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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여긴 또 어디야?”
빛이 사라지고 난 뒤, 발록이 유천을 보며 질문했다. 난데 없이 튀어나와서는 처음 보는 숲 속으로 이동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천은 입고 있던 로브를 벗고 다른 색의 로브를 뒤집어 쓰고는 익숙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 어디냐고 묻잖아. 방금 사과 한번 했다고 끝난 것 같아? 정말이지 넌 발전이 없는 것 같아.”
“너한테 그런 소리 듣기는 싫은데. 어쨌든 여기는 내가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른 놈들한테 모습을 드러낸 곳 근처라고 보면 될 거야. 자세한 것까지 설명하려면 귀찮아지니까 넘어가고.”
이 근처를 온 적이 있는듯한 발록은 폴리모프를 사용해 모습을 바꾸고는 유천과 마찬가지로 로브를 뒤집어 쓰며 제 모습을 확인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만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듯한 상황에 발록이 유천을 보며 심술을 부렸지만, 유천은 간단히 설명을 하며 뒤집어 쓴 회색의 로브를 고쳐 쓰고는 근처의 커다란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근처에 사냥터가 있는 듯 많은 유저들이 갑작스레 바위 위로 나타난 유천을 살펴봤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서둘러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유천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곧 관심을 접고는 시야 한쪽으로 치워둔 시스템 콘솔을 제 눈 앞으로 끌어왔다.
[접속 완료.]
“오, 빠른데?”
-슈퍼 컴퓨터 무시하냐? 병신 같은 새꺄.
“하하, 고년 거 참 사막 한가운데 있다고 더위를 먹었나.”
유천이 콘솔 위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감탄사를 중얼거리자 곧 유천의 머리를 울리며 슬로스가 큰 소리로 유천의 말에 대꾸했다. 욕설 섞인 대꾸에 잠시 성질이 욱한 유천은 명백한 협박조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뒤로 슬로스의 대꾸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자 유천은 다시 콘솔에 신경을 돌렸다. 지금부터 하는 행위는 자칫 잘못했다가는 항상 시스템 메인 모니터를 제 방에 놓고서 시도 때도 없이 봐대는 그에게 들킬 가능성이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시아 서버, 강제 업데이트 시작. 유저 [데미안]을 비롯한 지정한 8개 계정의 한 달간 이용 정지. 시즌 2 히든 던전과 레이드 던전 구축 시작.”
유천이 중얼거린 말은 하나같이 다른 유저들이 들었다가는 경악을 금치 못할 소리들이었다. 한낱 유저로서 서버의 권한을 마음대로 다루는 듯한 그 모습은 운영자나 다름이 없어 보였으니까. 무엇보다 유천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업데이트였다. 자신이 테스터로 있으며 다음 시즌의 준비와 그 시스템이 있다는 것은 확인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이용해 업데이트를 가장, 그 후 한 달간 채린과 현성을 비롯해 제 친구들이 접속을 해서 괜한 추적을 피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회장이 준비한 장소에 다른 여가를 즐길만한 놀이거리가 없다면 그것조차 그들에게는 미안할 일이지만 목숨보다는 하등 소중할 것이 없으니 유천은 제 멋대로 일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제 눈 앞을 메우는 경고메시지를 보며 피식 웃은 유천은 제 뒤에 있는 발록과 라이헤르를 바라봤다.
“야, 어떻게 하지. 나 또 너희한테 미안한 일이 생겼는데.”
미안하다는 놈이 웃으며 말을 건넨다. 어이가 없어 유천을 노려보는 둘을 향해 유천은 핑계라도 대듯이 중얼거렸다. 저번에 보았던 그 신이라는 녀석이 부른다고. 슈퍼컴퓨터 슬로스의 이름을 팔자 흘겨보던 둘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며 유천은 떠올렸다. 아직 저 녀석들은 슬로스 그 녀석이 유천을 죽이려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는 것을.
“걱정 마. 안 죽어.”
유천은 피식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둘을 보며 혼자 대화라도 나누듯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제서야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리는 둘을 보며 유천은 등을 돌려 손을 흔들었다. 그제서야 유천의 행동을 보며 팔짱을 끼고 있던 두 팔을 풀며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고, 유천은 그 말을 들을 새도 없이 메시지와 함께 그 자리에서 빛과 함께 사라졌다.
[경고. 지금부터 5분 후, 아시아 서버의 시즌 2 업데이트가 활성화되기 시작됩니다. 유저분들께서는 사냥터에서 강제로 접속이 종료되어 아이템이나 경험치가 감소하는 패널티를 받기 싫으시다면 마을로 돌아가 게임을 종료해주시길 바랍니다. 1회에 한해 이 메시지를 받는 즉시 마을로 귀환을 할 수 있습니다. [Yes/No]
유천은 그렇게 제 눈 앞에 떠오른 메시지의 Yes 버튼에 주저 없이 손가락을 올렸고. 깜빡 하며 꺼졌다가 다시 제 눈을 가득 채우는 마을의 광장 한 풍경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신성제국의 수도라는 곳이 저 하나의 깽판에 의해 박살이 나서는 아직까지 복원이 진행되고 있던 터였다. 잠시 키득거리던 유천은 저를 바라보는 NPC들을 보며 게임을 종료했다.
“헛!”
“너, 뭐하냐?”
게임을 종료한 유천이 눈을 뜨자 깜짝 놀란 소피아가 뒤로 넘어가자 저절로 소피아의 어깨에 몸을 기대고 있던 유천은 힘없이 시트에 고개를 처박았다. 차마 유천으로서도 그 타이밍에 소피아가 빠질 줄은 몰랐던 것인지 고개를 시트에 처박고는 표정을 구겼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일으켜 안전벨트를 찬 유천은 태연히 소피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 안 아파?”
“시끄러워.”
유천은 제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자신에게 되물어 오는 소피아를 바라보며 웅얼거렸다. 본인은 걱정되는 눈초리로 보고 있었지만, 남자에게는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자존심이다. 총에 맞고도 당당히 잡았던 그 정신줄과 자존심을 겨우 딱딱한 헬기 시트 따위에 놓아줄까. 유천은 두 눈을 부릅뜨고서 울려오는 머리를 다잡았다.
“역시 사람이 할 짓이 못돼.”
“응? 뭐라고?”
“몰라도 돼.”
조용히 울려오는 머리를 잡으며 중얼거리는 제 말을 들은 것일까, 물어오는 소피아를 향해 유천은 조용히 대꾸했다. 아무리 치유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들 강제로 치유 속도를 올리면 뇌에도 무리가 가기 마련이다. 아니, 뇌라기 보다는 몸 자체가 견디지 못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뇌는 그런 것이었다. 제 몸이 허용하는 것 이상의 힘을 허용하지 않는 것. 간혹 위기에 처하면 나온다는 그 괴력 따위도, 제 목숨이 경각에 다한 뇌가 지레 겁을 먹고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힘을 끌어낸다. 유천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증거라 할 것도 없지만 저번에도 총에 맞은 상처를 회복할 때에도 이 방법을 사용하다 헛구역질만 몇 번은 했었다.
“이 메스꺼움은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고.”
아까부터 자신을 걱정스런 눈초리로 바라보는 소피아를 바라보며 유천은 조용히 ‘빌어먹을.’ 이라며 욕을 지껄이고는 중얼거렸다. 그 뒤 입을 헹구기라도 하듯이 물을 들이키는 유천을 보며 소피아는 쓴 웃음을 지었다. 유천이 무슨 방법으로 제 몸의 치유속도를 높이는 것인지는 그 당시 기지에 있던 이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무리하지 말라니까. 네 목숨까지 갉아먹어가면서 뭘 하려는 거야? 들어나 보자.”
“난 말이야. 한번 먹은 엿은, 꼭 두 배로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놈이라고. 그런데 내 인생 최고의 엿을 선사한 영감을 내가 그냥 넘길 것 같아?”
적어도 지금은 도청의 위협이 없다. 그렇게 판단한 유천은 주저 없이 기지에서 제 귀환을 기다리고 있을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갈고는 으르렁거렸다. 그 사나운 기세에 다른 말을 꺼내려던 소피아조차 입을 다물며 유천을 응시하자, 유천은 소피아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방금 전까지 으르렁거리던 그 사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환한 싱긋 미소를 지으며 유천은 소피아에게 손을 건네며 말했다.
* * *
“아, 진짜 내가 이거 꼭 해야 되요, 아버지?”
유천이 테스터가 되어 짐을 챙겨 본사로 들어가버리자마자 도망치다시피 기지로 귀환한 지원이 중얼거렸다. 감시야 미국이 한반도의 상공에 띄워둔 위성의 채널을 가져오면 될 일이다. 이쪽에 인질까지 있으니 허튼 수작도 부리지 못할 유천이니 귀찮은 도청은 하기도 싫었던 지원은 제 방으로 들어온 사내, 회준을 보며 투정을 부리듯 따졌다.
“여태껏 잘 하던 놈이 왜 그러는 거냐.”
인상을 찌푸리며 그가 되물었다. 그와 동시에 도청장치와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화장실 변기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지원의 방에 울려 퍼지자, 쌓인 것이 많았던 듯 지원이 속사포마냥 입을 열어 불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니, 이제 내 나이도 20줄을 절반은 넘겼다고요. 한국 거기 가니까 이쁘장한 여자도 많고. 많디많은 그 여자들이 나한테 접근도 하는데. 그 여자들도 아니고 이제 겨우 20줄에 들어간 사내새끼 따위를 도감청해야 되는 이유가 뭔데요! 여기 노는 인력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냐.”
“그게 아니죠! 아니 이 새끼는 변비라도 있나! 왜 하루에도 몇 번이고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변기를 내리고 지랄이냐고요! 그것도 하필 내가 밥 먹을 때!”
“…….”
마지막에 가서는 울분까지 섞여 외쳐대는 지원의 외침을 들으며 회준은 말 없이 지원의 어깨만 두드려 줄 뿐이었다. 어차피 지원의 말 대로 제 수중 안에 들어와 반항은 꿈도 못 꾸는 녀석에게 심하다 싶을 정도로 도청을 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여태 말한 것도 모자라 계속 외쳐대는 지원을 보며 회준은 조용히 지원의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은 꿈에도 몰랐다. 유천이 제 옷 한구석에서 발견한 지원의 도청기를 고의적으로 회사 남자 화장실 변기 바로 밑에 붙여버린 것을. 그리고 굳이 지원이 밥을 먹을 시간만 되면 화장실로 들어가 계속해서 칸막이를 돌아다니며 변기마다 물을 내린 것을 말이다. 그것을 모르고 도청을 하고 있던 지원만이 불쌍해지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 눈아파서 안과간다고 집에 빨리 왔. 이제 밥 먹고 쉬러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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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ers : 유천의 굴림운은 해피엔딩이라도 변함없군요ㅋㅋ 끝나도 데굴데굴 굴러라ㅋ
//유천에게 있어 해피 엔딩이란 행복하게 끝나는 게 아니라 행복은 끝났다죠. 낄
인핀 : 킬킬킬 너의 편따윈 없다 유천
//하하, 언제는 있었나요.ㅋㅋㅋㅋㅋㅋㅋㅋ
적현월 : @재밌게 읽고 갑니다. 유천아 니편은 공기밖에 없는 듯 하구나. 아니구나, 공기는 그저 방관할 뿐이구나? 너 님의 편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 유닥굴(유천이는 닥치고 굴러라)!!!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훌륭한 말씀
덱스트린 : 어우 저렇게 행복하게 지내다니... 주인공 보정인가
//그런듯요. 너무 행복한것 같은데
은or : 낄. 역시 어딜가도 유천이는 구른다네..ㅋㅋㅋ 잘보고갑니다아~!
//뭐, 저게 구르는 건지 확신이 안간다마는 말이죠. ㅋㅋ
심심판타지 : 이건질리언이와도못돌립니다 ㅋㅋ
//ㅋㅋㅋ 챔피언도 못 돌림 ㅇㅇㅋ
BlackRaccoon : 저런생각해도못나가는게현실
//그러니까 생각이죠. ㅋㅋㅋㅋㅋㅋ 나갔다가는 더 험한꼴
archangels la : 유천아....니편은.. 있었나?
//그러게요. 있었었나?
가이오가 : ㅋㅋㅋㅋ행복한 일상생활?ㅋㅋㅋㄲ ( ^o^)U☆U(^o^ )
//행복하죠. 암. ㅋㅋ
AQ240 : 외전속세계는 훈훈하구나 ㅋ
//훈훈.
파릇초 : 빙그르르르르를르르르를르르르르르르르를르르를를를르르흐ㅡ르르르르르르르르르를르르를르르르르르르를
//팽이가 생각나는 건 저뿐인가요
킴치맨 : 그래 세상은혼자살아가는거야. 물론 구르는것도 너혼자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리신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인전..ㅋㅋㅋㅋ
//ㄴㄴ 다굴빵
Darkness1021 : 유천이는 결국구른다 겁나조쿤?
//겁나조쿤!
바람기억 : 과거나미래나 구르네..ㅋㅋ
//그래도 미래는 행복하게 구른달까
밀리리오 : 간만에들어왔건만. . . .아직도구르다니. . . .
//요건 쟤 구르는 맛에 쓰고 보는건데요 뭘. ㅋㅋ
Dernion : 음..나는 소마광랑인데 어쩨서 요상한영어인거지...;;; 암튼.외전잘보고가요.ㅇㅅㅇㅋㅋㅋ
//글쎄여. ㅋㅋ 코멘트 감사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