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61/102)

              이드라센의 생물이 아니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 트라우마 성의 병사인 알타는 장비를 대충 챙겨들고 성문으로 향했다.

   친우인 스웨인과 교대할 시간이다.

   그는 친구에게 점심대신 줄 간단한 먹거리를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성문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터덜터덜 걷다 보면 어느새 닿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다.

    “이제 오는가?”

    성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검문하고 있던 스웨인이 그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래. 오늘도 별일 없지?”

    “허허. 이 시기에 뭔 일이 있을라구. 폭풍도 없고, 몬스터도 얌전하네.”

   태평스럽게 대화를 주고 받고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실상을 그렇지 못했다.

   현재 아이린 왕국은 내전 중이다.

   그것도 트라우마의 성주인 글로리 후작이 밀어주고 있는 공주파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언제 이곳 트라우마가 전쟁으로 불바다가 될지 모른다.

   최근 반란군의 주력이 트라우마로 진격하고 이싿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긴장감은 더욱 높아졌다.

   “차라리 몬스터와 싸우는 게 낫지. 같은 국민끼리 전쟁이라니. 쯧쯧.”

   “누가 아니래나.”

   답답한 마음에 두사람은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응?  그런데 저게 뭔가?”

   막 스웨인과 교대하려던 알타가 붉은 대지 저편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가?“

   “저기 말이야. 저기. 먼지가 부옇게 일고 있잖아.”   스웨인은 눈을 지그시 여미며 알타가 가리킨 곳을 주시했다. 북쪽 땅 먼 곳에서 뿌연 먼지가 그름같이 일고 있었다.

   “정말이네. 모래 폭풍이라도 부는 걸까?”

   “이 시기에? 바람 한 점 없는걸.”

   “그 이상하군.”   두 사람은 피를 잔뜩 머금은 안개처럼 붉게 일어나는 흙먼지에 주목했다.

   “뭐가 있는 것 같은데?”

   흙먼지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뭔가가 보였다. 아직 멀어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꾸물꾸물하며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보이네. 뭔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군.”

  한참 더 주목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폭풍과도 같은 붉은 먼지구름은 계속 성 쪽으로 다가왔다.

   “헉!”

   “마,맙소사.”

   먼지구름을 일으키고 있는 것의 정체를 확인하게 된 두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 오우거?”

   “트트트......  트윈헤드다!”   놀랍게도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던 먼지구름은 바람  때문에 일어난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몬스터. 

   그것도 가장 흉폭하다고 알려진 트윈헤드 오우거 때문이었다. 놈이 미친 듯이 뛰어오는 것 때문에 생긴 먼지구름이었던 것이다.

   “어, 엄청난 놈이군.”

   멀리서 보기에도 트윈헤드의 덩치는 엄청났다.

   대략9미르 정도?

   보통의 오우거가 5미르 정도고, 트윈헤드의 평균 신장이 7미르 정도임을 감안하면 정말이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거대한 놈이었다.

   몬스터들의 성지라 불리는 붉은 대지에서도 이렇게나 거대한 놈은 없었다.

   쿵쿵.

   지축을 울리며 달려오는 모습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10년이 넘게 성문지기를 하고 있는 스웨인조차 처음 보는 거대한 놈이었다.

   “망할!”

   절로 욕지기가 솟았다.

   “어째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했더니.”

   지난 밤 그는 한 무더기의 오크 떼가 품안으로 달려오는 꿈을 꾸었다.

   희한한 꿈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늘 이 거대한 오우거를 만나려고 그랬던가 보다.

   “빨리 내성에 알리게.”

   스웨인의 말을 들은 알타가 화들짝 성문 안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어수선한 발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찢어지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 오우거다!”

   “전투준비.”   “빨리 후작님께 보고하라.”

   “사람들을 성 안으로 들이고, 빨리 성문을 닫아. 성루의 궁병들을 불러와. 비상이다! 빨리 움직여.”

   트윈헤드가 맹렬한 스피드로 돌진하자 놀란 병사들은 황급히 전투준비를 했다.

  

   “와. 집이다.”

   곰팅이 머리에 턱 하고 앉아 있던 병규는 저 멀리 트라우마 성이 보이자 가슴이 뼝 뚫리는 듯했다.

   이틀이다.

   곰팅이를 타고 고란산맥을 헤민 지 이틀 만에 드디어 고향과도 같은 트라우마에 도착한 것이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왈칵 눈물이 흐를 정도였다.

   “아아.  여관으로 돌아가면 곧장 씻어야지. 아니야. 밥이 먼저인가?  아아~ 아무래도 좋아. 빨리 돌아가고 싶어.”

   우워어. 

   “알았다. 알았어. 곰팅이 너도 잊지 않으마. 후작님의 후원에 가면 네 친구도 있으니까 우선 그곳에 널 데려가마. 아마 내 대신 후작님께서 먹을 걸 잔뜩 줄 거야.”

   우워?

   “후작님? 그런 사람이 있어. 인심 좋은 사람이지. 놀러 가면 공짜로 밥을 준단다. 아마 니가 찾아가도 그럴 거야.”

   트라우마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병규는 한 끼에 후작을 거덜을 낼 지도 모르는 망언을 아무 생각 없이 쏟아냈다.

   "아아~ 그러고 보니 공주님도 있었지.  공주니임~ 공주니이임~  제가 돌아왔습니다요~오. 후르릅..“

  후릅후릅 빨아들여 보지만 지하수가 터진 듯 쉴새 없이 침이 흘러 나왔다. 급기야 이성을 상실한 것 같은 괴상한 웃음마저 터져 나왔다.

   “케헬헬. 곧주님. 제가 돌아왔습니다. 약속을 지켰다고요. 보상~ 보상을 해 주세요오~. 으흘흘흘흘.”

   공주는 보상 얘기를 꺼낸 적도 없건만, 병규의 정신은 이미 아스트랄계를 유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트라우마에선 그런 병규의 행복한 망상을 깨우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곰팅이의 육중한 덩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병사들이 지원을 요청하는 종소리였다.

   아직 트라우마까지는 한참이나 거리가 남았지만, 병규의 예민한 귀는 어렵지 않게 종소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비상종이 왜 울리는 거지? 누가 쳐들어오기라도 하는 거야?”

   곰팅이 머리 위에 올라서서 주위를 살폈다. 이상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트라우마의 비상종은 그치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병규는 귀를 팔락이며 청력을 더욱 높였다. 종소리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의 외침이 확장외어 들려왔다.

   “몬스터? 몬스터가 쳐들어오고 있다고? 큰일인걸. 빨리 가야겠다. 어? 오우거? 머리가 둘 달렸어? 괴물 같은 오우거가 달려들고 있다고? 저렇게 큰 놈을 본 적도 없어?”

   여기까지 들은 병규는 갑자기 머릿속이 멍해졌다.

   거대한 오우거. 머리 둘 달린 괴물.

   굉장히 익숙한 표현들이다.

   “헛! 설마!”   깜빡 놀란 병규는 미련하게 달리고 있는 곰팅이를 내려다보았다.

   거대했다. 작은 동산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그리고 머리마저 둘이나 달려 있었다.

   공포에 질린 병사들이 떠드는 소리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아하하. 그러니까 곰팅이를 보고 놀란 거구나.”

   그제야 병규는 대강의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태파악이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피피핑 하는 소음과 함께 돌연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트라우마 성의 궁병들이 쏜 것이다.

   딴에는 오우거를 놀래켜 도망치게 만들려는 수였지만, 오히려 곰팅이는 흥분하여 날뛰었다.

   쿠워어어어어.

   곰팅이의 거센 외침에 대지가 우르르 뒤흔들렸다. 얼마나 소리가 큰지 멀리 성루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고 혼비백산할 지경이었다

   만약 곰팅이의 괴성을 코 앞에서 듣는다면 머리통이 터져 버릴 것이다.

   “어어. 가만 진정해. 진정해.”

   요수의 발톱으로 날아드는 화살을 모두 튕겨 낸 병규는 우선 곰팅이를 진정시켰다. 그리곤 곰팅이의 머리 위로 올라가 팔을 흔들었다.

   “여기요. 사람이 있어요. 화살을 멈춰요.”

    그는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팔을 흔들었다.

    곰팅이는 적이 아니라고 외쳤다. 손을 힘차게 흔들며 내가 여기 있노라고 목청껏 외쳤다.

    하지만 오해를 풀려한 병규의 노력은 오히려 심각한 오해를 낳고 말았다.

   “뭐, 뭐야 저게?”

   “사람 아닌가?”

    “손을 흔들고 있는데?”

   “서,설마. 잡혀 있는 거야? 저 흉악한 놈에게 잡혀서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거야?”

  “‘불쌍하게 됐구먼. 하필 저렇게 엄청난 놈에게 잡히다니. 살긴 힘들 게야.“

   “젠장. 저런 악독한 놈. 궁병에게 외쳐 트윈헤드가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고.”

     곧 그의 외침은 삼엄한 눈으로 활을 매기고 있던 궁병들에게 전해졌다.

    “사람이 잡혀있다.”

    “흉악한 오우거가 사람을 잡아먹고 있어!”

    “궁병! 궁병!”

    “드래곤나이트는 아직인가?”

   휘리리리리릭.

   다시 화살이 쏟아졌다.

   오히려 좀 전보다 몇 배는 많은 화살들이었다.

   “메, 메야? 왜 이러는 거야? 저 사람들 눈이 삔 거야? 사람이 여기 있는데 왜 화살을 날리는 거야?”   병규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어떻게 오해를 풀어주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젠장. 이렇게 된 바에 재가 직접 성으로  뛰어가야겠군.”

   곰팅이의 너무도 현장감 넘치는 모습 때문에 오해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음을 깨달은 병규는 할 수 없이 직접 뛰어가서 오해를 풀어주기로 마음 먹었다.

   파파파파팟.

   매서운 날갯짓 소리와 함께 트라우마 상공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날아올랐다.

   드래곤나이트였다. 

  거대한 트윈헤드가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는 소리에 곧바로 출돋한 것이다.

   휘리리리릭.

   두 날개를 활짝 펴며 날아오른 열아홉의 드래곤나이트는 남쪽으로 이동하는 철새들처럼 열을 맞춰 창공을 갈라갔다.

   정녕 장관이었다.

   하지만 당하는 입자인 병규는 넋 놓고 감탄할 입장이 못 되었다.

   고고한 품위를 자랑하며 창공을 유여하던 드래곤나이트들이 돌연 비 오기 전의 제비들처럼 저공비행으로 곰팅이에게 달려들었다.

   “으윽. 곰팅아 좌로 . 좌측으로 이동. 아니 오른쪽 말고. 돌도끼 들고 있는 쪽으로 움직이란 말이야.”

   곰팅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기우뚱 움직이자, 기사와 엘프를 태운 와이번 세 마리가 스치듯 지나쳐갔다.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햐. 이거 당하는 입장이 되니 정말 장난이 아닌걸?”

   세 마리의 와이번이 짝을 이루어 저공비해으로 적을 훑고 지나가는 비행법은 병규가 고안하여 드래곤나으트들에게 알려준 방법이었다.

   처음 이 방법을 고안해 낼 때만 해도 단순히 멋지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직접 당하는 입장이 되니 결코 시위용의 허접한 공격 태세가 아니었다.

   그가 이 정도로 고전할 정도니 일반 병사들은 놀라 까무러질 것이다.

   “정말 멋진걸?”

   병규는 스스로의 업적에 코가 한 자나 나왔다.  하지만 고약한 드래곤나이트들은 병규의 잘난 척을 가만 두고 보지 않았다.

  쉬리리리릭!

   하늘에서 화살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화살들은 신기할 정도로 병규를 요리저리 피해 곰팅이만 목표로 삼았다. 귀신이 놀랄 만한 정확성을 보이고 있었다.

   엘프들이 쏜 화살이었다.

   트트특.

   휘어져 들어간 화살들이 곰팅이의 살갗에 부딪히며 소란스런 소음이 터져 나왔다. 놀랄 만한 정확도였지만 유감스럽게도 곰팅이의 살갗이 워낙에 두터워 피부만 조금 스치는 정도에 그치고 모조리 퉁겨 나가 버렸다.

   쿠워어어어어.

   곰팅이는 두 팔을 휘저으며 괴성을 질렀다.

   쏟아지는 화살에 적이 흥분한 것이다.

   그 웅장한 외침에 깜짝 놀란 와이번 다섯 기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하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고 체제를 정비하더니 다시금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휘리리리리릭.

   정신없이 화살이 쏟아졌고, 광분한 곰팅이는 하늘이 무너져라 괴성을 질러댔다.

  괴수대격전을 보는 것 같은 장면이었다.

   “그만 둬!”

   화살들을 쳐 내던 병규는 웅헌한 외침을 토하며 허공으로 점프했다. 쉬익 하는 칼바람 소리가 터지더니 어느새 그는 외이번의 등에 매달려 있었다.

엄청난 점프력이었다.

   와이번의 피를 먹은 후 점프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덕이었다.

   “헛.”

   검은 그림자가 와이번에 올라타자 와이번을 조종하고 있던 기사는 헛바람소리를 토했다. 놀란 나머지 상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즉각 검을 빼들었다.

   동승하고 있던 엘프도 안장 위에 두 발로 서는 묘기를 부리며 활을 매겼다.

    “이런!”

   병규는 나직히 혀를 찼다.

   아무리 급하기로서니 상대도 확인하지 않고 무기를 휘두르다니.

   하지만 기사의 성급함에 혀를 차는 병규는 말보다 행동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의 그림자가 흩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발로 기사의 검을 차버리고 엘프의 손목을 잡아 붙들었다.

   “그만,그만. 나란 말야.”

   병규의 날랜 동작에 해연히 놀라던 기사와 앨프는 뒤늦게 그의 얼굴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서, 설마. 변기 님?”

   “그래. 나야.”

   “그럴 리가......  .“

   어리둥절한 표정이던 기사는 한참을 확인한 후에야 의심을 풀었다.

   “정말로 변기 님이셨군요. 와이번만 혼자 돌아와서 걱정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저 트윈헤드는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저흰 사람이 잡혀 있는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반가운 표정으로 병규의 손을 잡으며 큰 소리로 물었다. 

   “깜짝 놀란 건 바로 나라구요. 에효.”

   오해를 푼 병규는 간신히 한숨을 내쉬었다.

   병규의 귀환 소식은 곧 바로 트라우마 성에 전해졌다.

   다들 이 믿기지 않는 신화의 주인공을 보기 위해 우르르 성문으로 몰려갔다. 그들 중엔 글로리 후작과 레종 공주도 있었고, 디스에 의해 새로 왕당파의 핵심으로 부상한 젊은 귀족들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모인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트라우마 성의 주민들이었다.

   그들은 이 새로운 영웅을 보기 위해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달려왔다.

    “맙소사.”

   “어, 엄청난 덩치로군.”

   모여든 사람들은 병규가 새로 영입한 곰팅이의 박진감 넘치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크기가 얼마나 큰지 트라우마 성의 거대한 성문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의 스타는 누가 뭐래도 병규였다.

   불가능한 임무를 성공으로 이끈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던가. 

   이미 디스 남작에 의해 병규가 홀로 토벌군의 수뇌를 생포했음이 트라우마 전체에 알려진 상태였다.

   처음 소문을 접한 사람들은 반신반의 했다.

   홀로 토벌군의 엄중한 경계를 뚫고 들어가 적의 사령관을 생포하는 작전이라니.

   한 마디로 말해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그런 황당한 작전에 자원한 자가 있다는 말이 들려오자 사람들은 쯧쯧 혀를 찼다. 자살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나 다음날, 무모한 자와 함께 떠난 와이번이 자일 백작을 물고 성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정말로 성공하다니.

  정말로 그 말도 안 되는 작전에 뛰어들어 결국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다니.

  사람들은 충격과 함께  감동과 감격을 받았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던 사람들은 마치 탈출구를 찾은 것처럼 흥분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흥분은 주인 읺은 와이번이 홀로 돌아왔다는 소식에 몇 배나 배가 되었다.

   공주가 와이번의 목을 붙들고, 목 놓아 울고, 귀족들은 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국기를 게양했다.

   음유시인들은 흥분한 목소리로 그의 업적을 찬양했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보지도 못한 병규의 자랑스런 영웅담이 화제가 되곤 했다.

   이런 와중에 병규와 관련된 소문들이 더러는 의도적으로, 더러는 아무 뜻 없이, 두루두루 백성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흑마법사의 야망을 저지하고, 레종 공주의 탈출을 도왔으며, 나라의 큰 어르신이신 필라이트를 구출해 왔다.

   볼과 며칠 사이에 병규는 트라우마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병규가 살아 돌아왔다. 엄청난 괴물을 강아지 다루듯 하면서 믿기지 않는 생환을 했다.

   입에서 입으로 퍼진 소문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은 이 살아 있는 신화를 보기 위해 성문 앞을 에워쌌다.

   덕분에 병규는 사람들의 장벽에 가로막혀 성으로 들어서지도 못했다.

   “왜, 왜들 이러는 거지?”

   병규는 파도처럼 자신을 에워싼 사람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언제 그가 이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흥분한 군중 속에 갇힌 병규는 쑥쓰러운 표정으로 몸만 배배 꼬았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군중들에겐 겸손하게만 받아들여졌다.

  그들에게 있어 병규는 신화였다.

  아이린 초대 국왕이 과거의 신화라면 병규는 살아있는 신화이고, 탑을 쌓듯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역사였다.

  병규가 군중들에 같혀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성문 앞에는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디스 남작의 명을 받은 그들은 임시로 자재들을 끌어와 엉성한 단상을 만들었다.

  워낙 많은 병사들이 동원된 터라 단상은 순식간에 완성될 수 있었다.

   “잠깐 나와 함께 갑시다.”

   군중을 헤치고 들어간 디스 남작은 병규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가 이끈 곳은 방금 만들어지 단상 위였다.

   디스는 얼떨떨해 하는 병규를 의자에 앉히고, 그 자신은 화려한 옷을 펄럭이며  복받친 목소리로 병규의 업적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흑마법사에게 납치된 소녀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일과 의리 하나만 믿고 정체도 모르는 공주를 도왔던 일. 그리고 불가능한 임무에 스스로 자원하여 토벌군의 수장을 납치하고는 그 자신은  추격을 막기 위해 적진에 남았다.

   디스의 연설이 이어질수록 군중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더러는 감격한 얼굴로 눈물로 글썽이는 이까지 있었다.

   디스의 열변은 계속되었다.

   그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전설이 있다면서 얼마 전 고란 산맥에서 일어난 큰 산불이 실은 사악한 블랙 드래곤의 소행이었으며, 이 또한 병규가 힘겹게 물리쳤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툭 꺼내놓았다.

  거기에 더해 트라우마의 소녀들이 납치되었던 뒷배경이라면서 실은 그때 실제로 마왕이 소환되었으며, 병규가 이를 막았다는 수도 99%의 거짓말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잘도 지껄여댔다.

   순식간에 병규는 희대의 마왕과 악룡을 잡아 족친 대용자가 되어 버렸다.

   “미,미치겠구나.”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된 디스의 열변에 병규는 괴로운 듯 몸을 배배 틀었다. 디스의 연설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토대로 짜여진 이야기는 모조리 허구였다.

   떠돌이 약장수도 이보다는 현실적인 거짓말을 하리라.

   ‘설마 이렇게 허무맹랑한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슬쩍 단상 아래를 내려다본 병규는 벙찐 표정이 되었다.

  난리였다.

   단상 아래 모여든 군주은 두 팔 높이 치켜든 채, 연신 흑발의 용사를 칭송했고,아낙들은 눈물을 펑펑 흘렸으며, 아직 어린 소녀들은 발그레 붉혀진 얼굴로 꺅꺅 비명을 질러댔다. 흥분한 군중은 한 목소리가 되어 ‘변기 변기’를 연호했다.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 예상치 못한 열렬한 반응에 병규는 몸둘 바를 몰랐다.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됐더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자신이 그런 식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좋기는 커녕 골치만 딱딱 아팠다.

   빨리 여관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하지만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판이라 도저히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끙. 어떻게 여길 빠져나간다.”

   병규가 고민할 때다.

   열광하던 군중 한 편에서 색다른 목소리들이 튀어 나왔다.

   “공주님이다.”

   “레종 공주님.”

   화사하게 치장한 그녀는 꽃과 같이 아름다웠다.

    “화아. 정말 예쁘네.”

     공주를 본 병규의 두 눈이 몽롱해졌다.

    문득 떠나기 전날 그녀에게 당한 일이 생각났다.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떠올리기만 해도 입가에 침이 고였는데, 막상 이렇게 만나게 되니 얼굴을 마주보기 두려웠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떠올리기만 해도 입가에 침이 고였는데, 막상 이렇게 만나게 되니 얼굴을 마주보기 두려웠다.

   하지만 ‘울렁울렁 두근두근 쿵쿵’ 하는 병규의 맘과 달리 레종 공주의 출현은 다분히 디스의 정치적 계략이 깔린 이벤트였다.

   단상에 오른 그녀는 기쁜 표정으로 병규의 손을 잡더니, 연호하는 군중들에게 그 누구도 상상 못한 폭탄을 던지고 말았다.

   평민에 불과한 병규를 백작으로 임명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울러 앞으로 큰 공을 세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임하겠다는 파격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와아아아아아.”

   “레종 공주님. 만세. 변기 백작님. 만세.”

   “만세.만세.”

   “아이린 왕국이여. 영원하라.”

   들끓던 분위기가 일순간에 폭발하고 말았다.

   대로변은 레종 공주와 변기 백작을 연호하는 군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주점은 30년 넘게 밀봉한 술통을 뜯었다.

    아이들은 골목길을 내달리며 수건을 흔들었다.

   글로리 후작 또한 자비를 털어 음식을 준비하니 트라우마 성을 그야말로 건국 이래 최대의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병규는 연호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혼란한 표정으로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소란을 격은 병규는 성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후작의 저택으로 안내되었다.

   행사장에 없던 호랭이가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로 걱정 안 한 표정이네요.”   “어련히 알아서 잘하려고. 네가 어떤 녀석인데, 걱정해 봐야 나만 손해지. 보아하니 임무도 성공하고 새로운 장난감까지 구해온 것 같더구나.”

   곰팅이를 말하는 것이다.

   “헤헤. 오다가 만났어요. 그런데 성 앞에서 웬 난리예요?”

   “디스 녀석의 짓이다. 돌아온 와이번에 자일 백작만 타고 있어서 네 녀석이 죽은 줄 알았던 모양이더라. 때는 이때다 싶어 너에 대한 영웅담을 있는 말 없는 말 죄다 섞어 은밀히 민간에 퍼트렸지. 숭고한 희생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말이다.”

   “왜 그런 헛소문을 퍼트린 거죠? 제가 스타가 된다고 디스에게 좋을 일이 있나요?”   “애국심을 끌어올리자는 속셈이지. 애국심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을을 한데 묶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

   “제가 살아 돌아와서 배가 아프겠네요.”

   "별로 그렇지도 않은가 보더구나.“

   “예?”

   “너도 알다시피 요즙 트라우마의 상황이 너무 나쁘지 않냐. 병력은 열세고, 주민들의 불안은 하늘을 찌를 듯하지. 군중을 안정시킬 영웅 하나쯤 필요한 시기였다. 그런데 마침 불가능한 임무에 도전하다 임무는 완성하고 장렬히 숨져버린 제가 등장한 거야. 이거다 싶었겠지.  그래서 있는 말 없는 말 모두 섞어 널 영웅으로 만든 거야. 그런데 웬걸? 죽은 줄 알았던 놈이 살아 돌아왔지. 디스 녀석은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 게지. 아무래도 죽은 영웅보다는 살아 있는 영웅이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 평민이라도 공을 세우면 중임하겠다는 발표도 실은 다 디스의 머리에서 나온 게다.  분위기 하나는 확실히 띄웠지?”

   “너무 떠 버렸죠. 허참. 대단한 사람이군.”

   디스의 발 빠른 대응에 병규는 할 말을 잃었다.

   “하여간 정치하는 사람들의 뱃속엔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어요. 말 몇 마디로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었다가 영웅으로 만들었다 하니.”

   “보아하니 디스 그 녀석 외골수라 그렇지 나쁜 녀석은 아닌 것 같더라. 권력욕도 없는 모양이더구나. 오직 공주, 공주....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순정파지.”

   뜨끔.

   호랭이의 말에 병규는 가슴이 살짝 아파왔다. 문득  떠나기 전날 공주의 기습 키스가 떠올랐다.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기 위해 병규는 엉뚱한 소리로 말을 돌렸다.

   “참. 와이번은 잘 도착했나요?”

   “그래. 자일 백작이라는 녀석을 물고 왔더구나.”

   “어땠어요?”   병규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자일 백작에게서 뭐가 발견되었을까.

   호랭이가 필라이트의 실력이라면 분명 자일 백작의 심성을 변하게 만든 존재를 밝혀냈을 것이다.

   “으음.”

   호랭이는 불편한 표정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병규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설마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나요?”   “그것은 아니다.”

   분명 무언가가 나오긴 한 것 같다. 그런데 나온 것이 기대했던 것과 다른 모양이다.

   “보여 줄 것이 있다.”

   호랭이는 병규의 손을 끌었다.

   

   호랭이가 병규를 이끈 곳은 어두침침한 지하실이었다.

   이곳엔 글로리 후작이 호랭이와 필라이트를 위해 준비해 준 연구실이 있었다. 어둡고 퀴퀴한 냄새로 진동하는 볼품없는 곳이었지만, 워낙 폐쇄적인 곳을 좋아하는 둘인지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매캐한 냄새로 얼룩진 지하 실험실로 들어가자 하얀 수염을 허리까지 기른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필라이트였다.

   “할아버지.”

  병규가 반갑게 부르자 한창 실혐에 몰두하고 있던 노마법사가 얼룩진 안경 너머로 그를 쳐다보았다.

   “허. 못난 녀석. 운 좋게 살아 돌아온 모양이구나.”

   필라이트의 컬컬한 입담은 여전했다.

    “헤헤.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

    “그래. 안녕히 잘 지냈다. 보아하니 네 안부는 물어보지 않아도 되겠구나. 허허. 하여간 목숨 하나는 기차게 질긴 녀석이로고.:”

   “하하. 할아버지는 제가 돌아온 게 불만인가 보죠?”   “예끼 이 녀석. 못된 말을 하는구나.”

   “하하하.”

   병규와 필라이트는 손을 마주잡고 털털하게 웃었다. 꼭 진짜 조손지간의 만담으로 비칠 정도로 정겨웠다.

   “잠시 자리 좀 비켜 주게.”

   호랭이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대충 무슨 뜻인지 눈치 챈 필라이트가 넌지시 물었다.

   “그걸 보여 주려고?”

   호랭이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내 잠시 산책이나 다녀오지.”

   지팡이를 든 필라이트는 구부정한 허리를 펴며 지하실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간 후 호랭이는 작은 플라스크 하나를 병규에게 내밀어 보였다.

   “ 이것을 보거라.”

   플라스크 안에는 거머리와 유사한 벌레가 들어 있었다.

   “으. 징그럽게 생겼네요.”

   추악한 벌레의 모습에 병규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런데 이게 뭐죠?”   “고(蠱)라는 것이다.”

   “특이한 이름이네요. 이런 해괴한 녀석을 어디서 구해 오셨어요?”   “자일 백작이라는 녀석의 머리에서 꺼냈다.”

   “으음.”

    병규는 심각한 얼굴로 침음성을 흘렸다.

   이 징그러운 별레가 자일 백작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게 자일 백작을 조종한 겁니까?”

    “그렇다.”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한 호랭이는 이어 고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고, 혹은 고독(蠱毒)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사람을 저주하여 죽이기 위한 술법이다. 일반적인 고독을 음기가 강하고, 양기를 탐하는 성질이 있어, 사람을 말라죽게 하는 지독한 성질이 있지만, 고도로 정련된 고독 중엔 시전자의 명에 따라 사람의 심성을 지배하고 행동에 제약을 거는 희귀한 것도 있다.  이 플라스크 안의 고독은 후자 쪽의 것이다.”

   “헤에. 이드라센은 별 희한한 벌레가 다 있군요.”

   병규는 마냥 신기해했다.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벌레라니.

   지구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해 본 일이다.

   그런데 병규의 말을 들은 호랭이의 표정이 가히 좋지 않았다.

   “고는....... 이드라센의 생물이 아니다.”

   “네?”

   대꾸하는 병규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이드라센의 생물이 아니면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

   호랭이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고는....... 우리가 살고 있던 세계의 생물이다.”

   쿵.

   “그게....... 그게 무슨 말이죠?”

   “고는 고대 중국의 주술가들이 만들어낸 고도의 주술과 같은 것이다. 이 플라스크 안의 고독은 그런 고들 중에서도 가장 독한 놈이다.”

   “서.......설마.”

   병규의 음성이 떨려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대 중국에서 만들어진 사악한 주술이라고?

   그런 주술이 왜 이 낯선 땅에 나타났단 말인가

   “하하하. 그게 재미없는 농담이네요. 고대 중국에서 만들어진 주술이라고요? 정말을 아니겠죠?”

   머릿속에 떠오른 불길한 생각을 털러 버리기라도 하듯. 병규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하지만 호랭이의 고개는 무정하게 흔들리고 말았다.

   “병규야. 어쩌면 우리의 적은 지구에서 넘어온 존재일지도 모르겠구나.”

                                                             [7권 끝, 8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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