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리치다-411화 (41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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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이나 먹어라

-[자, 그럼 시작하겠다.]

피처럼 붉은 비늘이, 붉은 피에 물든 눈 위에 자리를 잡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때마침 해를 가리던 구름이 사라지고, 햇빛이 그 붉디 붉은 비늘에 반사되어 더욱 붉은 빛을 사방에 퍼트리며 유저들을 질리게 만드는 동안, 유천은 빠르게 펠프스에게 달려들었다.

"아직 너랑 나랑은 정산할 게 남았잖아?"

"당연한 소리."

보기만 해도 뼛속까지 시려오는 백색을 띈 투명한 기운을 가득 두른 유천의 주먹이 펠프스를 향함과 동시에, 펠프스 또한 눈부신 백색의 광휘를 두르고서 유천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두고 볼 것도 없이 빠른 속도로 먼저 달려든 유천의 주먹이 어디론가 날아가버린 견장이 자리잡고 있던 펠프스의 왼쪽 어깨죽지를 강타했다. 그 부위를 기점으로 순식간에 왼팔이 얼어붙은 펠프스였지만, 자신의 주먹 또한 유천의 어깨를 맞추는데 성공한 펠프스였다.

"젠장."

"겨우 이거냐?"

이미 너덜너덜해질대로 너덜너덜해진 유천의 어깨죽지에서 다시금 타든듯한 매캐한 냄새와 연기가 피어올랐고, 유천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반면 달라붙은 얼음을 순식간에 떼어낸 펠프스가 그런 유천을 비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 그게 다 일리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정말 실망인데?"

"다행이군, 실망 받을 일은 없어서."

다시 한번 땅을 박찬 유천이 이번에 고른 공격 방식은 아까와는 달랐다. 어느새 꺼내든 검에 금방이라도 자신을 삼킬듯이 넘실거리는 검붉은 화염을 검신에 가득 머금고서 펠프스를 향해 휘둘렀다. 아까 전의 펠프스가 그랬듯이.

"겨우 이 정도 쯤이야!"

크게 반월을 그리는 유천의 검 끝에서 튀어나간 불꽃은 자신을 담고 있던 검이 그러했듯 반월을 그리며 펠프스를 향해 날아갔다. 호기를 부리며 있는 힘껏 반월 모양의 불꽃을 아까부터 제 몸 주변에 은은하게 돌고 있던 순백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검으로 내리그었다. 유천의 어깨가 그러했듯,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며 검은 연기를 피우며 불꽃이 두조각으로 갈려 펠프스를 스쳐 지나가고, 펠프스가 기고 만장하게 웃음을 터트리려던 때, 펠프스의 등 뒤에서 나타난 유천이 펠프스의 왼쪽 어깨에 검을 박아넣었다.

"멍청하긴. 너랑 싸우고 있는 건 그 불꽃이 아니라 나라고."

고기 익는 냄새를 풍기는 펠프스의 어깨에서 검을 뽑은 유천은 이어서 땅에 검을 박으며 펠프스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라 항변하려는 듯한 펠프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환한 웃음을 지으며.

"무저갱의 늪."

"너 이새끼! 이번엔 또 무슨 짓을!"

말을 마치자 마자 블링크로 거리를 벌리는 유천을 보며 이를 갈면서 반격을 준비하기 위해 다리를 옮기던 펠프스는 자신이 다리를 붙잡는 듯한 감촉에 표정을 구기며 발 아래를 쳐다봤다. 그 곳에는 유천에 의해 생겨난 얼음도, 불에탄 흔적도 없었다. 흐물거리는 검은 진흙이 물결을 치며 펠프스의 새하얀 갑옷에 달라붙어 더러운 오점을 남기기 시작할 즈음 펠프스는 발악을 하며 다리를 옮기려 애를 썼다.

"어디 한번 빠져나와 봐. 뭐, 그 늪은 절대 빠져 나오라고 만든 늪은 아니지만 말이야."

"개자식!"

제대로된 공격은 커녕 이제는 중심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서서히 땅 밑으로 가라앉는 펠프스를 보며 유천이 비웃음을 흘리고, 그에 발악을 하며 펠프스가 제 검을 뻗어 유천에게 공격을 하려 했지만, 애초에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스킬도 없었을 뿐더러, 있었다 해도 유천이 그것을 맞아주리란 보장도 없었다.

"자, 그럼 나중에 게임 속의 지하는 어떤 곳인지, 소감문이나 써달라고. 어스퀘이크."

산책이라도 가자는 듯 나긋나긋한 어조로 말하며 유천이 가볍게 발을 구르자, 그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한 진동이 땅을 뒤흔들었다. 그에 땅으로 꺼지던 펠프스의 머리가 갑작스레 땅 속으로 사라졌고, 중심을 잃은 핏빛 비늘의 도마뱀이 그 거구를 땅에 넘어트렸다. 물론 그 거대한 진동에 버텨낸 유저또한 존재하지는 못했다. 순식간에 50이 넘는 이들을 생매장해버린 유천은 감흥도 오지 않는다는 듯 손을 털고는 언제 또 자신을 부를거냐는 도마뱀의 말을 무시하고 그를 역소환해버렸다.

"부르긴 뭘 또 불러. 필요하면 그때 그때 오는거지."

마지막으로 할 일이 끝났다는 듯 유천은 손뼉을 치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밝은 웃음을 품으며 그 자리에서 사라지며 뱉은 말은 텔레포트의 시동어가 아니었다.

"동영상 녹화 종료."

-[이름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잘나신 교황 성하 엿먹이기."

연신 재밌다는 듯 키득이며 사라진 유천이 다시 나타난 곳은 전투가 벌어진 마을에서 그닥 멀지 않은 숲이었다. 자신이 등장하자마자 무기를 꺼내들고 긴장을 하던 유저들은 곧 나타난 이가 유천이라는 것을 깨닫고선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 많던 놈들을 다 해치우고 살아서 온거야?"

"그래도 멀쩡한 것 같지는 않은데? 저 어깨 좀 봐."

"멍청아, 그 어깨 말고는 다 멀쩡하잖아. 그 랭커들 사이에서 치고받은 것 치고는 말이 안 될 정도로 성한 모습이지."

유천은 자신을 보며 아쉽다는 듯한 눈길을 보내는 이들, 굉장하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이들을 뒤로 하고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얼마 걷지 않아 발록과 라이헤르가 발버둥 치는 티나를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유천은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공주님은 뭘 한다고 그리 발버둥이실까."

"이거 놔요! 그 개자식 죽이러 갈거란 말이야!"

정작 아까 마주쳤을 때는 아무런 말도 못한 주제에, 이제와서 뒷북을 치는 티나의 행동에 실소를 머금은 유천은 곧 자신을 쳐다보는 발록과 라이헤르를 보며 헛기침을 하고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이거 어쩌지, 그 놈 벌써 그 자리에 없는데."

"왜요! 설마 그 나쁜 놈 놔준 거에요?!"

정말 그랬다면 당신도 가만두지 않을거에요! 발록과 라이헤르의 손에서 간신히 벗어난 티나가 유천의 앞에서 방방 뛰며 고함을 질러대자, 유천은 큰 일이라는 듯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곧 얼굴을 티나의 앞에 들이대며 말했다.

"어쩌지, 산채로 땅 밑에 놔줘버렸는데."

"그게 무슨!"

"그냥 묻어버렸다고."

이 밑에 말이야. 땅 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크게 웃어재끼기 시작한 유천을 발록과 라이헤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반면에 아직까지 유천의 말을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한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티나에게 유천은 간단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 놈을 땅 속에 산 채로 쳐박았다고. 생매장."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한 일이지만 너무 잘 처리한 거 같아. 미친놈 마냥 연신 키득이며 혼자 중얼거리는 유천을 보며 그 말 뜻을 알아들은 티나도 곧 유천과 함께 소리높여 웃기 시작했다.

"저건 뭐 미친 연놈들도 아니고. 뭐가 좋다고 저렇게 쳐웃고 난리야?"

본인도 실실 웃고 있는 것을 모르는 건지, 유천과 티나를 보며 중얼거리는 라이헤르를 보며 발록은 중얼거렸다. 이 놈이나 저 년이나, 다 똑같다고.

"자, 그럼 푹 쉬고 있어. 나도 좀 쉬고 올테니까."

한참동안을 웃고 나서야 웃음을 멈춘 유천이 로그아웃을 하기 전 발록과 라이헤르에게 자신이 로그아웃한다는 사실을 알리고서 게임을 종료한 유천은 곧 몇몇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녹화한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랭킹 1위 VS 랭킹 2위]

-[마법사 랭킹 1위 VS 성바퀴 랭킹 1위]

-[pvp 1위 VS 작위 1위]

-[크리스 VS 펠프스]

각각의 포털 사이트에 녹화한 동영상을 올리고 낄낄 웃으며 유천은 캡슐에서 나왔다. 그리고 마주했다. 토라진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캡슐에서 나오는 자신을 내려다 보는 채린을.

"그러니까, 이게 말이지? 여기엔 아주 깊은 사정이 있어."

"몰라. 나 잘 거야. 오늘은 너 혼자 자."

유천은 제 변명을 들어줄 생각조차 없이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궈버리는 매정한 채린의 행동에 잠깐도 망설이지 않고 문 앞에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늦게라도 채린이 들어오면 환영하고 저녁을 먹던 데이트를 나가던 했어햐 했는데, 혼자 게임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미친 게 틀림 없다면서.

*          *          *

"펠프스, 이 멍청한 자식."

"신 유천이 굉장한 거야, 아니면 그 머릿수로 발린 놈이 랭킹 1위는 폼으로 달고 있는 거야?"

로브를 뒤집어 쓴 채, 어느 한 건물의 지하에 탁자를 중심으로 둘러 앉은 이들이 저마다 입을 열었다. 그 내용은 당연하게도 백이 넘는 인원을 끌고와 털려버린 펠프스에 대한 이야기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머릿수 중에 펠프스를 제외하면 쓸만한 놈은 하나도 없었어. 랭킹만 봐도 탑랭커 12명을 제외하면 그 밑은 레벨 차이만 벌써 40 이상은 난다고. 더군다나 그 12명도 스킬 숙련도나 활용에서 급이 나뉘고."

"누가 봐도 신유천이 그 면에서 펠프스보다 위 인건 확실한데. 다음은 어디로 끌고가야 펠프스가 유리하지?"

여러 차례 대화가 오가고, 드디어 그들의 회의의 주 목적이 나왔다. 바로 다음 유천과 펠프스가 싸울 장소. 지도를 펼치고 장소를 물색하던 그들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펠프스가 유리한 장소가 어디가 있을까.

"아니, 우리가 싸울 장소는 펠프스가 유리한 장소가 아니라 신 유천이 불리한 장소야."

"그 말이 그 말 아니야?"

"꼭 펠프스한테 유리하다고 신 유천이 불리하란 법이 있냐, 멍청아?"

지도를 살피면서도 서로를 향해 말장난을 건내는 모양새 하며, 이곳 저곳을 찔러대며 선언해대는 이들을 멀리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뭐, 이 정도는 안 알려줘도 그 놈이 알아서 하겠지."

사내는 한 마디를 중얼거리곤 붉은 사제복을 뒤집어쓰고는 그 방에서 나섰다. 그러나 일행 중 그 누구도, 그 사내가 방에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채지는 못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쓰다가 곯아떨어짐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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