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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사기단-1화 (1/147)

<-- 튜토리얼이 쓰러지지 않아 -->                               필요와 욕구에 의해 언제나 사람들이 몰려드는 시장 바닥. 다양한 액세서리와 금속 가공장인, 한 번도 본 적 없던 능력을 장비에 붙여서 파는 소질 부여가 들까지.

여타 시장들과 다를 것 없이 다양한 장사치들로 넘쳐나는 장소지만, 이곳이 띠고 있는 활기는 어딘가 음침하고 퇴폐적인 느낌이다.

바닥 시장. 그것이 바로 이곳을 부르는 명칭이다. 많은 NPC와 유저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부유 대륙 밑바닥에 존재하는 극소수만이 아는 장소.

돈을 벌어먹고, 최고의 성능을 가진 아이템을 제작하고, 때 묻은 인간들이 순진한 어린양들을 찾아 등쳐먹기 딱 좋은 장소.

그 때 묻은 인간이 꼭 나를 지칭한다고 할 순 없지만, 어쩌면 몇몇 인간들은 나를 그렇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눈앞의 이 남자도 곧, 그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와, 이 노예는 정말 이쁘네요.”

금전 주머니를 짤랑 이며 부호의 느낌을 물씬 풍겨대는 사내가 내가 걸어둔 미끼에 관심을 보인다. 귀족은 아닌 것 같고, 보아하니 한몫 잡은 무역상 정도인 것 같은데.

복장, 헤어, 귀티 나는 액세서리, 사납게 생긴 경호원까지. 어딜 가든지 돈 많은 멍청이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서 안달이라니까?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미끼에 홀린 이 대어가 미끼를 물도록 부추기는 일만 남았다. 어디 한번 가볍게 흔들어볼까?

“어디, 이쁘기만 하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훈련 시킨 노예인데요. 꼭 사고 싶은 아뮬렛이 급매로 나와서, 저도 진짜 어쩔 수 없이 파는 거예요.”

표정은 최대한 안타깝게, 목소리는 한없이 눈물겹게 내뱉는다. 부디 네 식성을 자극하는 이 매력적인 미끼를 물어다오.

“근데, 오백만 셀이라고 하셨죠……? 조금 비싸네요. 저쪽 노예 시장에선 백에도 팔던데…….”

어딜 가나 무역상들의 특성은 한결같구나. 꼴에 현명한 소비자인 척 협상을 시도하려 든다. 그렇지만 이건 내 종목이라고.

얕게 깔짝거리는 가짜 입질에 속아서 섣불리 챔질할 수야 없지. 자고로 협상도 낚시도 서두르지 않는 자가 승리하는 법. 대어가 놀라서 달아나지 않도록 일단은 현상을 유지한다.

“노예시장이라면 저쪽에 있는 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저도 그쪽 노예 시장에서 몇 번 사봤는데, 이 노예는 좀 비싼 것 같아서요.”

아하, 노예를 몇 번이나 구매해보셨다? 그렇지만 노예 시장 얘기를 꺼낸 순간 이미 너의 바닥은 드러났다.

“에이, 거기랑은 비교하시면 안 되죠. 거기서 구매해서 어떠셨어요? 잘 아실 텐데? 거기 노예들은 훈련을 못 받았거나 말 그대로 닳고 닳은 노예들이라고요. 진짜 아는 사람들은 거기서 구매 안 해요.”

‘진짜 아는 사람들은’이라는 말로 대어의 자존심을 한 번 긁어주고, 내 미끼가 되어주는 노예에게 신호를 주어 다음 행동을 준비시킨다.

“음…….”

녀석이 침을 삼키고, 고민에 잠기듯 시선을 떨구는 시점. 바로 지금이 기회다. 가라 노예야! 월척을 낚아보자꾸나. 노예가 마음껏 재주를 부릴 수 있도록 잠시 다른 곳에 한눈을 팔아줄까?

이후엔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미끼가 대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이런 얘길 하겠지.

“선생님, 제발 저를 사주세요. 지금 주인님은 너무 무서워요. 시키는 거라면 무엇이든 할 테니 제발…….”

외모 좋고! 연기 좋고! 감정까지 일품이구나! 그래, 남자는 원초적으로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여인에 약하다. 그것은 모든 남성의 DNA에 내재 되어있는 성질이지. 그것이 변질하지 않았다면 너는 반드시 구매 욕구가 치밀 것이다.

“아…….”

어떠냐 대어야? 등을 돌리기엔 미끼가 네 신경을 거스르지 않느냐?

미끼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데 낚시꾼도 가만히 있을 수야 없지. 환상적인 초릿대의 움직임으로 대어를 안달 나게 해볼까?

나는 뒤늦게 발견한 척 쥐고 있는 노예 목줄을 그대로 당긴다.

“꺄앗!”

노예가 뒤로 발라당 넘어지며 눈물을 뚝뚝 떨군다. 감탄 나올 정도로 과장된 몸짓이다.

“이게 한 눈만 팔았다 하면 딴짓거리야!”

다시 대어에게 말할 땐, 세상 가장 바른 사나이 같은 말투로 바꾼다.

“아, 이거 참. 죄송합니다. 이 노예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 보군요. 제가 돈이 아주 급해서 그런데, 구매가 꺼려지시면 먼저 자리를 떠나도 될까요?”

말을 마침과 동시에 노예의 목줄을 손에 돌려 감고 금방이라도 자리를 떠날 듯이 채비한다.

“노예야 넌 잠깐 좀 보자.”

냉정한 표정으로 노예에게 전하는 한마디 말과 함께 과감히 몸을 돌린다. 떠나기 전에 물어라. 물어라, 대어야.

“아니요, 잠깐만요! 살게요.”

옳지, 물었구나! 대부분 초짜는 보호 본능이 쉽게 변질되지 않는다니까? 이제 다 왔다. 승리의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아직은 속내를 드러낼 순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이제 재빨리 낚싯대를 당기고 혼신의 힘으로 줄다리기를 시작하자.

“근데 조금만 깎아주실 수 있나요?”

“이거, 지금도 되게 싼 거예요.”

“제가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 없어요.”

녀석이 줄을 당기고 있으니 이쪽에선 살짝 풀어주는 것이 정석적인 공략법이다.

“음, 제가 아뮬렛을 사려면 최소 480만은 있어야 해서요. 480까진 해드릴 수 있어요.”

“아……. 그러신가요? 제가 수중에 지금 450 정도밖에 없는데…….”

이 색……. 아니야. 침착해. 대어라 그런가? 당기는 힘은 제법 좋구나. 어차피 녀석이 가진 돈은 며칠이면 모두 내 것이 될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줄을 느슨하게만 둘 이유는 없다.

승부는 한순간의 판단으로 형세가 기우는 것이다. 초릿대가 부서질 걸 각오하고서라도 지금은 세게 당겨야 한다.

“그 가격이면 제가 조금 곤란한데요. 어차피 지금도 싼 편이라 사갈 사람은 금방 구해요. 480도 안 되시면 제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녀석이 고민한다. 이미 수중에 450이 있다고 거짓부렁을 깔아뒀으니 돈을 빌려오겠다고 하거나, 다른 아이템이라도 내밀 것이다.

“그러시면 혹시 450에 우올로 중급 수리서로 판매 가능하신가요?”

역시나, 이쯤이야 예상 범위 안이다. 가만있어 보자, 우올로 중급 수리서라면 시가로 100만 셀짜리가 아니던가?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네, 그럼 그렇게라도 해요.”

거래 승낙 의사표시를 듣고 녀석이 돈을 꺼낸다. 이번 대결의 승자는 나다. 오너라 대어야. 손에 안고 있기도 벅찬 월척을 들고 인증사진 한번 찍어보자꾸나.

하지만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함부로 예측이 어려울진대, 그 변화라는 것이 하필 이때 일어날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잠깐 거기! 그 노예 사지 마. 저 새끼 사기꾼이야!!!”

“사기꾼?”

“아, 나 이런…….”

오늘 장사 종 쳤네. 다 잡은 물고긴데……. 이틀 전에 잡아놨던 물고기 한 마리가, 살림망을 찢고 튀어 올라서 낚싯줄을 끊어놓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별수 없지.

“도망쳐!”

“주인님! 같이 가요!”

노예에게 소리치며 이 자리를 전력을 다해 벗어난다.

이렇듯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내가 언제부턴 가는 노예와 도망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참 재밌는 상황이 아닌가? 이 달갑지 않은 이야기의 시작은 얼마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어때?”

“아, 아읏……! 이건……. 주인님! 꺄핫! 너무… 강렬……! 흐윽……!”

아, 실수. 여기가 아니다. 조금만 더 거슬러가 보자.

*

캐릭터는 적당히 생성할까? 했지만 벌써 2시간을 넘게 커스터마이징에 치중하고 있다. 아무래도 본인의 얼굴을 대변하는 만큼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어느 유명 조각가처럼 심혈을 기울여 얼굴을 조각하고 나니, 캐릭터의 몸뚱이가 떡하니 나온다. 근데, 어우 야 잠깐만…….

놀랍게도 나의 소중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거 성인 게임이었나? 갑자기 생일선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왠지 부끄러움에 시선을 가리면서도 일단은 조금 더 크고 굵게……. 무조건 큰 게 제일이여…….

가상현실 게임은 처음이지만, 그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플레이 경험담은 무진장 많이 들어왔다. 여태 하고 싶어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과 없는 시간에 침 땀 눈물만 줄줄 흘렸는데, 이젠 다르다. 직접 할 수 있다. 이 짓도 그리고 저 짓도 말이야.

캐릭터의 몸을 만들고 나니 초기 직업을 설정하란다.

-‘직업은 초기 능력치와 기술. 무기에 영향을 줍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플레이 방향에 따라 변경할 수 있습니다.’

라고 적혀있다. 게임엔 20가지가 넘는 초기 직업군이 있었는데, 그 모든 걸 젖혀두고 부랑자라는 직업에 눈길이 간다. 능력치도 무기도 뭣도 없는 정말 거지 같은 캐릭터다. 다른 직업군들이 레벨 10에서 시작하는 반면 부랑자만 혼자 1에서 시작이다. 뭘까 이건? 막장이네? 마음에 들어.

왜 있잖아? 혹시나 히든 캐릭터인지 뭔지 그런 걸 수도?

-‘직업을 부랑자로 설정하시겠습니까? [주의. 해당 직업은 하드코어 전용 캐릭터입니다. 잠재 성장력이 높지만, 초기 난이도가 크게 올라가며 죽을 경우 패널티가 크게 작용합니다. 확인 시 현재 선택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하드코어 전용?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는 건가. 다른 캐릭터는 하드코어 여부를 직접 설정할 수 있지만, 부랑자는 기본설정이 하드코어 전용 캐릭터라 설정을 변경할 수 없다.

대 괄호 안의 문자가 시뻘겋게 뜨는 걸 보니 왠지 무섭지마는 물리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남자라면 하드지! 후퇴란 없다.

[지금은 이 문장이 이해되지 않겠지만, 넌 정말 개새끼야]

오프닝 시작 전, 이상한 글이 보인 것 같지만 오프닝과 도움말 내용 따위 어차피 기억도 못 할 거 시원하게 생략하고 드디어 시작한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이건 뭘까? 나는 시작과 동시에 죽었다. 왜? 영문도 모르겠다. 버그인가 싶었다. 게임 중 가끔 튀어나오는 버그라면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시작부터 버그라니 감점 요소다. 그러나 나는 부활 직후 내가 죽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부활 무적 시간이 10초간 적용됩니다.’

눈앞에 원숭이들이 쫙 깔려있다. 어림잡아……. 아니, 어림잡기도 힘들다. 그냥 ‘많음’의 대명사인 ‘100’마리라고 하자. 사실 그것보다도 훨씬 많다. 그냥 눈에 보이는 곳곳에 원숭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원숭이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무적 시간이 끝났다.

“이……”

-'당신은 죽었습니다.'

게 뭐야? 라는 말을 전부 꺼내기 전에 원숭이한테 뺨을 맞고 즉사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온다. 여지없이 시스템 메시지가 반복된다.

-'부활 무적 시간이 10초간 적용됩니다.’

그럼 10초 동안 상황을 이어서 다시 설명하자. 그러니까 원숭이가 잔뜩 있고, 그 원숭이 한 마리가 날 한 방에 보낼 정도로 무진장 세다는 사실도 방금 알아냈다. 잠깐, 그런데 이렇게 많다고? 천장에도, 공중에도, 맨땅에도. 그럼 젠장 애도나 하자.

무적 시간이 끝났다.

“아 졸…….”

-’당신은 죽었습니다.’

라 빨라! 라는 말을 꺼내기 전에 원숭이 주먹에 심장부가 터져나가며 즉사했다. 나는 평소에 욕을 잘 안 한다. 그냥 언제부턴가 그랬다. 근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동체 시력이 좋은 편인데도 몸이 안 따라주니 도저히 피할 수가 없네!

그래도 오래간만에 잡은 게임이니 여기서 쉽게 포기할 순 없지. 그래, 그렇고말고.

얼마 뒤.

"아 쒸빡!!! 안 해! 이 개스꺄! "

원숭이들과 사투를 시작한 지 8시간째. 어느덧 내 몸은 저 긴 문장(?)을 다 말할 수 있을 만큼 날렵해졌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출구로 향하거나 반격이라도 시도할라치면, 어김없이 터져버린 얼굴이, 팔뚝이 뭐 그렇다. 어쩌면 내 몸이 날렵해진 게 아니라 저 문장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입이 날렵해진 건가 싶다.

사실 나중에 깨닫게 된 사실인데 이 원숭이들이 센 게 아니었다. 부랑자가 아닌 캐릭터는 이 원숭이들에게 150대를 선빵으로 내줘도 안 죽는다 카더라.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지금으로선 튜토리얼이 내주는 극악의 숙제에, 속 깊은 곳에서 샘솟는 욕지거리만 양동이째 입 밖으로 퍼 나르고 있다.

아 참고로, 이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에도 3번을 더 죽었다. 내가 진짜 개떡 같아서 끈다!

*

라고는 했지만, 그로부터 다시 8시간째. 나는 여전히 로그아웃을 못 하고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 언제부턴가 오기가 생겨서 여기서 끝내면 지는 것 같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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