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20/102)

    아악! 귀가! 귀가아아아아!!

 짜릿한 느낌과 함께 병규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었다.

 흐릿한 시야에 하얀 천장이 보인다. 그리고 침상 옆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링거.

 병원인 모양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일까.

 알 수 없다.

 머릿속이 멍한 걸 보니 꽤 오래 잤던 모양이다.

 “엇. 깨어났니?”

 긴 머리카락을 찰랑이는 여자의 모습이 잡혔다.

 갸름한 미인의 얼굴.

 이한영이었다. 그녀는 건강해 보였다.

 병규는 저도 모르게 씩 미소를 지었다.

 험한 일을 함께 겪어서일까. 깨어나자마자 그녀를 보니 반가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누님. 무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병규는 눈으로 그렇게 인사했다.

 “녀석. 웃기는. 남은 네 걱정에 잠 한숨 못 잤는데.”

 이한영이 그의 머리를 콩 하고 쥐어박았다. 그녀의 눈에 수정 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병규는 그녀의 그런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한영은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소매로 눈가를 쓱 훔치며 병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잠깐만.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올게.”

 그 후로 한동안 병규의 병술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떠들썩했다. 

 이운석을 시작으로 조준엽. 김한식 등등 친숙한 사람들부터, 영웅의 얼굴 한 번 보겠다며 몰려든 생소한 얼굴의 요원들까지.

 모두들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대소를 터트리며 잔치를 벌이듯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떠들어댔다.

 보다 못한 자영이 교통정리를 하지 않았다면 쏟아지는 질문에 그는 다시금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궁금한 게 많겠죠?”

 사람들을 몰아낸 자영이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물어왔다.

 병규는 눈을 감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겁다. 모든 게 귀찮게만 느껴진다.

 자장가처럼 조용하게 이어지는 자영의 목소리.

 병규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녀의 설명을 들었다.

 수사노오가 떠난 얼마 후, 뒤늦게 자영과 특재대의 요원들이 최상층에 도착했다.

 그녀가 그렇게 늦었던 이유는 오로치가 건물 곳곳에 설치한 고성능 폭탄을 하나씩 모두 제거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오로치는 치밀한 자였다.

 그는 이 기회를 빌려 특재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생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자영은 꼼꼼한 사람이라 급박한 상황 중에도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태에 대비했고, 결과적으로 그녀의 판장은 옳았다. 만약 그녀에게 그런 꼼꼼함이 없었다면 특재대는 그날 그곳에서 끝장이 났을 것이다.

 당시 병규와 함께 적진 깊숙이 침투하던 이한영은, 적들이 구태여 관문을 설치하며 시간을 끄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는데, 거기엔 이런 이유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병규는 새삼 두 영인의 재능에 감탄하였다.

 그가 퀴니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돌격했을 때, 자영은 끝까지 냉철한 판단을 잃지 않았다. 그런 치밀함이 요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한영은 위험한 걸 뻔히 알면서도 그를 믿고 따라주었다. 특히 이한영의 깊은 신뢰에 병규는 가슴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자영과 대원들이 위험한 장애를 모두 제거하고 뒤늦게 도착했을 때 병규 일행은 지쳐 쓰러져 잠이 든 상태였고, 유감스럽게도 수사노오와 오로치는 임 종적을 감추고 없었다.

 부상당한 병규와 이운석을 병원으로 옮기며, 자영은 이를 박박 갈았다.

 특히 오로치에 대한 분노가 대단했다. 심지어 그녀는 요원들이 듣는 앞에서 다음에 만나면 뼈를 아작아작 씹어주겠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까지 했다.

 얌전한 그녀가 이를 빠득빠득 갈며 고함을 질렀다니.

 병규는 자영의 얘기를 듣고 큭큭거리며 웃음을 참느라 곤혹을 치러야 했다. 직접 두 눈으로 못 본 것이 억울할 정도였다.

 대충 상황이 정리된 후 집계된 요원들의 피해상황은 생각보다 경미했다.

 일본의 능력자들과의 싸움으로 몇몇 요원이 부상을 입긴 했지만, 굳이 보고서를 작성할 필요도 없는 경상이었다. 요원들이 대거 투입된 것에도 원인이 었었지만, 애초에 실력에 큰 차이가 있었다.

 사실 수사노오가 신임하고 있던 상급의 능력자들은 죄다 병규와 이운석이 치워주었으니, 요원들은 나머지 떨거지들만 정리한 셈이었다.

 다른 요원들의 피해상황은 예상보다 가벼웠지만 반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상자들이 최상층에서 발견돼 자영의 가슴을 덜컥 무너지게 만들었다. 물론 그 부상자들은 수사노오와 격전을 벌인 병규 일행이었다.

 일행 중 이운석은 왼쪽 어깨뼈가 탈골되었고, 두 다리의 찰과상 또한 심각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행동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었고, 심각해 보이던 외상마저 며칠 요양하면서 대부분 치유되었다.

 그리고 격전 중 혼절하는 바람에 병규를 많이 걱정시켰던 이한영은 의외로 멀쩡했다.

 장시간 수사노오의 직격을 받아낸 그녀지만 특유의 강인한 체력 덕분에 별 다른 부상이 없었다.

 피부 허물이 조금 벗겨지긴 했지만, 다음날이 되자 말끔해졌다.

 세상모르고 골아 떨어졌던 그녀는 다음 날 아침,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말끔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계속 병규의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누구보다 상태가 심각한 것은 병규였다.

 병규는 갈비뼈가 세 개나 부러지고, 내장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전신의 피부가 찢겨져 흉물스런 모습이 되었다. 특히 허벅지와 팔의 경우엔 근육이 보일 정도로 심각하게 살점이 찢겨져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능력자의 치유력은 일반인의 그것과 매우 달라 한 달 정도만 고생하면 약간의 흉터만 남고, 다른 상처들은 괜찮아질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물류센터는 예상대로 오로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물류센터의 사장과 운영진은 정상적인 한국인 기업가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었지만, 실제 회사의 대주주는 일본인이었다.

 그들 대주주는 회사의 운영권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실세였다. 수사노오가 물류센터의 창고들과 건물의 일부분을 개인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퀴니가 납치될 당시, 왜 인근 주민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풀렸다.

 오로치의 최면이 원인이었다. 그는 유선방송과 라디오, 그리고 전봇대에 설치된 긴급연락용 스피커를 통한 최면술로, 사건이 벌어진 시간 동안 인근 주민들의 기억을 조작했다.

 능력자들은 정신계 조작에 대한 기본적인 저항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일반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때문에 오로치의 광범위한 최면이 펼쳐지자, 보안설비가 없는 서버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듯, 그렇게 쉽사리 최면에 사람들이 걸려든 것이다.

 자영에게 전해들은 여러 뒷이야기들 중에 한 가지 유감스러운 소식은, 이운석이 잡아놓은 화차와 쓰치노코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왕자(?)의 q or성들에게 휩쓸려간 오가마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 일대를 707 부대가 그물처럼 촘촘히 포위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렇군요.”

 자영의 자세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병규는 조용히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퀴니와 호랭이가 그의 양 무릎을 한 쪽씩 베고 고롱고롱 잠을 자고 있었다.

 엉뚱하게도 퀴니와 호랭이는 그 난리 통에도 자명종과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병규는 작게 뒤척이는 퀴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없이 웃었다.

 대체 기상태그매치가 뭐기에, 그 강력한 오로치의 최면마저 한순간에 깨뜨린 걸까.

 “참, 저 아이에게도 뭐라고 한마디 해 줘요.”

 자영이 가리킨 곳은 건너편 침상 아래였다. 음영이 드리운 으슥한 곳을 지그시 응시하니 동그란 눈을 깜빡이고 있는 바퀴벌레 왕자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이번 사건을 통틀어 가장 큰 활약을 한 것이 바로 녀석이 아닐까?

 바퀴벌레 왕자는 병규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폭풍 속에서 미친 듯이 자명종을 후려치고 있는 두 사람을 붙들고 있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삐끗 잘못해도 바람에 휭 하니 날려갈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평소엔 다소 껄끄러운 녀석이긴 했지만, 이번 일로 그런 불쾌하던 마음이 많이 가셨다.

 병규가 따뜻한 시선을 보내자 숨어서 말똥말똥 기척을 살피던 바퀴벌레 왕자가 쪼르르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주인님. 너무 멋졌어요. 샤바. 그런데 왜 그 허접한 녀석을 살살 봐주면서 노신 거예요? 샤바샤바.” 바퀴벌레 왕자 눈에는 병규가 살살 논 것으로 보였다.

 그 피 터지는 혈투가 고작 놀이 정도로 보였다니. 어쩌면 이 녀석이 진정한 최강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병규의 머릿속을 스쳤다.

 바퀴벌레 왕자를 조용히 바라보던 병규는 문득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애.

 경애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찾는 분이 저쪽에서 몸부림치며 주무시는 분인가요?”

 자영이 웃으며 옆 침상을 손짓해 보였다.

 그것에 경애가 있었다.

 아기 곰이 그려진 잠옷을 입고, 모자까지 뒤집어쓴 채, 베개를 품에 안고 침대 위를 뒹굴거리고 있었다.

 아, 뒤척거리다 침대에서 철퍼덕 떨어졌다.

 “아야야.”

 잠이 덜 깬 얼굴로 엉덩이를 문지르더니 스멀스멀 침대 위로 기어올라가서 다시 쿨쿨거린다.

 “우움. 집세 인상 절대 반대~. 500원만 주세요.”

 “하하.”

 경애의 잠꼬대에 병규는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남의 병실에서 저렇게 편하게 잠이 들다니. 사람을 편하게 하는 게 그녀의 천성인 듯 싶었다.

 퀴니를 찾아 무작정 뚜쳐나간 그녀는 사방팔방을 헤매다 얼떨결에 물류센터까지 가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 중에도 감이 유달리 뛰어난 사람이 있는데, 그녀가 바로 그런 부류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조용히 말을 꺼내던 자영은 이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경애에게 능력자로서의 소질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하려 했지만, 확실한 게 아니어서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다. 만약 그녀가 능력자라면 벌써 각성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에게선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 병규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네?” “퀴니가 가스펠의 총수가 된 이유에 대해 더 밝혀진 것은 없나요?”

 병규는 정말 궁금했다.

 정말로 가스펠이 로리 공화국이라서 그럴 이는 없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실 그것에 대해 조금 조사해 봤어요. 그래서 미심쩍은 정보를 하나 얻었는데, 아무래도 퀴니 님은 유럽에서 발생한 3차 소울 임팩트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소울임팩트와 관련이 있더라.”

 소수의 특별한 자들을 각성시키는 신비스러운 현상, 소울임팩트.

 그 현상과 퀴니가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다. 병규는 퀴니의 금빛 머리를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앙~”

 호랭이가 길게 하품을 하며 깨어났다.

 “어? 일어났네?”

 가만 병규를 올려다보며 킁킁거리던 호랭이가 갑자기 코를 부여잡고 뒹굴며 뒤로 넘어간다.

 “아이고, 냄새야. 코가 썩는 것 같네. 망할 녀석. 정신 차렸으면 멍청하게 있지 말고 냉큼 가서 좀 씻어라.”

 "예에.“

 병규는 어색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망할 연초마니아.

 죽다 살아난 사람을 쳐다보고 한다는 소리가 좀 씻으라고? 

 기절한 상태로 며칠 못 씻었으니 몸에서 냄새가 좀 나는 건 당연한 일인데, 굳이 살살 애기해도 될 것을 본부장이 보는 앞에서 이렇듯 망신을 주다니.

 병규는 꿍얼꿍얼거리며 귀엽게 고롱고롱 코를 고는 퀴니를 한쪽으로 조심스레 눕힌 뒤,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영이 부축하려 들었지만 병규는 손을 내저었다.

 “냄새난답니다. 때 빼고 광 낼 때까지 접근하지 마세요.”

 “호호. 네.”

 병규의 심술에 자영은 곱게 웃어 주었다.

 “젠장. 좀 어지럽네.”

 “사내자식이 며칠 드러 누었다고 엄살은. 퍼뜩 갔다 와.”

 “네네. 알겠습니다.”

 병규는 툴툴거리며 휘청휘청 병실을 나섰다.

 "녀석. 몸 하나는 정말 기가막히게 튼튼하단 말이야.“

 병규가 사라진 병실 문을 보며 호랭이는 감탄 섞인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일주일이나 기절해 있던 사람이 깨어나자마자 멀쩡한 사람처럼 휘적휘적 걸어 다니다니. 믿기 힘든 회복력이다.

 “정말 그러네요.”

 자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랭이의 말에 동의했다.

 “그런데 조사해 본 것은 어떻게 됐냐?”

 갑자기 호랭이가 굳은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눈치 빠른 자영은 호랭이가 묻는 것이 무엇인지 곧장 눈치 챘다.

 "혈액 검사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정밀 조사결과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으흠.”

 자영의 대답에 호랭이는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거참 이상하네. 분명 뭔가 좀 이상한 게 있을 것 같았는데.”

 병규가 혼수상태였을 때, 호랭이는 따로 자영에게 그의 혈액을 채취하여 정밀검사해 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혹시나 몬스터의 능력을 흡수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결과는 호랭이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역시 수호신의 능력인 걸까?”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능력자들은 수호신의 힘을 빌려 쓰는 것이기 때문에 신체검사를 해봐도 일반인과 별 다른 것이 검출되지 않아요. 혈액검사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역시 그가 수호신에게서 힘을 빌려오는 것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어요.”

 그건, 그렇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단 말이야. 대체 몬스터의 능력을 흡수하는 수호신이 뭐냐고. 내 평생 그런 수호신에 대해선 들어본 적도 없단 말이다.“

 “그건 그렇죠.”

 자영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호인 그녀조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능력이다.

 “정말 모를 일이야.”

 고개를 이리저리 귀엽게 갸웃거리던 호랭이. 문득 떠오른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참 그러고 보니 녀석. 가라스텐구의 피를 먹은 건 어떻게 된 거지?”

 “........?” 자영은 호랭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괜스레 눈만 깜빡였다.

 그때였다.

 특재대 병실 전용 샤워실에서 한 줄기 처절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악. 귀가! 내 귀가아아아아아아!”

 “파하하하.”

 비명소리를 듣고 황급히 달려온 호랭이는 병규를 보자마자 자지러졌다. 배를 움켜잡고 뒤로 발라당 넘어지더니 이젠 아예 데굴데굴 굴렀다.

 “하하. 니가 무슨 아기 코끼리 점보냐? 파하하하하하.”

 그렇다.

 호랭이가 이렇게 미친 듯이 웃어 재끼는 것은 병규의 귀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의 귀가 날개처럼 팔락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그의 귀가 부채만큼 크거나 하다못해 길기라도 했다면 좀 모양이 나을 뻔했는데, 그의 귀는 지극히 평범하게 보통의 크기였다. 그렇게 작은 귀가 팔랑팔랑 앞뒤로 정신없이 왔다 갔다하고있는 것이다.

 “큭!”

 귀를 본 자영은 얼굴을 붉히더니 입을 막도 밖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잠시 후 복도 저 건너편에서 호호호 하는 웃음소리가 메아리로 울려왔다.

 이럴 수가! 믿었던 분부장까지.

 병규는 두 주먹을 지그시 움켜쥐며 한 방울으 가련한 눈물을 떨구었다.

 “푸하하하. 귀를 움직일 수 있는 인간은 여럿 봤지만 너처럼 팔락거리는 녀석은 처음이다. 파하하하하하.”

 남의 불행을 보고 깔깔거리는 호랭이의 모습에 병규는 묘한 살인충동을 느꼈다.

 토닥토닥.

 다른 병실에서 동생인 이운석과 수다를 떨다가 뒤늦게 달려온 이한영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하고 나섰다.

 “괜찮아.”

 “휴. 말만이라고 고맙습니다. 누님.”

 팔락팔락.

 “풋. 그, 그래.”

 “누님. 얼굴 표정이 왜?”

 팔락팔락.

 “큭. 제, 제발 마. 말은 하지마.”

 “말요?” 팔락.

 “푸푸풋.”

 어깨를 들썩이며 철인의 인내심으로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던 이한영. 그러나 그녀 역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손가락으로 벽을 벅벅 긁더니, 결국 자영을 따라 복도로 달려 나간다.

 “.......?” 병규는 그녀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푸하하. 녀석아 네가 말을 할 때마다 그 귀가 팔락거리잖냐.”

 호랭이의 말에 병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과연 정말로 말을 할 때마다 이놈의 귀가 나비가 날갯짓을 하듯 팔락이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팔락팔락팔락.

 “큭.”

 호랭이는 다시금 뒤집어졌다.

 “파하하하하.”

 “휴.”

 팔락.

 병규는 손으로 벽을 짚은 채 나직한 한숨을 쉬었다. 대체 이놈의 인생은 왜 이리 꼬이는지.

 “아무래도 가라스텐구의 피를 먹은 것 때문인 것 같아요.”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자영이 말했다. 이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런데 가라스텐구라면 날개가 돋아야 할 것 같은데, 왜 하필 귀지?” 이한영의 물음에 호랭이는 고개를 갸웃한다.

 “글세. 아마도 사람의 신체 중에서 날개와 가장 유사한 곳이 귀라 그런 것이 아닐까? 아무래도 몬스터의 능력을 복제해 낼 때 신체의 특정 부위가 변이를 일으키는 것 같다.”

 물론 호랭이의 말은 이한영이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영이 그녀를 위해 통역을 해주어야 했다.

 병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대충 그런 것 같다.

 “흠. 그럼. 이번의 귀도 무슨 특별한 능력 같은 게 있을까요? 예전의 혀도 그렇고.”

 자영의 눈이 요란스레 반짝인다. 몬스터의 능력을 복제해 내는 병규의 능력이 무척이나 끌리는 모양이다.

 “어떠냐? 뭐 특별히 달라진 건 없냐?” 호랭이의 물음에 병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귀가 펄럭이는 것 말고는 특별히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 참 이상하군. 날지는 못하더라도, 회오리바람 정도는 일으킬 줄 알았더니.“

 아쉬운 듯 호랭이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아직 모르는 일이에요. 적응되면 뭔가 기발한 능력이 또 생길지도 모르죠. 가령 이번에 알게 된 재생능력 같은 것처럼 말이죠.”

 자영이 호호 웃으며 말을 꺼냈다.

 “그래. 맞아. 설마 그 험한 상처가 샤워 한 번에 깨끗해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어?”

 병규의 얼굴을 새삼 확인하며 이한영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헤에. 넘넘 신기해요.”

 경애는 병규의 주위를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기뻐했다.

 팔락팔락 귀 사건의 충격이 워낙 컸던지라 뒤늦게 알게 된 일이지만, 병규는 재생력이라는 새로운 능력을 알게 되었다. 스크래그에게서 흡수한 것으로 생각되는 능력으로, 전신의 피부를 한 꺼풀 벗겨낸 것 같은 험한 상처들도 물이 닿자마자 단숨에 아무는, 가공할 만한 능력을 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병규씨의 재생능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자영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묻는다.

 “흠, 나도 갑자기 그게 궁금해지네.” “저도요. 저도요.” “푸흐흐.”

 이번엔 이한영과 경애, 호랭이가 차례로 야리꼬리한 시선을 그에게 던진다.

 병규는 흠칫 놀라며 한 발 크게 물러섰다. 세 사람에게서 불쾌한 오로라가 풍겨왔던 것이다. 특히 세 여인의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그 썩은 미소란.

 무의식중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병규는 돌연 창가의 화분을 집어 들어 위협했다.

 “저리가! 오지 마. 쉭!”

 팔락! 팔락! 팔라~~ 악 팔락!

 물론 호랭이와 세 여인은 병규에게 다다갈 수 없었다. 그의 어설픈 협박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말을 할 때마다 팔락이는 귀 때문에 도저히 웃겨서 접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파하하하하하. 그, 그만.”

 “쿠쿡. 아이고. 미치겠다. 크후후후후.”

 “호호호. 비겁하게 정신공격을...... 호호호.”

 나란히 병실바닥을 구르는 세 사람을 보며 병규는 세상 다 산 노인네처럼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에효. 정신공격이라니.”

 팔락팔락.

 ‘이 귀가 과연 무슨 쓸모가 있을까.’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후. 병규는 침대에 풀썩 누우며 생각했다. 말을 할 때마다 펄럭이는 귀. 다행히 연습을 좀 하면 의지대로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 가만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맑아진다. 그리고 주위의 갖가지 소리들이 귓가에 소곤대는 것처럼 또렷하게 들려왔다.

 무작정 크게 들리는 것과는 달랐다. 그가 집중하는 곳의 소음이 그의 머릿속에 영상으로 그려진다고나 할까.

 ‘신기한 걸?’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생소한 경험.

 병규는 더욱 더 정신을 집중했다. 귀가 레이더처럼 팔락이고 있었지만 그는 느끼지 못했다.

 그 때,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또각또각 발소리.

 차분하면서도 균형 감각이 뛰어나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가볍다. 하이힐을 신었는데도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걸음걸이.

 ‘본부장님일까?’

 병규는 어쩐지 그 발소리의 주인공이 자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백을 잊고 갔네요.”

 잠시 후,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과연 자영이었다.

 멍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던 병규의 입술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랬군.”

 그렇다.

 팔락이는 귀.

 가라스텐구에게서 얻은 능력이 무엇인지 그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네?”

 의미심장한 눈빛을 띠고 웃는 병규를 보고 자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핸드백을 찾으러 들어온 사람에게 갑자기 ‘그랬군.’이라니? 밑도 끝도 없는 소리가 아닌가.

 “본부장님은 참 차분한 성격인 것 같네요.”

 어리둥절해하는 자영을 향해 병규는 여전히 조용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평범한 얼굴.

 그러나 묘하게도 매력이 넘치는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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