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73/102)

신성제국을 접수하러 왔다, 샤바

  아이린 왕국의 내전이 한창 심각한 지경에 다다르고 있을 때의 애기다.

  아마스 신성 제국은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린 왕국의 내전 상황을 보고 받으며 앞으로의 대륙 판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렇게 정치적으로 복잡한 상황에 직면한 아마스 신성 제국의 황성, 타이론.

  일찍이 천지창조의 시발점이라고 알려진 타이론의 북문엔 두 명의 근위기사가 준엄한 표정으로 사위를 쏘아보고 있었다.

  기사들은 은색으로 번쩍이는 풀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하고 있었고, 왼쪽 가슴에는 신성 기사단임을 표시하는 아마란스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렇듯 성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북문 앞은 실제론 인적이 매우 드물었다.

  신성 기사단이 지키고 북문은 권위 있는 고위급 사제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때문에 하루 종일 지키고 있어 봐야 오가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오늘 역시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오전 일찍 이카루다 지역의 고위신관이 한 명 들어간 이후로 북문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

  오후의 햇살은 따사롭고, 문을 지키는 일은 지겹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신을 경배하는 신성기사들이라 해도 어깨가 축축 늘어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품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을 때였다.

  “아저씨들. 여기가 신성제국의 황성 타이론이 맞나요. 샤바?”

  “헛!”

  “잉?”

  갑자기 들려온 물음에 두 기사는 깜짝 놀랐다.

  누가 감히 자신들의 이목을 속이고 이렇듯 가까이까지 접근할 수 있단 말인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검은색의 긴 머리칼을 가지런히 넘긴 소년이 그들을 향해 귀엽게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허.”

  “!!”

  소년을 본 기사들의 입에서 헛바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무 아름다웠다.

  소년이 자신들의 이목을 속일 수 있을 정도의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의문을 한 방에 저 멀리 날려 버릴 정도로.

  자고로 기사들만큼 남자의 로망을 잘 아는 자들도 드물다. 힘과 예의. 무력과 절제의 균형을 가장 이상적으로 겸비한 것이 바로 기사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사들이 한순간에 소년의 얼굴을 보고 넋이 나가버렸다.

  아니, 아름답다는 말조차 아깝다. 그의 전신에서 성스러운 오러가 풍겨 나오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전설로 회자되는 신의 헌신을 대하는 것 같았다.

  그 만큼 소년의 모습은 완벽 그 자체였던 것이다.

  두 기사가 멍하니 서 있을 때, 소년이 다시 물었다.

  “이곳이 황성 타이론이 맞나요. 샤바?”

  “허험, 어험.”

  그제야 정신을 차린 두 기사는 부끄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남자 아이의 미모를 보고 넋이 빠져 있었다니. 그들을 신성시하는 일반 백성이 들으면 비웃음을 살 일이다.

  “험험. 마, 맞다. 이곳이 바로 위대한 신성제국의 수도, 타이론이다. 넌 무슨 볼일인 거냐?”

  애써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내심 소년이 무슨 이유로 방문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복장을 보아하니 신관은 아닌 듯했다.

  “헤에. 무슨 볼일이냐고요. 샤바?”

  소년은 맑게 웃으며 반문했다. 그 밝은 웃음에 두 기사는 또 다시 멍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어진 소년의 말에 두 기사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떠야 했다.

  “신성제국을 접수하러 왔어요. 샤바.”

  “엥?”

  이게 무슨 말인가.

  설마 감히 신성기사들의 코앞에서 이런 방약무인한 소릴 하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기사들의 얼굴이 대뜸 일그러졌다.

  “철없는 아이로군. 신성한 타이론 황성에서 그런 불경한 농담을 하는 게 아니다. 이번만은 용서해 줄 테니, 경을 치기 전에 썩 물러가거라.”

  협박하듯 윽박지르면 겁을 먹고 도망갈 줄 알았다.

  하지만 소년은 전혀 그럴 뜻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성제국을 접수한다는 말은 결코 농담으로 한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농담한 거 아닌데요. 샤바.”

  “허허. 대낮부터 별 소릴 다 듣겠군.”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설마 황성의 정문에서 당당하게 신성제국을 접수하겠다고 외치는 미친 녀석이 있을 줄이야.

  “그런데 이곳을 접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샤바?”

  황당해하는 기사들의 표정과는 무관하게 소년은 여전히 순진무구한 표정이었다.

  기사들도 더는 곱게 애기해 줄 생각이 없었다.

  “터무니없는 소리. 타이론 황성의 신성기사들과 영광스런 빛의 군대가 이 땅에서 모두 사라지기 전에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기사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허나 자부심이 어린 기세등등한 외침이었지만, 기사들의 기대와 달리 소년의 반응은 전혀 색달랐다.

  “호오. 그럼 이 안의 사람들이 싹 사라지면 되는 거군요. 샤바.”

  소년의 두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현란하게 반짝이는 소년의 눈동자를 보며 기사들은 불길함을 느꼈다.

  “그럼 제대로 접수하겠습니다. 샤바.”

  딱.

  소년의 손가락이 부딪혔다.

  두 기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소년의 행동이 무얼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기사들의 입이 쩍 하고 벌어지고 말았다.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불길한 소음과 함께 소년의 그림자가 불쑥 일어났다.

  아니, 일어났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하수맥이 터진 것처럼 솟구친 그림자는 소년의 머리위로 끊임없이 올라오더니 곧 불길한 먹구름처럼 황성의 하늘을 까맣게 가려버렸다.

  “대, 대체 이게.”

  자각자각자각자각!

  검은 그림자에서 들려오는 불길하고 소란스런 소음에 기사들은 귀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자세히 보니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그것은 실상 작은 벌레들의 집합이었다.

  작은 벌레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먹구름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사각거리는 소음과 벌레들의 파닥거리는 요란한 날갯짓 소리에 절로 오한이 들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른 불길함은 기사들의 얼굴을 사색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대체 이게 뭐야!”

  기사들은 비명을 질렀다.

  이런 사악한 마법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렇게 엄청난 마법도 처음이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 작은 소년의 그림자 속에 저런 엄청난 것이 들어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그림자에서 솟아나온 벌레들이 산 하나를 통째로 덮을 수 있단 말인가.

  황성을 향해 스멀스멀 내려오는 검은 먹구름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진정한 공포는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깔끔하게 쓸어 드려라. 샤바.”

  샤바의 조용한 명령에 이어 느긋하게 움직이던 먹구름이 돌연 폭포수처럼 황성으로 쏟아졌다.

  콰드드드드드드드드득.

  수를 셀 수 없는 샤바의 백성이 거친 해일로 변해 성스러운 황성을 뒤덮었다. 한가로운 한때를 즐기고 있던 황성의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난데없이 떨어진 재앙이었다.

  “우웩!!”

  “케엑! 이, 이게 무슨!”

  “사, 살리도!”

  “흡흡흡흡흡흡흡흡흡!

  거친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가는 검은 백성 앞에선 최강을 자랑하는 성기사들도, 막대한 병력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강물에 휩쓸린 낙엽들처럼 속수무책으로 쓸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개중 수영에 능한 몇몇은 백성의 거친 격랑을 헤치며 수영을 시도했으나, 차라리 태풍이 불어치는 해변가에서 발레를 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산처럼 솟구친 검은 파도에 황성은 깨끗이 쓸려 버렸다.

  검은 먹구름과 같은 소년의 백성이 황성에서 물러갔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던 황성은 버려진 저택처럼 휑한 정적만이 남게 되었다.

  “이제 깔끔하게 정리 되었네요. 샤바.”

  손을 탁탁 털며 소년은 방긋 웃었다.

  “이럴 수가 ... .”

  성기사 둘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허, 허허.”

  헛웃음이 나왔다.

  더 이상 소년은 성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티 없이 맑은 웃음은 악마의 유혹처럼 느껴졌다.

  “이, 이 사악한!”

  그들은 분노를 표출하며 검을 꼬나들었다.

  “무엄하다.”

  한 줄기 호통과 함께 검은 그림자가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소드익스퍼트 급의 기사지만, 그림자의 기습은 교묘하고 치밀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 .”

  두 기사는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에 ... 죽이지는 않았겠지. 샤바?”

  “물론입니다. 마스터.”

  소년의 물음에 기사들을 정리한 크리티컬은 공손히 허리를 접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소년에 대한 충성심이 깊게 드러났다. 

  소년은 가만 황성을 바라보았다.

  정적으로 뒤덮인 황성은 고즈넉한 사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퀴니야. 이제 여긴 다 정리했는데, 다음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샤바?”

  소년이 뒤를 돌아보며 묻자, 어두운 숲에서 귀여운 금발머리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햇살이 그늘진 소녀의 얼굴을 밝히자 눈이 부실 정도의 아름다움이 꽃처럼 환하게 피어났다. 소녀 특유의 귀여움과 여인의 성숙미가 한데 섞여 묘한 흥분을 일게 했다.

  특이한 것은 그녀가 안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녀는 다 찌그러진 자명종 하나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물단지처럼 아꼈다.

  물론 소녀는 퀴니였다.

  그리고 역시나 당연하지만, 검은 먹구름을 가장한 백성들로 대 신성제국의 황도를 간단하게 쓸어 버린 소년은 샤바였다.

  병규를 돕기 위해 트라우마를 떠난 둘은 계획대로 세계정복을 위해 신성제국을 찾은 것이다.

  “벌써 정리한 거야? 빠르네.”

  졸고 있었던 듯, 그녀는 채 떠지지 않는 눈을 비볐다.

  그 모습이 그렇게 깜찍할 수 없었다.

  “백성들이 수가 제법 모여서 쉽게 끝났어. 샤바.”

  “그새 그렇게 많이 늘은 거야? 이젠 좀 너무 많은 것 같아.”

  “아니야. 샤바. 아직 부족해. 샤바.”

  “부족해? 그럼 어느 정도가 되면 만족할 건데?”

  퀴니가 묻자 샤바는 한 손을 쪽 펼쳐 보였다.

  “지금의 다섯 배?”

  샤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오천 배.”

  움찔.

  순간 퀴니의 어깨가 흔들렸다.

  퀴니도 항공모함을 장난감처럼 생각할 정도로 통이 큰 사람이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샤바의 배포는 감당이 안 될 지경이다.

  퀴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샤바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꺼냈다.

  “샤바야.”

  “왜. 퀴니야. 샤바?”

  “넌 이 별을 아예 네 백성으로 가득 채울 생각인 거니?”

  “샤바?”

  “순진한 이드라센 대륙의 마법사들을 해충 박멸 사업에 몰두하게 만들 생각인 거니?”

  “샤바?”

  “해충박멸에 실패한 국왕이 대국민 성명을 통해 ‘바퀴는 생활이에요~’ 라는 성명을 발표하게 할 생각인 거니?”

  “샤바?”

  거듭되는 질문에 샤바는 왠지 모르지만 살포시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못 본 사이 쿠니는 상당히 똑똑해진 것 같았다.

  “좋아. 이제 황성으로 들어가 볼까.”

  길게 기지개를 킨 퀴니는 황성을 향해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쫑쫑.

  그녀가 걸을 때마다 신발에서 소리가 났다.

  “오오. 샤바.”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니 무척이나 신기했던가 보다. 침을 뚝뚝 흘리며 지켜보는 것이었다.

  물론 이 신발은 지구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소리 나는 신발은 유아 때나 신는 아동용이지만, 천진난만하다 못해 유아틱한 퀴니는 유독 이 신발을 좋아했다.

  만약 그녀가 다른 보통의 아이들과 어울렸다면 이런 유아적 취향은 옛날에 없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가스펠의 총수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그러다보니 학교 대신 개인 교사에, 또래의 친구들 대신 수염 덥수룩한 능력자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덕분에 이런 유아적인 취향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퀴니가 얼마나 삑삑이 신발을 좋아했던지 가스펠에서 특수 제작까지 지시했을 정도였다.

  물론 그녀가 이렇게 된 것에는 그녀 주위의 사내들이란 것이 죄다 심각한 로리콘 중독증세를 가지고 있었던 면이 적잖게 작용했다.

  “신기해. 샤바.”

  샤바가 삑삑이 신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자 퀴니는 살짝 고개를 들어올렸다.

  은근히 자부심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정말 조용해졌네. 이제 제국의 황제를 만나보도록 할까? 황제는 남겨 놨지?”

  “가장 뚱뚱한 사람을 남겨 뒀어. 샤바.”

  흥겹게 대답하던 샤바는 문득 의문이 생긴 듯 퀴니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가장 뚱뚱한 사람이 황제야?”

  “바보.”

  퀴니는 입을 쀼루퉁 내밀었다.

  “그건 아주 간단한 이치야.”

  “어떻게. 샤바?”

  퀴니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황성을 가리키며 외쳤다.

  “이 커다란 성의 대장이 누구지?”

  “물론 황제지. 샤바.”

  “바로 맞았어. 황제란 가장 높은 사람이야. 그럼 당연히 이곳에서 젤 맛있는 음식도 황제가 먹겠지? 달고 맛있는 걸 먹으면 살이 찌는 것이 인지상정! 그러니까 이 성에서 가장 살찐 사람이 황제라는 거야.”

  “오오. 그런 거구나. 샤바.”

  퀴니의 논리정연(?)한 설명에 샤바는 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가만 생각하니 나름대로 일리 있는 말이 아닌가.

  자신만 봐도 백성들보다는 훨씬 잘 먹으니 말이다.

  “존경스러워. 샤바. 퀴니는 어떻게 그런 걸 아는 거야. 샤바샤바?”

  “더 커. 샤바?”

  샤바는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키는 내가 더 커. 샤바.”

  “바보. 남자와 여자는 적용되는 기준이 틀려.”

  “아하. 그렇구나. 샤바.”

  손바닥을 두드린 샤바는 존경스러운 눈으로 퀴니를 올려다보았다. 퀴니는 까치발을 하고 샤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말만 잘 따라. 그럼 샤바도 금방 클 수 있어.”

  “알았어. 샤바. 샤바는 퀴니를 호랭이만큼 좋아해.”

  움찔.

  퀴니의 표정이 굳었다.

  “호랭이 ... 만큼?”

  “응. 샤바.”

  퀴니의 표정이 한층 심각해졌다.

  병규 만큼은 못 되더라도 최소한 호랭이 정도는 제친 줄 알았는데, 못 본 사이 호랭이가 많이 분발한 모양이다.

  위기감을 느낀 퀴니는 하는 수 없이 비장의 수단을 쓰기로 결심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그녀는 꼼지락거리며 작은 사탕을 하나 꺼낸 것이다.

  “샤바!”

  먹을 것을 본 샤바는 더듬이처럼 머리칼을 쭈뼛 세웠다. 단 음식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샤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사탕처럼 달고 색다른 맛을 풍기는 음식이 이드라센에는 없었다.

  사탕의 향긋한 냄새가 풍기자 절로 입가에 침이 맺혔다.

  퀴니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샤바에게 물었다.

  “내가 좋아. 호랭이가 좋아?”

  “똑같이 좋아.”

  “호오. 그래?”

  퀴니는 내밀었던 사탕을 슬쩍 회수했다.

  “샤, 샤바.”

  샤바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그 비단결 같은 얼굴에 실망이라니.

  평범한 여자들 같았으면 가슴이 쪼개지는 충격을 느끼며 허물어 졌으리라. 하지만 퀴니는 달랐다. 오연한 표정으로 사탕이라는 매혹적인 미끼를 다시 한 번 슬쩍 내미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 호랭이가 좋아?”

  눈앞에 흔들리는 사탕의 달콤한 향기.

  샤바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어졌다.

  “퀴, 퀴니일까나. 샤바?”

  “좋아.”

  퀴니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사탕을 건네주자, 샤바는 머리카락을 쫑긋 세우며 즐거워했다.

  “고마워, 샤바.”

  “그래그래. 앞으로도 내 말만 따라.”

  샤바를 쓰다듬어 준 퀴니는 황성 안으로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이제 황제를 만나야 할 시간이다.

  이미 퀴니의 조언에 따라 백성들에게 쓸려갔던 사람들 중 가장 뚱뚱한 사람을 황궁으로 다시 옮겨놓으라는 지시를 내린 후였다.

  “사탕. 사탕. 샤바~ 샤바~”

  쫑쫑거리는 퀴니의 뒤를 사탕을 입에 문 샤바가 발랄한 표정으로 따랐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마일드의 일곱 사신이 소리 없이 따랐다.

  황실 안은 의외로 깔끔했다.

  샤바의 백성들이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모든 잡기들은 평소의 광택을 유지한 채 멀쩡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만 사람만은 없었다.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지나다니는 시종들. 거드름 피우는 신관과 귀족들, 그리고 근엄한 표정의 기사들과 보폭을 맞춰 걷던 근위병들.

  그 많던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디야?”

  휑한 황성 내부를 둘러보던 퀴니가 샤바에게 물었다. 샤바는 머리칼을 번개 모양의 안테나처럼 세우더니 한쪽을 가리켰다.

  “이쪽이야.”

  샤바의 안내를 따라 황성의 깊숙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한참이나 화려한 복도를 따라 걸었다. 신화와 전설이 벽화로 그려진 거대한 돔으로 나왔을 때, 마침내 둘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정말로 비대한 자였다.

  장정 세 명이 앉아도 넉넉할 듯한 왕좌가 비좁게 보일 정도였다.

  “너, 너희들은 누구냐! 어디 소속의 하인들이냐.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근위병과 기사들은 다 어디 있느냔 말이다!”

  그자는 온몸을 감싸 안은 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불안정한 눈동자는 공포를 그대로 안고 있었다.

  그나마 샤바의 백성들과 휩쓸린 것치고는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나, 날 남겨두고 다들 어디 갔단 말이냐. 여,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놀랍게도 그자는 황제였다.

  복잡한 문양의 법을 뒤집어쓴 그는 배가 임산부가 ‘대모님~’ 하고 존경할 만큼 복부비만이 심각한 배불뚝이였다.

  황당한 우연의 일치에 불과했지만 이 일로 퀴니의 기고만장은 하늘을 찌르게 되었고, 퀴니에 대한 샤바의 존경심은 한층 깊어지게 되었다.

  “너, 너희들은 이곳 사람이 아니구나.”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퀴니와 샤바가 별다른 반응을 안 보이자 황제도 이상함을 느낀 것인지 버럭 괴성을 질렀다.

  “너, 너희들은 대체 누구냐! 누구인데 황성까지 들어와 짐을 위협하는 것이냐!”

  “나?”

  퀴니가 빙그레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신성 제국을 접수하려 온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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