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24/102)

   설마 절 잊으신 거예요?

 “가자.”

 약간의 해프닝 후, 간신히 분위기를 정리한 병규가 표정을 굳히며 검은 통로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여간 무지하게 급한 성격이야. 어이. 같이 가자.”

 뒤이어 이운석이 몸을 날렸다.

 “자, 잠깐만!”

 경애가 화들짝 놀라며 두 사람을 불렀지만 이미 구멍 속으로 사라진 뒤다. 그녀는 코끝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통로를 불안한 낯빛으로 쳐다봤다.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따라가자니 위험한 냄새가 솔솔 풍기고, 여기서 기다리자니 언제 또 그 검은 복면인들이 쳐들어올지 몰라 불안하기만 했다.

 “에잇. 몰라.”

 경애는 냄비를 엉덩이에 깐 채 검은 통로 안으로 뛰어들었다. 스케이트 타듯 미끄러져 내려간 지하에는 푹신한 매트가 깔려 있었다. 덕분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떨어졌어도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울렁거림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아고, 어지러워라.”

 데굴데굴 구르며 내려온 경애는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비틀거렸다. 눈앞이 빙글빙글 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때. 긴장한 표정의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내려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운석이 그녀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왜?’

 경애는 슬그머니 앞을 보았다.

 꽤 넓은 공간. 서른 명가량의 복면인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손에 들린 것은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 자동화기들.

 “허억.”

 경애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이리를 피해 도망쳐 들어간 굴속에서 호랑이를 만난 격이다.

 “흑흑. 하느님. 부처님. 알라~ 기타 등등 아리까리한 신님들. 왜 자꾸 절 괴롭히시는 거예요? 왜! 왜! 월세를 500원만 내고 산다고 질투하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못마땅한 거예요? 그럼 그냥 말로 하지. 이게 뭐예요. 흑흑.” 경애는 정말이지 눈앞에 신이 있으면 멱살이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총을 들이대고 있는 복면인들을 헤치고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난히 긴 두 팔.

 백원신이다.

 “어서 오시지. 무덤자리를 찾아온 불나방들.”

 백원신이 병규를 쳐다보며 잔혹한 미소를 입에 문다.

 “........”

 조소 섞인 백원신의 말.

 병규와 이운석은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자신들을 겨누고 있는 기관총이 영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인 걸?” 병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아주 산뜻해.”

 이운석 역시 무진장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 오빠.”

 경애가 병규의 팔을 붙들며 오들오들 떨었다. 공포에 질린 그녀의 얼굴. 물에 빠진 강아지처럼 발발 떨면서도 용케 비명까지는 지르지 않고 버틴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여자 같았으면 죽는다고 울고 불며 난리를 쳤을 텐데.

 “흐흐흐. 불쌍한 녀석들.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그 끝이 죽음이라니. 흐흐. 너희의 인생은 고달프고 허무하구나. 그나마 마지막을 이 몸이 손수 장식해 준다는 것을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백원신은 되지도 않은 말을 지껄이며 이죽거렸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 병규와 이운석의 상황이 꼭 그랬다.

 ‘퀴니와 누님이 보이지 않는다.’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도 병규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바퀴의 말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과 채드는 이곳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

 ‘안쪽에 있을까?’

 이 지하의 구조는 유선형으로 휘어져 있어 저쪽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직접 가볼 수밖에 없다.’

 병규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어차피 이대로 있어봤자 온몸에 수십 개의 숨구멍이 생길 뿐이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병규는 이운석을 쳐다봤다. 마침 이운석도 그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눈빛으로 주고받는 대화.

 씩.

 병규와 이운석의 입가에 동시에 번지는 웃음.

 “웃어? 흐흐. 그래야지. 당연히 내가 손수 손을 쓰는데....... 그렇게 웃어야지. 오냐. 그렇게 원하니 단박에 지옥으로 보내주마.”

 백원신의 기괴한 음성이 지하 공간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밀수입한 듯한 기관총을 일제히 병규와 이운석을 향해 겨누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병규는 자세를 천천히 낮추며 온몸의 힘을 하체로 모았다. 기회는 단 한 순간. 백원신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뛰어나갈 작정이다.

 “망설일 필요 없다. 너의 능력을 믿어라.”

 호랭이가 낮은 목소리로 응원한다. 역시 신선이라는 명함을 뺑뺑이 돌려서 취득한 건 아닌지, 일분일초를 다투는 순간에도 호랭이의 음성은 전혀 떨리는 기색이 없었다.

 꿀꺽.

 긴장때문인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마른침이 청둥소리만큼이나 크게 느껴진다.

 “발.......”

 마침내 백원신의 입이 열리고 병규와 이운석이 뛰어나가려는 그 때.....

 “꺄아악.”

 저 너머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익은 음성. 

 “누나.”

 “누님.”

 이운석과 병규의 시선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주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두 사람의 몸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이운석은 기듯이 바닥에 촥 깔리며 복면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병규는 한 바퀴 빙글 돌며 경애를 품에 안고 곧장 허공으로 치솟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복면인들이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당.

 총구에서 뿜어지는 불꽃들.

 매캐한 화약 냄새와 함께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벽면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그러나 이미 병규와 이운석은 그 자리를 뜨고 없었다.

 총알이 아무리 빠르다고는 하나 총을 쏘는 인간의 반사 신경은 결코 병규와 이운석의 속도를 따르지 못했다.

 “하하. 내가 너희 무리에 섞여 있는데..... 어떻게 할 거지? 그래도 총을 쏠 수 있을까?”

 어느 틈에 복면인들 무리에 몸을 숨겼는지 이운석이 조용히 중얼거린다. 놀란 복면인들은 급히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이운석은 한 마리 새처럼 붕 하고 허공으로 떠올랐고, 복면인들은 서로를 향해 총을 난사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투두두.

 “커억.”

 “큭.”

 매캐하게 피어오른 부연 연기와 함께 네 명의 복면인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해연히 놀라는 복면인들. 얄밉게도 허공으로 휙 하고 날아간 이운석은 다시금 그들 사이로 내려섰다. 반사적으로 치켜든 총.

 “호오. 또 총질을 하겠다?”

 놀란 복면인들은 반사적으로 총을 치웠다. 방금 전에 서로 상잔하는 동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잠깐의 주저함이 기린 이운석에게 마음껏 날뛸 여유를 준 꼴이 되고 말았다.

 “나. 이제 이 몸과 한번 놀아보자고.”

 호쾌한 외침과 함께 이운석의 몸이 폭풍처럼 휘돌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발그림자. 그것에 휩쓸린 복면인들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바닥에 찌부러졌다.

 천마등천.

 가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천마의 웅장한 자태다웠다.

 한번 날개를 편 기린 이운석은 결코 땅에 내려서지 않았다. 머리에서 머리로. 복면인들을 밟으며 퉁기듯 허공을 훨훨 날아다녔다.

 중구난방으로 터지는 비명들.

 복면인들은 날아다니는 재앙을 향해 미친 듯이 기관총을 갈겼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총탄. 그러나 이운석은 허깨비처럼 유유히 총탄의 빗속을 피해 다녔다.

 거센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총탄이 점점 가늘어지더니 마침내 공간에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실탄이 바닥난 것이다.

 그제야 복면인들은 알 수 있었다.

 기린의 거대한 그림자가 죽음의 사신처럼 그들의 머리에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네 이놈. 게 섯거라.”

 이운석이 복면인들 사이로 파고들어 한바탕 아수라장을 연출하고 있을 때, 백원신은 벽을 타고 달리는 병규를 뒤쫓았다. 첫인상이 워낙 강렬했던 탓이다.

 노기를 충전하며 병규를 쫓던 그.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입이 덜컥 벌어졌다.

 먼지구름을 부옇게 일으키며 달리는 병규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저만치 멀이지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이런 터무니없는 스피드가........”

 벌려진 입이 다물어질 줄 모른다.

 그 역시 경공을 배운 몸. 스피드라면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병규의 움직임은 이미 빠르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 있었다.

 그러나 경악도 잠시. 그의 두 눈에 오기가 치솟는다.

 “네 녀석의 살점을 모두 뜯어먹고 말겠다.”

 백원신은 살의를 곱씹으며 병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운석에게 뒤를 맡기고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몸을 날린 병규는 반대편 구석에서 몇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꽉 잡아.”

 경애에게 경고한 병규는 급히 발을 멈춰 세웠다.

 관성을 무시한 갑작스런 급정거.

 “꺄악.” 병규의 목에 매달린 경애는 비명을 지르며 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미안해. 너무 급해서.”

 그녀를 붙잡아주며 병규가 사과했다.

 “괘, 괜찮아요.”

 비틀 비틀거리면서도 경애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속으로 겁이 있는 대로 나 있었다.

 ‘무, 무서웠어.’

 솔직히 복면인들들이 총구를 들이댔을 때보다 병규에게 안겨 천장을 바람같이 내달렸을 때가 더 무서웠다.

 마치 무제한의 속도로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았다. 레일을 벗어나 은하철도 999에 도전하는 폭주 롤러코스터!

 병규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찾던 사람들이 모두 여기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상태가 가히 좋지 않았다.

 채드는 피바다 속에 누워 생사를 알 수 없었고, 이한영 역시 상의가 피로 물든 채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든 듯 두 다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금발의 소녀, 퀴니는 두 팔을 벌린 채 이한영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한영에게 쏟아질 모든 공격을 자신이 대신 받겠다는 듯.

 뚝뚝.

 분하고 억울한 듯 굵은 눈물방울이 턱 아래로 점점이 떨어지고 있었다.

 병규는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퀴니야.”

 조용한 부름. 그를 본 퀴니는 눈을 둥그렇게 Em더니 어미를 본 아기사슴처럼 쪼를 그의 발치에 달려왔다.

 “무서웠구나?”

 퀴니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소매로 눈물을 닦더니 이한영과 채드를 손으로 가리킨다.

 “언니 아파. 부하 안 움직여.”

 “그래.”

 병규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에 얼룩진 눈물자국을 닦아주었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 영문도 모르고 매번 힘든 일에 말려들게 된다. 얼마나 힘들까. 가스펠의 총수가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닐 텐데.

 “조금 기다려줄래? 잠깐 정리해야 할 일이 있어.”

 퀴니는 착한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쁜 사람 혼내줘.”

 “그래.”

 퀴니를 꼭 안아준 병규는 돌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조용히 앞으로 나선 그는 스산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그의 차가운 시선이 향하는 곳. 두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한 명은 청색 도포를 걸친 무심한 표정의 사내였고, 다른 한 명은 다름 아닌......

 “발칸!”

 그의 이름을 부르짓는 병규의 전신에서 살기가 뻗친다.

 “흐흐. 나에 관한 얘길 들은 모양이군. 애송이.”

 오로치의 몸을 잠식한 발칸은 예의 차가운 미소를 보였다.

 전혀 다른 몸에 전혀 다른 얼굴. 그러나 병규는 놈의 비릿한 웃음에서 발칸의 잔혹한 성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꼬일 대로 꼬인 인연. 그러고 보면 이상할 정도로 놈과는 악연으로 꼬여 있었다.

 “오늘 여기서 네놈과의 모든 악연을 끊고 말겠다.”

 병규는 증오 가득한 눈빛을 빛내며 발칸에게로 한발 한 발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 하얀 그림자 하나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순서가 엉망이군. 내가 먼저다.”

 허겁지겁 달려온 백원신이 병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두 팔을 축 늘어뜨린 그의 두 눈에서 섬뜩한 광기가 보였다.

 병규는 잠시 차가운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곧 다시 발칸을 향해 발을 옮긴다.

 촤악.

 물먹은 회초리가 바람을 가르는 듯한 예리한 소음.

 팍!

 병규의 목덜미에 붉은 손자국이 생겼다.

 “흐흐흐. 난 태어날 때부터 팔이 유달리 길었다. 이런 긴 팔로 구사하는 권법은 가히 무적이지. 기억해 둬. 이제부터 네놈의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어 줄 테니까.”

 백원신은 기형적으로 길어 보이는 긴 팔을 척 들어 보이며, 자랑하듯 말했다. 병규는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

 “긴 팔?”

 “크흐흐흐흐.”

 “나보다..... 길어?”

 “뭐?”

 백원신은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보다 길어?’

 병규의 팔은 딱 표준 정도의 길이였다. 그런데 손목이 무릎에 닿아 있는 백원신과 감히 비교하려 들다니. 누가 봐도 황당한 대꾸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순간.

 촤아악.

 득의양양하던 백원신이 입을 쩍 벌렸다. 병규의 손끝. 그곳에서 푸르스름한 요기가 한 자나 벋어 나왔던 것이다.

 “무, 무슨......”

 너무도 놀란 백원신은 헛바람소리만 계속 토해 냈다. 병규가 다시 물었다.

 “나보다 길어?”

 “.......”

 백원신은 대답하지 못했다. 온몸의 솜털이 모조리 치솟고, 턱이 덜덜 떨렸다. 병규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가공할 만한 살기. 이제야 그것을 느낀 것이다.

 백원신은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때 조용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이봐. 아무리 생각해도 넌 번지를 잘못 찾은 것 같아.”

 이운석이었다. 깜짝 놀란 백원신. 주위를 둘러보니 기관총을 들고 그를 상대하던 수하들이 모조리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저 친구는 다른 사람에게 볼일이 있는 것 같으니까. 넌 나랑 놀자고.”

 헛바람을 삼키는 백원신에게 빙그레 웃어 보이는 이운석.

 백원신을 지나쳐 성큼성큼 걸어가던 병규. 이번에는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시하고 지나가려던 병규는 그에게서 뻗어 나오는 날카로운 기세에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췄다.

 이대로 가면 죽는다.

 사내의 차가운 시선에서 짙은 살기를 감지한 것이다.

 피해갈 수 없음을 느낀 병규는 그를 향해 자세를 바로잡았다.

 스르릉.

 사내 역시 검을 뽑아들었다.

 “나는 무당의 백택이다. 네 묘비에 새길 말이나 해 봐라.”

 자부심 강한 백택의 말. 그러나 병규는 그의 어줍잖은 장단에 놀아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발칸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묘비가 필요한 사람은 내가 아니지.” 병규의 신형이 한 줄기 질풍처럼 백택을 향해 몰아쳤다.

 ‘강하다.’

 병규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백택의 실력은 짐작했던 것 이상으로 대단했다.

 백원신은 말할 것도 없고, 관절기를 사용하던 마복보다도 몇 수위의 실력이었다.

 끊임없이 공격을 퍼부었지만. 그의 부드럽고도 중후한 기술에 번번이 막혔다.

 백택은 공격력이 뛰어난 무인은 아니다. 하지만 허점이 없다.

 어디를 공격하든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의 검에 의해 모두 퉁겨졌다.

 상대의 힘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상승의 절학.

 어떤 수단도 통하지 않는 상대와 맞닥뜨린 병규는 적이 당황하였다.

 어느덧 거칠어진 숨.

 “병규야. 일단 물러나자.”

 호랭이는 우선 그를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니지만, 체력의 소모가 적지 않다. 이대로 가다가는 발칸을 상대하기도 전에 지칠 게 뻔하다.

 그러나 병규는 물러서지 않았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채드와 이한영의 상태가 좋지 않다. 빨리 이곳을 정리하고 그들을 치료해야만 한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백택을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백택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무공의 고수. 아무리 빠른 겅격도 춤을 추듯 원을 그리는 그의 검술에는 먹히지 않고 있었다.

 마복의 경우처럼 그의 무공을 흉내 내보려 했지만, 내공심법을 모르고 있던 병규로서는 그의 무공을 제대로 카피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상승의 절학들은 그에 맞는 내공심법이 있어, 이를 익히지 않으면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병규는 어디까지나 상대의 동작을 흉내 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내공심법까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제대로 된 공격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어쩔 수 없지.’

 병규의 눈빛이 변했다. 동시에 그의 손끝에서 요수의 발톱이 튀어나왔다. 요수의 발톱은 살기가 너무 강해서 사람을 상대할 때는 사용을 자제했다. 실수로 휘두른 공격에도 자칫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가 백탄처럼 강한 자라면 어쩔 수 없는 일. 병규는 생각을 바꾸었다.

 ‘속전속결.’

 병규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고속으로 이동한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백택의 코앞.

 위협을 느낌 백택은 크게 한 걸음 물러서며 일검을 찔렀다.

 슈슉.

 채찍처럼 휘어지다 돌연 죽창처럼 깊숙이 찔러오는 신묘한 검술. 그러나 병규는 미간을 찔러오는 검을 향해 태연히 요수의 발톱을 휘둘렀다.

 찡!

 금속이 절단 나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백택의 검이 다섯 토막으로 동강이 나면서 투두둑 떨어졌다.

 “!”

 놀란 백택의 눈이 흡떠진다.

 그가 놀라는 순간, 빈틈을 노린 병규가 손날로 그의 뒷목을 후려쳤다. 백택의 몸이 빳빳하게 경직되더니 곧 묵은 쌀자루처럼 허물어졌다.

 간신히 백택을 처리한 병규는 조용히 시선을 전면으로 옮겼다.

 “좋아 아주 교활하군. 맘에 들어. 하하하.”

 붉은 핏덩이을 씹어 먹고 있던 발칸이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병규의 미간이 심하게 좁혀진다.

 발칸이 씹고 있는 핏덩이. 병규는 단박에 발칸이 먹이치우고 있는 게 뭔가를 눈치 챘다.

 사람의 심장이다.

 “하필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지?”

 발칸은 병규의 물음에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의연하게 대꾸한다. 그리고 들고 있던 심장을 살짝 들어 보인다.

 “마나가 있기 때문이지.”

 “마나?”

 “아하! 너희 말로 표현하면 기? 크크크, 아니 생명의 원천이라고 해야겠군.”

 “........?”

 “흐흐.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는 모양이군 흠. 그래. 이 녀석의 뇌에서 뽑아낸 정보 중에 가이아 이론이라는 것이 있더군. 지구라는 행성 자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혹시 알고 있나?”

 “몰라.”

 “몰라도 상관없어. 그다지 어려운 얘기도 아니니까. 하여튼 그 가이아 이론에 따르면 지구상의 생물과 환경은 유기적인 연관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란 거지.”

 발칸은 병규를 상대로 대단한 이론을 설명하려는 듯 뜯어먹고 있던 심장을 잠시 잊은 듯했다.

 “그런데 말이야. 그런 지구가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왜 굳이 자신의 몸뚱이 위에 생명체를 키우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나?

 육지며, 바다며 지구 위에는 무수한 생물이 살고 있지. 그리고 생물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오염시키지. 지구 입장에서 보면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요염배출원에 지나지 않다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지구는 왜 굳이 그런 쓰레기들을 번식시킨다고 생각하나?”

 “......마나?”

 “빙고. 바로 그거야. 지구상의 생물체는 모두 마나라고 하는 에너지를 품고 있지.” 병규가 대충 그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자 발칸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심장을 입에 가져갔다.

 “아! 모든 행성이 그런 것은 아니야. 보통 마나는 자연계에 두루 퍼져 있거든. 유독 이곳 지구에서만은 자연계보다 생명체 내부에 저장된 마나의 양이 크더군. 그게 효율적일까? 아니면 이곳을 창조한 신의 의지가 그런 것일까? 그건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구에 있어 생물들은, 일종의 에너지 저장 창고쯤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지.

 쉽게 설명하면 건전지? 그 정도. 근래 들어 잦아진 자연재해도 일종의 인구 증가에 따른 에너지 과대공급, 즉 에너지 폭주라고 할 수 있지.“

 병규는 발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정체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병규의 반응에 발칸은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가이아 이론으로 생각해보면 이 지구라는 생명체는 참으로 오묘해. 자연재해를 일으켜서 스스로 에너지의양을 조절하기도 하고 말이지. 오히려 우둔한 인간들보다 훨씬 똑똑한 것 같거든.”

 약간의 괴기스러움까지 풍기고 있는 발칸은 병규에게 있어서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존재로까지 비춰지고 있었다.

 “....... 마치 넌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군.”

 “........ 인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지. 아주 오래전에 버렸거든.”

 “........”

 “...... 크흐흐.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아.”

 발칸의 괴이한 웃음소리. 발칸은 들고 있던 핏덩어리를 내려놓았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잖아?”

 츄아악.

 순간이었다. 발칸의 두 손에서 요수의 발톱이 치솟았다. 폭풍처럼 밀려오는 스산한 요기.

 “너와의 악연을 끊어주지.”

 매끈한 얼굴 가득 용솟음치는 죽음의 기운.

 “그래. 나도 기다렸다.”

 병규 역시 요수의 발톱을 뻗쳤다. 그의 얼굴에서 적의가 활활 타올랐다.

 ‘이 녀석 호흡이 엉망이군.’

 호랭이는 병규가 걱정되었다. 많은 적을 상대하느라 체력 소모가 많아진 병규였다. 그에 반해 발칸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요기를 뿌리고 있었다.

 힘의 차이가 너무 크다.

 “흐음.”

 차분히 호흡을 조절하던 병규의 눈빛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서로를 노려보던 병규와 발칸. 어느 순간 휙 하는 바라소리와 함께 그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칭. 찌킹. 까앙.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찢어질 듯한 날카로운 소음과 파란 불똥만이 실내 곳곳을 수놓고 있었다.

 혈투의 중심에서 바람이 솟아나 주위 배경을 엉망으로 허물어트린다.

 “대단하다.”

아운석은 멍한 눈으로 감탄성을 터트렸다. 병규와 발칸의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기린이 수호신인 그조차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다.

 “으으. 대단한 실력이군.”

 백원신의 얼굴 역시 하얗게 질려버렸다.

 여태 그는 발칸을 단순한 살인마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와는 배교도안 될 만큼 대단한 실력자가 아닌가.

 치기이이잉. 차창.

 소음이 계속되었다.

 요수의 발톱이 부딪힐 때마다 무시무시한 요기가 사방으로 방사되었다. 콘크리트 벽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고, 바닥이 푹푹 꺼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허공에 뿌려지는 새빨간 핏물.

 쾅 하는 폭음과 함께 병규가 핏물을 줄줄 흘려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윽.”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진득한 신음.

 “병규야.”

 “변기!”

 냄비를 들고 발발 떨던 경애가 정신없이 그에게 뛰어왔다.

 “오빠. 오빠.”

 그녀는 피를 뒤집어쓰고 쓰러진 병규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뒤늦게 이운석과 퀴니가 달려와 그의 상처를 받쳐 들었다. 병규의 전신은 핏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쿨럭.

 거친 기침.

 기침을 할 때마다 한 움큼씩 핏물을 토했다.

 “병규야!”

 호랭이는 병규를 한 번 불러보더니, 그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자 황급히 어디론가 달려갔다.

 “발칸은?”

 문득 이운석은 발칸의 상태가 궁금했다.

 “맙소사.”

 발칸은 멀쩡하게 두 바로 서 있었다.

 부상이라고는 오른쪽 어깨에 찍힌 지저분한 손자국이 전부였다. 병규는 줄기차게 그의 어깨를 노렸지만 결국 높은 실력의 벽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크크. 고작 그 정도였나?”

 병규를 내려다보는 발칸의 입가에 실망의 빛이 역력하다.

 어깨만 노리던 놈의 공격.

 바보 같다.

 자신 같으면 목이나 심장을 노렸을 것이다.

 “크흐흐. 아니야. 녀석이 약한 게 아니다......... 내가 강해졌어.”

 그는 요수의 발톱을 들여다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몸이 두 동강 나고, 구사일생으로 오로치의 몸을 얻게 되었다. 수사노오의 감시를 피하며 조심조심 민간인을 납치하여 심장을 먹었다. 굴욕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가. 그러나 마침내 힘을 모아 꼴 보기 싫던 수사노오와 애송이 녀석을 처치한 것이다.

 가쁜 숨을 헐떡거리는 병규를 보니 짜릿한 쾌감이 든다.

 “크크크. 이제 끝장을 내 볼까?”

 발칸은 득의의 미소를 띠며 앞으로 나섰다.

 “이 녀석!”

 병규를 안고 있던 이운석이 분노를 터트리며 발칸에게 달려들었다.

 “놈. 네 상대는 나다.”

 백원신이 음침한 미소를 띠며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버럭 고함을 지른 이운석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하공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발그림자. 백원신은 대경실색하며 두 팔을 채찍같이 휘두르며 대응했지만 이운석의 발이 훨씬 빨랐다.

 둔탁한 소음이 터지며 백원신이 콰당 넘어졌다. 그 위를 이운석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넘어갔다.

 “죽어라!”

 한 줄기 광풍처럼 몰아치는 이운석의 치밀한 공격. 그러나 발칸은 흉측한 미소만 머금고 있었다.

 “기린이라고 했던가? 전과 달라진 것이 없군. 발전성 없는 녀석.”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진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조소.

 “죽어도 그런 소릴 지껄일 수 있는지 보자.”

 날개를 활짝 펼 천마의 분노.

 바늘처럼 세밀하고, 해머처럼 묵직한 공격들.

 발그림자가 뻗어나갈 때마다 성난 바람이 고함을 지르고, 뿌연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그러나 그 모든 공격은 발칸의 모습이 휙 하고 사라지자마자 모두 허무로 돌아갔다.

 “넌 너무 시끄러워.”

 어느새 이운석의 등 뒤로 돌아간 발칸.

 귓가를 간질이는 서늘한 음성.

 차가운 전율이 허리를 지나 뒷골을 강타한다. 그리고 그런 전율이 채 꺼지기도 전, 푸욱 하는 비현실적인 파음과 함께 이운석의 오른쪽 가슴을 뚫고 요수이 발톱이 튀어나왔다.

 “허. 그래도 반항은 좀 하는군.”

 바들바들 경련을 일으키는 이운석을 내려다보며 발칸이 이죽거렸다.

 마지막 순간. 이운석은 몸을 비틀어 심장을 노린 일격을 피한 것이다. 그러나 가슴을 관통한 부상은 치명적이었다.

 “쿨럭.”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핏덩이가 토해진다. 폐에 피가 찬 것이다. 발칸이 슬쩍 밀자 힘없이 쓰러진다.

 “기린이 모든 긴 털 가진 짐승의 선조라고 했던가? 그럼 그 기린을 발밑에 둔 나는 뭐지? 모든 생명의 조상? 크흐흐흐.”

 이운석의 머리를 바로 밟은 발칸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 장내의 모든 사람들은 그가 뿜어내는 엄청난 요기에 하나같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 꼴을 보고도 과연 사람들이 잘 생겼다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까?”

 발칸은 이운석의 머리를 밟고 발에 점점 힘을 실었다.

 “크윽.”

 신음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그 순간.

 병규의 피 묻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퀴니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추악한 미소를 그리는 발칸을 매섭게 노려보던 그녀는 하얀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았다.

 조그만 두 손으로 그려지는 복잡한 수인.

 곧 그녀의 작은 입에서 앙칼진 음성이 터져 나왔다.

 “매직미사일!” 그녀의 머리 위에서 십여 개의 빛줄기가 생성되었다. 그렇게 생긴 빛줄기는 그녀의 호령에 따라 발칸에게로 쏘아졌다.

 “흥.”

 발칸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부웅 하며 요수의 발톱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날아가던 매직미사일 들이 무참하게 박살나 버린다.

 “그래. 널 잊고 있었구나.”

 발칸은 신경질적으로 이운석을 차버렸다. 그리고 살벌한 요기를 활활 불태우며 퀴니에게 걸어갔다.

 발칸의 기세에 눌려 퀴니가 주춤 물러선다. 그러나 곧 입술을 깨물며 두 손을 휘저었다.

 “그리스.”

 바닥의 마찰력을 제로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 그러나 어렵게 발현된 마법도 고속으로 달리는 발칸을 잡을 수 없었다.

 “흐흐. 넌 쓸모가 많아. 그래서 죽일 수는 없지. 하지만 조금 괴롭혀주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그가 막 퀴니의 멱살을 움켜잡으려 할 때였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날아든 냄비가 발칸의 머리를 때렸다.

 깡! 하는 쇳소리.

 병규를 끌어안고 있던 경애가 던진 것. 고속으로 이동하는 그를 맞추다니. 운이 좋았던 것일까?

 “........”

 발칸은 퀴니를 쳐가던 것도 잊고 경애를 노려보았다.

 아파서가 아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방해에 기분이 상한 것이다.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쓸모없는 계집쯤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꽤 예쁜 얼굴이군. 네 심장도 네 얼굴만큼 예쁠까?” 입안에 침이 가득 찬다. 힘을 모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심장을 먹게 됐지만 어느새 그는 식인에 맛을 들이고 말았다.

 “크흐흐.”

 발칸은 게걸스런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경애에게 걸어갔다.

 “병규야. 어서 일어나봐.” 허겁지겁 달려온 호랭이가 병규를 불렀다. 어디서 물을 잔뜩 뒤집어썼는지 몸을 털자 굵은 물방울이 병규의 몸 위로 후두둑 떨어진다.

 호랭이는 내뺀 것이 아니었다. 병규의 상태가 심상치 않자 나름대로 방편을 생각해 낸 것이다.

 “경애와 퀴니가 위험하다. 빨리 일어나!”

 번쩍.

 신음하던 병규가 눈을 떴다.

 마지막 경련을 일으키던 그가 몸을 부스스 일으킨다.

 상처에서 울컥울컥 배어 나오는 핏물.

 고작 호랭이 몸에 묻은 적은 양의 물로는 병규의 상태를 온전하게 회복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미칠 것 같은 통증을 무릅쓰고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서 사람이, 그것도 친한 사람들이 죽는 것은 도저히 볼 수 없다.

 경애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던 발칸이 쓰윽 병규를 쳐다본다. 다 죽어가던 병규가 일어났다는 것에 놀라는 듯.

 “흐흐. 명을 재촉하는구나. 고통 없이 죽여줄 생각이었는데.”

 “널...... 막을 거야.”

 병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점점이 떨어지는 핏방울.

 “오빠.”

 경애와 퀴니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걷는 것조차 힘든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죽을 것 같은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몸뚱이를 이끌며 그녀들을 구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경애는 눈물이 흘렀다.

 피를 흘리며 질척질척 걸어오는 병규의 모습.

 뭉클.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입술이 바르르 떨려온다. 백지처럼 하얗게 바래지는 머릿속.

 어느새 그녀의 두 손은 가슴 앞에 모여 있었다.

 ‘제발.........’

 종교도 없던 그녀가 지금 두 손을 꼭 모은 채 신을 향해 간절히 빌었다.

 ‘그를 보호해 주세요.’

 경애의 턱 아래로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정 원한다면 끝장을 봐야지.”

 발칸은 병규를 향해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부우욱.

 아래로 축 늘어트린 그의 양손 끝으로 요수의 발톱이 요사스런 요기를 내뿜는다.

 병규는 으스스한 살기를 머금고 다가오는 발칸을 초점 없는 눈으로 응시했다.

 곧이라도 꺼질 듯 흔들리는 흐릿한 눈동자. 부들부들 떨리는 어깨.

 동상에라도 걸린 것처럼 파리한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힘없는 목소리.

 그럼에도 그는 발칸에 대한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내....... 사람들을....... 건들지....... 마.“

 부욱.

 병규의 오른손에서 요수의 발톱이 치솟는다.

 한쪽 손에서만 뻗어 나온 요수의 발톱. 그마저 불안정하게 떨린다.

 병규는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받쳐 들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손을 휘두를 수도 없을 것 같다.

 “널..... 죽일 거야.”

 크게 떠지는 병규의 두 눈. 그 순간 요수의 발톱이 날카롭게 뻗쳤다.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처절한 외침과 함께 그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크게 맴을 돌았다. 영혼을 불태울 듯한 기세.

 부앙.

 요수의 발톱이 비통하게 울부짖는다.

 “하하하. 최후의 발악이냐?”

 발칸은 게걸스럽게 웃으며 병규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양손에서 위풍당당한 기세로 솟구치는 요수의 발톱.

 병규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요수의 발톱과는 기세부터가 전혀 달랐다.

 상대가 안 되는 싸움. 이미 승리를 느낀 발칸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순간.

 덜컥.

 그의 오른쪽 어깨가 빠져버렸다.

 “뭣?!”

 병규의 공격이 뒤늦게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처음 발칸과 맞설 때, 병규는 요수의 발톱으로는 도저히 그에게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요수의 발톱은 기력으로 짜내어 만들어낸 요기의 정수.

 병규는 여태 많은 싸움으로 체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생각한 것이 마복에게서 얻는 관절기였다. 어떻게든 발칸의 관절 한 군데를 뽑아서 불편하게 만들면 지친 상태에서도 상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예상보다 발칸의 힘이 월등하여 결국 실패하였다. 그런데 그때 준 충격이 뒤늦게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관절이 빠지자 오른손에서 튀어나온 요수의 발톱이 퍽 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발칸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흐흐흐. 하지만 왼손은 어떻게 할 테냐?”

 왼손에서 뻗어 나온 요수의 발톱이 병규이 목을 쳐간다.

 용솟음치는 그 기운.

 병규가 힘없이 휘두르는 요수의 발톱은 그의 것에 비해 너무 초라했다.

 그때, 퀴니의 한 마디가 날아들었다.

 “그리스!”

 “뭣?”

 갑자기 마찰력이 제로가 되어버린 발밑. 발칸은 순간 휘청하고 미끄러져 버렸다.

 그 순간 병규의 투혼을 실은 파란 그림자가 발칸의 허리를 훑고 지나갔다.

 스걱!

 몸서리처지는 절삭음. 그 뒤를 잇는 처절한 비명소리.

 "크아아아악.“

 발칸의 허리에 가는 선이 그어지더니 곧 피분수가 뿜어졌다.

 쩌적 하는 소음.

 퉁 하고 떨어지는 상체. 뒤이어 무너지는 그의 하체.

 "쿨럭쿨럭.“

 하체가 떨어져 나간 발칸의 입에서 피거품이 밀려나왔다.

 또 당하다니.

 억울했다. 이제 모든 염원이 이루어질 순간이었는데.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다니.

 “흐흐흐.”

 비통한 흐느낌.

 가슴을 헤집어 오는 고통.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실감.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하지만...... 흐흐흐. 혼자 죽을 수는 없지.........’

 이들 모두를 저승의 동반자로 삼고 싶다.

 ‘........어떻게?...... 그래!’

 문득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

 모든 것을 파멸시키던 저주받은 게이트!

 열이나 되던 키메라를 한순간에 삼킨 지옥의 아가리.

 ‘차원의 문!’

 발칸은 입으로 손목을 물어뜯더니,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바닥에 기이한 문양을 그렸다.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발칸은 이를 악물었다.

 피로 그린 마법진이 완성되자,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주문을 외웠다. 잠시 후, 마법진에서 십자가 모양의 열쇠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파멸의 열쇠라 불리는 것으로 단 한 번 차원의 문을 열 수 있게 해주는 기물이었다.

 이드라센을 떠날 때, 마법사들이 준 선물. 그가 힘을 얻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이 영영 사라진 지금. 이 열쇠는 그의 복수를 위해 빛을 발하게 되었다.

 “모두 죽자꾸나. 크흐흐흐흐.”

 기괴한 미소를 머금은 발칸은 쇳조각을 허공으로 집어던졌다.

 “회색빛 사신의 그림자 속에서 태어난 죽음의 방주여. 모든 탄생과 사멸의 어머니 혼돈이여. 이제 파멸의 열쇠를 바치나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연옥의 문을 여소서.”

 쪼아악!

 쇳조각에서 빛줄기가 새어나오더니 허공에 시커먼 줄 하나가 쭉 그어졌다.

 천장에서 내려온 거미줄처럼 가늘던 그 검은 선.

 어느 순간 외눈박이 괴물의 눈동자처럼 쩍 열렸다.

 몸서리 처지는 기운이 사방으로 뻗치고, 주위의 기물이 하나씩 회색빛 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공간!”

 호랭이는 경악했다.

 “아...... 공간?”

 쓰러진 병규가 더듬더듬 물었다. 그는 회색빛 공간에서 뭔가 그리우면서도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호랭이가 초조한 음성으로 외쳤다.

 “차원의 틈새 같은 거다. 나도 자세히는모르지만, 저것이 열리며 주위이 모든 것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들었다.”

 호랭이이 말처럼 주위를 끌어들이는 기운이 점점 강해졌다.

 엄청난 흡입력. 이한영과 채드를 안아든 퀴니가 허공에 붕 떠 버린다. 경애가 급하게 그녀를 잡았지만 그녀 역시 발이 질질 끌렸다.

 “닫을 수...... 있는...... 방법은?”

 병규가 다시 물었다.

 “...... 없다. 강한 힘으로 아공간을 부수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불가능해. 아공간을 부수는 순간 그 사람은 영겁 동안 고통 받을 지옥으로 빨려 들어갈 테니까.”

 “부수면..... 된다라.”

 병규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비틀비틀 몸을 일으킨 그는 주위를 둘러보앗다.

 핏물 속에 누워 있는 채드. 혼절한 이운석과 이한영. 퀴니를 안고 있는 경애의 비명소리.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굳힌 병규는 호랭이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호랭이. 그동안 고마웠어요.”

 그의 얼굴에 맺히는 처연한 미소.

 “무, 무슨 소리야. 갑자기.”

 “...... 모두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설마? 안 돼!”

 병규는 고함을 지르는 호랭이를 경애에게로 휙 던졌다. 그리고는 흉악한 회색빛으로 번들거리는 아공간으로 뛰어들었다.

 “내 몸을 줄 테니..... 그 더러운 아가리를 닫아!”

 병규는 발악하듯 아공간을 향해 최후의 힘을 짜낸 요수의 발톱을 휘둘렀다.

 슈아악.

 병규의 몸이 아공간 안으로 묻혀 버렸다.

 “나쁜 자식. 날 버리고 가? 절대로 용서 못 해!”

 호랭이가 악을 지르며 껑충껑충 아공간으로 달려들었다.

 슈앙.

 빛 무리와 함께 호랭이의 모습도 사라졌다.

 그리고.......

 “주인님. 샤바.”

 파다다다 하는 요란한 소음과 함께 바퀴벌레 왕자마저 아공간을 스며들었다.

 “변기. 변기!”

 퀴니 역시 뛰어가려고 했지만 경애가 꼭 붙든 손을 놓지 않았다.

 “가지 마. 가면 안 돼. 우리 때문에 오빠가.... 오빠의 노력을 모두 수포로 만들 거야? 헛되이 버릴 거야? 안 돼. 제발.......”

 츠츠츠츠츠츠.

 세 생명을 빨아들인 아공간은 길게 진동을 하더니 혼돈에 빠진 입구를 서서히 닫았다.

 “크으으으으윽!”

 아공간으로 스며든 병규는 전신이 뜯겨지는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전신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모든 의식이 붕 떠올랐다.

 흐릿해지는 의식 속으로 퀴니의 기도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벨로로폰을 보호해 주세요.”

 ‘베, 벨로로폰?’

 대체 누구일까.

 묘하게 가슴을 울리는 이름이다.

 그러나 병규의 의식은 순백의 공간 속에서 하얗게 탈색되어 버렸다.

 “크으으윽. 놈. 끝까지! 끝까지!” 병규가 빨려 들어간 곳을 손가락질하며 발작하던 발칸은 충혈된 눈을 뜬 그대로 굳어버렸다.

 모든 것이 숨을 죽인 적막의 공간. 두 여자의 흐느낌 소리만이 남겨졌다.

 “흑흑.”

 “벨로로폰. 벨로로폰.”

 뒤늦게 자영을 비롯한 특재대의 요원들이 도착했을 때, 병규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자영은 급히 부상자들부터 조치했다. 그녀의 빠른 대처로 채드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운석과 이한영은 기절하기는 했지만 그리 큰 부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상이 없었던 경애와 퀴니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듯 눈물만 흘렸다.

 그들을 모두 수습한 자영은 뒤늦게 쓰러진 삼룡회의 요원들을 잡아들였다. 그런데 그들 중엔 백원신과 죽은 발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중요한 일이었으나 자영은 그들에 대해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사라진 병규를 찾는 일 자영과 특재대는 그의 수색에 총력을 기울였다.

 ‘혹시 병규가 엉뚱한 곳에 떨어진 것은 아닐까.’

 한 가닥 희망을 품은 자영은 군경의 협조를 엊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그의 소식은 접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버려진 건물의 지하에 한 인물이 나타났다.

 손시계를 손에 든 그 인물은 아공간이 열렸던 그 장소에 발을 멈췄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핸드폰으로 연락을 넣었다.

 “안세준입니다. 막내도련님의 흔적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원을 보강하여 수색을 계속하겠습니다.”

                         *           *            *

 ‘파란 하늘.’

 눈을 뜨고 병규가 처음 본 것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었다. 한참을 멍한 눈으로 하늘을 보던 그는 피식 실없이 웃었다.

 ‘죽지 않은 모양이구나.’

 모든 것이 일그러진 미쳐버린 공간.

 호랭이는 아공간에 빨려 들어가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고통을 영원토록 받는다고 했다.

 과연 그 순간이 고통은 엄청났다.

 이렇게 영원토록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죽어라 비명을 지르며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파란 하늘. 다행이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

 손을 움직여 보았다.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더듬어 보았다.

 발칸과의 혈투에서 입었던 상처들. 모두 말끔하게 치유돼 있었다.

 ‘어떻게?’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찰랑찰랑하는 느낌이 느껴졌다.

 ‘물?’

 운 좋게 물에 떨어진 모양이다.

 그제야 병규는 흉터가 만져지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스크래그에게서 훔쳐낸 재생력.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던 병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파란 호수가 보인다.

 바닥까지 훤하게 들어댜보이는 무척 맑은 호수.

 그는 호숫가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운이 좋았구나.’

 병규는 피식 웃었다. 발칸과 싸웠을 때, 그는 극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웬만해서는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들었을 터.

 다행히 호수에 떨어져 목숨을 구한 것이다.

 문득 병규는 가슴 아래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고개를 내렸다.

 하얀 털북숭이.

 “호랭이!”

 병규는 호랭이를 들어 올리며 반갑게 외쳤다.

 반가움이 왈칵 밀려왔다.

 혼자 죽겠다고 경애에게 던졌는데, 고맙게도 호랭이는 그를 따라 아공간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음음.”

 병규가 계속 흔들어대자 호랭이가 간신히 눈을 떴다.

 “어?”

 눈앞에 흐릿하게 보이는 병규를 끔뻑끔뻑 보던 호랭이는 돌연 그의 손을 꽉 물어버렸다.

 “아야야. 왜 그래요, 호랭이?”

 “몰라서 물어? 앙? 지 혼자 죽겠다고 감히 날 버려? 내가 그렇게 의리 없는 놈으로 보였나? 앙?”

 “아야야. 미안해요.”

 병규는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을 부렸다.

 “흥.”

 호랭이는 못 이기는 척 콧바람을 불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냐? 아공간은 아닌 것 같은데.”

 “글쎄요.”

 병규와 호랭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생전 처음 보는 나무들이 호수 주변을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다. 

 끼루룩 날아가는 새들도 요상하게 생겼다. 공작 같은 꼬리에 온몸이 무지개 색으로 반짝거리는 새라니. 들어본 적도 없다.

 “병규야 저거 뭐냐?” 호랭이가 호수 저편을 가리켰다. 한 무리의 지승들이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또한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모든 게 생소한 세상.

 “뭐냐. 여기는?”

 “신선인 호랭이가 모르는데 누가 알겠어요?”

 호랭이와 병규는 멍한 표정으로 어이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때 등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주인님. 깨어나셨어요? 샤바샤바.”

 익숙한 말투에 병규는 피식 웃음을 흘린다. 이 녀석도 왔구나.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휙 돌린 병규는 다음 순간 깜짝 놀라게 되었다.

 바퀴벌레 왕자는 어딜 가고 까맣고 긴 장발에 흑진주 같은 검은 눈동자를 한 무지막지하게 잘생긴 미소년이 그를 향해 눈을 반짝이고 있는 게 아닌가.

 “엥? 다, 당신은 누구죠?”

 병규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소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에? 설마 절 잊으신 거예요. 사벼? 머리가 어떻게 되신 거예요? 샤바샤바.”

 “헉.”

 “우왁!”

 병규와 호랭이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쪼들려 소도야그와 진룡강신검이라는 정체불명의 책을 내더니, 이번엔 능력복제술사COPY를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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