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82/102)

  타락의 군주, 데이크란

  검은 뇌전이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북쪽 대지에 높은 탑이 하나 있었다.

  어둡고 음침한 마계에서도 가장 짙은 어둠이 드리워진 반항아들의 바벨탑.

  그 탑은 마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동시에 가장 위험한 건물이기도 했다. 탑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마계의 건축물이라 해도 탑이 살아서 움직일 리 없다.

  위험한 것은 탑의 주인이다.

  마왕.

  마계를 지배하는 절대자.

  이 탑의 주인은 바로 현 마계의 지배자 마왕 데이크란이었다.

  마앙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탑은 마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되었다. 그 탑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타락한 존재들과 십여 명의 타락왕의 존재감은 오히려 마왕이라는 단 두 글자에 비하면 초라하게 느껴질 뿐이다.

  절망의 탑.

  마왕이 잠자고 있는 거대한 탑의 이름이었다.

  쉐이드에 의해 마계로 납치된 레종 여왕은 그곳에서 마계의 지배자, 마왕 데이크란을 만났다.

  검은 뇌전으로 일그러진 탑의 정상, 그곳에 붉은 침상이 놓여 있었다. 그 침상 위에 비스듬히 누운 마왕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헉.”

  데이크란을 본순간, 레종은 너무도 놀라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소름끼치는 미모였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뇌쇄적인 눈빛.

  노을처럼 붉게 빛나는 입술.

  목에서 어깨를 타고 허리를 거쳐 늘씬한 다리까지 이어지는 날카로운 동선은 여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황홀했다.

  그녀의 몸을 가리고 있는 붉은 비단이 오히려 초라해 보일 정도로 그녀의 미모는 몸서리쳐지게 아름다웠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이곳에 오기 전, 레종은 굳은 결심을 했다.

  마왕을 만나게 되면 그에게 크게 호통을 치리라.

  마지막 순간까지 왕으로서, 중간계 존재로서의 꿋꿋함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설혹 그 때문에 잔인하게 죽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하지만 데이크란을 본 순간 그런 다짐들은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워졌다.

  백치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

  데이크란은 침상 위에 비스듬히 누운 채 그녀를 쓱 한 번 쳐다보기만 했다.

  무료해 보이는 눈이었다.

  쉐이드가 데이크란의 귓가에 작게 몇 마디를 속삭였다.

  순간 묘한 기광이 그녀의 두 눈에 맺혔다.

  “아이린의 여왕이라고?”

  데이크란이 가볍게 손을 저었다.

  레종은 허공을 둥둥 뜬 채, 그녀 앞으로 끌려갔다.

  “곱구나.”

  빨간 손톱이 레종의 뺨과 턱을 훑었다. 레종은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젊고 순수해. 그가 왜 널 유혹했는지 알겠어.”

  유혹이라는 말에 멍하게 흩어졌던 레종의 눈동자가 반짝 빛을 발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유혹이라고요?”

  데이크란은 그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레종은 알 수 있었다.

  “후작님을 말하시는 건가요?”

  “후작이라. 벨로로폰은 아직도 귀족놀이를 좋아하는 것 같군.”

  “벨로로폰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그는 엄연히 다른 이름이 있어요.”

  마계로 끌려오는 동안 그녀는 쉐이드에게서 병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피로 점철되었던 그의 과거를 그녀에게 하나 남김없이 전해 주었다. 하지만 레종은 믿지 않았다.

  곧이곧대로 믿기엔 너무도 추악한 이야기였다. 순진한 그가 절대로 사악한 군주일 리 없다고 굳게 믿었다.

  레종의 억지 같은 항변에 데이크란은 차디찬 조소를 뿌렸다.

  “그를 믿느냐? 후후. 충고하건대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아. 그는 너 같은 여자를 유혹하고, 타락하게 만드는 걸 즐기는 악마거든.”

  “그렇지 않아요. 그는, 그는 절 유혹하지 않았어요!”

  “그래?”

  반문과 함께 데이크란은 사요하게 웃었다.

  너무도 매끄럽고 탐욕스러워 오히려 온몸이 녹아 버릴 것 같은 매력적인 미소였다.

  레종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매력 때문도, 그녀가 마왕이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병규가 그런 오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 억울해서였다.

  사악한 마족들.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온갖 감언과 거짓으로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저주받는 존재. 그래서 그녀는 격렬하게 항거했다. 자신을 지키고, 그의 순수함을 항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마왕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대항했다.

  하지만, 레종의 그런 점이 오히려 데이크란을 더더욱 자극했다.

  “후후. 왜 그렇게 애쓰는 거지? 내 얘기가 믿기지 않다면 그렇게 화를 낼 필요도 없지 않을까?”

  “믿지 않아요. 당신의 이야기 따윈. 그는, 그는 날 위해, 아니 우리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어요. 사악한 필립 공작을 무찌르고 반란을 진압했고, 또 바호크의 침공을 저지했어요. 그런 그를 당신은.......”

  레종은 오열을 터트리며 그를 변호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데이크란은 가슴이 철렁 무너질 만큼 매력적으로 웃었다.

  “만약 그가 네 일에 개입하지 않았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니?”

  마치 친구에게 속삭이듯, 그녀는 레종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반란군에 쫓기는 널 그가 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넌 추격대에게 잡히고 말았겠지. 그런 다음 어떻게 되었을까? 필립 공작이라는 자는 아마도 널 볼모로 반란군의 주축인 트라우마를 굴복시켰을 거야. 그걸로 끝이야? 물론 너와 반란군의 주축은 죽어서 성루에 매달릴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적어도 자국민끼리 피를 흘리는 내전은 발발하지 않았을 테지. 자, 이래도 그가 널 위해 희생한 것이라 생각하느냐?”

  “......!”  데이크란의 속삭이는 말에 레종은 전율을 느꼈다. 그녀의 말, 소곤소곤 말을 이어 나가는 그녀의 붉은 입술에서 타락의 전언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가 아이린 왕국의 내전에 개입하면서부터 일은 복잡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정리될 수 있었던 내전에 쓸데없이 길어지고,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지. 바호크와의 전쟁은 또 어떻지? 만약 그와 그의 동료들이 없었다면 아이린 왕국은 바호크의 속국이 되었을 뿐이야. 하지만 그가 나섬으로써 어떻게 되었는가? 두 나라의 전쟁이 이드라센 대륙 전반으로 불길처럼 번졌다. 결국 마족들까지 참전하게 되었지. 이래도 그가 너희들의 영웅일까? 내가 보기엔 전쟁을 크게 확산시킨 악마처럼 보이는데 말이야.”

  데이크란의 속삭이는 음성은 가히 이브를 꼬드겨 선악과를 먹게한 사탄과 같았다.

  “내가 볼 때 너희들이 칭송하는 영웅은 우리 마족과 다를 바 없는 존재야. 영웅이 전장에서 죽인 적들은 과연 악당일까? 흥, 그들 역시 사랑하는 연인이 있고, 지켜 주고픈 가족이 있고, 함께 웃고 떠들 친구가 있는 불쌍한 인간에 불과해. 단지 다른 국적이 다르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런 가련한 자들을 도축하듯 잔인하게 죽이고 얻는 칭호가 바로 영웅이라는 두 글자다. 고작 그것뿐이지. 보다 많은 사람을 죽인 자가 칭송을 받는다. 호호. 이거야말로 우리 마족들이 바라는 이상향이 아닌가.”

  “듣고 싶지 않아요! 이 타락한 마족! 날 괴롭히지 말고 그냥 죽여라!”

  레종은 두 귀를 막은 채 흐느꼈다.

  미칠 것만 같았다.

  데이크란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는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후후후후.”

  그녀가 괴로워하면 할수록 데이크란은 즐거워했다.

  “내가 타락한 마족인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네가 사랑하는 그 역시 나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터무니없는 소리! 당신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는.......”

  “그가 어떻다는 거지?”

  “수, 순수해요. 절대로.”

  레종은 발악하듯 버럭 소릴 질렀다. 그러면서도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의문이 들었다. 그에 대한 말에 왜 이리 발끈하여 소리치는 것일까. 그녀 자신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지만,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억울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데이크란은 즐거웠다.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래. 그렇구나. 순진한 네가 흠뻑 빠질 정도로, 그는 여전히 그런 자로구나.”

  데이크란의 웃음에서 레종은 섬뜩함을 느꼈다.

  소름.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팔다리가 부들 떨렸다.

  “네가 믿고 있는 그 순진한 남자. 사실은 최악의 남자야. 후후, 거짓말인 것 같나? 아니라고 외치고 싶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실이야.”

  데이크란은 비스듬히 침상에 누웠다.

  “너에게 옛이야기를 해주마.”

  그녀가 손짓을 하자, 레종의 몸이 스르르 끌려갔다. 데이크란은 가늘고 긴 손을 뻗어 레종의 이마를 짚었다.

  촤악!

  은빛 서기와 함께 레종의 전신이 활짝 펼쳐졌다. 데이크란의 손가락 끝으로부터 혼탁한 기억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달콤하고 참담한 과거의 이야기였다.

  “거짓말.”

  레종은 힘없는 목소리로 외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녀의 음성엔 왠지 힘이 부족했다.

  주르륵 흘러나온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턱 아래로 흘렀다.

  데이크란이 그녀의 뇌리로 직접 전해준 것은 한 인간 여자의 슬픈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에서 벨로로폰이라고 불리는 그는 정말로 사악한 자로 등장한다. 그녀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악마보다도 벨로로폰은 더 잔인하고 더 악랄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턱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지금 이 이야기...... 설마.......”

  “쓸데없는 말은 입에 담지 않는 게 좋아.”

  데이크란이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고혹적인 표정이었지만 레종은 한 wfnrl 차가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레종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슬픈 눈으로 데이크란을 보았다.

  “가라. 넌 미끼야. 곧 그가 널 찾아올 것이다. 그때에도 과연 네가 웃을 수 있는지 보고 싶구나.”

  이 말을 끝으로 데이크란과의 면담은 끝이 났다.

  레종은 마왕의 내실에서 나와 탑의 은밀한 곳에 다시 감금되었다.

  그녀는 힘없이 침대에 누운 채 눈물만을 흘렸다. 두 손으로 귀를 막았건만 여전히 데이크란이 했던 말들이 귓가를 맴돌았다.

  ‘졌어.’

  패배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

  떳떳하게 최후를 맞겠다던 그녀의 바람은 데이크란의 짧은 이야기 앞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아니야.”

  그녀는 병규가 절대 벨로로폰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데이크란의 음성에 감화된 그녀의 영혼은 끊임없이 눈물만을 흘렸다.

  그녀의 영혼은 외치고 있었다. 그는 이 일과 절대로 무관하지 않다고.

  사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다.

  비록 병규가 중간계에서 강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마족들을 긴장시킬 정도로 대단한 존재는 아니다. 병규가 평범한 인간이라면 데이크란이 직접 그를 유인할 필요가 없다. 만약 그의 존재가 중간계 정벌에 걸림돌이 된다면 수많은 마물과 마족들을 동원해서 처리하면 그만이다.

  그런 간단한 방법이 있음에도 데이크란은 힘들게 그를 마계로 유인했다. 이 점 하나만 보더라도 그는 심상찮은 인물임에 틀림이 없었다.

  레종은 의지를 잃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데이크란의 말에 따르면, 그가 자신을 찾기 위해 온다고 한다. 과연 그를 따라야 할까? 과연 그를 믿을 수 있을까?

  이와 같은 물음에 그녀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데이크란의 이야기에 이토록 무기력해지는 자신에게 놀랐다.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아니, 잊고 싶다. 그렇게 다짐했지만 생각과 달리 그녀는 전혀 의욕이 일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욱신거리고, 시야가 하얗게 바래졌다.

  “바보.”

  레종은 그를 떠올리며 처량한 미소를 머금었다.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철문 아래로 몇 번인가 식사가 제공되었지만 레종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무기력하게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쿵쿵 하는 소음이 들렸다.

  침상에 누운 레종은 눈을 감은 채 듣기만 했다. 작은 진동과 소음은 점차 커져 어느새 그녀가 누운 침상마저 덜컹거릴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와르르 하는 소음과 함께 한쪽 벽이 무너졌다.

  “어라? 여기는 또 어디지?”

  먼지 속에서 고운 음성이 들려왔다. 레종이 전혀 모르는 언어였다. 레종은 누운 채 그녀를 보았다.

  머리를 양 갈래로 딴 귀여운 여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레종과 눈이 마주치자 무섭게 눈동자를 반짝였다.

  “어머, 사람이네.”

  레종을 본 그녀는 기뻐하며 쪼르르 달려왔다.

  “반가워요. 이 어두운 탑에 데이실말고 또 다른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이런 음침한 곳에서 뭐해요? 이 동네 사람들은 취향이 좀 특이해서 어두운 걸 좋아하는 건 알지만, 언니는 그중에서도 으뜸이네요. 창문도 없으면 갑갑하지 않아요?”

  분명 오늘 처음 본 사인데, 그녀는 마치 오래전 헤어진 친구를 만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레종은 멍한 눈으로 그녀와 그녀가 뚫고 들어온 벽을 응시했다.

  “아, 이거요?”

  그녀는 귀엽게 혀를 쑥 내밀었다.

  “심심해서 탑을 약간 손보던 중이었어요. 여긴 너무 폐쇄적이고 답답하잖아요. 격벽을 없애고 공간을 넓히면 시원해 보일 거예요.”

  그녀는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탑의 구조 변경을 부탁하지 않았다. 그녀 혼자 심심하다는 이유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제지하는 자가 없었던 이유는, 데이크란의 특별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데이크란은 그녀를 아꼈다. 그래서 그녀가 하는 일은 뭐든 호응해 주고, 적극 도와주었다. 결국 마족들은 그녀가 하는 일이면 설사 그것이 결국 탑을 무너트리는 일일지라도 못 본 척 무시하기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데이크란의 이 터무니없는 보호 덕분에 그녀는 절망의 탑을 마음껏 부술 수 있었다. 덕분에 멀쩡한 탑 하나가 위태로워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실 지금까지 절망의 탑이 버티고 있는 것이 용했다. 인간들이 만든 탑이었으면 그녀가 작업을 개시한 지 하루 만에 폭삭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안색이 불편해 보이는데. 언니, 혹시 어디 아파요?”

  그녀는 인상을 찡그리며 레종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실의에 빠진 레종은 의욕을 잃었다. 눈앞에서 손을 흔드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헉! 많이 아픈가 본데.”

  그녀는 레종의 무반응에 화들짝 놀랐다. 축 늘어진 그녀를 다짜고짜 일으켜 세웠다.

  “안 되겠어요. 저랑 같이 치료 받으러 가요.”

 레종이 갇힌 방은 두꺼운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팔뚝만한 두께의 철문 정도로는 결코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부서져!”

  그녀가 외치자, 묵직한 철퇴로 내려찍은 것처럼 철문이 움푹움푹 패이더니 쿠쿵 하고 떨어져 나갔다.

  “꾸륵.”

  “꾸구국.”

  감옥을 지키고 있던 토돈족들이 깜짝 놀라들어 왔다가 그녀를 보고 흠칫 놀랐다.

  “꾸륵. 무, 무녀님.”

  “고생하시네요. 언니랑 잠깐 산책하고 올게요.”

  그녀는 움찔하는 토돈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레종과 함께 당당히 감옥을 빠져나갔다.

  “??”

  “!”

  토돈들은 고민했다.

  이대로 인간 여왕을 풀어 줘도 되는 것일까?

  “어쩌지?”

  “쉐이드 장군이 인간 여왕을 잘 감시하고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마왕님은 무녀님을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

  토돈들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결론은 간단히 내려졌다.

  “가만있자.”

  장군인 쉐이드보다는 마왕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한편, 어이없이 레종을 탈출시킨 그녀는 소풍을 가듯 발랄하게 복도를 걷고 있었다.

  “전 경애라고 해요. 언니 이름은 뭐예요?”

  경애가 눈을 반짝이며 레종에게 물었다. 경애가 하는 말은 레종이 한 번도 못 들어 본 언어였다. 그러데 신비하게도 레종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레, 레종.”

  “헤에. 이쁜 이름이네요. 음.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 같아요. 음. 뭐였더라. 아! 맞아. 편의점에서 일할 때. 헤헤. 저...... 이렇게 말하면 실례지만, 언니 이름은 제가 살던 세계의 담배 이름과 비슷한 것 같아요. 아아~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비슷하다는 것뿐이니까요. 차라리 잘됐네요. 외우기 쉽고 부르기 편하니. 헤헤. 자랑은 아니지만 저 건망증이 심해서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우거든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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