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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이나 먹어라
"제정신인가? 저 자는 적국의, 그것도 펠프스놈의 최측근이 아닌가!"
"최측근이고 나발이고, 뒤통수 후려갈기러 왔다는데 왜 이렇게 답답들 하냐고. 여기까지 오면서 저 양반이 날려버린 신성제국 부대만 손으로 꼽기도 힘들 지경인데."
유천의 말에 앉아있던 귀족중 하나가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이라도 탁자위의 재떨이를 집어 던질듯한 모양새에 되려 주변의 다른 귀족이 움찔할 지경이였는데, 유천은 그런 귀족을 보며 하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물론 거짓말이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만난 제국 부대는 개뿔이 유천이 지금까지 만난 부대도 손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유천이 행했다는, 사칭범이 해낸 수많은 전과는 아직 전공을 세운 이의 자리가 남아있었다. 강혁이 들었다가는 고생은 지가 다 했는데 왜 보상은 딴 놈이 챙기냐고 노발대발 할 소리였지만 어쩌겠는가, 보이는 성과라고는 그것 뿐인데.
"거짓말할 생각 말게. 신성제국의 사제가 제 나라의 병력을 공격했다는 소식은 그 어디에서도 보고가 올라온 적 없네."
"요 근래 날 사칭하고 다닌게 이 인간이라면?"
유천의 말에 방 내부의 모든 인원이 침묵했다. 방 구석에서 제가 뿜어낸 술을 닦아내던 노우는 눈을 빛내며 하늘의 모습을 살폈다. 하늘 또한 유천이 그런 소리를 지껄일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듯 벙찐 채 유천을 노려보기 시작했지만 유천은 껄껄 웃어대며 하늘의 어깨를 두드렸다.
"비밀을 털어놔서 미안하긴 한데, 그러지라도 않으면 믿지 않을 표정이잖아? 저 놈들."
"에에, 뭐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유천의 말에 맞춰 애매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돌리던 하늘이 노우와 눈이 마주쳤다. 둘의 눈이 마주치고서 하늘과 노우 모두 애매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째서 여기에 네가?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을 하고서 멍하니 있는 하늘을 보자마자 유천이 입을 열었다.
"벌써 지루하다는 거지? 알았어, 얼른 일하러 가자고."
유천이 벨리튼 공작이나, 힐튼을 비롯한 다른 귀족들이 하늘과 노우의 멍한 표정을 보지 못했기를 바라며 둘의 목덜미를 움켜쥔 유천이 재빨리 외쳤다.
"텔레포트!"
외침과 동시에 모여든 빛무리가 세명을 감싸고, 모여들기가 무섭게 그 중심에 서있던 세명이 빛과 함께 사라졌다. 방 안에 남은 귀족들은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로를 지켜볼 뿐이었다.
"뭐,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할까."
벨리튼이 상석에서 벙찐 귀족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애초에 그들이 나누던 대화 내용 또한 별것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의 충격 또한 남아있는 듯 했으니 다시 대화를 나눌 것도 없었다.
"그럼 나도 일어나지."
벨리튼이 먼저 방을 나서자 힐튼을 필두로 하나 둘 방을 나간 뒤 방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 하나 남지 않은 채 삭막한 풍경으로 돌아갔다.
"어쩔거야? 그렇게 나와놓고, 진짜 할 일이라도 있나?"
여전히 얼빠진 표정인 채로 노우와 자신을 번갈아 쳐다보는 하늘이 유천에게 말을 건네자, 유천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려 하늘과 노우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당연한거 아냐? 지금부터 만들어야지. 노우, 이 근처에 신성제국 잔당이나 부대가 있던 장소는?"
"이 근처는 안정화를 위한다고. 힐튼을 필두로 한 공국의 부대가 모두 처리했습니다만, 이 근방이라면 저쪽 산 너머의 경계에……."
"정확한 거리와 방향은?"
유천의 뻔뻔한 표정에 둘의 표정이 굳어질 지경이었으나, 노우는 유천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답을 시작했다. 이어 제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서 말을 끊는 유천을 보며 표정을 찌푸린 노우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제 기준으로 2시 방향, 거리는 대략 2km 내외……."
"주변의 인가는?"
"전무합니다."
노우의 말을 듣고서 유천이 하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어 가능하겠지? 라고 물으며 고개를 까딱이자, 한숨을 내쉬며 하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 벨리튼의 성에서 그러했듯이 밝은 빛무리가 모여들었다 흩어진 순간 하늘은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다.
"자, 그럼 따라가볼까."
하늘이 향한 곳을 쳐다보며 씩 웃은 유천은 다시 노우의 목덜미를 잡고서 시동어를 외쳤다. 눈 한번 깜빡한 뒤에 노우가 본 것은 산의 초입부를 가득 메운 백색의 무리였다. 두고 볼 것도 없이 신성제국의 부대였다. 그것을 보며 노우가 유천을 바라봤다. 봤냐? 내 정보력이 이 정도야. 너한테 무시당할 정도가 아니라고!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온 말을 애써 삼키며 노우가 신경질적으로 유천의 팔을 두드렸다.
"얌전히 좀 있어."
귀찮다는 듯 유천이 팔을 흔들며 공중에 휙 노우를 던지자 노우는 그 자리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부대와 산의 초입이 보일정도로 높은 허공에 떠 있는데 그 곳에서 떨어졌다간 체력 문제는 둘째치고 정신건강에 심히 해롭다. 그 모습을 보던 유천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레비테이션도 모르냐."
허공에 뜬 자세 그대로 허우적거리던 노우가 자신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즈음, 유천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유천을 보며 이를 빠득 갈던 노우는 갑작스런 비명에 고개를 돌렸다.
"오, 시작했다."
팝콘이라도 뜯을 기세로 흥미진진한 표정을 한 유천과 그 아래 자신과 유천처럼 허공에 뜬 채 메이스를 꺼내든 하늘이 있었다. 손을 앞으로 뻗은채 한마디를 중얼거릴 때마다 지상을 향해 큼지막한 창이 떨어지는 장면은 장관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았다.
"저기 뒤에 놈들, 도망치고 있슴니다만?"
"보내주는 거야. 저 형이 이 쪽에 붙었다는 건 확실하게 알려야될 거 아냐, 그게 유저건 NPC건 상관없이 알리는덴 목격자만큼 좋은 게 없지."
뭐, 아무리 그래도 보급품까지 챙기라고는 안했는데. 유천이 중얼거렸다. 이어서 유천의 손 위에 이글거리는 불덩이가 생겨났고, 보급품을 챙기는 유저들을 향해 날아갔다.
"깔끔하지?"
후덥지근한 열기가 제 발치까지 올라오는 와중에 웃으며 말을 건네는 유천을 보고, 노우는 할 말을 잃었다. 저건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고. 그 와중에도 노우의 눈은 하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현재 벨리튼 공국 세력의 전력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둘이 얼마나 강한지 제 눈으로 똑똑히 보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다.
"베리어."
가끔 상공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은 유천의 방어에 막혀 다시 땅으로 떨어질 따름이었다. 그러나 워낙 수가 많다보니 뚫고 넘어오는 공격도 적지 않았으나, 위력은 크게 떨어져 피해를 주기엔 모자랐고 전의를 상실한 신성제국 측 유저들은 저를 향해 공격하는 이가 누구인지 확인하겠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짙은 피마냥 검붉은 로브에 얇은 철을 덧댄 그것은 유천의 상징이다시피 한 물건이었다. 애초에 자신들을 공격했다는 시점에서 유천이 있다는 것은 확인한 지 오래. 지금의 유천은 아까의 일격을 제외하곤 방어에 전념중. 공격을 하고있는 붉은 로브는 도대체 누구인가? 유저들은 오래지 않아 붉은 로브의 완장에서 신성제국의 상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편이 왜 저기 있어!"
"넘어가지 마라! 아군의 장비만 탈취한 놈이다!"
유저들이 당황하며 어쩔줄 몰라하는 가운데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화살을 날리며 외쳤다. 그럴 가능성이 전무한 것도 아니였고, 혼란을 위해선 그런 작전도 나쁘진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 말을 듣고서 하늘은 씩 웃으며 손을 위로 들었다.
"성신의 창."
"저 형도 악질이라니까."
푸른빛을 띈 백광이 하늘의 손 위에 모여 거대한 창의 모양을 이루고, 뭔지 모를 문자로 음각이 새겨지는 것과 동시에 파고 들어간 부분을 타고 푸른 빛이 따라 빛나기 시작하자 유천은 웃으며 저 또한 손을 위로 들었다. 색만 반대될 뿐이지 모양은 같은 또 하나의 거창이 유천의 손 위에 나타났다. 유저들이 아는 한도 내에서도, 서버 내에서도 단 둘만이 사용한 신의 창이 두명의 손에서 나타났다. 하나의 적을 향해서.
방어막이 사라진 사이 온갖 마법이며 화살이 날아와 노우를 포함한 셋의 체력을 깎아먹기 시작했지만 그것을 걱정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되려 멈추지 않는 둘을 보며 공격을 하던 이들이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할 무렵. 하늘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푹-
날아가는 모습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푸른 뇌광과 함께 땅에 꽂힌 성신의 창이 빛을 발하며 폭발했다. 상공에 떠 있는 노우와 유천이 듣기에도 커다란 굉음에 고막이 손상되었다는 메세지와 함께 신성력에 의한 데미지가 유천에게 들어오자, 더 기다릴 것 없이 유천 또한 손에 든 검은색 일색의 창을 내던졌다.
쾅-!
대포라도 발사되는 듯한 폭음과 함께 땅을 향해 날아간 창은 이미 땅거죽을 둘러싼 푸른 뇌광과 먼지구름에 섬찟한 스파크와 굉음을 일으키고는 땅에 꽂히자마자 폭발했다. 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는 위력에 공중에 떠 있던 하늘이 뒤로 밀려났다. 유천의 뒤에 있어 피해가 덜했던 노우가 고개를 빼꼼 내밀어 땅을 바라봤을때, 그곳에 살아있다고 추측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다만 서로를 잡아먹을듯 탐욕스럽게 빛나는 푸른 뇌광과 검은 연기만 그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야, 얼른 나와봐.]
유천이 제 작품을 감상할 새도 없이 제 눈 앞에 떠오른 외부 메세지를 보며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뒤로 돌아 하늘과 노우에게 말했다.
"나 밖에서 불러서 먼저 나가볼게. 마침 둘이 할 얘기도 있어 보이는데, 난 먼저 빠진다. 뒷정리도 부탁해."
하늘과 노우가 뭐라 반항을 할 새도 없이 유천은 냅다 게임을 종료했다. 마법을 유지하던 유천이 게임을 종료함으로써 추락하기 시작한 노우를 하늘이 겨우 잡아 올렸다. 그 뒤 남겨진 둘은 서로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닫으며 대화를 주저했으나, 결국 하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왜, 저 녀석 편에 붙어 있어?"
"네가 알 게 뭐야."
서로 눈치를 본 이유가 궁금할 정도로 하늘의 말을 단숨에 자른 노우는 품에서 스크롤을 꺼내 찢으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늘은 찝찝한 표정을 하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게임을 종료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해줄래?"
캡슐에서 나온 유천은 볼 수 있었다. 채린과 소피아가 자신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하고 있는 모양새를. 그리고 아무런 표정 없이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 당당히 서있는 소피아에게서 눈을 떼며 채린을 바라보자. 채린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러니까……."
"진짜 너랑 내가 사귀는 건 맞아?"
아니 설명을 해달라며. 입을 열자마자 따지듯 말하는 채린을 보며 유천이 무슨 당연한 걸 묻냐며 채린의 어깨를 두드리며 달래려는 제 팔을 채린이 싸늘한 표정으로 쳐내며 말했다.
"맨날 나만 애태우고 기다리고 걱정하는 건 이제 질렸어. 그만하자 우리."
청천벽력에 가까운 채린의 선고에, 유천이 굳어진 사이. 유천의 어깨를 거세게 밀친 채린이 신경질적으로 소파에 얹어둔 제 가방을 어깨에 메고는 그대로 현관을 나섰다. 유천은 제 자리에 주저앉은 채 채린이 나간 현관을 멍하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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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외전은 확정이 아니라 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