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56/102)

     말보로 형제의 등장

  아이린 왕국의 수도, 유리스.

  정령왕의 은총을 받은 정령의 도시

  백색의 만년설이 펼쳐진 절경과 온화한 온천이 이루는 기묘한 절경으로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칭송이 자자한 .곳.

  헌데, 천년 왕국으로 이름 높은 유리스는 지금 전국에서 모여든 병력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전국의 귀족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병력을 이끌고 수도로 상경했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이끌고 온 병력의 수가 얼마나 많았던지 왕성인 제네바스의 정원으로도 모자라 수도의 중앙 광장까지 가득 메웠을 정도다.

  정령 왕국의 천년 역사상 이토록 많은 병력이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병력이 모인 현장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각지의 병사들이 모여들어서 지휘체계가 혼란한 데다, 지휘할 귀족들이 왕실의 회의에 참석 중이기 때문이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병사들은 눈만 마주치면, 레종 공주와 아이린 왕국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햇고,회의중인 귀족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병사들의 수군거림을 잘 들어보면 지금 그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워히는 지 잘 알 수 있었다.

  “이봐. 왜 이 많은 병력이 모인 거야? 바호크 공국과 전쟁이라도 터진 거야?”  “이런. 자넨 아직 소식도 못 들었나?”

  “무슨 소식?”

  “레종 공주가 왕을 시해했다는 소문 말야.”

  “공주가 왕을? 그럴 리가.”

  얘기를 전해 들은 병사는 강한 불신을 표시했다.

  공주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으로 백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가히 아이린 왕국의 꽃이라 할 만한 사람이다.

  말하길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신의 은총을 받았다는 말로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와 단아한 그녀의 성품을 칭송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국왕을 암살헸다고?

  훗날 왕위를 이을 그녀가 대체 뭐가 부족해 국왕을 시해한단 말인가.

  “자세한 소식은 나도 잘 몰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왕과의 사소한 말다툼이 원인이 되었다는 것 같던데.”

  “말다툼에 살인이라니. 공주의 성격이 소문과 많이 다른 모양이지?”

  “모르지. 우리 같은 아랫사람이야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면 그만 아닌가.”

  누가 들을까 작은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그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불안이 서려있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변사들과 달리 왕성인 제네바스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있는 귀족들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진행해 나갔다.

  그런데 분위기가 영 이상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결정으로 아이린 왕국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상적이라면 실권을 가진 귀족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격한 논쟁을 벌이고 있어야 할 자리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회의장의 분위기는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로 조용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건만 떠드는 사람은 오직 한 명, 필립 공작뿐이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아이린 왕국의 실권자들이 퀭한 눈을 하고 필립 공작의 일장 연설을 가만히 듣고 있기만 한 것이다.

  이것은 정녕 이상한 일이었다.

   “그럼 다음으로 가스콘 철광의 권리를 필립 공작가로 양도하는 안입니다.원래 가스콘 철광산의 권리는 아이펠 후작가에 있었습니다만, 이번 내전의 성공을 축하하는 의미로 후작님께서 친히 광산의 권리를 저희 가문으로 넘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후작님 방금 제가 말한 내용이 맞습니까?”

  사무적인 필립 공작의 물음에 60대의 비대한 체구의 노인이 멍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필립 공작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감사합니다. 후작님의 넓으신 아량을 후일 아이린 왕국의 발전에 큰 토대가 될 것입니다. 그럼 다음으로 펠 산맥의 벌목 권한을 가지신 엘도란 백작님께서 저희 가문으로 그 권리를 이양한다는 안건입니다.”

  필립 공작은 다른 귀족들의 생각은 깡그리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안건을 제안했다. 놀라운 것은 그때마다 귀족들이 혼 없는 허수아비처럼 찬성표를 남발했다는 것이다.

  모든 안건들은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이 통과되었다. 하나같이 필립 공작에게 권력을 양도하겠다는 내요의 안건들이었다.

   “고맙소.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있었소.”

  만장일치로 찬성표를 던져준 귀족들을 향해 필립 공작은 사의를 표했다.

  “후후후.”  무엇에 호린 듯 멍한 귀족들의 눈동자를 보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오는 필립 공작이었다.

  ‘이로써 아이린 왕국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군.’

  단 몇 시간 만에 필립 공작가는 아이린 왕국의 거의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의 입술에 흐릿한 미소가 감돈다. 이로써 이드라센 대륙을 도모하고자하는 그의 야망에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천하를 도모하기에 앞서 귀찮은 공주 일파를 처리하고 왕국을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오늘 처리된 안건들 중엔 트라우마를 치고, 저항하는 공주 일파를 제거하자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국왕이 죽었으니, 왕위를 승계할 왕족이 모두 제거되면 자연히 공작인 그가 왕위를 잇게 된다.

   국왕의 자리는 이미 손안에 들어온 것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남은 것은 군대를 모아 마지막 발악을 하는 공주 일당을 처리하는 것뿐.

   준비는 끝났다.

   귀족들로 하여금 왕성으로 출두할 때, 사병들과 함께 동행하라고 지시해 두었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깡그리 끌어온 사병들의 숫자는 상상을 불허했다.

   국법에 정해진 병사들 외에 불법으로 양성해온 사병들까지 아낌없이 동원해 온 덕분이다.

   회의가 파한 후, 회의장에 홀로 남은 필립 공작은 창밖으로 보이는 엄청난 군세에 입이 찢어져라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린 왕국 역사상 이렇게 많은 수의 군대가 동원된 적이 한 번 이라도 있었언가.

   “후후.정말 멋진 광경이군. 다만..... .”

     뿌듯한 미소를 그리던 필립 공작의 미간이 무슨 이유에선지 세가닥 주름을 그렸다.

     “저 병력에 드레곤나이트만 추가되었어도.... .”

   10년이 넘게 시간을 투자한 계획이 최근 엉뚱한 놈 하나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

   카피.

   탈출이 불가는하다는 지하 감옥을 대마법사까지 데리고 빠져나간 괘씸한 녀석.

   ‘도망칠 것이면 그냥 도망칠 것이지, 왜 하필 내 와이번을 모조리 가져 가냔 말이다!’

  녀석을 떠올리자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치솟았다.

  평소 냉정함을 잃지 않는 그이지만 녀석에 대한 일만 떠올리면 도저히 냉철함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네놈이 어떤 방법으로 와이번을 데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필립 공작의 눈가에 살기가 흘렀다.

  만약 살리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가 떠올리는 대상은 가닥가닥 찢어져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되었을 것이다.

  “끄응. 녀석 때문에 일이 귀찮게 되었군.”

  본래 공주파는 보잘것없는 세력에 불과했다. 주의할 사람이라고는 소드마스터인 글로리 후작이 전부다.

  그 정도라면 살렘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 망할 녀석 때문에 골칫거리가 늘었다.

  도망을 치려거든 곱게 혼자 달아날 것이지, 하필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필라이트까지 빼내 갈건 또 뭐란 말인가.

  필라이트는 무려 7서클의 마법사다.

  현 대륙에서 가장 놓은 서클을 가진 대마법사. 소드마스터 글로리 후작과 대마법사인 필라이트가 손을 잡는댜면살렘 혼자서는 조금 힘들지도 모른다.

  “게다가 녀석의 실력도 결코 얕볼 수 없지.”

  살렘의 말에 따르면 그 망할 녀석의 실력도 소드마스터에 근접해 있다고 한다. 살렘이 그토록 극찬하는 것은 보면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의 소유자인 것이 분명했다.

  “그때 제거했어야 하는 것인데..”

  손에 들고 있던 은제 컵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

  생각하면 할수록 속이 부글부글 끓는 필립 공작이었다.

  “그나저나 어쩐다. 살렘에게 모두 맡기기엔 상대가 너무 많으니... .”

  물론 병력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희생을 각오하고 밀어붙인다면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만큼의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주 일파를 제거한 후에도 바호크 공국과 아마스 신성제국을 견제해야할 그의 입장으로선, 어떻게든 희생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골치 아프군,. 그렇다고 내가 직접 출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부관이 안으로 들어왔다.

  “레드 백작님과 미디움 백작님께서 면담을 청해 오셨습니다.”

  “말보로 형제가?”

  필립 공작의 눈에 잠시 기광이 스쳤다.

  “들라 하게.”

  “네.”

  부관이 나가고  얼마후, 사내 두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놀랍도록 닯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쌍둥이인 탓이다.

   하지만 얼핏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닮은 두 사람의분위기는 천양지차로 달랐다. 한 사람은 한  여름을 연상케 할 정도로 밝고 뜨거웠으며,다른 하나는 절로 가을빛이 떠오를 정도로 차분했다.

  “공작님을 뵙습니다.”

  사내들을 팔을 허리에 두르며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필립 공작은 고개를 슬쩍 기울며 무심한 음성으로 말했다.

  “별일이군.자네들이 내게 고개를 숙이다니.”

  “이제 곧 폐하의 몸이 되실 분인데, 어찌 저희들이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청년은 팔을 허리에 두른 채 고갬나 슬며시 들며 대답했다. 말은 공손하다. 하지만 공손한 말투완 달리 레드의 얼굴엔 장난스런 미소가 어려 있었다.

  놀라운 것은 필립 공작의 태도였다.

불량한 레드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 별반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평소 독선적이고 거만한 필립 공작의 태도를 생각한다면 두 청년을 대하는 그의 행동은 이상한 점이 많았다.

  “쓸데없는 소리로군,. 헌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왔는가?”

 “사부님께서 가보라고 하시더군요. 하늘을 살펴보시더니 아부해도 사형에게 곤란한 일이 생긴 것 같다고 하셧습니다.” 

 쭈뼛.

 필립 공작위 쇼정이 굳어졌따. 

 사부가 언급되었끼 때문이다. ‘귀신같군.’

 그는 말 못할 한기를 느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사부는 마치 자신위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꿰뚫는다.

 사실 레드의 말처럼 그는 골치 아픈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라리 잘된 일이군.

 필립 공작은 두 사제를 흘낏 보았따.

 사부가 직접키운 제자들.

 이들위 실력은 이마 소드마스터 급이다.

 게다가 특이한 재주까지 있으니, 글로리 후작이나 필라이트를 충분히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필립 공작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세상은 아이린 왕국에 단 세 명위 소드마스터만이 존재한다고 알고 있따.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의 사부가 키워놓은 이들이 있는 것이다.

 “후후. 명령만 내리십시오.

 말보로 형제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필립 공작이 무슨 명령을 내릴 지 이마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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