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7화 (7/147)

<-- 수상한 동업 -->                               “푸핫!”

감옥에 들어온 지 5일째. 지난날 동안 탈옥을 시도했지만, 지금 내 캐릭터의 능력으로썬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고 이제는 내려놓은 상태다. 그래서 지금은 감옥에 누워 내 나름의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킥킥킥…….”

“야! 너 자꾸 낄낄거릴래? 책 뺏어버리기 전에 적당히 해라!”

“아 미안합니다, 간수 씨!”

간수에게 건방진 사과를 보낸 후, 다시 보던 책으로 눈을 돌린다. 하도 꺼내달라고 징징거렸더니 간수가 나한테 책을 하나 건넸는데, 이게 생각보다 재밌다.

말하는 동물들을 기르는 사육사의 이야기인데, 처음엔 이게 뭔 내용인가 싶어서 봤는데, 금세 빠져들어서 어느샌가 마지막 편을 읽고 있다.

“아, 재밌었다. 간수 씨. 책 더 없어요?”

“이제 네놈이 읽을 책 같은 거 없어!”

“에이, 거기 뒤에 많잖아요. 그러지 말고 더 줘요! 또 시끄럽게 합니다!”

“그래, 그래. 어디 마음껏 떠들어봐. 어차피 그것도 오늘로써 마지막이니까.”

응? 마지막? 나가려면 아직 1주는 남았는데?

“마지막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 오늘 재판이에요?”

며칠 전 간수가 한 말이 있었다. 운이 좋으면 재판관에게 재판을 받고 시민 봉사 등의 벌로써 남은 수감일을 탕감할 수 있다는 말.

오늘이 바로 그 재판 날인가 싶었지만 내 물음에도 간수는 말없이 비릿한 웃음만 짓고 있다. 뭔가 엄청나게 불길한 기운이 엄습하는 건 왜일까?

이제는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에도 막연한 불안감부터 든다. 하지만 내 불안감은 언제나 맞아 떨어진다는 게 더 큰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여긴 정말 계단이 왜 이렇게 좁은 거야?”

“밀지 마! 넘어진다고!

“오늘은 제대로 된 녀석을 건질 수 있으려나?”

“미녀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가 우리 실망시키는 거 봤어?”

감옥을 내려오는 입구로부터 와글와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근데, 이런 목소리 패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페코 씨 저희 왔어요.”

“아이고, 오셨습니까. 브랙탄님”

한 명이 입구에서 나와 간수 앞으로 가더니 뒤이어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줄이 따라 들어온다. 그 모습이 어쩐지 상당히 낯이 익은데…….

“진짜 걔들이네?!”

“응?”

첫 번째 퀘스트 때 미녀 NPC를 괴롭히던 그 괴한들이다. 설마 했는데 진짜 그놈들이었을 줄이야……. 근데 쟤들은 왜 항상 저렇게 몰려다니는 거야? 고놈들 컨셉 한번 특이하게 잡았네.

“어?! 너 이 새끼?! 나 알지? 여기 갇혀있었네?”

그놈들 중 한 명이 날 알아본다. 내가 주먹으로 패줬던 그 녀석이다. 물론 피해는 별로 입히지 못했지만……. 근데 이 녀석들이 왜 여기 온 거지? 설마 날 잡으러 온 건 아닐 테고?

“페코 씨. 오늘 파실 죄수 중에 저놈도 포함되어있습니까?”

브랙탄이라고 불린 사내가 날 노려보면서 간수에게 묻는다. 근데 묻는 내용이 어째 심상치가 않다. 팔아? 설마 날 이놈들한테 판다는 거야? 그동안 내가 너무 시끄럽게 해서?

갑자기 간수를 잠도 못 자게 괴롭히던 지난날이 떠오르자, 가슴이 먹먹해지며 손발이 저리기 시작한다. 습기 어린눈으로 애처롭게 간수를 쳐다보지만, 꼴 좋다는 듯 나를 흘겨보더니 대답한다.

“물론이고 말고요. 저 녀석하고 1번, 3번 감옥 죄수들 데려가시면 됩니다.”

브랙탄이 간수의 말을 듣고 만족스러운 듯 웃더니 돈주머니를 건넨다. 이것은 영락없는 불법 뒷거래 현장이 아닌가!

“아, 아니! 간수 씨, 아니 간수님! 이러시는 법이 어딨습니까! 아니 세상에! 나라의 봉록을 먹고 사시는 위대하신 간수님께서, 저런 불한당 무리와 타협을 하시다니요!”

내가 간수에게 따지는 와중에 브랙탄이 감옥 열쇠 뭉치를 돌리며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얼마나 신났으면 휘파람까지 불어대며 말이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욱더 다급해져 간다. 이놈들한테 잡혀가면 나 진짜 죽는다고! 아니, 차라리 죽으면 다행이지!

“오지 마! 너, 오지 마! 자식아! 간수님!! 아니, 간수님 이러는 거 재판관님은 아시나 몰라?!”

하지만 다급한 내 마음과 달리 간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야 인마! 재판관님이 좀 바쁘시냐? 원래 너 같은 조무래기는 우리 선에서 직접 처리하는 게 암묵적인 관례야.”

“그딴 게 어딨어!”

브랙탄이 감옥 문을 따고 들어오자 나는 그대로 뒷걸음질 쳤다.

“여기 있다 이 새끼야. 오랜만이지?”

“오, 오지 마! 어우 씨바 좀! 오지 마!!!”

당혹스러움에 무심코 욕까지 튀어나온다. 이윽고 브랙탄의 검은 손길이 내게 뻗친다.

“으아아아아아!!!”

*

달그락거리는 마차가 비포장 거리를 이동하며 무자비하게 흔들린다. 마차는 처음 타보는데 원래 이런 기분인가? 원래 끔찍한 기분인 건가? 설마 노예를 실은 짐 마차에 내가 타게 될 줄이야. 진짜 별일을 다 겪는다. 재판관조차 썩어빠진 도시라니…….

“후우…….”

사람들의 시선이 마차에 실린 나에게 날아와 비수처럼 꽂힌다. 그런데도 나는 한 걸음 다가가 철창 밖으로 손을 내민다. 누군가 나를 영웅처럼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며…….

“다 왔어! 빨리 내려 이것들아!”

그래, 영웅 같은 건 내게 있을 리가 없지. 손에 수갑이 묶여 감옥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줄줄이 끌려간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을 따라 당도한 곳은 붉은색과 흰색 벽돌을 규칙 없이 쌓아 올린 작은 건물이었다. 내부로 들어서니 사람 30명 정도 들어서면 꽉 찰 법한 작은 로비와 거기로부터 연결된 문이 하나 있었다. 나와 잡혀 온 이들은 함께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니들 잘 들어. 너희는 오늘 노예로서 이곳에 잡혀 온 거야. 안에 들어서면 무조건 묻는 말에 잘 대답해. 안 그러면, 성적 취향 더러운 귀족들한테 넘겨버릴 줄 알아.”

정말 오싹해진다……. 가끔 이게 게임이란 사실을 완전히 잊을 만큼 상황 몰입이 잘 된단 말이야? 이 모든 것들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 그렇다.

“막스핀 님. 새 노예들 데려왔습니다.”

“어 그래. 왔구나. 잠깐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떤 사람이 책상에 앉아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는 게 보인다.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남자인 것 같은데 드물게 머리가 단발이다. 우린 방 중앙에 가로로 서서 그가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곧 그가 일어나, 우리 앞에 선다.

“수고했어. 밖에서 대기.”

사내의 말에 브랙탄은 가볍게 묵례 후 방을 나간다. 막스핀이라 불린 그는 머릿결을 찰랑거리며 고개를 좌우로 왔다 갔다 정신없게 한다. 멀쩡한 인간은 아닌 것 같다.

한참 우리의 모습을 살피던 막스핀이 내 옆 사람에게 물음을 던진다.

“유저?”

“예? 그, 그게 뭔가요?”

“아, 아니고.”

그는 다소 실망한 기색으로 넘어가더니 내 앞에 다가와 똑같이 묻는다.

“유저?”

유저인 걸 묻는 건가? 이 사람도 유저인건가?

“아, 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물어오니 무심코 답했다. 이게 부디 잘한 선택이길 바랄 뿐이다.

“오! 유저예요? 오케이 일단 킵.”

왜 저렇게 신난 걸까? 영문을 모르는 나를 내버려 둔 채, 마지막 사람에게 똑같이 묻고는 내보냈던 브랙탄을 다시 부른다.

“이렇게 둘 데려가.”

“아……. 예 알겠습니다.”

막스핀이 나를 제외한 둘을 데려가라고 지시하자, 브랙탄이 아쉬운 눈으로 나를 흘기고 나간다. 여기 남은 게 내가 아니었으면 어떤 꼴을 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와, 진짜 간만에 유저 노예네.”

나를 노예라고 부르니까 왠지 기분이 께름칙하다.

“아,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요. 원래 연기도 그렇고 게임도 그렇고 역할 충실할수록 더 재밌잖아요? 저는 작은 노예상인 길드를 운영 중인 막스핀이라고 합니다. 저도 유저예요.”

“아, 예. 저는 뭘이라고 합니다.”

“아이디가 뭘이에요? 특이하네.”

역시 그도 유저였다. 그동안 지나친 사람 중에 유저가 있을지는 몰라도 이렇게 유저랑 직접 대화하는 건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근데 어쩌다가 쟤들한테 팔려온 거예요? 간수가 웬만하면 유저는 안 넘겨주던데?”

“아니요. 엄청 쉽게 넘겨주던데요?”

내가 부랑자라서 그런 건지, 간수한테 밉보여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넘기는 걸 보고 어이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래요? 그쪽에서 건너온 유저 노예는 이번이 처음인데……. 아무튼 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여? 풀어주겠다는 말이면 좋겠는데…….

“제 전용 노예가 되어주시죠.”

뭣이라……? 단발머리 남자의 전용 노예?!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전용 노예라니?”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시키는 일을 하는 노예가 되어주는 거죠. 뭐 좋게 보면 비서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요? 몸을 씻겨준다거나 급할 때 한 발 빼 주는 거 말이죠.”

이런 상변태가?! 그런 끔찍한 생활을 할 수 있겠냐!

“미쳤어요?! 세상에 그런 역할을 하는 비서가 어딨습니까!”

“모르세요? 그런 역할 하는 비서는 당신 생각보다 많아요? 적응하면 괜찮아지실 건데?”

“안 해! 못 해! 차라리 죽여!”

끔찍한 소리에 극한의 거부 반응을 보이자 막스핀이 고개를 숙이고 킥킥거린다.

“사실, 그건 농담이에요. 괜한 사람 게임 접게 만들고 싶진 않거든요? 실은 요즘 제가 이 세계에서 사업을 하나 하고 있는데, 그걸 도와줬으면 하는 게 있어서 말이죠. NPC들이 아무리 인간 같다고는 해도 말이 잘 통하는 건 결국 유저니까요. 안 그래요?”

정말 질 나쁜 농이로구나. 이 인간 능글능글한 게 정말 마음에 안 든다.

“그거 거절하면 어떻게 되죠?”

“나도 돈 써서 얻은 거니까 그쪽을 풀어 주긴 어렵고. 싫으면 노예시장으로 보내는 수밖에 없죠, 뭐. 그쪽으로 가면 제가 했던 농담이 진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겠죠? 하지만 만약, 당신이 내 밑에서 일만 제대로 해준다면 금방 풀어줄 수도 있어요. 어떻게 할래요?”

그런 소리를 들었는데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지만 녀석의 말을 모두 믿을 순 없다. 뒤통수 치려고 찾아오는 NPC보다도 못 믿을게 인간이란 족속들이니까.

일단은 승낙하고 기회를 봐서 도망치자.

“하죠. 근데, 그 사업이라는 게 뭔데요?”

“그건 천천히 설명하도록 하고. 혹시 지금 레벨이 몇이에요?”

“1입니다.”

“아, 1이에요? 진짜 부랑자로 시작하는 사람도 있긴 있구나. 게임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됐어요?”

“한 삼 주 정도 됐죠.”

내 말을 듣던 막스핀이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3주나 됐는데 왜 아직도 1밖에 안 됐냐는 얼굴이다. 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남들은 오죽할까?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말입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는 일 주정도 됐어요.”

“아, 예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생각보다 레벨이 낮아서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갑시다. 따라와요.”

막스핀을 따라 방을 나선다.

*

그와 함께 외부로 나와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그게 내게 목걸이 하나를 건넨다.

“이게 뭐예요?”

“노예의 증표. 사실 불도장을 찍으면 더 좋긴 한데, 그건 싫죠?”

불도장? 설마 사극 드라마에서나 보던 노예 낙인을 말하는 것인가?

“당연히 싫죠!”

“그럼 그거 착용해요. 불도장 대신이니까.”

“안 하면 안 됩니까?”

“물론 안되죠. 그걸 착용해야 당신이 맡은 일을 잘 하는지 내가 감시할 수 있거든요?”

감시한다니. 더더욱 착용하고 싶지 않다.

[막스핀 - 노예의 목걸이]

요구 레벨 1

희소성: 마법

착용 시 귀속

〈내용〉

막스핀의 노예임을 증명하는 증표입니다.

마법 아이템이라면 부여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게 보통인데, 이 목걸이는 마법 아이템임에도 아무런 능력이 붙어있지 않다. 엄청 수상한데……. 그렇지만 별다른 수가 없으니 일단 착용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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