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4화 (14/147)

<-- 내기 한 판 합시다 -->                               “예, 모험가 맞아요. 옷은 사정이 좀 있어서……. 옷 살 수 있을 만큼 벌이가 짭짤한 의뢰 좀 보여주세요.”

그래도 워낙 많은 사람이 오가다 보니까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일단은 믿어주는 눈치다.

“가만있어 보자……. 액수가 많이 걸린 게 뭐가 있나…….”

보디빌더의 팔뚝만큼이나 두꺼운 책을 꺼내 살피던 그가 뭔가 생각난 듯 책을 덮고 말을 건넨다.

“아! 얼마 전에 들어온 의뢰가 하나 있는데. 여기서 얼마 안 떨어진 두벤마을 근처에 코볼트 무리가 나타난 모양이야. 그런데 그놈들이 생각보다 강한 듯해서 용병 길드 쪽으로 넘겼거든? 자세한 내용은 이거 가지고 용병 길드의 고론 씨를 찾아가 봐. 나랑 쌍둥이니까 금방 알아볼 거야.”

그가 손바닥만 한 영화표처럼 생긴 노란색 종이 하나를 건넨다. 그 위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가 쓰여 있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그의 말대로 용병 길드를 찾아가 봐야겠다.

*

용병 길드는 모험가 의뢰소와 붙어있다. 모험가 의뢰소 우측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용병 길드가 나온다.

모험가 의뢰소는 주로 쉽고 간단한 퀘스트를 받을 수 있으며, 용병 길드는 그보다 조금 어려운, 단체 사냥이 필요한 퀘스트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난이도가 높을수록 보상이 좋은 건 당연한 이치다.

“뭐야? 웬 거지가 여길 또 들어 왔어? 한 푼도 못 주니까 썩 꺼져!”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날 보자마자 똑같은 소리부터 내뱉는다.

고론, 고돈 형제. 빡빡머리에 우락부락한 모습이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 도시에서 퀘스트 NPC로는 유명한 듯하다.

그들 몸에 달린 근육만 보면 여기 있는 모든 퀘스트를 두 형제끼리 전부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보기와는 달리 성격은 좋다고 하는 것 같다. 근데 왜 나한테만 이래?

고돈에게 받은 노란색 종이를 그 건네자 금방 오해를 푼다.

“아, 모험가였어? 오해해서 미안하구먼. 요즘 들어 웬 거지 하나가 들어와서 귀찮게 굴기에 또 그런 줄로만 알았네.”

그는 종이를 확인하더니 뒤편에서 돌돌 말린 두루마리 하나를 가져와 나한테 건넨다. 받아서 펼쳐보자 어김없이 퀘스트 창이 떠오른다.

[단체 퀘스트 발생! – 갑자기 찾아온 악의 무리][난이도: 어려움][경쟁]

중대도시 샤울로드에서 북동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인구 250 남짓의 작은 마을 두벤에서 긴급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코볼트 무리에게 마을 주민이 무자비하게 학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신이 나서서 이 사건을 해결해주세요.

*해당 퀘스트는 1시간 동안만 받을 수 있는 경쟁 퀘스트입니다.

*영웅 공적치 2000 이하 제한.

〈목표〉

1.두벤 마을에서 코볼트 무리에 대한 정보를 찾으세요.

〈경쟁 참여 보상〉

명성 100 획득 / 2,000,000셀 / 경험치 획득 / 영웅 공적치 100 획득

〈경쟁 승리 보상〉

명성 300 획득 / 4,000,000셀 / 경험치 획득 / 영웅 공적치 100 획득

경쟁 퀘스트? 도움말을 살펴보니, 여럿의 그룹이 하나의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 동시에 진행하는 퀘스트라고 한다. 해당 퀘스트에 참여한 어느 한 팀이라도 퀘스트 목표를 먼저 달성하면 모든 참가자의 퀘스트가 완료된다.

퀘스트를 가장 먼저 완료한 팀은 〈경쟁 승리 보상〉과 〈경쟁 참여 보상〉 둘 다 얻을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한 팀은 퀘스트 공헌도에 따라 〈경쟁 참여 보상〉만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경쟁 퀘스트의 보상은 팀의 인원대로 분배해서 나누어지기 때문에 같은 팀의 숫자가 적을수록 완료 시에 보상을 많이 받는 것 같다. 그나저나…….

“와 보상 세네.”

확실히 보상이 여태껏 다른 퀘스트와는 수준을 달리할 만큼 큰 편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어려운 건 분명할 것이다.

운이 좋게 어려움 난이도 퀘스트를 2번이나 클리어해봤다지만, 단체 퀘스트는 같은 어려움이라도 최소 4인 기준으로 잡혀 있기에 혼자 한다면 매우 어려움 이상의 난이도일지 모르겠다.

“도전해볼 것 같으면 바로 앞 광장에서 사람을 모집하는 것 같으니 한 번 가보게. 앞으로 21분 후에 두벤으로 향하는 우올로가 출발하니 그때까지 결정해서 알려주게.”

고론이 말한 곳을 보니 상당히 많은 사람이 모여 그룹을 꾸리고 있었다. 그 근처에 다가가니 조금 전의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목록 창이 열린다. 해당 퀘스트는 6개의 그룹이 지원하고 있었다.

그중 4팀은 이미 팀원을 구해서 쉬고 있는 듯했고, 남은 두 팀만이 아직 팀원을 구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4명 아니면 5명씩 모여 팀을 꾸리고 있었다.

“영공 100짜리 단체 퀘스트 가실 유저 분 안 계시나요?”

남자 둘에 여자가 한 명. 그룹장으로 보이는 사람의 장비가 제법 좋아 보이는데, 저 팀이라면 충분히 1등을 노려볼 만도 볼 만도 하다. 지원해볼까?

“영공 100짜리 단체 퀘스…….”

“저기, 저도 참가해도 될까요?”

“아 네 그럼요! 유저 맞으시죠?”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면 NPC도 퀘스트를 참가할 수 있는 건가? 뭐 지금까지 겪어온 바로는 충분히 가능도 하겠다만…….

“네, 맞습니다.”

“아, 그러면 잠시만요…….”

그때 뒤에 있던 파티원 하나가 그를 부르더니 귓속말을 한다. 타이밍을 보아하니 왠지 나에 관해 얘기하는 것 같은데……. 들어보려고 집중했지만, 청력 강화 기술이 있더라도 저 정도 귓속말까지는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저기, 죄송한데 레벨이 어떻게 되시나요?”

“1입니다. 근데 13까지는 레벨업 할 수 있어요.”

“아……. 그럼 혹시… 영공은 몇 점이세요?”

영공. 눈치로 보니 영웅 공적치의 줄임말인 것 같다. 영공이라는 건 사실 나도 처음 들었다.

일단, 영웅 공적치란. 나라에서 운영하는 의뢰소 퀘스트를 완료할 때마다 얻는 시스템 수치였다. 이것이 높을수록 난이도가 높고 보상이 큰 의뢰에 지원할 수가 있었다.

반면 이 점수가 너무 높은 경우, 영웅 공적치에 제한이 걸린 퀘스트는 수행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지금 하려는 이 퀘스트 역시 2,000이 넘으면 수행할 수 없다.

그가 내게 이 점수를 물어보는 이유는 얼마만큼 전투에 능숙한가를 알아보기 위함 같다. 공적치가 높을수록 클리어한 퀘스트가 많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렇지만 의뢰소의 퀘스트는 한 번도 깬 적이 없으니…….

“0… 입니다.

“아, 저기 죄송한데 저희랑 평균이랑 너무 안 맞는 것 같아서 다른 파티 알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아,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돌이켜보니 내 스펙이 형편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은 언제나 면접의 연속. 학교 면접, 회사 면접, 이젠 게임에서까지 면접이라니……. 인간들은 언제나 무리를 만들고 무리의 기준에 못 미치는 것들을 과감히 도태시켜버리곤 한다.

그것은 비단 인간에 국한된 것이 아닌 지구상의 모든 동물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 몸부림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변을 비슷한 환경으로 맞춰 놔야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누구라도 당연한 거니까.

나 같이 나약해 보이는 인간을 품어줄 사람은 없을 것 같구나.

그렇게 첫 번째 파티 신청을 매몰차게 거절 받고 안 되겠다 싶어서 다른 퀘스트나 받을까 했는데, 그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곳에 신경이 쏠려 문득 집중해보니…….

“옷도 거지같이 입고 와서 염치도 없네…….”

“그냥 저런 사람도 있나 보다 하고 넘어가세요.”

“솔직히 업혀 가려는 게 뻔히 보여서 파티했으면, 진짜 싫을 뻔했어요.”

그룹장에게 속삭이던 남성, 그룹장, 뒤에 가만히 있던 여성이 차례대로 떠들어대고 있다.

“저런 사람들이 사냥 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보상받아갈 땐 제일 먼저 받아갈걸요?”

“맞아요. 맞아. 어쩌면 저 사람 때문에 최소 공헌도도 달성 못 해서 기본 보상도 못 얻고 헛고생만 할지도 몰라요.

“하하……. 전 다시 새 멤버 좀 구하고 있겠습니다.”

날 파티에 받아주지 않은 건 둘째 치더라도 남의 약점을 가지고 가십거리로 떠들다니, 참 잘나신 취미들을 가지셨다. 그나마 그룹장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는데……. 부추기는 저 둘이 문제구만.

스스로 묻는다.

“이번에도 참을 거지?”

스스로 대답한다.

“글쎄…….”

게임이라 한들 게임으로만 생각하면 나 자신에게 작은 상처를 반복해서 쌓아놓는 꼴이다. 들리지 않았다면 넘어갔겠지만, 듣고서는 그냥 못 넘어간다.

‘뭘’로서가 아닌, 사나이 ‘강기단’으로서 유저에게 저런 취급을 받고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언제까지 나약한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갈 것인가?

이 세계에서 이런 캐릭터로 남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여긴 가능성이 무한한 세계다. 스스로 무릎 높이의 담장에 갇혀 지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나는 몸을 돌려 그들에게 다가간다.

“저기요. 우리 내기하나 할래요?”

내 말에 그룹장이 되묻는다.

“네? 무슨 내기요?”

“제가 팀을 구하면, 그쪽 팀하고 저희 팀하고 해서 퀘스트 공헌도가 낮은 팀은 공헌도가 높은 팀에게 하루 동안 복종하는 거죠. 어때요?”

“아……. 재미는 있겠는데, 팀원들한테 한 번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그가 팀원들에게 다가가 묻는다. 그들이 날 비웃듯이 흘끗흘끗 쳐다본다. 얘기가 다 끝났는지 그룹장이 나에게 다가온다.

어떤 얘기를 할지 이미 알고 있기에 그룹장의 말을 막고는 그의 뒤편에 서 있는 팀원들에게 소리친다.

“이봐요. 거기 두 분. 재미 삼아 내기 한 번 하시죠. 출발까지 15분 정도 남았는데. 그때까지 제가 팀원을 못 구하면 전 혼자 해야 하는 건데……. 설마 제가 두려워서 피하실 리는 없는 거잖아요. 그죠?”

계속 뒤에만 있던 팀원들이 다가와서 말한다.

“아니, 그거 해서 우리가 얻는 게 없는데 뭐하러 해요?”

“얻는 게 왜 없어요? 재미와 스릴. 그리고 하루 동안 말 잘 듣는 노예를 얻는데?”

옆에서 가만히 있던 여성도 내기 거절에 한 표를 던진다.

“우리 그냥 하지 말죠? 괜히 신경만 쓰이지…….”

“왜 신경이 쓰여요? 그냥 퀘스트 하는 대로 하고 최종 공헌도만 보면 되는 건데? 왜요? 아, 설마 제가 당신들보다 강한 팀 구할까 봐요? 아니, 그러시면 아예 저 혼자 팀 해도 되니까 한 번 하시죠.”

내 제안에도 그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며 승낙하지 않고 있다. 이놈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소릴 하는 건가 싶은 표정이다.

“제가 이렇게까지 배려해드리는데도 쫄려요? 그럼 두 분은 평생 남 뒤에 숨어서 지금처럼 찍찍거리면서 사세요. 쥐새끼도 아니고 그게 무슨 짓거리야 대체…….”

“방금 뭐요? 쥐새끼요? 왜 갑자기 시빕니까?”

“아이고……. 들었나 봐요? 전 누구처럼 뒷담까는 게 습관 돼 있지 않다 보니 거기까지 들렸나 보네요. 미안합니다. 예의상 기분 나쁘라고 한 소리니까. 마음껏 기분 나빠 하세요. 이 쥐새끼 같은 새끼야.”

“이 또라이 새끼가 진짜…….”

상황이 다소 무거워지자 그룹장이 나서서 말린다.

“싸우지들 마세요.”

“에이 싸우다니요. 내기나 하자는 건데, 저 두 분께선 쫄보처럼 거절을 하시니까. 그룹장님 생각은 어때요? 내기, 하실래요?”

내 물음에도 그룹장은 팀원들의 눈치만 살피기 바쁘다. 답답해 죽겠네, 자기 의견을 말해보라고 던져줘도 이 모양이니.

그룹장이 머뭇거리자 뒤에 있던 남성이 열 받았는지 나서서 내기를 받는다.

“그래, 하자 이 병신아. 근데 내기 내용을 조금 바꿔야겠다. 하루 말고 일주일 노예로 해.”

“네, 네. 니 마음대로 하세요. 일주일이든 일 년이든. 네 혓바닥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내 신발 밑창, 열심히 핥게 해줄 테니까.”

게임상에서 지원하는 내기 시스템을 통해 그들과 내기를 시작한다. 해당 내기는 잠시 후 시작될 퀘스트의 공헌도가 높은 팀이 승리하며, 승리 보상으로는 일주일간 패배 팀을 마음껏 부릴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아이템을 받친다는 등의 행위는 불가능하지만, 행동으로 가능한 모든 일을 시킬 수 있다. 게임 시스템으로 묶여있는 내기이기 때문에 몇 번을 거절하면 계정 정지까지 당할 수 있다.

노예 생활을 하면서 막스핀의 길드원들한테 당해본 거지 같은 시스템을 다시 이용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네 놈들 계정… 아예 못 쓰게 해줄게.

“아까 우리 얘기 들었나 봐요.”

“들으라고 해요. 저 병신새끼가 뭐 어쩌겠다고.”

뒤로부터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면서 새로운 팀을 구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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