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말리는 접전
쯔아아아악!
공간이 세로로 갈라지며 암흑이 진한 속살을 드러냈다. 고양이의 눈동자처럼 갈라진 암흑의 통로는 혼탁한 땅 위로 몇 사람을 토해 내고는 다시금 공간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암흑의 통로를 빠져나온 것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었다.
금발의 귀여운 소녀에서부터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마족까지. 참으로 독특한 파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병규를 쫓아 마계에서 바호크까지 날아온 호랭이와 그 일행들이었다.
“이곳이 바호크라고?”
게이트를 통해 중간계에 도착한 호랭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칙칙하고 어두운 사위.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대지.
차가운 바람.
탁하고 답답한 공기.
마치 마계의 또 다른 장소를 보는 것 같다.
“불과 육 개월 만에 이렇게 변해 버렸단 말인가.”
호랭이가 바호크의 변화에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주위의 마족을 불러들여 몇 마디를 나눈 아콘이 놀라운 말을 전했다.
“아닙니다. 바호크와 마계가 서로 연결된 지 이미 3년이 지났습니다.”
“뭣? 그게 무슨 말이오?”
“말 그대로입니다. 여러분이 마계에 계시는 며칠 동안 중간계는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허허.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호랭이는 혼란스러워했다. 그를 위해 아콘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차원의 통로라는 것이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다 보니 시간과 공간이 비틀어지는 일이 다수 발생합니다. 심지어 과거나 미래로 가는 일도 허다하지요. 마족들은 이를 아공간의 변덕이라고 부릅니다.”
“변덕이라. 과연 그렇게 부를 만하군.”
고개를 끄덕이던 호랭이는 문득 물안한 마음이 일었다.
“마계를 떠난 병규는 어떻게 되었소? 혹 우리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니오?”
시간과 공간의 괴리가 변덕스럽게 발생하니, 먼저 출발한 병규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거나, 또는 이미 한참 전에 도착했을 가능성도 있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콘은 말과 함께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서산 너머, 현란한 광채가 폭죽처럼 먹구름 사이를 명멸하고 있었다.
강력한 존재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병규인 것 같고, 다른 하나는... 마그네트인가?”
호랭이는 어렵지 않게 둘의 존재감을 읽어 냈다.
“누군가 크게 다치기 전에 서둘러야겠다.”
호랭이는 곧바로 근두운을 불렀다. 먹구름 너머에서 솜사탕처럼 흰구름이 미끄러지듯이 내려왔다.
“너희들도 올라타거라.”
근두운에 올라탄 호랭이가 경애와 레종이에게 말했다.
퀴니는 마법에 농하니 걱정이 없고, 샤바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레종은 머뭇거리다 근두운에 탔지만 경애는 코밑을 쓱 흝으면서 배시시 웃었다.
‘난 됐어. 이게 있으니까. 무지개!“
경애의 발밑으로 짙은 안개가 깔리더니 거꾸로 오르는 폭포수처럼 그녀의 등에 날개 모양으로 뭉쳤다. 그녀는 무지개를 이용해 허공으로 떠올랐다.
무지개의 효용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젠 제법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그녀였다.
호랭이는 중명의 새와 관련된 내용을 떠올렸다.
중명의 새는 제요의 재위 70년, 사악함을 쫓는 능력이 있는 새 한 마리가 현상되었다. 이 새의 이름이 바로 중명(重明)이었다.
중명의 별명은 쌍정(雙睛)으로 눈 속에 두 개의 눈동자가 있었다고 한다. 모습은 닭과 닮았고, 울음소리는 봉황과 비슷하였으며, 깃없는 날개로 날 수 있었다.
다만 성격이 변덕스러운 경향이 있었다.
가히 봉황에 비견되는 신수로, 때론 봉황의 다른 모습이라고 말하는 선인까지 있을 정도다.
‘어쩌다 중명의 새가 귀차와 한 몸을 가지게 되었을까.’
중명의 새가 봉황과 같은 신성한 새라면, 귀차는 반대로 귀조라 할 만한 존재다. 귀차는 머리가 아홉 개나 되며 사람의 혼기를 빨아 들이는 새로 알려졌다. 그 모습에서 구두조(口頭鳥)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달 밝은 밤에 능력이 극대화되는 특성이 있었다.
중명의 새와 귀차.
둘 다 신조라 불릴 만한 존재이나 그 성향은 정 반대다. 그런데 이 물과 기름처럼 서로 상반되는 두 존재가 한데 섞여 경애로 환상했다.
가끔 신인(神人)이나 신수(神獸)가 사람으로 환생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신선인 호랭이조차 처음 보는 경우였다.
‘이젠 제법 잘 다를 수 있게 된 모양이군.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경애가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을 본 호랭이는 안심했다. 다소 무모한 면이 없잖아 잇지만, 그녀는 본신이 중명의 새라면 충분히 믿을 만하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호랭이가 아콘에게 물었다.
“전 마계로 돌아갑니다. 돕지 못하게 되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아콘은 정중하게 용서를 구했다.
마왕들이 사라진 마계는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마계를 접수하기 위해 수많은 마족들이 피를 흘릴 것이다.
그녀는 차기의 마왕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 중의 하나다. 벨로로폰의 혈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마왕이 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호랭이들과 함께할 수 없는 이유는 오로지 아버지인 벨로로폰과 싸우기 싫어서이다.
호랭이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누구나 어울리는 자리라는 것이 있지. 중간계는 마족에게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땅인 것 같소.”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 아콘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이어 밤하늘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달만은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고 이었다.
“우리는... 맑은 하늘을 가지고 싶어 중간계를 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손과 발이 닿으면 아름다운 중간계조차 이렇게 변하고 마는군요. 그래요. 마족에게 가장 어울리는 땅은 어쩌면 마계일지도 모르겠군요.”
아련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아콘은 새롭게 차원의 문을 열기 위해 마력을 일으켰다. 그때, 호랭이가 그녀를 불렀다.
“잠깐, 할 말이 있소.”
“.......?”
아콘이 그를 보았다. 호랭이는 근두운에서 내려 그녀 앞에 섰다.
“마계에 돌아가게 되면 바호크와 연결된 차원의 문들을 모두 제거해 주시오. 더 이상 마족에게 중간계가 혼탁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소.”
아콘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고맙소.”
깊게 고개를 숙인 호랭이는 즉시 근두운 위에 몸을 실었다.
“가자! 녀석이ㅏ 기다리는 곳으로.”
“응.”
“네.”
“가요.”
호랭이가 근두운을 타고 서쪽 하늘을 향해 날자, 퀴니들이 그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어지럽게 날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아콘은 우두커니 지켜봤다.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그들의 모습에 그녀는 과연 무엇을 느꼈을까.
“열려라.”
그녀가 손을 수직으로 긋자 차원의 문이 차가운 숨결을 토하며 열렸다.
쯔아아아악!
세로로 갈라진 차원의 문이 그녀를 마계로 인도했다.
아콘은 약속을 지켰다.
그녀는 마계로 돌아가자마자 바호크로 통하는 차원의 문들을 모두 파괴했다. 그리고는 베르키스, 알칸테들과 힘을 합쳐 다른 마왕의 혈계들을 물리치고 마계를 평정했다.
마물들에 의해 통일된 마계는 한동안 평온을 유지했지만, 그 평화는 결코 오래가지는 않았다. 곧 마수들과 타락한 종족에서도 새로운 왕이 탄생하고, 마물의 왕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계는 다시금 끝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잠겨들었다.
그 전쟁은 수백 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진흙투성이의 처절한 전쟁의 승리는 얄궃게도 마왕의 자리에 가장 관심이 없던 아콘이 차지하게 된다.
운명의 장난 같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비록 가장 마왕의 자리를원치 않던 그녀가 마왕이 되긴 했지만, 적어도 그 때문에 마계는 오래도록 안정될 수 있었다.
그녀는 마족에게 가장 어울리는 땅이 마계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마왕이였기 때문이다.
아콘과 헤어진 호랭이와 그 일행들은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악의를 쫓아 정신없이 하늘을 날았다.
휘오오오오!
거친 바람에 재가 섞여 날렸다.
그곳에 그가 있다.
굳이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이었다.
이 몸서리쳐지는 악의.
먼 곳까지 밀려온 사악한 암흑의 파동에 온몸이 전율을 일으켰다. 호랭이는 두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었다.
‘대체 어디까지 타락할 셈이냐.’
호랭이는 너무도 안타까운 나머지 화가 치밀었다.
녀서이 너무 먼 곳까지 가 버리는 것 같았다.
높은 산맥을 가로질러 마침내 바호크의 수도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에 남아있는 것은 싸늘한 폐허뿐.
“이게 도대체.......”
호랭이는 두 눈을 비볐다.
위치상으로는 분명 엄청난 규모의 도시가 있어야 할 곳이다. 다른 곳도 아닌 바호크의 수도가 아닌가.
하지만 발 아래 펼쳐진 것은 문명의 그림자가 아니라 할 곳이다. 다른 곳도 아닌 바호크의 수도가 아닌가.
하지만 발 아래 펼쳐진 것은 운명의 그림자가 아니라 쓸모없는 폐허 더미였다.
변영을 상징하던 제국의 수도는 깡그리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검은 재만이 표표히 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늘을 벌겋게 달구던 화염에 바호크의 수도는 잿더미로 변했다.
대지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사라지고 죽음만이 남았다.
검게 타들어 간 대지엔 유성우가 떨어진 것 같은 흔적이 곳곳에 배여 있었다.
초월적인 존재들의 싸움은 이런 것이다.
“병규야! 병규야!”
호랭이는 탄식했다.
그의 각성은 너무도 많은 죽음을 요구했다. 과연 이 업보를 어떻게 보상한단 말인가.
“병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퀴니가 뾰족한 외침을 토하며 빠르게 몸을 날렸다.
드래곤과 마왕의 대결.
아직 그들의 싸움은 끈나지 않았다.
잿더미로 가득한 대지의 저편, 마왕과 드래곤이 목숨을 걸고 다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치열한 싸움은 없었다. 잔혹한 학대만이 남았을 뿐이다.
“크하하하. 고작 이거냐? 최강이라는 드래곤의 힘이 고작 이 정도냔 말이다!”
득의 양양한 벨로로폰의 외침에 마그네트는 죽고만 싶었다.
마그네트는 본신으로 변하고도 벨로로폰을 이길 수 없었다.
호탕하게 나섰던 그녀는 벨로로폰의 힘 앞에 무릎을 끓고 말았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굴복한다.
이것은 드래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사항이었다.
그녀는 대지 위에 엎드린 채 벨로로폰에게 머리를 밟히는 치욕을 당했다. 수백 미터에 이르는 그녀의 거대한 동체가 고작 2미터도 되지 않는 벨로로폰에게 깔린 채 신음했다.
인간의 머리 위에 개미 한 마리가 올라앉은 격이다.
하지만 그녀는 일어설 수 없었다.
벨로로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압력에 그녀는 감히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지경이었다.
“크으으윽.”
마그네트는 비참한 신음을 삼켰다.
그녀는 비록 에이션트 드래곤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위대한 드래곤의 힘을 충분히 구사할 수 있는 성룡이다. 게다가 다른 드래곤들과 달리 비상한 두뇌와 자력이라는 독특한 능력까지 있어, 설사 에이션트 드래곤과 싸우게 된다 하더라도 결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것은 그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지금은 잠들어 있는 드래곤 로드가 직접 인정한 것이다.
헌데 졌다.
그것도 완패다.
전력을 다한 힘에도 벨로로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크, 제길. 그때 내 피를 먹이지만 않았어도.”
뒤늦게 후회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크흐흐. 아직까지 깽깽거릴 힘이 남아 있는 모양이구나. 어디 이래도 계속 짖을 수 있는지 보자.”
잔혼하게 웃은 벨로로폰은 마그네트의 붉은 날개를 찢어 내고 뒤발을 꺽어 버렸다.
“크와아아아아아!”
레드 드래곤은 입을 쩍 벌린 채 미친 듯이 표효했다. 모든 마나가 벨로로폰의 마력에 금제당해 아무런 힘도 쓸 수가 없었다. 중간계에선 공포의 화신인 드래곤일지라도 절망의 군주에게 허약한 비만도마뱀에 불과했다.
퀴니가 도착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안 돼. 하지 마!”
뾰족한 그녀의 외침.
벨로로폰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의 창백한 눈동자가 빙글 돌아갔다. 혼탁한 눈동자에 퀴니의 영상이 잡혔다.
“이게 누구신가?”
퀴니는 몸을 떨었다.
‘달라.’
지금의 벨로로폰은 그녀가 알고 있던 그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과거의 벨로로폰은 외로움이 물씬 풍기던 텅 빈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병규의 눈빛은 따뜻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오로지 광기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마신의 귀여운 장난감. 크크큭.”
벨로로폰은 턱을 쓰다듬으며 기괴하게 웃었다.
그는 이내 날개 꺾인 드래곤에게 흥미를 잃었다. 부서진 장난감은 쓰레기에 불과할 다름이다,
“그만 죽어라.”
벨로로폰은 손끝으로 검은 손톱을 뽑아 그대로 마그네트의 목으로 찔러 넣었다.
바로 그 순간!
“샤바!”
샤샤샤샤샤.
파도치는 소음과 함께 드래곤의 그림자에서 치솟은 검은 물결이 그를 덮쳤다.
콰드드드!
범람하는 해일처럼 그의 몸은 삽시간에 검은 파도에 묻었다.
“귀찮은 벌레들. 흩어져라.”
음산한 외침과 함께 샤바의 백성들이 바람에 휩쓸린 잿더미처럼 날아갔다. 백성들이 흐트러진 사이로 벨로로폰이 둥실 떠올랐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때, 호랭이가 근두운을 탄 채 날아왔다.
“병규, 이 녀석.”
호랭이는 대뜸 호통부터 쳤다.
벨로로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씨익.
그의 입가에 너울지는 삭막한 미소.
“크크크. 이게 누구야. 얼간이의 애완동물이 아닌가.”
쿵!
호랭이는 가슴이 덜컥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껏 그는 병규가 완전히 이성을 상실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은 그대로인데, 심성만 사악하게 변한 것이다.
“후.”
호랭이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거야. 원. 싸구려 소설 같은 이야기군.”
“그 소설은 해피앤딩이야?”
돌연 퀴니가 물었다. 그녀의 눈자위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글세.......”
호랭이는 쓰게 웃었다.
“적어도 내가 읽은 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그는 다시금 병규를 보았다.
벨로로폰의 끈적끈적한 마성이 주위를 잠식해 가고 있었다.
‘녀석이 방금 얼간이라는 말을 썼지?’
호랭이는 그가 스스로를 얼간이라고 칭한 것에 집중했다.
이로써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 지금 몸을 장악한 의식과 병규의 의식이 전혀 별개라는 가정.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군.’
마성을 억누르면 잠자는 병규의 의식이 깨어날지도 모른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리 대안도 없다.
그저 믿을 수밖에.
한편, 벨로로폰은 새롭게 추가된 장난감들에게 무한한 호기심을 느꼈다.
호랭이, 퀴니, 샤바.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존재들.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온 경애도 신비로운 기운을 물씬 풍기고 있다.
샤악.
그의 붉은 혀가 입술을 햝았다.
당작에 그들과 겨뤄 보고 싶다. 들끓는 마성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다.
“하지만 그전에.......”
그의 손이 지면을 향했다.
“내 행사를 방해한 쥐새끼부터 처리해야겠지?”
낚시를 하듯 그는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의 힘에 이끌려 사람 하나가 달려 올라왔다.
“샤, 샤바.”
샤바다.
그의 목이 무언가에 졸린 듯,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는 두 발을 버둥거리면 반항했지만, 미증유의 힘이 강제적으로 그를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요. 새까만 벌레 녀석. 네놈을 어떻게 해치워 줄까?”
벨로로폰은 샤바와 눈을 맞추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 번들거리는 눈초리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주, 주인님. 샤바. 저, 저... 샤바에요. 샤바.”
샤바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했다. 주인님의 무정한 눈빛에 서럽게 눈물만 흘렸다.
그러나 그의 주인님은 과거의 그 다정다감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 결정했다. 네놈의 사지를 하나씩 뜯어내도록 하마.”
벨로로폰의 얼굴에 장난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철없는 아이가 잠자리의 날개를 하나씩 뜯어내며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순수한 잔혹함이었다.
벨로로폰이 en 팔을 들어 올려 빨래 짜듯 좌우로 천천히 움직였다.
찌그그그그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샤바의 두 팔을 휘어 감고 서서히 양쪽으로 당겼다.
엄청난 힘이다.
샤바 역시 겉보기와 달리 힘이 장사였지만,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엉ㅂㅅ을 정도로 벨로로폰의 힘은 대단했다.
보이지 않는 실에 매달린 꼭두각시처럼 샤바는 움짝달싹할 수 없었다. 벨로로폰에 의해 사지가 뜯겨질 위급한 상황.
“이 녀석. 칼바람!”
샤바의 위기를 본 호랭이가 노호성을 fxjxmflau 달려들었다.
그가 두 팔을 휘젓자 싸늘한 바람이 칼날처럼 버려지며 벨로로폰의 팔을 베어 갔다.
“흥.”
벨로로폰은 손을 풀얼 샤바를 놓아주었다. 칼바람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괜찮니?”
샤바를 품에 안고 뒤쪽으로 멀찌감치 물러난 호랭이가 걱정스레 물었다. 샤바는 목을 주물럭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엔 검은 멍이 손자국 모양으로 찍혀 있었다.
호랭이는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샤바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지금까지 수차례나 보았다.
타락왕들조차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샤바가 벨로로폰에게 별다른 힘도 못 쓰고 당했다.
물론 상대가 주인이 병규인지라 제대로 대항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벨로로폰의 권능이 샤바를 압도한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방금의 칼바람도 무서워서 피했다보다는 귀찮아서 풀어 주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만큼 벨로로폰에겐 여유가 있었다.
“휴우. 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고생을 하누.”
호랭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벨로로폰과 싸울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해진다. 수많은 마족들을 한꺼번에 날려 버리던 그의 경이로운 능력이 눈앞을 아른거린다.
“꽤 힘든 일이 되겠구나.”
호랭이는 마음을 굳혔다.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물어보는 의미로 쿠 l니와 경애를 돌아보았다.
퀴니는 결연한 표정이었다.
“쿠워어어어어어어어!”
길게 기염을 토하는 벨로로폰을 보고 퀴니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폭주하는 벨로로폰을 잠재우면 과연 어떤 성격의 그가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를까.
냉철한 이성을 가진 과거의 그? 아니면 순수한 성격이 병규?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선은 그를 진정시켜야 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
더 늦는다면 중간계는 파멸하고 말 것이다.
“저게 오빠야? 왜 저렇게 변해 버렸지?”
경애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입을 쩍 벌렸다.
가까이서 본 벨로로폰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야말로 악마가 아닌가. 과거의 순진했던 모습은 어디에소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괴성을 지르는 악마의 정체가 병규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뫼비우스 띠 모양의 그녀의 눈동자는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눈동자가 벨로로폰의 내부에 잠들어 있는 병규의 영혼을 찾아냈다.
“오빠가 어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모양이야. 이럴 때는 뒤통수를 한 대 힘껏 때려 줘야 해.”
경애는 주먹을 후후 불었다.
마왕의 모습에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반드시 병규의 정신을 돌려놔야겠다며 의욕을 고취시켰다.
“냄비가 없는 게 아쉬운걸.”
쩝쩝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 유쾌하기까지 했다.
“하하하. 그래. 뒤통수를 힘껏 쳐 주면 될 테지. 하하하하.”
호랭이는 큰 소리로 껄걸 웃었다. 그리고선 뒷골목 불량배들처럼 소매를 훌훌 걷었다.
“저 녀석. 아무리 정신이 없아도 그렇지, 이렇게 심한 짓을 저지르다니. 내 오늘 단단히 버릇을 가르쳐주마.”
철없는 아이를 훈도하는 훈장 선생처럼 호통을 친 호랭이는 근두운을 타고 바람 같은 속도로 나아갔다. 일단 결정을 내리면 뒤도 안돌아보고 돌진할 정도로 결단력이 강한 신선이 바로 호랭이다.
비록 호랭이가 제일 먼저 나서긴 했지만, 정작 벨로로폰에게 가장 먼저 공격을 시도한 것은 샤바였다.
“일어나, 샤바.”
샤바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자 그의 그림자에서 검은 파도가 희오리치듯 솟구쳤다.
“주인님을 못 움직이게 해줘. 샤바.”
촤아아아아악!
장벽처럼 솟아 있던 검은 물결이 범람하는 강물처럼 들이쳤다.
그의 백성들은 마계에서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져 이제는 거칠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수수 밀려가는 백성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터진 화산처럼 박력이 넘쳤다.
순식간에 주위 풍경이 검게 물들고, 무시무시한 소음과 함께 검은 파도가 벨로로폰을 덮쳤다.
그러나 벨로로폰이 손을 들고 가볍게 흔들자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다.
그의 손짓에 광풍이 몰아쳤다.
디바울의 용해액을 날려 버렸던 그 능력이다.
이 바람은 누군가에게서 복제한 능력이 아니다. 그저 응축된 마력을 한꺼번에 방출하는 것에 불과했다.
마왕의 마력이 워낙에 엄청나기에 단순한 마력을 뿜어내는 것만으로도 태풍과도 같은 위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후두두두둑!
광풍에 말린 샤바의 백성들이 가을 낙엽처럼 떨어졌다. 하지만 샤바의 백성들도 보통은 넘었다. 마왕이 부리는 돌풍에 저항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사방에서 파도처럼 밀려드는 백성들의 검은 물결, 마왕도 움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괘씸한 벌레들 같으니!”
분노한 마왕은 바람을 거두고 이번엔 불을 일으켰다.
레드 드래곤에게 흡수한 힘이다.
마왕이 일으킨 불은 단순하게 ‘불’이라고 칭하기엔 너무도 엄청난 것이었다.
화르륵 일어난 불길이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솟구쳤다. 엄청난 열기가 까마득히 먼 곳까지 훅훅 찌는 기운을 과시할 정도였다.
아무리 샤바의 백성들이 강화되었다지만, 이 정도 화력에는 대항 할 방법이 없었다. 순식간에 선두의 백성들이 불길이 불길에 휩싸였다.
“안 돼! 돌아와. 샤바!”
샤바가 비명을 지르며 백성들을 불러들엿지만, 불길의 속도는 그보다 훨씬 빨랐다.
이 상태라면 전멸도 시간문제였다.
“더러운 마족! 받아라!”
하늘을 우르르 떨쳐 울리는 고함과 함께 지상에서 화염다발이 날아왔다. 드래곤의 파괴력을 한 점에 쏟아 내는 불의 정화.
드래곤 브레스.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마그네트가 샤바의 위기를 보고 최후의 브레스를 날린 것이다.
그녀의 브레스는 벨로로폰에게 아무런 상해도 가할 수 없었지만, 샤바의 백성들을 태워 가던 불길을 날려 버리기엔 충분했다.
꿈틀!
벨로로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의 행사가 방해받는 것을 싫어했다. 매우!
“비천한 도마뱀 주제에 감히!”
그가 손을 뿌리자 막대한 압력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크와아아아!”
마그네트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무지막지한 압력이다. 그 큰 덩치가 지면으로 푹푹 파묻혀 들어갈 지경이었다.
일반적으로 가늘고 뾰족한 물체를 땅에 꽂아 넣기는 쉬워도 넓고 큰 물체를 단단한 땅속으로 밀어 넣은 것은 굉장히 힘들다.
마그네트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무려 300미터에 이른다. 이 커다란 덩치를 땅속에 파묻히게 하려면 대체 얼마나 큰 힘이 필요할까.
그런데 벨로로폰은 그런 이적을 간단히 행했다. 그것도 허공에 뜬 채, 그녀와 백 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말이다.
“그만둬!”
호랭이가 두 손을 빠르게 휘저었다. 꽤나 큰 도술을 쓰는 듯, 움직임이 복잡했다.
“토룡(土龍)!”
그가 쿵 하고 발을 구르자 지면이 우르르 파도처럼 일어났다. 파문처럼 뻗어 나간 지진은 점차 위력이 확장하며 괴로워하는 드래곤을 보호하듯 감쌌다.
“쒜엑 쒜엑~”
덕분에 마그네트는 간신히 한숨을 돌렸다. 여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크. 드디어 당신이 나섰군.”
벨로로폰이 붉게 충혈된 눈을 호랭이를 쏘아보았다. 희번덕거리는 눈썹이 매섭기 그지없었다.
“이 녀석! 언제까지 이런 짓을 할 테냐? 그만 정신을 차려라!”
호랭이는 그를 삿대질하며 크게 호통 쳤다.
안타까웠다.
그 순진하고 착하던 놈이 이렇듯 무자비하게 변한 것이.
추악하게 웃던 벨로로폰은 으스대듯 입을 열었다.
“크크. 이게 내 본성이다. djEJgrp 더 정신을 차리라는 것이냐?”
입가에 번져 가는 차가운 웃음이 유난히도 냉정했다.
“이, 이, 이...이 노옴!!”
진노한 호랭이는 칼바람을 불러내어 거침없이 던졌다.
쉬이이이익!
제비처럼 매섭게 날아간 칼바람이 벨로로폰의 미간을 노렸다.
“흥.”
벨로로폰은 차가운 콧바람을 풍기며 한 손을 내밀었다.
촤르르르.
드래곤의 붉은 비늘이 피부 위로 돋아났다.
차캉! 치지지지징
무쇠도 자르는 칼바람이 벨로로폰의 팔과 부딪히며 농염한 불꽃을 토해 냈다.
무쇠도 자른다는 칼바람이지만, 벨로로폰의 피부를 덮은 비늘만은 뚫지 못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호랭이도 능히 예측하고 있던 바.
“아직 끝이 아니다.”
땅을 밟듯 허공을 밟으며 뛰어오른 호랭이는 화염과 바람을 두손 사이로 끌어 담으며 맹렬하게 후려쳤다.
불과 바람이 만나니 곧 화염이 푹풍처럼 일었다.
이른바 화염폭풍.
화악!
불길이 회오리치듯 일어나 벨로로폰을 휘감았다.
“하찮은 재주.”
벨로로폰이 쥐어짜듯 주먹을 움켜쥐자 돌풍처럼 일어난 화염이 그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레드 드래곤을 흡수하는 그는 불을 제 수족같이 다를 수 없었다.
“그럼, 이건 어떠냐!”
호랭이가 손가락을 부챗살처럼 펼쳐 내며 요란하게 휘둘렀다.
휘이이이익!
서풍을 타고 얼음장 같은 냉기가 엄습했다.
“크흐흐. 고작 그 정도로는 소용없다.”
벨로로폰의 차가운 눈길에 서풍마저 주춤하는 듯했다. 일찍이 그는 필립 공작으로부터 냉기를 흡수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불처럼 냉기 또한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다.
그러나 호랭이가 불러들인 서풍은 단순히 차가운 냉기가 아니었다. 벨로로폰이 필립 공작의 능력으로 서풍의 냉기를 걷어 내자, 그 안에 감춰져 있던 음울한 기운들이 일제히 일어나 그의 몸에 들러붙었다.
‘흐어어어어. 고통스러워. 고통스러워.’
‘내 몸이 타고 있다. 내 몸이 타고 있어!’
‘흑흑흑. 억울해. 억울해. 나 혼자 죽고 싶지 않아.’
‘네놈 탓이다. 네놈 탓이란 말이다.’
그것은 지독한 원한에 사로잡힌 원흔들이었다.
원래 호랭이는 사방신(四方神) 중에 서쪽의 영수, 백호의 적통이다.
백호는 오행 중 금(金)을 나타내며, 오방색 중 백색이고, 금성의 수호신으로, 죽은 자를 다스리는 명부(冥府)의 영수다. 땅을 다스리고, 죽음을 관장하며,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를 잇는 존재다.
따라서 대지를 지배하고 서풍을 아우르며 귀신을 부리는 데 특별 한 권능을 가졌다.
서풍과 함께 부린 냉기엔 이곳에서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의 원한이 가득 맺혀 있었다. 원혼들은 악의로 가득한 존재라 차진 진흙처럼 벨로로폰의 몸에 들러붙으며 아우성을 질렀다.
그들의 비명과 악에 받친 괴성에 벨로로폰은 귀가 멀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계으ㅢ 참혹한 지배자. 대마왕이다.
“미천한 것들. 떨어져라.”
그가 우렁차게 소리치자 원혼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으으.”
비록 한줄기 괴성으로 원혼들을 물러나게 만들었지만, 벨로로폰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원혼들이 들러붙어 있던 부위가 매라도 맞은 것처럼 욱신욱신 쑤시고 결렸다.
귀신이 들리면 몸이 축난다고 한다.
원혼의 사념이 사람의 생기에 흠을 남기기 때문이다.
마계의 문이 열린 이후로 바호크의 많은 주민들이 마족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특히나 이곳 바호크의 수도는, 그러한 원념과 악의가 차곡차곡 앙금처럼 쌓여 있는 장소였다. 호랭이는 바로 그 사요한 기운들을 불러들여 벨로로폰을 공격한 것이다.
죽음을 관장하는 영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벨로로폰은 인간의 절망과 악의를 즐기는 절세의 대마왕이지만, 귀부에서 몰려든 처절한 원한들에는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신에 힘이 빠지고 몸이 축축 늘어졌다.
그 틈을 호랭이는 놓치지 않았다.
그림과 같은 동작으로 벨로로폰에게 접근한 호랭이는 몸을 연속으로 세 차례나 뒤집으며 발그림자를 소나기처럼 뿌렸다.
현란한 발길질엔 현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쿵쿵쿵.
묵직한 파음이 벨로로폰을 강타했다.
강렬한 충격.
벨로로폰의 동체가 얼음 위롤 미끄러지듯 뒤로 쭉 밀렸다.
겉으로는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의 이마에 잡힌 주름 몇 가닥은 전혀 충격이 없지는 않았음을 시사했다.
“과연.”
벨로로폰의 입가에 들려지며 비릿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대는 날 충분히 재미있게 해줄 것 같군.”
“요수의 발톱.”
촤아아아악!
벨로로폰의 손끝에서 검은 기운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금강석도 무 베듯 하는 요수의 발톱이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손이나 팔이 뎅강뎅강 잘려 나간다.
그런 최강의 절삭력을 자랑하는 칼이 손가락마다 한 개씩, 모두 열 개나 튀어나왔다.
평범한 자라면 오금이 저려 꼼짝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호랭이는 긴장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덤벼들었다.
선계의 신선들 중에서 유달리 실전 경험이 많은 호랭이다. 경험만으로 따지면 결코 벨로로폰에게 뒤지지 않았다.
촤악. 촤아아악!
요수의 발톱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요사스런 소음이 귀청을 따갑게 했다. 호랭이는 춤을 추듯 가벼운 움직임으로 스치듯이 요수의 발톱을 피해 냈다.
그러면서도 요수의 발톱을 휘두르고 난 후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팡팡!
손과 발이 매처럼 범처럼 용처럼 날쌔고 웅장하고 웅휘하게 날아 들었다.
정신없이 공방을 주고받는 사이, 둘의 TK움은 허공에서 땅으롤 옮겨졌다. 상당한 시간 동안 싸움이 계속되었지만, 여전히 호랭이는 단 한 차례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다.
저 막강한 벨로로폰이 손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으니 말이다.
급기야 마왕은 분노를 터뜨렸다.
당하기만 하니 전혀 즐겁지 않았다.
“저주의 대지. 나의 부름을 받들라!”
그의 외침에 파문처럼 지면이 일렁였다.
쏴아아아!
폭발하듯 땅이 일어났다. 거칠게 일어난 땅이 해일처럼 호랭이를 덮쳤다.
“토지신. 잠자코 잠들어라!”
호랭이가 용맹하게 소리치며 발을 쿵 하고 구르자 산더미처럼 일어난 흙더미가 잔잔한 호수처럼 가라앉았다.
호랭이는 무공뿐만이 아니라 도술에도 능했다. 특히 대지를 다루는 술법에 뛰어났다. 하필이면 호랭이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대지를 불러일으킨 것이 실수였다.
“빈틈!”
큰 기술 후의 허점을 노리고 호랭이가 바람개비처럼 휘돌며 벨로로폰에게 달라붙었다.
“선수필승!”
어렵게 잡은 승기, 절대로 이대로 놓칠 생각이 없었다.
“폭풍처럼 달려, 우레처럼 쏘아 낸다. 질풍삼연격!”
정의에 불타는 신선 호랭이가 진짜배기 질풍삼연격을 펼친 것이다.
아랫배, 가슴, 명치로이어지는 번개 같은 삼연격!
쾅쾅쾅!
세 번의 큰 충격이 벨로로폰의 몸을 강타했다.
“큭!”
마력으로 평배한 그의 몸이 휘청하고 흔들렸다. 이번엔 확실하게 충격을 받았다.
벨로로폰의 몸은 레드 드래곤의 비늘로 완벽하게 보호받고 있었지만, 호랭이의 타격은 신묘하게도 비늘의 사이로 흘러들어가 내부에서 요란하게 폭팔했다.
이른바 내가 중수법이라는 최상승 무공의 절예.
제아무리 대단한 방어력을 가진 마왕이라도 내부를 진탕시키는 충격에는 버텨 낼 도리가 없었다.
벨로로폰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호랭이의 차분한 공격에 대마왕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군.”
그의 rldjrd 속에 호랭이와 지금의 호랭이는 어마어마한 실력차가 있었다.
급기야 벨로로폰은 다른 능력을 꺼내들었다.
근접전으로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크니스(Darkness)!"
그의 전신에서 짙은 암흑이 구름처럼 풍겨 나와 사방을 어둡게 채색했다.
곧 어둠이 온 천지를 덮었다.
다크엘프에게서 흡수한 능력.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니.’
짙은 어둠.
호랭이는 자신의 손끝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에 식은땀을 흘렸다. 아예 눈을 질끈 감고 청각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감각이 조금 예민해지긴 했지만 불리한 상황인 것은 여전했다.
그에 반해 마왕은 어둠 속에서 충분히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손끝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충분히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손끝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는 명확하게 사물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크크크크크.”
허둥대는 호랭이를 보며 벨로로폰은 회심의 미소를 그렸다.
그가 발을 슬쩍 움직였다.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순식간에 호랭이 눈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런!”
돌연 코앞에서 느껴지는 벨로로폰의 숨소리에 호랭이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부터 병규의 순간가속 능력은 엄청났었지만, 지금은 아예 움직임 자체가 smRU지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잡았군.”
벨로로폰이 사악하게 웃었다. 그의 손끝에서 요수의 발톱이 피를 갈구하며 웅웅 울었다.
chkdkr.
호랭이의 가슴이 세로로 갈라졌다. 벌어진 살 틈으로 피가 쥐어짠 듯이 쏟아졌다.
“크윽!”
구르듯이 물러난 호랭이는 상처를 움켜잡은 채 신음을 흘렸다. 살의가 smRU지자마자 몸을 움직였는데도 미처 다 피하지 못하고 중상을 입었다.
“녀석의 실력이 이 정도였던가.”
새삼 병규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꼇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마왕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온몽의 털이 곤두설지경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었다.
“이 어둠만 아니었어도.”
코끝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이 칠흑 같은 공간은 가히 마왕의 보금자리와 같다.
그는 앞조차 안 보이지만, 마왕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바란 순간 거짓말처럼 빛이 들어왔다.
한두 개가 아니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천 개에 달하는 불빛들이 한꺼번에 암흑 속을 밝혔다.
밝은 빛 아래 어둠은 힘을 잃느다.
호랭이의 시야를 가렸던 어둠이 빛에 밀려 쪼그라들었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벨로로폰의 모습이 드러났다.
“무녀.”
하늘에 퀴니가 떠 있었다.
라이트 마법으로 어둠을 몰아낸 것이 바로 그녀였다.
“어라? 호랭이, 다쳤어?”
퀴니 옆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날고 있던 경애가 신음하는 호랭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겁도 없이 부상을 당한 호랭이에게 쪼르르 날아왔다.
다행히 마왕은 퀴니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내가 그대를 잊고 있었군.”
퀴니를 올려다보며 벨로로폰은 흉측하게 웃었다. 두 눈이 먹이를 본 살모사처럼 좌우로 쫙 찢어졌다.
부들부들 떨던 퀴니는 두려움을 떨치듯 두 팔을 좌우로 활짝 펼쳐 냈다.
“벨로로폰을... 내 벨로로폰을 돌려줘!”
쉬쉬쉬쉬쉭!
퀴니의 머리위, 수천 개의 매직미사일이 나타났다.
마법진에 관해서라면 최고의 반열에 오른 퀴니지만 다른 마법은 기초적인 것밖에 익히지 못했다.
마법이라는 것이 총체적인 학문이라, 퀴니의 경우처럼 어느 한 방면에서 최고에 오르면 다른 방면은 자연스럽게 상승의 경지를 깨닫게 되는 법인데, 그녀는 오로지 마법진 하나만 팠다.
이계로 떠난 벨로로폰을 쫓아가기 위해서였다. 차원이동은 방대한 지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녀는 천재적인 머리를 총동원하여 마법진만 파고들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마법진은 드래곤조차 경악하게 만들 수준까지 익혔으면서도 공격 마법은 고작 기본적인 몇 가지밖에 익히지 못한 퀴니. 그녀는 마신에게서 받은 능력을 주체할 수 없는 마나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를 발산한 방법이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녀가 찾은 해법이 바로 마법 중첩.
질로 안 되면 양으로 승부한다고나 할까.
확실히 그녀의 생각은 일리가 있었다.
퀴니가 불러낸 매직미사일 다발은 7,8서클 마법의 위력보다 오히려 더 강했으니 말이다.
“돌격!”
쑤와아아아앗!
퀴니의 손짓에 매직미사일들이 빛 꼬리를 흩날리며 일제히 날아갔다.
“나쁘지 않군.”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벨로로폰이 가볍게 손가락을 폈다.
“일렉트리 볼트”
우르릉!
그의 주위가 어두워지며 천둥소리와 함께 검은 섬광들이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처럼 무수하게 쏟아졌다. 헝클어진 철사뭉치처럼 생긴 섬광들은 그 작은 개개의 것이 모두 벼락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콰콰쾅! 쩌정! 우르르르르르!
벨로로폰이 쏟아낸 섬광과 퀴니의 매직미사일이 충돌하며 현란하게 폭팔했다.
호각지세.
위력은 벨로로폰의 일렉트리 볼트가 월등했지만, 숫자는 퀴니의 매직미사일이 훨씬 많았다.
덕분에 둘의 마법 대결은 미묘한 균형을 유지했다.
“이때다.”
현란한 마법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아래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호랭이와 경애였다.
꽤 심각한 부상을 입은 호랭이는 다행히 선술의 치유능력으로 빠르게 응급치료를 할 수 있었다. 대강 상처를 돌본 호랭이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벨로로폰이 퀴니에게 한눙르 파는 틈을 노린 기습.
“천무비호(天武飛虎)!”
호랭이가 등허리에 날개라도 돋아난 것처럼 사납게 날뛰었다.
“뻗어라. 무지개!”
경애가 희뿌연 안개를 송곳 다발처럼 뿌리며 그를 보호했다.
한 번도 연수합격을 연습한 적이 없지만, 둘의 호흡은 놀랄 정도로 척척 들어맞았다.
벨로로폰은 마땅히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무더기로 쏟아지는 퀴니의 마법공격을 막기도 바쁜데, 만만치 않은 두 사람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니 손발이 어지러워 정신이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의 공세는 마치 사전에 계획하기라도 한 것처럼 공방이 치밀하여 도무지 허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호랭이는 근접전의 스폐셜리스트라 불릴 만했고, 경애는 무지개를 이용하여 상상도 못한 온갖 방법으로 그를 괴롭혔다.
이런 식의 조밀하고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공격은 처음이다. 마왕은 이를 악물며 경악할 만큼 커다란 불기둥을 소환해 퀴니의 마법공격을 쓸어내고, 곧바로 최근에 흡수한 능력 하나를 꺼내 들었다.
“어둠이여.”
음산한 목소리.
그의 그림자가 크게 확장되며 호랭이와 경애의 발밑을 장악했다.
“헛!”
"악!“
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단단한 땅의 늪으로 변해 버린 것처럼 발이 스르르 가라앉는 것이다. 발을 빼려 해도 그림자 늪은 끈끈한 아교처럼 그들의 발을 붙들고 늘어졌다.
벨로로폰이 박쥐와 같은 검은 날개를 활짝 펼치며 그들의 머리위로 강림했다.
“터져 죽어라.”
그림자 다음엔 중압이었다.
쿠쿠쿵!
“크아악!”
“악!”
호랭이의 입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경애는 풀썩 주저앉았다.
고개조차 들 수 없다.
마치 하늘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 같다.
이것만으로도 호랭이와 경애는 저항할 힘을 잃었다. 하지만 벨로로폰은 이 기회에 귀찮은 두 인간을 확실하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솟아라!”
그가 잔혹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꿈지럭거렸다.
“헛!”
섬뜩한 마음이 든 호랭이는 급히 경애를 껴안고 땅을 굴렀다.
촤촤촥!
그들의 발을 잡고 늘어지던 그림자에서 송곳더미가 솟앗다. 다행히 호랭이의 대처가 빨라 경애는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호랭이는 그림자에 하체가 난도질당했다.
“호랭이!”
경애는 하반신이 피로 낭자한 호랭이를 붙들고 통곡했다.
“용서못해.”
눈물을 삼키며 일어선 그녀는 전신의 기력을 모아 벨로로폰에게 쏘아냈다.
“무지개!”
터엉.
그녀의 가슴께에서 농축된 무지개가 포탄처럼 쏘아졌다.
“크크. 가소롭구나.”
벨로로폰은 뻔한 괘도로 날아오는 무지개를 향해 요수의 발톱을 뿌렸다.
막 무지개가 요수의 발톱에 썰리려는 순간,
펑!
철퇴 모양으로 형상화되어 있던 무지개가 안개처럼 흩어졌다.
칼은 안개를 흐트러트릴 수는 있어도 결코 그것을 벨 수는 없다. 이와 같이 요수의 발톱 역시 연기처럼 변한 무지개를 덧없이 지나쳐버렸다.
벨로로폰의 눈동자에 의문이 떠오른 순간, 흩어졌던 무지개가 합쳐지며 다시금 철퇴 모양을 되찾았다. 그리곤 처음의 그 기세 그대로 벨로로폰의 턱을 강타했다.
쾅!
묵직한 타격에 벨로로폰의 두 다리가 한순간 둥실 허공에 떠올랐다.
생각지도 못한 기이한 공격.
“이 쥐방울만한 년이!”
경애가 과연 쥐방울만한지는 의문이지만, 그녀의 능력만큼 절대 그렇지 않았다.
진명(眞明)의 눈.
묍우스의 띠처럼 두 갈래로 갈라진 그녀의 눈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그녀의 두 눈은 모든 부정하고 어그러진 것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그녀의 전신(前身) 중 하나인 ‘중명의 새’가 가진 능력.
천변만화(千變萬化).
변화가 무궁무궁하다는 뜻이다.
경애의 무지개가 바로 그랬다.
때로는 검처럼 날카롭게, 때로는 깃털처럼 가벼우며, EO로는 해머나 방패처럼 강하고 단단하게 변했다.
경애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형상화할 수 있었다.
이것이 그녀의 전신(前身) 중 나머지 하나인 귀차의 능력, ‘천변만화’인 것이다.
이 두 가지 능력이 그녀를 마왕과 싸울 수 있는 존재로 부상시켰다.
그녀는 무지개를 뻗어 양파처럼 겹겹으로 쌓인 마력을 하나씩 벗겨 냄 uqpffhfhvhs에게 접근했다.
“할 수... 있어. 절대로... 절대로!”
경애는 이를 악물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
땀이 비 오듯 흘렸다.
과연 마왕. 벨로로폰에게서 풍기는 사악한 기운을 접하는 것만으롤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밝은 마음가짐이야말로 그녀가 가진 최고의 능력이었다.
“귀찮군.”
벨로로폰은 기분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는 인간의 절망과 고통을 쾌락으로 승화하는 마왕이다. 그런 그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이 바로 마음이 백지와 같은 신관과 경애와 같은 사람이다.
“짜증나는 년.”
마침내 벨로로폰이 움직였다. 멀리서 손가락만 까닥이던 그가 경애를 없애기 위해 직접 행차한 것이다.
휘악!
엄청난 빠르기.
뒤늦게 파공음이 따르고 뿌연 먼지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헉.”
경애는 숨위 덜컥 막혔다.
저 멀리에 서 있던 벨로로폰이 눈 깜빡할 사이ㅏ에 코 앞에 나타난 것이다.
가까이서 본 벨로로폰의 모습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무섭다.
참으려고 했지만 절로 턱이 덜덜 떨린다.
“귀찮은 계집.”
벨로로폰이 손을 떨쳤다.
“실드!”
경애의 위기를 본 퀴니가 다급기 실드를 시전했다.
중첩된 방어막이 경애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벨로로폰의 무지막지한 힘 앞에선 종이방패에 불과했다. 와장창 요란한 소음과 함께 허무하게 부서졌다.
“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경애가 땅바닥을 굴렀다. 우악스런 마왕의 힘에 눌린 그녀는 무참하게 땅 위를 굴렀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몸으 동그랗게 말았지만 끝내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며 혼절하고 말았다.
축 늘어진 팔다리, 흐트러진 머리.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수조차 없는 상황.
“아아......”
퀴니는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눈물을 삼켰다.
“너무해.”
너무 잔인하다. 그리고 너무 참혹하다.
그는 완전히 기억을 잃은 것일까.
“크워어어어어어어!!!”
호랭이에 이어 경애까지 처리한 벨로로폰은 길게 울부짖었다.
그의 외침에 땅이 가라지고 하늘이 뻥 뚫렸다.
마치 자신이 최강임을 자랑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마계와 중간계를 통틀어 더 이상 그를 상대할 자는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