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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이나 먹어라
벨리튼 공국의 경비대장 로첸은 할 말을 잃었다. 저것들이 사람새끼인가. 진심으로 그것을 고민하며 로첸이 입을 열었다.
"전원 퇴각! 성 내부로 피해라!"
경비대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어쩌겠는가. 눈 앞의 허공에서 싸우고 있는 저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의 공격이 서로 충돌해 파편을 흩뿌릴 때마다 견고하기 그지 없는 성벽이 뒤흔들리고 금이 가기 시작하는데.
"서둘러라! 중요한 물건이 아니면 내다 버려!"
"이 물자들만 해도 얼마나 비싼 물건인데 그럽니까!"
"네 모가지보다 비싸냐?"
성벽 위에서 경비대장과 서로 싸우기 바쁜 병사들은 곧 성벽 한쪽이 터져나가며 스물은 족히 넘는 이방인들이 일거에 불에 타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타들어가는 것을 보고 괴성을 지르며 도망쳤다.
"진작 좀 그럴 것이지."
그 모습을 보며 로첸이 투덜거리며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제 주변의 무기들만 대충 챙기고는 성벽 내부로 도망쳤다.
"저 놈이 다른 마법은 쓸 엄두도 안나게 해!"
"몰아 붙여!"
"틈을 내주지 마!"
유천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만 같았다.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해서 채린을 데리고 서둘러 돌아왔더니, 펠프스가 보낸 부대도,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원한을 품고 달려든 이들도 아니다. 단 한명이었다. 그런데 단 하나를 제대로 막지 못해 이 난리를 피운 것이었다.
"본인이 직접 나서게끔 만드는 놈이 요 근래에 들어 세 놈이나 되다니, 이거 참 기쁜 일이로군."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는 유천의 뒤로 힐튼이 검을 뽑은 채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이가 상당히 빠지고 금까지 간 검을 보며 유천이 입을 열었다.
"저 놈이 그렇게 강합니까? "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투덜거리며 유천이 공중에 떠오른 상대를 바라보았다. 얇고 희끗한 머리숱 그마저도 바람에 휘날려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굽어진 허리는 얼마 안가 죽을 노인네마냥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핏발 선 눈동자는 상처투성이인 몸을 신경쓰지도 않고, 이쪽만 바라보고 있다.
"찾았다!"
노인이 유천을 발견하고는 노호성과 함께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유천은 깜짝 놀랐다. 곁에 있던 채린이 알아챌 새도 없이 뭔가에 잡힌 것 마냥 노인을 향해 끌려가는 유천을 보며 힐튼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 놈도 저건 눈치 못 챘구만?"
낄낄거리며 자신은 적어도 저걸 눈치는 챘다며 저에게 자랑을 하는 힐튼을 무시한 채린은 유천을 바라봤다. 어디 얼마나 실력에 자신이 있길래 유천을 직접 끌어들이는지 두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서 반갑군, 리치 양반! 거 허리는 정정한가?"
제 코앞에 온 유천의 멱살을 틀어쥐며 노인이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웃자, 유천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해 줘서 고맙기도 해라!"
웃고 있는 낯짝과 달리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지만, 주먹은 노인의 얼굴 정면 앞에서 무언가에 막힌 것 마냥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 쪽은 너무 유명해서 따로 소개를 들을 필요는 없겠고, 내 소개나 하지. 이 몸의 이름은 너무 불린지 오래되서 기억이 나지 않아. 하지만 따로 듣는 별명은 있지. 공간의 주인이라고 한다만. 다 낡아빠진 해골양반이 생각하기에 어떤가? 지금 공간 마법의 수준은?"
열의 가득한 눈초리로 노인은 유천에게 뭔가 물어보면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핏발 선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유천을 쳐다보았다. 그런 태평한 모습을 주위를 둘러싼 유저들이 가만히 두고볼 리가 없었으나 그들의 공격은 하나같이 좀 전의 유천 마냥 유천과 노인 주변으로 다가온 그 순간 고정되기라도 한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알게 뭐야, 그 딴거. 헬 파이어."
방어를 도외시한 초 근접거리 포격. 유천의 공중에서 멈춘 주먹에서 튀어나온 머리통만한 푸른 불꽃이 자칭 공간의 주인이라는 노인의 몸을 둘러쌌다.
"그래야지, 암 그렇고 말고! 시시하게 묻는 대로 대답만 하면 재미가 없지!"
그리고 유천의 앞에 있는 불타는 인영은 그대로인데, 유천의 등 뒤에서 노인이 나타나 껄껄 웃으며 외쳤다.
"저 영감탱이, 뭘 좀 아는군."
여전히 표정을 구겨가는 채린을 옆에 세워 둔 채 힐튼이 태평히 중얼거렸다.
* * *
"무너진 성벽에 추가 병력 배치하고, 북문에 지원요청 해."
자신을 바라보는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펠프스가 혀를 찼다. 조금 전 환한 빛과 함께 나타난 펠프스가 본 것은 무너지는 동쪽 성문의 성벽과 그 성을 있는 힘껏 공격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여기까지 이동할 때만 하더라도 유천의 작품인 줄 알았던 펠프스는 이를 갈며 제 판단이 틀렸단 것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레벨만 따지면 그 둘을 따라잡을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다. 그 생각에 다른 것은미쳐 보지 못했다며 펠프스가 이를 가는 동안 옆에서 레이가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는 인부들과 그 주위의 병사들에게 간단한 축복이라며 버프를 거는 것을 지켜보며 펠프스는 손에 든 방패를 바라보았다.
제 손으로 직접 멸망시킨 나라의 문장이 그려져있었다. 그런가 하면 주위에 널려진 다른 무구들에는 또다른 왕국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물론 가장 많은 것은 아직까지 멸망하지 않은 두개의 국가 중 단 하나, 기사의 왕국의 것이었다.
레벨과 세력은 다르다. 레벨이 아무리 높다고 한들, 저 레벨 유저가 제대로 갖춘 배경만 갖추고 있다면 개인으로 다니는 고 레벨 유저라고 무서워 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 고 레벨 유저가 커다란 배경마저 있다면? 유천에게는 벨리튼 공국이라는 배경이, 자신에게는 신성제국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유저들 중 오직 둘만이 그만한 배경을 갖추었다고 무시한 것이 화근이었다.
"북문의 지원이 오는대로 놈들을 쫓는다. 겁도 없이 신의 땅을 밟은 놈들에게 고고한 여신의 분노를 보여주자."
검에 묻은 피를 털면서 내린 명령에 제 뒤에 부복하고 있던 기사가 크게 대답을 하며 주위의 병사와 기사들을 소집했다. 말 그대로 지원병이 오는 즉시 출발할 기세였다.
"제대로 된 결판을 내기 전에 청소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당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질 거에요."
이마를 가린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펠프스가 중얼거렸다. 뒤에서 레이가 펠프스의 말에 동의라도 하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가볍게 펠프스의 갑옷을 두드리는 레이의 행위에 호응이라도 하듯 펠프스의 전신에서 금빛의 빛이 뿜어져 나오자 주위의 병사와 인부, 기사들이 환호를 하며 크게 외쳤다.
"여신의 이름으로!"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그에 화답해 펠프스가 근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뒤이어 성문에서 북문병사들이 달려오는 것을 본 펠프스는 지원병은 동문을 지키라 명한 뒤, 출정 준비가 끝난 기사와 병사들을 이끌고 출전했다.
* * *
"이래도 말할 생각이 안 드나?"
노인이 고함을 지르며 유천의 왼 어깨를 노리고 손을 뻗었다. 괴상한 보랏빛에 둘러쌓인 손을 보고 유천이 뒤로 물러나며 발치의 검을 차올렸으나, 검은 보랏빛과 둘러쌓임과 동시에 칼날이 산산조각으로 깨지고 말았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괴상한 것만 알아서는!"
그 기현상에 유천이 혀를 내두르며 왼손 위로 생성한 화염구를 집어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시뻘겋게 타오르는 화염도 보랏빛과 마주친 순간 사방으로 터지는 꼴을 면할 수는 없었다.
"귀찮게 하네 진짜!"
괴성을 지르며 유천이 한발짝 뒤로 물러났다. 쌍방 모두 공격이 먹히질 않았다. 자신을 공간의 주인이라 칭한 노인은 기세 좋게 보랏빛을 두른 양 손을 휘두르면서도 유천의 옷깃 하나를 스치지 못했으며, 유천의 모든 마법 또한 노인에게 피해를 입힐 수는 없었다.
"거 귀찮은 해골일세. 노친네 질문 하나 대답해 주는 것이 뭐가 그리 힘이 들어 이리 사양을 하는가!"
슬슬 인내심이 떨어져 가는 것은 노인 또한 마찬가지인 듯 신경질 적으로 팔을 휘두르며 외쳤다.
"거 노친네, 체력 하난 굉장하네!"
입 안에 고인 침을 뱉으며 중얼거린 유천은 인상을 구기며 인벤토리를 열어 그 안에서 피처럼 붉은 검을 꺼냈다. 그것이 노인이 보기에는 허공에 손을 뻗어 검을 뽑는 모습으로 보였던 것인지, 눈을 빛내며 크게 외쳤다.
"그 마법 또한 내게 알려줘야겠군!"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그대로 몸을 던져 손을 뻗는 노인을 향해 유천은 날카롭기 그지없는 검을 들이밀었다.
"같잖기는!"
히죽 웃으며 왼손으로 칼날을 쳐내고, 오른손을 유천의 머리로 향하던 노인은 불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왼팔을 끌어당겼다. 분명 보랏빛 기운은 여전히 왼팔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왼손부터 시작해 팔꿈치에 이르기까지, 칼날이 관통한 채 베고 지나간 흔적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 잘난 빛도 이거 앞에선 별거 아닌가 본데?"
"건방진 것! 어딜 감히 죽다만 언데드 따위가!"
히죽 웃으며 유천이 붉은 검을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하며 장난을 치자, 처음으로 노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얼굴을 붉힌 채 눈을 크게 뜬 노인이 이어 고함을 지르자 그 곳에 존재하던 모든 것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이게 뭐야?"
처음 그것을 눈치챈 이는 채린이었다. 자신을 포함해 성벽 위의 도망치던 병사들까지 제자리에 굳은 채 아우성을 내지르는 것을 본 채린이 당황한 듯 중얼거리자 옆에서 히죽거리며 웃기 바쁘던 힐튼 또한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조금 안좋은데."
차게 식은 눈으로 유천을 보며 힐튼이 중얼거린 순간, 유천의 왼팔이 피를 뿌리며 그 자리에서 떨어져나갔다. 커질대로 커진 채린의 눈이 경악의 빛을 띄우고, 힐튼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게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본노는 공간의 주인이라고."
"지랄."
"아까부터 생각한 거지만 자네, 입버릇이 나쁘구먼."
교육이 필요하겠어. 노인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노인이 손을 뻗자 공중에 뜬 채로 그 자리에 고정되었던 티르빙이 노인의 손에 날아와 쥐어졌다. 유천이 눈살을 찌푸린 그 순간 노인이 검을 쥔 오른팔을 아래로 내리그었고, 유천의 오른팔 또한 피를 뿌리며 유천의 몸에서 떨어졌다.
"신기하단 말이지, 이 검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이 피는 통짜로 마력으로 이루어진건가? 흥미롭군. 인간 흉내가 그리도 즐겁나?
연이어 이리 저리로 팔을 휘두르며 혼자 중얼거리던 노인은 한참 후에야 유천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이제 알려줄 생각이 드냐고. 노인의 얼굴 위로 침을 뱉으며 유천이 말한 순간, 노인의 팔이 다시 한번 위로 올라갔다.
"영감, 거기 그대로 서 있어."
"아직 교육이 덜된 모양이야. 그 머리로 마법은 어찌 익혔나?"
"그 잘난 공간 째로 날려줄테니까."
유천의 말이 끝난 순간 노인의 눈이 경악으로 뒤덮였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자신을 둘러싼 붉은 마법진. 경악을 하며 검을 아래로 내리그었으나, 마법진은 겨우 두어개가 사라질 뿐 여전히 노인을 둘러싼 채 풀어주지 않았다.
"뒈져라."
입 안에 가득 고인 피를 퉤 뱉으며 유천이 입을 열자마자 노인을 둘러싼 모든 마법진에서 거세게 타오르는 화염이 폭발했다. 굉음에 가까운 폭음이 지면을 뒤흔드는 와중에도 그치지 않고 유천이 입을 열었다.
"미티어 스웜."
하늘에 새겨진 마법진 속에서 유성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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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함다. 기말고사 끝났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