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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Doe
"이걸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재욱은 방금 전에 만난 오랜 친구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유천과 관계가 있다면 그만큼 관계가 깊은 사람도 찾기 어려울텐데 막상 말을 꺼내자니, 그만큼 말하기 껄끄러운 대상도 없었던 탓이었다. 한참을 말해야 될지, 말하지 말지를 고민하는 재욱의 밤은 길기만 했다.
* * *
"아, 내일도 학교 가야되나."
어떻게 빠질 방법은 없나? 채린이 올라가자마자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학교에 어떻게 빠지면 잘 빠졌다고 소문이 날 지에 대해 고찰을 시작했다. 그러나 별다른 묘책은 생각나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시간만 축내며 멍하니 틀어져 있는 텔레비젼의 화면만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철컥-
"아, 이제왔……?"
그리고 멍하니 시간만 축이고 있을 때, 한줄기 빛마냥 들려온 문소리에 고개를 돌린 채 제 동생을 반길 준비를 하던 유천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늘은 어떻게 놀았다며 자랑하고 있는 유정이 아니라 채린이었다.
"유정이가 안 들여보내줘."
[좋은 시간 보내~ -유정]
채린이 울상을 지으며 변명하듯 웅얼거림과 동시에 유천의 손에 들려있던 휴대전화의 액정에 떠오른 문구는 유천에게 있어 황당한 기분이었다. 자신의 무엇을 믿고 채린을 보냈다는 것인가, 더군다나 이 야심한 밤에? 한창 때의 청춘남녀를 한 집에 몰아넣은 유정의 속을 알 수가 없던 유천은 채린을 집 안으로 들이면서도 계속해서 머릿 속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뭐라도 마실래?"
"아, 아무거나 줘."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주인이 손님에게 마실 것을 권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 게 아니였다. 유천은 여전히 소파 위에서 뒹굴고 있었고, 채린이 핫초코를 타서 마실것을 찾아 유천에게 내민 것만 보더라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근데, 누가 보면 내가 집주인이고, 네가 손님처럼 보이겠다."
"내집이고 누나집이고 무슨 상관이야? 다 누나껀데."
채린이 건네주는 핫초코를 받고서 능글맞은 표정으로 히죽이며 유천이 말하자 채린이 금새 유천의 말뜻을 깨닫고선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며 연신 키득이던 유천이 입을 열었다.
"얼굴은 또 왜 그렇게 빨개? 틀린 말 한것도 아닌데, 열이라도 있어?"
채린의 얼굴이 빨갛게 변하던 것이 절정에 이르른 것은 계속해서 키득거리던 유천이 열이 있냐며 채린의 이마에 손을 얹었을 때였다. 그 모습에 또 한번 유천이 웃으며 손을 데이겠다며 바로 떼며 장난을 치자 채린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너 자꾸 장난 칠래?"
"누나는 겨울에 손난로가 필요 없겠다. 그렇지?"
유천이 계속 장난을 치자 화가 나도 제대로 난 듯 씩씩거리며 채린이 외쳤지만 유천은 계속 장난을 치며 채린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가 뗐다를 반복하며 채린을 약올릴 뿐이었다.
"너 진짜!"
"고마워."
자신의 이마에 닿은 손을 거칠게 쳐내며 채린이 외치자, 유천은 채린을 와락 껴안으며 귓가에 읊조리자 안그래도 시뻘건 얼굴이 더 붉어진 채린이 유천의 등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놓으라고 외쳤지만 유천은 그저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뭐가 그렇게 고마운건데?"
결국 유천을 떼어놓기를 포기한 채린이 유천에게 물었다. 여전히 채린을 껴안은 채로 유천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솔직하게 대해주는 것도, 내 장난에 화내는 것도, 날 기다려준 것도, 그냥 모두 다 고마워서."
채린은 유천의 말을 듣고서 곰곰히 생각했다. 자신 또한 연예계에서 종사를 하며 겉과 속이 다른 이들을 숱하게 만나왔지만, 유천의 경우는 어릴적부터 뒷배경을 보고 접근한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을 것이었다. 지나친 장난을 받고도 허허웃으며 잘했다는 듯 박수마저 치는 모습에 진저리를 치는 유천을 생각하자 채린은 기분이 점점 착잡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뒤이어 채린은 잠시 멍하니 자신을 안고있는 유천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자신을 강하게 껴안고는 있지만 처음 보는 약한 모습이었다. 언제나 모두를 이끌며 웃으며 장난치던 유천도, 개구진 표정을 짓고서 분명 잘못한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뭘 잘못했는 지 모르겠다는 뻔뻔한 태도도 아닌 약한 모습에 채린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잠시만 이러고 있자. 내가 어지러워서 그래."
유천의 약한 모습을 보고서 놀란 채린의 표정을 잘못 받아들인 유천이 미안하다며 채린을 안고 있던 팔을 풀자, 채린이 되려 유천을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아까 전에는 유천이 허리를 굽혀 채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면 이번엔 채린이 유천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서 중얼거렸다.
[근데, 유천이 여자 많이 만났었어?]
[아니, 언니가 처음일건데? 우리 오빠가 허세만 그렇지 막상 진짜 작정하고 달려들면 얼마나 당황하는데.]
하필이면 왜 이때 유정과 나눴었던 대화가 떠오르는 건지, 채린이 잠시 얼굴을 붉히더니, 그대로 까치발을 들더니 유천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췄다. 순식간에 얼굴이 빨갛게 변한 유천이 뒷걸음을 쳤지만 자신의 목 뒤로 팔을 뻗어 붙잡는 채린 덕에 그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으읍!"
이젠 될 대로 되라는 듯 채린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여기서 유천을 풀어주고 도중에 끊어지면 키스는 안한것마냥 못한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싫어서라도 채린은 붙잡은 유천의 뒷목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물론 눈을 크게 뜬 유천은 그런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이젠 나도 몰라!'
그저 유천과 같이 눈을 크게 뜨고서 유천의 눈을 마주 쳐다보던 채린은 계속해서 자신을 밀어내는 유천을 벽으로 밀치며 눈을 질끈 감고는 입을 벌렸다. 뒤이어 벌린 입에서 나온 혀는 유천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가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그리고 저항하기를 포기한 유천은 순순히 자신을 끌어안는 채린을 마주 끌어안고서 자신 또한 입을 벌려 혀를 내밀곤 다가오는 채린의 혀를 열렬하게 반겼다. 그리고는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으로 움직였다. 그렇다고 둘의 입술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곧 둘이 유천의 방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 * *
"아으으……허리야."
해가 뜨고 창문을 통해 햇살이 자신의 눈가를 비추자, 유천이 제 허리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묘하게 자신의 다리 위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살결을 느끼며 옆을 바라봤다. 새하얀 어깨를 타고 내려가 봉긋 솟아오른 언덕을 가린 이불. 채린의 알몸을 간신히 가린 이불을 보며 유천은 어젯밤을 떠올렸다. 둘 모두 제정신이었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다. 분위기를 잘못타도 단단히 잘못 탔다.
"으응……."
그리고 유천은 자신이 일어남으로써 제 쪽으로 딸려온 이불을 잡아 끌며 신음성을 흘리는 채린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어찌된 일이건 벌써 일어난 일이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일어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채린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아으……."
그리고 유천은 곧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전날 밤 아무리 적나라하게 봤다지만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몸을 뒤틀다 통증이라도 느껴지는 듯 신음을 흐리는 채린을 보며 유천은 얼굴을 붉혔다.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입술은 어젯밤 달뜬 신음을 뱉으며 달빛에 반사되어 빛나던 것이 기억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살아있는 번뇌가 있다면 바로 이곳이리라, 유천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완전히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왔다. 근처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자신과 채린의 겉옷과 속옷을 보며다시 한번 침을 삼킨 유천은 급히 제 속옷을 챙겨 입고는 옷장에서 속옷과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AM/11:48]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시계를 확인한 유천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지각이다. 지각을 해도 한참을 지각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유천은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며 샤워를 시작했다. 어차피 지각은 정해진 것, 유천의 손길은 그 이상 여유로울 수 없을만큼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이게 바로 유급의 패기지."
유급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 아무도 듣지 않을터인데 혼자 중얼거리며 유천은 샤워를 계속했다. 그리고 오늘은 자신이 미리 손을 써 두었으니 학교에 나올 필요 없다는 유정의 문자를 확인한 것은 샤워가 끝난 약 이십분 뒤의 일이었다.
"게임이나 할까."
할 일이 없으니 게임이나 할까 고민하던 유천의 시선은 곧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곧이어 유천의 입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미친 소리냐며 믿지도 않을 소리가 유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게임 폐인도 아니고, 대낮부터 게임을 할 필요가 있을까?"
============================ 작품 후기 ============================
그날 밤 일어난 일을 너희는 아직 모르고 있다.
2014년 갑오년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특히 덱스트린님을 비롯해 매번 코멘 남겨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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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Raccoon//다음 첫코도 잘 노려보세요 ㅋㅋ
researchers//코멘트 감사합니다
불행마스터리//코멘트 감사합니다
hjlee227//코멘트 감사합니다
덱스트린//네, 그 비빔밥입니다 ㄲㄲ
심심판타지//그르냐 6코는 아니고?
TetsuRyu//올 럭키 7
적현월//와오, 중3 때 이걸 쓰려고 한 날 저주하고 싶네요
인간님//보통 새벽 2시면 다들 놀고 있을 때 아닌가요? ㅋㅋ
제이스 올드윈//원해요?
킴치맨//그의 시각은 훌륭한 시각이었습니다
youngjoon12//꺼졍
은or//맛있는 비빔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