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11권) (88/102)

 전율의 대마왕

 벨로로폰의 각성.

 그것은 가히 재앙과도 같았다. 

 “크워어어어어!”

 그의 울부짖음에 하늘이 부서지고, 대기가 들끓고, 대지가 몸서리쳤다.

 절망과 분노와 슬픔과 파괴가 전율로 붉게 물든 마계의 하늘을 가득 메웠다. 

 거칱 그림자 속에서 어둠이 징그러운 벌레 떼처럼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끄아아아아아!

 어둠은 온몸을 뒤틀며 울부짖었다. 

 그 울부짖음에 마계 전체가 출렁하고 몸을 떨었다.

 쿠두두두두두!

 하늘이 무너져 내렀다.

 퀴오오오오오오!

 절망의 군주.

 그의 각성은 죄 없는 자의 타락과 죄 지은 자의 참혹한 미래를 암시했다.

 먹구름이 해일처럼 일어나고, 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풀들은 시들고, 땅은 검게 변색되었으며, 공기는 오염되었다. 식수는 더 이상 먹을 수 없고, 동물들은 비쩍 말아죽었으며, 식물들은 벌겋게 타들어 갔다. 

 그의 행보에 하늘은 두려운 듯 구름으로 얼굴을 가리고, 대지는 절망 소게 내려앉아Tekl. 

 전쟁의 신이 피의 눈물를 마시고, 절망의 고독을 노래하며 파멸의 영광을 손짓하였다. 

 벨로로폰.

 잔혹한 절망의 군주.

 마침내 그가 돌아왔다.

 “허허. 대단하구나.”

 호랭이는 헛웃음을 삼켰다.

 병규의 내부에 잠들어 있던 벨로로폰은 가히 절대의 마력으 뽐내고 있었다. 그에게서 울컥울컥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기세에 소름이 오싹 돋을 지경이다.

 겉모습조차 그가 알고 있던 병규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머리 위에 솟은 여섯 개의 뿔은 하늘을 꿰뚫어 버릴 듯 오만했고, 등에서 솟은 여섯 장의 날개는 드래곤의 그것처럼 두려웠다.

 이런 자와 싸워야 하다니.

 냉정하게 생각하면 무모한 도전이 분명하다.

 그만큼 벨로로폰의 마력은 가공했다.

 쉐이드와 같은 마왕의 혈계들이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라면, 지금의 벨로로폰은 거침없이 해안을 유린하는 해일이다.

 “허, 이거야 원. 도무지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과연 벨로로폰의 근처에 다가갈 수나 있을까?

 “잠깐, 샤바.”

 의연하게 서 있던 샤바의 머리칼이 더듬이처럼 삐죽 솟았다. 그의 레이더망에 묘한 기척이 집힌 것이다. 

 “음? 저 녀석들은?

 베르키스가 눈을 찌푸렸다.

 타락의 혈계들. 

 절망의 탑 6충에서 만났던 컨퓨전들이 폐허 속에서 부스스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상처투성이에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낭패한 모습이다.

 탑이 무너지는 소란 통에 적잖은 패해를 입은 것이다.

 “크르르르르.”

 누런 송곳니를 드러낸 컨퓨전을 선두로 네 명의 타락왕들은 벨로로폰을 향해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냈다. 

 절망의 탑은 마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축물.

 과거엔 벨로로폰의 것이었으나 지금은 그들의 군주, 데이크란의 것이다. 그런 탑을 송두리째 무너트렸으니 타락왕들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래도 저 녀석들이 먼저 공격할 생각인가 보군.”

 호랭이는 팔짱을 낀 채 방관자적인 모습을 취했다. 차라리 잘 된일이다. 저들이 싸우는 모습을 잘 관찰하면 벨롤로폰의 힘과 약점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저들에게 병규 오빠가 다치기라도 하면.....?”

  경애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타락왕들은 하나같이 괴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악몽 속에 등장하는 악마들 같은 모습이다.

 그런 자들이 무려 넷이나 벨로로폰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그녀가 걱정하으 것도 당연했다. 

 대답는 벨로로폰의 세 자식들 중 하나인 베르키스가 대신했다.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베르키스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타락왕들에게 벨로로혼이 당한다.?

 그것도 완전히 각성한 그에게?

 터무니없는 소리다.

 오히려 그는 타락왕들이 별달리 힘도 못 써 보고 허무하게 쓰러질까 겆정이 되었다.

 “저들이 아버지의 힘을 조금이라도 소모시킨다면 다행일 텐데.”

 “감히 어머니의 탑을 허물다니, 아무리 네가 각성했다고 해도 용서할 수 없다.!”

 컨퓨전은 불같은 노호성을 터트렸다. 

 탑이 무너졌다. 

 마왕의 상징이 허물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타락의 군주 데이크란의 기운는 전혀 느꺼지지 않았다. 타락왕들은 불안해졌다.

 그들은 분명 데이크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흉수는 두말할 것도 없이 폭주하는 벨로로폰일 것이다.

 천성이 악한 마족이라, 어머니인 데이크란의 준ㄱ음이 그리 슬프지는 않았다. 문제는 데이크란이 죽름으로써 자신들의 힘마저 감소된다는 것에 있었다.

 마왕이 마계에 미치는 여파는 그야말로 재대하여, 마왕을 따르는 무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즉, 타락의 군주 데이트란이 사라지면 그녀를 따르는 타락왕들의 힘도 대폭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 모든 마왕의 혈계들 중에서 가장 강했던 절망의 군주의 혈계인 마물왕들이었다. 

 비록 수는 타락왕들이나 마수왕들이 월등하게 많았지만, 마물왕들의 능력은 수적 불리를  단번에 뒤엎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단했전 마물왕들도 벨로로폰이 마계에서 사라자자 오히려 타락왕들보다도 약해졌다.

 이처럼 마왕이 휘하의 종속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막대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다. 

 벨로로폰은 각성하여 예전의 힘을 되찾은 반면, 타락의 군주 데이크란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는 곧 마계의 지배자가 바뀐다는 의미가 된다.

 마왕이 교체되면 마계의 세력 판도는 하루아침에 변한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귀족들은, 마왕이 바뀌는 순간 한낱 노예의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타락의 혈계들을 두려웠다. 그래서 지금, 감히 벨로로폰을 향해 불갘이 분노하며 붉은 송곳니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절망의 군주.

 힌때 마계의 권좌를 차지했던 대마왕이다. 

 타락왕들만으로는 승산이 없다. 그렇게 판단한 컴퓨전은 하을을 올려다보며 웅장한 음성으로 외쳤다. 

 “오라! 타락한 자들이여. 지고한 세월 동안 마계를 지켜 온 홍염의 무리여. 이곳에 마계를 멸하려는 사악한 마왕이 강림하였으이, 모두 나와 그를 막으라.”

 그의 음성은 먹구름을 타고 마계의 구석구석까지 퍼졌다. 

 “으. 시끄러워.”

 두 손으로 귀를 감싼 경애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컨퓨전의 되침은 산사태만큼이아 시끄러웠다. 

 “저 녀석.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지?”

 호랭이는 타락왕들을 노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무언가를 부르고 있다. 과연 타락왕이 소리쳐 부르는 존재가 뭐란 말인가.

 “저기!”

 저 멀이 서편에서 먹구름이 뭉클뭉클 일어나고 있었다. 두 눈ㄴ을 지그시 모은 채 먹구름을 바라보던 호랭이는 눈동자를 치켜뜨며 외쳤다. 

 “저것은 ....구름이 아니다.!”

 스멀스멀 몰려들고 있는 검은 구름, 그것은 사실 구름이 아니었다. 뭔가가 빼곡이 몰려서 날아오고 있었다 워낙게 수가 많다보니 먹구름처럼 보였던 것이다. 

 “타락한 자들.”

 퀴니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피, 가고일. 그리폰 와이번, 레이스, 거대한 말벌 모양의 괴물까지. 그 외에 듣도 보도 못한 괴물들이 하늘을 덮으며 맹렬히 날아왔다. 

 신기한 것은, 괴물들이 모두 검은색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 멀리 서쪽 땅, 멀건 황무지를 가르며 수만을 헤아리는 마족들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절망의 탑을 향해 달려왔다. 

 그들 역시 짙은 검은색의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검은 피부는 타락한 종족의 표식이다. 

 신을 배반하고 어둠으로 돌아선 저주받은 생명들. 그들이 컨퓨전의 외침을 듣고 벨로로폰을 무찌르기 위해 절망의 평원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가라! 자랑스러운 타락의 군대여. 벨로로폰을 무찌르라!”

 켠퓨전이 웅혼한 목소리로 다시금 외쳤다. 그의 독려에 고무된 마족들은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벨로로폰에게 쇄도했다. 

 족히 몇십 만이 엄는 엄천난 수의 마족들이 한 점을 향해 일제히 달려드는 모습은 공포를 넘어 일대 장관이었다.

 몇십 난의 병력. 실제로 보게 된다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리라.

 방대한 평원을 가득 메우고도 부족해 인근의 산과 들을 온통 뒤덮고, 하늘마저 새까맣게 메웠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수의 머족들이 성난 개미떼처럼 벨로로폰에게 달려드는 것이다. 

 “크그그그그.”

 “끄워어어어어.”

 “카각. 카각.”

 중급 이하의 마족들이 몸을 무기삼아 게걸스럽게 달려들 때, 상위 마족들은 멀찍이 물러선채, 두 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복잡한 주문을 영창했다.

 “카르톨. 아카르만. 꺼지지 않은 지옥의 불길이여!”

 “만자르! 타롤라라. 심장마저 얼리는 빙혼의 숨결!”

 “파파르칸. 아울! 명하노니, 내 적을 무찌르라. 검은 천둥. 뇌성!”

 쉬쉬쉬쉬쉬쉬쉬쉭?

 슈아아아아악! 

 화르르르르르르륵. 콰콰콰콱쾅!

 하늘에서 유성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송곳처럼 벼려진 얼음기둥이 하늘을 뚫을 기세로 솟았다. 불의 장벼이 벌겋게 타오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지가 붉은 용암을 울컥울컥 토해 내고, 칼날 같은 회오리바람이 달궈진 땅거죽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그야말로 지옥의 풍경이 아닌가.

 하지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마법의 폭우 속에서도 벨로로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소로운지고.”

 그가 진득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퉁기가 마족들이 합심하여 펼쳐낸 회오리바람이 어지럽게 흔들이며 동풍으로 변했다.

 절망의 군주가 가진 권능은 부정(부정(不正), 강탈(강탈(强奪), 그리고 귀속(귀속(歸屬).

 적의 능력ㅇㄹ 강탈하고, 그 소유권을 부정하여 자신의 능력으로 귀속시킨다.

 한마디로 그의 권능은, 남의 능력을 빼앗아 제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완전히 각성한 벨로로폰은 마물의 힘을 복제해 내는 정도뿐만이 아니라, 상위 마족들의 힘들게 소환한 마법마저 빼앗을 수 있었다. 

 그는 마족에세서 빼앗은 돌풍을 곧장 하늘 위로 날려 보냈다. 상공엔 수백의 유성들이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틀어져라!”

 돌풍이 용솟음치며 유성들의 궤도를 틀어 버렸다. 그렇게 궤도가 어긋난 유성들은 득달같이 달려드는 마족들의 머리 위를 사정없이 유린했다. 

 콰콰콰쾅!

 쿠두두두두!

“꾸에에에엑!

“피, 피해라.”

 “아악!

 비처럼 쏟아진 유성우에 반경 수백 미터가 쑥대밭이 되었다. 

 워낙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몰려오던 터라 유성우에 희생된 숫자는 엄청났다. 하지만 희생된 숫자보다 훨씬 많은 수의 마족들이 무사히 벨로로폰의 코앞까지 당도했다.

 그들은 게거품을 뿜으며 벨로로폰에게 달려들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과 분한 콧김을 뿡어내는 그들의 얼굴엔 오직 살의만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벼러지 같은 것들.”

 가볍게 코웃음을 흘인 벨로로폰은 좌에서 우로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유성우를 휘저었던 돌풍이 무섭게 영역을 확장하며 근접한 마족들을 덮쳤다.  

 콰우우우우우!

 무서운 칼바람과 함께 땅거죽이 뒤집히며 자갈과 흙이 암기처럼 사방으로 뿌려졌다. 

 “키엑.”

 “카악! 눈이. 눈이!”

 비명이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 

 돌풍은 더더욱 기세를 올렸다. 

 벨로로폰의 마력을 받아 무섭게 팽창한 동풍은 이미 마족들이 처음 소환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을 과시했다. 

 가공할 풍압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휘몰아치는 바람은 예리한 칼과 같아 단단한 마족의 피부를 무은 두부처럼 찢어발겼다. 

 체중이 가벼운 마족들은 돌풍에 말려 허공으로 딸려 올라갔다. 일단 돌풍에 휘말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닭 모이처럼 사방에 흩뿌려졌다.. 

 동풍에 휩쓸린 마족들의 시신이 산처럼 쌓였다. 전기톱으로 천천히 갉아 내듯, 운집한 마족들이 차근차근 절삭당했다. 

 마치 돌풍의 영역을 그림으로 표현한 듯, 잘려진 살 조각과 피가 벨로로폰의 중심으로 둥글게 뿌려졌다. 

 “조, 종말이다.”

 마족들은 지휘하던 최상위 마족 하나가 붉게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했다. 

 절망적인 상황이다. 

 벨로로폰을 죽이기 위해 수십만에 달하는 마족이 떼로 달려들었지만, 장작 그의 근처에끼지 도달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벨로로폰이 마족들을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도 아니다.  그저 마족들이 불러일으킨 바람마법을 빼앗아 장난스럽게 휘두른 정도에 불과했다. 

 r  장난스런 행동에 절망의 평원으로  모여든 마족들의 절반이 죽었다. 

 “좋군.”

 벨로로폰은 키극거리며 웃었다. 

 광기로 얼룩진 환희의 미소가 그의 입가를 맴돌았다. 

 마족들은 공격은 벨로로폰을 없애긴커녕, 오히려 마왕의 마성에 불을 지른 꼴이 되고 말았다.

 “축제로다. ”

 피, 죽음, 절망, 절규.

 이 얼마나 달콤한 단어인가.

 그는 자신의 뜻에 반항하며 달려드는 마족들의 괘씸한 행위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깨어나자마자 이렇게 많은 피를 보게 되다니 이보다 더 기쁜 환영인사는 없을 것이다. 

 “자, 축제를 벌이자. 죽음의 축제를. 내 친히 너희에게 죽음의 축복을 내리리라.”

 그는 오만한 자태로 선 채, 웅장한 클래식을 연주하듯 여섯 장의 날개를 펄럭였다.  

 마력이 무섭게 뿜어졌다. 그에게서 풍기는 농염한 마력에 가슴이 턱 막혔다.

 “무너져라, 하늘아,”

 쿠쿠쿠쿠쿠쿠쿠쿵!

 검은 마기가 폭풍처럼 일어나 마족들의 머리 위를 눌렀다. 

 아아, 그의 말대로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폭주하는 마력에 검은 구름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검은 뇌전이 비처럼 쏟아졌다. 

 “크엑!”

 “쿠아아아악1”

 “킹웩!”

 먹구름은 마족들의 숨구멍을 졸랐다. 숨이 막힌 마족들은 벌레처럼 바닥을 기었다. 그렇게 버둥거리는 그들의 머리 위로 저주받은 검은 번개가 성난 짐승처럼 날뛰었다. 

 쿠드드드등!

 검은 뇌전에 정통으로 맞은 마족들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업싱 한당이의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렸다. 

 꾸물꾸물 흘러가는 뇌전 한 방에 수백에 이르는 마족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런 뇌전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쫘르르르르르르르!

 드넓은 평원이 꾸물꾸물 흐르는 검은 뇌전으로 가득 뒤덮였다.

 번개가 비처럼 쏟아지는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족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마신이여! 마계를 버리시나이까~!”

 말 없는 마신을 향해 마족들은 피를 코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그러나 벨로로폰의 분노에 감화된 하늘은 끊임없이 번개를 토해 낼 뿐이었다.

 콰르르르르!

 마지막 한 줄기 뇌전이 대기를 가르고, 지면에 작렬했다.

 뇌전이 촘촘하게 휩쓸고 간, 대지의 모습은 황폐 그 자체였다. 

 질펀하게 녹아 버린 마족들의 사체가 녹은 엿가락처럼 대지 위에 끈적끈적 들러붙어 있었다. 살이 타는 불쾌한 냄새와 함‘께 노릇한 연기가 안개처럼 사위를 두텁게 감싸 안았다. 

 워낙에 몰려 있는 마족의 수가 많았다

 검은 뇌전은 그들의 몸뚱이를 한꺼번에 녹인 엿가락처럼 녹여 놓았다. 대지 뒤를 뒤덮은 시체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그런 시체들이 한데 뒤섞인 체 산처럼 쌓였다. 

 자칫 하늘에서 질펀하게 녹은 살점이 눈처럼 내린 것은 아닐까하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붉은 젤 리가 땅 위를 가득 뒤덮고 있는 듯한 몽연한 광경. 

 그 지옥과도 같은 풍경 속에서 벨로로폰은 미친 듯이 웃어 댔다.

 “크하하하하하하하1

 전율.

파괴의 본능으로 럴룩진 새카만 전율리 마계르 휩쓸었다.

 압도라는 말이 있다.

 월등한 힘으로 상대를 제압한다는 뜻이다. 

 벨로로폰의 힘을 본 호랭이들과 타락왕들은 그야말로 압도되고 말았다.

 덩덜.

 팔다리가 떨린다.

 부르르 진자리다 쳐진다. 

 서늘한 전율이 뒤통수를 야금야금 잠식한다. 

 눈앞에서 수십만이 떼로 몰살당하는 참혹한 광경을 보았다. 

 구역질 나는 악취 속에 시신들이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아니, 과연 질질 녹아 흐르는 살점들을 시신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까?

 각성한 절망의 군주는 얼마나 잔인한가. 죽은 자 가운데 시신을 온전히 보전한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세상의 그 어떤 죽음보다도 처참하다.“

 “과, 과연 절망의 군주.”

 켠퓨전은 새삼 벨로로폰의 실력을 절감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왜 다른 마왕들이 그와의 대결을 패했는지. 마계의 절대자였던  마황마저 벨로로폰과는 절대로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으려 했다. 

 이제 그 이유가 명확해졌다. 

 벨로로폰은 너무나 강했다. 스스로도 자신의 마성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정말로 터무니없는 힘이 아닐 수 없다.

 으득. 

 컨퓨전은 이를 억세게 깨물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다리에 힘을 주며 끓어오르는 듯한 음성으로 외쳤다. 

 “용기를 내자, 형제들이여! 잊지 말라, 우리가 누구인지를 . 마왕 벨로로폰을 꺾으면 우리가 바로 이 땅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1”

 그의 외침에 떨고 있던 타락왕들이 기력을 되찾았다.

 다음 세대의 지배자.

 벨로로폰에 대한 공포마저 한순간에 떨쳐 닐 만큼 매력적인 유혹이다. 틀인 말은 아니다. 타락의 군주, 데이크란마저 사라진 현재 상황에서 절망의 군주만 제거된다면 마계는 그들의 것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크흐흐. 마왕이라.”

 “무시하기엔 유혹이 너무 크군.”

 컨퓨전, 디바울, 쉬버, 질로우.

 살아남은 네 명의 타락왕들이 용기를 쥐어짜며 벨로로폰 앞에 나섰다.

 사실 물러날 곳도 없다.

 이대로 벨로로폰이 마계의 재배자가 되면, 타락왕인 자신들이 가장 먼저 제거될 것이다. 후환거리를 남겨 놓을 정도로 벨로로폰은 어눌한 마왕이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 

 목숨을 건 한판 도박. 

 이 도박에서 이기면 단숨에 마와의 다리에 등극할 것이고, 지면 고통스럽게 준ㄱ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자1”

 “크워어어어1“

 “크하하하.”

 비장한 외침과 함께 일제히 벨로로폰에게 달려들었다. 감히 혼자서 벨로로폰을 상대하겠다고 나서는 간 큼 녀석은 없었다. 

 “일어나라, 대지의 갑옷1”

 거대한 덩치의 쉬버가 두 손을 내려치자, 땅바닥에서 암석군이 기둥처럼 솟구쳤다. 

 “우워어.”

 쉬버가 괴성을 지르바 암석기둥이 박살나며, 부서진 바위 조각들이 자석에 끌리는 쇠처럼 그의 몸에 달라붙었다. 

 쉬버는 대지의 힘을 자유롭게 사용했다. 그 힘으로 땅을 가르고, 지진을 일으킬 수 있었다. 

 ‘대지의 갑옷’ 역시 그러한 능력 가운데 하나로, 깊은 지층에 포함된 단단한 암석을 갑옷처럼 몸에 두르는 기술이다. 특수한 암석으로 만들어진 암석 갑옷의 강도는 다아아몬즈에 비견될 정도로 단단했다. 

 “크워어! 개미지옥1”

 암석 갑옷을 몸에 두른 쉬버가 다시 한 번 땅을 내리쳤다. 

 쿠쿠쿵1

 돌열 지진이 난 듯, 땅바닥이 푹 꺼졌다. 갑작스런 붕괴에 벨로로폰의 하반신이 흙 속에 잠겼다. 

 “각오하라, 벨로로폰1”

 쉬버가 큼직한 두 손을 쿵하고 마주쳤다.

 쿠와아악1

 갈라졌던 땅이 진동하며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벨로로폰은 꼼짝없이 그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쉬버는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던지, 다시 흙을 산처럼 일으켜 세우고는 벨로로폰의 머리 위로 허물어트렸다.

 쿠르르르릉1

 묵작한 굉음과 함께 산사태가 일어났다. 

 마왕의 혈개가 가진 힘은 평평한 대지에 산을 일으키고, 다시 산사태를 발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무섭게 무너져 내린 산사태가 벡로로폰을 덮어버렸다. 

 하지만 타락왕들은 여전히 불안했다. 고작 이정도의 공격으로 절망의 군주를 잡을 수 있을까.

 “뒤처리는 내가 맡겠다.”

 “나도 돕겠어. 상대가 벨로로폰쯤 되는 자이니, 완벽을 기하는 것이 좋겠지.”

 디바울과 질로우가 나섰다.

 “잠겨라. 침식의 늪.”

 디바울이 스산한 음성으로 말하자, 검은 안개가 연기처럼 피어올라,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능력은 침식.

 강력한 산성의 기운을 띤 연기가 흙 아래에 파묻힌 벨로로폰의 숨통을 조이려 들었다.

 “알카미스 데미란, 자이타란트 마누엘. 파멸의 종소이가 울리노라. 일어나라. 종말의 불!”

 질로우가 가공할 마력을 쏟아 부으며 마법을 시전했다. 그는 마계에서 가장 뛰어난 마도사다. 그언 지로우가 전력을 기울여 시전한 마법이니만큼 그 위력은 광대했다.

 쿠아아아아악! 

 찢어지는 폭음과 함께 불길리 치솟았다. 새하얀 불길은 세상을 통째로 태울 기세로 활활 타올랐다.

 작렬하는 불길을 보며 타락왕들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지진과 산사태로 땅속에 파묻히고, 침식의 안개를 뒤집어썼으며, 끝내는 종말의 불길에 불살라졌다.

 제아무리 벨로로폰이라 해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미소가 채 입가에 완전히 떠오르기도 전.......

 촤촤촹!

 그들의 발 아래도 검붉은 가시가 촘촘하게 솟구쳤다. 그것은 너무도 갑작스런 기습이었다.

 “무슨!”

 타락왕들은 당황한 와중에도 마력을 끌어올려 발 아래에서 솟구치는 가시들을 퉁겨 냈다. 하지만 가시에 실린 임은 무시무시했다.

 수십 겹의 다크실드를 뚫고, 금강석보다 단단한 타락왕들의 피부를 꿔뚫었다.

 “컥!”

 “크악!”

 불의의 습격에 타락왕들은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땅에서 솟구친 두터운 가시들이 그들의 발바닥을 뚫고, 허벅지위로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역시 최상급의 마족답게 온몸이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음에도 죽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엄청난 생명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이것은 얼친늬 능력이 아닌가!”

 몸에 박힌 가시를 뽑아낸 컨퓨전은 이를 악물었다. 가시를 이용한 공격은 얼친의 특기다.

  “마, 말도 안 돼. 얼친 녀석의 가시는 몸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이렇게 방대한 영역에 은력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해.”

 가시가 솟구친 범위는 반경 수백 미터에 달했다.

 질로우는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컨퓨전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의 상대가 누구인지 잊었는가. 벨로로폰이다. 그가 얼친의 능력을 흡수했다면 보다 강력하게 발현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이다.

 실제로 그들의 몸을 꿰뚫은 가시는 벨로로폰이 얼친에게서 흡수한 능력이다. 얼친은 자신의 몸뚱이에서만 가시를 솟구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세서 능력을 복제한 벨로로폰은 자신뿐만 아니라 유기물이라면 손에 닿는즉시 가시를 돋아나게 할 수 있었다.

 이곳은 마족들이 떼로 몰살한 터라, 가시의 재료로 쓸 수 있는 피와 살점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언제든지 가시밭을 생성시킬 수 있는 천혜의 함정인 셈이다.

 “크윽. 벨로로폰은 죽지 않은 것인가. 그렇게 엄청난 공격을 받고도!”

 타락왕들은 고통도 잊은 채, 벨로로폰이 묻힌 곳을 응시했다.

 지글지글.

 ‘종말의 불길’로 끓고 있는 용암, 그곳에서 마완 벨로로폰이 천천히 부상하고 있었다.

 “마, 맙소사1 멀쩡하잖아.”

 그 광경을 먼저 목격한 질로우의 턱은 덜덜 떨렸다.

 타락왕이 셋이나 달려들었건만, 벨로로폰은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의 전신은 붉은 비닐로 번뜩이고 있었다..

 “비늘? 드래곤의 능력마저 흡수했단 말인가.”

 컨퓨전은 경악을 넘어 허무함까지 느꼈다. 대체 벨로로폰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크으.”

 “제, 제길.”

 설마 마왕과의 격차가 이렇게 엄텅날 줄이야. 패배의 그림자가 서서히 그들의 목을 죄어 왔다. 

 “죽어라! 벨로로폰.”

 디바울이 발악하듯 마력을 쏟았다. 

 그의 입이 기형적으로 쩍 벌어지며, 그 사이로 불쾌한 악취를 풍기는 용해액이 봇물처럼 뿜어져 나왔다. 단 한 방울만으로도 대지 수천 평을 녹여 버릴 수 있는 지독한 산성액이다.

 땅이 물처럼 흐물흐물 녹고, 매캐하게 일어난 연기가 스모그처럼 주위를 뒤덮었다.

 전력을 기울인 디바울의 능력근 가공 그 자체였다.

 “크하하, 벨로로폰! 내 용해액에 뼛조각 하나 남김없이 모조리 녹아 버려라1”

 디바울은 성급하게 웃었다.

 자신의 용해액이면 어머니인 데이크란이라 하여도 젤리처럼 흐물흐물 녹아 버릴 것이다.

 디바울의 용해액이 위험하다는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벨로로폰은 한가로운 걸음으로 타락왕들을 향해 걸었다.

 구름 위를 산책하듯 느긋한 걸음이었다.

 그러다 악취를 풍기는 용해액을 만았다. 

 불쾌했다. 

 “물러나라.”

 부채질을 하듯 손을 가볍게 펼쳤다.

 작은 손놀림. 그 하찮은 움직임에 용암처람 밀려들던 용해액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팔짱을 낀 채 벨로로폰이 용해액에 잠기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던 타락왕들은 무섭게 역류하는 용해액에 된서리를 맞았다.

 “헉!”

 “무, 무슨.”

 비명을 지르며 급히 몸을 날렸지만, 벨로로폰에게 밀려난 용해액의 속도는 상상를 불허할 정도로 빨랐다. 

 “흐악!”

 “내, 내몸이.”

 용해액을 뒤집어 쓴 타락왕들은 절규를 터트렸다.

 치이이익!

 불쾌한 소음과 함께 썩은 내가 진동했다.

 강력한 산성용액에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그들의 피부조타 주르륵 녹아내렸다.

 상처 속으로 스며든 용해액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면 강력한 생명력으로 어떻게든 버텨 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용해액 속에 치명적인 냉기가 스며 있다는 것이었다. 마왕은 음흉하게도 용해액을 밀어내는 와중에 냉기를 슬며시 흘려 놓은 것이다. 

 복제한 능력들은 수족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츠츠츠츠츠.

 마왕의 마력에 의해 몇백 배난 강화된 냉기. 이미 상처 닙은 타락왕들에게 있어 그것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으아아아악1”

 방어력이 가장 약한 질로우가 비명과 함께 온몸이 얼고 녹고 부서지며 허무하게 죽었다. 다른 타락왕들도 심각한 타격을 면치 못했다.

 “크으윽. 우, 위로!”

 턴퓨전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용해액 속에서 간신히 몸을 뺐다. 디바울과 쉬버 역시 몸이 줄줄 녹는 와중에도 끝내 살아남았다.

 하지만 결코 무사하지는 못했다.

 컨퓨전은 온몸의 피부가 녹았고, 디바울은 반신이 녹아버렸다. 

 쉬버는몸속으로 스며든 냉기에 스스로 두 다리를 잘라 내야 했다. 그나마 ‘대지의 갑옷’이 아니었다면 쉬버 역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허. 허허허허.”

 컨퓨전은 허탈하게 웃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고작 하루사이에 이런 신세가 될 줄,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살아남았는가? 크크. 아주 쓸모없는 쓰레기들은 아니었군.“

 벨로로폰이, 절망의 군주라 불리는 절대의 대마왕이 스산한 미소와 함께 천천히 걸어왔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타락왕들을 집어삼킨 용해액이 좌우로 주르륵 밀려났다. 마치 그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 절대의 존재감이란.  

 “애초에 무리였군. 상대가 안 되는 것이었어.”

 “최, 최악의 마왕이라더니.”

 “크윽.”

 타락왕들은 비통한 외침을 토했다.

 설마 이 정도 격차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기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상대는 될 줄 알았건만. 이건 병아리와 사자의 싸움만큼이나 터무니없는 결과다.

 “크흐흐흐흐. 오너라. 내 몸의 일부가 되어라.”

 벨로로폰이 스산한 웃음과 함께 두 팔을 좌우로 뻗었다. 순간 발 아래에서 습한 어둠이 피어오르며 그림자가 무섭게 뻗어 나갔다.

 그림자의 속도는 눈부시게 빨라서 상처 입은 타락왕들은 감히 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순식간에 그들은 벨로로폰의 그림자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헉!”

 놀란 헛바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림자가 늪이 되어 그들의 몸을 끌어당겼던 것이다.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림자는 끈끈한 아교처럼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 이건 쉐이드의 능력이 아닌가.”

 타락왕들은 기겁했다.

 얼친에 이어 이번엔 쉐이드까지.

 쉐이드의 그림자 능력 역시 벨로로폰의 마력을 받아 훨씬 강해졌다.

 깊은 수렁처럼 도무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크크크크크.”

 벨로로폰은 기분이 좋았다.

 하찮은 인간의 몸에 갇힌 지 얼마던가. 드디어 해방의 날을 맞았다. 이 뜻 깊은 날을 환영하득 마족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는 기뻐하며 죽음의 파티를 즐겼다.

 마족, 악어와 같은 놈들이지만 그에게는 한낱 먹이에 불과하다. 아이가 잠자리의 날개를 하나씩 뜯어내듯, 마족들을 피떡으로 만들며 마음껏 살의에 도취되었다.

 수없이 죽였다.

 온 사방이 피 냄새와 찢겨 나간 살 조각으로 자욱하다.

 만족스럽다.

 피 냄새가 좋다. 산처럼 쌓인 마족들의 시신을 찌걱찌걱 밟는 느낌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영광스러운 날. 제물이 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무모한 녀석들이 또 나타났다.

 타락왕들.

 다른 마족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한 힘을 지닌 녀석들이다. 가지고 싶다. 마음껏 탐하고 싶다.

 “크흐흐흐흐흐.”

 절로 웃음이 흐른다. 피처럼 붉은 혀가 마른 입술을 햝는다. 그는 강한 허기를 느꼈다.

 몸속 깊은 곳에 잠재된 마성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먹어라. 어둠의 종족은 네 피가 되고 살이 될지니. 닥치는 대로 qajrdj라. 세상은 오로지 너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벨로로폰은 마성의 유혹에 감동했다.

 세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니.

 이 얼마나 만족스런 말인가.

 “사, 살려 줘.”

 “마, 망할!”

 “크아아악.”

 타락왕들의 비명이 높아졌다.

 가공할 능력을 가진 그들이었지만, 그림자의 흡입력은 그런 그들의 힘을 압도했다. 쉐이드에게서 흡수한 그림자 능력은 벨로로폰의 폭발하는 마력과 합쳐져 벗어날 수 없는 늪이 되었다.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죽음의 늪.

 타락왕들은 하나 둘 미명과 함께 그림자 속에 잠겨 들었다. 

 그렇게 타락왕 두 명이 허무하게 죽었다. 벨로로폰의 그림자에 먹힌 것이다.

 하지만 남은 한 명은 달랐다.

 컨퓨전

 타락왕들 중에서 가장 강한 능역을 지닌 자.

 그는 놀랍게도 그림자의 마수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 두다리를 잃고 말았다.

 “크으.”

 컨퓨존은 가쁜 숨을 헐떡였다.

 악어에게 물린 듯, 끔찍하게 뜯겨져 나간 허벅지를 보며 그는 비감에 잠겼다.

 독기 어린 눈으로 마왕을 올려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떨어뜨려야 했다. 스산하게 번뜩이는 그 강렬한 눈빛에 도저히 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저벅저벅.

 벨로로폰이 거만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컨퓨전은 이를 갈며 전신의 힘을 손바닥에 모았다. 

필생의 기력은 물론이요, 몸속 깊은 곳의 생명력 한 방울까지 모조리 끌어냈다.

 한 방.

 이 한 방에 모든 것을 걸리라. 

 죽는 한이 있어도 벨로로폰만은 반드시 제거할 것이다.

 저벅.

 마침내 벨로로폰의 발소리가 지척에 도달했다.

 금방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이던 컨퓨전이 섬전처럼 상체를 일으켰다. 

 “죽어라!"

 그가 손을 뿌리자 작은 바늘처람 벼려진 검은 기운이 매섭게 쏘아졌다.

 데스(Death).

 고작 바늘 크기에 불과한 암흑의 기운이지만, ‘데스’ 는 그가 가진 모든 힘의 정화다. 웬만한 섬은 가루로 만들어 버릴 막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옥에서 영원히 후회하거라!”

 컨퓨전은 자신했다.

 아무리 벨로로폰이라 해도 이것만큼은 절대로 막지 못한다. 이번 공격에 생명력까기 깡그릴 쏟아 부었다. 자신 역시 죽게 되겠지만, 벨로로폰과  함께 가는 것이니 그것으로 족하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벨로로폰이 손가락으로 가볍게 ‘데스’를 잡아냄과 동시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마, 말도 안 돼.”

 ‘데스’의 속도는 가히 빛과 같다.

 타락왕들 중 가장 빠르다고 휩조차 피하지 못할 정도다.

 맨손으로 잡는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소리다.

 워낙 엄청난 마력을 응축해 놓은 터라, 살딱 닿는 것만으로도 ‘데스’는 폭발해 버린다.

 그런데 이러한 ‘데스’의 능력이 벨로로폰에겐 통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는 빛처럼 빠른‘데스’의 궤도를 정확히 꿰뚫어보았다. 또한 닿는 것만으로도 폭발하는 ‘데스’를 손가락으로 잡기까지 했다.

 “터, 터무니없는.....”

 컴퓨전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마지막이다.

 최후의 승부수까지 통하지 않은 이상, 남은 것은 처참한 죽을뿐.

 “흥미로운 물건이군.”

 벨로로폰은 ‘데스’에게 작은 관심을 보였다. 어마어마한 머력이 고작 바을 정도 크기로 압축되었다. 이런 형태의 마력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눈으로 관찰하던 벨로로폰은 느닷없이 꿀꺽하고 ‘데스’를 삼켜 버렸다.

 컨퓨전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설마 벨로로폰이 ‘데스’를 삼켜 버릴 줄이야.

 ‘혹시......’

 작은 기대를 품었다. 

 몸속에서 ‘데스’가 폭발한다면 제아무리 마왕이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데스’는 폭발하지 않았다.

 마왕의 체내로 들어간 ‘ept'는 폭발할 틈도 없이 흡수되고 말았다.

 벨로로폰의 몸은 무한히 넓은 구멍과 같아서 에너지원을 닥치는 대러 빨아들였다.

 “제법 괜찮은 힘을 가지거 있었군. 하지만 이젠 빈 껍데기만 남았구나.”

 입맛을 다신 벨로로폰은 가차 없이 컨퓨전의 머리를 쪼갰다. 힘을 잃은 타락왕 따위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크크크크크크크.”

 더러운 것을 버리듯 컨퓨전의 시신을 던져 버린 벨로로폰은 실기로 흠뻑 젖은 광소를 터트렸다. 

 산처런 쌓인 시신들.

 그 참담한 풍경 위에서 벨로로폰은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부활을 기념할 피의 축제다ㅣ.

 고작 이 정도로 죽음으로 끝낼 수는 없다.

 마성이 부르짖고 있다.

 더 많은 피가 필요하다고. 더 많은 죽음을 달라고.

 하지만 마계에서는 더 이상 거창한 잔치를 벌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반항할 놈들은 방금 모두 죽였다. 남은 놈들은 반항할 힘도, 용기도 없는 쓰레기들뿐이다.

 구석구석 뒤져보면 쓸 만한 놈들이 조금은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번거로움까지 감수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저 멀리, 마계의 하늘에 훤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느껴졌다.

 호기심이 닌 벨로로폰은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여섯 장의 날개를 펄럭이며 먹구름을 뚫고 더 높은 곳으로 올랐다.

 까마득한 하늘에서 그는 중간계로 통하는 통로를 발견했다.

 바호크 제국 곳곳에 설치된 거대한 차원의 문과 연결된 통로 중의 하나다.

 “달콤한 고기 냄새가 날 부르는구나.”

 사지를 활짝 펼치며 가성을 지른 벨로로폰은 잠시싀 주저도 없이 통로 안으로 들러갔다.

 “엇!”

 벨로로폰이 갑작스럽게 하늘 위로 올라가자 호랭이의 입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타락왕들이 너무 잔인하헤 죽는 통에 잠시 정신을 놓은 것이 실수다.

 앗 하는 사이 벨로로폰은 이미 구름을 뚫고 하늘 위로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강력한 파장과 함께 그의 가척마저 말끔하게 지워졌다. 

 “아무래도 아버지께선 중간계로 가신 듯합니다.”

 베르키스가 음울한 음성으로 조용히 말했다.

 아쉬운 듯 말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벨로로폰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다면, 목숨을 거록 그와 싸워야 했을 것이다. 지금의 벨로로폰은 정상이 아니다. 폭주하는 마성에 휘둘리는 살인마에 불과하다.

 마물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벨로로폰의 폭주를 결코 좌시할 수 없다. 설사 그것 때문에 아버지와 싸우게 되고, 그것 때문에 덧없이 죽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벨로로폰은 돌연 마계를 떠났다. 그와 일대 격전을 각오하던 베르키스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녀석이 중간계로 갔단 말이냐?”

 베르키스의 말에 호랭이는 화들짝 놀랐다.

 이토록 강력한 마왕이 인간 세상으로 진출한다. 그야말로 최악의 전개가 아닌가.

 호랭이는 마음이 급해졌다.

 “퀴니야, 빨리 야공간을 열어라. 늦기전에 녀석을 말려야 한다.”

 일행 중에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재주가 있는 사람은 퀴니뿐이다.

 멍한 눈으로 벨로로폰이 사라진 허공을 올려다보던 퀴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울었는지 상의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녀는 주섬주섬 바닥에 복잡한 마법진을 그렸다. 

 “무녀님.”

 아콘이 퀴니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며 입을 열었다.

 “굳이 게이트를 새러 열 필요는 없습니다.

 퀴니가 무슨 소리냐며 눈으로 묻자 아콘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중간계로 통하는 통로는 이미 열려 있습니다. ”

 “아! 바호크와 연결되는 ?”

 “맞습니다.”

 "쉐이드는 바호크 제국에 여러 개의 대형 건축물을 세웠다. 거대한 문과 같은 형태의 이 건축물은 마계와 중간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흐음. 그랬군. 그래서 바호크 제국에 마족들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군.”

 호랭잉가 턱을 TM다듬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굳이 마법진이 필요 없다면 그쪽을 이욜하는 것이 편하겠지.”

 마법진을 그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퀴니는 병규의 변화에 큰 충격을 받은 듯,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라도 안정이 필요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콘이 나섰다.

 “아쉽게도 저희는 여기에서 이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베르키스와 알칸테는 일행과 작별을 고했다.

 벨로로폰에 의해 마계는 쑥대밭이 되었다. 마물들 역시 많은피해를 보아Tekl 마물의 지도자로서 그들은 함부로 자리를 비울 입장이 못 되었다. 일단은 정확한 피해를 파악하고, 뒷수습을 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마왕들이 사라진 후에 찾아올 권력 공백에도 대비해야 했다. 한동안 마계는 패권을 차지하려는 자들의 분란으로 어수선할 것이다.

 “알겠네.”

 호랭이는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런데... 저자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베르키스가 물었다. 그가 턱짓하는 곳엔 노괴가 멍한 눈으로 않아 있었다. 마물들을 이끌며 책사 역할을 하덩 노괴는 벨로로폰의 갓성과 더불어 젇신에 큰 충격을 받았다.

 간신히 백치가 되는 것은 면했지만 당분간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다.

 그를 지그시 살피던 호랭이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는 이곳에 더 어울릴 사람이오. 스스로도 마계에서 살갈 바랄것이오.”

 베르키스는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가 보기에도 노괴는 인간보다 마족에 가까운 존재였다.

 “가시지요.”

 아콘이 먼저 출발했다. 그녀의 뒤를 호랭이와 샤바, 퀴니가 따랐다. 무심코 그들을 따르던 경애는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 듯 뒤돌아봤다.

 “언니!”

 레종은 다소 떨어진 곳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를 되돌려 주세요. 그를 돌려주세요. 제발. 제발.”

 그녀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신을 향해 끊임없이 기도를 올렸다. 얼마나 기도에 열중했는 지, 주위의 소리도 전혀 듣지 못했다. 그래서 벨로로폰이 마계를 떠난 지금도 두 손을 모은채, 간절히 신에게 빌고 있는 것이다. 

 경애는 쪼르르 달려가 그녀를 안고 큰 소리로 외쳤다. 

 “언니. 언니. 우리 갈 수 있어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고요.”

 레종과 경애는 마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쉐이드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 마침내 이 저주 받은 땅을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 그는?”

 레종은 깨어나자마자 병규에 대해 물었다. 그를 생각하는 그녀의 갸륵한 마음에 경애는 코가  시큰해졌다.

 “오빠는 다은 곳으로 갔어요. 이제부터 오빠를 쫓아갈 생각이에요. 언니도 함‘께 갈 거죠?”

 “그는 ....아직도 그대로인 거구나.”

 레종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렇게 간절히 바랐건만, 그녀가 바란 것은 전혀 하늘에 닿지 않았다. 경애는 레종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걱정 말아요, 언니. 언니가 알고 있는 그 다정한 사람으로, 우리가 꼭 오빠를 돌려놓을게요.”

 “......그래.”

 마지못해 대답하는 레종이었지만, 어깨가 축 늘어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괴로웠다. 그를 위새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기도뿐이라는 사실이 그녀릐 마음을 아프게 했다.

 “다들 기다려요. 어서 가요.”

 경애가 레종의 손을 끌며 앞으로 달렸다. 레종은 그녀의 손이 참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좋아. 이제 가도 되는 거지?

 그녀들은 기다리고 있던 호랭이가 씩 웃는다. 말은 안 해도 내심 걱정되었다 보다. 백발을 휘날리며 휘적휘적 걷는 그의 뒷모습이 어쩐지 외로워 보인다. 

 “.....”

 세 여인은 묵묵히 걸름을 옮겨 그의 뒤를 따랐다.

 복잡하고 우울한 상념들의 그녀들의 얼굴에 떠올랐다 다시 사라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병규의 대한 걱정이 그녀들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다.

 샤바의 모습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일찌감치 아콘의 그림다 속에 숨어든 상태였다.

 “과연......”

 멀어져 가는 그들을 지켜보며 베르키스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떠나는 사람들은 홀가분하게 가 버리면 그만이지만, 남겨진 그들은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베르키스는 오히려 그들의 앞날을 걱정했다. 

 “아버지, 당신의 가족입니다. 일말의 동정이라도 남았다면, 부디 그들을 받아들이소서.”

 근심으로 가득 찬 베르키스의 한마디가 삭막한 마계의 허공을 빙빙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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