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리치다-423화 (42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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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이나 먹어라

먼지구름을 헤치고 망신창이인 모습을 드러낸 노인은 숨을 몰아쉬며 투덜거렸다.

"노인공경도 모르는가? 가차없이 몰아 붙이는구먼."

이마가 찢어지고 전신에 화상을 비롯해 검댕이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투덜거리는 모양새는 애처롭기까지 했으나 유천에게 그것을 기대할 이는 이 자리에 그 누구도 있지 않았다.

"저 놈이 미친 놈인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았지만, 빡도니까 뼈가 시릴 정도로 무섭군."

힐튼이 검을 들어올리며 중얼거렸다. 찢어진 공간을 벌리며 나타난 수많은 돌덩이가 그 지역 전체를 뒤집어 엎기 위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신과 채린을 향해 떨어지는 돌덩이를 향해 힐튼이 검을 휘두르자, 하늘과 땅이라는 거리 차에도 불구하고 돌덩이가 그 자리에서 쪼개졌다.

"마그마 이럽션."

뒤이어 노인이 입술을 달싹이며 마법을 준비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유천의 마법이 발동했다. 노인의 발 밑이 갈라지고 그 틈새에서 폭발하듯 분출된 용암의 열기는 성벽 뒤편에 있던 이들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노인한테 털 한올 한올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데……!"

전신에 보랏빛을 두르고 용암 속을 헤쳐나온 노인이 얼마남지 않은 제 머리숱마저 태워버린 용암을 원망스레 쳐다보며 말했다. 검을 사방으로 휘두르며 성벽과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유성을 죄다 쪼개던 힐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은 이렇게 물러가지만 이 다음엔 반드시 네놈의 지식을 죄다 뺏어주마!"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유천을 노려보며 외치는 노인의 머리 위를 잠깐 살펴보던 유천은 노인의 입이 열리자마자 말했다.

"텔레……."

"홀드."

노인의 마법이 채 발동하기도 전에 먼저 발동된 유천의 마법이 노인의 육신을 그 자리에 고정시켰다. 이윽고 전신의 보라색 빛무리를 두르고 있던 노인의 머리 위로 유성우가 떨어졌다.

콰과과광!

이전과는 비교 자체가 되질 않는 굉음과 그 위력은 대지 뿐만 아니라 공기조차도 강렬히 진동시켰다. 유성 하나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성벽이 위태롭게 흔들리며 돌조각을 떨어트렸다. 천지를 뒤흔드는 강렬한 충격 속에서 유천이 중얼거렸다.

"도망쳤네."

첫번째 유성이 노인과 충돌할 때 피를 토하던 노인과 함께 지근거리에 서 있던 유천 또한 그 강렬한 충격과 진동에 비틀거리는 꼴을 피할 수 없었다. 유천의 마법이 풀리자마자 바로 마법을 이용해 도망친 노인을 떠올리며 유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은 놈이 늘어났어."

노인이 떨어트린 것인지 발치에 뒹구는 티르빙을 발로 차올려 인벤토리에 넣는데 성공한 유천이 제 양팔을 재생시켰다.

전투 중에 날아간 제 팔이 그 대단위 마법 속에 멀쩡히 남아있을 리가 없었기에 한 행동이었다. 떨어져 나간 팔을 붙이는 것과 비교가 필요없을만큼의 마나를 쳐먹고서 유천의 양팔이 다시 나타났다.

"이건 앞으로 못쓰겠네."

맘에 들었던 로브였는데. 투덜거리며 유천이 제가 입고 있던 로브까지 벗어서 불태웠다. 채린에게 입혀준 것과는 성능 면에서는 차원이 다르지만 외형만큼은 칙칙하리만치 검고 수수해 남들 눈에 뛰지 않는 게 맘에 듷었던 것이었다.

"이걸 어디서 팔더라?"

중얼거리며 유천은 힐튼과 채린에게 다가가 채린이 걸친 로브의 매무새를 다듬어주고 먼지를 털고는 힐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천의 감사에 힐튼이 히죽 웃으며 유천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 나한테 빚 하나 진걸세."

"하여간에 능글맞은 영감이라니까."

"잊었나? 나이만 따지면 자네는 내 두배는 족히 넘을텐데?"

말하난 잘해요. 투덜거리며 유천이 성벽 내부로 들어서며 투덜거렸다. 그 모습에 채린은 한숨을 내쉬며 누가할 소리냐며 중얼거리곤 입꼬리를 올렸다.

*          *          *

"여신의 적을 처단하라!"

단시간에 끌어모은 것 치고 펠프스가 이끈 병력들은 괴랄하리만큼 강한 전력을 보이며 앞을 가로막은 기사들을 쓰러트렸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발군인 것은 역시 펠프스였다. 긴 금발을 바람에 휘날리며 펠프스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적들은 한 명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죽어라! 교황!"

온 몸으로 살기를 뿜어대며 있는 힘껏 검에 오러를 불어넣은 기사 하나가 펠프스의 미간을 노리고 검을 찔러넣었다. 펠프스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살짝 움직여 검을 피하고는 발을 들어 기사를 걷어찼다.

"교황 펠프스 레온 세인트다. 경의 이름은?"

"위선자에게 알려줄 이름 따위는 없다."

뒤로 튕겨져 나간 기사 패트릭이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으며 대답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웃으며 입을 연 펠프스가 검을 세우곤 고개를 끄덕여 기사의 예를 취하며 결투의 준비를 했다. 나무에 등을 기대던 패트릭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크게 외쳤다.

"그 더러운 검으로 기사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마라!"

5미터는 족히 떨어진 거리에도 불구하고 단 한걸음에 그 거리를 좁힌 패트릭이 펠프스의 어깨를 노리고 검을 내리그었다. 갑작스레 달려든 패트릭에게서 한걸음 물러선 펠프스가 검을 휘둘러 패트릭의 검을 좌측으로 쳐냈다. 펠프스의 힘에 밀려 좌측으로 날아가던 패트릭은 제 발을 강하게 휘둘러 펠프스의 검을 날려보냈다.

"제법 하는군……."

"그럼, 당연하지. 우리 왕국의 기사는 입만 산 어디의 교황과는 차원이 다르거든."

검을 놓친 펠프스가 저려오는 제 손을 보며 중얼거린 사이, 뒤에서 나타난 다른 기사가 펠프스의 등 뒤로 검을 꽂으며 말했다. 히죽 웃으며 패트릭을 보던 기사는 곧 펠프스의 손에 목이 비틀려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순백의 갑옷과 푸른색의 망토가 피로 물들어가는 순간 레이가 펠프스를 향해 손을 뻗으며 단 입술을 달싹이자마자 펠프스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젠 어쩔 생각이지?"

천천히 걸어가 떨어진 제 검을 주운 펠프스가 여유롭게 패트릭을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패트릭이 펠프스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고서 그의 검을 제 검신을 빗겨들어 공격을 흘리고는 검을 쥐지 않은 한 손으로 펠프스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마찬가지로 검을 들고 있지 않던 손으로 패트릭의 손을 잡은 펠프스가 입을 열었다.

"홀리 스트라이크."

패트릭의 손을 잡고 있던 펠프스의 손에서 빛의 구가 터졌다. 전신에서 피를 토하며 날아가는 패트릭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패트릭의 팔을 보며 펠프스가 검에 묻은 피를 털며 외쳤다.

"잔악한 이교의 무리를 단 하나도 살려서 보내지 마라!"

그나마 실력이 뛰어나던 패트릭을 비롯해 덤벼오는 적들의 실력자들을 다섯쯤 베어 넘겼을까, 펠프스가 데려온 병사와 기사들은 제 성을 공격한 이들을 모두 제 발 아래 쓰러트리는 데 성공했다. 펠프스가 그 장면을 보며 만족했다는 듯 웃었다. 그 순간, 펠프스의 등 뒤로 공간이 쩍하고 갈라지더니, 늙은 노인이 상처투성이인 노구를 이끌고 나타났다.

"자네가 교황인가?"

핏발 선 눈동자로 노인이 질문했다.

*          *          *

"그나저나, 아까 그 노친네에 대해 아는 거 있나?"

실실 떠들며 웃던 와중 유천이 말을 꺼냈다. 그 물음에 힐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대륙의 강자라는 강자와는 한번씩 검을 섞었던 그지만 자신을 공간의 지배자라 칭하는 이는 한번도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고.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닌데."

이쪽의 정보는 워낙 많이 퍼져있다. 황제가 된 뒤 전쟁 외에는 성 안에 틀어박힌 채 나올 생각을 안하는 펠프스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는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나타난 강적의 정보는 전무. 좋게 볼래야 좋게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공략 방법이 있다는 건가."

"희소식이군, 그 공략 방법은?"

유천의 중얼거림에 채린이 놀랐다는 듯 고개를 들어 쳐다보고, 힐튼이 탄성을 흘리며 질문했다. 반면 돌아오는 대답은 별로 좋지 못했다.

"힘들어. 무기는 마법무구가 아니면 일합에 그 기운에 터져나갈거야. 다행인 점은 그 보라색 기운이 충격 자체를 흡수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유천의 대단위 폭격에 화상을 입은 것하며, 운석과 충돌하고서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간 것까지, 공격 자체는 막을 수 있어도 그 안에 담긴 충격량까지는 막지 못할 거라는 유천의 설명에 힐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벨리튼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줘야겠다며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아마 그 영감도 펠프스한테 붙을거야. 목표가 같으니까."

"최악이군."

유천이 데려온 유저를 포함하여 벨리튼 공국의 전력 중 그 둘 중 하나라도 상대가 되는 것은 많이 쳐줘야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다. 침음성을 흘리는 힐튼을 보며 유천이 제 인벤토리를 뒤적거리더니 스크롤을 열장 쯤 꺼내 힐튼에게 던져줬다.

"9서클 마법들만 등록된 거니까, 그거로 마탑들 꼬셔봐. 마도에 미친 늙은이들이라면 안 넘어오고는 못베길걸."

그대로 등을 돌린 유천은 벙찐 표정의 힐튼을 뒤로하고 채린의 손을 잡고 성벽 밖으로 나갔다.

"다시 부를 생각이 없는건가?"

어디선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로키를 향해 유천이 물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채린과 유천의 몸이 흰 빛에 둘러쌓였다.

[크리스가 생각보다 약한거임 아니면 그 노인이 존나 센거임?]

[둘 다?]

다시금 사방이 흰 공간에 돌아온 유천은 제가 돌아오자마자 벽을 메우는 글자의 행렬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 와중에 유천과 펠프스의 눈에 각각 한줄의 글이 들어왔다.

[방금 크리스랑 싸운 노친네, 펠프스랑 손잡음.]

[나 헬리오스 적탑 소속 마법산데. 우리 탑주가 크리스 편에서 싸운다는데?]

그 글을 보자마자 동시에 둘의 표정이 구겨졌다. 로키가 그것을 보며 손뼉을 치고서 입을 열었다.

"뭐, 애매하긴 하지만 이걸로 오늘 인터뷰는 종료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할 질문이 있나요?"

"크리스, 하나 묻지. 언제부터 싸울 생각이지?"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나?"

둘의 팽팽한 기싸움에 옆에 있던 레이와 채린이 둘의 옆구리를 치며 벽면을 턱짓으로 가리키는 사이, 로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리트머스 대륙 전기 역사상 최초로 유저 국왕과 유저가 대표로 있는 공국에서 벌이는 이벤트가 쉽게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두분의 전쟁은 다음주 주말 이틀동안 벌어질 예정이며, 자세한 사항은 내일 중으로 공지사항에 올라갈테니 기대하시고 봐주세요!"

로키의 말을 끝으로 인터뷰가 끝나고 그 자리에 있던 유저가 본래 있던 곳으로 보내졌다. 채린의 경우는 그 계정 자체가 그 공간에 있었으므로 예외였다. 소유권 양도가 되지 않은 유천의 로브가 유천의 인벤토리로 돌아갔고 채린이 짐짓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제 몸을 내려다봤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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