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13권) (102/102)

지나가던 떨거지라고?

 악의 신, 세트.

 어미의 배를 찢고 태어나 권력을 위해 형을 오체부니한 잔인한 이집트의 파라오.

 난폭하고 잔인한 성품을 가진 존재. 그는 이집트인이 부정(不正)하게 생각하는 흰 살결과 붉은 머리칼을 지녔다.

 불모의 사막, 건조, 암흑이라는 세 가지 권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 힘을 바탕으로 키메라 조직에서 ‘가장 위대한 3인’ 중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 잔인한 악의 신이 두 손을 펼치며 수렁에서 건져 올린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타올라라!”

 웅휘한 존재감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타는 듯한 노을을 거느리고 오라. 삭막한 바람을 타고 하늘을 짓밟으며 오라!”

 휘오오오오!

 피처럼 붉은 모래가 돌풍과 함께 몰아쳤다.

 “크하하. 너의 자만이 패배를 부른 것이다. 죽음의 모래바람이 너의 뼈 한줌까지 모조리 삼키리라. 크하하하!”

 세트의 입에서 광소가 터졌다. 그는 스산한 목소리로 병규의 죽음을 장담했다.

 부스스스스.

 그가 입을 열자 삼라만상 자연의 모든 것이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고오오!

 바람이 강해졌다.

 황사처럼 벌겋게 일어난 작은 모래알갱이들은 거친 사포처럼 품안의 모든 것을 갉아 내기 시작했다.

 쩌어어어억!

 병규를 뒤덮은 모래바람이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을 토해 냈다. 순식간에 병규의 형체가 사방으로 찢겨졌다. 붉은 모래는 자욱한 피보라처럼 잔인하고 처절했다.

 “크흐흐. 겨우 이 정도였던가?”

 세트의 두 눈에 광기가 어렸다.

 블러드샌드(Blood Sand)

 그가 가장 자랑하는 권능.

 피를 탐하는 사악한 모래.

 사람의 몸에서 뜯어낸 피를 마시고 붉게 물든 모래는 핏빛 아지랑이처럼 잔혹하다.

 그의 모래폭풍에 휘말리면 대항할 방법이 없다. 온몸의 모든 수분을 빼앗기고 미라가 되어 버리는 수밖에 없다.

 결국 오만하던 놈조차 블러드샌드의 먹이로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세트의 거만한 얼굴은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뭐가 그리 즐겁지?”

 세트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섬뜩.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충격이 엄습해 왔다.

 모래 바람에 휩싸여 갈기갈기 찢겨져야 했을 녀석.

 온몸의 수분을 뺏기고 미라로 변해 버렸어야 할 녀석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죽어 나자빠져야 할 녀석이.

 멀쩡히 살아 그의 귓가에 생기를 속삭이는 것이 아닌가.

 모래 바람에 휘말려 온몸이 찢어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런데 정작 등 뒤에 나타난 병규는 산산조각은커녕 상처 하나 없는 온전한 모습이었다.

 세트는 이내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잔상이군.”

그의 모래가 찢어발긴 것은 병규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트는 비로소 눈앞의 청년이 필생의 대적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대는 대체 누구인가? 태씨 문중에 그대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붉은 머리의 악신이 음울한 음성으로 물었다. 

 가슴이 무겁다. 단지 그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이 터무니없는 압박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는 심각하게 물었지만, 정작 상대는 별스럽지 않게 대답했다.

 “됐어. 얘기해도 누군지 모를 거야. 난 그리 유명한 사람이 아니거든.”

 “그럴 리 없다. 그대와 같은 능력자가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다. 말하라.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도 봉황의 권능을 사용하는 자인가?”

  집요하게 묻는 세트의 말에 병규는 짓궂은 웃음을 떠올렸다.

 “말했다시피, 난 그저 지나가는 떨거지일 뿐이다. 그리고 봉황처럼 대단한 수호신을 가진 것도 아니지. 하지만 굳이 그것과 비슷한 것을 말하라면 마왕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군.”

 “마왕?”

 세트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런 수호신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럴 거야. 내가 처음이니까.”

 “...... 그대는 날 조롱하는군.”

 “후후. 이제야 아는군. 하지만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야. 지금부터 그 증거를 보여 주도록 하지.”

 병규의 미소가 짙어졌다. 더불어 그의 그림자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출렁이기 시작했다.

 불길처럼 일렁일렁 확장되는 그림자.

 세트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병규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급격하게 증폭된 것이다.

 그것은 어둠. 자신과 흡사하지만 비교조차 할 수 없ㅇ르 정도로 농염한 암흑의 전율.

 “그대는 인간인가?”

 세트는 떨리는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막상 말해 놓고 보니 터무니없는 소리다.

 인간이라고 묻다니.

 하지만 세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아는 한 인간의 몸속에 이런 어둠이 존재할 수는 없다.

 병규가 차가운 웃음을 입가에 매달며 대답했다.

 “지금의 난 마왕일 뿐이다.”

 촤아아아악!

 땅거미가 어둑하게 내려앉은 산자락을 병규의 그림자가 무서운 속도로 내달렸다.

 세트는 병규의 하얀 웃음 속에서 끔찍한 지옥을 보았다.

 병규가 세트에게 마왕의 권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을 때, 미라와 맞서 싸우고 있는 태씨 일족의 능력자들은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미라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물론 태씨 문중의 능력자들은 강하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능력으로도 미라들은 버거운 상대였다.

 미라들은 불사의 생명을 가지고 있었다.

 붕대로 감겨진 그들의 육체는 오래전에 죽고 말라 버렸다. 도려낸 내장 대신 메마른 몸뚱이를 채우고 있는 것은 저주받은 모래들. 

 칼로 심장을 찌르고, 목을 도려내도 금세 부황했다.

 오직 한 가지 방법은 불로 껍데기만 남은 육체를 태워 버리는 것뿐인데, 그마저도 아누비스가 부리는 모래 때문에 쉽지 않았다.

 병철이 물 찬 제비처럼 미라들을 휘젓고 다녔지만, 그 혼자의 힘으로는 엄연히 한계가 있었다. 

 급기야 몇 사람이 미라에게 당하고 말았다.

 피를 본 미라들은 더욱 광분하여 날뛰었다.

 반면 그에 맞서는 능력자들은 대부분 환갑을 넘긴 노인들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졌다.

 치열한 싸움의 행방을 점차 미라들 쪽으로 가닥이 잡혀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전혀 의외의 사람이 싸움에 끼어들면서부터 상황이 180도 달라져 버렸다.

 “무지개!”

 하얀 안개가 채찍처럼 펼쳐지며 미라들을 후려쳤다.

 안개에 불과한 무지개의 위력을 가히 대단하여, 괴력을 발휘하던 미다들을 담장 너머로 우르르 날려 버렸다.

 “겨, 경애?”

 병철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경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버림받고, 첩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어머니의 성을 따라야 했던 동생이다. 그녀가 일족의 위기에 두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선 것이다.

 ‘아니야.’

 경애는 고개를 흔들었다.

 일족이기 때문에 나선 것이 아니다.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어 가는 것을 볼 수 없어서다.

 설사 이 사람들이 생판 모르는 남이라 할지라도 그녀는 서슴없이 뛰어들었을 것이다.

 “네 년은 대체 누구냐!”

 미라들을 부리던 아누비스가 대노하며 대뜸 고함을 질렀다.

 가녀린 여인의 손짓 한 번에 미라들이 폭풍에 휩쓸린 가랑비처럼 날아가 버렸다.

 무려 절반에 가까운 수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아누비스는 침까지 튀겨 가며 소리쳤다.

 “내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네년은 대체 누구냔 말이다!”

 “나요?”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되묻던 경애는 장난기가 불쑥 발동했다.

 “지나가던 떨거지 투(2)요.”

 “뭐, 뭣이?” 경애의 대답에 당황하던 아누비스는 이내 그녀가 농담을 한 것임을 누치 채고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이, 이런 잡것이! 감히 날 놀리다니.”

 이를 으득 간 아누비스는 지팡이를 허공으로 들어 올리며 저주의 주문을 읊었다.

 “억울하게 죽어 땅에 묻힌 자들이여. 죽은 자를 인도하는 나 아누비스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제 죽음에서 일어나...... .”

 장황하게 주문을 암송한 아누비스는 지팡이로 경애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지팡이가 가리키는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라!”

 “난 싫으니 아저씨나 가세요.”

 경애가 슬쩍 자리를 피하며 무지개를 쏘아 냈다.

 화살처럼 날아간 무지개는 아누비스의 지팡이를 휘릭하고 거꾸로 돌려 버렸다.

 어처구니없게도 지팡이 끝은 아누비스 자신을 가리키게 되었다.

 “힉!”

 아누비스는 그 큰 코로 격한 숨을 들이켰다.

 죽음의 절대 주문이 자신을 가리키다니.

 이런 황당무계한 일이 어디 있는가.

 “안 돼!”

 아누비스는 지팡이를 내팽개치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미 발동된 저주를 취소할 수는 없었다.

 화아악!

 그의 발밑에서 검은 저주가 들풀처럼 자라났다.

 쩌릿한 충격과 함께 발가락부터 천천히 감각이 마비되어 왔다.

 “흐윽!”

 아누비스의 입에서 격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이 질주하는 말처럼 무섭게 달린다.

 죽음이 그의 몸뚱이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격해진 심장박동만큼 검은 저주의 전이 역시 무섭도록 빨라졌다.

 금세 발을 잠식당하고 종아리를 타고 허벅지까지 올라온다.

 죽음의 권능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아, 안 돼!”

 아누비스는 독한 마음을 품었다. 

 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다. 

 그는 품에서 단도를 꺼내 들고 벌레처럼 허벅지 위로 슬금슬금 기어오르고 있는 검은 저주를 노려보았다.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고는 단도를 휘둘러 허벅지 아래를 베어냈다.

 “으아아아악!”

 마취도 없이 생다리를 잘라 내는 고통은 정녕 끔직했다.

 아누비스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절단된 그의 두 다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사방을 벌겋게 적셨다.

 “맙소사.”

 경애는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아연실색했다.

스스로 자신의 다리를 자르는 모습이 너무도 처참했기 때문이다.

 크윽. 겨, 겨우.“

비록 두 다리를 잃기는 했지만 아누비스는 죽음의 저주로부터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잘라 낸 두 다리가 검은 저주에 의해 고목나무처럼 변했다. 그리곤 퍼석 하는 소음과 함께 잘게 부서졌다.

 다리를 잘라 내는 것이 조금만 늦었어도 아누비스의 운명 또한 저리 되었을 것이다.

 사신의 권능을 빌어 다리를 지혈한 아누비스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간신히 상체를 일으켰다.

 “악독한 년!”

 경애를 보는 그의 두 눈에 독기가 충만했다.

 “절대로 일부로 그런 것이 아니에요.”

 경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항변했다. 따지고 보면 그녀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누비스는 자신의 저주에 자신이 걸려든 것일 뿐.

 인과응보.

 하지만 경애는 다리를 잃은 아누비스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자신 때문에 다리를 잘라낸 셈이 아닌가.

 비록 상대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네년을 찢어죽이리라.”

 아누비스는 이를 악물며 주문을 영창했다.

 고대 이집트의 언어가 빠른 속도로 흘러나왔다.

 “저놈이 아직도!”

 뒤늦게 정신을 차린 병철이 아누비스를 향해 째빨리 몸을 날렸다. 태씨 문중의 능력자들 또한 호통을 치며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의 몸놀림보다 말하는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태씨 문중의 대응보다 아누비스의 주문이 더 빨랐다.

 촤악!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지하에서 세 개의 관이 솟구쳤다.

 독특한 모양의 관이었다.

 미라들이 기어 나온 관들보다 최소 10배 이상 컸고, 표면엔 섬뜩한 문양이 빼곡하게 양각되어 있었다.

 문양들은 무수한 지옥의 형상을 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고통 받는 죄인의 모습을 뜻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듯이 달려가던 병철과 그 일행들은 관들에서 풍기는 사악한 기운에 발을 멈추었다.

 “지독한 악의로다.”

 노인들은 수염을 덜덜 떨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공포.

 고작 보이는 것은 관 세 개가 전부.

 하지만 능력자들은 감히 앞을 가로막은 관들을 무시할 수 있었다.

 관 속에서 가공할 만한 살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통치자. 태양의 의지. 왕들이여, 일어나소서.”

 끼이이이이.

 아누비스의 거창한 외침과 함께 세 개의 관이 동시에 열렸다.

 쉬이이익!

  비스듬히 열린 관에서 뿌연 증기가 뿜어지고 그 속에서 붕대로 둘둘 감싸인 미라가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흐음.”

 병철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세 개으 관에서 걸어 나온 미라들.

 어찌 이다지도 클 수가!

 병철의 키도 그다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미라들은 그보다 훨씬 더 컸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거인들이다.

 “쿠프(Khufu), 카프레(Khafre), 멘카우레(Menkaure), 위대한 왕들이시여, 라의 광휘를 어지럽히는 무도한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소서.”

 아누비스는 이마를 땅바닥에 쿵쿵 내리찍으며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외침을 들을 것인가.

 무어어어어!

 거대한 세 미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변색된 붕대 사이로 붉은 살광이 횃불처럼 일었다.

 쿵쿵!

 발걸음을 옮기자 땅이 진동하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솟았다.

 이 거대한 존재감.

 포말처럼 밀려드는 살의, 공포.

 광폭한 저주의 위압감.

 세 미라가 나서자 아누비스들에 의해 미리 소환된 미라들은 일제히 바닥에 고개를 조아렸다. 

 키르륵.

 세 미라는 각기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쿠프라 불린 미라는 유난히 붉은 붕대로 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전사를 연상케 하는 크기와 덩치를 자랑했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력 역시 무겁고 장중했다.

 카프레는 특이한 염료를 섞은 듯, 푸르스름한 붕대를 하고 있었다. 그는 거대한 세 미라 중에서도 가장 장신이었는데, 특히 손발이 유난히 길었다.

 멘카우레는 셋 중 가장 작았다.

 물론 다른 두 미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는 이야기다. 가장 작은 그의 신장조차 2미터는 훌쩍 넘었다.

 멘카우레는 기형적으로 큰 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턱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살인귀로구나.”

 “지독한지고.”

 태씨 문중의 노인들은 세 미라가 뿜어 대는 살기에 치를 떨었다. 대체 이렇듯 적의로 가득한 생물이 세상천지 또 어디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끼놈!”

 “불태워 주마.”

 노인 둘이 미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손에서 붉은 화염이 충천했다.

 봉황의 여섯 가지 권능 중에 화염의 힘을 이어받은 자들이 이었다. 

“선수필승!”

“타 버려라!”

 두 노인이 벼락같이 손을 휘둘렀다.

 팍!

 노인들의 손이 마주쳤다.

 화륵!

 손끝에서 일어난 불길이 제비처럼 일그러지며 비쾌하게 날아갔다. 이 제비들은 초고밀도로 압축된 화염의 기운이다. 그 열기는 무쇠로 만든 철근조차 단숨에 녹여 버릴 정도로 뜨겁다.

 많은 미라들이 이 불제비에 온몸이 불타며 죽어 나갔다.

 그러나 새롭게 나타난 미라들은 불제비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흉악한 기세를 일으키며 앞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세 미라 중 멘카우레가 가장 먼저 나섰다.

 크으으으!

 그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입을 벌렸다.

 쩌어어억!

 턱이 무려 1미터 가까이 벌어졋다.

 퀴오오오오오오!

 불제비가 긴 호성을 지르며 멘카우레의 입속으로 빨려들듯 들어갔다.

 콰악!

 격한 파음과 함께 멘카우레의 두통수가 불쑥 솟았다.

 폭발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멘카우레의 뒤통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 무슨!”

 “해괴한 괴물이로고.”

 불제비를 날린 두 노인은 경악성을 지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크와아!

 불제비를 삼킨 멘카우레는 불같이 분노하며 느릿느릿 몸을 움직였다.

 “이놈!” 노인들은 다시 힘을 합쳐 불제비를 날렸다. 이에 다른 노인들도 합세하니, 불과 바람이 화염폭풍이 되어 멘카우레를 뒤덮었다.

 하지만 멘카우레는 이번에도 입을 쩍 하고 벌려 그 모든 공격을 삼켜 버렷다.

 쿠쿠쿠쿵!

 회색 붕대로 감은 몸뚱이가 불룩불룩 솟으며 폭발의 여파를 상쇄했다. 

 “맙소사.”

 “지독한 괴물!”

 노인들은 멘카우레의 위력에 다시금 치를 떨었다.

 멘카우레의 육체는 미라처럼 빠짝 마른 몸에 모래를 덧댄 것이다. 그렇다 보니 화염에 강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태씨 문중에 화염 기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람.

 봉황의 여섯 가지 권능 중 바람이 몰아쳤다. 노인들이 이를 악물고 두 손을 휘젓자 한 줄기 거센 칼바람이 일어나 멘카우레를 덮쳤다. 

 칼바람은 멘카우레의 육체를 감은 붕대들을 갈기갈기 찢어 내고, 피부 대신 육체를 감싼 모래들을 산산이 흩어 놓았다.

 크와아아아!

 멘카우레는 큰 충격을 받은 듯 턱을 흔들며 길게 울부짖었다.

 “놈의 약점은 바람이다. 바람으로 공격해!”

 노인들은 기성을 지르며 세찬 공격을 퍼부었다.

 바람을 다루는 능력자들ㅇ느 전신의 기력을 죄 짜내어 바람을 쏟아내고, 다른 능력자들은 그들에게 자신의 실어 주었다.

 그렇게 증폭된 바람의 기운은 폭풍과 같은 위력으로 멘카우레를 몰아쳤다.

 과연 멘카우레에게 바람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크와아아!

몸을 구성하는 모래들이 바람에 날리자 멘카우레는 괴성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태씨 문중의 노인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때, 여태까지 잠자코 있던 다른 미라가 활동을 개시했다.

 카프레.

 아누비스에게 소환된 세 파라오 중 가장 키가 큰 미라.

 크워어!

 그의 몸을 두르고 있는 붕대가 활짝 펼쳐지며 말라비틀러진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파다다닥.

 검게 부식된 갈비뼈가 괴물의 아가리처럼 벌어지며 부패한 살점들을 사방으로 뿌렸다.

 살포된 살점들은 지면의 흙과 뭉치며 작은 환단이 되었다.

 크워어..

 얌전히 뒷전으로 물러나 있던 수십 마리의 미라들이 게걸스럽게 그 환단들을 먹어댔다.

 ‘대체 무슨 일이...... .’

 경애는 긴장된 얼굴로 미라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새롭게 나타난 세 미라들 모두 다른 미라들의 기괴한 행동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기세가 변하고 있다.

 환단을 먹은 미라들의 몸이 우둑우둑 소리를 내며 확장되기 시작했다.

 대나무처럼 말랐던 몸뚱이가 굵은 통나무처럼 변했다.

 하지만 변화는 그뿐, 단지 덩치만 더 커졌을 뿐이다.

 몸은 오히려 뻣뻣해졌다.

 걸을 때마다 썩은 살점이 돌가루처럼 날렸다.

 그오오오오오!

 카프레가 손을 내밀어 노인들을 가리켰다.

 환단을 먹은 미라들은 왕을 알아보고,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새롭게 소환된 세 미라는 파라오라고 불리는 이집트의 왕들이다.

 다른 미라들은 그들의 백성인 셈이다.

 미라들은 빽빽한 걸음으로 걸어가 장벽처럼 멘카우레의 앞을 가로막았다.

 휘아아악!

 칼날처럼 거친 바람이 미라들의 몸뚱이에 부딪히며 찢어지는 파음을 일으켰다.

 하지만 멘카우레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봉황의 바람은 돌처럼 변한 미라들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렇구나. 돌처럼 딱딱해진 미라들에겐 바람이 먹히지 않아. 저 파란 미라는 그걸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그 이상한 것을 미라들에게 먹였던 거야.’

 미라들이 이상하게 행동했던 이유를 알게 된 경애는 팔 위로 소름이 오싹 돋았다. 죽음에서 부활한 미라들은 좀비처럼 멍청하지 않았다. 그들은 생전의 힘과 지능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크와아아!

 바람 공격이 막히자 멘카우레가 부활했다. 그는 입을 크게 부풀리며 들판을 달리는 물소처럼 노인들에게 달려들었다.

 “막아라!”

 노인들은 총력을 기울여 화염을 쏟아 냈다. 하지만  방패막이 역할을 수행하는 미라들을 걷어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멘카우레는 너무도 손쉽게 노인들 앞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카악!

 큰 입이 쩍 벌어졌다.

 턱 위는 그대로인데, 턱 아랫부분이 고무처럼 수십 배나 쩍 늘어났다. 대여섯 사람을 단번에 삼킬 수 있을 정도의 크기.

 “이놈!”

 병철이 달려들었다.

 그는 나는 듯이 허공을 밟고 달려와 노인들을 덮히는 멘카우레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카각!

 탁한 소음.

 멘카우레의 머리가 흔들렸다. 

 하지만 별반 타격을 받지 않는 듯,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이, 이놈이!”

 병철은 두 주먹을 풍차처럼 휘돌리며 멘카우레의 정수리를 집중 공격했다.

 퍼퍽! 퍼퍼퍼퍽!

 회색 붕대가 풀리고,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머리가 드러났다. 반쯤 썩어 있는 살이다.

 주먹을 휘두르자 퍼석퍼석 과자처럼 부서졌다.

 머리통이 박살날 때마다 멘카우레의 몸이 움찔움찔 흔들렸다. 하지만 고통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미 죽은 자.

 수천 년 전, 이집트의 파라오 중 하나로, 가장 아름다운 피라미드 아래 잠든 왕이다.

 죽은 자에게 육체의 손상은 큰 의미가 없다.

 영혼이 존재할 그릇으로의 가치만이 있을 뿐.

 병철의 공격은 멘카우레의 육체를 훼손시켰지만 육체를 움직이고 있는 영혼에겐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결국 노인들은 멘카우레의 입으로 빨려들어 갔다.

 “아아.”

 병철의 입에서 아득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결국 그를 막지 못했다.

 가문의 존장들이 사악한 미라에게 산 채로 먹히는데도 막지 못하다니, 두 눈 벌겋게 뜨고 그 참혹한 모습을 봐야 했던 그의 가슴이 칼로 난도질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아파 왔다.

 아득한 절망감.

 그때였다.

 “무지개!”

 낭랑한 음성과 함께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작살처럼 날아들었다. 화살처럼 빠르고 안개처럼 광범위하게 뻗어 온 그것은 노인들을 삼키는 멘카우레의 아가리 사이로 파고들어 솜처럼 뭉쳤다. 

 목구멍이 콱 막혀 버렸다.

 멘카우레는 무지개의 방해로 노인들을 삼킬 수가 없었다.

 그 사이 노인들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경애!”

 병철이 놀란 음성으로 소리쳤다.

 경애였다.

 이번에도 그녀가 위기상황에서 나선 것이다.

 키아아아악!

 멘카우레는 발버둥을 쳤다.

 입 안에 가득한 무지개의 기운은 미라의 혼탁한 주술의 힘과 절대 상극이었다.

 무지개에 닿은 살이 줄줄 녹아내렸다.

 ‘좋아. 할 수 있겠어.’

 경애는 자신감을 얻었다.

 처음 멘카우레의 막강한 위용을 보았을 때만 해도 일말의 불안이 남아 있었다.

 ‘과연 무지개로 저 무시무시한 괴물을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의 생각보자 무지개는 강했다.

 아니, 발전하고 있었다.

 무지개는 그녀의 정신적 성숙과 더불어 무한히 능력을 확장한 것이다.

 크와아!

 멘카우레는 불같이 분노했다.

 금방이라도 피를 쏟을 것 같은 두 눈에서 독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전신을 푸들푸들 떨더니 어깨와 배가 가로로 쩍 갈라지며 새로운 입이 생겼다.

  징그럽다. 특히 배에 생긴 입은 징그럽다 못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입술처럼 쩍 갈라진 배 안으로 텅빈 뱃속이 보인다.

 죽은 자를 미라로 만들기 전, 우선적으로 행하는 시술이 바로 내장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제거된 내장은 특별한 작업을 거쳐 밀봉된 항아리에 담긴다.

 주술로 인해 강제로 깨어난 파라오들은 당연히 내장을 가지지 못한 빈껍데기뿐이었다.

 “헉!”

 경애는 화들짝 놀랐다.

 설마 배에 입이 생길 줄이야.

 더더욱 놀라운 것은, 배에 생긴 입조차 밑 부분이 길게 늘어진다는 점.

 턱 아래가 늘어나 길게 출렁거리더니, 이번엔 배가 또 그런 모양이다. 꽃다운 나이의 경애에겐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징그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경애가 움찔하며 잠시 공세를 늦추었다. 때는 이때라는 듯. 멘카우레가 즉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카아악!

 추악하게 열린 배가 그녀의 머리를 통째로 삼키려 들었다. 위액 대신 모래가 좌르르 쏟아졌다.

 “무, 무지개!”

 무지개가 방패 모양으로 뭉쳤다.

 콰앙!

 “꺄악!”

 멘카우레와 무지개가 부딪히자 경애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땅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크아앙!

 길게 울부짖은 멘카우레는 한층 기세가 올라갔다.

 그의 팔이 길어지더니 짐승처럼 네 발로 뛰었다.

 턱ㅇ느 늘어날 대로 늘어나, 이젠 거의 자신의 키만해졌다. 네 발로 뛰어다니니 늘어난 턱은 자연히 땅 위에 질질 끌리게 되었다.

 흙과 침이 지저분하게 한데 섞였다.

 “징, 징그러!”

 경애는 자지러질 듯 놀랐다.

 무서운 것도 잘 참고, 힘든 일에도 익숙하지만 징그러운 것만은 절대로 사양이다.

 그런 그녀에게 멘카우레는 가히 최악의 적이라 할 수 있었다.

 샤르륵!

 무지개가 그녀의 등 뒤로 응집되면 날개 형태로 변형되었다.

 콰악!

 멘카우레가 경애를 덮쳤다. 하지만 그보다 한발 앞서 경애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다, 다행이다.”

 경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칫했으면 흉측한 괴물의 입속에 들어갈 뻔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이 식은땀으로 촉촉해진다.

 경애가 멘카우레의 흉측한 모습에 예상외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즈음, 멘카우레와 함께 소환된 두 미라 중 카프레가 다른 주문을 외고 있다. 

 카프레는 생전에 주술사적 기질이 뛰어난 자였다. 죽은 후에도 그런 능력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었다. 

우워어어어어!

 그가 두 팔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어둠이 내리깔린 하늘 위에서 한 줄기 붉은 광채가 드리워졌다. 

 카프레의 주문이 한층 음악해졌다.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 

 그의 주문은 이미 언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영력으로 직접 전해지는 영언인 것이다.

 허나 이곳에 자리한 사람들은 모두 능력자들.

 카프레의 영언을 들을 수 있었다.

 “오라. 태양의 수호신이여. 위대한 라의 상징이여. 왕의 증표여. 성스러운 태양을 품은 황금사자여.”

 거창한 주문이 끝나자마자 붉은 광채에서 칙칙한 황금빛이 흘러 나왔다. 그것은 태양빛에 반사되는 사막의 모래처럼 어둡고 혼탁한  황금색이었다.

 크아아아!

 우렁찬 포효가 울려 퍼졌다.

 굶주린 짐승의 포악한 외침이었다.

 황금빛이 짙게 응축되며 형태를 이루었다.

 사자?

 아니, 그것은 짐승이되 짐승이 아닌 존재.

 사자의 몸에 인간의 머리를 한 괴물.

 스핑크스.

 피라미드의 수호신, 스핑크스가 나타난 것이다.

 짐승과 같은 울부짖음을 토한 스핑크스는 굶주린 야수처럼 곧장 경애에게 달려들었다.

 “우왓!”

   경애는 경호성을 지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하지만 날 수 잇다고 안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카프레가 주문을 외우자 스핑크스의 몸통에서 날개가 돋아났다.

 “사기야!”

 경애는 비명처럼 외쳤다.

 그러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섰다.

 멘카우레는 징그러워서 도망쳤지만, 스핑크스는 다르다. 무섭긴 해도 최소한 징그럽지는 않으니까.

 공포라면 이미 마계에서 신물 나게 경험했다.

 “무지개!”

 그녀가 힘껏 외치자 날개의 일부가 촤르르르 밀려 나가며 망치 모양으로 뭉쳤다.

 콰앙!

 갑자기 나타난 망치에 미간을 찍힌 스핑크스는 온몸을 뒤틀며 괴롭게 울부짖었다.

 “좋아!”

 경애는 쾌재를 부르며 먹이를 덮치는 매처럼 활강, 연속적으로 무지개를 쏘아 냈다.

 창, 칼, 해머, 채찍, 쇠사슬...... .

 무지개는 다양한 형태로 변하며 스핑크스의 몸통을 사정없이 유린했다.

 스핑크스는 펄쩍 뛰며 저항했지만, 다양한 그녀의 공격을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의외로 경애는 이런 식의 격전에 대한 경험이 풍부했다. 

 마계에서 허송세월만 보낸 것은 아니다.

 “괴물, 꺼져!”

 야구배트를 휘두르듯 손을 크게 휘두르자, 거대한 해머모양으로 뭉쳐 있던 무지개가 스핑크스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키아앙!

 스핑크스의 큰 동체가 허공으로 불쑥 솟았다가 지면으로 곧두박질 쳤다. 이번에는 큰 충격을 받은 듯, 괴롭게 꿈틀거리더니 축 늘어져 버렸다.

 스핑크스(Sphinx)

 기원은 고대 이집트.

 중국의 용이나 우리나라의 봉황처럼 왕조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수다.

 현재까지 발견된 스핑크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제 4왕조(BC2650년경) 파라오 카프레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로 몸 전체 길이가 70m에 이른다.

 스핑크스는 지평선상의 매, 태양신의 상징이라고 불린다.

 ‘아침에는 네발, 점심에는 두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으로 유명하다.

 하여간 기원이 어찌 되었건 간에 그렇게 대단한 스핑크스가 경애의 손에 무참히 패배해 버렸다.

 격전을 치를수록 그녀의 능력은 눈부신 정도로 빠르게 발전했다. 이제는 감히 신급의 경지를 넘보는 수준이 되었다. 

 “예쓰!”

 경애는 주먹ㅇ르 불끈 쥐었다.

 사악한 마수를 물리쳤다. 역시 정의는 승리한다.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다시금 멘카우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내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으......징그러.”

 하늘을 치솟던 정의감은 또다시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아무리 용기를 짜내도 멘카우레의 흉측한 모습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함몰된 코뼈와 퀴퀴한 곰팡이 냄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든다.

 “으으. 도저히 거거랑은 못 싸우겠어.”

 하지만 멘카우레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카아아악!

 경애가 피하자 그는 오히려 길게 괴음ㅇ르 토하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쭉 늘어난 턱은 허리 아래에서 덜렁거렸다.

 “어머나!:

 경애는 기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 와중에도 손을 내밀어 무지개를 발출했다.

 chkdkdkdkr!

 사방으로 그물처럼 뻗어 나간 무지개가 멘카우레를 휘휘 감쌌다.

 킥! 키기긱!

 멘카우레는 급한 신음을 흘리며 온몸을 뒤틀었지만, 그럴수록 무지개는 오히려 그를 끈적끈적하게 휘감았다.

 멘타우레를 감싼 무지개는 징그러운 모습ㅇ르 보고 싶지 않다는 경애의 표출하듯, 미라의 흉한 몸을 촘촘하게 감쌌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얀 무지개로 칭칭 감긴 모습은 누에의 고치를 연상케 했다.

 “어라?”

 눈을 가린 손가락 틈 사이로 멘카우레의 모습을 확인한 경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조심스럽게 다가간 그녀는 고치가 되어 뒹굴고 있는 멘카우레의 몸을 손가락으로 찔러 보며 신기하게 생각했다.

 “뭐, 어쨌든 징그러운 미라가 해결되었으니 다행이야.”

 손바닥을 툭툭 털며 안심하는 경애였다.

 하지만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그녀와 달리 멘카우레는 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괴로워했다.

 경애의 무지개는 신성한 기운을 품고 있어, 사악한  미라에겐 그야말로 상극이었다. 그런 상충된 기운이 전신을 감쌌으니, 멘카우레는 용광로에 떨어진 것 같은 고통을 받게 되었다.

 실제로도 멘카우레의 몸은 무지개의 신성력에 의해 줄줄 녹아내리고 있었다. 

 혈투가 이어ㅣ던 장소에 돌연 정적이 흘렀다.

 압도적인 무력을 과시하던 스핑크스와 멘카우레가 여리게만 보이는 소녀에게 당한 것이다. 그것도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비록 경애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간단한 손짓 몇 번으로 미라들을 쓰러트린 것처럼 비쳐졌다.

 “허어.”

 “저럴 수가!”

 “저 아이가!”

 병철을 위시한 중인들은 모두들 경탄이 가득한 눈으로 경애를 보았다. 악몽과 같은 이집트의 괴물들을 저리도 쉽게 제압하는 자가 있을 줄이야.

 게다가 그 당사자가 아직 어린 소녀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 저 아이는 대체 누군가? 누구의 여식이지?”

 노인 중 하나가 병철에게 물었다.

 병철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던 것이다.

 능력이 없어 가문에서 내쳐졌던 아이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첩의 자식으로 성마저 어머니를 따라야 했던 아이라고 말해야 할까?

 시련이란 이름하에 비참한 운명을 걸어야 했던 불쌍한 아이라고?

 병철은 고개를 내저었다.

 차마 고집스런 노인들에게 그런 말을 전할 수가 없었다. 황혼기를 지나는 그들에게 짐을 넘기는 것 같아 싫었다.

 “휴.”

 답답한 한숨이 그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마음이 무겁다.

 뭉클.

 가슴이 응어리지고, 목구멍으로 무언가가 울컥하고 솟구친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감상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누비스가 소환한 미라들의 왕은 총 셋. 그중 고작 하나만이 처리되었을 뿐이다.

 그오오오!

 탁한 외침이 일었다.

 그것도 울음과도 같은 긴 장소성이었다.

 세 미라 중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쿠프.

 소환된 파라오들 중 가장 오래된 자가 마침내 움직였다.

 창노한 외침으로 왕의 출현을 알리고, 둔탁한 발걸음이 왕의 진노를 울부짖는다.

 그아아아!

 쿠프가 두 손을 펼치자, 그의 몸이 모래로 변하여 성난 파도처럼 노인들을 덮쳤다.

 “으악!”

 “어허어어!”

 노인들은 비명을 질렀다.

 머리 위에 덮쳐 오는 모래의 파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망둬.”

 뽀족한 외침과 함께 경애가 나섰다.

 무지개를 고무줄같이 엮어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노인들 틈으로 파고든 그녀는 무지개를 둥근 장벽처럼 주위에 둘렀다.

 후두두두둑!

 무지개가 펼쳐 낸 장벽에 모래가 떨어지며 한밤에 내린 소나기와 같은 시끄러운 소음을 일으켰다.

 “윽.”

 모래의 충격을 이기지 못한 경애가 신음을 삼키며 무릎을 꿇었다.

 아프다. 고통스럽다.

 무지개에 모래가 부딪힐 때마다 자신의 피부가 뜯겨지는 것처럼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모래파도의 공격을 버텨 냈다.

 “아, 아가야.”

 “괜찮으냐?”

  노인들이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며 물었다.

 만약 그녀가 나서지 않았다면 노인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괜찮아요.”

 노인들의 염려에 경애는 애써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온몸이 통째로 뜯겨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이를 얼마나 꽉 다물었는지 입술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샤아아!

 파도처럼 몰아쳤던 모래들이 썰물처럼 뒤로 물러났다.

 일시에 물러난 모래들은 한곳에 뭉치며 인간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 위에 칙칙한 회색 붕대가 감겼다.

 쿠프.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그의 능력을 모래.

 그의 육체는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휴.”

 간신히 쿠프의 공격을 막은 경애는 가쁜 숨을 쉬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린다.

 쿠프를 막아야 하는데,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대체 파도처럼 밀려드는 모래들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함께 소환된 카프레도 마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음악한 주술로 미라들을 조종했던 그가 이번에는 더 장대한 주문을 외웠다. 

 크와아아!

 쿠프는 카프레의 지원에 힘을 얻은 듯 더더욱 기세를 올렸다.

 모래로 변한 그의 육신이 해일처럼 치솟아 올랐다.

 “아아.”

 경애는 답답한 신음성을 토했다.

 머리 위를 덮쳐 오는 모래더미를 보며 경애는 암담함을 느꼈다.

 ‘무슨 이런 괴물 같은 자가.’

 세트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괴물이다.

 이런 자는 처음이다.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

 무적을 자랑하던 블러드샌드다.

 날카로운 모래로 적의 표피를 찢어발기고, 흡혈박쥐처럼 피를 빨아먹는 붉은 모래.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잡았을 때에나 가능한 얘기다.

  놈은 너무도 빨랐다.

 모래가 일어나는 순간, 이미 그의 배후로 이동하여 차갑고 잔인한 음성으로 귓가에 속삭인다.

 “죽을 준비는 되었는가?”

 “으아아아아아!”

 세트는 괴성을 질렀다.

 공포. 전율. 좌절, 광기.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을 줄 알았던 여러 절망적인 감정들이 그를 만나자마자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난생 처음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누비스와 세크메트의 상황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 두 녀석 때문에 일을 망치게 될 줄이야.’

 병규와 경애에 대한 정보는 전혀 듣지 못했다. 

 설사 들었다 한들 오만한 세트는 무시했을 것이다.

 불안, 초조, 두려움.

 극도로 조여 오는 압박감이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모조리 죽여 주마!”

 그는 광분하며 붉은 모래를 광범위하게 일으켰다.

 불길같이 일어난 모래가 하늘을 자욱하게 뒤덮었다. 숲과 가옥들이 붉은 모래바람에 상처를 입었다.

 “크하하. 황혼과 같은 신의 저주를 받아 보아라. 크하하하하.”

 그의 오만한 웃음 속에 절대자의 광기가 묻어 있었다.

 병규를 잡는 대신 주위의 모든 것을 싸그리 날려 버릴 생각인 것이다. 부옇게 일어난 붉은 모래는 태씨 문중의 하늘을 완전히 뒤덮었다.

 “가소롭군.”

 병규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그는 여태 구경이라도 하듯 팔짱을 끼고 세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과연 어떤 발악을 할 것인지 궁금했다. 어쩌면 그를 긴장시킬 만한 대단한 능력을 보여 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기대마저 있었다.

 헌데....... .

 “이 따위 모래로 감히 허튼 망상을 품었느냐?”

 실망이다.

 고작 이 정도로 절대자란 말을 입에 올리다니.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비틀린 입가에선 냉기마저 느껴진다.

 냉혹하고, 차갑고, 잔인하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그의 마성은 사랑하는 연인의 손에 의해 파괴되었다. 하지만 마왕으로서 경험한 그 숱한 기억들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출렁이는 그의 그림자가 절망의 군주를 그린다.

 스윽.

 가볍게 들린 손이 허공의 한 점을 짚고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내리그었다.

 “주저앉으라.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망을 노래하라.”

 쿠쿠쿵!

 충격파가 병규를 중심으로 파도처럼 주위로 뻗어 나갔다. 그렇게 퍼져 나간 충격파는 하늘을 시뻘겋게 물들인 모래들을 강제로 끄집어내려, 병규의 발 아래 무릎 꿇렸다.

 구름처럼 일어난 모래들이 안개처럼 바닥에 깔렸다.

 부스스 떨고 있는 모래폭풍.

 그 모습은 마치 신에게 경배하는 광신도들 같았다.

  “크흐흐흐.”

 병규는 나직하게 웃었다.

 그의 음성에 사요한 악마가 깃들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병규의 얼굴은 다시 무표정하게 변했다.

 사라졌다.

 세트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모래바람으로 병규의 이목을 돌린 후, 몰래 빠져나간 것이다.

 “치졸한 녀석이군.”

 실룩.

 병규의 입가에 조소가 어린다.

 위대한 신급 능력자라며 으스대던 녀석의 긍지란 게 고작 이 정도인가.

 눈을 감았다.

 그는 모든 추악한 자들의 왕.

 눈을 감고 욕망을 찾았다.

 가까운 곳에 큰 욕망덩어리가 둘.

 아누비스라는 자와 세크메트라는 여자다.

 이들의 욕망은 혼탁한 색을 띠고 있었다.

 집착, 욕심, 세트에 대한 비이상적인 충성심이 복잡하게 한데 얽혀 있다.

 그리고 멀리, 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도로 큰 욕망이 감지되었다.

 붉다.

 지독하게 붉은 색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하다. 피로 물든 권력욕이다. 

 야망을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까.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그것은 복수심과 시기로 일그러져 있었다.

 세트.

 놈이다.

 “얼마 가지도 못했군.”

 추악한 욕망을 품은 이상 병규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병규는 비릿하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 저열한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 놓으리라. 

 “꺄아아악.”

 갑자기 들려온 비명성. 병규는 발을 우뚝 멈췄다.

 그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이 목소리. 귀에 익다. 머리끝까지 들어찼던 사악한 심성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한 가닥 평온한 이성이 돌아왔다.

 그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경애.

 아누비스를 상대로 선전하던 그녀가 파라오의 왕들을 맞아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해일처럼 일어난 회색 모래가 그녀를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병규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그의 눈으로 본 경애의 실력은 결코 파라오들의 아래가 아니다.

 무지개의 무궁무진한 활용성에 비하면 파라오들의 능력이란 무식할 정도로 단순하지 않은가.

 문제는 그녀에서 짐이 있다는 점이다.

 경애는 노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질끈 다문 입술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어떻게든 반격을 꾀하고 싶은데, 노인들을 보호하느라 도저히 여유가 생기질 않는다.

 파라오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노인들에게 공격을 집중했다.

 스윽.

 병규는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세트 따위는 언제라도 잡을 수 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지나는 길에 세크메트와 치열하게 싸우는 병문의 모습이 보였다.

 큰형.

 불의 능력으로 살육의 암사자를 몰아붙이고 있었지만, 세크메트는 끈질기게 저항했다. 워낙에 저항이 심한지라 병문은 압도적인 능력을 가지고도 세크메트를 쉽게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다.

 “키앙!”

 병규의 기척을 느낀 세크메트가 돌연 몸을 돌렸다.

 암팡지게 울고 있긴 하지만 나약한 발악에 불과하다.

 부들부들.

 다리가 떨리고 있다.

 맹수의 날카로운 직감으로 병규의 거대한 존재감을 느낀 것이다.

 너무나 두려워서 오히려 이빨을 드러내며 반항하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처럼.

 “넌 짐승이로구나.”

 병규는 그녀를 보고 차갑게 웃었다.

 세크메트.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이었던 그녀는 무도한 인간들을 징벌하기 위해 암사자로 변하여 지상으로 내려왔다. 살육의 여신을 수호신으로 모신 그녀는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추악한 자여. 왕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복종하라.”

 병규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가련하구나. 헤매는 아이여.”

 병규의 손을 타고 세크메트의 머릿속으로 검은 기운이 스며들었다.

 암흑은 그녀의 혈관을 타고 몸을 돌아 심장과 뇌에 이르렀다.

 이 두 곳에서 이물질이 발견되었다.

 벌레.

 ‘고’라고 불리는 몹쓸 녀석이다.

 “이제 너를 옭아매고 있는 속박이 풀릴 것이다. 그만 아공에서 깨어나거라.”

 찌극.

 암흑이 벌레를 눌러 죽였다.

 벌레들이 사라지며 지른 비명이 천둥소리처럼 그녀의 뇌리를 왕왕 울렸다.

 “아아.”

 영혼의 속박이 사라졌다.

 그녀는 ‘고’라고 불리는 벌레에 의해 정신을 지배당했다.

 그래서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이 짐승으로 변하여 악의 신인 세트의 명령을 받은 것이다.

 이제 해방되었다.

 세크메트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병규에게 감사했다.

 병규는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대체...... .”

 병문은 경악한 얼굴로 병규를 보았다.

 “대체 넌 누구란 말이냐?”

 과연 지금의 병규가 자신이 알고 있던 막내 동생이 맞을까?

 무능력하다는 이유로 가문에서 내쳐졌던 그 아이란 말인가.

 처음 그가 세트의 앞을 가로막았을 때만 해도 그의 무모한 행동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불쌍한 막내 동생이 한순간의 호승심을 참지 못하고 죽을까 봐 걱정했다.

 세트가 누군가.

 잔인한 이집트의 신급 능력자로, 봉황의 가호를 받은 자신조차 승부를 장담할 수 엇는 절대의 능력자다.

 아니,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문의 존장들과 병철의 힘까지 모조리 빌려야 간신히 평수를 유지할 수 있을까?

 적어도 봉황의 권능을 완전히 깨닫지 못한 자신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런데 그런 가공할 상대의 앞을 병규가 가로막은 것이다.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가문에서 쫓겨난 막내 동생이.

그런데 결과는 그의 우려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병규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세트를 패퇴시키고, 세크메트 마저 굴복시켰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심지어 그는 지금의 병규가 과연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소심하고 내성적인 동생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아니, 과연 그가 인간이긴 한 걸까?

 서늘한 전율에 등골이 오싹했다.

콰우우우우!

 폭풍이 몰아쳤다.

 거센 바람 속에 칼날 같은 모래가 섞여 있었다.

 “꺄악!”

 경애는 비명을 질렀다.

 무지개로 감싼 영역을 모래들이 송충이 떼처럼 갉아먹으며 들어온다. 마치 제 피부가 긁히는 것처럼 온몸이 따갑고 쓰라리다.

 묵직한 중량감에 허리가 아파 온다.

 무지개의 저항도 만만치는 않았다.

 모래에 깎여 나간 무지개의 입자는 풀처럼 모래로 엉키며 쿠프의 지배력을 약화시켰다.

 마치 몸속으로 침투한 병균과 백혈구 사이의 치열한 전쟁을 보는 것 같다.

설상가상.

 쿠프 하나만으로도 벅찬 형국에 간신히 쓰러트린 강적이 부활하고 말았다.

 경애가 무지개를 총동원하여 노인들을 보호하는 통에, 멘카우레의 봉인이 약해져 버렸다.

 그아아아아!

 고치처럼 감싸고 있던 무지개를 뜯어낸 멘카우레는 온몸에서 진물을 뚝뚝 떨구며 흉측한 모습을 마음껏 과시했다.

 끄그그그.

 경애를 보는 멘카우레의 눈빛에 독기가 가득하다.

 여기에 카프레마저 악독한 주문으로 새로운 마물을 소환하고 있었다.

 경애로서는 울고 싶을 만큼 최악의 상황이었다.

 “크하하하. 하찮은 계집아, 이제 후회하느냐? 하지만 이미 늦었느니. 위대한 태양신으 위엄 아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해라. 크하하하하하.”

 아누비스는 기고만장하여 소리쳤다.

 과연 파라오의 왕들은 위대하다. 저 발칙한 계집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제 복수는 시간문제다.

 아누비스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불행하게도 전혀 새로운 존재가 파라오의 지배권 안으로 불쑥 찾아들었다.

 그것은 지독하게도 어두운 암흑이었다.

 “누가 감히 위엄을 말하는가?”

 황혼을 밀어낸 밥의 어둠과 함께 마왕이 강림했다.

 츠츠츠츠츠.

 어둠이 숨을 죽이며 그의 발 아래로 숨어들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으며 쿠프의 모래들을 걷어냈다.

 그어어어!

 모래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갑작스런 마성의 침입에 항거하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어둠은 무자비했다.

 “깨져라.”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모래 알갱이에 달라붙은 어둠이 일그러졌다.

 파파팡!

 모래들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밤하늘을 수놓는 폭죽처럼 화려하게.

 잘게 부서진 모래들이 가루가 되어 날렸다.

 간신히 살아남은 모래들은 황급히 한데 모이며 모양을 갖추었다.

 쿠프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방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해졌다.

 3미터가 훌쩍 넘던 신장은 채 1미터도 남지 않았다.

 탄탄해 보이던 몸도 약골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빈약해졌다.

 육체를 구성하던 대부분의 모래들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저벅저벅.

 암흑을 이끌어 불길같이 피어오르던 모래들을 산산이 박살내며 병규가 그들 사이에 등장했다.

 모두들 숨을 죽였다.

 파라오들 중에서 가장 큰 권세를 자랑하던 쿠프마저도 몸을 움츠린 채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병규의 존재감이 장내의 모든 이를 압박했다.

 특히 미라들에게 쏟아지는 압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파라오들을 위시한 미라들은 머리 위를 누르는 지극한 힘에 허리조차 제대로 펼 수 없었다.

 크워어어!

 멘카우레가 발악하듯 일어나 그에게 달려들었다.

 “지독하군.”

 병규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멘카우레에게서 풍기는 생선 썩은 내 같은 독한 악취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덜컥!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 멘카우레가 입을 벌렸다. 턱뼈가 빠지며 주욱 늘어난 아래턱이 허리 밑에서 흔들거린다.

 그대로 병규를 한 입에 삼킬 듯한 기세.

 꿈틀.

 병규의 눈썹이 역팔자로 크게 휘어졌다.

 “갈라져라.”

 가볍게 발을 디뎠다.

 콰드득!

 발밑의 땅이 아가리를 벌린 괴물처럼 좌우로 쩍 갈라졌다.

 맹렬하게 달려오던 멘카우레는 갑작스레 갈라진 땅의 균열을 피할 수 없었다. 벌어진 땅 속으로 하체가 쑥 빠져 버렸다.

 크와아아!

 땅위로 올라오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갈라진 땅속은 깊은 늪처럼 그의 몸을 끌어당겼다.

 병규는 무심한 얼굴로 멘카우레의 이마를 발로 밟았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라, 저 아래 깊은 땅속이야.”

 우지직!

 소름끼치는 소음과 함께 나무가 꺾이듯, 멘카우레의 머리통이 뒤로 넘어가 버렸다.

 땅속에 갇힌 몸뚱이가 바들바들 경련을 일으켰다. 그 모습이 보기 싫었던 듯, 병규는 갈라진 땅을 벌렸다 다시 합쳐 멘카우레를 지하 깊은 곳으로 매장시켰다.

 멘카우레는 그렇게 지옥으로 떨어졌다.

 “마, 맙소사.”

 병철의 입에서 경악성이 튀어나왔다.

 놀란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노인들 역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멘카우레가 누군가.

 이집트의 파라오 중 하나로서 막강한 능력을 과시하던 미라다.

 그런 괴물을 이렇듯 간단히 처치하다니.

 온 힘을 다하여 처절하게 저항하던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다. 더러 기운에 민감한 노인들은 병규의 전신에서 쏟아져 나오는 거대한 암흑에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

 “맙소사. 대체 누구냐? 누가 저런 괴물을 이곳에 불러온 거냐! 누가 저승에서 돌아온 자를 없애려고 지옥의 군주를 소환한 것이냔 말이다!”

 크와아아!

 멘카우레가 갈라진 땅속에 묻히자 카프레는 길고 긴 울분을 터트렸다.

 원통하고 분하고 억울하다.

 그는 무릎을 꿇고 두 팔을 하늘로 추켜들며 처절한 음성으로 외쳤다. 가장 강력한 주문이 울음에 섞여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태양의 신하들아. 부활의 때를 기다리는 충실한 자식들아. 지하에서 일어나 이곳에 강림하라.”

 어둠 속에서 황금빛 수십 줄기가 떠올랐다.

 빛줄기 속에서 괴물들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스, 스핑크스!”

 경애의 입에서 경악성이 튀어나왔다.

 한 마리만으로도 고전을 면치 못했던 괴물이 수십 마리나 한꺼번에 소환된 것이다 

 소환된 스핑크스들은 가지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얼굴을 한 녀석부터, 개나 매의 머리를 달고 있는 녀석까지.

 날개를 가진 녀석과 꼬리가 뱀으로 되어 있는 녀석도 있다.

 그렇게 다양한 모양의 스핑크스가 무려 30마리.

 뛰어난 지능을 자랑하는 녀석들은 맹수들처럼 성급하게 달려들지 않았다.

 병규를 빙 둘러싼 채, 틈을 노력T다.

 그때 멘카우레를 매장한 병규가 걸음을 옮겼다.

 그는 곧장 카프레를 향하고 있었다.

 스핑크스들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크아앙!

 성난 스핑크스들은 일제히 그의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육중한 괴물들. 몸길이 70미터의 괴물이다.

 신장 2미터도 되지 않는 사람에 비하면 엄청나게 거대한 녀석들인 것이다.

 그런 괴물들이 한꺼번에 수십 마리가 뛰어올랐으니, 병규의 모습은 금세 스핑크스들에 의해 파묻혀 버리는 듯했다.

 “허억!”

 “벼, 병규야!”

 병문과 병철의 입에서 헛바람 소리가 토해졌다.

 그들의 노리에 늑대 무리에게 갈가리 찢겨지는 오리의 영상이 떠올랐다. 지금 병규의 상황이 꼭 그 짝이 아닌가.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어 신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한 가닥 음성에 그들은 다시금 눈을 번쩍 떠야 했다. 

 “걸리적거리는군.”

 느긋한 음성이었다.

 사실 그는 이 앵앵거리는 고양이 떼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먼지를 털어 버리듯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풀럭.

 가벼운 손바람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어난 마왕의 권능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허공에 물방울이 맺히더니 삽시간에 안개로 돌변하고, 곧이어 서리가 내렸다.

 아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서리는 시작에 불과했다.

 폭풍 같은 바람이 불었다. 어느새 서리는 눈으로 변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물방울이 서리를 거쳐 눈보라로 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눈 한 번 깜빡할 정도의 찰나.

 흉포한 괴성을 토하며 병규를 덮쳐 가던 스핑크스들에게 갑자기 불어 닥친 눈보라는 한 마디로 말해 재앙이었다.

 사막의 수호신인 그들이 어디서 눈보라를 경험해 보았겠는가.

 게다가 눈보라에 포함된 수분과 얼음알갱이는 그들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래에 치명적이었다.

 폭풍에 함유된 습기가 모래뭉치 속으로 스며들고 차가운 냉기와 더불어 급속하게 얼어 버린다. 스핑크스들은 달려들던 자세 그대로 거대한 얼음조각상이 되어 버렸다.

 땅으로 곤두박질친 스핑크스 조각상들은 요란한 소음과 함께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단 한 번의 손바람으로 어렵게 소환된 스핑크스들의 절반이 박살났다.

 나머지 스핑크스들은 곧장 꼬리를 내리고 병규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채 힐끔힐끔 그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병규는 무도한 짐승들을 이대로 용서해 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감히 그의 앞을 가로막다니.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쿠쿠쿵!

 엄청난 압력이 쏟아졌다.

 스핑크스들은 고래를 땅으로 처박으며 괴로워했다.

 앞으로 내민 손을 천천히 감아쥐었다.

 그에 따라 스핑크스에게 전해진 압력들도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졌다.

 쿠드드드드드!

 끼이잉!

 캉캉!

 스핑크스들은 압력에 눌려 사지를 버둥거렸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하중에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급기야 병규의 손이 주먹의 형태로 뭉쳐졌다.

 콰드드득! 우득! 크드득!

 끔찍한 소음과 함께 스핑크스들의 몸뚱이가 모조리 지면에 뭉개져 버렸다. 압력이 얼마나 강했던지 뭉개진 몸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아아.”

 카프레는 몸을 벌벌 떨며 지면에 엎드렸다.

 병규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다 가법게 손을 저었다.

 카프레의 발밑, 그의 그림자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마계의 혈계, 디바울에게서 복제한 융해약.

 그 능력이 그림자를 통해 발현된 것이다.

 그아아아!

 카프레는 온몸을 뒤틀며 애원했지만 병규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웅해액은 빠르게 카프레의 육체를 잠식해 나갔다.

 발이 녹고, 무릎이 녹았다.

 허리까지 멀건 액체로 녹아내리기까지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아 끄어어어!

 카프레는 하체가 녹은 용액 속에서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아득한 저승으로 다시금 끌려가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병규는 조용하고 사악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고약한 냄새로군. 아무래도 이곳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구나.”

 병규는 발로 카프레의 머리를 밟고 힘을 썼다.

 츠아아아악!

 카프레의 상체가 융해액으로 밀려들며 고약한 악취를 풍겼다.

 끄워어어어!

 카프레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한줌의 독수가 되어 녹아 버렸다.

 “자, 이제 하나 남았군.”

 병규가 고개를 돌린다.

 멘카우레는 목이 꺽인 채, 생매장되었고, 카프레는 전신이 녹아버렸다. 이제는 쿠프 하나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끼아악!

 병규의 시선을 받은 쿠프는 기겁하며 허겁지겁 도망치려 했다.

 “죽은 잗 공포를 아는가? 유치하군.”

 병규의 그림자가 쭉하고 늘어났다.

허겁지겁 도망가던 모래뭉치를 덮쳤다.

 퍼퍼퍼펑!

 모래와 겹쳐진 그림자들이 요란스럽게 폭발했다.

 단지 병규의 손짓 한 번에 파라오랍시고 거만을 떨던 쿠프의 몸이 폭탄처럼 터져 나갔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그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모래들이 일제히 터져 버린 것이다.

 가루가 된 모래들은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쓸려 먼지처럼 날렸다.

 “아아아아!”

 아누비스는 제자리에 주저앉으며 혼이 빠진 음성으로 신음했다.

 그는 미친 사라처럼 재가 된 쿠프의 육신을 헤집었다. 풀풀 날리는 모래먼지를 뒤집으며 혼이 빠진 목소리로 애달프게 외쳤다.

 “왕이시여. 왕이시여. 아아. 어찌 이런 일이.”

쿠프가 다한 것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이집트의 사제인 그에게 파라오는 왕 이상의 존재. 그야말로 신과 동격인 존재다.

 쿠프와 두 파라오의 패배는 그가 지닌 신앙의 파멸ㅇ르 의미한다.

 “크흑!" 

 정신없이 모래먼지를 헤집고 있던 아누비스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큭큭! 허헉. 크허억.”

 숨이 격해졌다.

 그의 손이 가슴을 틀어잡았다.

 “시, 심장이.”

 심장이 터질듯이 울렁거린다.

 소환술은 소환자의 육체에 엄청난 무리를 준다. 특히나 파라오같이 강력한 대상은 소환자와 육체적, 정신적으로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그런 파라오들이 무두 죽었다.

 잔인하게.

 그 충격의 반동은 고스란히 소환자인 아누비스에게 돌아갔다.

 쩌걱!

 전신이 쪼개지는 고통.

 손끝에서 머리끝까지.

 프레스로 찍듯이, 조금씩 조금씩 고통이 더해졌다.

 “어찌 세상에 저런 대마왕이...... .” 

 가쁜 숨을 헐떡이던 그는 간신히 이 말만을 남긴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누비스가 머리를 부여잡고 죽어 버리자 미라들 역시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로써 태씨 문중에 불어 닥친 건조한 멸망의 바람은 어둠과 함께 복귀한 마왕의 권능 앞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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