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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이나 먹어라
의외로 펠프스의 시체를 이용한 계획은 꽤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다. 최대한 전쟁 이벤트에 유저 자신들의 개입으로 일어날 변수를 없애고 싶었던 것인지, 단순히 귀찮아서인지는 모르지만 펠프스가 다시 게임에 접속할 수 있을 때가 되었을 때는 수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토가 함락당한 뒤였다.
-[신성제국의 악몽]되살아난 교황 펠프스가 소멸합니다.
"어, 이 새끼 들어왔나봐."
멀찍이 하늘만 쳐다보는 유천을 힐끗 보던 강혁이 제 눈앞의 메세지를 띄워 유천에게 보였다. 멍하니 있던 유천은 그 메세지를 보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 시체를 터트렸어야 하는건데."
그렇게 됐다면 신성 제국에게 있어선 잊을 수 없는 악몽이 되었겠어. 강혁이 중얼거렸다.
"힐튼 영감은 아직인가?"
"쳐들어간 놈이 좀 많은게 아니더라고."
유천과 펠프스의 부재에도 불과하고 전쟁 이벤트는 계속되었다. 유천 측에서는 계속해서 수도를 둘러싼 성들의 공략을, 펠프스 측에서는 벨리튼 공국 근처의 성에서 협력을 얻어 공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애초에 많은 병력을 끌고 나온것도 아니고, 그들 모두가 전사는 커녕 상처 하나 없는 쌩쌩한 상태다. 유천이 남기고 간 마법 스크롤을 이용해 부랴부랴 떠난 힐튼을 떠올리며 현성이 대꾸했다.
"아닐걸."
현성의 대꾸에 일행의 고개가 돌아갔다. 청과 현수가 이유가 뭐냐고 들러붙자 현성이 심드렁한 눈치로 덧붙였다.
"스크롤은 하나만 챙겨갔어. 병사들도 죄다 끌고갔고.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는 소리지."
"이제와서 발을 빼봤자 무슨 소용인데요?"
현수의 옆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가 질문했다. 정말 궁금하다는 듯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마법사를 향해 현성이 입술을 삐죽였다.
"꼬리치지마, 이 년아. 네 남자친구가 바로 옆에 붙어있는데."
물론 현성에겐 마법사와 현수의 자비없는 폭력이 돌아갔다. 폭행장면을 무심히 보던 유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였더라도 그랬으리라.
"지금까지의 전투는 요행이라 본 거지. 여태까지 병사들이 제대로 나선 거라고 해봤자, 펠프스랑 싸우기 전에 그 성에서 병사들 빼내는 대 쓴게 전부야. 더군다나 펠프스 새끼랑 싸우는 도중에 난 한번 죽기까지 했지. 이번엔 국지전도 아니고 수도전인데 전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겠지. 도박을 싫어하는 그 영감 다워."
답지 않게 머리는 꽤 굴렸다만. 인정해주지. 제 설명에 아직도 고개를 갸웃하는 이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천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제 소속 유저들도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 이벤트 개시! 모든 데스 패널티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메세지와 함께 수도의 상징 얼음 성벽 위에서 거대한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신성마법 공격기 중 언데드 한정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대단위 광역마법 제네시스였다.
"초장부터 강수를 두는군."
형태를 갖춘 채 하늘 높이 들어 올려진 거대한 망치를 보며 유천이 감탄했다. 태초의 기원으로 이루어진 망치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레지스."
유천의 호명에 그들의 주위로 있던 로브 무리중 황색의 로브를 두른 이들이 일어났다. 유천의 옆에서 강혁의 손가락이 까딱이자 그 앞에 죽은 듯 쓰러져 있던 노구가 몸을 일으켰다.
황탑주 레지스 칼 비어스가 숨을 깊이 들이켰다. 그 휘하의 마법사들이 숨을 죽인다. 늙고 추레한 외형과 달리 지천을 울리는 기합과 함께 레지스가 발을 굴렸다. 레지스의 기합에 황색 로브의 무리 또한 함께 발을 굴렀다.
이전과는 달랐다. 유천과 그를 위시한 마법사들이 성벽 위에 섰고, 신성제국의 잔존한 모든 병력이 그 성 앞에 모여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성과 농성의 역할이 뒤바뀐 가운데, 지진이 일어났다.
- 황탑의 수호자[엘디온]이 등장합니다.
- 황탑과 함께한 모든 이들의 화염 저항력과 전기 저항력이 100% 상승합니다. 대지 속성 친화도가 100% 상승합니다. 전기 속성 친화도가 80% 감소합니다.
- 화염과 대지 속성 공격의 위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번개 속성을 띈 모든 공격의 위력이 감소합니다.
- 황탑의 수호자가 오랜 풍화의 시간을 견뎌내고 이 자리에 부활했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모든 유저의 명성이 20,000 상승합니다.
- 움직이는 마탑이라고도 불렸던 황탑의 수호자가 부활했습니다. 황탑 소속의 마법사들의 모든 능력치가 150% 상승합니다.
- 황탑과 적대하고 있는 모든 존재를 대지가 방해합니다. 적의 이동속도가 30% 감소합니다. 집중이 20% 감소합니다. 피격 확률이 30% 증가합니다. 치명타가 발생할 확률이 40%증가합니다. 모든 공격에 급소가 노출됩니다.
- 아군의 마력 효율이 대폭 상승합니다. 적은 마력으로 큰 공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대지를 찢으며 몸을 일으키는 거인의 등장에 신성제국의 진형이 크게 흔들렸다. 갈라진 땅 속으로 떨어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움직인 거인의 발에 채여 날아가는 이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주문의 영창을 그치지 않은 사제들은 의심치 않았다. 그들의 염원을 담은 망치는 분명히 유천에게 닿으리라고.
기원의 망치는 질량을 가지지 않은 힘의 뭉텅이 답게 덩치에 맞지 않은 빠른 속도로 떨어져내렸다. 그러나 수호자라는 이명은 노름판에서 거저 먹은 것이 아니었다. 레지스의 손이 떨어지는 망치를 가리키는 순간 거인의 등에서 솟아난 팔이 망치를 움켜쥐었다.
"말도 안돼!"
"되는지 안 되는지는 이미 네 눈으로 확인하고 있잖아?"
신성제국과는 다른 형식의 하얀 로브가 비명을 지르며 경악하는 사제들의 눈에 들어왔다. 스스로를 백탑이라 칭하는 오만한 번개의 탑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위력이 감소한 대신 철저하게 기동력 위주로 활동하는 백탑의 마법사들의 근처에는 청탑을 제외한 모든 마탑의 마법사가 한두명씩 붙어있었다.
"이거 우리가 제일 늦은 모양이군."
신성제국을 둘러싼 채 마법사들이 유천의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유천의 뒤에서 푸른 로브의 무리들이 등장했다. 이로써 대륙의 명성이 자자한 5대 마탑의 전투인원 전원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내 살아 생전에 저걸 다시 보게 될 거라곤 꿈도 안꿨었거늘."
청탑의 대표로 나온 여엘프가 가슴 언저리의 머리카락을 등 뒤로 넘기며 중얼거렸다. 약 백여년전 찾아온 마도시대의 쇠락과 함께 핵을 파괴당한 수호자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직접 목격한 엘프가 감격에 젖은 눈으로 수호자를 뜯어볼 때 유천이 질문했다.
"탑주는?"
유천의 질문에 엘프가 잠시 인상을 찌푸리곤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얼마 전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생전 언데드에게 말을 높히며 무릎을 꿇는 일이 흔하겠는가.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며 급히 몸을 일으킨 엘프가 그 때문에 늦어 죄송하다며 말을 붙이자 유천이 슬쩍 몸을 붙여 귓가에 속삭였다.
"그래. 그리 말하라 그러던가?"
다른 마탑과는 달리 탑주와 친분이 있어 직접 부르기도 편하리라 생각했는데, 별로 그런 것도 아니었나보군. 유천이 중얼거렸다. 잠깐 몸을 의탁할 때에도 귀찮은 짐 취급이었지.
"거기까지 해두시죠. 지금은 전시상황입니다."
유천의 주절거림에 당황한 엘프를 구한 것은 늙은 황탑의 탑주였다. 레지스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한 엘프를 흘낏 보고는 유천이 입을 열었다.
"마법사들을 뒤로 물려라."
기사와 사제병력들을 제압했다고는 하나 저 중엔 유저들이 없다. 저렇게 포위한답시고 모여있다가 유저들의 기습이라도 당했다간 좋은 꼴은 못볼 것이다.
유천의 말에 백탑주 아쥬커스가 하늘에 번개를 띄웠다. 모종의 신호라도 되는 듯 백탑의 마법사들이 주위의 마법사들을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모든 마법사들이 자리를 피하자마자 신성제국의 병력들도 서둘러 뒤로 피하기 시작했다.
"늦었어."
평소와 달리 영창까지 이미 마친 유천이 도망치는 신성제국의 병력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순간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해가 중천에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을이 지는 것 마냥 세상이 붉게 변했다. 하늘을 가득 메운 붉은 색의 마법진이 일제히 불꽃을 토해내는 장면은 장관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초열지옥."
무릎까지 차오르던 눈이 순식간에 메말라 수증기조차 못했다. 그것은 곳곳에 산재했던 얼음이라고 피할 스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성벽 위에서 청탑의 마법사들이 마법으로 장막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열기가 선명히 느껴질 정도였다.
"몇놈은 살아서 도망쳤는걸."
공중에서 크리스티나를 안은 채 상황을 구경하던 라이헤르가 유천의 옆에 내려앉으며 어깨를 툭 쳤다. 유천이 쭉 찢어진 눈으로 라이헤르를 쏘아보고는 제 손에 들린 포션을 홀짝였다.
"알아."
거 드럽게 쓰네. 포션을 다 마신 유천이 입맛을 다셨다. 그만한 마법을 써놓고 겨우 저걸 다 못 잡냐고 갈구는 라이헤르의 품에서 어렵지 않게 크리스티나를 빼낸 유천은 라이헤르의 엉덩이를 뻥하고 걷어차 성벽 밖으로 내밀었다.
"꺄아악!"
답지 않게 귀여운 비명을 지르잖아. 유천이 중얼거리며 또다른 포션의 마개를 뽑았다.
"저래도 되는겁니까? 위험할텐데."
"아직도 눈치 못깠냐. 평범한 녀석이면 내가 발로찼을 때 벌써 뒤졌어."
"이 미친 새끼야!"
아직까지 바깥이 붉게 타고 있는데 그런 곳으로 묘령의 여인을 걷어차는 유천의 행위에 기겁을 하며 백탑주 아쥬커스가 질문했다. 유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전 제 품에 있는 꼬맹이를 누가 데리고 공중에 떠 있었는지 잊은 게 분명하다. 대충 대꾸하는 유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이헤르가 성벽을 뛰어 올라오며 외쳤다. 멍한 눈초리로 자신과 라이헤르를 번갈아 쳐다보는 탑주들을 흘낏 쳐다보며 유천이 대꾸했다.
"내말 맞지?"
"도대체 어떻게?"
열기를 간신히 잡은 청탑주가 이마에 난 땀을 닦으며 질문했다. 자신까지 끼어서야 겨우 열기를 잡았는데, 저 열기에 직접적으로 노출되고도 멀쩡한 몸뚱아리가 이해가 안가는 것이 분명했다.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냐?"
열기에 검게 그을린 옷이 바스락거리며 부서졌다. 강한 열기를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듯 살짝 분홍빛을 띈 어깨가 드러났다. 눈가에는 약간의 물기까지 띄웠다. 누가봐도 울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내가 언제는 안 그랬냐."
어깨를 으쓱하는 유천을 보며 이를 갈며 라이헤르가 발을 굴렀다.
"개새끼. 어디 가서 콱 뒈져버려!"
어지간히 강하게 발을 굴렀는지 코 앞에 있던 유천과 크리스티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볼썽 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
"혹시 몰라서 하는 소린데. 나중에 위험하다 싶으면 쟤만 찾아."
몸을 휙 돌려 성 안쪽으로 들어가는 라이헤르를 유천이 고개짓으로 가리켰다. 마법사들은 심드렁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 같은 괴물이랑 있는데 퍽이나 위험하겠다.'
"표정 관리좀 하시지. 뻔히 다 보이니까."
사람히 말을 좀 하면 새겨들어라. 유천이 나직이 웃으며 멀찍이 시선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으어어 일 힘들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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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스 올드윈//증손주요, 슬슬 완결이 가까워서 기쁩니다. 핳
TetsuRyu//사실 저도 그게 고민임여. 뭐라고 리리플하지
적돼지장군//히잌, 눈 괜찮으세여? 이거 보고 멀쩡할 리가 없는데
크자츠//수고하셔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