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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신유천씨, 혹시 지금 만나러 가신다는 여자분이 혹시 탤런트 채린양인가요?"
이게 몇번째야. 귀찮은 날파리 같은 새끼들이. 유천은 다시 한번 제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네는 기자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와는 달리 그게 무슨소리냐며 오히려 되묻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제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기자들을 보면서도 여유롭게 집어온 음식을 먹는 태도를 보자 기자들 역시 군침을 삼키며 유천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러다 빌린 시간 지나고 후회하셔도 저는 모릅니다."
유천의 한마디는 결정적이었다. 지금 유천이 빌린 이 호텔의 뷔페도 웬만한 중산층은 입장도 도중에 거절당할 수준 높은 뷔페였다. 심지어 그런 뷔페를 일시적이나마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과, 그것을 이용한 유천은 아무런 악의 없이, 입을 열었다. 물론 그런다고 오늘 하루동안 전세를 놔버린 이 뷔페를 밤새 이용할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다.
"신유천씨, 전 추가로 질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래도 될까요?"
어느새 유천의 뒤로 다가와 유천의 어깨를 지긋이 누르며 유천의 의사를 물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희선이었다. 은근히 힘을 줘 쥐어잡고서 누르고 있는 듯, 유천은 손톱이 제 어깨를 강하게 파고드는 느낌을 받으며 그 손을 약간의 힘을 줘 떨치고는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기자회견은 이미 끝났습니다 기자님."
그러나 유천이 채 입을 열기도 전에 나잉여가 다가와 희선에게 충고라도 하듯 말했다. 순식간에 말을 끊겨버린 유천은 벙찐 표정을, 졸지에 지적을 받은 학생 꼴이 된 희선은 얼굴이 붉어져 자리를 재빨리 벗어났다.
"이거야 원, 여우를 피하자고 범굴에 들어온 것 같은데요."
유천이 애써 웃음을 보이며 말을 비꼬았다. 아까 전 사과를 받기는 했지만, 아직 찝찝한 것은 그대로였다. 자신이 자작극을 벌였다고 한 것은 물론이고, 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피땀이 만들어낸 회사를 있지도 않은 사실을 적나라하게 세상에 까발린 것은 저 여자였으니 말이다. 시선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간 그런 기사를 올려서 죄송하다는 말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유천의 비꼼에 오히려 사과를 건네는 나잉여를 보며 유천은 당황했다. 이 여자, 사과를 하고 다닐법한 사람은 아닌데 오늘 벌써 두번이나 사과를 받았다. 뭘 원하는 거지? 유천은 제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지만 돌아오는 말에 오히려 멍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여자친구분이 요새 잘 나가셔서 기분 좋으시겠어요."
"……."
설마 이 대화 중에 그런 말을 꺼내는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당황한 유천을 향해 나잉여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아마 대한민국에 저처럼 국정원 심문실 구석구석을 다녀본 사람도 얼마 없을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유천은 그제서야 대충 그럴싸한 상황이 이해가 갔다. 유니온의 회장, 이미 정계에도 발을 걸친 그는 넓은 범위에 그 인맥을 자랑하며 그 관계도 두터웠다. 심지어 자신을 구하러 올 때는 국정원에서 특수요원조차 보낼 정도였으니 말은 필요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자신과 함께 매도한다면? 회장이 뭐라 하기 전에 국정원이 움직인다는 사실 정도는 얼마 못가 예상할 수 있었다. 아마 정신교육을 제대로 받고 왔으리라. 유천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이번에 같이온 친구 놈도 아마 구석구석을 다녔을 것 같은데요.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아무렴요. 앞으로는 평생 전같은 기사는 꿈도 못 꾸게 됬는데요."
유천의 약간의 농담에 한숨을 내쉬며 그에 응하는 나잉여. 얼마 전까지 자신에 대해 험담을 써내렸던 기자라 보기엔 너무 축 쳐져있는듯한 느낌에 유천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런 유천을 향해 나잉여가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네."
보통 이런자리에서도 사업적인 인식이 강한 만큼, 이런 자리에서 기자 몇명쯤 알아둬서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의 유천은 그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정원의 주시대상이 된 나잉여는 앞으로 자신은 물론이고 할아버지의 회사와 유니온의 회장에 대한 티끌만한 악담이라도 써내려갔다간 다시 정신교육을 받으러 갈 테니 좋은 대상이었다.
"이제 무슨 용건으로 나한테 왓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이희선 기자님?"
"글쎄,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유천은 악수를 마치고 음식을 집기 위해 나잉여가 자리를 뜨자마자 뒤를 돌아보며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곳에선 이희선이 식기로 각 테이블에 놓여있던 것이 분명한 나이프를 던졌다가 받으며 대답을 했다. 그리고 유천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는데요."
"그래요? 그럼 생각나게 해줘야 될 것 같은데."
유천의 장난스런 기색이 다분한 말투에 살짝 발끈한 것인지 유천의 어깨에 또 손을 얹고서 슬쩍 밀며 대답했다. 워낙에 기자들이 몰려있던 탓에 구석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려던 유천은 졸지에 여자에게 밀려 벽에 등을 맞댄 남자 1호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서로 친목을 다지거나 서로 취재한 내용을 살펴보던 기자들은 유천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대부분의 남자 기자들이 정장을 입고 있었으니 더더욱 구별이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이제 생각이 좀 나?"
"글쎄, 이런 꼴로 있다가 걸리면 나 혼자 뭐 되는 상황인 건 잘 알겠는데."
벽에 유천을 밀어 붙이고서 고개마저 들이밀며 말하는 희선을 보며 유천은 능글맞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런 유천도 조금씩 스트레스는 받고 있었다. 원래 이 회견도 홧김에 잡은 터라 좋지도 않았는데 받은 질문도 모두 짜증나는 것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 이렇게 화를 돋우는 상대까지 나타난 참에 유천은 슬슬 꼭지가 돌아버릴 참이었다.
"따라 와. 뒤지기 싫으면."
그러나 먼저 꼭지가 돌아버린 쪽은 유천이 아니였다. 유천의 한쪽 어깨에 들고 있던 식기용 나이프를 들이밀며 경고를 하며 먼저 앞으로 나서는 희선을 보며 유천은 한쪽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팍-
"뒤지고 싶냐? 얼른 오라고 굼뱅이 새꺄."
웃기만 한채 오지도 않는 유천을 보며 나이프를 집어던지며 희선이 말했다. 나긋나긋하게 말했지만 유천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자신이 서 있는 벽에 단단히 틀어박힌 나이프는 뽑으려면 꽤 힘이 들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유천은 천천히 거리를 두고 희선을 따라 나섰다.
"응? 어디가냐."
그리고 유천과 비슷한 이유로 근처 구석에서 초밥을 집어먹던 아버지를 툭 치며 유천은 먼저 간 희선을 쫓았고, 재욱 또한 그런 유천을 보며 한숨을 내쉬며 쥐고 있던 젓가락 끝에 있는 초밥을 아쉬운 눈길로 바라보며 내려놨다. 그리고 결국 유천을 이끌고서 희선이 향한 곳은 건물의 옥상이었다. 피식 웃으며 유천이 그럼 그렇지 하고 중얼거리다 찌그러진 철문을 보고 움찔한 것은 그 후에 일어난 사소한 일이었다.
"얼른 말해. 아버지는 어디 계시지?"
"미친년, 성질이 그리 급해서 어디 쓰게?"
그리고 유천이 옥상에 들어오며 그 찌그러진 문을 닫자마자 희선은 유천을 문에 몰아붙이며 말을 꺼냈다. 그런다고 유천이 말을 곱게 쓸리는 없었다. 당연히 쌓인 게 있는만큼 유천은 되려 희선을 밀치며 투덜거렸다.
"말 안하면, 너는 오늘 여기서 죽어. 겨우 살아서 돌아온 주제에 벌써 죽고 싶지는 않겠지?"
"아니지, 거기서 나한테 얼굴도 비추지 않은 주제에 그런 소리를 지껄일 주제가 안돼지 너는. 여기서 남아있는 그 새끼들이 어디 있는지 말 안하면, 넌 오늘 여기서 죽어."
자신만만하게 유천의 멱살을 잡으며 으르렁거리는 희선을 보며 유천은 피식 웃으며 그런 희선의 옆구리에 주먹 한방을 먹이곤 여전히 버티고 있는 희선의 배를 발로 걷어차버리는 유천이었다.
"아오, 내가 이래서 정장을 싫어해. 더럽게 낀다니까."
역시 주먹보다는 발이 센 덕에 배를 부여잡고 있는 희선을 보며 유천은 자신이 입고있는 정장을 투덜거릴 뿐이었다. 그리고는 아직까지 끼고 있는 이어폰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네가 굳이 말 안해도, 그 새끼들 숨어있는 곳 말해줄 녀석은 있어. 야 씨팔. 그 쥐새끼들 어디 숨어 있어?"
"뭐, 뭐?"
솔직하게 말한다면 유천은 지금 숨어 있을 그 둘은 건드리기 싫었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귀찮았다. 얌전히 숨어 있기만 한다면 자신에게 올 피해도 없었고, 이득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 상황에 오히려 귀찮기만 하니 잡을 이유가 없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도발을 한다면 '나 잡아줍쇼.'하는 상황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어차피 씨팔이 있는 이상, 전자기기가 있는 곳에서 놈들은 죽어도 유천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네가 날 씨팔이라 불러서 해주기 싫은데. 뭐, 원래도 해줄 생각은 해본적도 없었지만]
"아, 씨발."
-[아, 개같은 새끼야! 그렇게 부르지 좀 말라고!"
유천의 말을 듣고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희선을 뒤로하고, 유천은 씨팔의 대답을 들으며 욕을 지껄일 수 밖에 없었다. 그 말에 씨팔은 자신을 부른 것이라 착각을 하고서 또 유천을 향해 외쳤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런다고 유천이 그렇게 부르지 않을 놈도 아닌것을.
============================ 작품 후기 ============================
고로, 넌 씨팔이다. 어제 가답안 체크. 35/60. 1문제로 불합격입니다. 슈밤바 이제 이불에 고개 쳐박고 울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