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넌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트라우마에서 북으로 말을 타고 하루 정도 가면, 붉은 대지 유일의 산을 만나게 된다.
날카롭게 벼려진 창처럼 생긴 그 산을 일컬어 사람들은‘화룡의 송곳니’라고 불렀다.,
굳이 그곳이 ‘화룡의 송곳니’라고 불리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화룡의 송곳니’는 뜨거웠다.
사막의 열기와는 다른 지열이 존재했다.
한밤에도 이곳의 흙과 돌에 맨살이 닿으면 곧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웠다.
화산도 아닌데 뜨거운 지열이라니.
이것은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많은 마법사들이 ‘화룡의 송곳니’를 연구해 보았으나 그 누구도 신비한 지열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렇게 수백 년이 흘렀다.
더 이상 ‘화룡의 송곳니’를 연구하는 마법사도,이상 현상을 구경하는 관광객도 없었다. 이 신비한 산은 몬스터들에게도 외면 당한 채, 뜨거운 숨결을 잠재우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서 뜻밖의 손님이 찾아들었다.
검은 후드를 쓴 사람이었다.
얼굴에 뒤덮어 쓴 모자가 너무 커서 그의 얼굴은 도저히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밖으로 드러난 검은 손등을 통해 나이 정도만 간신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얼마 전부터 ‘화룡의 송곳니’ 최정상에서 정교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그리는 그림은 참으로 독특했다.
지독할 정도로 복잡한 그 그림은 또 극악하리만치 복잡했다.
무언가를 세세하게 묘사한 정물화일까?
아니다.
그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정교하기는 하데, 무언가의 형상을 표현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의 그림은 균형도 맞지 않았다. 한쪽이 크게 부푼 형태의 기묘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또 묘하게 규칠적이었다.
일정 간격으로 알아볼 수 없는 기묘한 도형이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사냐가 이 ‘화룡의 송곳니’ 정상에 기묘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벌써 석 달이 다 되어 갔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그림에 몰두했다. 특히 최근 한 달 동안은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은 채 줄곧 그림에만 매달렸다.
최근 딱 한 번, 사내가 그림에서 손을 놓은 적이 있었다.
반나절 정도 사라졌던 사내는 몬스터를 앞세워 어린 소녀들을 잡아 왔다.
지금 그 소녀들은 저쪽 구석에서 숨죽인 채 울고 있었다.
처음 사내가 이곳에 데려온 소녀는 열두 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열한 명밖에 없었다.
시끄럽게 운다는 이유로 한 명의 배를 거침없이 갈라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녀들은 눈물을 흘리되 울지는 못했다.
뜨거운 지열 때문에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 가는 와중에도 그저 말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히히히. 이제 끝이군.”
마지막 도형을 채워 넎은 사내의 입에서 희열에 가득 찬 괴소가 흘러나왔다. 이 거대한 마법진에 매달린 것이 벌써 며칠째던가. 이제 마침내 그 결실을 얻을 때가 된 것이다.
마법진은 매우 복잡하고 또 거대했다.
마법진 옆에는 대량의 해골이 쌓여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들인 공이었다. 반경20미터에 이르는 이 거대한 소환진은 모두 10층의 복합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개의 층이 올라갈 때마다 마법진의 복잡도는 정확히 아래층의 제곱이 되고, 제물 또한 많이 요구되었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인 마법진이 마침내 완성된 것이다.
괴인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밤하늘에 핏빛으로 물든 달이 고여 있었다.
시간이 임박했음을 인지한 괴인은 마법진 밖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수감이 채워진 소녀들이 그를 보고 자지러졌다.
괴인은 소녀들이 울부짖거나 말거나 머리채를 끄집어 당겨 마법진으로 끌고 갔다.
털썩 소녀를 내동댕이친 괴인은 음악한 미소를 짓는다.
이어 품속에서 망치와 강철 못을 꺼내 들었다.
못과 망치는 굳은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시,싫어.”
소녀의 낯빛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하지만 괴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었다. 마법으로 소녀의 움직임을 제압해 버린 그는 끔찍하게도 손바닥에 못을 박았다,
쾅쾅!
손바닥에 못이 꼽히는 것을 맨 정신으로 지켜봐야 하는 충격과 고통은 상상을 불허했다.
너무나 끔찍한 고통에 소녀는 기절도 못했다. 게다가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그녀의 육신을 봉쇄한 마법은 조금의 발버둥도 용납지 않았기 때문이다.
쾅쾅!
손 다음엔 발이었다.
발등에 쇠못이 그대로 꽂혔다,
주르륵.
소녁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히히.”
소녀를 마법진의 한 귀퉁이에 박아 넣은 괴인은 뭐가 그리 나쁜지 연신 시시덕거렸다.
달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핏빛이 더욱 붉어졌다.
경련이 인 것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소녀,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핏물이 그가 그린 마법진을 불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빨갛고 끈적거리는 이물감이란.
이거야말고 미칠 듯한 광기의 폭발이 아닌가.
“히히힉”
괴인은 희열을 느꼈다.
한참을 달을 보고 그렇게 웃어대던 괴인은 다시금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다른 소녀들에게 걸어갔다.
또 한 명의 소녀가 마법진으로 끌려왔다.
쾅쾅!
다시 못 박는 소리가 울렸다.
괴인은 또다시 달을 보고 추악하게 웃었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희생자를 마법진으로 끌어내었다.
그렇게 소녀들은 마법진의 외각에 한 명씩 차례대로 배열되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중앙의 빈 자리만 남게 되었다.
“당신을 저주해.”
마지막 소녀가 괴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깊게 눌러쓴 후드의 안쪽에서 섬뜩한 안광이 솟구쳤지만 소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제법 앙탈을 부리는구나. 너도 배가 갈린 채 죽고 싶은 거냐?”
괴인은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로 위협했지만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소녀는 오히려 독설을 퍼부었다.
“해 봐. 해 보란 말이야. 흥. 절대로 못 할거? 제물은 산채로 있어야 한다지? 그런데 지금 날 죽일 수 있겠어? 할 수 있으면 해 봐?”
“······어제 죽일 년을 잘못 선택했군. 그년 대신 널 죽일걸 그랬어.”
“왜 이제와 후회돼? 그럼 죽여. 당장 죽이라고.”
소녀는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그녀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곱게 자라 온 다른 소녀들과은 달랐다. 아장아장 걸을 수 있을 때부터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대륙 곳곳을 휘젖고 다녔다.
무희로서 춤을 팔고 험한 세상에 두루두루 체험했다.
지금 추악한 괴인은 손에 산 제물로 받쳐질 운명에 처했지만 오히려 악이 받쳤다.
어떻게 살아왔는데,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데.
반드시 인생에 한 번쯤은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 굳게 믿었는데······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 끝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다니.
서러웠다.
그리고 너무 서글펐다.
소녀는 악을 질렀다. 괴인을 욕하고 저주했다. 그녀는 독설에 결국 괴인은 마법으로 그녀의 입을 막아 버렸다.
움직이지 않는 혀를 대신해 마음속으로 욕을 하는 듯 소녀의 얼굴이 울긋불굿했다.
“히히히.죽여 달라고? 그 말을 들으니 더더욱 곱게 못 죽여주겠구나. 걱정 마. 지금 당장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저 팔다리에 못이 박히는 정도야. 조금의 통증이 있을 뿐이지. 최후는 훨씬 나중이다. 의식이 진행되고, 공포가 네년의 머릿속으로 각인되는 순간, 참된 죽음이 너를 지옥으로 이끌 것이다. 그곳에서 넌 영원히 고통받겠지. 히히히. 어떠냐? 기쁘냐?”
소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운 볼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래. 절망하거라. 너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절망이 곧 그분의 양식이 될 테니.”
괴인은 소녀의 머리채를 질질 끌고 마법진의 중앙으로 옮겼다.
움쩍달싹 못하는 그녀의 팔다리를 펼쳐 놓고 예의 무쇠 못과 망치를 들었다.
피가 뚝뚝 흐흐는 쇠망치를 보며 소녀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녀는 빌었다.
제발 이게 꿈이기를. 깨고 나면 잊혀지는 악몽에 불과하기를.
하지만 귓가를 스치는 괴인의 음충맞은 숨소리는 꿈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현실감이 넘쳤다.
쾅쾅!
왼쪽 팔에서 일어난 고통이 피를 들끓게 하는 뇌전의 파도가 되어 전신을 누볐다.
소녀의 입이 쩍 벌어졌다,
너무도 가혹한 충격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경련이 일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를 수도, 발버둥을 칠 수도 없었다.
쾅쾅!
또 한 번의 통증이 몰아쳤을 때, 소녀의 머릿속은 번개가 치는 듯 까마득해졌다.
지독한 통증은 환상을 불러왔다.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기억에도 없는 엄마, 아빠······.
쾅쾅!
언제나 흐릿하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아버지.
쾅쾅!
아름다운 나의 왕자님, 샤바. 그리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했던 병규 오빠.
‘오빠’
그녀는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울었다. 그녀의 맑은 두 눈에 피눈물이 고이더니 빰을 타고 흘러내렸다.
“히히히.”
괴인이 하얗게 바래져 가는 소녀의 동공 위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추악하다.’
괴인의 얼굴을 본 소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히히히.기뻐하거라. 특별히 너에겐 못을 하나 더 박아 주지.”
괴인은 소녀의 웃옷을 걷어 올렸다. 그러곤 차가운 쇠못의 끝으로 어린 소녀의 부드러운 살을 애무하듯 긁었다.
소녀는 쇠가 피부를 굵는 이질감에 진저리를 쳤다.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게 나을 듯했다.
‘도와줘. 누가 제발’
그녀는 속으로 애타게 외쳤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에 불과했다.
쇠못이 그녀의 배꼽 위에 멈춰섰다.
괴인은 소녀를 향해 히히 거리고 웃더니 무심하게 망치를 들었다.
안젤라는 눈을 감았다.
다행히 눈꺼풀은 움직여 주었다.
‘이번엔 배니까 팔다리보다 훨씬 더 아프겠지? 죽도록 아플 거야. 그래도······ 그래도 참아낼 수 있을 거야.’
기도하듯 되새겼다.
쾅!
마침내 끔찍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를 꽉 깨물고 기다린 충격은 없었다.
대신 무언가가 엎어지는 듯한 묵직한 소음이 들려왔을 뿐이다.
눈을떴다.
시커먼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주르륵.
소녀는 눈물을 흘렸다.
달랐다.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이, 시커먼 후드로 가려진 소름 끼치는 ‘그것’이 아니어싿,
“안젤라·······/”
그 사람이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슬픔에 목이 잠긴, 애타게 부르짖음이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소녀의 이마 위에서 부서졌다. 안젤라는 그를 부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웃었다.
너무 아팠지만, 죽도록 고통스러웠지만, 쇠못에 박힌 팔다리가 불에 지진 듯 뜨거웠지만, 반갑다는 뜻으로 일그러지는 얼굴 근육을 억지로 움직여 웃었다.
속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병규 오빠.’
오늘 뒤집어쓴 코피가 더 많소이다
누굴 죽여주길 원하오?
샤바와 사신들의 격돌!
그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사상 초유의 매직미사일
그곳에서 넌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오우거의 힘, 그리고 핏빛 각성
마왕을 먹겠다?
인간이 아닌 넌 대체 뭐냐?
떠나는 그를 위한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