽은 이유를 알겠다.
“아저씨 빨리요! 저놈을 못 잡으면, 마을 안까지 쳐들어올 거예요!”
“위험하니까 비켜 있어!”
꼬마가 자꾸 보챈다. 이곳에 와서 코볼트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꼬마인데, 말이 너무 많은 게 흠이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한테 물어볼 걸 잘못한 것 같다.
코볼트가 손톱을 내지른다. 나는 장검을 뽑아 코볼트의 손톱을 칼의 빗면으로 쳐내고 놈의 머리를 향해 그대로 내리친다.
틱-!
막았어? 설마하니 일개 코볼트가 되치기 일격을 막아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놈의 손톱에 걸린 장검을 뽑아내고 거리를 벌린다. 이거 생각보다 많이 힘들겠는데……?
저게 이 퀘스트의 마지막 남은 보스 정도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잡아야 할 수많은 코볼트 중 한 마리라는 게 내 마음을 크게 동요시킨다.
“크르르! 죽어라. 인간!”
코볼트의 뛰어난 다리의 근력으로 높게 뛰어오른다.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한 발짝 물러서서 피해 주지!
“크르!”
내가 물러서자, 공중에서 발을 박차더니 떨어지는 궤도를 바꾼다.
“이게 무슨! 으악!”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다리를 벌렸는데, 정확히 가랑이 사이에 놈의 손톱이 박혀 들어간다. 5cm만 가까웠으면 다시는 소중이를 못 놀릴 뻔했다. 그 어떤 공격보다 가장 위협적이었다고!
식겁한 마음을 다잡으며, 재빨리 몸을 일으켜 다시 전세를 가다듬는다. 단체 퀘스트는 단체 퀘스트인 이유가 있구나. 일반 몹 한 마리 상대하는데도 혼자서 잡으려니 도저히 빈틈이 없다.
“아저씨 뭐하시는 거예요! 빨리 죽여주세요!”
아오. 이놈의 꼬마가 진짜 어지간히…….
“꼬마야 제발 좀 조용히 좀……!”
“크르르! 시끄러운 인간 먼저 죽인다!”
“어! 안돼, 꼬마야!”
갑자기 표적을 바꾸는 코볼트의 행동에 놀라서 나는 꼬마를 향해 몸을 날린다.
“끄아악!!”
-‘52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저씨!”
간신히 꼬마를 밀어냄으로써 구출했지만, 나는 무려 520의 피해를 보았다. 잠재 하나 믿고 레벨업 안 하기를 잘했다. 내 모든 잠재를 건강에 몰아 찍는다고 해도 두 방이면 죽을 정도의 피해니까. 근데 갑자기 왜 이렇게 어지러운 거지?
-‘상태 이상 ‘출혈’에 걸렸습니다.’
망했다. 출혈이다. 지혈되기까지 30초당 3% 체력이 깎이는 끔찍한 상태 이상이다. 힐링포션도 없고 붕대도 없는데 체력은 1이다. 초입부터 이러면 곤란한데?! 자동 치유력이 있긴 하지만, 1분이 넘어야 차오르기 때문에 지금에서는 의미가 없다.
죽기까지 남은 시각 27초. 지금 이 순간 가장 걱정되는 건, 다름 아닌 그놈들의 노예가 되는 것.
사실상 지금 죽으면 3시간의 디버프 때문에 퀘스트 깨는 건, 물 건너간다. 상처의 고통을 무릅쓰고 일어나 코볼트와 대치해 선다.
“꼬마야 혹시 붕대나 포션 같은 거 없냐?”
고개를 젓는다.
“없어요.”
응, 그럴 줄 알았어. 네가 도움 되는 게 뭐가 있냐?
“아! 붕대 있어요!”
“뭐?!”
“집에!”
이 망할 악귀 같은 꼬마 녀석. 만약, 네가 내 동생이었으면 뒈지게 맞았을 거야. 진짜.
“넌 위험하니까 마을로 가 있어.”
“아저씨 혼자 두고 어떻게 가요! 저놈 잡는 거 보고 갈래요!”
못 잡겠으니까 하는 소리 아니야?! 그보다, 나를 걱정해서 하는 소리도 아니잖아. 그건?!
남은 시각. 이제 9초. 어디 바닥에 약초 같은 거라도 없나? 빌어먹을 흙바닥 천지네!
코볼트가 달려든다. 이제 난 출혈로 죽기까지 5초 남았다.
출혈에 죽나 너한테 죽나, 죽는 건 똑같지만 너한텐 절대 못 죽는다!
3초! 2초! 그 순간……! 기적처럼 1만큼의 피가 차오른다.
“어?”
그와 동시에 코볼트의 목에 칼날이 박히며 불타오른다.
“크르라악! 인간!! 반드시 죽인다!!”
코볼트가 불에 탄 채 고통스러워하며 빠르게 달아난다. 저러고도 안 죽는다니……. 근데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이지?
“자신감 넘치길래 난 또 숨겨둔 실력이라도 있는 줄 알았네……. 그냥 딱 봤던 대로 그냥 허접하네.”
방금 벌어진 일에 대해 생각할 때, 나와 내기를 했던 유저들이 다가온다. 새로운 멤버까지 총 4명이다. 혼자서 초라하게 있는 나와는 다르다. 아무래도 코볼트는 그들이 물리친 것 같다.
“아, 이분이신가? 뭐 내기하셨다고 들었는데, 진짜 팬티만 입고 있으시네. 되게 무모한 거 아니에요?”
새로운 팀원이다. 처음 보는데도 나를 기분 나쁜 표정으로 보며 비웃는다. 어떻게 새 멤버조차 저런 인간을 뽑았냐……?
“내기 재밌을 것 같은데, 저도 꼽사리 껴도 되죠? 저도 노예 한번 부려보고 싶어서요.”
뭐? 노예를 부려보고 싶어? 껄렁거리는 꼬락서니 진짜 마음에 안 드네.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오냐, 받아주마.
“하하, 그럼요. 참여하세요. 똥 닦을 휴지도 하나 필요했는데 마침 잘됐네요. 덕분에 일주일 동안 휴지 걱정은 없겠어요. 당신 얼굴로 닦으면 되니까요. 그럼 끝나고 봅시다.”
나는 그 길로 꼬마와 함께 자리를 피한다. 저것들 얼굴을 계속 보고 있으려니 내 열불이 터져서 안 되겠다.
“와 하핰 저 새끼 말하는 거 존나 싸가지 없네.”
“제 말이 맞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무지한 인간들 같으니……. 뒤에서 그들이 무슨 소리로 떠들든 지금은 무시하자.
그나저나 나 왜 살아있는 거지? 아직 출혈이 멎지 않았는데, 계속 피가 1씩 차오르고 줄어들고를 반복한다. 아까 그놈들이 버프를 걸어준 건 아닐 테고.
가만! 나한테 걸린 버프를 확인해보니 특제 말린 생선으로 인한 버프가 걸려있다. 30초당 체력 5%가 차오르는 버프 말이다. 마을에 도착하기 전 입이 심심해서 뜯은 생선 하나가 날 살린 것이다.
오, 신이시여. 지구상 모든 생선에게 축복을 내리소서.
말린 생선으로 인한 체력 재생 버프는 지속 시간 7분이 남아있다. 그때까진 죽을 일이 없겠구나. 근데 잠깐, 만약 그 전까지 자동 지혈이 안 되면?
“꼬마야! 너 집 어디야!”
“집이요? 왜요? 아! 왜 이래요! 밀지 마요!”
“빠, 빨리 가야 해!!!”
안 그럼 내가 죽는다고!
*
“압박 정도는 괜찮으세요?”
“허허……. 괜찮고 말고요.”
“잠시만요. 이쪽은 소독이 필요할 것 같아요. 뜨거운 물 좀 더 가지고 올게요.”
“네, 얼마든지요.”
아리따운 아가씨가 한다는데 뭔들 싫다고 하리…….
“아저씨!”
“왜 그러니 처남?”
“처남……? 그게 뭔데요?”
“그런 게 있어요. 꼬마는 몰라도 된단다.”
난 지금 꼬마의 집에 와서 치료를 받고 있다. 내 상반신은 붕대에 칭칭 감겨 출혈은 간신히 멎은 상태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꼬마가 붕대를 찾지 못해서 불이라도 지르고 죽을까 했다. 그러나 곧 들어온 꼬마의 누나라는 사람 덕에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은 고이 접어 마음속 서랍 안에 던져두었다.
이 게임 NPC들은 왜 이리도 어여쁜지…….
“아저씨! 우리 누나 쳐다보는 눈이 불순해요!”
꼬마가 씩씩거리며 말한다. 이런 어린아이가 보기에도 내 눈이 불순했나 보구나. 조금 자중하자.
“엘메드! 너를 구해주신 분께 그게 무슨 무례니?!”
꼬마의 누나가 뜨거운 물을 떠 오며, 꼬마를 호통친다. 어쩜 올곧기도 하셔라.
“괜찮습니다. 제 동생 같아서 참 귀여운걸요. 그렇지 엘메드?”
나는 꼬마를 안고 싫어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살가운 척 양손으로 볼을 비비적거린다. 그런 내 마음이 꼬마에게까지 전해졌는지 몸서리를 친다.
“아! 이거 놔요!”
“엘메드! 너, 또!”
“씨! 누나 바보야!”
엘메드는 누나에게 소리치며 집을 뛰쳐나간다. 그래, 잘 가렴. 엘메드! 녀석, 나를 위해 자리를 비워주다니 눈치 빠른 거 하나는 참 좋구나.
“저 녀석이 진짜, 버릇없이!”
“하하, 전 괜찮습니다. 저 나잇대 아이들이 다 그렇죠. 뭐…….”
“죄송해요. 얼마 전 제가 코볼트 무리에 끌려간 적이 있던 터라 그때 이후로 예민해져서는…….”
“코볼트를 유독 증오하는가 싶더니,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보아하니 남매의 부모는 먼 곳에서 일하여 평소에는 남매 둘이서만 생활하는 듯했다. 부모와 떨어진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엘메드에게 그녀는 누나 이상의 엄마 같은 존재인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엘메드로서는 그녀를 데려간 코볼트 무리에 깊은 원한을 갖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 혹시 모험가님의 존함을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존함까지야……. 제 이름은 무… 뮬린입니다.”
문득 이름을 말하려니 너무 부끄러워서 다르게 얘기했다. 이름 가지고 이상한 반응을 보일 것 같지 않지만, 그냥 나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다. 이름이 뭘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역시 그 도우미 뺨을 한 대 더 날릴 걸 그랬어. 새로 지은 내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뮬린 님이시군요. 외모… 만큼이나 멋진 이름이시네요…….”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웃는다. 이거 봐라? 이 반응은 뭐지? 이 정도면 그린라이트를 뛰어넘어 핑크라이트인데……? 옷차림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여인인가 보구나.
지금 당장은 시간이 부족하니 밑밥만 조금 깔아 봐?
“과찬이시군요. 아가씨야말로 너무 아름다워서 제 눈을 부시게 하는데요? 아가씨 이름이……?”
“아, 저는 엘메이라고 해요.”
“엘메이……. 정말 이쁜 이름이네요. 이번 의뢰가 끝나고 나면……. 당신과 식사 한 끼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주시면 오히려 제가 영광인걸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차려드려도 될까요?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요.”
어머나, 이렇게 적극적인 여인이라니. 그녀의 이쁜 손길로 만든 요리라면…….
“그보다 좋을 순 없겠군요.”
식사 약속은 받아냈으니, 수작 좀 부려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