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휘오오오~
필라이트와 디스들이 바호크의 흑기사들을 상대로 격전을 벌이고 있을 때, 하늘을 통해 거대한 존재가 황성 위로 날아들고 있었다.
먹구름 아래를 유유하게 날아가고 있는 것은 중간계 최강의 생물이었다.
마그네트.
잠들지 않은 마지막 드래곤.
검계 변한 바호크의 하늘을 붉은 머리칼의 그녀가 거대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날아가고 있었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달이 보인다라. 기분 나쁜 하늘이군.”
마계의 영향으로 일그러진 바호크의 하늘. 마그네트는 괜히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치열하구나.”
하늘에서 내려다본 전장의 상황은 한 마디로 혈투였다.
키메라들과 바호크의 잔병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검은 기운들.
그녀는 황성 주위로 빼곡이 몰려든 마족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쥐새끼 같은 마족 놈들.”
기분 같으면 브레스라도 한 방울 떨어트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이런 곳에서 힘을 낭비하기엔 황성 안쪽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의 크기다 너무나 거대했다.
“일이 끝난 후에 손봐 주도록 하지.”
마그네트는 황성을 향해 쏘아진 화살터럼 날아갔다.
“키악!”
황성을 배회하던 마족 몇 녀석이 그녀의 존재르 느끼고 겁도 없이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적수는 아니었다.
적어도 중간계에서는 최강을 자랑하는 그녀가 아닌가.
가볍게 흔든 손짓에 마족들은 날개 꺾인 새처럼 추락했다.
비교적 쉽게 황성으로 침입한 마그네트는 곧장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날아갔다.
허공에 뜬 채 미끄러지듯 날아가면서도 그녀는 불길한 예감이 단지 기우에 불과하길 바랐다.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를 몇 번이나 지났다.
마그네트는 짜증이 일었다.
“도무지 인간들의 취향은 알 길이 없군. 왜 일부러 길을 복잡하게 만드는 거지?”
일반적으로 성의 구조는 미로처럼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특히나 황제나 왕이 거하는 황성의 경우엔 더욱 두드러진다. 이러한 미로형 구조는 만약의 침입자에 대비하기 위한 설계이다. 왕성으로 침입한 반란군을 혼란하게 만들어 황제가 피신할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다.
“귀찮다. 싹 다 무너져라.”
짜증이 인 마그네크는 인상를 찌푸리며 불쾌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앞을 가로막는 벽들이 양초처럼 녹아내렸다. 그 사이를 마그네트는 팔장을 낀 채 위풍당당하게 지나갔다.
그 방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마치 어둠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공간 자체를 통째로 삼겨 버린것처럼. 몸서리쳐지는 공허감만이 외로이 떠돌고 있었다.
방의 주인은 현기증이 날 만큼 적막한 분위기를 즐겼다.
이렇게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는 날카롭게 벼려진 그의 신경도 나지막이 가라앉는다.
정적으로 차갑게 내려앉은 그 공간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치이이익!
주전자의 물이 끓는 듯한 소음과 함께 한쩍 벼기 벌겋게 변하더니, 곧 줄줄 녹아내렸다.
허연 증기가 방안을 매캐하게 채웠다.
“지독하게 어둡군.”
짜증으로 일그러진 여자의 음성이 들리자마자, 곪아토진 종기처럼 움푹 파인 벽의 구멍 사이로 붉은 머리칼의 마그네트가 모습을 드러잮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군.”
황좌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주인이 그녀를 반갑게 맞았다.
“드래곤이라니, 정말이지 기대 이상의 성과야.”
술잔을 흔들며 말하는 그의 음성엔 작은 흥분마저 느껴졌다.
“넌!”
황좌로 시선을 옮긴 마그네트의 고운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넌, 그 애송이 녀석 아니냐?”
병규라는 이름으로 불이던 녀석.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마계로 떠났던 무모한 녀석.
암흑의 기운을 품고 있으면서도 마족에 대항하던 이상한 녀석.
바로 그 녀석이다.
녀석은 떠날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마에 가지런히 솟은 여섯 개의 뿔은 독사의 현란한 보호색만큼이나 위협적이로 보이고, 등 뒤에 커튼처럼 늘어진 여섯 장의 날개는 공포 그 자체다.
얼굴도 예전과는 전혀 다르다.
중후하고 잔혹한 마계의 대마왕을 떠올린다면, 그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변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과거와는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다. 하지만 드래곤인 그녀는 벨로로폰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마그네튼는 두 눈에 한껏 경멸을 담아 소리쳤다.
“여자를 구하러 간다저니 결국 타락해서 돌아왔느냐!”
마그네트는 이미 병규의 내부에 희대의 대마왕이 잠들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마왕이 절망의 군주라 불이는 최악의 악마라는 것도 눈치 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도박을 했다.
병규에게 자신의 피를 먹인 것이다.
일부로 드래곤의 피를 준 것든 그 힘을 바탕으로 마계의 마왕에게 대항하라는 뜻이었다.그런데 의도와는 달리, 놈은 오히려 또 다른 마왕이 되어 돌아왔다.
최악의 전개다.
“흐흐. 도마뱀이 나의 깊은 뜻을 어찌 알겠느냐.”
잔혹하게 웃는 벨로로폰은 술잔을 쭉 들이켰다.
그는 기분이 좋았다.
날파리를 잡기 위해 쳐 놓은 거미줄에 철없는 참새 한 마리가 걸려들었다. 이거야 말로 최고의 먹이가 아니던가. 때 아닌 만찬을 즐기게 된 것이다.
“이이......!죽이겠다. 네 놈을 죽여 내 피를 보상하겠노라.”
마그네트는 분노했다.
상상도 못할 거대한 존재감이 그녀를 채워갔다.
“네놈을 통째로 삼.켜.주.마!”
그녀의 목소리가 굵직하게 변했다. 더불어 은은하게 풍겨 나오던 미나의 양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발밑에서 화염이 솟구치고, 강렬한 빛과 함께 완벽한 아름다움을 과시하던 그녀의 신체가 웅장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와르르르르.
천장과 벽이 터지듯이 허물어져 내렸다.
광활한 듯 보이던 황실의 홀은 거대한 그녀를 수용하기엔 너무도 비좁았다.
“크워어어어어!”
플리모프를 풀고 레드 드래곤으로 돌아온 마그네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길게 울부짖었다.
드드드드.
대지가 흔들리고, 거센 폭풍우가 몰아쳤다.
레드 드래곤의 위상은 가히 태풍과도 같았다.
그 거침없는 힘. 강대한 마나.
가히 용암을 토해 내는 활화산과 같았다.
“좋아. 바라던 바다.”
벨로로폰은 마그네트와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 번쯤 드래곤과 붙어 보고 싶었다.
아쉬운 것은, 상대가 웜급의 드래곤이라는 점. 기왕이면 최강이라 불리는 에이션트 드래곤과 붙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기대다.
마그네트를 제외한 드래곤들은 마황과의 격전으로 대부분 죽어버렸고, 간신히 살아남은 일부는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마그네트는 중간계의 마지막 드래곤인 셈이다.
플리모프를 푼 레드 드래곤은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으로 솟았다. 반파된 천장이 완전히 허물어지고 해질녘 석양처럼 불그스름한 동체가 어둔 밤하늘 위로 떠올랐다.
“날 만난 것을 죽어서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독랄한 외침을 토한 마그네트는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대기 중의 공기가 입속으로 빨려들며 드래곤 하트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온 미나와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상대는 사상 유래가 없는 최악의 대마왕.
자잘한 마법으론 승산이 없다. 그녀는 처음부터 전력을 기울이기로 결심했다.
거대한 동체를 활처럼 뒤로 젖혔던 마그네트는 전신의 힘을 쥐어 짜듯이 끌어올려 한꺼번에 방출했다.
쿠하아아아!
그녀의 입에서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소멸의 절대 권능(權能)을 갖는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
그 어떤 마법사보다도 파괴적인 불의 정화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뼛조각 하나 남기지 말고 녹아 버려라!”
마그네트는 용암의 결정과 같은 브레스의 범위를 세밀하게 조정해 벨로로폰에게 집중하였다. 가늘고 세차게 뻗어나간 브레스가 벨로로폰을 강타했다.
화아아악!
돌로 된 벽과 바닥이 지글지글 녹아내리며 독한 매연이 확 끼쳐 올랐다. 화이어 브레스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물이 종이에 스며들 듯 빠르게 주위 공간을 집어삼켰다.
워낙에 뜨거웠던지라 모든 기물이 순간 기화되어 버렸다.
희뿌연 연기가 버섯구름처럼 솟았다. 날던 새들이 그 연기에 휘감기며 그대로 한줌 핏물로 녹아버렸다.
기화된 연기마저 고열을 간직하고 있어 생명체에겐 치명적이었다.
과연 중간계 최강의 생물이라고 불릴 만한 경이적인 능력이다.
하지만 정작 마그네트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놈은 아직 살아 있다.’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질펀하게 녹아내린 용암의 대지. 그 위를 구름처럼 흐르는 회백색 죽음의 안개. 고열과 기화현상으로 방대한 지역에 아지랑이가 일어났다.
하지만 그 지옥과도 같은 풍경 속에 묻힌 벨로로폰은 아직 죽지 않았다.
암울한 존재감은 여전히 그녀의 드래곤 하트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흩어져라.”
마그네트는 바람을 소환하여 자욱하게 펼쳐진 연기를 치워냈다.
연기가 가시자 처참한 현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브레스가 떨어진 곳의 땅이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었다. 브레스 한 방에 산의 절반이 녹아내렸다.
대체 어디까지 녹아내린 것일까.
까마득한 아래까지 푹 꺼져 내려가 도저히 깊이를 측량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지형을 완전히 변하게 만드는 위력.
그 장렬한 위력에도 불구하고 절망의 군주를 죽이는 것은 실패했다.
“조금 뜨겁군.”
벨로로폰은 녹아내린 대지 위에 둥둥 떠 있었다. 그는 좌우로 팔을 펼치며 괜한 너스레를 떨쳤다.
“이럴 수가!”
벨로로폰의 멀쩡한 모습에 마그네트는 기겁했다. 지형을 뭉개 놓은 브레스가 고작 벨로로폰의 피부만 조금 손상시켰을 뿐이라니.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벨로로폰의 피부를 덮고 있는 검붉은 비늘이었다.
“그, 그것은.......”
“그래. 바로 너의 능력이지.”
혀로 손가락 사이를 햝으며 벨로로폰이 사이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가시지 않은 브레스 덩이가 축축한 혀와 닿으며 수중기를 풀럭 뿜어냈다.
레드 드래곤의 힘을 흡수한 터라 브레스가 통하지 않은 것이다.
“모르고 있었느냐. 내 능력을? 설마 아무것도 모르고 피를 준 것은 아닐 테지?”
물론 알고 있었다.
절망의 군주가 가진 권능을.
하지만 복제는 어디까지나 마족의 능력으로 한정되는 줄로만 알았다. 사실 그녀가 스스럼없이 자신의 피를 준 것은 오늘과 같은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드래곤의 힘은 드래곤 하트에 기인한다.
드래곤 하트는 미나의 결정과 같은 것으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마나 덩어리다.
반면 마족들은 마력을 사용한다.
마력은 이를테면 욕망과 도착으로 일그러진 마나의 변종으로, 안정적이지 못하여 폭팔하기 쉬운 구조를 띠고 있다.
마나와 마력은 본시 우주의 근원이라는 하나에서 출발했지만 그 성질은 극과 극으로 달라 서로 반발하는 특성이 있다.
그녀는 바로 이점에서 착안했다.
마왕인 벨로로폰의 힘은 당연히 마력에 기인한다. 반면 그녀의 힘은 드래곤 하트, 바로 마나가 근원이다.
그녀의 피를 먹은 벨로로폰의 드래곤 하트의 힘을 흡수하지 못하고 끝내 마력과 반발을 일으킬 것이다. 그것은 치명적인 독처럼 내부에서부터 천천히 그를 죽일 것이다.
마그네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그는 멀쩡했다.
더구나 불가능한 줄로만 알았던 드래곤의 힘마저도 습득해 버렸다. 물론 지식으로 전수되는 용언이라든가 브레스는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레드 드래곤의 sdbrcp적 능력만은 완벽하게 복제해 냈다.
“대체 어떻게 된 놈이란 말인가.”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다.
여태 수만은 마물들을 흡수했을 텐데. 그런데도 아직 드래곤의 능력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니.
무릇 생명체가 수용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벨로로폰은 그런 법칙에서 벗어나 끝없이 진화하고 있었다.
이것은 신의 섭리를 완전히 거스르는 일이었다.
촤르륵.
벨로로폰의 전신을 뒤덮었던 비늘이 피부 아래로 사라졌다.
“고작 이 정도였는가?”
마그네트를 올려다보는 벨로로폰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올려다보니 고개가 아프군. 그만 내려와.”
쿠쿵!
“크아아악!”
거대한 쇠망치로 등줄기를 강타당하는 듯한 육중한 압력.
마그네트는 비명을 지르며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먼지가 심하게 날렸다.
벨로로폰은 미간을 찌푸렸다.
“크다고 꼭 좋은 건 아니야.”
손을 슬쩍 저었다.
콰앙!
“크악!”
둔직한 충격에 마그네트는 온몸을 비틀었다. 벨로롶몬의 무심한 공격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마그네트는 텔레포트 마법으로 몸을 피했다.
하늘 위로 텔레포트한 마그네트는 절규했다.
“이, 이럴 리가 없다. 지상 최강인 이 내가. 마계의 보잘것없는 마왕에게.”
“지상 최강?”
여섯 장의 날개를 펼치며 허공으로 날아오른 벨로로폰이 그녀를 보며 빈정댔다.
“너희 놈들은 게으른 뚱땡이 도마뱀에 지나지 않아. 그 많은 시간을 잠과 유희 같은 쓸데없는 짓으로 허비하지. 너희에게 있는 것이라곤 타고난 힘과 마나뿐이야.”
“크르르르릉.”
벨로로폰의 신랄한 비평에 마그네트는 독기서린 목울림을 흘렸다.
“크크. 억울한가?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게으른 너희들과 우리는 태생부터 다르지. 그 긴 시간을 잠으로 허비하는 방탕한 짓 따위는 할 수 없다. 그럴 수 없거든.”
벨로로폰은 운명 교황곡을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두 팔을 쫙 펼쳤다. 날개들이 차례로 펼쳐지며 웅장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마음대로 쳐죽일 수 이는 곳이 마계다. 그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잠? 유희? 우린 강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종족이다. 죽을 때까지. 우리가 약해지는 때는 바로 죽을 때뿐이지.”
“크으으으! 닥쳐라!”
벨로로폰의 주장에 항변하듯 마그네트는 괴성을 질렀다.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에 온 산하가 뒤흔들리는 듯했다.
그녀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드래곤인 그녀가. 모든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레드 드래곤이 마계의 마왕에게 꼼짝도 못하고 있는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메테오!”
아무런 시동 없이 곧바로 최악의 마법이 시전됐다.
하늘 위에 거대한 소환진이 그려졌다. 핏빛으로 일그러진 소환진은 우주를 유영하는 유성을 불러들였다.
그그그그그.
소환진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유성은 바호크 황성을 뭉개 버릴 정도로 거대했다.
“모두 박살을 내 주마.”
메테오를 소환한 마그네트는 다시 한번 목을 부풀며 브레스를 준비했다.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끝장을 볼 셈이다. 하지만 벨로로폰은 차갑게 웃었다.
“어설프군.”
그는 소환진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유성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곤 손안에 든 사과를 쥐어짜서 터트리듯 손아귀를 움켜쥐었다.
“휘어져라!”
무시무시한 압력이 가해지며 소환진이 일그러졌다. 소환되는 중이던 유성은 뒤틀린 ktlrhd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졌다.
콰콰쾅!
잘게 부서진 유성 조각이 화려한 불꽃처럼 쏟아졌다.
쉬쉬쉬쉬쉬쉭! 쿠두두두두!
그것은 광범위한 재앙으로 지상을 강타했다. 반쯤 파괴된 황궁이 완전히 박살나고, 수도의 가옥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벨로로폰이 손을 뻗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유성조각을 손가락을 가리키자, 무섭게 떨어지던 유성이 허공에 우뚝 멈춰 버린ㄹ다.
벨로로폰은 손가락 하나로 장난치듯 바위조각을 마음대로 움직였다.
“지루하군. 네게 다시 돌려주지.”
벨로로폰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집채만한 유성조각이 돌연 방향을 바꾸어 마그네트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발칙한!”
브레스를 뿜어낼 순간에 날아든 커다란 유성 조각에 마그네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브레스를 머금은 채 꼬리를 휘둘러 유성 조각을 박살냈다.
드래곤의 힘 앞에 집채만한 유성은 조약돌에 불과하다. 하지만 벨로로폰이 유성 조각의 그림자에 숨어 그녀의 턱밑까지 접근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 어느새!!”
놀라는 마그네트를 향해 벨로로폰은 냉소를 풀풀 날렸다.
“이미 말했지 않나. 환경이 다르다고. 게으른 네놈과는 싸우는 방법 자체가 달라.”
입가를 뒤틀며 이죽거린 벨로롣폰은 마그네트의 턱을 발로 차올렸다. 크기로 비교하면 고작 레드 드래곤의 눈hd자 정도에 불과한 벨로로폰이었지만 육체적 능력은 드래곤의 그것을 능히 앞섰다.
“목 안에서 그런 걸 품고 있으면 괴롭지 않나? 토해 내지 그래.”
빠각!
각력한 일격에 마그네트의 고개가 확 하고 뒤로 젖혀졌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라 그녀는 그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괴성을 질렀고, 목구멍에 모여 있던 브레스는 하늘을 향해 분수처럼 뿜어졌다.
“크흐흐. 고작 이것이 드래곤이 자랑하는 브레스란 말인가. 크크크. 허술해. 하품이 나올 정도로 한심스럽단 말이다!”
기고만장한 벨로로폰의 외침. 그러나 항변해야 할 마그네트는 턱이 부서진 채 대지 위를 굴렀다. 치유마법으로 박살난 턱은 순식간에 고칠 수 있었지만, 상처 받은 자존심만큼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맙소사.”
드래곤과 마왕의 희대의 격전. 디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체 저들의 TK움을 뭐라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손짓 한 번에 산이 날아가고, 뜨거운 숨결에 황성의 절반이 녹아 내리고, 하늘은 유성우로 가득 뒤덮었다.
신화 속의 신과 악마의 대결이 아마도 이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처럼 둘의 격돌은 상상을 불허해다.
“그런가. 마호네트님은 처음붙터 놈의 출현을 알고 있었군. 그래서 이번 작전에 참여한 것이었어.”
처음부터 그녀의 참가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학살자’ 라는 키메라를 완성한 이후로 마그네트는 줄곳 전재에 무관심했다. 키메라들이 있는 한 최서한 마족들에게 밀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듯 방관하던 그녀가 돌연 이번 작전에 참여했다. 처음엔 그저 키메라들의 성능을 알고 싶어서인 줄 알앗다.
헌데 아니었다.
그녀는 바호크 황성에 웅크리고 있는 놈의 존재감을 느낀 것이다.
“디스!”
상념에 잠겨 있는 그의 귀로 다급한 음성이 새어 들어왔다. 디스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촤악!
날카로운 소성이 얼굴을 베어 왔다.
디스는 퉁기듯 허리를 뒤로 꺾었다. 마족의 검은 손톱이 그의 이마를 스치듯 지나갔다.
위험천만했다. 자칫했으면 머리통이 반으로 쪼개질 뻔했다.
디스는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공격한 마족을 노려보았다.
“요수의 발톱!”
촤아아아아악!
요수의 발톱을 뽑아 아래에서 위로 길게 휘둘렀다.
서걱!
차가운 적살음.
주춤하던 마족의 몸뚱이가 세로로 여섯 조각이 되어 철퍽철퍽 떨어졌다.
“위험했다.”
카리오스가 그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그는 어세신의 일곱 사신 중의 하나로, 검은 귀신같이 쓰는 자였다.
“고맙네.”
디스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했는가?”
디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어 보였다.
드래곤과 여섯 장의 검은 날개를 가진 마족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싸움이군.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
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하지만 끼어들 틈이 없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나저나 이놈의 마족들은 저들의 싸움이 전혀 보이지 않는 걸까? 도무지 공격을 멈출 생각을 안 하는군.”
카리오스가 차가운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냉막한 얼굴에 지친 기색이 보였다.
마족들이 끝도 없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누가 아니래. 짜증나는 놈들. 오히려 더 광분해서 날뛰는 것 같아.”
역시 사신 중의 하나인 나이프가 단도를 십여 자루를 한꺼번에 뿌리며 짜증을 냈다. 그는 단도를 무한대로 생성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끝도 없이 밀려드는 마족들의 공격에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
“마족들이 단체로 미쳐 버린 것 같다.”
“아마도 저놈 때문이겠지.”
디스가 핏빛으로 일그러진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외궁을 통과해 내궁으로 진입한 디스와
학살자‘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기다릭고 이던 마족과 조우하게 되었다.
더는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전면전을 벌였다.
먹이를 기다리는 맹수처럼 내궁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마족들은 말 그대로 미친개처럼 광분하여 날뛰었다.
다행히 ‘학살자’들은 약하지 않았다.
그들은 키메라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존재들. 충분히 마족들과도 자웅을 겨룰 만했다. 하지만 마족들의 수도 끝도 없이 많았다. 마치 도장으로 찍어 내는 것처럼 수도 없이 밀려왔다.
강인한 ‘학살자’들도 수에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한창 싸움이 격렬해지던 때, 그녀가 나타났다.
중간계의 마지막 레드 드래곤.
마그네트.
황성의 지붕을 뚫고 나타난 그녀의 거대한 동체는 억 소리가 절로 날 만 큼 웅장한 위용을 자랑했다.
“대단하군.”
평소 그녀와 친분이 있는 디스조차도 그녀의 본신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수백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마그네트의 본신은 하늘을 온통 가려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드래곤에 비하면 고작 개미 정도의 크기에 불과한 마족놈이 놀랍게도 그녀를 압도하는 것이다.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고도 멀쩡했다.
“저, 저런 괴물이 있을 수가!”
디스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드래곤과 정면대결을 해서 우세를 점하는 마족이 있다니.
그때부터다. 맛있는 먹이를 아껴 먹듯, 야금야금 들어오던 마족들의 공격이 거세어지??? 것은.
놈들은 갑자기 미쳐 버린 것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학살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남은 인원은 겨우 10명뿐인가.’
주위를 둘러본 디스는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100여 명에 이르던 키메라가 이젠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작전은 실패다. 아니, 처음부터 불가능한 작전이었다.
드래곤조차 고전하는 저런 괴물을 djEJgrp 상대한단 말인가.
이를 꽉 깨문 디스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후퇴! 전속으로 작전지역에서 벗어난다.”
“흐억. 흐억.”
지팡이에 기대어 선 필라이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들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마나는 이미 예전에 바닥이 났다. 이제는 걸을 힘마저 없었다.
“암담하구나.”
그는 백태가 낀 눈으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 이곳에서 그와 함께 마족과 싸우고 있는 키메라의 수는 고작 30여 명. 800이 넘는 수가 희생되었다.
물론 키메라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
죽은 키메라들보다 더 많은 수의 마족들이 죽었다. 하지만 아직 마족들의 수는 까마득하게 많았다.
대체 얼마나 많은 마족들이 있는 것인지.
필라이트의 눈에 속이 텅 빈 투구 하나가 잡혔다.
‘파먼.’
키메라들과 더불어 마족들에 대항하던 케르베로스 기사단은 모두 이곳에 뼈를 묻었다.
그들은 용맹했다.
xamrgl 기사단장인 파먼의 활약은 눈부셨다.
그는 마지막까지 마족들의 몸뚱이를 가르며 바호크의 영광을 외쳤다. 그리고 만족한 얼굴로 산화했다.
암흑마법으로 원하지 않는 부활을 한 파먼. 비록 타락한 기사로 죽게 되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을 유리한 마족들을 벨 수 있었으닝 그는 만족했을 것이다.
“흐윽. 흐윽. 아쉽지만, 여기까지인 것 같소.”
단 한 번의 지팡이 움직임으로 마족 세 마리를 한순구???에 피떡으로 만들어 버린 크리티컬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도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입에서 단내가 풍긴다.
큰 부상도 입었다.
손바닥 너비로 벌어진 가슴의 상처는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깊었고, 허벅지와 아랫배애도 결코 작지 않은 상처가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죽어도 벌써 몇 번은 죽었을 것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키메라인 것이 불행하다.
쉽게 죽지도 못하는 육체. 끝없이 고통 속에 허우적거릴 뿐이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려.”
필라이트가 마른 음성으로 대답했다. 죽음을 말하면서도 그의 얼굴음 담담했다.
“후회? 생에 대한 미련?
생의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너무 오래 살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더 이상 생에 대한 미련은 없다.
다만, 일생일대의 모험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원통할 뿐이다. 적어도 이드라센 대륙에서 마족들이 싸그리 없어지는 것만은 보고 싶었는데.
“마지막인 것 같소.”
크리티컬의 말에 필라이트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다른 키메라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크르르르르.
둥굴게 포위한 마족들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조금씩 다가왔다.
문득, 필라이트는 웃음이 났다.
“뭐가 그리 웃기오?”
“허허. 생각해 보구려. 마족이라면 응당 인간보다 뛰어난 높은 지능과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오?”
“그렇지. 그런데 그게 왜 웃긴 게용?”
“이들을 보시오. 이들의 어디가 인간보다 뛰어나 보이오?”
비로소 크리티컬도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하하. 그렇군. 전혀 뛰어나지 않아. 하나같이 짐승 같군. 하하하.”
크리티컬은 통쾌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뛰어난 마족들이 짐승처럼 날뛰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웃기기만 했다. 껄걸 웃던 그가 다시 물었다.
“왜인 것 같소?”f
"이들이 이렇게 변한 이유 말이오?“
“그렇지. 처음부터 이랬을 리는 없을 테고.”
“흐음.”
필라이트는 눈을 감은 채 수염을 쓰다듬었다. 생각에 몰두할 때 보이는 버릇이었다.
“아무래도 저자가 원인인 것 같구려.”
필라이트가 지팡이로 드래곤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벨로로폰을 가리켰다.
“흐음. 역시 그런가?”
크리티컬이 눈가를 찌푸리며 혀를 찼다.
과연 저렇게 강력한 존재라면 마족들의 심성을 단숨에 휘어잡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쿠와아아아아! 쿠쿵! 쿠쿠쿵!
천둥치는 듯한 소음이 하늘을 진동했다.
드래곤과 벨로로폰의 싸움은 지켜보는 자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품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우린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닌 것 같소.”
돌연 크리티컬이 말했다.
필라이트가 무슨 말이냐며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저길 보시오.”
크리티컬이 턱짓하는 곳으로 고개를 도렸다. 무언가 희끄무레한 무리가 검은 마족들을 헤집으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저들은.......”
“허허. 학살자들이오. 이놈들이 우리 둘만 남겨 두고 왜 덤벼들지 않난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저들 때문이었구려.”
크리티컬이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디스가 우렁찬 목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공작님!”
그는 양손으로 요수의 발톱을 길게 뽑아내며, 벼를 베듯 앞을 가로막는 마족들을 가차없이 베어 냈다.
서거거걱!
순식간에 10여 마리의 마족이 피를 뿌리며 죽어 나자빠졌다.
“괜찮으십니까?”
디스가 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필라이트는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쉽게도 아직 죽지는 못했네.”
동료가 모두 죽었으니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살아계서서 정말 다행입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한시바삐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디스는 대답도 듣지 않고 필라이트를 부축했다.
“황제는?”
필라이트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디스는 고개를 저었다.
“하긴, 이젠 바호크의 황제 따윈 있으나 마나 한 존재지.”
마족들이 이렇게 설쳐 eof 지경이면 살아 이는 인간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미 바호크는 죽음의 대지로 변해 벌니 것이다.
“밀집대형으로. 포위망을 뚫는다.”
‘학살자’들은 수적 불리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진형으로 효율적인 방어를 했다. 피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버텨 낼 수 있었다.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간다?’
마족의 avhdnl를 뚫는다 해도 추적을 떨치고 바호크의 국경선을 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마침 그의 생각을 잃는 듯, 필라이트가 말을 꺼냈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네. 황궁의 후원으로 가세.”
“.......?”
디스는 필라이트의 말에 의문이 일었으나, 다른 대안이 없는 관계로 그를 들쳐 없고 무작정 뛰었다. ‘학살자’들이 마족들을 견제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외궁에서 내궁의 후원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디스는 바람처럼 빠랄T지만, 이때만큼은 자신의 움직임이 굼벵이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간신히 도착한 후원은 마그네트의 브레스로 반쯤 뭉개져 있었다.
“다행히 마법진은 무사하군.”
디스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비틀 걸어간 필라이트가 바닥의 흙과 모래를 제거하자 흐릿한 마법진은 문양이 나타났다.
“이것은.......”
“맞네. 텔레포트 마법진이지.”
일반적으로 황제나 왕이 머무르는 성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피신용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다. 필라이트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바호크를 빠져나가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필라이트님은 이미 마나가 바닥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나 혼자의 힘으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운용하기는 불가능해. 그래서 도움을 청할 생각일세.”
말을 끝낸 필라이트는 품에서 작은 통을 하나 꺼냈다. 원통 모양으로 생긴 그것은 길이가 약 30센티 정도로, 손잡이 밑에 긴 실이 달려 있었다.
“고장 나지 않았어야 할 텐데.”
불안한 표정으롤 필라이트가 실을 잡아 당겼다.
푸슉!
짙은 연기를 내뿜으며 통 안에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수직으로 하늘 높은 곳까지 오른 불꽃은 공중에서 요란한 소음과 함께 꽃 모양으로 폭발했다.
“신기한 물건이군요.”
“폭죽이라는 것일세. 전에 변기 그 아이가 엘프들에게 알려준 것이라더군. 원래는 화약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마나석에 주입한 마나로도 가능한 것 같군. 그나저나 설마 축제 때나 쓸 물건을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네.”
필라이트는 화려하게 산화하는 불꽃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폭죽의 불꽃은 전장에서 즐기기엔 너무 곱고 화려했다.
“그런데 누가 지원하러 온다는 겁니까? 언제 오는 거죠?”
디스가 초초한 음성으로 물었다.
시시각각 마족들이 포위망을 조여 왔다. 이미 ‘학살자’들도 많이 당했다. 그와 필라이트, 그리고 사신들을 제외하면 고작 7명이 남았을 뿐이다.
필라이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자네도 아는 자들일세. 다만... 언제 올지는 나도 알 수가 없어. 시간이 꽤 걸릴 게야.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텨 보는 수밖에.”
“지원이 반드시 올 거란 말이죠?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막아 보겠습니다.”
디스는 결의를 fekwuT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보다는 일말이라도 희망이 있는 쪽에 운명을 걸얼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필라이트가 언급한 지원은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폭죽이 터지자마자 하늘에성 한 떼의 검은 무리가 나타나더니 키메라들을 포위한 마족들을 무서운 기세로 공격했다.
“드래곤나이트!”
디스의 입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지원군은, 다름 아닌 엘프들이 이끄는 드래곤나이트였던 것이다.
“떠난다고 하더니 계속 대기하고 이었던 겁니까?”
“원래는 키메라 부대를 안전하게 바호크 진영에 운반하는 것까지 였지. 헌데, 떠나기 전 카즈엘이 그러더군. 혹시 필요한 일이 있을지 모르니 대기하고 있겠다고. 이 폭죽도 실은 그녀가 준 것이라네.”
“계속 우리들 머리 위에 대기하고 있었던 겁니까? 위험했을 텐데. 정말이지 의리 하나는 끝내주는 종족입니다.”
디스는 흥분한 듯 말이 빨라졌다.
그럴 만도 했다.
거의 죽음 직전에서 구원을 만난 격이니 말이다.
“글세. 정말로 빨리 왔군. 설마 부르자마자 날아올 줄은 몰랐어.”
필라이트에게도 엘프들의 즉각적인 대응은 정말 의외였다.
나머지 와이번들이 마족들을 헤집어 놓고 있는 사이, 세 마리의 와이번이 그들 주변에 착륙했다.
와이번에서 카즈엘이 뛰어내리자 디스가 나는 듯한 걸음으로 마중을 나갔다.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별말씀을.”
카즈엘은 짧은 말로 답하고 곧장 마법진으로 걸음했다
기다리고 있던 필라이트가 지팡이를 짚으며 구부정한 허리를 폈다.
“폭죽을 터트리기 무섭게 나타나 주는군.”
“마그네트님께서 브레스를 사용하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습니다. 뭔가 큰일이 생긴 것을 직감했지요. 서둘러 왔는데 좀 늦은 모양이군요.”
주위를 둘러본 카즈엘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많던 키메라들이 다 죽고 살아남은 것은 고작 12명. 무려 1,000명 가까이가 몇 시간 사이에 이곳에서 죽고 말았다.
“마왕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도록 하죠.”
카즈엘은 동행한 엘프들과 함께 테레포트 마법진에 미나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들뜬 표정으로 그녀들을 지켜보고 있던 디스의 표정은 순간 하얗게 질러버렸다.
“방금 마왕이라고 했습니까?”
카즈엘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그렇게 말했습니다.”
“확실...한 겁니까?”
물어보는 디스의 표정이 더없이 심각했다.
“드래곤과 정면으롱 싸울수 있는 마계의 존재가 마왕 말고 또 뭐가 있을까요.”
“그, 그렇지. 불가능하지.”
디스는 큰 충격을 받은 듯 몸을 비틀거렸다.
가슴을 묵직한 둔기로 강타당한 듯 답답해졌다.
“마왕! 결국 모든 일의 배후에 네놈이 있었던 것이구나.”
츠으으으으.
디스는 눈에 살기가 어렸다.
당장 튀어 나가려는 그를 크리티컬과 카리오스가 막았다.
“진정하게.”
“갑자기 왜 이러는가?”
분노한 디스는 이미 눈이 뒤집혀 버렸다. 요수의 발톱을 동료들에게 휘둘렀다.
“놔!”
촤아아악!
서늘한 예기가 사방을 난도질했다.
“진정해!”
카리오스와 크리티컬이 합세해서야 간신히 디스의 발광을 멈출 수 있었다.
“왜, 왜 날 막는 거냐! 날 내버려둬!!”
디스는 전혀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발버둥쳤다. 일행은 난감해졌다. 갑작스럽게 왜 그가 이렇듯 발광하는지 이유를 알수 없었다. 다만 필라이트만은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휴. 자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네만. 지금 이럴 때가 아닐세.”
“아니! 지금 바로 그때요.”
디스는 충혈된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저기에 마왕이 있소! 이것이 뭘 뜻하는 것인지 정녕 모른단 말이오? 마왕이오. 바호크의 수도에 마왕이 웅크리고 있는 소리요. 이 모든 일의 배후에 마왕이 있었던 것이란 말이오! 바호크의 황제를 타락시키고, 중간계의 마족들을 끌어들였으며, 내... 우리의 여왕님을 납치해 간. 그 모든 사런이 모두 저놈의 수작이란 말이오!!”
찢어지는 디스의 고함이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디스는 마왕이라는 말에 벨로로폰을 오해했다.
사실 바호크를 타락시킨 것은 타락의 군주. 데이크란의 소행이다. 하지만 디스는 바호크의 황궁에 벨로로폰이 잇는 것을 보고, 무작정 그가 이 모든 일을 꾸민 배후라고 오인했다.
사실 정황상 오해할 만한 요소가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워낙에 모습이 많이 변한 터라, 아무도 벨로로폰이 병규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누가 지금의 벨로로폰이 순진했던 병규라고 상상이나 할 것인가. 그들이 벨로로폰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다.
“난, 난... 그와 싸울 것이다. 날 방해하지 말아다오.”
디스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전신에서 독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무모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처절한 마음만은 모두에게 충분히 전해졌다.
마왕과의 싸움.
아무리 키메라가 강하다 해도 터무니없는 일이다. 하지만 결코 피하고 싶지 않다.
놈만, 마왕만 무찌를 수 있다면 중간계의 평화도 되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왕을 허무하게 빼앗겨 버렸다는 아픔도 조금은 보상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의 일행은 허락하지 않았다.
“무모한 도전일세.”
동료들의 만류에 디스는 목청을 높였다. djEJgrpems 이들을 뚫고 마왕을 향해 달려가야 했다.
“마그네트님이 최선을 다하고 이습니다. 우리가 힘을 돕는다면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그렇지 않네.”
필라이트는 고개를 저었다.
“믿기 어렵지만 마그네트님이 마왕에게 압도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야.”
디스의 표정이 암울해졌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흐느꼈다.
“지금이, 지금이 아니면 언제, 어떻게 마왕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이EO가 아니면 또 언제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까!”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애원하는 그의 말에 동료들은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생각해 둔 것이 있네.”
필라이트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디스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필라이트를 응시했다.
결코 거짓말을 하는 얼굴이 아니다.
드래곤 마저 버거워하는 대마왕. 과연 드래곤 외에 마왕을 응징할 수 있는 존재가 또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지금으로선 믿을 수밖에 없다.
“가능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적어도 지금 당장 마왕과 싸우는 것보다는 낫네.”
확신어린 필라이트의 말에 디스는 깊게 한숨을 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원수 놈을 눈앞에 두고 물러나야 하는 심저은 참혹하다. 하지만 완벽한 볷후를 위해서라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또다시 난 도망치는 구나.’
너무도 비참한 나머지 허탈한 마음까지 든다.
“진정하게. 전장에서 지휘관이 넋을 잃어서야 어디 쓰겠는가.”
크리티컬이 디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웃었다.
애써 웃는 표정이다. 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료들의 손에 힘없이 끌려갔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디스가 소란을 피우는 동안 카즈에과 엘프들이 텔레포트 마법진에 충분한 마나를 공급했다. 먼지로 잔뜩 뒤덮여 있던 마법진에서 찬란한 금빛 서기가 일어났다.
“자, 가세.”
필라이트가 디스를 다독이며 마법진 안으로 걸어갔다. 막 마법진 안으로 발을 들이밀던 디스가 고개를 돌려 벨로로폰을 노려보았다.
“다짐한다. 다음엔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엔 설사 내 목숨이 다하는 한이 있어도, 요수의 발톱을 네 놈의 가슴에 박아주겠노라.”
한이 맺힌 목소리로 굳게 맹세한 디스는 마법진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찬란한 빛이 눈동자를 파고드는 순간, 거짓말처럼 주위의 풍경이 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