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38/102)

 사상 초유의 매직미사일

  자고로 납치 사건은 시간이 생명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납치된 피해자가 무사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납치는 평범한 사건들과 달랐다.

  납치 해 간 범인이 잔악무도한 몬스터라는 점과 희생자들이 제물로 바쳐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일행의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제이콥 일행은 곧바로 여관으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

  “죄송합니다.”

  여관을 나설 때, 병규가 머리를 긁적이며 제이콥에게 말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용병단 전체가 말려들게 되었다. 병규는 그게 너무 미안했다.

  “알면 됐다. 책임감을 느낀다면 열심히 해라. 기왕에 시작한 일이니 반드시 성공해야겠지?” 

  “ㄴ[.”

  제이콥의 말에 병규는 씩 하고 웃었다.

  말에 짐을 싣고 여관을 떠나려 할 때, 사신들이 느긋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들 역시 말을 끌고 있었다.

  “우리들도 따라가겠네.”

  “꽤 위험한 일이 될 겁니다.”

  제이콥의 말에 크리티컬이 잔잔한 미소를 그렸다.

  “상관없네. 마스터가 가는 곳이라면 그 어떤 곳이든 함께 갈 생각이네.”

  제이콥은 휘파람을 불었다.

  “이거 정말 엄청난 지원군이 생겼는걸.”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제이콥이었다.

  꽤 인원이 붙은 프리즘 용병단은 성문 앞에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레종과 그 일행들이었다.

  제이콥은 말없이 레종의 하얀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고 갈 생각입니까?”

  제이콥이 물었다. 레종은 흘끔 병규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레종은 입술을 꼬옥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호한 결심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연약해 보이는 사람이 결단력 하나는 대단하군.’

  제이콥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그런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병규 역시 눈앞의 허여멀건 청년과 마찬가지로 겉으로는 유약한 인상이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위험해지면 곧장 트라우마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해 주시죠.”

  레종은 척 봐도 곱게 자란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철모르고 따라 나선다고 하지만 정작 위험해지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때 레종이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도록 이런 말로 미리 배려하는 것이었다.

  제이콥의 제안에 레종은 미간을 좁히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상황이 불리하면 도망가라는 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험에 빠진 동료들을 버리고 떠나라는 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허락을 안 하면 파티에 끼워 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물론 굳이 동료가 될 필요는 없다. 무작정 뒤를 따라가도 일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왕이면 가는 동안이라도 편하게 지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결국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겉으로는 그러마 하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녀였다. 설사 그 고집 때문에 죽게 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에휴.”

  겉에서 지켜보고 있던 디스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그는 레종이 소녀들을 구출하겠다고 나설 때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것은 모험이 아니다.

  능력을 넘어선 모험은 만용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몇 번이고 레종에게 이 점을 강요했다.

  하지만 레종은 말을 듣지 않았다. 입술을 꼭 다문 채 고개마저 돌려 버렸다. 이럴 때의 그녀에게는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고집불통인 것이다.

  “차라리 기사들만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우리들이 따라가 봐야 도움은커녕 방해만 될 뿐입니다.”

  이번에도 레종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 비겁한 짓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디스는 정말이지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레종은 끝내 자신의 의견을 관철했다.

  “미치겠군,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감금이라도 해 놓고 싶순.”

  답답한 마음에 디스는 작은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안 될 말이다. 그녀를 감금했다가는 자칫 엄청나게 귀찮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을 나서자 자연스럽게 제이콥이 일행의 선두를 맡게 되었다/

  레종을 따르는 기사들이 작게 불만을 표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 붉은 대지를 그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몬스터들을 추격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워낙에 많은 무리가 이동한 터라 무수히 많은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북서쪽이야.”

  몬스터들의 이동 경로를 본 호젤이 제이콥에게 말했다.

  “북서쪽이라······ 아마스 신성제국  방향이로군.”

  “신성제국은 몬스터들을 경멸해. 분명 제국의 영향권 전에 흑마법사의 근거지가 있을 거야,”

  “똑바로 추격할 거야? 마법사가 무슨 수작을 벌여 놓았을지 모르는데?”

  “놈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니 우회하여 이동할 수도 없잖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조심해서  따라갈 수밖에.”

  말을 조심한다고 했지만 실상 느긋하게 따라갈 여유가 없었다. 의식이 언제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이때 여태 조용히 있던 디스가 입을 열었다.

  “예전의 기록을 조사해 봤더니 피의 의식은 항상 달이 불게 물드는 만월에 행해지더군요. 만약 달의 모양과 의식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다면 의식이 행해지는 시기는 바로 오늘 밤 자정일 것입니다.”

  “상당히 많은 ······조사를 하신 모양이군요.”

  “일단 손을 댄 이상 완벽을 기하는 게 좋겠지요.”

  디스의 다소 냉정한 말투에 제이콥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드들 들었겠죠?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일행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서두르자.”

  오늘따라 붉은 대지의 변화무쌍한 기후가 평온하기만 했다.

  그것은 추적자로서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모래 자국에 남은 흔적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몬스터들의 뒤를 쫒기 더 없이 좋았다.

  “그런데 납치된 소녀들이 몬스터들과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으면 어쩌죠?”

  문득 생각난 듯 병규가 제이콥에게 물었다.

  “어쩔 수 없다. 지금으로써는 그녀들이 이쪽 방향으로 있길 바라는 수밖에.”

  성문 앞에서 흩어진 몬스터들은 그 흔적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그 중 일행은 가장 큰 흔적을 쫓아온 것이다.

  만약 소녀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면 이들의 노력은 결국 헛수고가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은 점점 깊어만 갔다.

  그러나 얼마 후,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다는 확실한 증거를 만나게 되었다.

  일단의 몬스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곳이다.

  놈들은 붉은 대지에서 흔히 볼수 있는 몬스터와는 상태가 많이 달랐다.

  눈이 검게 물들어 있고, 입가에 거품까지 물고 있었다.

  씩씩 내쉬는 숨소리에 위아래로 흔들리는 어깨.

  몬스터들에게선 한 가닥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블린과 오크, 그리고 트롤과 오크들이 한데 섞여 있는 것도 이상한 점이었다.

  놈들은 지뢰와 같았다.

  굳어 버린 듯 서 있다 일행들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광폭하게 괴성을 지르며 다짜고짜 달려들었던 것이다.

  “일단 정지.”

  제이콥은 급작스레 몰려드는 50마리의 몬스터를 보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차분히 일행의 대열을 정비했다 

  크워어어어!

  선두에서 달려오는 두 마리의 오우거가 거대한 나무 곤봉을 위협적으로 휘둘러댔다.

  이쪽에서 가장 먼저 공격을 시도한 사람은 마법사인 프리먼이었다.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

  프리먼의 창연한 외침과 함께 화염으로 이글거리는 불화살이 오우거의 눈알에 꽂혔다.

  꾸웨에에에!!

  눈알이 타 버리는 통증에 오우거는 머리를 뒤틀며 괴로워했다.

  “잘했어.”

  프리먼의 마법이 선두의 오우거를 격중하자 곧바로 호젤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분노한 오우거는 그녀를 보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뒤를 쫓았다. 호젤이 노린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몬스터 무리의 구성은 크게 오우거 두 마리와 다수의 몬스터로 나뉘어졌다.

  문제는 오우거였다.

  지상 최강의 몬스터인 오우거는 기사 서넛이 달려들어야 할 정도로 강력함을 과시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오우거만 따로 유인하여 처리하는 거였다.

  생각보다 쉽게 오우거가 호젤의 유인에 말려들자 제이콥과 고든이 무기를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곧 프리즘 용병단과 오우거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한 마리의 오우거는 그렇게 처리가 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오우거는 두 마리. 한 마리가 더 남아 있었다.

  그 한 마리를 레종의 기사단 중 셋이 맡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열입곱 명의 기사는 거품을 흘리며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향해 말 머리를 나란히 했다. 

  “전원 돌격!”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콰콰쾅.

  기사들과 몬스터들이 격돌하자 무시무시한 소음과 함께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기사들은 검술도 귀신같았지만 말도 환상적으로 다뤘다.

  그들이 몇 번 치고 빠지는 사이, 몬스터들은 이미 반 이상 줄어 있었다.

  “기사들이로군.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멀찍이 떨어진 채 기사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크리티컬이 두 눈을 가늘게 모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호랭이가 그랬듯 그 또한 그들의 움직임에 기사단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가 왜 이렇게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지?”

  나이프가 불만스럽게 말하자 바인딩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쏘아 붙였다.

  “크크. 제이콥이라는 녀석이 지껄일 때, 넌 잠이라도 잔 거냐? 전력을 보전하란다. 나중을 위해 힘을 비축하고 있으라는 거지.”

  “쳇, 나도 알아.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나서면 순식간에 정리될 텐데, 이건 오히려 전력 낭비라고.”

“그는 흑마법사를 상대할 카드로 우릴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

  마그네트의 말에 나이프는 입을 쩍 벌렸다. 그런데 어째 충격을 받은 게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는 것 같았다.

  “정말?  마그네트 정말이야? 정말로 그 먹음직스런 먹이를 우리에게 넘길까?”

  “아무래도.”

  상위의 흑마법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고 악독했다. 정면으로 부딪쳤다간 많은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다.

  특히 지금 그들이 쫓고 있는 흑마법사는 피의 의식을 준비하는 암흑 계열의 소환사다. 분명 주변에 엄밀한 경계를 펼치고 있을 것이아.

  어쩌면 흑마법사를 보기도 전에 전멸할 가능성도 있다.

  현명한 자라면 분명 정면공격을 배제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암살뿐. 상위 흑마법사를 제거할 수 있는 어세신이라면 여기에 있는 사신들뿐이다.

  오우거 두 마리가 포함된 다수의 몬스터 공격이라면 상당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이쪽의 전투력 역시 인원수에 비하면 어마어마했다. 

  결과는 너무도 시시했다.

  채 몇 분이 흐르기도 전, 제이콥과 고든이 오우거의 두 다리를 뭉개 버렸고, 잠시 후엔 세 기사가 다른 한 마리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나머지 몬스터들은 이미 그 이전에 다수의 기사들에게 전멸당한 상태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던 제이콥은 문득 호젤의 표정이 이상함을 느꼈다.

  왜냐고 물으니 멍한 눈으로 뒤편을 턱짓한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다리 관절이 뽑힌 채 붉은 대지를 뒹굴고 있는 수십의 몬스터들이었다.

  일행이 전면에 온통 신경을 기울인 틈을 타 뒤쪽에서 몬스터들이 몰래 급습한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누군가 그들을 저지했다. 그것도 관절을 뽑는 상상을 초월하는 방벙으로 말이다.

  “대체 누가······.”

  제이콥은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마른침을 삼켰다.잠깐 사이에 누가 이 많은 몬스터들이 이 모양 이 꼴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저기. 저쪽.”

  호젤이 경악 어린 표정으로 한 사람을 손가락질했다.

  “카피?”

  호젤이 지적한 사람은 바로 병규였다.

  그는 관절이 빠진 몬스터들이 뒹굴고 있눈 한중앙에 서 있었다.

  과격하게 움직임인 듯 그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고 있었다.

  후방에서 몬스터들이 갑자기 급슴했을 때, 병규는 재빨리 말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푹푹 빠지는 붉은 모래 위를 나는 듯이 달리며 미쳐 날뛰는 몬스터 무리를 휘저었다.

  그의 행동이 얼마나 빨랐던지 사신들마저도 나설 틈을 잡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 후로 그들이 듣고 본 것이라곤 우두둑, 뚝뚝 하는 관절 빠지는 소리와 비명을 지르며 허물어지는 몬스터들의 모습뿐이었다.

  “저 사람. 도대페 정체가 뭐야?”

  나이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혼잣말이었지만 다른 사신들 또한 비슷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하나같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확인한 병규는 자신의 말 위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태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서두르죠.”

  그의 능청스런 태도에 일행은 할 말을 잃었다.

  

그 후로도 일행은 두 번 더 매복을 만났다.

  물론 가볍게 물리칠 수 있었다.

  처음과 달리 병규는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대신 사신들이 날뛰었다.

  그들의 실력은 대단하여 나이프와 바인딩 둘만으로도 몬스터무리를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었다.

  전력 보존이고 뭐가 갑갑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바인딩의 특기를 본 호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비로소 사신들의 정체를 알아챈 것이다.

  “맙소사. 저 사람들 마일드의 사신들이었더.”

  그녀의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 역시 그녀처럼 안색이 변했다.

  마일드의 사신.

  그야말로 최고 최악의 어세신 집단이 아닌가.

  괴이하다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그들이 이렇게 엄청난 존재들일 줄이야. 순간 프리먼은 자신의 목을 만졌다.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사신들의 정체가 밝혀지자 샤바에 대한 그들의 오해는 한층 깊어졌다.

  마일드 사신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존재.

  드래곤 정도의 존재가 아니라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험험. 서, 서두르자.”

  제이콥이 서둘러 말을 몰기 시작했다. 뒤이어 다른 용병단둰들도 말을 재촉했다.

  의도적인지는 모르지만 일행의후방을 지키는 사신들과 그들의 거리가 조금 멀어졋다.

  “맙소사.”

  호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작은 능선 하나가 몬스터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어림짐작으로도 밸기 넘는 엄청난 숫자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경악할 만한 것은 그렇게 몰려든 몬스더들의 대부부이 오우거와 트롤이라는 점이었다.

  “와, 와이번도 있어.”

  호젤이 하늘을 가리켰다.

  구름 아래를 비스듬히 날고 있는 것은 작은 드레곤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와이번 무리였다.

  “좌,우, 뒤쪽에도 몬스터들이 몰려온다.” 

  “미치겠네. 설마 붉은 대지의 몬스터들이 모두 여기로 오는 건 아니겠지?”

  앗 하는 사이에 일행은 몬스터들에게 포위되어 버렸다.

  “아무레도 흑마법사 놈이 우리들의 존재를 눈치 챈 것 같군.”

  “아니면 우리가 놈에게 가까이 접근해서 위협을느낀 것일 수도 있어.”

  “아무튼 흑마법사 녀석. 엄청남 수준인 것만은 확실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수의 몬스터들 한꺼번에 부릴 수 있는 거지?”

  “무리일세. 그 어떤 흑마법사도 이렇게 많은 수의 몬스터를 부리진 못하네. 아마 강력한 현흑마법이나 환상마법을 썼을 게야. 아마 몬스터들의 눈에는 우리가 맛있는 먹이로 보일테지.”

  프리먼의 설명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좋은 공부를 해서 좋기는 한데. 저 녀석들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야. 왠지 곧바로 달려들 것 같은걸.”

  “어쩔 수 없지.”

  표정이 굳힌 제이콥은 말에서 내렸다. 이 많은 수를 상대로 말위에서 싸우는 것은 자살 행위다.

  같은 생각이었던지 기사들도 일제히 말에서 내렸다.

  여유가 넘치던 그들의 얼굴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그만큼 그들을 포위한 몬스터의 숫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레종의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조금 전까지 그녀는 용기백배한 상태였다.

  몬스터들의 사소한 습격은 있었지만 정의로 똘똘 뭉친 용사들에게 상대도 되지 않았다.

 이대로 신의 오라를 뿜으며 사악한 흑마법사를 처리하면 된다.

  그렇게 그녀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에게 포위당한 지금 왈칵 두려움이 솟았다.

  자신의 죽음이 겁나는 게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섣부른 판단 때문에 애꿏은 수하들이 죽지는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괜찮습니다. 기사들을 믿으십시오.”

  디스는 조용한 말로 안절부절못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레종은 그러겠노라고 크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지만, 파도처럼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보며, 그런 기대가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쿠워어어어.

  선두의 오우거가 하늘이 쩌렁쩌렁 울려라 괴성을 질렀다. 그것을 신호로 몬스터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과20여 명의 사람들에게 수백의 몬스터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대 장관이었다.

  “모여라. 둥글게 모여 적을 상대한다.”

  제이콥은 원형진의 형대로 일행을 배치했다. 소수가 다수의 적을 상대로 싸울 때 가장 효과적인 진이 바로 원형진이다.

  진의 안쪽엔 레종과 디스가 위치했다. 그리고 가장 위험해 보이는 곳에는 사신들과 기사들이 서게 되었다.

  능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위치가 결정된 것이다.

  마침내 몬스터들의 선두와 일행들이 정면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콰콰쾅

  그워어어.

  두쿵

  폭발하는 듯한 굉음이 여러 차례 울리고, 맨 처음 박살 난 말의 몸뚱이가 하늘로 솟았다. 말을 희생당한 기사들이 복수하듯 검을 휘둘렀다.

  그들의 검에는 녹색의 희미한 검기가 서려 있었다.

  카각

  크워어.

  오우거의 발이 날아갔다. 비명을 지른 오우거는 발적적으로 돌도끼를 휘둘렀다.생긴 것은 돌도끼지만 그 크기는 거대한 바위나 마찬가지였다. 오우거의 막대한 힘에 돌도끼의 무게까지 실리자 가히 폭발적인 파괴력이 형성되었다.

  출중한 능력을 자랑하는 기사들도 전력으로 휘둘러진 오우거의 돌도끼를 막아 내지는 못했다. 분분히 몸을 날리며 피하자 집채만한 돌도끼가 붉은 모래 위를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퍽!

  흙과 모래가 하늘 높이 비산했다.

  기사 한명이 바닥에 찍힌 돌도끼 자루를 타고 오우거의 가슴을 베었다.

  촤악!

  검기를 머금은 칼은 여지없이 오우거의 살을 베어 냈다. 칼끝에 걸리는 드드득 하는 감촉은 그의 검이 두꺼운 뼈를 잘라 내고 내장 깊숙한 곳에서 치명적인 검흔을 남겼음을 의미했다.

  기사는 오두거의 피를 흠뻑 뒤집어쓰게 되었지만, 괴물을 손수처리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채 그의 미소가 끝나기도 전, 서서히 무너지는 오우거의 등 뒤로 또 다른 오우거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헉!”

  크게 놀란 기사는 다급하게 검을 휘둘렀지만 무지막지한 기세로 달려드는 오우거의 돌진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했다.휘잉 하고 날아드는 오우거의 거대한 나무 방망이에 기사는 절망을 느꼈다.

  바로 그 순간, 희미한 그림자가 그를 스치고 앞으로 날아갔다,

  병규였다.

  위기에 처한 기사의 앞으로 뛰져나간 그는 가볍게 점프하며 광분하는 오우거의 팔꿈치를 향해 손을 슬쩍 휘둘렀다.

  “뒤를 부탁해요.”

  병규는 멍하니 서 있는 기사의 등을 팡 하고 가볍게 친 후, 다시 한 번 몸을 날렸다. 다른 곳에도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규는 그야말로 종횡무진으로 전장을 누볐다.

  그러한 노력 때문인지 아직까지 경상을 입은 사람은 있어도, 죽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성난 해일처럼 몰려드는 급박한 상황임에도 일행들은 비교적 잘 막아 내고 있었다.

  병규는 오우거 한 마리의 머리통을 깔끔하게 절단 내며 허공으로 솟았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쓱 훑어보았다.

  아직도 몬스터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몬스터들의 피를 흠뻑 뒤집어쓴 일행들이 분투하는 모습도 보였다.

  워낙에 사신들과 기사들이 전력이 막강하여 당장 몬스터들에게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하는 것도 무리다.

  병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떠오르고 있었다.

  검은 하늘로 비스듬히 흘러가는 달빛은 점차 붉게 변하여 이제는 핏빛에 가까워졌다.

  ‘시간이 얼마 없다.’

  병규는 결심을 둗혔다.

  “제이콥!”

  고블린 한 마리를 깨끗하게 베어 넘기던 제이콥이 뒤를 돌아봤다.

  “저 먼저 가겠습니다.”

  “······!”

  제이콥의 얼굴이 가볍게 굳었다.

  이렇게 홍수처럼 몬스터들이 쏟아지는데 앞으로 갈 수 있다고?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자신들이라고 가기 싫어서 안 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병규의 뒤에 선 샤바를 보고 제이콥은 곧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병규의 능력은 의심스럽지만 드래곤인 샤바가 그를 도와준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알았다. 하지만 조심해.”

  “네.”

  대답과 동시에 병규는즉시 탄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허공으로 솟았다.

  그가 여태 일행들에게 힘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혹시나 괴물 취급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행들은 그와 샤바의 정체에 많은 의심을 품고 있다. 만약 이 상태에서 능력을 발휘한다면 정말로 괴물 보듯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규는 힘을 아낌없이 끌어 모으며 결심했다. 설사 그 때문에 동료들에게 외면을 당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샤바 가자.”

  “네.주인님.샤바.”

  병규와 샤바는 쏘아진 화살처럼 몬스터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었다. 그 움직임이 얼마나 빨랐던지 사신들조차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너무 빠르잖아.”

  “젠장.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저 녀석. 마스터님만큼 괴물이야.”

  사신들은 분분히 몸을 날렸지만, 도저히 앞서 간 둘을 쫓아갈 수 없었다. 그때 샤바의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파고 들었다.

  “너희들은 여기서 사람들을 보호해. 샤바. 한 사함이라도 죽으면 주인님이 싫어할 테니깐 알아서 해. 샤바샤바.”

  “네. 마스터.”

  

  한 편 마그네트는 떠나는 병규와 샤바를 보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할까.”

  마음속에 무럭무럭 싹트는 호기심을 잠재우기 위해선 그들을 따라가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칫 동료 사신들과 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본능에 충실하기로 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의 몸이 스륵 사라졌다.

  그것은 텔레포트라 불리는 고위 마법이었다.

  병규와 샤바는 몬스터들의 머리를 타 넘으며 순식간에 일행들과 멀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더 이상 몬스터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을 수 없게 되었다.

  하늘에서 와이번이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병규는 어쩔 수 없이 지상으로 뛰어갈 수밖에 없었고, 이때 몬스터들이 꿀을 본 벌 떼처럼 달려들었다.

  그에게 달려든 몬스터들은 고블긴과 오크 등, 비교적 상대하기 쉬운 녀석들이었지만 그것도 수가 백 단위을 넘어가니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마음은 급한데 앞으로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때 호랭이가 나섰다.

  “내가 힘을 써 모마. 잠깐만 시간을 벌어라.”

  일전에 호랭이가 강혁한 도술을 부리던 것을 떠올린 병규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해요.”

  “믿어라.”

  자신 있게 대답한 호랭이는 웅얼거리며 도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번엔 꽤 대단한 술법인 듯, 주문을 외우는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

  “대기의 고동(鼓動)이여. 꿈꾸는 자의 날카로운 몽상(夢想)이여. 그대, 운명의 칼날이 되어 불순한 악의(惡意)를 갈라리 찢을지니. 풍인(風人)!”

  호랭이가 순간 호통을 치자, 머리 위에서 세찬 바람이 일어나더니 점차 모양을 갖추기 시갖했다.

  그것은 거대한 화살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화살은 결코 아니었다.

  대륙과 대륙을 넘어 무려5,000킬로미터를 날아간다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이 연상될 만큼 엄청난 크기의 화살이었던 것이다.

  “매, 매직미사일(Magic missile)?"

  하늘 높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그네트의 입에서 날카로운 교성이 솟았다.

  호랭이가 도술로 불러낸 것은 매직미사일이었다.

  하지만 저것을 과연 매직미사일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갈이만 무려 10미터다. 두께는 통나무를 연상케 할 정도로 두꺼웠다.

  매직미사일 가문에 여태 이렇게 무식한 놈은 처음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

  애완견이 마법을 쓰는 것도 황당한데, 정작 그 마법 자체도 엉뚱하기 그지없었다.

  마그네트가 엄청난 크기의 매직미사일 때문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뭐야. 풍인을 불렀는데 왜 이런 녀석이 튀어나오는 거야?”

  원래 호랭이가 시전한 것은 칼바람이라는 바람을 이용한 도술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그 성질 자체가 바람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보통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매직미사일은 자신의 마나를 압축하여 날리는 기술이다. 반면 호랭이가 방금 부린 도술은 바람의 술(術).

  두 개의 그 원리조차 상반되는 전혀 별개의 기술인 것이다. 그런데 칼바람을 불렀더니 전혀 엉뚱하게 무식하고 거대한 기(氣)덩어리가 눈앞에 떡 나타났으니, 호랭이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느 병규는 급한 마음에 호랭이를 독촉했다.

  “뭐 해요? 어서 쏴요!”

  ‘이 큰 녀석이 제어가 될까?’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호랭이는 앞을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발(發)!”

  뀌아아앙!

  매직미사일계의 이단아는 엄청난 크기만큼이나 날아가는 소리도 웅장했다. 게다가 파괴력또한 대한했다.

  당장 전면의 몬스터 수 십 마리가 서산 너머로 날아갔고, 근방의 몬스터들마저 후폭풍에 휘말려 현란한 묘기를 부리며 하늘을 날아야 했다.

  매직미사일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미쳐 날뛰던 몬스터들도 움직임을 잠시 멈추었을 정도였다.

  한순간 붉은 모래밭 위엔 서늘한 정적이 찾아왔다.

  “대,대단하다.”

  병규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기뻐했다.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엄청난 위력이었다.

  하지만 정작 호랭이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들며 속으로 절규하고 있었다.

  ‘이게 아니잖아. 이게. 뭐가 이렇게 무식하냔 말이야.’

  고상한 호랭이 신선님은 변종 풍인의 무지막지한 능력 때문에, 품위에 그만 손상을 입고 말았다.

 오늘 뒤집어쓴 코피가 더 많소이다

  누굴 죽여주길 원하오?

  샤바와 사신들의 격돌!

  그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사상 초유의 매직미사일

  그곳에서 넌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오우거의 힘, 그리고 핏빛 각성

  마왕을 먹겠다?

  인간이 아닌 넌 대체 뭐냐?

  떠나는 그를 위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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