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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이나 먹어라
문을 건너 온 이들의 눈에 순백의 세상이 펼쳐졌다. 그 누구의 발걸음도 남기지 않고 쌓인 눈은 사람 한명쯤은 우스울 정도로 높게 쌓여있었다. 그 사이로 유일한 길이 들어선 것을 보며 유천이 입을 열었다.
"맘 같았으면 외곽이 아니라 수도 앞에서 등장하는건데 말이지."
공간이동 류의 장거리 이동기술을 모조리 차단해버린 신성제국 탓에 전 신성제국의 외곽 끄트머리에서 등장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병사들과 마법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주목, 전투 시작 전에 알려둘 것이 있다."
웅성거리며 겉옷을 챙겨입기 바쁘던 병사들이 유천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런 병사들을 향해 유천이 파격선언을 날렸다.
"이 전쟁에서 민간인에 대한 약탈과 수탈 행위는 일체 금한다. 더불어 이 전투에서 난 언데드를 쓸 생각이 없다."
병사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여태 신성제국이 자신의 국가를 침범하며 행한 일들이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안 된다고 못을 박는지에 대해 따지고 드는 병사들에 대해 유천이 물었다.
"그럼 너희는 그 저주하는 신성제국 놈들과 같은 수준이 되고 싶은 건가?"
"질문이 있습니다. 이 전투에서 언데드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건 무슨 의도가 있는 건가요?"
적탑 소속의 여성 유저가 한쪽 팔을 들어 유천에게 의문을 표했다. 사실상 유천이 보여준 대량학살엔 언제나 언데드가 함께했기에 유천이 언데드를 포기한다면 전력의 공백이 생기는데 그 점을 알면서 넘어갈만큼 의도가 중요하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유천이 대답했다.
"피아식별이 안되는 망자들을 데리고 전쟁을 벌여? 같은 편을 두고?"
대놓고 비꼬는 유천의 말에 인상를 찌푸리기도 잠시. 마법사는 맞는 말이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수긍을 마친 마법사가 고개를 돌리기가 무섭게 성벽 위에서 날아온 화살을 가볍게 튕겨낸 유천이 입을 열었다.
"설마해서 묻지만 파놓은 무덤 속에 곱게 들어가 누울 머저리는 여기에 없겠지?"
"거 부탁하는 말뽄새가 그런데 퍽이나 도와주겠다. 얘들아, 준비해라!"
유천의 말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중년의 남성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앞으로 나섰다. 날아오는 화살을 그 자리에서 불태운 사내의 신호에 맞춰 전열에 있던 적탑의 마법사 수십의 지팡이에서 일제히 불덩이가 튀어나왔다. 고온의 불덩이에 의해 눈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길을 내기 시작했다.
"빨갱이들만 돋보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눈이 녹아내림과 동시에 그 자리를 가득 메우는 수증기를 녹탑의 마법사들이 바람을 일으켜 성벽으로 날리기 시작했다. 그 덕에 시야를 잃은 성벽 위의 궁수들은 우왕자왕하며 아무렇게나 화살을 쏘아보내기 시작했다.
"귀찮게 굴기는."
유천이 혀를 차며 손을 허공에 한번 휘저었다. 순식간에 치솟은 불꽃이 성벽 위를 휘감았다. 비명을 지르며 불꽃 사이에서 그림자들이 하나 둘 쓰러지는 것을 보며 병사들과 마법사들이 유천을 바라봤다. 진작 그랬으면 좀 편했겠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왔는데 밥값은 하고 가야지."
웃으며 말한 유천이 먼저 성 내부로 들어서는 유천의 뒤를 따라 병사들과 마법사들이 들어섰다. 달려드는 병사는 그 자리에서 격살. 도망치는 기사와 귀족은 마법사들의 손에 하늘 높이 날려가거나 그 자리에서 불타버렸다. 남문으로 들어온 유천들이 북문을 통해 나가는 동안 그들을 막는 시민은 없었다. 달려드는 병사들을 주저 없이 죽이는 모습에 겁을 집어 먹은채 나오지 못한 것이었다.
-벨리튼 공국이 신성제국 가이아의 [로덴 성]을 공략했습니다.
"벨리튼 공국 근처까지 왔던 펠프스 군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유천의 곁에 다가온 병사 하나가 작게 속삭였다. 유천에게 있어 벨리튼 공국이 큰 의미를 가지지는 못하지만 펠프스는 신성제국이란 작은 존재가 아니었다. 민심을 조금이라도 잃었다간 점령지에서 일어날 반역만 생각해도 치가 떨리리라. 노우에게서 그 말을 전해들은 병사가 유천을 질린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유천은 단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다음 성으로 진격한다."
유천의 손에서 보석 하나가 깨졌다. 동시에 병사들과 마법사들은 제 몸이 훨씬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수십도 아니고 백단위를 넘는 이들에게 한꺼번에 헤이스트 마법을 건 유천을 향해 마법사들이 경외의 시선을 던지는 동안, 유천은 미니맵을 펼쳐 근처의 성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얼른 와라……."
이어서 도착한 성 또한 유천의 손에 단숨에 공략당했다. 병사들과 마법사는 도대체 자신들을 왜 데려 온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유천의 전력은 대단했다. 단신으로 지금 자신들이 모두 덤벼도 이기지 못하리란 예감이 들 정도였다.
-벨리튼 공국이 신성제국 가이아의 [크라운]을 공략했습니다.
"오늘 밤은 이 성에서 지낸다. 막사를 짓고, 가능한 이는 인근의 주민에게 방을 얻어 묵어도 좋다. 비용은 모두 본성에서 부담하겠다. 단, 잊지는 마라. 어떤 일이 있어도 민간인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단 하루만에 성 두개를 공략한 것도 모자라 자신들이 묵을 장소의 여비마저 지원해준다는 데 싫을 리가 없었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벌써부터 휴식을 할 생각에 들뜬 병사들은 서둘러 자리를 비웠다. NPC 병사들이 떠나고 유저들을 향해 유천이 말했다. 아직까지 이벤트 종료시간이 남아있으니 그 때까지만 성벽의 경계를 맡아달라며 부탁하고서 유천이 몸을 돌렸다.
* * *
"이 미친 새끼가, 어디 한 번 해보자는 건가?"
제 성 하나가 공략당했다는 소식을 알림창을 통해 전해들은 펠프스가 이를 갈았다. 가진 땅의 크기도, 가용 가능한 병력의 숫자도 비교가 안되는 주제에 공성을 시도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애써 집어넣은 첩자도 소식을 제대로 전하지 않는 것을 보며 한차례 더 이를 간 펠프스가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지만 한번 더 수고해줘야겠어."
"미안한걸 알면, 그 해골을 처리한 뒤 놈의 연구는 내가 가지는 걸로 하지."
그만큼 뛰어난 리치라면 자신도 흉내내지 못한 마법을 만들어내는데 연구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 연구만 있다면 제 마법도 더 높은 경지를 볼 수 있으리라. 노구에 맞지 않는 기백을 흘리며 실실 웃던 노인은 곧 펠프스가 끌어모은 병력을 이끌고 대단위 순간이동을 펼쳤다.
"나도 늙긴 늙었구만, 겨우 저 인원을 데리고 이동했다고 뼈마디가 울리는 걸 보면."
제 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노인이 자리를 떴다. 펠프스는 기다렸다는 듯 뒤를 돌아 저를 보는 병사와 기사, 유저들을 보며 말했다.
"가증스러운 언데드가 사악한 환술로 벨리튼 공국의 병사들을 홀려 신성한 땅을 밟았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지?"
"언데드의 손에 스러저간 이들의 복수를!"
"유린당한 망자들의 원한을 갚아야 합니다!"
분노에 찬 병사들과 기사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기분좋게 진격 명령을 내리려던 그 때, 펠프스와 그 휘하의 유저들의 눈 앞에 메세지가 떠올랐다.
-벨리튼 공국이 신성제국 가이아의 [크라운]을 공략했습니다.
'미친, 뭐가 이렇게 빨라!'
차라리 혼자 했다고 하면 믿기라도 하겠다. 유천에게는 충분히 그럴만한 기동성과 무력이 있다. 그런데 분명히 펠프스가 듣기로는 수백의 병사들과 마법사들을 데리고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당장 제 눈 앞에 떠오르는 제 소속의 병사들이 죽어가는 사망 소식은 올라오는데, 유천의 병사를 죽였다는 메세지는 단 한줄도 올라오지 않았다.
"어딘가에 감춰둔 건가?"
유천이 돌려대는 잔머리라면 그 수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설마 그 대병력에 손수 버프를 걸어가는 수고와 마나를 들일 리가 없다는 것이 펠프스의 생각이었고, 그것이 펠프스의 첫번째 실책이었다.
"모두 남부의 크라운을 향해 진군한다. 오늘은 크라운의 인근에 있는 데일 요새에서 숙영한다."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병사들을 향해 진군명령을 내리고서 펠프스가 중얼거렸다. 유천이 무슨 수단을 썼던 간에 반드시 눌러버리겠다고. 새로 다짐하는 펠프스의 옆에서 자칭 공간의 주인이 유천의 마법을 취하고 그 마법을 행하는 자신을 상상하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이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데스 패널티가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전쟁 첫쨋날이 저물었다. 펠프스가 이를 갈며 접속을 종료한 사이, 유천이 유저를 제외한 NPC 십인장을 모두 불러들였다.
"내일 전쟁부터는 새로운 작전을 개시한다."
어두운 방 촛불 아래에서 유천이 이를 보이며 히죽 웃었다. 누군가에게 엿을 먹일 때 짓는 표정이었다.
============================ 작품 후기 ============================
나는_약속을_지켰다.
시험이_뭐지?
먹는_건가?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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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스트린//죄송함니다
가이오가//저도 오랜만에 봐서 좋아요~ ㅋㅋ
TetsuRyu//(먼산)
researchers//코멘트 감사합니다~
제이스 올드윈//그런거신가!?
haaile//넹 이번엔 빨리 와써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