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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이나 먹어라
"이번에 네가 납치당했던 기간을 감안해서 졸업장이 나왔다 들었다."
"네, 하마터면 후배랑 1년 더 학교 더 다닐 뻔했죠."
그래서 전 왜 부른건데요? 유천이 제 앞에선 할아버지의 말에 대꾸하며 둘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런 일을 당한것도 있고 얼마 전 또 큰 사건에 휘말렸으니, 또 다른 일에 휘말리기 전에 보려고 그랬다."
"헤, 걱정 마세요. 그런 큰 사건에 휘말려도 몸 멀쩡히 돌아왔잖아요."
술을 홀짝이며 그의 할아버지 신우가 유천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에 지지않고 유천이 그의 말을 비꼬았다.
헹, 이번엔 또 무슨 핑계로 날 묶으려고? 유천이 감흥 없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태껏 자유를 갈구하는 유천에게 수차례나 신우의 마수가 덮쳤지만 유천은 단 한번도 잡힌 적이 없었고,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었다.
"회사에 들어와라. 너도 슬슬 다시 일을 배워야지?"
"저기 아빠. 방금 할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또 무슨 일에 휘말릴 지 모른다고?"
"그래서 그러는게다. 회사 안이라면 내가 바로 알 거 아니냐."
유천은 제 아버지가 하는 소리에 이건 무슨 개소리냐며 신우를 쳐다봤다. 내가 뭐 때문에 본가에서 나온건데 미쳤다고 회사에 기어들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한테 그 일을 다시 겪으라고요?"
너무 뛰어난 능력은 남의 질투를 산다. 유천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그에 진저리를 느끼고 본가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근데 그걸 또 하라고?
"애들도 이제 철이 좀 들었다. 무턱대고 널 괴롭히는 일은 없을게다. 그러니 네 동생이랑 본가에 들어와라."
명절마다 신우가 자신에게 다시 일을 배울 생각은 없냐고 묻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고압적으로 나온 적은 없었다. 누군가의 바람이 있지 않고서야.
"아빠?"
"큼."
찔리긴 하는 모양이야. 유천이 이를 갈았다. 아무리 상황이 변한다 해도 제 의견을 존중해주던 할아버지는 없었다.
"아니면 네 또래의 아이와 만남을 주선해주마."
네 나이에는 그런 게 더 어울리겠지. 껄껄거리며 제 턱을 만지작거리는 신우를 보며 유천이 이를 갈았다.
"이미 내가 들어가는 걸 전제로 한 주제에 설득하는 척 하지 마요."
말을 마친 유천이 물 한잔을 벌컥 들이마시고는 쾅 소리나게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애들 장난 같은 짓도 그만두거라. 네 이미지만 사서 망치고 있지 않니."
"신경 꺼요, 어차피 이번 일만 끝나면 때려칠 생각이었으니까."
큰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문을 닫은 유천이 중얼거렸다.
* * *
"열기도 잡혔겠다. 슬슬 추격을 개시한다."
성 밖의 불꽃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을 보며 유천이 말했다. 청탑의 마법사들이 유지하던 물의 장막이 걷히자 화끈한 열기가 그들의 몸을 덮쳤다.
"저길 걸어간다고?"
"존나 뜨거운데."
유저들의 불평이 들리기가 무섭게 녹탑의 마법사들이 나섰다. 시원한 바람이 열기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전시상황임을 감안하면 겨우 더위를 피하자고 마력을 소모하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를 지적하는 적탑의 유저를 보며 녹탑의 마법사가 반박했다.
"어차피 전면에 나서 싸우지도 않는데 남는 마력이야 어디에 쓰던 자기 마음 아닌가?"
"그러게, 지는 더위 안탄다 그거지?"
적탑이야 원래 다루는 계열이 열기다 보니 자연스레 저항력도 높고 열기에 대항할 수단이 많다. 그를 꼬집으며 비꼬는 유저들을 흘깃 쳐다본 크리스티나가 중얼거렸다. 이건 조금 이상하다고.
강력한 하나의 적에 대항하기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분란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그들 사이에 있는 또 다른 강한 힘이 아닌가. 정작 본인은 신경도 안쓰고 있지만 이런 상황은 별로 좋지 않다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부족해. 진군 속도를 올리도록. 오늘 안에 결판을 낸다."
유천의 선언에 나선 것은 녹탑과 백탑의 마법사들이었다. 전장에서 도움을 크게 주지 못한 울분을 풀듯 그들은 주위의 인물을 적어도 둘 이상은 챙기고서 이동을 개시했다. 바람을 밟고 달리는 녹탑과 미세하게 흐르는 전류를 타고 이동하는 백탑 덕에 진군속도는 전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빨라졌다.
"전방에 도망친 적군이 보입니다."
"나도 보여."
청탑주 엘프의 말에 대꾸하며 유천이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뒤쫓아오는 병력을 보며 기겁을 하며 도망치던 사제의 머리 위로 얼음이 떨어졌다. 두개골이 그대로 박살난 사제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시커멓게 타들어간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도망치던 병사는 다리에서 피어오른 불꽃에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으헉!"
비교적 멀쩡한 몸상태의 성기사는 제 갑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넘어지고는 버둥거리며 뒤로 기어가다 갑작스레 강해진 중력에 몸이 땅 깊숙히 빨려들어갔다. 간단히 바라봐도 열이 넘던 도망자들은 유천의 손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휘둘러질 때마다 찰실히 줄어들어 단 하나의 도망자만이 살아남았다.
"소식을 전할 입은 하나면 충분하지."
유천은 자신이 공격을 중지하기가 무섭게 내달리는 사제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사제는 달리는 도중 제 눈 앞에 생겨난 검은 문에 저항 한번 못하고 삼켜지고 말았다.
"무슨일 있나? 진군이 멈췄는데?"
유천의 물음에 진군은 재개되었다.
"으아아아악!"
검은 문에 삼켜진 사제는 자신이 그대로 죽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자신이 다시 눈을 떴을때 익숙한 배경이 보이자 제 두 눈을 의심했다. 악몽같은 오늘이 시작되기 전 떠났던 수도의 성문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형제님, 무슨 일입니까?"
성문에 등을 기댄 채 쉬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사제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생존한 사제는 대뜸 말을 꺼내려다 제게 말을 건 사제의 옷을 보고 기겁했다. 이제 막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 그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사는 이였다. '피처럼 붉은 사제복'을 걸친 사제. 신성 제국 내에도 그 숫자가 채 열을 넘기지 못한다느 순교자의 상징이었다.
"이, 이교의 무리가! 그 최선봉에 황녀님이 계셨습니다! 어서 교황님께 이 소식을!"
"아아, 걱정하지 마세요. 그 소식은 제가 확실히 전하죠."
횡설수설한 제 말에 웃으며 대답하는 순교자를 보며 사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라도 방비를 제대로 한다면 저 정도 숫자 쯤은 원군이 올때까지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수도의 방비는 강력했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형제님."
"네, 그럼 잘 부탁……!"
그 상황을 설명하는데 그리 긴 단어는 필요하지 않았다. 푹하고 찌르니, 찍하고 피가 치솟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사제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으니까.
"문을 열어주십시오! 형제님이 쓰러졌습니다!"
힘을 잃고 땅으로 쓰러지는 사제의 시체를 부여잡고서 순교자가 외쳤다. 그의 고함소리에 화들짝 놀란 성벽 위의 성기사들이 놀라 아래를 내려봤다. 물론 그들 전원이 유저였기에 순교자의 아이디를 읽을 수 있었다.
[하느님의사제]
네이밍 센스가 영 꽝이기는 했으나 하나는 확실했다. 유저 최초로 순교자로 전직을 한 것도 그였고, 이전부터 펠프스만큼 유천과 대립한 것도 그였다. 그들에게 더 이상의 확인은 필요하지 않았다.
"생존자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붉은 순교자를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서둘러 도개교를 내리는 성기사를 보며, 하사가 고개를 저었다. 어쩜 유천의 계획대로 착착 따라와주는지. 따라주지 않았다면 그 핑계라도 들어서 방법을 바꿨을텐데.
한숨을 내쉬며 성호를 그은 하사가 시체를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손으로 땅을 짚었다. 그 순간 성 내부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하사가 땅을 짚기가 무섭게 성 내부에서 도개교를 내리는 성기사의 발 아래에서 치솟은 창이 그를 꿰뚫은 것이었다.
"아아, 주께서 저들을 보살피시길."
난데 없는 순교자의 배신에 유저들은 어찌된 상황인지 이해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주일이 넘게 진행된 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알짜배기다. 이성의 판단 이전에 자신들에게 공격을 시도한 하사를 향해 공격을 쏟아부었다.
빛의 화살들이 하사를 노리고 날아올랐다. 중간중간 섞인 위협적인 암기와 불꽃들이 보였다. 펠프스 휘하의 마법사와 암살자들이 분명했다. 시야를 가득 채운 공격 앞에 하사는 반항 한번 하지 않았다. 되려 해볼태면 해보라는 듯 팔을 활짝 벌려 공격을 맞이했다.
"감히 누구 마음대로 멋대로 죽겠다는거야?"
그러나 그 수많은 공격들도 유천이 등장한 순간 헛것이 되고 말았다. 유천이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유천의 뒤에서 뛰어오른 노구가 하사의 앞에 서서 팔을 수차례 휘둘렀다. 성 위의 유저들은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저 노구의 저 행동은 지난 일주일간 질리게 본 것이 아니던가.
수많은 공격이 노구와 하사를 노린 채 대지를 두들겼다. 그러나 정작 둘에게 닿은 공격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노구가 휘두른 팔에 걸려 갈려나가는 화살과 그 궤적이 있던 시뻘건 불덩이가 조각나는 꼴을 보며 성벽 위의 유저들이 이를 갈았다. 때마침 유천의 손이 들렸다.
"소용 없어. 저건 네가 하루종일 두들겨야 부숴질걸."
대마법진이 몇겹이나 깔린지 알아? 마법은 절대 저 성벽을 넘을 수 없어. 제 덕에 산 주제에 쫑알쫑알거리는 하사에게 눈을 찌푸린 유천이 팔을 내렸다. 유천이 포기한 줄 알고 좋아하던 하사는 이어진 유천의 행동에 할 말을 잃었다.
"콜 가디언."
마법이 안된다면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야지? 히죽 웃는 유천을 보며 얼이 빠진 표정으로 보던 하사는 성벽 아래서 유저들이 서둘러 도개교를 올리는 모습을 보았다.
"누구 맘대로 그걸 다시 올려?"
콰앙-
작은 권총에서 난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굉음과 함께 도개교의 사슬이 끊겼다. 총성에 버금가는 굉음과 함께 올라간 도개교가 땅으로 떨어졌다.
"오늘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전쟁의 끝을 낸다."
유천의 말과 함께 도개교를 건너 성 안으로 유저들이 뛰어들어갔다. 유천이 불러낸 가디언들은 멍하니 서서 유천의 명령을 기다렸다. 유저들에 비해 비교적 느린 속도로 마탑의 마법사들이 성 내부로 들어가자 가디언들이 움직였다.
"전쟁을 끝내는 게 목적이면 펠프스만 죽이면 될 일일텐데, 뭐하러 성벽을 부수는거야? 어차피 안에서는 바깥을 향해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 방해의 대상은 오로지 바깥에만……."
"나도 알아."
검은 거인의 주먹이 성벽을 두드릴 때마다 크게 흔들리는 성벽과 그로테스크와 본 드래곤의 숨결이 닿을 때마다 녹아내리는 성벽을 보며 하사가 중얼거렸다. 하사의 말을 끊고서 유천이 대답했다. 이어서 유천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하사의 가슴팍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굉음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지는 그를 보며 유천이 덤덤히 말했다.
"수고했어. 형 역할은 여기서 끝이야. 밖에서 구경이나 해."
무덤덤한 말투로 인사를 한 유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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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시 바로 3일간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을 연성해 만든 편이다..졸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