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40/102)

오우거의 힘, 그리고 핏빛 각성

  한달음에 ‘화룡의 송곳니’까지 달려온 병규는 믿지 못할 광경에 두 눈을 부릅떴다.

  피처럼 붉은 달빛을 받아 잔인한 열기를 토해 내고 있는 산의 정상. 그것에는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놀라운 것은 팔다리에 쇠못이 박힌 열 명의 소녀가 마법진 위에 누워 있다는 점이다.

  ‘누가 저렇게 잔인한 짓을······.’

  병규는 잔인한 행각에 치를 떨었다.

  마법진은 소녀들의 피로 벌겋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진의 중심,

  시커먼 후드를 뒤집어쓴 녀석이 보였다.

  낯이 익은 모습이다.

  ‘시장에서 봤던 그 녀석!’

  호젤과 제이콥이 감시하고 있던 바로 그놈이다.

  ‘저놈이!’

  병규는 눈이 뒤집혔다.

  놈이 안젤라의 배에 쇠못을 박으려 하고 있었다,

  바람처럼 달렸다.

  샤바가 그의 뒤를 따라 보이지 않는 마법진의 힘에 의해 튕겨 나갔지만, 그의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쇠망치를 든 놈의 머리를 힘껏 걷어찼다.

  뻐걱.

  목뼈가 이 정도까지 꺾이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이 아무도 없었다.

  사람을 죽였음에도 병규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고작 이 정도의 행위로는 가슴속에서 활활 불타고 있는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다. 소녀들에게 못질까지 한 잔인한 살인마한테 이건 너무도 편안한 죽음이다.

  “안젤라!”

  병규는 쇠못에 사지가 박힌 소녀를 큰 목소리로 불렀다.

  ‘내가 조금만 더 빨랐어도 이런 고통을 받지 않았을 텐데.’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안젤라가 눈을 떴다.

  멀건 동공이 초점을 찾더니 그의 얼굴을 발견하고 눈물을 흘린다.

  ‘제길’

  병규는 속으로 욕을 했다.

  그녀가, 안젤라가 웃고 있었다.

  굳어 버린 근육을 뒤틀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듯했다.

  ‘너무 반가워요. 그리고 고마워요.’

  심장이 욱씬 쑤신다.

  목이 메어 왔다.

  죽도록 아플 텐데. 이렇게 웃어 주는 그녀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병규는 마른침을 삼키며 간신히 한마디했다.

  “내가······지금 당장 풀어 줄께.”

  그는 조심스럽게 안젤라의 손을 잡았다.

  작고 앙증맞은 소녀의 손발에 박힌 쇠못이 그렇게 증오스러울 수 없었다.

  안젤라의 손을 꼭 잡고 안정시킨 병규는 쇠못을 뽑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단숨에 뽑아내야 아픔이 덜할 것이다.

  “······!”

  뽑히지 않았다.

  어떻게 박힌 것인지 아무리 용을 쓰고, 애를 써 봐도 쇠못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만 가중되어 안젤라의 얼굴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병규는 방법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기력을 짜내어 요수의 발톱을 꺼냈다.

  병규는 푸르스름한 요기를 내뿜는 요수의 발톱으로 조심스럽게 안젤라의 손바닥 위로 튀어나온 쇠물을 잘라 냈다.

  치지직!

  파란 불꽃이 튀었다.

  어찌 된 일인지 지금까지 못 자른 것이 없던 요수의 발톱도 이번만은 별 효용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니, 자르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쇠못에 닿자마자 무시무시한 속도로 요기가 빠져나가 버렸다.

  병규는 급히 요수의 발톱을 회수했다.

  “망할. 도대체 뭐야 이 못은!”

  병규는 땅을 두드리며 분노를 토했다.

  망할 못이.

  망할 놈의  쇠못 따위가 이렇게 힘들게 하다니.

  “호랭이!”

  병규는 다급히 호랭이를 불렀다.

  현명한 호랭이라면 좋은 방법을 알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대신 철썩하는 엉뚱한 소음만 들려왔을 뿐이다.

  그의 어깨에 항상 걸쳐 있던 호랭이가 뒤로 벌러덩 넘어가 있었다.

  단순히 떨어진 것일까?

  그렇게 보기엔 호행이의 상태가 너무 이상했다.

  “헉헉.”

  숨을 거칠게 내쉬며 굉장히 괴로워했다.

  “호랭이. 무슨 일이에요? 왜 그러는 거에요.”

  “으윽, 히······ 힘이. 이곳은 마기(魔氣)가 너무······”

  호랭이는 몸을 비틀며 힘겹게 대답했다.

  이 마법진 내부는 이상하게도 마력이 높았다.

  손도를 수행한 호랭이에게 불순한 탁기는 치명적인 암수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독가스를 마신 것처럼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런 젠장. 이봐. 못을 뽑아내. 당장!”

  병규는 괴성을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못을 박은 놈을 족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속으로 아차했다.

  좀 전의 일격으로 놈은 죽지 않았던가.

  목껴가 부러지는 느낌이 아직 발끝에 남아 있었다.

  ‘좀 더 신중할걸.’

  이제와 자책해 봤자 이미 늦은 후회였다.

  ‘이제 어쩌지?’

  못을 박은 놈조차 죽었으니 그것을 뽑은 방법이 아예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대로 안젤라가 말라 죽어 가는걸 보고만 있어야 한다.

  소름 끼치는 전율과 공포가 전신을 휘감았다.

  암담한 현실에 눈앞이 컴컴했다.

  그런데,

  “히히히. 그 못은 뽑히지 않아. 얼마나 공을 들인 물건인데, 그렇게 쉽게 빠질 것 같으냐? 히히. 안 돼지. 안 돼. 절대로 그럴 수는 없지.”

  일그러지던 병규의 얼굴이 순간 무심하게 변했다.

  천천히 그의 고개가 돌아갓다.

  놈이 서 있었다.

  후드가 벗겨진 놈은 확실히 목뼈가 부러진 상태였다.

  부러진 뼈도 훤하게 보였다.

  그런데도 놈은 태연하게 서 있었다.

  “인간이 아니었군!”

  병규가 굴곡 없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놈은 인간이 아니었다.

  후드가 벗겨진 밖으로 드러난 놈의 머리통은 참으로 흉물스러웠다. 허옇게 드러난 뼈다귀에 썩어 버린 살점과 듬성듬성 남은 머리카락이 지저분하게 붙어 있었다.

  그 괴이한 모습에 병규는 프리먼에게 들었던 사악한 존재를 떠올릴 수 있었다.

  ‘리치’

  고위급의 마법사가 죽음을 피하고, 영원히 살기 위해 스스로 언데드화 된 것이 바로 리치다. 하니만 죽음을 피할 수 있을 뿐, 육체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오래된 리치들은 대개 좀비의 형태나 눈앞의 녀석처럼 추악한 해곡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

  이 녀석은 해골만 남은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 같았다.

  그제야 병규는 그 많은 몬스터들을 한꺼번에 현혹시킬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녀석 정도롤 오래 산 리치라면 마력이 상당할 것이다. 아니면 오랜 시간을 들여 한 마리씩 노예로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

  병규가 조용히 물었다.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히히. 영생. 영원히 살고 싶어서지.”

  “영생? 어차피 넌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그걸 위해 리치가 되었을 텐데.”

  “맞아. 그랬지. 하지만 이 뼈다귀만 남은 몸뚱이로는 이제 한계야. 머잖아 먼지가 되어 사라질 테지. 다른 몸으로 옮겨도 그것만은 어쩔수 없어. 썩어 문드러진 몸뚱이를 가진 자를 과연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지. 그건 사람이 아니야. 그냥 괴물에 불과할 뿐이다.”

  “그게 두려웠으면 처음부터 리치 따위는 되지 않았으면 좋았잖아!”

  “히히. 넌 머리가 나쁜 녀석이구나. 말했잖느냐. 영원히 살기 위해서 리치가 된 거라고.”

  “······미친 녀석이군.”

  병규는 어이가 없었다.

  그는 괴로움에 바르르 떨고 있는 소녀들을 손짓했다.

  “네 한 녀석의 영생을 위해 채 피지도 못한 소녀들이 피눈물을 흘려야 해?”

  그는 다시 한쪽에 쌓인 해골들을 가리켰다.

  “네 추잡한 영생을 위해 저렇게 많은 싀생이 필요하단 말이냐?

  그렇게 해서 얻은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 더러운 자식아!“

  병규는 끝내 쌍욕을 터트렸다. 그의 외침에 리치는 시시덕거리는 웃음을 잠시 멈추었다.

  부서진 목뼈가 비거덕거리더니 해골만 남은 놈의 머리통 갸웃 움직였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약자가 강자에게 이용당하고 착취당하고. 그 먹이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더냐? 난 영생을 위해 저들을 잡아 왔고, 저들은 힘이 없어 이곳에서 죽었다. 그게 뭐가 이상하지? 저놈들이 힘이 없었던 것이 죄지, 만약 힘이 있었다면 내게 잡히지도 않았을 테고, 죽임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게 바로 자연의 합리적인 이치가 아닌가?”

  “······.”

  리치의 궤변에 병규는 할 말을 잃었다.

  정말이지 지독한 사고방식이다. 저런 놈에게 아무리 떠들어 봣자 소귀에 경 읽기에 불과하다.

  “차라리 다행이군.”

  병규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놈이 리치라서 다행이다. 만약에 놈이 불사의 괴물이 아니었다면 최초의 일격에 죽어 버렸을 테고, 그랬다면 안젤라의 손발에 박힌 쇠못을 뺄 방법은 영영 묻혀 버렸을 것이다.

  “너를 족쳐서 쇠못을 빼는 방법을 알아내고 말 테다.”

  “히히. 그게 네 말대로 될 것 같으냐?”

  “글쎄.”

  말고 함께 병규의 몸이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리치는 엇? 하고 놀라더니 갑자기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실드!”

  우웅.

  반투명한 검은 장막이 우산처럼 그의 앞에 펼쳐졌다.

  쩡.

  검은 장막이 출정하고 파문을 일으켰다.

  “크윽.”

  고속으로 이동하며 리치의 얼굴에 주먹질을 하던 병규는 손을 움켜쥐며 뒤로 물러났다.

 설마 그 짧은 순간에 방어막을 칠 줄이야. 게다가 그의 주먹이 오는 방향을 정확히 잡아냈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닌 것이다.

  “히히. 소용없다. 소용없어.”

  리치의 놀림에 병규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하는 수 없지.”

  쉬악!

  병규의 손끝에서 요수의 발톱이 솟았다.

  요수의 발톱은 살기가 너무 강해서 상대를 사로잡아야 할 경우을 자제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수 없이 꺼낼 수밖에 없었다.

  “쪼개져라!”

  병규는 리치의 몸을 감싼 검은 장막을 향해 거침없이 요수의 발톱을 휘둘렀다.

  치지지지징.

  파란 불꽃이 요란하게 튀어 올랐다.

  “으음.”

  병규는 침음성을 흘렸다.

  놀랍게도 실드는 깨지지 않았다.

  무서울 정도로 예리한 요수의 발톱이 오늘만 두 번째로 실패를 맛보았다.

  “히히. 신기한 능력을 쓰는 놈이로군. 시간만 넉넉하다면 산 채로 해부해 보고 싶군. 하지만 시간이 없으니······.”

  리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어느덧 밤하늘의 정점까지 기어 올라간 상태.

  붉은 핏빛은 당장이라도 핏물을 주르륵 흘릴 것처럼 진했다.

  “시간이 다 됐군.”

  혼잣말을 중얼거린 리치는 뼈만 남은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몇마디를 흥얼거렸다.

  “소환!”

  리치가 쇠 긁는 음성으로 외치자마자 그의 좌우에서 어스름한 기운이 일렁였다. 무언가가 튀어나오려는 것이다.

  “내가 가만 놔둘 것 같으냐!”

  병규가 버럭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막 그의 주먹이 리치의 머리통을 꿰뚫으려 할때, 막대한 압력이 위에서 아래로 그의 머리 꼭대기를 눌러 왔다.

  찰나의 순간, 병규는 고민했다.

  이대로 리치를 공격하다간 자신도 위에서 떨어지는 기운에 박살이 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병규는 뒤로 물러났다.

  콰쾅!

  무시무시한 폭음이 일었다.

  발밑을 뒤흔드는 진동에 병규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피하지 않았다면 온몸이 밀가루 반죽처럼 뭉개졌을 것이다.

  헛바람을 토하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너무도 거대한 오우거 두 마리가 그를 가소롭다는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치에 의해 소환된 두 마리의 오우거는 보통의 오우거들과 생김새부터 확연하게 달랐다.

  일단 머리통이 두 개였다.

  트윈헤드라 불리는 돌연변이로 보통의 오우거보다 월등히 강한 변종이다.

  5미토가 훌쩍 넘는 놈들의 거대한 키는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이놈들의 피부는 먹을 칠한 것처럼 새까맣다.

  얼마나 검고 번지르르한 광택이 흐르는지 피부가 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착각이 일 지경이었다.

  “히히. 널 위해 특별히 마계에서 소환한 놈들이지. 아마 좋은 상대가 될 게야. 그럼 나는 하던 일이나 마저 해야겠군.”

  놈은 게걸스럽게 웃은 뒤 멀찍이 물러서서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두둥!

  리치가 주문을 외우자마자 마법진 내부의 압력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호행이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오고, 제물이 된 소녀들의 육신이 가늘게 떨렸다.

  위험한 냄새가 잔뜩 풍겼다.

  “그만둬!”

  병규는 주문을 외우는 리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곧 발을 멈추어야 했다.

  트윈헤드 오우거들이 무쇠 방망이를 휘두르며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이놈들은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재빨랐다.

  게다가 영악했다.

  병규가 팽이처럼 허공으로 솟구쳐 간신히 공격을 피해 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녀석이 쇠방망이로 그를 찍어 왔다.

  허공중이라 피할 수가 없었다.

  병규는 몸을 웅크리며 최대한 충격을 덜 받기 위해 노력했다.

  퍼억!

  온몸의 뼈가 잘게 쪼개지는 듯한 무거운 고통.

  “으악!”

  병규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구르면서 억지로 몸을 일으키자 울컥하고 목구멍으로 피가 솟구쳤다.

  “쿨럭.”

  입 밖으로 토해진 피는 검게 죽어 있었다.

  휘청.

  병규는 몸을 비틀거렸다.

  맞는 순간 몸을 비틀며 충격을 최소화시켰는데도 이 지경이다.

  제대로 맞았다면 즉사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병규는 참담함을 느꼈다.

  이계의 땅에 온 이후로 그는 제대로 된 적수를 못 만났다. 그래서 자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그 자만이 산산이 부너져 버렸다.

  고작 마계에서 소환된 오우거 두 마리한테 이렇게 형편없이 당하더니.

  “으으······.”

  신음 소리가 들렸다.

  안젤라가 이를 악문 채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녀의 몸을 묶어 두었던 마법이 풀린 모양이야.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고 통증이 덜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몸을 비틀 때마다 쇠못이 박힌 살이 찍어져 고통만 가중될 뿐이었다.

  으득.

  병규는 이를 악물었다.

  시간이 없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턱도 없이 부족한 힘이지만 사력을 다한다면······.

  “이얏!”

  병규는 긴 호성을 지르며 트윈헤드 오우거에게 달려들었다.

  크워어어. 크와아.

  그의 외침에 화답이라도 하듯. 오우거들도 포악한 울음을 터트리며 쇠방망이를 휘들러 왔다.

  쉬이잉.

  병규는 두개골을 박살 내려 휘둘러지는 방망이를 피해 몸을 옆으로 굴렸다.

  퍼억!

  머리끝을 스친 방망이의 기세가 공포스러웠다.

  간신히 공격을 피해 냈지만 가쁜 숨을 돌릴 여유도 없었다.

  부웅.

  또 한 마리의 트윈헤드 오우거가 쉴 틈도 없이 공격을 날려왔다,

  병규는 전력을 기울여 요수의 발톱을 뽑아냈다. 그러곤 맹렬하게 날아드는 쇠방망이를 향해 요수의 발톱을 힘차게 휘둘렀다.

  치앙!

  요수의 발톱이 쇠방망이를 절반쯤 잘라 내다 그대로 박혀 버렸다.

  또 한 번의 좌적이었다.

  예리하기 그지없는 명도가 갑자기 녹이 잔뜩 슬어 버린 것 같았다.

  “헉”

  헛바람을 삼킨 병규는 급히 요수의 발톱을 회수했다. 그러고 나서 즉시 신형을 허공으로 뽑았다.

  부우웅

  쇠방망이가 발끝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간다. 그 맹렬한 풍압에 자칫 균형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위험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몸이 또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허공에서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영악한 마계의 오우거들은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크와아!

  괴성을 지르며 한 녀석이 손을 휘둘러 왔다. 두터운 손바닥은 파리채처럼 병규의 작은 몸뚱이를 후려쳐 왔다.

  피할 길이 없었다.

  병규는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발을 휘둘러 신형을 풍차처럼 회전시키며 두 팔로 요수의 발톱을 한계까지 뽑아냈다.

  이대로 놈의 팔목을 절단 낸다.

  못 한다면?

  그때야말로 끝장인 것이다.

  서거거거!

  길게 뻗어 낸 요수의 발톱이 오우거의 피부와 부딪치며 현락한 불꽃을 토해 냈다. 과연 검은 피부는 단순히 색깔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단하기가 무쇠보다 더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요수의 발톱도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회전하는 병규의 몸을따라 빙글빙글 돌며 오우거의 팔목을 톱질하듯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절단 내고야 말았다.

  뎅겅하고 우우거의 팔목이 잘려져 나갔다.

  크와아아아

  오우거는 미친 듯이 발광했다.

  불안정한 자세로 찾기한 병규는 간신히 오우거의 무차별한 공격을 피해 냈다.

  하지만 뒤를 노린 다른 오우거의 발길질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커억!”

  병규는 피를 토하며 축구공처럼 허공으로 솟았다가 땅바닥으로 맹렬하게 네동댕이쳐졌다.

  “크아악.”

  병규는 배를 움켜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절절한 통증이 뱃속을 후벼 팠다.

  내장이 가닥가닥 끓어지는 것 같았다.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한껏 벌려진 입에서는 검은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의식이 흐려졌다.

  눈앞이 희미해지는데, 가물가물한 의식 속으로 하얀 털 뭉치 하나가 엉금엉금 기어 왔다.

  호랭이였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호랭이가 입에 뭔가를 물고 더러운 땅바닥을 기어 오고 있었다.

  호랭이가 입에 물고 있는 그것은 ······수통이었다.

  “무,물을······.”

  숨이 꼴깍꼴깍하면서도 호랭이는 병규를 위해 물을 가져다준 것이다.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이 고였기 때문이다.

  “젠장,망할······신선 때문에······ 죽지도 못하겠군.”

  “말······ 버릇······ 혼난······다.”

  “으흐흐흐·······”

  병규는 입가를 들어 올리며 간신히 웃음을 흘렸다,

  호랭이가 그의 입에 수통을 물려 주었다. 병규는 이빨로 수통의 마개를 벗겨 냈다.

  시원한 물이 입 안으로 쏟아졌다.

  번쩍!

  병규의 눈이 갑자기 광채를 되찾았다.

  언제 아팠냐는 듯, 벌떡 일어난 그는 축 늘어진 호랭이를 잡아채며 급하게 앞으로 몸을 날렸다.

  쿠쿠쿵!

  그가 엎어져 있던 자리에 쇠방망이가 무참히 쳐박혔다. 조금만 지체했어도 둘은 말린 쥐포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고생했어요. 호랭이.”

  병규는 호랭이를 안젤라 옆에 편히 눕혔다.

  “너······지면······혼나.”

  숨을 헐떡이며 호랭이는 끝내 협박의 말을 내뱉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죽을 것 같은 신선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고작 저런 놈들에게 지면 혼난다는 소리다.

  병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꼭 이길게요.”

  그를 위해 목숨을 걸고 기어 왔던 호랭이를 생각해서라도.

  병규의 시선이 안젤라에게 잠시 머물렀다.

  안젤라는 더 이상 신음을 토하지 않았다. 몸도 뒤틀지 않았다.

  그저 온몸을 벌벌벌 떨 뿐이었다.

  비명을 지를 힘도, 몸을 비틀 기운도 더는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병규는 주먹을 꾹 쥐었다.

  문득 통증이 느껴졌다.

  왜 그런가 살피니 왼팔이 부러져 있었다.

  병규는 부러진 팔에 수통의 물을 다 부었다. 부러진 팔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치유되었다.

  팔을 치유하며 병규는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저놈들을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해골 녀석의 실드를 부숴 버릴 수 있을까.’

  결론은 간단했다. 힘이 부족한 것이다.

  그에겐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디서······.’

  움찔.

  병규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의 눈이 완전히 다 나은 왼쪽 팔로 향했다.

  있었다.

  한 가지 방법이.

  순식간에 강해질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으득.

  병규는 이를  악물었다.

  저벅저벅.

  성난 오우거들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크와아아아!

  오우거 한 마리가 대뜸 달려들었다.

  병규에게 팔이 잘린 오우거였다.

  놈은 좀 전보다 월등히 광폭해져 있었다.

  부웅. 부우웅. 붕붕.

  쇠방망이가 나무젓가락처럼 휘둘러졌다.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폭격에 병규는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하지만 왜인지 그는 피하기만 할 뿐,아무런 반격도 시도하지 않았다.

  뭔가 다른 것을 노리는 듯했다.

  크워!

  마침내 다른 오우거 한 마리도 공격에 가세했다.

  집채만 한 쇠방망이가 여름날의폭우처럼 사정없이 쏟아졌다.

  병규는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병규의 두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마침내 목표를 찾은 것이다. 병규는 재빨리 몸을 날렸다.

  등 뒤에서 퍽퍽 하는 묵직한 소음이 일었지만 뒤도 돌아보지않았다. 그가 목숨을 걸고 달려간 곳엔 잘려진 오우거의 팔이 있었다.

  피가 질질 흐르는 검은 살덩이를 본 병규는 주저 없이 입을 가져갔다. 비리한 액체가 목구멍으로 벌컥벌컥 넘어갔다.

  병규가 찾은 유일한 방법.

  그것은 바로 오우거의 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이것은 모험이다.

  피를 마신다는 지금까지처럼 오우거의 힘을 흡수하게 될지 의문이고, 또 설혹 흡수하게 된다 하더라도 몸에 큼 변형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사상 일대의 모험인 것이다.

  크와아아아아아!

  병규가 자신의 팔을 먹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가.

  팔이 잘려진 오우거는 광분하며 달려들었다.

  그와앙!

  쇠방망이가 맹렬한 굉음을 토하며 그의 등을 후려쳐 갔다.

  위기의 순간.

  병규의 몸이 빙글 돌았다.

  어느새 그의 두 팔에선 요수의 발톱이 요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실패······인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호랭이의 두 눈엔 암담함이 어렸다.

  오우거의 피를 마셨지만 요수의 발톱은 좀 전과 전혀 변함이 없었다.

  이놈들은 마계의 몬스터다. 아마 몸의 구성도 다른 몬스터들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병규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한계는 있을 터, 설혹 흡수할 수 있다고 해도 과연 그가 원하는 힘이 생길지는 의문인 것이다.

  ‘틀렸어. 틀렸어.’

  호랭이가 절망하고 있을 때, 오우거가 휘두른 쇠방망이는 질풍같은 속도로 병규를 휩쓸어 가고 있었다.

  스윽.

  마침내 요수의 발톱이 휘둘러졌다.

  느리다.

  예전과 비교하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다.

  어쩌면 오우거의 피가 독이 되어 버렸는지도.

  마침내 요수의 발톱과 오우거의 쇠방망이가 마주쳤다.

  서거걱.

  짧고 서늘한 절삭음이 울렸다. 놀랍게도 느리게 휘둘러진 요수의 발톱에 쇠방망이가 너무도 쉽게 잘려 나갔다. 좀 전엔 간신히 반쯤 잘라 냈던 것이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헛!”

  지쳐 쓰러진 호랭이의 눈이 번쩍 떠졌다.

  “마, 막강한 암흑의 기운이······.”

  떨리는 호랭이의 눈이 병규를 향했다.

  너무도 간단히 오오거의 쇠방망이를 잘라 낸 병규는 좀 전과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스르르.

  감겨 있던 그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흠칫!

  어리둥절해하고 있던 오우거들이 그의 눈빛에 흠칫 몸을 떨었다.

  병규의 눈동자.

  변했다.

  흐리멍덩한 검은 눈동자는 더 이상 없었다.

  불타고 있었다.

  강렬한 붉은 빛깔로 그의 눈이 불타고 있었다.

  세로로 쭉 갈라진 눈동자는 기이함을 넘어 위험한 냄새까지 풀풀 풍기고 있었다.

  크르르르.

  그의 입이 벌어지며 소름 끼치는 울부짖음을 토해 냈다.

  주춤.

  오우거들이 갑자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광폭하게 날뛰던 괴물들이 지금은 어깨를 덜덜 떨고 있었다. 얼굴 표정마저 변했다. 엄청난 공포를 느낀 것 같았다.

  씨익.

  병규의 입술 끝이 스르르 올라가며 기묘한 미소를 흘렸다.

  그 미소는······

  불쌍한 먹이를 바라보는 마수의 희열 가득한 웃음이었다.

오늘 뒤집어쓴 코피가 더 많소이다

  누굴 죽여주길 원하오?

  샤바와 사신들의 격돌!

  그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사상 초유의 매직미사일

  그곳에서 넌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오우거의 힘, 그리고 핏빛 각성

  마왕을 먹겠다?

  인간이 아닌 넌 대체 뭐냐?

  떠나는 그를 위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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