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4화 (4/147)

<-- 유 아 소 뷰티풀 -->                               “너, 일반 몹 아니었어? 왜 레어 같은 걸 끼고 있는 거야?!”

특수 능력이 있는 목걸이를 찬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놈의 기술이 거나 뭐가 됐든. 이 한방으로 잘못 건드렸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놈이 주먹에 맞고 추켜 오른 고개를 태연히 내리더니, 내 말에 딴지를 건다.

“내가 몹처럼 보여? 인제 보니 이거 그냥 미친놈이었군. 한 번 봐줄 테니 그냥 꺼져!”

피해는 분명히 들어간 것 같지만, 공격력이 낮은 탓에 큰 타격은 없는 것 같다. 그래, 내가 상대했던 원숭이는 튜토리얼 몹이었잖아? 그런 걸로 백날 단련해봤자 엄청나게 강해질 리가 없지…….

그렇지만, 봐준다는 소리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남자로서 지닌 자존심이 바닥을 꼬물꼬물 기고 있다. 물러서지 않는다. 다시 한번 기합 넣고 선빵이다!

내겐 20의 잠재 능력치가 있어! 그것만 발휘되면 네 녀석쯤은!

“이야!!”

팍-! 주먹의 빠르기로는 복서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빠르기만 빠르다는 게 문제지…….

“다 했냐?”

이건 뭐, 턱에 주먹이 정확히 꽂혀도 도저히 아파하질 않네. 장소가 협소해서 한 명씩 싸운다 쳐도 이런 놈을 15명이나? 안 돼, 이건 사람 불러야 돼.

이제야 현실적인 판단이 서기 시작한다. 근데 조금만 일찍 섰다면 얼마나 좋았을꼬?

“이런 솜 주먹 따위로 끝까지 해보겠다는 거야? 그냥 여기서 죽여주마!”

봐준다고 할 때 그냥 갈 걸……. 내 솜 주먹에 자존심이 상한 듯, 녀석의 주먹이 세차게 날아든다.

퍽-! 꽤 묵직한 주먹에 맞고 뒤로 나자빠진다.

-‘잠재가 효과를 발휘합니다.’

-‘9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크윽!”

손을 들어 막았음에도 피해가 90이나 들어왔다. 체력을 보니 1 남았다. 내 최대 체력을 훨씬 웃도는 피해를 보았지만, 잠재 능력이 건강 쪽에 일시적으로 들어와 산 것 같다. 잠재 능력치는 이런 식으로 발동되는구나.

사실 조금 전 공격을 못 피한 건 아니다. 단지 느려 보이기에 피하지 않고 막아봤는데, 이 게임에서 속도와 힘은 별개인가보다. 이제 더는 요행을 바랄 수도 없다.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

“근데 있잖아…….”

몸을 일으켜 누더기 같은 부랑자 전용 옷을 툭툭 털어내자, 흙먼지가 폴폴 일어난다.

“나 왜 너희한테 질 거 같지가 않냐?”

누가 본다면 허세라고 하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정말 질 거 같지 않다. 놈이 날린 주먹 한 방에 그게 느껴지더라. 빌어먹도록 빠른 원숭이에 비하면 너무 느려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라고.

“날 쓰러뜨리고 싶으면, 방금 그 속도에 5배 정도만 빠르게 내질러봐. 그래야 할 만할걸?”

괴한들이 껄껄 웃어 재낀다. 우습기도 하겠지. 체력이 1밖에 안 남은 주제도 모르는 멍청이가 눈앞에서 까불어 대는데, 내가 앞의 놈을 공격한대도 아까처럼 반사 피해가 들어와서 어차피 죽을 테니. 그것도 그렇긴 하다.

“헛소리 들어주는 것도 지겹다. 그냥 죽어라.”

거구가 장도를 빼 들고 수직으로 내려친다. 근데, 진짜 그렇다니까. 착각이 아니라 너무 느리다. 칼을 잡는 자세부터 내려치는 동작까지 하나하나 다 보여서, 동영상이라면 빨리 감기를 하고 싶을 정도니까. 이 정도는 몸을 살짝만 틀어만 줘도 피할 수 있다.

챙-! 팍-! 좁은 골목 벽에 기다란 장도가 부딪히며 돌 조각을 팍팍 튀어댄다.

“진짜 느리네.”

“이런 씨!”

깐족거리며 요리조리 피해내는 내 모습이 짜증 났는지,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른다. 하지만 거리를 벌리면 그만이다. 한 대도 맞아 줄 수 없다. 문제는 이제 어떻게 이기느냐인데……. 공격도 할 수 없으니 도무지 이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디 보자…….

“아, 알았다!”

퀘스트 내용을 보다 보니 떠올랐다.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공격을 가볍게 피해내면서 웃음 지으니 놈이 섬뜩함이라도 느꼈나 보다. 굳은 얼굴에 진땀이 삐질 흐르는 걸 보면.

“이……! 죽어!!”

달려들면서 내려치는 공격을 사뿐히 피해낸다.

“하, 너는 인마…….

공격 후의 빈틈을 파고들어 놈의 갑옷을 두 손으로 잡는다.

“호랑이가 하이에나한테……!”

양손에 힘을 주어 거구를 힘차게 밀기 시작한다.

“죽는 거 봤냐!!!”

“으어어어!”

넘어지지 않기 위해 재빠르게 뒷걸음질 치는 놈 덕분에 뒤에 있는 적들까지 쭉 밀려 나자빠진다.

“스트라이크! 갑시다. 달려요!”

놈들이 넘어진 틈을 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여인의 손을 잡고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체력도 없는데 전력 질주를 하니 폐가 타들어 갈 것 같다. 그렇지만 달려야만 한다.

피가 1이라 혹시라도 사람들에게 잘못 부딪혀 죽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말이다.

*

[퀘스트 완수 – 골목의 영웅][난이도 : 어려움]

괴한들로부터 그녀를 구해냈다. 그녀는 당신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보상〉

명성 20 획득

-‘명성이 20 증가 하였습니다. (현재 명성: 20)’

-‘특별 능력 ‘카리스마’를 깨달았습니다. (‘난이도 : 어려움’ 퀘스트 완수로 인해)’

퀘스트 완료와 함께 경험치가 아주 조금 올랐다. 또 카리스마라는 능력치도 새로 추가된 듯하다. 새로운 능력치는 이런 식으로 추가된다 이거지? 카리스마가 뭔지 좀 볼까?

[카리스마]

당신의 존재감이 주변에 빛을 발합니다. 대상이 당신의 말을 귀담아들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부탁 또는 명령의 효과가 상승합니다. 아군이 배반할 확률이 낮아집니다. 적 대상을 확률적으로 기선 제압합니다. 기선 제압당한 적은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감소합니다. 카리스마 기반 기술에 영향을 줍니다.

좋은 능력인가? 일단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

카리스마는 특별 능력으로 분류가 되어있다. 특별 능력은 그 능력치와 관련된 행동을 함으로써 올릴 수 있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최대 10까지 올라가며 장착은 기본 3개까지 할 수 있다고 한다.

장착 갯수를 초과할 경우 ‘능력치 저장소’로 보내지는데, 저장소로 간 능력치는 캐릭터에 반영이 안 되고, 일주일에 한 번 현재 착용 중인 특별 능력과 교체함으로써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장소에 있어도 하는 행동에 따라 관련 능력치가 오른다고 하니 그거 하난 다행이다.

퀘스트를 완수했지만, 적들을 처치하지 못해서 그런지 경험치는 정말 짜다. 어려움 퀘스트를 마쳤음에도 레벨 1도 안 올랐다. 부랑자는 1부터 시작하는 캐릭터라 10까지는 금방금방 오른다고 하더니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가 보네.

그래도 첫 번째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치다니 흐뭇하다.

그나저나 받아야 할 게 또 하나 있던 것 같은데……. 보상하나 어디 갔어? 추가 보상인가 뭔가는? 설마 ‘추가 보상 확률’ 실패라는 소리는 하지 않길 바란다.

“저기…….”

추가 보상 행방에 관해 생각하고 있을 때, 구해줬던 여인이 나에게 말을 건네온다. 그녀를 쳐다보자 고개를 숙이고 나를 흘끗흘끗 쳐다본다.

기본적으로 유저와 NPC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구분이 안 되는 세계관이라 NPC인지는 모르겠는데, 진짜 말도 안 되게 이쁘다. 내 이상형을 게임 속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퀘스트였으니까 NPC겠지?

밝고 화사한 톤의 윤기가 흐르는 금발에 그보다는 조금 진한 홍채 색. 전체적인 이목구비가 또렷한 건 말할 것도 없고, 하얗다 못해 투명해서 옅은 붉은 빛이 감도는 있는 피부까지. 결점이라면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아니 뭐, 사실 나 같은 남자들은 이쁘면 누구든 다 이상형이긴 한데, 와 그래도 이분은……. 순한 새끼고양이 같은 귀여움과 봄날의 햇살 같은 싱그러움이 겉으로부터 느껴진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깐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녀가 죄송하고 건네는 말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죄송할 게 있던가? 내 의문을 풀어주려는 듯 그녀가 말한다.

“자, 자기라고 불렀던 거요……. 너무 급해서… 아무 말이나 막 했던 것 같아요. 죄송해요…….”

그녀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 진짜 어쩌면 좋니, 이 미모를……. 진짜 내 자기면 여한이 없겠구나.

“괜찮아요. 다 이해해요. 자기.”

“네?”

“예? 아, 아니요. 괜찮다고요.”

그녀의 미모를 넋 놓고 바라보면서 생각만 한다는 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나 보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놀란 눈으로 내 손을 내려다보더니 확 부여잡는다.

“이, 이러시면 곤란하진 않은데 갑자기 왜 그러세요?”

“팔에 상처가 났잖아요. 우리 집으로 가세요. 제가 치료해 드릴게요.”

괴한에게 맞고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인가 보다.

“아, 그래요……. 그렇군요……. 이정도면 당연히……. 치료를 받아야겠죠……?”

*

미모에 홀려 정신을 못 차린 사이 어느새 그녀의 집까지 끌려가, 까진 상처를 치료받고 차까지 홀짝이고 있다. 그녀가 인신매매단이었다면 영락없이 팔려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의 집은 작고 허름했다. 벽 한편에는 실크와 가죽을 덧대어 검정 깃털로 장식한 고풍스러운 남녀 의복이 한 벌씩 걸려있는데, 방 한편에 직조와 바늘 따위의 도구가 있는 걸로 봐서 옷을 직접 만들어서 파는 NPC인 것 같다.

디자인도 나름대로 참신하고 독창적이어서 괜찮아 보인다. 돈만 많았다면 그녀의 옷을 수백 벌이라도 팔아 줬을 텐데…….

보면 볼수록 어쩌면 이렇게 이쁘게 만들어졌는지……. 물론, 이 NPC 말이다. 나 같은 부랑자한테 옷 따위는 아무렴 상관없다.

“그, 그렇게 빤히 보지 마세요.”

아, 심장! 아 심장이 아프다! 그녀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내 심장에 콩콩 주먹질하고 있다. 보지 말라는 그녀의 말에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어서 그냥 보고 있다. 자연이 내려준 생물학적 생리작용을 어찌 인간으로서 감히 거스를 수 있겠는가?

그녀는 푸딩만큼이나 보드라울 것 같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재빨리 차를 마시는 척, 찻잔에 얼굴을 파묻는다. 내가 저 찻잔이었으면…….

“윽!”

그 순간, 진짜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어서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랬더니 그녀가 눈만 빼꼼히 내밀어서 나를 본다. 뭐냐고 저 모습은? 너무 귀엽다고! 일반 NPC 수준이 이렇게나 높은 게임이었어? 게임 잘 골랐다 진짜.

어머니, 아버지 죄송해요. 아무래도 아들 장가는 다 간 거 같아요. 부디 이 불효자를 용서치 마소서.

“저기 괜찮으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제가 조금 봐 드릴까요?”

그녀가 걱정스러운 듯 나를 쳐다본다.

“아니요. 괜찮…….”

순간 불현듯 잊고 있던 퀘스트 추가 보상의 존재가 잠자던 뇌를 깨우듯 머리를 탁! 치며 스쳐 지난다. 그래, 이거구나?! 보상이 바로 이거였구나!

생각해보니 어디에나 있는 NPC가 날 집까지 초대할 리가 없잖아? 가진 것도 없는 부랑자를? 이것은 계시가 아닐까?

그렇다면 작전을 변경한다.

“아아……. 갑자기 가슴이 아파서요. 아까 괴한한테 맞은 곳이…….”

“어떻게 해……. 많이 아파요? 전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아프 실지……. 어디 좀 봐요.”

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뭉긋거리더니 내 가슴에 손을 얹는다. 나는 그녀의 부드럽고 고운 손을 덥석 잡는다.

“아… 저기…….”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면서도 손을 빼거나 시선을 피하는 기색은 없다. 알고 싶다. 눈앞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그녀가 알고 싶다.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이 감정이 내 안에서 용오름처럼 사정없이 솟구쳐오른다.

“이름이 뭐예요?”

“이, 일레이나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좋은 향기가 코끝에 맴돈다. 그녀의 발그레 핀 살결에 은은하게 감도는 달곰한 향기가, 꿀 속에 파묻힌 한 마리의 벌처럼 나를 헤어나오지 못하게 붙든다.

“일레이나, 당신… 정말 매력적인 거 알아요?”

가벼운 작업 멘트지만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다.

“그런…….”

긴장으로 가늘게 떨리는 호흡이 전부 느껴질 만큼 가깝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한다. 지긋이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하나에 나는 모든 걸 내어줄 만큼 완전히 매혹되고 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새 이성의 끈이 스르륵 풀어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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