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18/102)

    금발머리 꼬맹이를 찾아왔어

 한편, 병규와 이한영이 괴물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을 때, 이운석 역시 두 명의 능력자를 상대로 현란한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화염차.” 화차가 손가락을 슬쩍 내밀지 확 하고 일어난 화염이 바퀴모양으로 둥글게 구부러진다.

 “냐. 잘 가지고 놀아~.” 방긋 웃은 그녀는 불바퀴를 이운석에게 휙 하고 던졌다. 가볍게 던진 것 같은데 질주하는 마차처럼 빠르다. 게다가 멀리서도 화끈하게 느껴지는 그 열기란.

 “미안하지만 불장난은 초등학교시절에 이미 졸업했지.” 조용히 읊조리는 이운석. 불바퀴가 그를 덮쳤다.

 퍼엉.

 불붙은 기름처럼 화염이 사방으로 튄다. 지글지글 끓는 아스팔트. 만약 그 속에 사람이 있다면 뼈도 건지기 힘들 것이다.

 “냐. 빠른 걸?” 눈을 깜빡이며 화염을 응시하던 화차의 고개가 빙글 돌아간다.

 좌측.

 이운석이 그녀에게 윙크를 하고 있었다.

 불바퀴에 묻혀 버렸던 것은 그가 아니라 고속이동으로 생긴 잔상이었던 것이다.

 “재대결은 화근할 거야. 내 이름을 걸고 장담하지.”

 천천히 허리를 펴는 그. 매력적인 웃음이 입가에 매달린다.

 쩌릿.

 화차는 말로 표현 못할 묘한 전율을 느꼈다.

 “냐. 전혀 다른 걸?”

 예전에 한 번 붙었던 이운석과 지금 눈앞에서 빙글빙글 웃고 있는 이운석의 기세부터가 전혀 다르다. 단지 발목에 찬 족쇄를 벗은 것뿐인데. 저 여유는 대체 뭐란 말인가.

 이운석이 화차를 향해 짙은 미소를 뿌리고 있을 때였다.

 촤아악!

 돌연 땅속에서 꼬챙이 같은 가시가 불쑥 튀어나왔다.

 “아차. 잊을 뻔했군.” 이운석은 슬쩍 움직여 가시를 피해냈다. 그러자 연이어 십여 개의 가시들이 튀어 올라오며 이운석을 쫓았다.

 “네 이름이 쓰치노코라면서?”

 가볍게 가시들을 피하며 이운석이 물었다. 대답 대신 땅 밑에서 기묘한 울림이 전해져왔다.

 끄그그.

 “하하. 그게 대답이야? 널 보니 럴커가 생각나. 혹시 아니? 유명한 게임에서 나오는 유닛인데.” 끄그그.

 이번에도 묵직한 진동음만 전해져온다. 화가 난 듯 진동이 조금 날카롭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가시들이 사납게 그를 몰아쳐왔다.

 아무 기척도 없이 가시가 날아드니 상대하기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 동대일이 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던 것도 쓰치노코의 이런 능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족쇄를 풀은 이운석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무려 200킬로그램이나 되는 족쇄를 십 몇 년 동안 차고 있었다. 그런 족쇄를 차고도 특재대 내에서 가장 빠르다는 말을 들었던 이운석이다.

 족쇄를 푼 그는 마치 날개를 얻은 천마처럼 가볍고 자유로웠다.

 지하에서 공격하는 쓰치노코는 감히 그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홍대일 선배가 안부 좀 전해주라고 하더군.”

 뒤로 물러서기만 하던 이운석의 움직임이 우뚝 멈춰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가시들이 사방에서 그를 찔러왔다.

 위기일발의 순간!

 “아까부터 대답을 전혀 안 하네?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줘야 예의지!”

 이운석이 버럭 고함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쿠웅.

 묵직한 진동음이 바닥을 때리고 이어 건물전체가 웅웅 흔들린다. 엄청난 압력.

 퍽 하는 소음과 함께 발밑의 땅이 푹 꺼지며 기이하게 생긴 사람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키는 1미터가 될까 말까 한데 몸은 옆으로 퍼져 탕탕하다. 전형적인 난쟁이에다 얼굴은 또 얼마나 이상하게 생겼는지, 기름덩어리를 대충 뭉쳐 눈, 코, 입이라고 붙여 놓은 것 같았다.

 “개성 있게 생겼는걸. 반갑다는 의미에서 일단 한 대!” 이운석의 발이 그를 강타한다.

 “꺼억!” 격한 비명성과 함께 쓰치노코의 몸뚱이가 부응 떠올랐다.

 “한 대만 주면 정 없다는 소릴 듣겠지? 그런 의미로 두 대!”

 퍼억.

 채찍같이 치켜 올라간 그의 뒤꿈치가 쓰치노코의 뒤통수를 강타한다. 답답한 신음이 쓰치노코의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아직도 말을 안 하는 거야? 좋아. 그럼 입을 열 때까지 계속!”

 이운석의 발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쓰치노코를 쓸어갔다. 그때 한 줄기 붉은 그림자가 휙하고 눈앞을 스쳐 지나가더니 쓰치노코가 사라졌다.

 “!” 허무하게 헛발질을 한 이운석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실내 한쪽, 화차가 기절한 쓰치노코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있었다.

 “대단한 걸?” 이운석은 휘파람을 불렀다.

 족쇄를 푼 그의 눈에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라니. 그가 족쇄를 걸고 싸웠듯, 그녀 역시 지금까지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화차가 빨간 눈동자라 그를 돌아보았다.

 “냐. 쓰치노코는 말을 못해. 태어날 때부터 말을 못했어.”

 “이런.” 이운석은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적인 쓰치노코에게 고개까지 숙여 보인다.

 “냐. 괜찮아. 우린 적이잖아. 그런 사정까지 봐줄 필요는 없다고 봐.” 빙그레 웃어 보인 화차. 그녀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

 “냐. 넌 간해. 이젠 사정 봐주지 않을 게.” “좋아. 그럼 계속 놀아보자고.”

 이운석이 자세를 잡으며 그녀를 맞는다. 불빛에 너울너울 흔들리는 거대한 천마의 그림자.

 “!”

 화차의 두 눈이 가늘어진다. 이운석의 거대한 그림자를 보자 숨털이 파르르 솟았던 것이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단숨에 관통하는 전율.

 “냐.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

 갑자기 그녀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고속이동으로 인한 잔상.

 ‘우측?’

 이운석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간다.

 고개를 돌린 오른쪽. 시뻘건 화염이 그의 얼굴을 덮쳐온다. 이운석은 대경실색하며 죄측으로 빠졌다. 그런데 몸을 피한 곳에서 화차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좌우를 동시에 노리는 공격.

 “헛!” 이운석은 경호성을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촥!

 뜨거운 기운이 그의 팔뚝을 후려갈겼다. 매캐한 냄새와 함께 머리카락이 지글지글 일그러졌다.

 “휴. 큰일 날 뻔했는걸.”

 두 팔을 탈탈 털어 내며 이운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당한 실력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욱신욱신 저려오는 팔목.

 그녀의 스피드도 경이적이지만 불을 자유롭게 다루는 그 능력은 더욱 대단했다.

 사실 능력자중에 가장 흔한 것이 불을 다루는 능력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화염계열의 능력자들과 많이 달랐다 화기를 실처럼 뽑아낸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구름처럼 뿜어낸다고 해야 할까.

 화차의 능력은 광범위한 지역을 초토화시키기에 더없이 적합했고, 유감스럽게도 두 사람이 맞붙은 곳은 그리 넓지 않은 실내였다.

 “새장에 갇힌 기분인 걸.” 이운석은 이마의 땀을 닦았다. 잠깐 사이에 실내의 기온이 많이 올라갔다. 하지만 답답하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어쩐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는 것 같았다.

 “냐. 또 갈 거야. 조심해.”

 말과 함께 그녀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이번에도 좌우에서 열기가 밀려든다. 이운석은 뒤로 몸을 날렸다.

 퍼엉.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화염이 충천했다.

 자욱하게 피어로는 연기.

 채 숨을 돌리지도 전. 뿌연 연기를 뚫고 화차가 밀어닥쳤다.

 이운석은 당황하지 않고 빙글 몸을 회전시키며 두 발로 바닥을 쿵 하고 찍었다.

 천마군림.

 땅 밑에 숨은 쓰치노코를 단숨에 격퇴한 그 가공할 충격이 다시금 바닥을 진동시켰다. 으르르 흔들리는 건물. 발밑이 흔들리자 빠르게 움직이던 화차가 잠시 잠깐 비틀거렸다. 그 틈을 노리고 이운석이 달려들었다.

 부웅.

 호쾌하게 큰 동작.

 병규의 움직임이 빠르고 날카롭다면 이운석은 크고 화려했다. 화차는 데굴데굴 구르며 가까스로 피했다. 그러나 이운석의 공격은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2격, 3격 파도처럼 정신없이 몰아친다.

 더더욱 가공스러운 것은 공격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파괴력이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견디다 못한 화차는 화염을 구름같이 뿌리며 몸을 빼냈다. 그러나 그녀는 곧 경악했다. 부웅 하는 돌풍소리와 함께 이운석은 이미 그녀가 몸을 피할 위치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터무니없는 스피드.

 “냐. 어, 어느새.”

 화차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이운석은 그녀에게 웃음을 보여주었다.

 “미안해. 조금 더 놀아주고 싶지만 바쁜 일이 있어서 그만 가야할 것 같아.” 그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팔을 내밀었다. 손끝에서 희끄무레한 오라가 그물처럼 쏟아져 나가 화차를 휘감았다.

 “냐. 냐.” 화차는 화염을 쏘아내며 오라를 끊으려했지만 오라의 그물은 오히려 더욱 그녀를 조일 뿐이었다.

 “냐. 속였어. 힘을 숨기고 있었잖아.” 눈물을 뚝뚝 흘리며 화차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마지막에 보여준 그 스피드. 화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가히 뇌전과 같았다.

 화차가 울자 무안해진 듯 이운석은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힘을 숨긴 게 아니라 아직 적응이 안 된 거야. 사실 전력을 기울이면 내가 얼마나 빨라질지 감도 못 잡겠거든.” “냐. 미워.” 화차는 허탈한 한숨을 쉬었다.

 껄걸 웃은 이운석은 기절한 쓰치노코마저 오라로 묶어 버렸다. 대충 두 사람을 한쪽으로 치운 그는 방금 지나온 통로를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본부장님과 다른 동료들은 다른 통로로 진입한 모양이군.”

 특재대의 요원 중에는 숨겨진 길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능력자도 있다. 화차와 꽤 오랜 시간 싸웠는데도 다른 요운들이 오지 않는 걸 보면 모두들 다른 길로 진입한 모양이다.

 “좋아. 그럼 누나와 병규를 쫓아가 볼까.” 그는 느긋한 모습으로 쭉 기지개를 켰다. 앞서 간 두 사람의 안위는 조금도 걱정이 되지 d않는 태도였다.

 사실 그가 이만큼 여유를 부리는 것은 그만큼 두 사람을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친누이의 실력만큼은 수호신이 기린인 그조차 인정할 정도였다.

 “특재대에 들어오면 좋을 텐데.”

 누이가 암흑가 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못내 아쉬운 그였다. 그것이 아무리 부친의 유지를 잇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

 그가 누이에 대한 생각을 하며 막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뒤쪽 통로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요원?’

 그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요원치고는 너무 소란스럽다.

 이운석은 인상을 찌푸린 채 의문의 방문객을 기다렸다.

 적일까. 아군일까.

 “아아. 출구다.” 다소 경박스러운 외침과 함께 다다다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나타난 것은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스무 살 가량의 젊은 여자였다. 그녀를 본 이운석의 표정이 황당하게 변했다.

 갑자기 나타난 그녀. 특재대 요원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 쪽의 능력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아는 사람이었다.

 ‘아마 이름이 김경애였었지?’

 경애가 병규의 집에 하숙하고 있었던 터라 그녀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 여자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거지?’

 그가 알기로 작전지역의 모든 민간인은 본부장인 자영의 지시에 따라 안전한 곳으로 모두 대피한 상태다. 결국 지금 이 여자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녀가 일부러 이곳에 잠입했다는 소리가 되는 것인데. 대체 능력도 없는 그녀가 왜 이런 위험한 곳에 들어온 것일까.

 “와. 사람이다.”

 남의 복잡한 속도 모른 채 이운석을 발견한 김경애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눈동자에 눈물이 송골송골 맺힐 걸 보니 여기까지 오는 동안 꽤 공포에 떨었던 모양이다.

 “여긴 어떻게 오셨죠?”

 천방지축으로 뛰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운석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이운석은 김경애를 알지만, 막상 그녀는 그를 이곳에서 처음 보는 것이다. 당연히 물어보는 말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김경애는 이운석의 멋진 모습에 잠시 멍해 있더니 뒤늦게 헤헤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을 찾으로 왔어요.”

 그녀의 대답에 이운석은 두 눈을 반짝 빛냈다.

 “실례지만 찾는 사람이 누군지 물어봐도 될까요?”

 “퀴니.”

 그녀가 대답했다.

 “요만한 키에 금발머리 꼬맹이를 찾고 있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