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60/102)

           새로운 탈 것2호 곰팅이

  포위망을 벗어난 병규는 꽁지가 빠져라 한참이나 도망을 쳤다.

  정말이지 정신없이 달렸다.

  원래 눈부시게 빠른 데다 다급한 마음에 전력을 기울이다 보니 그야말로 섬전과 같이 달릴 수 있었다.

   휙휙 지나치는 풍경들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고, 칼날같은 바람에 얼굴이 다 얼얼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병규는 심장이 터지기 직전에서야 간신히 멈춰 섰다.

   “헉헉헉. 에고 힘들어라.”

   병규는 바위에 걸터앉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 정도 거리를 벌려 두었으니, 추격대가 말을 타고 쫓아온다고 해도 반나절 이상은 걸릴 것이다.

    “휴.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간밤의 격전을 생각하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자칫 그곳을 벗어날 틈을 놓쳤더라면 뼈도 못 추릴 뻔했다.

   “정말 무모한 계획이었지.”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그렇게 엄청난 대군이 모여 있는 곳으로 숨어들 생각을 하다니. 그때는 잠깐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간밤의 일들이 벌써 꿈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성공했어. 이야.”

   온몸에 짜릿한 희열이 일었다.

   그 엄청난 포위망을 벗어나다니. 병사들 사이를 종횡무진 날뛰던 때의 열기가 아직도 가시질 않았다.

   병규는 펄쩍펄쩍 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혼자만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간밤에 품었던 의문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때 미디움의 것과 같은 힘을 쓸 수 있었던 것일까.”

   병규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때의 감각을 상기하며 가볍게 손을 뿌렸다.

   드드등.

   묵직한 진동음과 함께 손바닥 아래서 발생한 압력이 앞에 서 있던 거목을 향해 쏟아졌다.

   우드득 하는 소음과 함께 거묵이 풀썩 내려앉았다.

   볼품없이 짜부라진 모습은 마치 거대한 무언가로 내리누른 것 같았다.

    “우연이 아니었군.”

   확실히 미디움의 눙력이 복제되었다.

    “대체 언제....... .”

   능력을 복제하려면 대상의 피나 살점을 먹어야 한다.

   기억을 더듬던 병규는 미디움이 죽기 전 피를 토했던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때 얼굴에 묻었던 피가 격전 중에 입 안으로 흘러 들어 간 모양이었다.

    ‘황당하군. 그런데 인간의 능력도 복제할 수 있는 게 있었나?’

   한동안 병규를 면밀히 관찰한  호랭이는 복제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제되는 능력은 대상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으로 제한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즉, 지식이나 체력처럼 노력에 의해 성취되는 것들은 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뛰어난 학자의 피를 먹는다고 해서 병규도 뛰어난 학자가 될 수 있을까?  아니다. 그가 얻게 되는 것은 학자가 천성적으로 타고난 신체능력 정도다.

   물론 이 과정에서 머리가 조금 좋아질 수는 있다.

   호기심에 몰래 실험을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호랭이가 말한 그대로였다.

   한데, 오늘 예외적인 일이 벌여진 것이다.

   미디움의 능력이 복제된 것.

   ‘타고난 능력만 복제할 수 있다면 미디움의 능력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추리해 낼 수 있는 대답은 오직 하나.

   미디움이 원래부터 중압이라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가정뿐이다.

   “에이 모르겠다. 덕분에 강해졌으니 좋은 거지 뭐.”

   머리을 굴리는 게 귀찮아진 병규는 신경질적으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괜히 안 쓰던 머리을 쓸려고 하니 골치가 딱딱 아파 왔다.  그런데 사람이란 것이 참 묘해서, 생각을 안 하려고 하니 더더욱 복잡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 그 녀석들이 씹어 삼킨 약은 뭐지? 녀석들 실력은 또 왜 그래?  힘은 소드마스터인데 기교는 고작 일반 기사들 정도밖에 안 되잖아.  그런 반푼이 소드마스터도 있을 수 있는 거야?’

   한 번 의문을 품기 시작하자 한도 끝도 없이 의문은 계속되었다.

   답답한 것은 아무리 골몰해도 해답을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은 트라우마로 돌아가는 것만 생가하자. 나 혼자 끙끙대근 것보다는 호랭이나 다른 누구에게 물어보는 게 빠르겠지.”

   길은 대충 알고 있다.

   문제은 걸어서 가자니 무리가 좀 있는 거리라는 점이다.

   “마을에라도 들러서 말을 구해야겠군. 그나저나 여긴 대체 어디지?”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그 대충이나마 알던 길도 헤매게 된 것이다.

   키 큰 나무 위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울창한 숲뿐이었다.

   “곤란하게 됐는걸.”

   추적을 피한답시고 도주로를 울창한 숲 쪽으로 잡은 것이 실수였다. 졸지에 미아가 되어 버린 꼴이 아닌가.

   “일단은 아래로 내려가 보자.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 길이 나오겠지.”

   어깨를 으쓱한 병규는 산 아래로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 하지만 채 2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해야 했다.

   길이 나오긴 커녕 오히려 숲은 점점 더 깊어지기만 했다. 끝없이 이어지기만 하는 숲에서 병규는 힘이 쭉 빠졌다.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우아. 이럴 땐 와이번이 있으면 좋을 텐데.”

   와이번을 탔으면 벌써 트라우마에 도착했을 테고, 이런 고생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에고야. 나도 모르겠다.”

   병규는 볕이 들어오는 커다란 고목 아래 벌러덩 드러누웠다.

   잠이라도 자볼 생각이었지만, 막상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음식은 동물을 잡아먹으면 된다 치고, 물은 어쩐다?”   숲에서 물을 구한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다.

   운 좋게 샘물이라도 발견하면 모를까. 이대로 있다가는 목이 타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음?”   병규의 미간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멀리, 아주 멀리서 이상한 소음이 들려왔다.

   “에이. 또 뭐야.”

   만사가 귀찮아진 병규는 휙 몸을 틀어 돌아누웠다.

   무시하고 싶었다.  하짐나 그의 예민한 귀는 주책없이 팔랑거리며 낯선 소음을 추적했다.

   쿵쿵 쿵쿵.

   둔중한 진동이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벌떡.

   병규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르켰다.

   진동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볼 때 녀석과의 거리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멀리까지 발소리가 울린다는 것은 놈의 체중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나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더 기분 나쁜 것은 놈의 발걸음 소리가 정확히 그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냄새라도 맡은 모양이다.

   “미치겠군”

   병규는 신경질적으로 뒷머리을 벅벅 긁었다.

   길은 잃었지, 목은 타지. 배는 밥 달라고 데모를 하지. 가만 내버려워도 짜증이 이는 판에 이젠 몬스터까지 다가온다.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떤 녀석인지 몰라도 잘 걸렸다.”

   병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호기 있게 외쳤다.

   길을 잃은 짜증을 몬스터에게 풀 생각이었다.

   쿠긍 쿵 쿠쿠쿵.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와 함께 땅의 진동도 강해졌다.

   “어라?”

  주먹을 마주치며 호기 있게 소리쳤던 병규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직 녀석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데,쿵쿵 울리는 땅의 진동 때문에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다.

   “도대체 얼마나 큰 녀석인데 이 정도까지 땅이 흔들리는 거야?”

   병규는 황당한 표정으로 몬스터를 기다렸다.

   “뭐, 뭐야? 저 녀석은.”

   병규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름드리 고목을 수수깡 부러뜨리듯이 쓰러뜨리며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다름아닌 오우거였다. 

   그런데  이놈의 오우거는 그가 여태까지 봐 왔던 다른 녀석들과 모든 것이 틀렸다.

   일단 기가 팍 꺾일 정도의 엄청난 덩치가 눈에 띄었다.

   지상 최고 최가의 몬스터라 불리는 다른 오우거들보다 최소 머리 몇 개는 더 올려놓은 듯했다. 머리통을 보려면 뒤로 벌러덩 자빠져야 할 정도였다.

   몸집은 또 얼마나 큰지, 웬만한 이층집보다 더 높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로 눈에 화 띄는 것은 놈의 머리였다.

   “머리가....... 두 개야?”

   육중한 놈의 몸뚱이엔 놀랍게도 머리통이 두 개나 달렸다.

   트윈헤드 오우거.

   놈은 바로 오우거의 변종인 트윈헤드 오우거였다.

   대개 트윈헤드라 불리는 이 몬스터는 힘과 광폭함에서 일반 오우거를 완전히 압도하는 괴물이었다. 트윈헤드 한 마리가 일반오우거 두 마리를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괴물이 바로 트윈헤드 오우거다. 그런데 지금 병규의 눈앞에 나타난 녀석을 그런 괴물 중에서도 단연코 최고라 불릴 만했다.

   그그긍.

   수풀을 헤치고 나온 트윈헤드가 마침내 병규를 발견했다. 뒤룩뒤룩 움직이는 놈의 눈동자는 웬만한 사람의 머리통만 한 크기였다.

   그 엄청난 크기에 병규는 한순간 압도당했다.

   설마 이런 엄청난 놈이 나타난 줄이야.

   놈을 상대로 스트레스를 풀겠다는 망상은 저 하늘로 날라가 버린지 오래였다.

   ‘젠장. 또 힘 한 번 빼겠구만.’

   풍겨오는 기세만 봐도 전날 싸웠던 레드와 미디움을 합친 것보다 더 대단했다.

   우워어어어.

   병규를 발견한 트윈헤드는 고개를 곧추세우며 괴성을 질렀다. 흥분한 듯 한 손에 든 돌도끼로 바닥을 내리쳤다.

   쿠쿵 하는 소음과 함께 집채만 한 바위가 산산이 부서져 흩날렸다. 정말로 엄청난 힘이 아닐 수 없었다.

   “뭐야? 지금 힘 세다고 자랑하는 거야?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덤벼.”

   병규 또한 지지않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도 상대가 몬스터인 이상 자신 있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는 인간보다 이런 괴물과 싸운 경험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었다.

  마침 새로운 힘도 손에 넣은 참이다.

   괴물을 상대로 힘을 시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병규의 바람과 달리 트윈헤드는 달려들지 않았다.

   요란스럽게 괴성을 지르던 놈은 병규를 다시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킁킁 하며 코를 벌름거렸다.

   뭔가 익숙한 냄새다. 하지만 이 냄새를 어디서 맡았는지 뚜렷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트윈헤드는 다시 코를 벌름거렸다.

   긁적긁적.

   뭐가 많이 이상한 모양이다.

   이젠 사람처럼 머리까지 긁적였다.

   우웡우웡 우워어엉.

   급기야 트윈헤드는 이빨 빠진 노인네처럼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뭐라 뭐라 떠들었다. 덩치가 커서인지 목소리도 우렁차기 그지없었다.

   딴에는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은데, 유감스럽게도 병규는 오우거 언어에 조예가 없었다.

   “이 녀석 지금 뭐 하는 거야?”   트윈헤드의 막강한 모습에 한순간 압도되었던 병규는 이번엔 놈의 이상한 행동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긁적긁적.

   놈도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던가 보다.  머리를 긁적이더니 조심조심 병규에게 다가갔다.

   “어쭈굴. 기습이냐?”

   화들짝 놀란 병규가 번개같이 자세를 잡자 트윈헤드는 움찔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굉장히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과연 열 받으면 드래곤에게도 달려든다는 흉포한 몬스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우엉 워어어어어어.

   고개를 수그리며 웅얼거리던 트윈헤드는 급기야 병규를 향해 절을 했다.

   “뭐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병규는 트위헤드의 얌전한 모습에 웃어야 할지 아니면 도망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설마, 이 녀석도 와이번처럼 친밀감을 느끼는 건 아닐까?”

    병규는 문득 엉뚱한 생가이 들었다.

   녀석의 행동은 아무런 적의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신하가 왕을 대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와이번의 끙끙거리는 행동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은 지난 것 같다.

   그럼에도 트윈헤드는 고개를 땅바닥에 조아린 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알아보려면 실험해 볼 수 밖에 없겠지.”

   병규는 트윈헤드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며 천천히 접근했다.

   ‘정말 크군,’

  가까이서 본 트윈헤드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르렁 거리는 숨소리에 그의 머리가 태풍이라도 만난 것처럼 펄럭였다.

   꿀꺽.

   마른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등은 이미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지 오래였다.

   놈이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이렇게 긴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놈은 예전에 만났던 마계의 오우거보다도 훨씬 더 크고 강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저 무지막지하게 큰 손바닥에 실수로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저 하늘의 멸이 되어야 할 판이다.

   조심스럽게 접근한 병규는 트윈헤드의 머리를 가볍게 만졌다.

   크드드등.

   트윈헤드의 숨소리가 돌연 놓아졌다.

   깝짝 놀란 병규는 반사적으로 손을 치웠지만, 곧 다시  손을 내밀어 트윈헤드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왠지 트윈헤드가 좋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트윈헤드는 그렁그렁 소리를 내면서도 얌전히 병규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녀석.”

    병규는   왠지 험악한 트윈헤드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험상궃은 녀석이 얌전하게 있으니 마냥 신기하지만 했다. 두 개의 머리는 심해를 표류하는 문어 두 마리를 연상케 했다.

   “고개 좀 들어봐.”

   병규가 말하자 트윈헤드는 신기하게 그의 말을 알아듣고 슬며시 얼굴을 들었다.

   단지 고개만 들었을 뿐이었는 데, 병규의 키보다 더 높아졌다.

  “어. 엄청 크군.”

  병규는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이건 정말 엄청나게 험악한 얼굴이다.

  잠깐이지만 귀엽다고 생각한 것이 후회될 정도다.

  그런데 그렇게 못난 얼굴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붙어 있다.

 병규가 놀라는 것도 무리라 아니었다.

   한편 트윈헤드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판국이었다.

  그리운 냄새를 맡은 트윈헤드는 어떻게든 병규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얼굴근육을 뒤틀며  웃어 보였다.

   그런데 병규는 오히려 한 발짝  더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뭐.뭐야. 너 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

트윈헤드는 울고만 싶었다.

 “혹시 너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 거냐?”

   비스듬히 병규가 질문을 던지자 트윈헤드는 미친 듯이 고개를 위아래고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분명 그리운 냄새의 주인은 사람의 언어로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을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일까.

   고란산맥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던 트윈헤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전에도 사람을 만난 적은 있지만 그들의 언어를 이해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눈앞의 그리운 냄새의 주인은 사람의 말을 하면서도 그 뜻을 자신의 머릿속으로 넣어주고 있는 것이다.

   마법과 같은 신기한 능력이었다.

   트윈헤드는 그리운 냄새의 주인에게 경외감을 느꼈다.

   한편, 트윈헤드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는 병규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어싿.

   “나하고 친하고 싶단 말이지?”

   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이 녀석도 와이번처럼 내 말을 알아듣는구나.’

   아마도 마계에서 소환된 오우거 피를 먹은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트윈헤드가 그의 말에 복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윈헤드에게 적의가 없다는 걸 알게 된 병규는 갑자기 대범해졌다. 펄쩍 뛰어서 트윈헤드의 머리 위에 올라서더니 근엄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일어나봐.”

   우워.

   대답하듯 웅얼거린 트윈헤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와. 이건 또 색다른 재미인걸.”

  트윈헤드의 키가 얼마나 큰지 웬만한 나무는 아래로 굽어볼 정도 였다. 와이번을 탄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와이번이 작은 경비행기 같은 느낌이라면, 트윈헤드는 대형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을 아래로 굽어보는 기분은 분명 색달랐다.

    “너. 정말 굉장하구나.”

   기분이 좋아진 병규는 트윈헤드의 머리를 탁탁 치며 흥겨워했다.

   트윈헤드도 즐거운지 두 팔을 위로 올리며 크게 우엉하고 울었다.

    “좋아. 이렇게 된 거. 널 내 전용 탈 것2호로  임명한다.."

   우어엉.

   “하하. 기쁘냐? 영광인 줄 알아라. 좋아. 기분이다. 네에게 이름을 지어 주마.”

   곰곰이 생각하던 병규는 엉뚱한 이름 하나를 생각해 냈다.

   “지금부터 너의 이름은 곰이다. 왜 곰이냐고? 네가 미련 곰팅이처럼 느려서야. 아참. 그리고 보니 넌 머리가 두 개구나. 그럼 곰대신 곰팅이라고 불러 주마.”

    머리가 두 개인 것과 곰팅이란 이름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드라센엔 곰이라는 존재가 없었다. 병규가 아무리 설명을 해 봐야 곰팅이가 된 트윈헤드는 머리만 벅벅 긁을 뿐이었다.

   “좋아. 곰팅아. 트라우마를 향해 전력질주다.”

   크워어어어어.

   가슴을 두드린 곰팅이는 쿵쾅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 무엇도 곰팅이의 앞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거목이건, 집채만한 바위건, 기둥 같은 손을 한 번 휘두르면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다소(?) 무식한 방법으로 병규는 트라우마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곰팅이라는 묘한 이름의 탈 것2호 머리위에 올라 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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