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홀홀홀홀
“크으으으으윽. "
호랭이는 온몸을 떨었다.
이런 환희는 정말로 오랜만이다,
“크아! 반갑다, 담배야. 허허허. 이렇게 좋은 것을.”
호랭이는 담배를 뻑뻑 피워 대며 환희에 몸을 떨었다.
벌써 줄담배로 2갑째다.
그동안 못 피웠던 담배를 모조리 다 피워 버리겠다는 기세로 줄창 담배만 피워 댄다.
작은 호랭이가 담뱃갑을 들고 뒹굴 거리는 모습에 병규는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했다.
한때 긴 머리를 휘날리며 뭍 여성들의 방심을 흔들었던 호랭이는 지구로 귀환한 지 하루 만에 본래의 아기 호랑이로 돌아왔다.
이 모습이 돌아다니기 제일 편하단다.
병규도 그 생각엔 동의했다.
사람으로 변했을 때의 호랭이는 너무 주위의 시선을 받았다.
엄청나게 잘생겼기 때문이다.
인파로 몰린 곳을 거닐어도 마치 닭장 속의 백로처럼 눈에 확 띈다.
얼마 전에 명동 거리에서 사람모습을 한 채 잠시 돌아다닌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몰려든 여성들로 인근에 정체현상까지 벌어졌다.
‘하긴, 저 녀석은 한술 더 뜨지.’
병규는 질투 어린 눈으로 샤바를 쳐다보았다.
샤바야말로 돌풍의 핵이다.
녀석과 함께 걷다 보면 몰려든 여자들로 인해 도저히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몰려든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인공위성 사진으로도 찍힐 지경이다. 한때 뉴스에서도 검은 태풍 운운하며 이 사건을 소란스럽게 보도했었다.
그나마 샤바가 항상 그림자 속에 숨어 다녀서 다행이지 만약 대놓고 돌아다녔다면 큰 사회문제를 야기했을 것이다.
‘그래도 옛날 모습으로 안 변하는 것이 다행이지.’
샤바의 예전 모습을 생각하면 간이 철렁 한다.
더듬이를 삐죽대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소름이 오싹 끼친다.
샤바도 눈치가 아주 없지는 않아 주인의 취향을 읽고 이제는 인간 모습으로 아예 정착해 버렸다.
천만다행이라는 말이 입가를 맴돈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자명종 배틀도 대충 해결방안을 보았다. 수리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채드가 극약 처방을 내린 것이다.
그는 15층의 격벽을 아예 허물어 버리고, 층 전체를 체육관처럼 만들었다.
기왕 놀 것이면 제대로 놀라는 뜻이다.
대신 제한을 두었다.
마법, 신력, 도력의 사용을 금하고 백성과 몬스터들을 참가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한마디로 몸만 쓰라는 소리다.
물론 퀴니는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채드도 이것만은 결코 양보할 수 없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스크래그가 등장할 때마다 빌딩의 외벽이 박살나니, 잘못하면 건 전체가 무너질지도 모를 위기상황이다.
아무리 총수의 말이라도 채드는 눈 딱 감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퀴니의 ‘미워~!’ 한 방에 가슴을 부여잡고 응급실로 실려 가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이 일로 병규는 채드를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비록 로리 취향의 변태지만, 돈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남자라고.
“아무래도 삼신님을 뵈러 가야 할 것 같다.”
아침부터 줄담배를 피워 대던 호랭이가 뭉그적거리며 한마디 했다.
“삼신할매요?”
병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미친 듯이 담배를 피워 대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삼신할매를 만나야겠다니.
“무슨 일이신데요?”
“별건 아니다. 그저 몇가지 보고할 게 있어서 말이다.”
별것 아이라는 말과 달리 호랭이의 표정에는 자뭇 비장감이 어려 있었다. 아침부터 줄담배를 피워 댄 행동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 그래요? 잘됐네요. 안 그래도 산책이나 해 볼까 생각하던 참 인데요.”
“엥? 따라오려고?”
“네. 삼신할머니가 어떻게 생긴 분인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병규의 태연한 말에 호랭이는 사색이 되었다.
“아, 아서라. 쓸데없는 호기심은 명을 단축시키는 법이다.”
호랭이는 앞발을 아장아장 흔들며 반대했다.
하지만 안 되는 일일수록 호기심은 오히려 커지는 법.
“하하. 괜찮아요.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 그냥 얼굴만 보고 올게요.”
“그 늙은 할마따구를 뭐 볼 게 있다고 만나겠다는 게야! 그럴 필요 없대도!”
“하하하하. 괜찮다니까요. 호랭이와 제가 어디 남인가요? 할머니 뵙는 심정으로 인사나 한번 드릴게요.”
호랭이는 한사코 반대했지만 병규의 고집 또한 보통이 넘었다. 결국 호랭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휴. 나중에 보고 실망이나 하지 마라.”
“물론이죠.”
병규는 빙그레 웃었다.
삼신할매를 만나러 간다면서 호랭이가 향한 곳은 의외로 가까운 뒷산이었다.
한적한 살길을 느긋하게 걷던 병규가 문득 물었다.
“삼신할매는 어떤 분이세요?”
“뭐, 한마디로 말하면 난감한 노인네지.”
병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랭이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호랭이는 병규의 담배를 뺏어 피우며, 삼신할매의 등쌀에 못 살겠다고 엄살을 부렸다.
‘무당 삥 뜯기랑 부적 그리기, 구슬 꿰기랑, 봉투 붙이기 같은 것을 시켰다 그랬지?“
비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근엄하신 호랭이 신선님께서 조잡스럽게 구슬 꿰기 같은 것을 했다니, 생각만으로 웃음이 터질 것 같다.
“왜 갑자기 미친놈처럼 실실 쪼개?”
“하하. 아니에요. 그런데 더 올라가야 돼요?”
“아니다. 다 왔어.”
주위를 둘러보니 별 특이할 것도 없는 작은 공터였다.
“정말 이런 곳에 삼신할매가 계신 거예요?”
말과 함께 호랭이는 웅얼거리며 주문을 외웠다.
주문이 끝났을 때, 병규와 호랭이는 별천지에 도착해 있었다.
“이곳이 신선계?”
하늘은 손을 내밀면 푸른 물감이 묻어날 정도로 맑고 푸르르고, 그 아래를 두둥실 떠가는 구름은 한가롭기만 하다.
한적한 시골과 같은 풍경.
사실 병규는 선계에 한 번 온 적이 있었다.
처음 호랭이와 만났을 때, 호랭이는 그의 담배를 훔쳐 피우려고 병규를 선계로 잠깐 데려왔었다.
하지만 그때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선계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수가 없었다.
“어라?”
호랭이는 본 병규는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호랭이는 조그만 아기 호랑이에서 위엄 가득한 거대한 백호로 변해 있었다.
“삼신님을 만나는 길이다.”
대답하는 호랭이의 태도가 자뭇 진지하다.
병규는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왠지 머리가 아픈걸.”
술을 한껏 들이켠 병규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처음엔 공기가 너무 맑아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이내 머리가 욱신욱신 쑤셔 왔다.
“쯧쯧. 왜? 맑은 공기를 마시니 머리가 띵하냐? 젊은 놈이 썩었구나. 썩었어.”
“제가 이렇게 된 게 다 호랭이 덕분입니다.”
“내가 뭘?”
“혹시 호랭이 신선님께선 간접흡연의 폐해를 아십니까?”
“간접흡연은 무슨. 아무렴 피우는 본인보다 더 해롭겠냐?”
“경고 문구에 흡연은 자라나는 새싹과 임산부에게 치명적이라는 글이 있죠.”
“그래서? 설마 네가 자라나는 새싹이라는 의미는 아니겠지?”
“호랭이님에 비하면 충분히 새싹이죠. 게다가 요즘 양이 더 느셨죠.”
“허허. 늘다니. 단지 보충일 뿐이다.”
“하하. 그렇다면 보충기간이 끝나면 양을 다시 줄이시겠군요.”
“험험. 그거야 뭐. 그때 가 봐야 아는 것이고. 그런데 왜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는 게야?”
“글쎄요. 그게 저도 잘 모르겠네요. 선계에 온 이후로 갑자기 머리가 띵한 것이.......”
병규가 머리를 갸웃거릴 때다.
“이 곳의 기운과 몸이 맞지 않아서 그런 게야.”
노파의 음성이 들렸다.
고개를 돌렸을 때, 지팡이를 짚은 노파 한 명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
병규는 짧게 감탄을 뱉었다.
노파의 모습이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자연경관과 놀랍도록 어울린다.
‘어느 사이에.’
누구도 노파의 접근을 눈치 채지 못했다.
병규는 노파가 삼신할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랭이가 알려 준 것은 아니다.
느낌이 그렇게 알려 준다.
시골 어디에서 봤음직한 그런 얼굴임에도 마치 돌아가신 친할머니를 만난 것처럼 친근감이 들었다.
“네가 그 아이로구나.”
병규를 본 삼신할매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말이다.
“네.”
병규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삼신할매도 웃었다.
“그래. 잘 커 주었어. 장하구나.”
삼신할매는 병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주름으로 가득한, 고목나무 같은 손이었지만, 더없이 정겨웠다.
반면 호랭이는 삼신할매를 보자마자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었다.
“그러고 보니 요 녀석을 잊고 있었군.”
아니나 다를까, 병규에겐 한없이 인자하던 삼신할매가 호랭이에겐 대뜸 도끼눈을 부라린다.
“호랭아, 이 게으른 놈아. 지금까지 어디서 놀고 있었던 게냐!”
천둥같은 삼신할매의 호통에 산하(山河)가 우르를 진동한다.
삼신할매의 음성엔 노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호랭이는 천둥과 같은 호통소리에 안색이 대변했다. 덩치에 안 맞게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이놈, 왜 대답이 없는 게냐? 보아하니 또 빈둥대다가 이 할미에게 보고하는 걸 잊어버린 것일 테지? 내 오늘은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으마. 잡히면 다리몽둥이를 기냥 콱!”
“어이쿠. 나 죽네.”
삼신할매의 으름장에 호랭이는 금세 죽기라고 할 것처럼 엄살을 부렸다.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당황하는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무서운 모양이다.
“요놈!”
성큼성큼 다가간 삼신할매는 다짜고짜 주먹으로 호랭이를 쥐어박았다.
바람만 불면 똑 부러질 것 같은 주먹이었지만 위력은 해머 이상이었다.
“끄악!”
해골안으로 송곳이 쿡 쑤셔 박히는 듯한 통증.
호랭이는 정신없이 머리를 비벼대며 울부짖었다.
“똥강아지 같은 놈이 못된 짓만 배워 가지고는.”
“아구구구구. 삼신님, 삼신님, 그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요, 하이고오. 이, 일단 제 이야기를 먼저........”
“시끄럽다, 이놈. 네 녀석은 옛날부터 그랬어. 말로만 조잘조잘. 산선이란 놈이 경박스럽게. 오늘은 네 녀석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마. 이노옴!”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호통을 친 삼신할매는 아직도 앞발로 머리통을 부벼 대고 있는 호랭이를 향해 지팡이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크엑!”
호랭이의 두 눈이 툭 하고 튀어나오며 미친 듯이 발광했다.
“아가각. 자, 잔인하게 때린 데를 또! 아가가각.”
호랭이는 백두산 천지에서 용암이 분출하듯 피분수를 뿜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야말로 자지러질 둣 괴로워했지만 삼산할매의 분노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침 대자로 발버둥치는 호랭이의 자세도 딱 좋았다.
사뿐사뿐 뒷걸음질치던 삼신할매는 돌연 프리킥 하는 축구선수처럼 고쟁이를 휘날리며 맹렬하게 호랭이의 그곳을 힘껏 걷어찼다.
“아우우우우우우.”
호랭이는 늑대가 되어 울었다.
자신의 그곳을 감싸 쥔 채.
“못된 놈. 아직 끝이 아니다.”
호랭이는 죽겠다며 걸쭉하게 울어 대건만. 삼신할매는 여전히 그 곳만을 집중적으로 밟아 댔다. 여자라면 모르겠지만 오지(?) 멀쩡한 수컷에게 이것은 더없이 잔인한 고문이다.
호랭이는 자신의 수염을 잡아 뽑으며 미친 듯이 발광했다.
마침 그때 병규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걸지 않았다면, 아마도 호랭이는 가문 최초의 내시호랑이가 되었을 것이다.
“험험. 저기... 삼신님, 그것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음? 무슨 소리냐? 아아, 됐다. 필시 이 못된 녀석에게 고문과 협박을 받았겠지? 다 이한다. 조금만 기다려라. 욘석을 조금만 더 즈려밟고 나서 말하자꾸나.”
“네, 네에?”
병규는 삼신할매의 말에 멍한 표정이 되었다.
설마 삼신님이 이처럼 과격 무식하게 일을 처리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멍하니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호랭이는 까마득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같은 사내라서 그런지 지켜보는 병규의 몸이 배배 꼬일 지경 이다.
병규는 삼신할매의 소매를 붙들고 늘어지며 크게 소리쳤다.
“그게 아닙니다, 삼신님! 사실 호랭이에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요.”
“으잉? 피치 못할 사정?”
그제야 비로소 반응을 보이는 삼신할매였다.
병규는 꽤 긴 시간 동안 삼신할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삼산할매는 때론 동감을 표하고, 때론 다시 물으며 진지하게 경청했다.
“그렇게 된 일이구나.”
삼신할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복잡한 사연이 있었다.
아니, 병규의 사연을 단순하게 복잡한 사연이라는 말로 다 설명 할 수 있을까?
호랭이와 연락이 끊긴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이계로 갔었으니 연락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 당연하다.
“자영이가 암말도 안 하던가요?”
호랭이가 상처 부위를 냉찜질하며 볼멘소리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뭐라 뭐라 얘기를 하는 것 같긴 하드만. 요즘 나이가 많아져서인지 어째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는 것 같구나.”
삼신할매는 괜히 귀를 후비적거린다.
‘까먹었군.’
호랭이와 병규는 확신했다.
못 믿겠다는 둣이 눈을 게슴츠레 뜨니 삼신할매의 귀 파는 속도 도 빨라진다. 켕기는 것이 있긴 있나 보다.
“그러게 왜 제 말도 안 들으시고 주먹부터 휘두르시는 겁니까요.”
호랭이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삼신할매의 긴 눈썹이 대뜸 하늘로 추켜세워진다.
“이놈이! 그럼 미리 말을 할 것이지. 왜 버벅거려?”
“그거야 삼신님의 기세가 워낙에 흉험해서.”
“흉험하긴 개뿔이. 다 죽어 가는 할매가 몇 대 쓰다듬은 것 가지고 엄살은.”
“엄살이라니요? 이게 얼마나 죽을 것같이 아픈 줄 아십니까? 여자는 절대로 이 고통을 몰라요.”
호랭이는 자신의 그곳을 손가락질하며 악을 썼다. 병규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 고통은 남자만이 아는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불판 위의 오징어처럼 배배 꼬인다.
한편 호랑이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내린 삼신할매는 노한 표정 을 살며시 일그러뜨리더니 묘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었다.
“홀홀. 고놈 참. 손톱만하던 놈이 몇 대 맞았다고 팔뚝만큼 부었구먼. 홀홀홀. 고놈 참 실하게 여물었다.”
“아, 아니. 삼신님, 남의 물건을 쳐다보고 그게 무슨 소립니까?”
“홀홀. 고놈 참.”
“손가락으로 툭툭 찌르지 말아요.”
“홀홀홀홀.”
“좌우로 치지도 말란 말입니다. 그게 시계춥니까!”
그 후로도 한동안 삼신할매와 호랭이는 흘홀 하는 묘한 웃음소리 와 함께 옥신각신했다.
병규는 어안이 벙벙했다.
“저, 정말 저 할머니가 삼신할매 맞아?”
호랭이의 말과 공손한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삼신할매가 틀림없는 것 같긴 한데, 하는 짓을 보니 그저 장난 좋아하는 평범한 노인네다.
지금도 호랭이의 딸랑이 (? )를 지팡이로 툭툭 치며 ‘종이 울리네~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샀 하며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고 있다.
‘흠, 신선이란 직업도 그다지 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군.’
문득 호랭이가 불쌍하게 느껴지는 병규였다.
“그래, 그간의 사정은 잘 알겠다. 그나저나 아가, 넌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연민이 가득 담긴 음성으로 삼신할매가 물었다.
자상한 얼굴을 보노라면, 호랭이의 딸랑이를 괴롭히며 치매노인 처럼 날뛰던 노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병규는 공손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를 만나 봐야지요. 그리고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보낼 생각입니다.”
“지은 업보가 적지 않은 사람이더구나. 업이란 반드시 본인에게 돌아간다. 쉽지는 않을 게 야. 말로 안 되면 어쩔 텐고?”
병규는 침묵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에 맺힌 의지는 확고했다.
삼신할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구나. 마음을 정했다면 그대로 따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터. 어차피 세상사 모든 일이란 강이 모여 바다로 흐르듯, 이치를 따라 흐르게 되어 있는 법이지.”
눈을 감고 흥얼흥얼 말을 이어 가던 삼산할매가 병규를 가만 들여다보며 다시 말했다.
“보아하니 넌 그와 지금의 네가 어떠한 관계인지 이미 깨달은 듯하구나.”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습니다.”
“그래. 네가 그쪽 세상의 신과 같은 존재였다니 어쩌면 윤회의 사슬을 엿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잘 해결하리라 믿는다”
병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될 겁니다. 반드시.”
병규와 호랭이는 인간계로 돌아왔다.
지끈거리는 두통은 사라졌지만. 삼신님과 헤어지는 것은 아쉬웠다. 꼬장꼬장한 목소리에 괴팍한 성격이었지만, 삼신할매와 함께 보낸 시간은 더없이 편안했다.
마치 어미의 자궁 안으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녀석, 꼭 친조모를 만났다 헤어진 녀석 같구나.”
호랭이는 본래의 작고 귀여운 아기 호랑이로 돌아와 있었다. 삼신할매를 만나서 가장 곤혹을 치른 것이 바로 호랭이다. 겁도 없이 도력을 남발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삼신할매는 벌로 호랭이에게 수행을 명했다.
당분간 인간세상에서 도를 닦고 있으라는 지시였다. 언제까지냐는 호랭이의 물음에 삼신할매는 빙그레 웃으며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어쩌다 보니 삼신할매의 허락을 얻어 인간계에 마음대로 머물 수 있게 된 셈이다.
“삼신님이라... 참 좋은 분이셨습니다.”
병규는 삼신할매를 떠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헹!”
호랭이는 대뜸 콧방귀부터 뀌었다.
그는 자신의 하체를 가리키며 화를 참지 못했다.
“이걸 보고도 그딴 소리가 나왓?!”
힐끔 내려다 본 병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뭐, 좀 아프긴 하겠지만, 대신 말 거시기만큼 커졌으니 나름대로... 뜨억!”
병규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호랭이가 비장의 장소를 콱 하고 깨물었던 것이다.
“오냐. 그렇게 좋으면 너도 한번 당해 봐라.”
‘까우우우우우우울~!“
병규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창공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