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6 / 0440 ----------------------------------------------
John Doe
층을 올라가던 도중 만난 사내 하나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자, 유천은 그 사내의 멱살을 움켜쥐고 제 몸의 왼쪽으로 사내의 몸을 끌어당겼다. 동시에 사내의 다리를 제 다리로 오른쪽으로 있는 힘껏 걷어차자. 사내는 일순간 공중에 뜨더니 곧 바닥에 처박혔다. 이어서 날아오는 유천의 주먹에 명치를 얻어맞고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유천은 그런 사내의 다리를 질질끌어 엘리베이터 안에 집어넣었다. 하반신은 엘리베이터 안쪽 상반신은 엘레베이터 바깥에 내놓은 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널부러진 사내를 뒤로하곤 유천은 다시 계단으로 이동했다.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엘리베이터고 뭐고 타는거였어."
걸어서 10층을 넘기자 슬슬 저려오는 다리를 툭툭 치며 유천이 작게 투덜거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유천의 다리는 꾸준히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최상층의 바로 아래인 13층의 VVIP 병실 앞에서 유천이 멈칫했다. 병실 안에서 새어 나오는 대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발소리가 나지 않게 유천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곧 들려오는 소피아의 웃음소리에 긴장이 풀린듯 허탈하게 웃으며 유천은 문을 열었다.
"그래서 내가 어쨌냐면 말이지……."
후줄근하고 군데군데 찢어진 것을 기우기까지 한 낡은 양복을 입은 흰머리 가득한 남자의 뒷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뒤이어 침대에 기대어 앉은 소피아와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정현까지 차례대로 유천의 눈에 들어왔다.
"누구야?"
"글쎄, 묻고있는 본인이 더 잘 알지 않을까."
고개를 까딱거리며 남자를 가리킨 유천이 정현에게 물었지만 잠에서 막 깬 듯이 눈에 낀 눈꼽을 떼어내며 중얼거렸다. 정현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 채 소피아와 대화를 나누는 사내만 바라보자, 유천의 시선을 느낀듯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
고개를 돌린 남자의 얼굴을 본 유천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할 말을 찾는 듯 골똘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남자 또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되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닮긴 닮았네."
두 눈을 감고서 할 말을 생각하는 두 남자를 보며 정현이 피식 웃고는 중얼거렸다. 날카로울 정도로 날이 선 턱선과 오똑한 콧날,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입술과 사람 수십 수백은 잡아먹은 듯한 성격까지. 그 중에서도 가장 닮은 것은 사람을 깔보는 듯한 오만한 시선이었다.
"혹시, 나 알아요?"
한참을 고민하던 유천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소피아와 정현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해서 나온 말이 고작 그거라니.
"요새 한창 뉴스며 신문이며 계속 오르내리는 이름이랑 얼굴 하나 모르면 이 눈은 장식이란 소리겠지."
묘하게 실망스러운 어투로 투덜거리는 사내를 보며 유천은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소피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밑에 너희 찾아온 녀석들이 깔렸는데 움직일 수 있겠어?"
굳이 면식도 없는 사내를 위해 허비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유천은 언제라도 나갈 준비를 하듯 문을 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대로 움직이는 건 무리야."
유천의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정현이 대답했다. 한쪽 다리의 근육이 완전히 끊어져 두 발로 서는 것 조차 불가능한 소피아를 데리고는 얼마 가지도 못해 잡힐거라고, 차라리 농성을 하는 편이 더 안전할 거라며 정현은 유천의 뒤에서 설득을 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총들고 있는 놈만 스물이 넘어, 농성은 개뿔, 문 밖에서 총 좀 갈겨대면 게임 끝이지."
정현의 말을 듣자마자 유천은 곧장 대꾸했다. 지금은 혹시나 하는 가능성에 기댈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현실적이고 안전한 대책을 구해야 했으니까. 그러나 그마저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혀를 끌끌 차던 유천이 제 등에 소피아를 업은 것이 그 이유였다. 곧이어 담요를 가늘게 찢어제 제 몸과 소피아의 몸을 꽁꽁 묶고는 서둘러 문을 나섰다.
"아까 저 밑에서 한 놈 기절시켜놓고 왔어. 봤다면 얼마 안가서 여기까지 오겠지. 얼른 도망칠 준비나 해."
경찰이랑 구급차 부르는 거 잊지 말고. 휴대전화를 챙기는 정현을 향해 말 몇마디를 당부하던 유천은 곧장 계단을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엘레베이터는 손수 움직이지 못하게끔 손을 써뒀으니 당분간은 엘레베이터는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서둘러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유천의 뒤를 정현이 쫓았다. 혼자 병실 안에 남은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유천이 앉아있던 테이블의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꺼낸 차가운 금속의 느낌을 여지없이 느끼며 병실을 나섰다.
"너희는 저 쪽으로 가라."
그리고는 유천과 정현을 일방적으로 수술동 쪽으로 밀어내며 남자가 말했다. 유천이 그게 무슨 말이냐며 따지려 들었지만, 이어진 남자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어른이 말하면 좀 들어. 너희를 찾아왔다는 그 놈들은 내가 유인해줄테니까."
"웃기는 소리 하네. 그 놈들이 어떤 놈들인줄 알고 유인을 해?. 아저씨 죽고 싶어요?"
"야야, 진정해. 아저씨도 굳이 무리해서 그런 일 하지 말고 저희랑 같이 가요. 이렇게 보여도 저랑 이 녀석 힘 좀 세니까 밑에 녀석들 몇 정도는 뚫고 갈 수 있어요."
대놓고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유천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남자가 다시금 유천과 정현을 밀려 들자, 유천이 그 팔을 쳐냈고 그런 유천과 남자를 정현이 말리며 한 방향으로 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너희가 그쪽으로 가지 않겠다면 내가 이쪽으로 가겠다며 수술동 방향으로 향했다.
"뭐야, 지가 뭔데 사람 말을 다 무시하고 지랄이야."
"진정해 임마. 일단 여기서 나가는 게 먼저야."
남자가 향한 방향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며 들으라는 듯 지껄여댄 유천이 씩씩거리며 계단을 마저 내려가자 정현이 유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저 남자가 누군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라고 여기서 나가면 말해주리라 다짐을 하며 유천을 앞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일단 저기 9층 계단 바로 앞에 둘, 그 맞은편에 있는 카운터에 셋이 있어. 나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 다른 층에……."
타앙-
먼저 계단을 내려가 계단 아래의 상황을 눈으로 잠시 훑어본 정현이 계단을 올라와 밑의 상황을 알려주는 도중, 굉음에 가까운 총성이 병원 전체에 울려퍼졌다. 이어서 두 번, 세 번 들려오는 총성과 누군가의 발소리에 유천과 유천에게 업힌 소피아 그리고 정현은 복도 쪽에서는 보이지 않을 카운터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 숨었다.
"저쪽이다. 수술동 쪽에서 소리가 났어."
"그런데 무전으로는 우리 중엔 아무도 총을 쐈다는 녀석이 없는데. 누구지?"
"누구겠냐, 아까 하나 훔쳐간 신 유천 그 새끼겠지."
밑 층에서 올라온 사내들과 위층에서 유천과 정현이 따돌리고 온 사내들이 카운터 테이블을 지나치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엿들은 정현이 다행히 저쪽으로 저 놈들이 몰려서 쉽게 빠져나가겠다는 말을 하자마자 유천이 작게 중얼거렸다.
"하나 더 있어."
"무슨 소리야?"
"총, 하나 더 있었다고."
그 멍청한 인간이! 금새라도 그 자리에서 튀어나갈 것만 같은 유천의 머리를 누르며 정현이 되물었다. 유천이 이를 갈며 말한 한마디에 정현이 되려 놀라 유천에게 물었다. 그 총이 어디서 났냐면서.
"그 때 탈출하면서 하나 쟁여뒀지. 할아버지가 손을 쓴 건지, 그 때 얘랑 니들 아버지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검사도 안하길래 챙겨뒀다가 너희 병실 안에 넣어뒀어. 서랍 안쪽에."
이를 갈며 설명을 마친 유천은 얼른 저 놈들을 잡아야한다며 몸을 일으켰다. 저 밑에서는 아직 놈들이 인질극을 벌이며 한명도 죽이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거기다 지금은 유천이 놈들의 신경을 박박 긁고 온 덕에 보자마자 총을 쏴버릴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얘는 니가 데리고 나가. 총소리가 들렸는데 거기 나까지 있으면 좋다고 더 달려들겠지."
"야, 야!"
"진정하고 같이 나가자. 응?"
유천이 결국 안되겠다며 자신과 소피아를 묶고 있던 담요를 풀고서, 정현에게 소피아를 넘겨주자마자 정현과 그동안 잠잠히 있었던 소피아까지 유천을 불렀지만 벌써 유천은 카운터 테이블을 넘어가 저 앞의 사내들 중 하나를 잡아챘다.
"너희들은 거기 넘어가기 전에 나랑 좀 같이 놀아야겠는데. 불만 없지?"
잡아챈 사내를 그대로 뒤로 집어던진 유천이 어깨를 으쓱하며 내뱉은 말에 나머지 사내들은 뒤도 볼 것 없이 유천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사내 한명의 목덜미를 팔꿈치로 찍어버린 유천은 그 사내의 멱살을 쥐고서 달려드는 나머지 사내에게 들이밀었다. 사내들이 잠깐 멈칫 하는 사이 멱살을 쥔 사내를 그대로 밀고나가자 뒤로 엎어지는 사내들을 밟고서 유천은 수술동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잘 따라와. 중간에 병신처럼 나가 떨어지지 말고."
멱살을 쥔 사내를 아무렇게나 내팽겨친 유천이 그 사내의 머리를 발로 후려차고서 그 자리를 뜨자마자 사내들은 무전을 날리며 유천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카운터 테이블 위로 머리만 빼꼼 내밀고 쳐다보던 정현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부자지간이라는 게 저렇게 똑같냐."
============================ 작품 후기 ============================
에...죄송합니다! 곧 돌아온다고 생존신고까지 띄워놓고 너무 늦게와서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