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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특집
“오빠 일어나 봐. 추석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잘 거야?”
유천은 오랜만에 누군가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오랜만에 보는 듯한 유정의 얼굴이었다. 눈을 떠 끔뻑끔뻑거리는 유천의 눈을 향해 주저 없이 손가락을 찔러 넣은 유정은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유천을 쏘아보더니 방을 나갔다.
“으아아악!”
뒤이어 유천의 비명이 방 안을 가득 채우자, 채린과 유천의 부모님, 재민이 함께 방 안에 들어왔다가 자신의 눈을 부여잡고서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유천을 보며 하나같이 한숨을 내쉬곤 방 밖으로 나갔다.
“엄마, 아빠는 왜 또 저러고 있어?”
“잠을 너무 많이 자서.”
“아하, 그렇구나.”
그리고 유천은 또 한번 충격에 빠졌다. 어떻게 저 한 마디에 제 아들이라는 녀석은 그토록 쉽게 믿으며 고개를 끄덕인단 말인가. 단지 오늘 늦게까지 잔 이유는, 오늘부터 추석이란 이유로 자신을 늦게까지 야근을 시켰던 씹어 먹어도 모자랄 자신의 사촌 형이 아니던가. 유천은 속으로 열심히 사촌 형인 시우를 까며 시계를 바라봤다.
“이제 겨우 4시인데, 뭘 깨워…….”
유천이 투덜거리며 다시 침대에 누워 버리려 하자, 다시 방으로 들어온 유천의 아버지가 유천의 머리맡에 있는 커튼을 걷어버리며 말했다.
“에이, 멍청한 자식아. 두꺼운 커튼을 쳐두고 제 시간을 알아 보기나 하겠냐?”
유천은 아까 전 유정이 찌른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햇살마저 제 눈을 찌르자 절로 고개를 돌리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해를 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새벽 4시가 아니라, 해가 쨍쨍하다 못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 오후 4시란 걸 말이다. 투덜거리며 완전히 떠버린 제 머리카락을 긁적거리며 방 밖으로 나갔다.
“씻고 나와.”
그러나 그런 시도도 문 앞에서 대기라도 타고 있던 것 마냥 방 밖으로 나오자마자 유천의 얼굴에 수건을 명중시킨 유정이 말했다. 묘하게 얼굴마저 붉어진 것이 분명 자신을 창피해 하는 것이 분명했다. 오늘만큼은 모든 친지가 모여 있는 본가에서 이런 추태를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유천 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여, 동생. 이제 일어났어?”
정정하겠다. 한 명이 더 있었다. 자신에게 살인적인 양의 업무를 맡기며(그 중 대부분은 자신의 업무였다.) 자신은 컴퓨터로 게임이나 하다가 유천과 함께 퇴근해 본가로 같이 온 시우가 마찬가지로 붕 뜬 머리를 한 채 자신의 배를 긁적거리며 다른 손으로 유천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그를 보며 유천은 잠깐 주위를 기웃거렸다.
“엿먹어.”
주위에 재민이 없는 것을 확인한 유천은 주저 없이 시우의 낯짝 앞에 가운데 손가락을 들이밀며 말했다. 아침부터 눈을 찔리게 만든 주제에 자신에게 태평하게 인사를 건네다니, 분명 저 놈은 정신이 나간 것이 틀림이 없다며 유천은 근처에 있는 욕실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밖에서 시우가 들어오려 했지만 유천은 자물쇠를 걸어버리는 것으로 그 시도를 차단했다.
“기다리기나 해.”
투덜거리며 유천은 천천히 입고 있던 옷을 벗고는 샤워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따뜻한 물으로 미적지근 하게 씻는 취미 따위는 없는 유천은 주저 없이 냉수마찰을 시작했고, 오래가지 않아 머리까지 감고는 대충 물기를 닦아내곤 근처에 있는 새 옷을 주워 입었다. 분명 어제 채린이 넣어둔 것이 분명했다. 유천의 기상 패턴은 언제나 일정했으니 말이다.
“엄마가 전 부치래.”
욕실에서 나와 먹을 것을 찾아 어슬렁거리며 부엌을 향한 유천에게 유정이 부침개를 내밀며 말했다. 주위에 많은 사촌과 고모들이 자신을 보지도 않고서 제 앞의 전을 뒤집는 것을 보며 유천은 부침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주인님께서 저에게 부침개를 주셨어요! 전 이제 자유의 몸이에요!”
마치 어딘가의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집요정의 대사를 읊으며 현관으로 달려가는 유천을 보며 유정은 잠시 멍하니 유천을 바라봤다. 곧 사촌들의 사이에서 시작해 어른들까지 폭소를 터트리는 것을 보며 유정은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며 유천에게 달려가 유천의 뒷덜미를 움켜쥐고서 다시 부엌으로 끌고 왔다.
“젠장. 또 잡혔나.”
“질리지도 않아? 벌써 그 대사만 열 번은 더 들었을 거야. 지긋지긋하다고.”
유천이 프라이팬 앞에 서서 투덜거리자 유천의 뒤에서 마찬가지로 전을 부치던 유정이 대답했다. 솔직히 유천의 그 대사는 매년 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나오던 대사였다. 인원수가 많다 보니 남자들까지 거들어 전을 부치거나 요리를 했는데, 그때마다 유천은 도망치며 저따위의 대사를 읊조렸던 것이었다.
“이번에는 될 줄 알았지.”
진지한 표정으로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는 유천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유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찌된 노릇인지 제 오빠라는 인간은 해가 넘어갈수록 정신연령이 어려지고 있는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회사에서는 일 처리 능력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게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회사 내에서는 일하는 기계라는 별명까지 얻었을까. 유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막 결혼한 신부가 벌써 한숨을 팍팍 쉬냐, 강혁 그 새끼 모가지를 따고 올까?”
그리고 그 한숨을 푹푹 내쉬는 유정을 보며 유천이 입을 열었다. 강혁이란 놈은 제 신부를 두고서 급한 일이 생겼다는 이유로 해이 출장까지 나가있었기에 유천에게 모가지를 따일 일은 없겠지만 지금도 유천의 눈에서 불타고 있는 외출을 향한 갈망을 보며 유정은 주저 없이 들고 있던 부침개로 유천의 뒤통수를 찍었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싶다고 해. 남의 신랑 함부로 모가지 따네 마네 하지 말고.”
“들켰냐?”
그 정도는 아프지도 않다는 것인지, 유정의 꾸짖음에 그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하는 유천을 보며 유정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자신의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유천은 제 할당량을 채우고선 후다닥 겉옷을 챙겨선 부엌 근처의 의자 위에 던져두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조작을 시작했다.
-전화 왔다. 전화 받아라. 전화 왔다. 전화 받아라.
곧 자신의 휴대전화가 진동과 함께 소리를 힘껏 울리기 시작하자 유천은 괜히 과장된 몸짓으로 전화를 받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평일에도 바쁜 사람이 어떻게 추석에 전화를?”
그렇게 말하며 겉옷을 챙기고는 잠깐 나갔다가 오겠다는 손짓을 하며 나가는 유천을 보며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함부로 유천을 잡을 생각을 못 했다. 우선 유천의 일이기에 끼어들 수도 없었고, 그 규모도 남달랐고, 저게 저 혼자 꾸민 사기극이면 끼어든 사람만 손해다. 그 자리에 있던 그 어떤 사람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저마다 한숨만이 조금씩 늘었을 뿐이었다.
“나갈 거면 좀 더 하고 나가지…….”
유천보다 세 살이 어린 사촌 여동생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유천의 남은 사촌 동생과 누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동조했다. 진짜 일을 나간 거라면 한 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을 테지만 아직 부쳐야 할 전은 한참 남았고, 전만으로 끝나는 게 추석 차례상의 전부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 어디서 시간이나 때워 볼까?”
그리고 본가에서 밖으로 나온 유천은 휴대전화를 다시 한번 조작하고는 중얼거렸다. 약 5분쯤 뒤에 알람이 울리게끔 해놓고선 전화가 왔다고 사기극을 펼치고 나온 것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유천의 눈에 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PC방]
캡슐과 함께 가상현실 게임이 보급되기는 했지만 워낙 가격이 비싸고, 뇌 자체가 가상현실 게임을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에 컴퓨터 게임도 종종 개발되어 신작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지금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했다가는 안에 있는 두 녀석이 채린에게 무슨 말을 전할 지 모르니, 유천은 안전을 위해 PC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 이거 오랜만에 보는데?”
자리를 잡고 앉아 컴퓨터를 실행하자마자 중얼거리며 유천은 게임을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물컵까지 가져와 물을 벌컥벌컥 들이 마시던 유천의 휴대전화가 진동을 울리기 시작했따.
[아들, 통화 가능하냐?]
아버지의 문자였다. 유천은 재빨리 휴대전화의 키패드를 두들겼다.
[전 부치는 중이라 안돼요..]
[전 부치는 데 왜 통화가 안되냐?]
[전 부치는 중이니까요.]
[그럼 문자는 왜 되는데?]
[방금 막 있던 거 다 구웠거든요, 이제 새 거 들어오니까 문자도 못해요.]
[그럼 전화는 되냐?]
[안 된다니까요.]
수도 없이 문자가 오고 가는 가운데, 유천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러다 시간 다 가겠네.’ 작게 중얼거리며 물을 마시던 유천의 휴대전화가 다시 한번 진동을 울렸다.
[그럼 PC방 27번 흡연석에 앉아서 물 들이키는 놈은 누구냐?]
유천은 화들짝 놀라 자신의 자리 번호를 확인했다. 27번이었다. 유천이 아니라고 문자를 보내자, 답장이 날아오는 데는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 자식이 어디서 수작질이야?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어?]
답장을 확인한 유천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이 인간은 내가 뭐라고 답장할 지 이미 알고 있었다고. 유천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또 한번 휴대전화가 진동을 울렸다.
[네 뒤 옆자리. 39번 자리.]
답장을 본 유천이 그 자리를 보자, 이를 훤히 보이며 웃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가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유천이 다가가서 입을 열려 할 때, 유천의 아버지의 입이 먼저 열렸다.
“너, 전 부치던 건 어쩌고 PC방에 있냐?”
짐짓 엄하기까지 한 그 태도를 보며 유천은 금새 각을 잡고서 고개를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전 부치러 가겠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유천의 말에 유천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하듯이 말하던 아버지를 보며 유천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근데 아빠는 왜 여기 있어요? 아빠도 전 부쳐야 되지 않나? 할아버지랑 엄마는 알아요?”
“아들, 사랑한다. 요새 뭐 용돈 이라던지 부족하지는 않지?”
그리고 유천의 질문에 곧장 대답하는 제 아버지를 보며 유천은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리고 유천의 아버지는 주저 없이 그 손바닥을 마주치며 웃었다. 그야말로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격이었다.
============================ 작품 후기 ============================
배경은 10년 후 ㅇㅇ 이제 자러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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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현월//내 굴림의 패턴 속에 그런 심오한 뜻이 있었는 줄 오늘 처음 알았...조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밀리리오//부전자전ㅋㅋㅋㅋㅋㅋㅋ
BlackRaccoon//가진거라곤 신성제국 교황이라는 타이틀. ㅋ아, 랭킹 1위 타이틀 있구나
덱스트린//유천:여태까지 날 지켜봤던 고야? 유천 아빠:물논
researchers//짤막 등장이지만,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어 햄보칼듯
TimeWorker//조흔 아이디어를 주셔서 캄사합니다
당가//피는 안 이어진 주제에 성격은 빼다 박았
arcadia1019//네, 기분탓인듯여
인핀//성격은 대를 타고 내려온다는 전설.
카에린//잌ㅋㅋㅋㅋㅋ
불행마스터리//심오한 깨달음
가이오가//ㅋㅋ 코멘트 감사합니다
소마광랑//바퀴벌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린닼ㅋㅋ
킴치맨//유천:그러하다
심심판타지//글쎄 슬슬 막을 내릴 생각이라
RedDregon//잌ㅋㅋ 수고하셨습니다 ㅋㅋ
모두들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고요. 돈 많이많이 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