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개의치 않는다.
소란스런 분위기를 일시에 잠재우며 등장한 말보로 형제는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병규를 훑었다.
“헤에. 정말 어린데?”
침입자라기에 한 가닥 기대를 했는데, 막상 보니 채 다 크지도 않은 녀석이 아닌가.
“가만,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의 생김새가 사형이 말한 그 녀석과 비슷한 것 같은 걸?”
병규를 가만 살펴보던 레드 백작이 고개를 외로 기울이며 불량스럽게 입을 열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이드라센 대륙을 샅샅이 뒤져도 백 명 정도 나올까 싶을 정도로 보기 드문 외모다. 더더구나 적진을 홀로 침입한 정도로 두둑한 배짱까지.
이런 조건을 가진 자가 몇 명씩이나 있을 턱이 없다.
“....... .”
레드의 말에 쌍둥이 동생인 미디움이 두 눈을 가늘게 좁히며 병규를 주의깊게 살폈다.
끄덕.
미디움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레드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뜻이다.
“백작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레드는 버지니아 백작을 곁눈질했다. 버지니아 백작은 두 눈을 부릅뜬 채 병규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과거 버지니아 백작은 고란산맥에서 병규와 대면한 적이 있었다.
당시 디스의 계락에 속아 미끼인 그를 구석까지 몰았던 것이다.
다 잡은 물고기였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갑작스런 오크들의 난입 때문이었다. 단적으로 말해 그가 토벌군의 총사령관에서 지금의 자리로 강등을 당하게 된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자가 바로 병규였다.
버지니아 백작이 이빨을 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물어볼 것도 없을 것 같군.”
병규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버지니아 백작을 본 레드는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곤 앞으로 걸어 나가 병규에게 큰 목소리로 물었다.
“이봐.너. 필립 공작..... 님과 만난 적이 있냐?” “...... .”
생뚱맞은 레드의 질문에 병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뭐. 굳이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야.”
레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정작 그는 병규의 정체가 누구라도 상관이 없었다. 다만 그는 병규의 몸에서 풍기는 생소한 기세에 관심이 있는 것뿐이다.
끝을 알 수 없는 무저갱 바닥에 칙칙하게 가라앉아 있는 것 같은 녀석의 기운. 경지에 오른 이후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레드에겐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크흐.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볼 수 있겠군.”
레드는 팔을 붕붕 돌리며 앞으로 나섰다.
한편, 레드가 전의를 불태우며 앞으로 나서고 있을 때 병규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녀석이 사령관인 것은 확실한 것 같군.’
만약 인질이 가짜였다면 가차없이 화살이 날아들었을 것이다.
이런 대치 상화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은 지금 그가 어깨에 들쳐 멘 술주정뱅이가 인질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생각을 읽은 레드가 손마디를 뚝뚝 꺽으며 태연스레 말했다.
“이봐.설마 인질을 들쳐 멘 상태에서 날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냥 얌전히 자일 백작을 인계하지지. 그럼 몇 대 때리지 안고 끝내는 것쯤 고려해 볼 수 있지. 설마 이렇게 포위된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레드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비로소 병규는 시선을 돌려 그를 보았다.
“글세. 과연 그럴까?”
빙그레 미소 짓는 병규의 입술.
그의 미소를 본 레드는 울컥했다. 무시를 당한 듯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은 것이다.
“하하. 골 때리는 놈이로군. 설마 넌 이곳에서 그 주정뱅이를 데리고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오천의 병력에 마법사 다수. 그리고 소드마스터 급의 검사 둘.
설사 병규가 소드마스터의 할아버지라도 되는 존재라 해도 탈출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병규는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다.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지.”
순간 병규의 표정이 굳어졌다.
레드은 긴장하며 불의 기습에 대비했다. 하지만 병규는 그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땅을 박차며 수직으로 솟구쳤다.
“뭣?” 경악성과 함께 모두의 눈이 병규의 그림자를 쫓아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거대한 와이번이 날개를 펄럭이며 내려오는 모습을.
처음부터 병규는 적에게 포위될지도 모를 상황을 염두에 두고 와이번에게 지시를 내려놓았던 것이다.
설마 허공으로 날아갈 줄이야.
가히 상식의 허점을 꿰뚫는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순순히 보내줄 것 같으냐!” 버럭 괴성을 지른 레드는 번개같이 검을 뽑아 병규에게로 날렸다. 겁의 발출과 동시에 붉은 검기가 화살처럼 쏘아졌다.
무섭도록 빠른 발검이었다.
“이런 악독한.” 대기를 발출한 검기는 병규 자신이 아니라 자일 백작을 노리고 있었다.
이대론 인질이 두 동강이 날 상황이다.
"제길.“
병규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자일 백작을 와이번에게 던졌다. 그리곤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 녀석을 받아. 그리고 트라우마로 돌아가.” 와이번은 그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곧장 자일 백작을 채가며 허공으로 솟았다.
그 모습에 놀란 몇몇 병사들이 와이번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중지. 총사령관님이 다칠 수 있다.”
버지니아 빅작이 놀란 목소리로 궁수들을 진정시켰다. 지금의 총사령관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화살에 맞아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잠깐 사이 와이번은 꽤 높은 곳까지 날아올라 버렸다.
버지니아 백작 이하 지휘관들은 뻔히 자일 백작이 납치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크라라.
와이번은 빙글 맴을 돌더니 그슬프게 울며 곧장 남쪽으로 날아갔다. 병규는 입맛을 다시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작전은 성공했다.
그의 명령을 들은 와이번은 토벌군의 수뇌인 자일 백작을 트라우마까지 빠르게 데려갈 것이다. 뒤늦게 마법사들이 플라이 마법으로 뒤를 쫓았지만 와이번을 따라잡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난 어쩐다?’
병규는 멋쩍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수천에 달하는 병력의 살벌한 눈빛이 느껴졌다.
사령관이 납치되는 것을 뻔히 보고만 있어야 했던 그들의 분노가 병규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한데, 유독 두 사람만은 좀 전과 다름없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말보로 백작가의 쌍둥이였다.
“재미있는 녀석이군.”
황당하긴 하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상대다.
“내가 놈을 맡지. 넌 와이번이 채간 자일 백작을 구해 와라.” 병규를 보며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던 레드는 팔짱을 풀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미디움은 묵묵부답이다. 고개를 돌렬보니 도발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눈빛은 이렇게 위협하고 있었다.
내가 그를 맡을 테니, 네가 와이번을 쫓으라고.
“칫. 욕심많은 녀석.”
하지만 레드도 병규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먹음직스런 상대를 어디서 또 만난단 말인가.
한순간 보여준 그 놀라운 움직임. 적진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소름 끼치는 냉철함.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위기 속에서도 허점을 찾아내는 치밀함까지.
상대가 없어 따분하기만 했던 레드와 미디움에게 병규는 그야말로 잘 구워진 스테이크처럼 푸짐한 요리였다.
“좋아. 자일 백작은 내버려 두도록 하지. 그다지 마음에 들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저 녁서은 내가 먼저야.”
선언하듯 말하며 레드가 나섰다. 미디움은 얼굴에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잠시 보였지만. 제지하지는 않았다.
척. 건들거리는 동작으로 병규 앞에 나선 레드는 검 끝으로 손톱을 다듬으며 불량스럽게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엔 꽤~ 멋졌어. 부탁하는데. 좀 오래 버텨라. 알았지? 그래야 즐거움도 오래 갈테니까 말이야.”
레드는 마치 자신의 승리가 결정된 것처럼 말했다.
“..... .”
병규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레드가 들고 있는 검에 닿아 있었다.
‘검이 묽은 검기를 뿌리는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원래 검이 붉은 색이었군.’
레드가 들고 있는 검은 피처럼 붉었다.
불길함의 징조로 여겨지는 붉은 만월과 같은 핏빛이었다.
“좋은 검이지? 하지만 난 이 검보다 더 괜찮다고.”
레드의 기세가 일변했다.
거칠다.
사나운 이리와 같은 기세다.
‘이 기운.... .’
레드의 사나운 기세에 잠시 느슨하게 풀어졌던 긴장감이 다시 한 번 팽팽하게 병규를 바짝 조여졌다.
기세만으로 보자면 살렘이나 글로리 후작에 필적할 만했다.
‘소드마스터.’
병규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이린 왕국엔 오직 세 명의 소드마스터가 있을 뿐이라고 했는 데, 어디서 이런 자가.... .’
더 신경 쓰이는 것은 그와 비슷한 기운을 풍기는 상대가 한 명 더 있다는 것이었다.
레드와 쌍둥이처럼 닮은 사내.
눈앞에서 이를 드러내며 사나운 기세를 풍기는 자가 활화산처럼 뜨겁다면, 좀 떨어져 팔짱을 낀 채 바라보고 있는 다른 한 명은 빙하처럼 차가웠다.
“간다!.”
크게 소리친 레드가 빛살같이 달려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눈이 부시도록 빨랐고, 그의 검은 그보다 더 빨랐다.
느닷없는 기습에 병규는 어쩔 수 없이 요수의 발톱을 꺼내들었다.
촤아아악.
요사스런 푸른 기운과 그와는 상반되는 레드의 붉은 검이 부딪치자 무지갯빛 섬광이 현란하게 사방으로 튀었다.
“어라?”
레드의 눈에 기이한 빛이 감돌았다.
“신기한 기술이군.”
손끝에서 빛줄기처럼 솟아나온 요수의 발톱이 신기했다.
지금까지 많은 자와 상대했지만 그 누구도 지금 눈앞의 검은 머리 녀석만큼 신기하지는 않았다.
“좋아, 좋아, 좋아!”
흥겨운 듯 몇 마디를 뇌까리며 레드는 검을 매섭게 휘둘렀다.
정말 빠르다.
검속만으로 따진다면 오히려 글로리 후작이나 살렘보다도 뛰어나다.
하지만 병규는 어렵지 않게 그의 공격을 막아 냈다. 스피드라면 그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빠르지 않던가.
병규는 아직 제힘을 발휘하지 않았다.
지금의 대결은 일종의 탐색전이다. 상대가 어떤 역량을 가졌는지 살피는 중인 것이다. 또 한 명의 강적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힘을 드러내 보일 정도로 병규는 어리숙하지 않다.
붉은 머리 녀석에게 전력을 노출하면, 그 다음 상대인 하늘색 머리칼을 한 녀석에게 고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규는 자신의 힘을 숨긴 채, 레드의 맹렬한 공격을 임기응변으로 그때그때 막기만 했다.
그저 레드의 몸놀림과 검술을 파악하는 데만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결론이 내려졌다.
단순하다.
비록 그의 기세는 소드마스터에 비견될 정도로 강하고 거칠었지만, 검술의 수준만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물론 일반 기사들에 비하면 대단한 경지다. 하지만 다른 소드마스터인 글로리 후작이나 살렘에 비해서는 한참이나 실력이 모자랐다.
어딘지 모르게 엉성한 면도 많았다.
마치 힘만 센 어린아이가 거대한 철검을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듯한 불균형이었다.
스스로도 자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해, 균형을 잃고 흔들리는 순간이 많았다.
너무도 빠른 동작에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런 결점이 쉬이 눈에 띄지 않았지만, 병규에겐 선명하게 잡혔다.
“이 녀석.”
레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병규가 건성으로 자신을 상대하고 있음을 눈치 챈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냐!!”
즐거움이 크게 반감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하늘이라도 쪼갤 듯이 검을 수직으로 베어 왔다.
가히 벼락이 내리꽂히는 것 같은 기세.
엉성하게 방어했다간 당장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양분될 위기였다.
어쩔 수 없이 병규는 선술을 활용하여, 미끄러지듯 일 보를 걸었다.
이미 상대에 대한 파악은 끝났다. 이젠 지리한 대치상황을 마무리 지을 때다.
스스슥.
신묘한 보법의 원리가 녹아 있는 움직임은 둘 사이의 간격을 순식간에 좁혀놓았다.
퍽!
목표물을 잃은 레드의 품으로 파고든 병규는 요수의 발톱으로 그의 복부를 찢고 들어가 순식간에 헤집어 놓았다.
쩌억.
살과 뼈가 찢어지고 갈리는 듯 몸서리쳐지는 소음이 들려오고 피를 머금은 요수의 발톱이 레드의 등을 뚫고 나왔다.
“쿨럭.”
레드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토해졌다.
단 한 번의 경합. 그러나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쿨럭. 흐, 흐흐. 능청스런 녀석. 역시 능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 .”
병규는 요수의 발톱을 회수한 뒤, 말없이 뒤로 물러났다. 주먹만한 구멍이 둟린 레드의 복부에서 잘게 갈린 내장조각이 핏물과 함께 낭자하게 흘러나왔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병규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답대해진 모습이었다.
“젠장. 피라니. 죽겠군. 죽도록 아프군,”
레드는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며 괴성을 질렀다.
병규는 고개를 갸웃했다.
죽도록 아픈 것이 아니라 곧 죽을 사람이 아닌가. 배 속의 내장이 죄다 절단이 났으니, 설사 아마스 신성제국의 대신관이 온다고 하더라도 회생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제 발로 서 있을 수 있다는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하긴 레드는 비단 제 발로 서 있을 뿐만 아니라, 괴이한 웃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크,크흐흐. 미치겠군.”
연신 피를 토해 내던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알약 하나를 꺼냈다.
“이걸 먹는 건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일이자만.”
그는 정말로 이 알약이 달갑지 않았다.
후유증이 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보다 더 싫은 것은 검은 머리 녀석과 더 이상 싸울 수 없다는 것이다.
“싫긴 해도 어쩔 수 없지.”
레드는 독기 어린 눈으로 병규를 노려보며 알약을 삼켰다.
“?”
병규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다 죽어가는 녀석이 알약 하나 삼킨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병규도 짐작하지 못한 바다.
확연히 달라졌다.
맑은 옥수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잉크처럼, 칙칙한 기운이 레드의 전신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던 레드의 기세가 활화산처럼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심상치 않군,’
병규의 눈살이 조금 찌푸려졌다.
변화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끄그극 하는 기분 나쁜 소음과 함께 벌건 피를 토해 내던 레드의 복부에 난 상척가 아물기 시작했다. 잘려진 뼈가 진득한 액체처럼 살이 밀려나와 흉터를 메웠다.
‘선수필승’
병규는 곧장 몸을 날렸다.
정말로 이대로 녀석이 치료되면 곤란해진다. 섬전처럼 레드에게 다가가 요수의 발톱으로 레드의 목을 날렸다. 하지만..... ‘
챙!
레드의 붉은 검이 요수의 발톱을 막았다.
“흐흐흐. 두 번째 만남인 것 같군.”
화르르.
진득한 말투와 함께 레드의 붉은 검에서 눈부신 불꽃이 찬연히 피어올랐다.
오러블레이드.
소드마스터의 전유물인 검강이 붉은 검신 위에 피어난 것이다.
화끈한 열기에 병규의 앞 머리칼이 연기를 내며 순식간에 타들어 갔다.
얼마나 뜨거운지 검신이 녹아내리면서 생긴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 녀석..... 이제 보니.’
절대로 검강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녀석 스스로가 불길을 토해 내고 있는 것이다.
‘검강이 이런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특이한 능력을 가진 것일까.’
병규는 생소한 레드의 능력에 일순간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 그가 먹은 알약의 정체가 궁금했다. 대체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다 죽어가던 그가 되살아나 이처럼 팔팔하게 날뛴단 말인가.
“크하하. 죽어라. 죽어!죽어!!”
부활한 레드는 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세로 날뛰었다. 미친놈처럼 검을 휘둘러댔다.
병규는 요란하게 날아오는 불꽃을 요수의 발톱으로 힘겹게 막아냈다
칭칭.치지지지직. 즈즈즈.
요란한 불꽃이 밤공기를 뜨겁게 달궜다.
욱신욱신 얼굴이 뜨거워졌다. 검을 맞부딪칠 때마다 화끈한 열기가 몸을 조금씩 갉아먹는 것 같았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요수의 발톱이 잘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불을 뿜어내는 레드의 검을 위협적이었다.
‘길게 끌면 승산이 없다.’
마음을 굳힌 병규는본격적으로 대결에 전념하기로 했다.
휙.
바람이 일었다.
“엇?”
레드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바람이 부는 순간 돌연 병규가 눈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채 놀랄 틈도 없이 요사스런운 기운이 느껴졌다.
레드는 확인할 겨를도 없이 검을 빙글 뒤로 돌렸다.
차앙!
금속음이 길게 울렸다.
운이 좋게 요수의 발톱을 막은 것이다.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레드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너...... 이 녀석 이렇게 멋진 기술이 있었으면서 여태 숨기고 있었냐?”
분한 것일까. 아니면 병규가 괘씸한 것일까.
일그러진 레드의 안면에 실룩실룩 경련이 있었다.
반면 병규는 쳄묵을 지킨 채, 오연한 자태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마침 구름 사이로 달이 고개를 내밀며 푸르스름한 빛줄기로 그를 비추었다. 그 신비로운 분위기에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실룩실룩.
레드의 눈자위가 심하게 꿈틀거렸다.
계속되는 좌절에 심사가 뒤틀린 것이다. 급기야 온 힘을 기울여 검강을 파도처럼 쓷아내며 분노를 터트리고야 말았다.
“썬라이즈(sunrise)!'
그가 검을 뽑아 맹렬히 휘두르자 구름처럼 일어난 검광이 터지는 활화산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로 쏟아졌다.
검광이 쏟아지는가 싶더니 온 세상이 시뻘건 불길로 뒤덮힌 듯 붉어졌다. 전후좌우 어디로도 피할 곳이 없어 보였다.
전력을 기울인 레드의 검술은 가히 경천동지할 위력이었다.
병규는 눈살을 찌푸렸다.
레드의 이번 일격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그를 경시하던 마음이 싹 가실 정도다.
하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은 불꽃의 범람 속에서도 병규는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렬한 투지를 번뜩이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퉁.
가볍게 발을 굴렀다.
작은 동작이었음에도 그의 신형은 짧은 순간 몇 번의 복잡한 변화를 반복했다. 쏟아지는 검강의 빛살 속으로 몸을 날리는 병규의 화려한 움직임은 가히 폭포를 거스러 오르는 잉어처럼 약동하는 생명력이 가득 느껴졌다.
순식간에 검강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하지만 병규는 살아남았다.
옷은 갈기갈기 찢겨져 누더기가 되었지만, 그의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뭣! ‘
혼신의 일격을 받고도 태연하게 서 있는 병규를 확인하고 레드는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설마 최후의 일격마저 피해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너무 놀라 심장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와 입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순간.
퉁.
병규의 발이 다시금 움직였다.
두 번째 걸음.
느린 듯하면서도 빠르다.
단지 한 걸음에 불과한 데도 어느새 레드와 코가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어억.”
경악으로 일그러진 레드의 얼굴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병규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리곤 가볍게 그었다.
촤아악.
손끝에서 뻗어 나온 요수의 발톱이 요사스런 울음을 터트렸다.
서걱.
스치듯 손끝으로 레드의 목덜미를 긋자 머리통 하나가 허공으로 솟았다. 잘려진 목에서 쏟아지는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올라갔다.
척.
마침내 길면서도 짧았던 병규의 걸음이 멈춰졌다. 때를 같이하여 레드의 잘려진 머리통이 땅에 떨어졌다.
퍽 하고 떨어진 레드의 머리통은 처참하게 박살이 난 한 통의 수박처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질식할 듯한 정적이 장내로 내려앉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건만 작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끝난 숭부. 그리고 전혀 강할 것 같지 않았던 병규의 승리.
이 뜻밖의 사태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과 충격을 금치 못했다.
특히 포위진을 형성한 채, 병규와 레드의 격전을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의 충격은 남달랐다.
두 사람의 대결은 꿈이 아니가 생각될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특히 소드마스터 급에 이른 레드를 아이 다루듯 하는 병규의 엄청난 실력에 병사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승부는 한순간에 끝났다.
머리통이 떨어지고 뒤늦게 들려온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목 없는 육신이 무너지듯 쓰러졌다. 그 끔직한 소음에 병사들은 어깨를 움츠리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정작 병규는 참담한 심정우로 레드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살인이다.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기절 정도만 생각이었다. 하지만 레드의 어설픈 실력이 오히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 버렸다.
가슴이 아팠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을 죽였으면서도 무덤덤하기만 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었다.
변했다.
뭐가 변했는지는 몰라도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 큰 변화가 인 것은 분명했다. 마계에서 소환된 오우거의 피를 먹은 후로 너무 많은 것이 변해 버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괴로워하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다.
상황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병규는 구름 낀 노을처럼 복잡한 표정으로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당신도 날 방해할 생각입니까?”
끄덕.
미디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가 죽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이미 그들간엔 형제애라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병규가 레드를 죽일 정도의 실력자라는 것만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도 레드만큼이나 호승심이 강했기 때문이다.
철컹철컹.
미디움이 걸을 때마다 시끄러운 소음이 일었다. 쇠로 된 신발 밑창 때문이다.
천천히 접근해 오던 미디움은 무슨 생각에선지 멈칫하더니 품에서 알약 하나를 꺼냈다. 레드가 먹었던 바로 그 알약이었다.
잠시 묘한 눈빛으로 알약을 바라보던 그는 까득 하며 알약릉 씹어 삼켰다.
곧 레드에게 일었던 변화가 그에게서도 일어났다.
칙칙하고 어두운 기운이 그의 전신에서 스멀스멀 배어 나오는 것이다. 칼날 같던 기세는 몇 배나 증가해 있었다.
‘대체 저 알약의 정체가 뭐지?’
언뜻 드는 생각은 마약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마약 중엔 이성을 마비시키고, 통증을 둔하게 만들어 평소보다 몇 배나 강한 힘을 발산하게 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다.
레드나 미디움처럼 소드마스터 급의 검사에게 마약은 오히려 칼날 같은 감각을 둔하게 만들뿐이다.
‘약의 정체가 뭐든 간에 더럽게 강해지는군.’
미디움의 전신에서 뭉클뭉클 뿜어져 나오던 칙칙한 기세가 이젠 감당할 수 없을 정도까지 커져 버렸다. 바늘로 쿡 찌르면 코끝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의 기운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준비가 끝나자 미디움은 다시 걸음을 떼었다.
철컹철컹.
특유의 치찰음이 가뜩이나 날카로워진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이 녀석의 능력은 얼음일까?’
병규는 유심히 미디움을 관찰했다.
표정없는 얼굴에 조각같은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키도 늘씬하고, 창백해 보이는 파란 머리칼은 현란하게까지 보였다.
한 마디로 여자들 꽤나 울릴 외모다.
문제는 녀석의 잘 생긴 면상이 아니다
능력.
레드에게 기묘한 능력이 있었으니, 이 녀석도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병규는 그의 차가운 성격으로 미루어 얼음이나 냉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잠깐의 실수로도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혈투에서 상대의 역량을 아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이한 능력의 소유자끼리의 결투에선 상대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것은 등도 없이 까마득한 절벽을 오르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이다.
능력자들과 숱하게 싸워봤던 병규는 그런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병규가 짐작한 것처럼 미디움은 레드와는 많은 면에서 달랐다.
같은 것이라곤 쌍둥이라는 이유로 닮은 얼굴과 터무니없을 정도의 호승심 정도였다.
그는 차가웠다. 그리고 말이 없었다.
불같이 뜨거우며, 검울 휘두를 때마다 입을 놀려대는 레드와는 전혀 상반되는 성격이었다.
병규가 그의 능력을 얼음이라고 짐작한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능력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두두둥.
미디움이 검을 뽑아 휘두르자 천둥이라도 치는 듯한 소음이 일었다.
발검은 레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느렸다. 하지만 검에 실린 힘은 가히 경천동지할 위력을 자랑했다.
고작 손바닥 너비의 검을 휘두르는데, 그 여파가 수십 미터에 달했다.
폭발하는 듯한 파장이 공간을 뒤흔들고, 땅거죽을 파헤쳤다.
“으읏.”
병규는 급급히 몸을 날렸다.
빠르게 몸을 움직였는 데도 엄청나게 방대한 검의 위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크윽.”
퉁겨지듯 바닥을 구른 병규는 어깨를 감싸 쥐었다. 손가락 틈사이로 피가 배어 나왔다.
살점이 한 웅큼이나 베어진 것이다.
“냉기가 아니구나.”
애초부터 병규는 미디움의 능력을 잘못 짚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능력은 방대한 검의 사정거리. 전후좌우 사방우로 쏟아져 나가는 검가의 가닥은 그를 중심으로 무려 30미터에 이르렀다.
30미터 안은 그의 공간이다.
그는 느린 대신 엄청나게 긴 사정거리룰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녀석이다.’
설마 겨우 1미터 50센티에 불과한 검으로 30미터 밖의 표적을 공격할 수 있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상대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드드등.
다시금 검이 날아왔다. 미디움은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얼굴을 하고 연신 검을 날렸다.
병규는 몸을 접었다가 스프링처럼 재차 튕겨 올랐다. 귀탄에게서 흡수한 놀라운 점프력이 그를 허공으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그그긍.
미디움이 쏘아 보낸 검기가 저 아래, 지면을 후려치고 있었다.
‘그런 공격은 가뿐하게 뛰어넘으면 되지.’
가공할 점프력을 가진 병규에게 미디움은 오히려 레드보다 더 쉬운 상대였다.
휘이잉 날아오른 병규는 곧장 미디움의 머리를 채갔다.
드드등.
요란한 소음과 함께 묵직한 진동이 허공을 때렸다.
“소용없다.”
병규는 구름을 밟듯 가벼운 동작으로 신형을 재빨리 비틀었다.
와이번의 피를 먹은 후 허공 중에서의 운신이 자유로워졌다. 비록 날게 되지는 못했지만, 발디딜 것 없는 허공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진보였다.
미디움의 공격은 먼 곳을 공격할 수 있지만 직선적이다. 이렇듯 가볍게 신형을 비트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피할 수 있다.
이것이 병규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처음부터 그는 미디움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그의 검술은 중검. 그리고 주특기는 일정공간의 중력을 몇 배로 증가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그긍.
어마어마한 중력이 그의 몸을 내리눌렀다. 허공으로 솟았던 병규는 파리채를 얻어맞은 파리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본래 레드가 배운 것은 쾌검이고, 미디움이 익힌 것은 중검이다.
중검은 한마디로 무거운 검을 말한다. 검의 쾌속함보다 한 방의 위력을 중시하는 검술이다.
그들의 기술은 자신들의 특기를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빠름을 중시하는 레드는 불꽃을 손에 넣었고, 무거움을 수련한 미디움은 중압이라는 독특한 능력은 가지게 된 것이다.
쿵.
둔탁한 소음과 함께 병규는 지면이 움푹 패일 정도로 깊숙이 처박혔다.
뼈마디가 바스러지는 것 같은 고통이 온몸을 엄습해 왔다. 더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이렇게 아픈 데도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숨쉬기도 곤란할 정도의 압력이 그를 내리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윽.”
병규는 이빨을 꽉 깨물며 인내했지만, 입술을 비집고 피가 흘러 내리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드드등.
압력의 강도가 한층 강해졌다.
병규는 바닥에 납작 엎어진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도저히 꼼짝할 수 없다. 엄청나게 무거운 바위에 깔린 것 같았다.
오행산에 갇힌 손오공 신세가 따로 없었다.
미디움은 검 끝을 앞으로 내민 채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능력은 검을 꺼냈을 때에만 비로소 구현될 수 있었다. 느리지만 그만큼 무겁고 위력적이다.
철컹철컹.
천천히 걸러오는 미디움의 발소리가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병규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눈을 빛내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이처럼 그가 주의하고 있는 것은 단 한 사람 때문이었다.
‘살렘은 없군.’
살렘이 없는 이상 힘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오우거의 힘.’
병규는 마계의 검은 괴물을 떠올리며 사지에 힘을 주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괴력이 온몸을 내리누르고 있는 중압감을 서서히 밀어냈다.
드드득.
뼈마디가 불편한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병규는 전신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중압을 이겨내고 마침내 두 발로 일어설 수 있었다.
“음.”
미디움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표정은 여전히 냉철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를 악문 채 쥐어짜듯 검병울 움켜잡았다.
그그극.
중압이 한층 강해졌다.
이마의 혈관들이 툭툭 불거지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충혈된 안구는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병규에게 쏟아지는 중력은 무려 13배가 넘었다.
“윽.”
병규의 무릎이 꺾였다. 그러나 곧 다시 일어났다.
“소용없는 것 같은데. 계속할 거야?”
힘에 부친 듯 그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하지만 입가엔 영문을 알 수 없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의 미소가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저벅저벅.
병규는 말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디움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까지 땅에 파묻혔다.
몇 배나 높아진 중력에 땅이 움푹 꺼지고 일그러진 대기는 아지랑이를 피워 올렸다.
하지만 병규는 온 힘을 다해 내리누르는 중력을 무시하고 천천히 미디움에게 다가갔다.
미디움은 혼신을 다해 중압을 놓였지만. 병규를 제지할 수가 없었다.
퍽!
묵직한 타격음이 울렸다.
어느새 다가간 병규가 미디움의 복부를 후려갈긴 것이다.
“커억.”
미디움의 허리가 90도로 꺽였다.
가볍게 때린 것 같은 데도 심한 충격을 받은 듯, 사시나무 떨듯 몸을 벌벌 떨며 무릎을 꿇었다.
병규는 이격을 날리지 않았다.
필요가 없었다.
이미 미디움의 몸은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병규를 이기려고 무리를 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의 배 속에서 들리는 뭉그러진 내장들의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줄줄 흘러나오는 코피와 피눈물만으로도 그의 상태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왜 무리를 한 거지?”
병규는 뻔한 승부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미디움은 창백한 얼굴로 병규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입가에 가는 미소를 그렸다.
“죽음은........ 사부를 만난 순간부터.....잊었다.”
미디움은 목소리는 쇠를 긁어내는 것처럼 탁하고 거칠었으며 소름이 끼쳤다.
“어리석긴. 잊는다고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병규는 마치 자신이 분한 일을 당한 것처럼 빽 괴성을 질렀다. 오늘 한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그의 눈앞에서 죽어간다.
“인생의 의미..... 즐거우면......쿨럭. 그만이..... 아닌가.”
희미하게 웃던 미디움은 거친 기침을 뱉었다. 그의 기침에 피가 묻어 나왔다. 병규는 그의 피가 얼굴에 튀는 데도 굳어버린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좋은....... 대결이었다.” 마지막 경련을 일으키던 미디움의 고개가 축 늘어졌다.
죽음을 맞이한 그의 입가엔 만족스럽다는 듯한 미소가 어렸다.
최후에 지은 미소라 그런지 더둑 처연하게만 느껴졌다.
미묘한 표정으로 미디움을 내려다보던 병규는 손을 내밀어 그의 눈을 천천히 쓸어 감겨 주었다.
“기왕이면 좋은 곳으로 가.”
죽은 영혼을 달래듯 미디움의 얼굴을 쓸어 준 병규는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얼굴로 변했다.
사람이 죽어 안타깝다는 마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가운 이성이 병규를 지배하고 있었다.
쓱 하고 일어선 병규는 감정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위를 들러보았다.
‘포위망의 선두는 창병. 그리고 그 뒤를 궁병이 받치고 있다.’
시선을 조금 더 멀리하자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들이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병규를 포위한 상황에서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은 것은 레드와 미디움 때문이었다.
상급의 장교가 병규를 물리쳐 줄 것으로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 도리어 레드와 미디움이 당했다.
병사들을 지휘할 자들이 사라진 이상, 병규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가차없이 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긴장으로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긴장감이 싫지 않았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짜릿한 흥분이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가자.’
생각이 떠오른 순간, 그의 몸은 이미 맹렬한 스피드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무려 5천의 병력이 사방을 포위하고 있는 암담한 순간이다.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용납할 수 없다.
전력을 기울여 달리자 그의 몸은 마치 한 죽기 바람처럼 날렵하게 움직였다.
“사격.”
버지니아 백작이 악을 지르듯 외쳤다. 깜짝 놀란 궁병들이 허둥지둥 화살을 날렸다.
‘요수의 발톱.’
촤아아아.
요수의 발톱을 꺼내든 병규는 검은 장막처럼 날아드는 화살들을 썩은 대나무 자르듯 쳐 냈다.
그리곤 곧장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병사들의 틈바구니로 뛰어 들었다.
“흐익!”
“아아아아!”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놀란 병사들이 가을 들녘에 메뚜기 뛰듯 사방으로 흩어지며 달아났다.
“마, 마법사!”
궁병이 아무런 소용이 없자 버지니아 백작은 마법사라는 카드를 꺼냈다. 어떻게든 놈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말보로 형제를 잃은 손해를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법사들은 즉시 갖가지 마법을 동시에 쏟아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병규가 너무 빨리 움직여서 손으로 표적을 지시할 수 없는 데다, 잡힐 만하면 병사들 속으로 숨어드는 통에 도무지 마법을 쓸만한 여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규는 무의식적으로 다수를 상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마치 양떼에 뛰어든 늑대인 양 병사들 사이로 뛰어들어 혼란을 가중시켰다.
병사들은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병규는 소드마스터 급의 절대 강자 둘을 벼 이삭 베듯 가볍게 베어 넘김 괴물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사로잡기는커녕 무심한 그의 손짓 한 번에 목숨이 달아날 판이다. 병규가 근처로 다가오면 병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지르고 달아나기에 바빴다.
말보로 형제와 병규의 결투를 본 것이 오히려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밟고 엉키는가 하면 구르고 비명을 지르고....... .
절도 있던 토벌군의 야영지는 금세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여럿도 아닌 병규 한 사람으로 인해서 말이다.
사실 병규를 상대하고 잇는 토벌군의 포위진형엔 다소 문제가 있었다.
적을 원형으로 에워싸는 이러한 보편적인 포위진형을 소수의 평범한 적을 가둬두기엔 적합하지만, 소드마스터 급의 고수에겐 오히려 탈출할 기회를 열어주는 곳과 같다.
소드마스터 급의 강자는 많은 병사들이 포위한다고 잡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면 되지 않겠느냐는 순진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나, 지금 보는 것처럼 적진으로 직접 파고들어 난동을 부리면 오히려 손쓸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드마스터를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병사들의 희생을 각오하고 마법을 난사하는 일디아.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병규는 소드마스터가 아니다.
신체 능력이 특별하게 발달된 살람일 뿐이다.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다수를 상대하는 데 있어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람처럼 달릴 수 있으며, 십여 미터 가까이 점프할 수도 있고, 30명의 성인 남자들에 달할 정도의 무지막지한 힘까지 갖고 있다.
예민한 귀는 수십 미터 밖의 마법사가 캐스팅을 하는 음성까지 잡아낼 수 있었다.
그러한 능력들이 총동원하면 허깨비처럼 토벌군의 야엉지를 휩쓸고 다닐 수 있었다.
‘이제 슬슬 빠져나가야 하는데.’
순식간에 십여 명의 팔 관절을 뽑아 놓은 병규는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놀고 있을 소은 없다. 겉으로야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이대론 한도 끝도 없다.
병사들을 혼란에 빠트릴 수는 있지만 그 자신 또한 지쳐 쓰려지고 말 것이다.
이쯤에서 포위망을 뚫지 않으면 정말로 위험하다.
그러자니 마법사라는 존재가 영 껄끄러웠다. 궁수들과 달리 마법사는 기상천외한 마법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조심에 또 조심을 해야했다.
‘차라리 지금 처리하는 게 낫겠다.’
결정을 내린 병규는 지체없이 몸을 날렸다.
그가 움직이자 놀란 병사들이 모세의 홍해처럼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비켜섰다. 병규는 그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마법사들은 포위망 가장 뒤쪽에 있었다. 워낙에 방어진이 두터운데다 기사들마저 마법사들을 방벽처럼 감싸고 있어 공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창병은 둥글게 놈을 포위하고, 궁병은 2진으로 뒤로 물러난다. 기사들은 마법사를 보호하라.마법사를 보호하라.”
병규의 의도를 읽은 버지니아 백작은 빠르게 진형에 변화를 주었다.
마법사가 당하면 위험하다. 소모품인 병사들과 달리 마법사는 양성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귀한 전쟁자원인 것이다.
“서둘러라. 기사들을 전진시켜라. 궁병은 사정 볼 것없이 화살을 쏴라!”
버지니아 백작의 독촉에 지휘부는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다.
지휘관들의 명령에 따라 둥둥 북소리가 울리고 나팔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사분오열되었던 병사들이 천천히 흐트러진 진형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다시금 화살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병규는 병사들 틈으로 파고들었지만, 폭포처럼 흩뿌려진 화살은 피아의 구별없이 사정을 두지 않고 사람들의 몸에 박혔다.
투두두두둑.
“아악.”
“컥.”
곳곳에서 터져 나온 비명성이 귀를 아득하게 만들었다.
“제길.”
더 이상 병사들을 혼란시키는 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병규는 곧장 마법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마법사들의 앞을 가로막고 나선 백여 명의 기사들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척척척척.
창을 가지런히 뽑아 올린 기사들은 단장의 호령에 따라 무서운 기세로 병규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두두두두.
말발굽소리가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왔다.
앞으로 쭉 내밀어진 수십 개의 창들은 해일과 같은 기세로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박살냈다.
그 살벌한 기세에 병규는 급급히 뒤로 물러났다.
덕분에 어정쩡하게 그와 기사들 사이에 위치하게 된 병사들이 비정한 말발굽에 희생되고 말았다.
“잔인한 녀석들.”
병규는 치를 떨며 신형을 허공으로 띄웠다.
물 찬 제비처럼 솟구친 병규는 두 팔을 사정없이 휘두르며 기사들의 팔 다리 관절을 뽑았다.
너무도 빠른 움직임이라 한 줄기 발람이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못된 장난을 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동료의 신음성을 듣고 뒤늦게 창과 랜스를 휘둘러보지만 이미 병규의 그림자는 다른 이를 휘감고 있었다.
그렇게 한 차례 병규가 휘돌자 질서정연하게 달리던 기사들은 도미노 무너지듯 우르르 쓰러졌다. 그 뒤로 들리는 것은 찢어지는 비명과 참담한 울부짖음뿐이었다.
“크아악.”
“으윽.”
“아아악. 팔. 내팔.”
기사들을 처리한 병규는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마법사들이 있는 것이다.
움찔.
막 캐스팅을 마친 마법사들이 그의 무표정한 시선에 어깨를 떨었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병규가 있는 곳만은 정령술사의 정령이 불을 밝히고 있어 눈에 잘 보였다.
그 무심한 눈동자.
절로 두 다리가 휘청거리고 떨려 왔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마법사들은 발악을 하듯 마법을 난사했다.
“스. 슬립.” “매직 미사일.”
"파,파이어 볼!“
“버닝 핸드( Burning Hands)"
무수한 마법들이 먹이를 쫓는 승냥이 떼처럼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 .”
병규는 서두르지 않았다.
한 걸음. 정확히 한 발짝 앞으로 걸었다.
“헉!”
“으어어어어.”
마법사들의 입이 찢어질 듯이 벌어졌다.
분명 느렸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렇게 한 발짝을 옮겼을 때, 병규는 이미 그들의 면전에 바짝 다다라 있었다.
온 힘을 기울여 쏘아 보낸 마법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가은 어지럽히고 있을 뿐이었다.
쿠쿠쿵.
묵직한 폭발음과 함께 붉은 화염이 충천했다. 하지만 마버바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장엄한 광경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사신과 같은 존재가 그 으스스한 그림자를 자신들에게 드리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드득.
누군가의 뼈가 어긋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마법사들의 귓속을 파고 들었다.
병규가 마침내 마법사들 사이로 섞여 들어 헤집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한 번 손을 쓰자 거침이 없었다. 순식간에 세 명의 마법사가 팔 다리를 붙들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물론 팔다리 관정리 빠졌다고 해서 마법삳르이 마법을 쓸 수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극심한 통증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마법 캐스팅을 방해하기에 충분했다.
넷 중에 셋이 그렇게 쓰러졌다. 남은 것은 마법사 하나와 콧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정령술사뿐이다.
혼비백산한 나머지 마법사와 정령술사는 좌우로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어딜 가!”
병규는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둘렀다.
상대는 이미 저만치 달려가고 있는대, 제자리에서 손을 휘두르다니. 명청한 짓이 따로 없었다.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다만 몸이 시켜서, 본능이 하라는 대로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에 불과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두둥.
웅장한 흔들림과 함께 막대한 중압이 흩어지는 마법사와 정령술사를 덮친 것이다.
“꽥.”
둘은 심술궂은 아이에게 패대기쳐진 개구리처럼 바닥에 널부러지고 말았다.
고작 중력이 몇 배 늘어난 정도에 볼과했지만, 체력이 약한 마법사와 정령술사에겐 치명적이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품을 물고 혼절해 버렸다.
“이것은..... .”
병규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의 능력.
그것은 바로 미디움이 사용했던 능력과 같은 것이었다.
‘왜 이 힘이 내게.... .’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한가롭게 그 이유를 되짚을 여력이 없었다.
마법사들이 쓰러진 것에 분노한 버지니아 백작이 무자비하게 화살을 쏘기 시작한 것이다.
병규는 요수의 발톱을 뽑아내어 밀려드는 화살을 쳐 냈다. 하지만 바닥을 뒹굴고 있던 마법사들은 안타깝게도 그런 재주가 없었다. 결국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들을 온몸으로 받게 되었다.
쇄쇄쇄쇄쇄.
후두두두둑.
삽시간에 다섯 명의 마법사 모두가 같은 편이 쏜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결과적으로 병규는 잡지 못하고 마법사들만 희생시킨 꼴이라 버지니아 백작은 입에 거품을 물며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죽여! 죽여! 저눔을 당장 죽이란 말이다..“
수십 년 동안 전장을 휩쓴 명장도 병규라는 존재 앞에선 자제력을 잃고 미쳐 날뛰게 되는 모양이었다.
‘그만 물러나자.’
동이 트고 있었다.
더 이상 머물러 봐야 좋은 꼴은 못 볼 것이다. 소기의 목적은 모두 달성했으니 여기서 더 노닥거릴 이유가 없었다.
마침 그를 성가시게 하던 정령술사도 기절해 버렸다. 더 이상 그의 위치가 발각될 위험이 없어진 것이다.
병규는 어둠에 녹아들 듯 밤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감췄다.
“쏴라! 쏴라! 놈은 저곳에 있다. 쏘란 말이다.”
버지니아 백작의 명에 따라 궁병들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을 향해 무작위로 활시위를 당겼다. 하지만 눈먼 화살에 병규가 당할 리 만무했다.
“불, 불이다. 횃불을 가져와라.”
뒤늦게 횃불을 생각해 낸 버지니아 백작의 명령에 병사들이 야영지의 횃불을 모두 거둬 왔다.
“불을 던져라. 저쪽! 그래 저쪽을 밝혀. 그리고 이쪽도 밝혀라.” 지휘관의 명에 따라 횃불이 이곳저곳을 태우기 시작했다. 마침 바람이 일어 초지는 순식간에 불바다를 만들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만난 해일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불이다.
초지에 붙은 불은 삽시간에 번져서 인접한 산으로 옮겨 붙었고, 온 산을 붉게 물들이며 토벌군의 야영지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병규를 찾기는커녕 자칫했다간 산 채로 인간 통구이가 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물, 물을. 어서....!”
이번엔 불을 끄기 위해 병사들이 바쁘게 뛰어다녀야 했다.
그리고 그 난리 통에 병규는 여유롭게 포위망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