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4 / 0440 ----------------------------------------------
새로운 시작
“야, 네가 나서야겠다. 대충대충 하려니까, 막히고 제대로 하면 들키고. 방법은 네가 하는 수 밖에 없겠다.”
“귀찮게…….”
“어쩌겠냐, 너밖에 없는데.”
“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유천이 자신의 앞에 벌어진 상황에 욕을 지껄이며 뒤로 돌아보고는 라이헤르를 가리켰다. 그러나 라이헤르는 대놓고 하품을 하며 유천의 말을 무시하려는 듯 했으나, 이어진 유천의 말에 얼굴을 붉히고는 유천에게 달려드는 라이헤르였다.
“싫으면 말던지. 걸리던 말던 난장판부터 벌이고 봐야지.”
“해! 하면 되잖아!”
“진작 그러던지.”
유천이 로브의 소매를 걷으며 입을 열자마자, 라이헤르가 유천을 옆으로 밀치며 외쳤다. 그제서야 유천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때, 늪지처럼 질퍽질퍽하게 변해 노예들의 발길을 잡던 유천의 마법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별반 다르지 못했다. 모래사장 깊숙이 박힌 발을 빼는 것은 노동에 시달린 채 피곤에 빠진 그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난 뒤에 있는 저 녀석처럼 힘을 숨긴답시고 저 서클 마법에 적은 마나를 넣을 생각 없으니까, 막으려면 각오해라. 번 플레어.”
라이헤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벌어진 일은 상당히 참혹했다. 주변에는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고, 모래는 엄청난 고열에 액체로 녹아 흐르기 시작했다. 주변을 감싼 열기는 주저 없이 유천의 일행에게도 들이닥쳤으나, 힘을 감출 상황인 유천이라도 그 정도는 가볍게 해결할 수 있었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얼음 동상이 유천의 바로 앞에 세워져 있었고, 그곳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나와 타는 냄새를 몰아냈다.
“이익! 엡솔루트 실드!”
“막을 테면 막아 봐. 가능 하다면.”
번져나가던 푸른 불꽃은 잠시 뿐이지만 노예들의 앞에 나타난 거대한 푸른색의 방패에 막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푸른 불꽃은 서서히 크기를 불려가더니 기어코 불꽃의 색마저 흰색으로 바뀌었다. 크기가 불려진 흰색의 불꽃은 푸른색의 방패를 조금씩 좀먹어가기 시작했다. 끝에 가서는 아예 흰색의 불꽃은 옅은 푸른색마저 띄워갔고, 방패의 근처에 있던 노예들도 엄청난 열기에 그대로 살이 익어 죽거나, 가리개에 불이 옮겨 붙어 타 죽기 시작했다. 피부가 녹아 끔찍한 형체가 되고, 피가 녹고 있는 모래에 엉겨 붙어 보기 역겨운 장면을 연출하기 시작할 때 소녀는 아예 눈을 감고서 고개를 돌렸다. 유천은 그런 소녀를 보며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이상의 거울.”
유천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녀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장면은 더 이상 끔찍한 살육의 장면이 아니었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바닷가, 부드러우면서도 열기를 간직한 모래사장이, 뒤에는 에메랄드 빛으로 반사되어 빛나는 바다가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사를 내뱉으면서도 주위에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유천과 발록, 라이헤르 밖에 보이지 않자 자신을 바라보며 키득거리며 웃고 있는 유천을 향해 말을 걸었다.
“아까 그 사람들은 어디 갔어요?”
“몰라도 돼. 알아서 좋을 거 없다는 거 잘 알지?”
“…….”
자신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대답하는 유천을 보며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유천의 시야에는 무참한 학살극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만! 그만하라!”
“내가 왜 인간 따위의 말을 들어야 하지?”
“일단 멈춰봐. 저 새끼 말 들어보고 족쳐도 안 늦어. 그보다 우선인건 우리 뒤에 있는 저 카사노바 새끼지.”
“음. 그래 보이네. 파이어 서클.”
이제는 점차 범위를 늘려가 달려가던 기사의 코앞의 노예들까지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기사가 타고 있던 탈것이 난동을 피우며 뒤로 도망치자, 그 위의 기사가 외쳤다. 그러나 라이헤르가 그 말을 들을 이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계속되는 학살극에 피식 웃으며 마법을 사용하던 라이헤르의 어깨를 툭 치며 발록이 말을 건넸다. 발록이 가리키는 손가락의 끝에는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서 헝클어트리고 있는 유천의 모습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라이헤르는 유천을 향해 화염의 고리를 던졌다. 그리고 화염의 고리는 그대로 유천의 몸을 밧줄로 옭아매듯 감쌌다.
“야! 이거 안 풀어? 더워 죽겠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그리고 그 뒤, 유천은 곧장 소녀의 머리에 얹은 손을 때며 외쳤다. 안 그래도 단일 대상에게 거는 환각 계열의 마법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한다. 다수의 대상에게 걸 경우에는 자신의 모습을 변해 보이게 하는 간단한 정도라면, 이번에 사용한 것은 단일 대상의 시야를 아예 바꿔버리는 환각상태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소녀에게 환각을 거는 것에 집중하고 있던 유천이 갑작스런 공격을 막는 것은 불가능. 소녀에게 걸던 환각은 풀리고, 유천은 로브에 달린 화염 저항력에 의해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싱크로율의 상향 조정으로 유천에게 오는 열기는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그런 유천의 반응에도 두 여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무시하고서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기사를 노려볼 뿐이었다.
“쳇. 캔슬.”
유천은 자신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는 두 명을 바라보며 라이헤르가 건 마법을 취소시킬 뿐이었다. 애초에 라이헤르와 유천의 마나량의 차이 외에는 유천의 마법실력도, 위력도 한층 위라고 할 수 있었다. 저 서클의 마법이라면 충분히 유천은 장난 삼아라도 간단히 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은 것인 단지 저 둘의 반응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자 섭섭한 표정으로 유천은 투덜거리며 소녀의 시야를 가렸다. 곧 눈을 깜빡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소녀의 시야에는 온통 검은 유천의 로브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만 자고 있어라. 슬립.”
어차피 이 상황에 깨어 있어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 유천의 생각이었다. 애초에 주변의 장면만 하더라도 충분히 보기 좋지는 않았으니까. 유천의 마법에 그대로 잠이 들어 제 자리에 주저 앉은 소녀를 등에 업으며 유천은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황했다.
“응?”
“야, 뭐해? 안 도와주고.”
“이럴 때는 도와줘야지. 멍청아.”
“그게 도움을 요청하는 태도냐 이 년들아.”
유천은 정말 당황했다. 어떻게 하면 마나의 주인이라 일컬어지는 드래곤, 그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지만 성룡이다. 심지어 투신의 일족이라 불리는 발록마저 두 개의 검 자루에 맺힌 오러 블레이드를 보며 유천에게 말을 거는 투는 상당히 웃겼다. 발록은 그렇다 치더라도, 라이헤르의 경우에는 저 정도 수준의 오러 블레이드에 맞아봤자 뼈에 실금이나 갈는지 모르겠지만.
“항복해라. 더 이상의 저항을 한다면 이 두 여자의 목숨은 없다.”
“하? 너희 장난치냐? 네가 그대로 그 검 내리쳐도 저기 자기보고 여왕이라 부르라는 금발 미친년한테는 가죽 조금 베일 거고, 저기 녹발 욕쟁이한테는 휘둘러봤자, 몽둥이로 후려 맞는 기분밖에 안 들 거다.”
“……으득, 도. 와. 주. 세. 요. 오. 빠.”
“국어 책을 읽어라 이년아. 언제는 나보고 여왕님이라 부르라며. 근데 왠 오빠 타령이야?”
“아, 안 해. 때려 쳐. 그냥 저 자식은 저기 시체랑 같이 묻어버려야겠다. 동의해?”
“그래야겠어. 우리 같은 미녀가 어디 또 있다고 저 따위 행동인지.”
“너, 너희! 움직이면 목이 베인다!”
“염병. 힐러한테 포션을 팔아라.”
기사가 둘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서 하는 말이 가당치도 않은 유천은 대놓고 비웃으며 두 명을 차례로 지목하며 말을 꺼냈다. 기사는 당황한 듯 했으나, 거짓말이라고 판단한 것인지 둘의 목에 검을 더욱 더 들이댈 뿐이었다. 그러던 도중 발록이 한 글자, 한 글자를 끊어가며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일부러 잡힌 것에 대한 배경이 있어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유천은 소녀의 허벅지를 받치고 있던 손 하나를 빼고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런 유천의 태도에 몸을 일으키며 말하는 라이헤르를 따라 발록이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유천의 표정이 똥 씹은 표정으로 뒤바뀌고, 기사가 검을 들이대며 외쳤지만, 라이헤르는 유천과 마찬가지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하고는 발을 들어 기사를 걷어찼다. 그리고 꼴 사납게 모래사장에 처박힌 기사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여자한테 걷어 차여 모래사장에 박혔다는 것이 창피한 것이 이유였는지, 아니면 진짜 기절했는지는 본인만 알리라.
“체인 라이트닝!”
“어이쿠. 어스 베리어.”
뒤이어 다시 소녀의 허벅지를 받치며 유천이 등을 돌리던 사이, 곧장 유천을 향해 전기 줄기가 뿜어져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천의 반응은 상당히 웃기기 그지 없었다. 허리를 숙이며 그대로 입을 연 유천의 말이 나오는 도중에도 유천의 발 밑에서는 모래로 이루어진 방패가 솟아나 전격을 그대로 흡수했고, 곧이어 저 멀리서 피보라가 뿜어지는 것을 보며 유천은 피식 웃었다.
“여, 멋진 역공격…….”
“이제, 네 차례지?”
“…….”
“도망칠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유천이 웃으며 몸을 돌리곤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라도 하듯 가볍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러나 라이헤르는 그런 유천의 말을 중간에 끊어버리곤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유천이 표정을 구기며 뒤로 돌자마자 그곳에는 검은색의 마기가 넘실거리며 흘러 내려오는 검은 채찍이 유천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발록은 그런 유천을 향해 선고라도 하듯 말했지만, 유천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어 둘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 둘, 그거 아냐?”
“유언이라면 들어줄게.”
“동감.”
“인간은 원래 포기라는 걸 모르는 동물이야. 블링크.”
============================ 작품 후기 ============================
근데, 포기하면 편한건 안 함정.
-------------------------------------------------------------------------------
사신대왕 : 1빠!!! 존나좋군?
//네 명의 흑형이 생각나는 대사군여. 존나 좋군?
덱스트린 : 역시 시팔은 시팔이야 그것이 시팔의 한계 고작 게임안에서의 협박 ㅋㄷ
//근데 그거 때문에 이제 유천이 진짜 뒈지게 생김
researchers : 역시 유정이 소원대로 벌써 구르는구나ㅋㅋ
//ㅋㅋㅋ당연하죠
ordeal : 헐 난 작가님 소원취소하고 가상현실 세상 멸망소원이요
//올ㅋ 그럼 요놈 완결인가요? 존나 좋군?
은or : 우와...벌써부터 쥔공의 수난이 시작되요!작가님 짱!
//과찬이십니다. 낄
인핀 : 굴러라굴러
//데굴데굴ed
월야수월 : Roll!Roll!Roll!Roll!!!!
//접수 완료. 그럼 전 이만 밥먹으러
IYouMusic : 난 러블링블링한 여동생이좋은데
//그래서 꼬마 데려옴요. 말 잘듣는 착한 여동생 시키려고 데려왔달까. 치유계 따위 시킬까보냐
심심판타지 : 쒸.뽤.뉴.님.크.리.스.좀.처.절.하.게.굴.리.어.백.골.이.진.토.될.쯔.음.여.왕.님.을.부.르.세! BGM:환희의노래
//브금 돋네요
테레케 : 발록님 찬양!
//올ㅋ
여린o : 역시 가는게있으면 오는게 있는거지 여자를 만났으니 굴러야지ㅋㅋ
//이런 걸 보고 등가교환이라 했던가요. ㅋ
故 임윤택 씨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그 곳에서는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