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15/102)

7. 쟤 저러다 작두 타는 거 아냐?

  “뭐야? 이게.”

  통화한 누님이 일러준 장소에 도착한 병규는 턱을 한껏 벌린 채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제대로 찾아온 거 맞냐?”

  어깨 위의 호랭이가 눈을 비스듬히 흘겨 뜨며 묻는다. 그 눈빛이 꼭 ‘이놈 혹시 길치 아냐?“라는 느낌이다. 병규는 괜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잘 찾아온 것 같은데.”

  명함 뒤에 휘갈겨 쓴 메모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가게 옆의 금은방도 맞고, 맞은편의 큰 백화점도 맞다. 모든 게 메모한 그대로인데 정작 본 건물이 영 아니다.

  조폭 아지트를 찾아 왔는데 이건, 이건...... 웬 빵 가게란 말인가. 게다가 입구에서부텨 쭉 늘어선 여학생들의 줄이란.

  “아무래도 잘못 찾은 모양이네요. 다시 한 번 전화해 보죠.”

  그가 막 핸드폰의 폴더를 열었을 때다. 입구의 여학생들을 헤치고 거구의 사내가 밖으로 나왔다.

  하얀 앞치마에 불룩 올라간 흰 빵모자.

  빵집 종업원인 모양이다. 그런데 대체 이 빵집의 주인은 무슨 생각으로 이 사람을 종업원으로 쓰는 그런 발칙한 생각을 한 것일까.

  세상 어느 빵집 종업원이 뺨따구(?)에 10여 바늘이나 꿰맨 흉측한 상처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눈은 또 얼마나 날카로운지 슬쩍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손님 쫓아낼 생각으로 쓴 것이라면 진짜 완벽한 종업원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어. 저 녀석.”

  사내를 쳐다보던 호랭이가 귀를 쫑긋 세운다.

  “저 녀석 그때 그 녀석이잖아.”

  저 사내를 특재대의 한식 선배 제자로 초빙하면 어떨까 하는 궁리를 하고 있던 병규는 호랭이의 말에 눈을 오므렸다.

  ‘누구더라?’

  떠오를 듯한데 가물가물하다. 그가 굳어버린 기억세포를 일깨우고 있을 때, 저쪽이 먼저 아는 척을 해 왔다.

  “여어.”

  “아. 이제 보니.”

  그제야 병규는 그가 누군지 생각났다. 그 날, 발칸과 피 튀기는 혈투를 벌렸을 때, 이한영을 비호하고 있던 조폭 중의 하나다.

  “잘 찾아왔네.”

  뺨따구 흉터 사내가 불쑥 손을 내민다.

  “네. 네. 아주. 찾기 쉽던데요.”

  그의 손을 재빨리 잡아 붙들며 병규가 대답했다. 찾기야 무지하게 쉬웠지. 다만 믿기지 않아서 돌아갈까 고민했다는 것이 문제지.

  “일단 들어가자.”

  사내는 입구에 진을 친 여학생들을 밀치며 병규를 안으로 안내했다.

  여학생들은 빵 가게 안에도 우글우글했다. 그 소란스러움과 열기란, 작은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했다.

  “누님은 제빵실에 계시다.”

  사내가 가리키는 인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병규는 검은 양복을 흰 앞치마와 빵모자로 치장한 조폭들의 환호를 받으며 한창 빵을 만들고 있는 이한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사내의 말처럼 빵을 만들고 있었다.

  아주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아니 빵을 만드는 그녀가 왜 방망이와 사시미를 들고 설친단 말인가!

  “어? 왔냐?”

  사시미를 흔들며 반갑게 맞는 그녀. 병규는 어색하게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 네.”

  “지금 좀 바쁘니까. 기다려라. 곧 끝난다.”

  “네. 고, 고생하세요.”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다시 빵 만드는 작업에 열중했다.

  퍽퍽퍽!!

  밀가루 반죽에 야구방망이가 사용되고,

  휘릭!!

  손님에게 나갈 케잌은 사시미로 깔끔하게 제단 한다.

  촤르르륵! 드득!!

  빵 위에 얹혀진 크림은 체인과 톱날을 이용해 멋지게 치장한다.

  “머, 멋있네요.”

  “그러네. 나름대로 박력 있고.”

  빵과 케이크 만드는 과정이 이렇게 박력 넘칠 수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된 병규와 호랭이였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차분하게 만 보였던 이한영의 이미지를 깨트리기 충분한데, 대체 실내에 흐르는 이 배경음악은 또 뭔가.

  “쾌지 나 칭칭 나네~~ 쾌지 나 칭칭 나네~~”

  이것은 국보급 전통가요(?)가 아닌가!

  놀랍게도 그녀는 ‘쾌지나 칭칭’의 박자에 맞춰 덩실덩실 칼과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단지 춤만 추는 게 아니다. 가끔씩 ‘얼쑤~’ ‘지화자~’ 하고 외치는 부하들의 추임새를 따라 펄쩍펄쩍 재주까지 부린다.

  만약 그녀가 하얀 앞치마만 두르지 않았어도 내림굿하는 무당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호랭이 역시 그런 생각을 했던가 보다.

  “재, 조금 있다 작두 타는 거 아냐?”

  “정말로 그럴까 걱정이네요.”

  일찌감치 빵 가게 영업을 끝낸 그녀는 병규를 이층으로 안내했다. 잠시 사라졌다 나타난 그녀는 샤워를 했는지 물기가 촉촉한 머리에 긴 목욕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수건으로 머리칼의 물기를 짜내던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병규를 보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놀랐냐?”

  “네? 아. 조금요.”

  “빵 가게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

  “네. 사실 그러네요.”

  그의 대답에 의기양양하게 웃은 이한영은 의자 뒤에 시립한 사내에게 으스대듯 말했다.

  “거 봐라. 완벽하잖아.”

  뺨에 흉터가 있는 사내가 이빨을 보이며 허리를 숙인다.

  “그렇군요. 누님. 사실 지금까지 누님이 손대서 실패한 일이 있었습니까?”

  “하하하. 족제비. 사람 부끄럽게.”

  이한영은 뺨에 흉터가 있는 사내를 족제비라 부르며 얼굴을 붉혔다. 저럴 때는 천상 여잔데. 방금 전에 제빵실에서 본 그건 대체 뭘까.

  호랭이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 미안. 무슨 얘기인지 궁금하겠구나.”

  병규가 묵묵히 있자 이한영이 말을 걸었다.

  “실은 말야. 내 아이디어였거든.”

  “네?”

  “빵 가게 말야. 내가 하자고 했어. 경찰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 말야.”

  “누님 말로는 만화책에서 본 것이라더군. 그런데 설마 빵 가게가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다.”

  족제비가 한마디 거든다.

  “그게 나도 의외야. 설마 이렇게 듬직한 녀석들이 카운터를 보는데 사람이 몰릴 줄 누가 알았어? 역시 되는 사람은 뭘 해도 된다니까.”

  그녀의 털털한 웃음. 사내처럼 시원시원한 웃음인데도 그녀의 어깨에서 찰랑거리는 젖은 머리칼과 어울리자 묘한 매력이 된다.

  “설마 빵 장사가 본업보다 더 잘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왜 장사가 잘되는 걸까.”

  그녀는 오히려 걱정이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호랭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틀림없이 그 빵 만들 때 추는 춤 때문일 거야.“

  ‘얼쑤~’ 하는 추임새에 그녀가 현란한 춤사위를 보이자 가게안의 여학생들은 기절이라도 할 것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하다.

  “저, 누님.”

  조용히 듣고만 있던 병규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는 이한영과 조폭들의 계속되는 우스개 소리에도 내내 심각한 표정이었다.

  “에이. 참. 사내자식이 죽을상을 해가지고는. 말 해봐. 무슨 일이야?”

  병규는 얼굴을 굳힌 채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어려운 일입니다.”

  “알아. 너 같은 녀석은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안 한다는거. 괜찮으니까 말해. 나중에 쓸 일 있으면 나도 똑같이 부려 먹어줄 테니까.”

  그녀의 말에 병규는 작게 웃음을 보였다. 역시 이 누님은 화끈하다. 애초에 안 된다는 소리는 아예 입 밖에도 내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소 부담이 되는 부탁을 하러 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누님에게 부탁드릴 일은.......”

  그렇게 병규는 말자루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결국 없어진 꼬맹이 하나를 찾아야 된다는 말이지?”

  이한영은 30분에 걸친 병규의 설명을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가출 소녀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로 태연한 태도다.

  물론 퀴니에 얽힌 복잡한 사정과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혼란에 대해 전부 설명할 수 없었기에 사태가 다소 약하게 전달된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 일어날 수 있는 복잡한 사태만은 제대로 알려주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태도는 여유만만이다. 경이로울 정도의 평정심이라고 할까.

  “일단 찾는 것은 문제가 없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병규의 얼굴이 금방 활짝 펴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가 대뜸 절을 하려고 하자 이한영은 손을 펴 보이며 그의 행동을 막았다. 아직 그녀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야. 한 달이건 일 년이건, 죽었든 살았든간에 실종자는 언젠가 반드시 행방을 알 수 있게 되어있어. 문제는 내일, 하루 만에 찾아내는 게 사실상 힘들다는 거지. 이쪽의 프로라도 말이야.”

  “역시. 그런 겁니까?”

  병규는 적이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역시나. 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가슴에 묵직한 쇳덩이라도 들은 것처럼 무겁다.

  “자식. 세상 다 산 늙은이처럼 얼굴이 그게 뭐냐!”

  팔짱을 낀 채 그를 잠시 보고 있던 이한영이 벌떡 일어나며 알밤을 먹인다.

  “이 녀석아. 내가 힘들 것 같다고 했지 불가능하다고 했냐?”  “그, 그럼?”

  병규가 놀란 눈으로 보자 그녀는 입가에 짙은 미소를 띠었다.

  “해보자. 망할 놈의 일본 녀석들. 찾아보자고. 할 수 있을지 못할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말야.”

  “누님.”

  병규는 그녀의 말과 행동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단지 한 번 마주친 정도에 불과한 하잘것없는 인연인데 이 정도까지 신경 써 주다니. 마치 날 때 헤어진 피붙이를 다시 만난 느낌이다.

  “무슨 분위기가 이따위야. 이거 조금만 더 하면 누님 절 받아주십시오라는 말이 나오게 생겼잖아?”

  호랭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푸념한다.

  “그럼. 지금 당장 나가보죠.”

  이한영의 허락을 얻어낸 병규는 흥분된 표정으로 벌떡 일어섰다. 한시가 급하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곧바로 시작하자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이한영은 달랑 전화 한 통을 한 뒤로 계속 자리를 지키고 앉아 수하들과 이런저런 잡담만을 나눴다.

  병규는 갑갑했다. 또각또각 흘러가는 초침이 심장을 옥죄어 오는 것 같았다.

  “바보야 앉아.”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이한영이 한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병규는 그녀를 멀뚱히 쳐다봤다. 불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자고 외치던 사람이 지금은 왜 또 이렇게 태평한 걸까. 정말로 어떤 계획이 있는 걸까? 병규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쯧. 녀석. 표정 참 가관이다. 그렇게 조급하냐? 그래도 사람의 일이란 때와 시가 중요한 법이야. 아무 단서도 없이 지금 나가서 어딜 뒤지겠다는 거야? 본격적인 일은 내일부터야. 오늘 저녁에 애들을 풀어놓으면 새벽까지는 우선 의심 가는 곳에 대해 알아봐 올 테니까 그때 움직이면 되는 거지. 알았어? 그러니까 지금은 우선 푹 쉬어둬. 내일 발바닥에 땀나도록 찾으려면 말이야.”

  그녀의 자세한 설명에 병규는 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래. 지금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게 실수를 했으면서도 아직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다니. 매번 후회하면서도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일단은 쉬자. 놈들을 찾아내게 되면 반드시 크게 몸을 쓸 일이 있을 테니 쉬어 두는 게 좋겠지.

  그러나 생각과 달리 몸의 긴장은 쉽게 풀리자 않았다. 쉬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머릿속이 지글지글 끓고 눈이 또렷해진다.

  “허이구. 녀석. 용쓴다. 하기야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은 십분 이해가 가지만 말이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은근한 어투로 말을 꺼낸 이한영은 목욕 가운을 출렁이며 벽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알콜은 긴장을 풀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지?”

  그녀가 벽장에서 꺼낸 것은 독한 위스키였다.

  “자. 그렇게 부담 느끼지 말고 조금만 해. 긴장이 풀어질 정도로만 말야.”

  난감한 표정의 병규에게 술잔을 내민 그녀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자신도 한 잔을 따랐다.

  다리를 꼬자 가운이 살짝 벌어지며 늘씬한 종아리가 드러났다. 기껏 노출되는 부위래 봐야 짧은 치마보다 못한 정도지만 남자의 심리라는 것이 묘해서 수영복보다 미니스커트가 더 야해 보이는 법. 찰랑이는 술잔을 입가에 가져가는 그녀의 모습은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로 섹시해 보였다.

  물론 그녀 자신이 보기 드문 미인인 것도 한몫 했음은 물론이다.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찰랑이는 갈색의 긴 머리칼. 긴 목욕 가운을 걸친 그녀는 정말 뒷거리를 배회하는 거친 사내들과 어울리는 여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휴~”

  “하아~”

  돌연 들려온 한숨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니 조폭 형님들이 천정을 올려다보며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왠지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병규였다.

  분위기도 좋고, 늘씬한 미녀와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모든 게 완벽한 분위기다. 그러나 병규에겐 한 가지가 부족했다.

  ‘기왕이면 술을 주지.’

  유감스럽게도 그의 술잔에 담긴 것은 비싼 위스키가 아니었다. 톡 쏘는 맛의 탄산음료였다. 미성년자에겐 절대 술 안 준다는 것이 바른생활 아가씨의 지론이었다. 덕분에 병규는 술 대신 콜라를 홀짝거리며 이한영의 입술로 술이 넘어가는 모습을 구경만 해야 했다.

  하여간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 결론부터 말해서,

  이한영은 술이 너무 약했다.

  양주잔에 입을 대자마자 큭 하고 기침을 토하더니 벌써 눈이 풀려서 해롱해롱이다. 그녀가 입을 댄 양주잔을 보았다. 술은 그대로다. 그런데 어째서 이 누님은 취해버린 것일까. 설마 말로만 듣던 술 냄새만 맡아도 취해버리는 사람?

  ‘아니 그런데 이렇게 술이 약한 사람이 뭐 하러 양주를 꺼낸거야?“

  하긴 술이 이렇게 약한 양반이 분위기 띄워 주겠다고 술잔같이 들어준 것만도 고맙지. 하지만 누님의 노래 취향만큼은 정말이자 적응이 안 된다.

  아까 전엔 쾌지나 칭칭이더니, 지금은 팽팽 풀려버린 눈으로 무려 니나노~ 를 열창(?) 하고 있다. 그녀가 닐리리아~ 닐리리아~ 니나노오~~~ 하고 길게 가락을 뽑으니 뒤쪽에 시립해 있던 십여명의 조폭들이 짝짝~ 짝짝짝~ 짝짝짝~ 하고 반주를 맞춘다. 이어 노래가 끝나자 ‘열창이었습니다. 누님!’ 하고 일제히 허리까지 푹 숙인다.

  “에헤. 칭찬은....... 녀석들! 야 너희들도 술 마시는 거 멀뚱히 구경만 하지 말고 춤이라도 춰봐.”

  “네. 누님.”

  일제히 대답한 십여 명의 조폭들. 돌연 그녀와 병규가 마주앉은 테이블 주위를 빙 둘러싸더니 서로의 손을 다정하게(?) 잡는다.

 ‘뭐야? 설마 손에 손잡고라도 부르려는 거야?’

 병규가 당황하는 가운데, 굳은 표정을 손을 맞잡은 그들이 슬슬 행동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달떠온다. 달떠온다. 강강술래~ 동해동천 달떠온다. 강강술래~”

 아~~~!

 꽉 끼는 양복의 그들이 부르는 강강술래의 박진감 넘치는 하모니와 번쩍번쩍 광나는 구두로 사뿐사뿐 펼쳐내는 그 발랄한 율동이란.

 “풋~!”

 병규는 저도 모르게 입에 든 콜라르 뱉어내고 말았다. 양주잔을 끌어안고 할짝할짝 술을 먹던 호랭이도 뒤로 발라당 자빠진다.

 ‘수, 술을 못 마시겠어.’

 눈만 마주쳐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풍기문란형 얼굴에 꽉 끼는 양복을 걸친 그들이 빙글빙글 돌며 묵직한 목소리로 노래를 합창한다.

 강강술래를.

 대단한 압박이 아닐 수 없었다. 병규는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좋아. 좋아. 귀여운 내 아기들. 고생했다.”

 강강술래가 끝나자 이한영은 자지러지게 웃으며 손뼉을 쳐주었다. 뻘쭘하게 있기 무안했던 병규도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박수를 쳤다. 혹시나 약 올리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어느덧 그날의 밤도 서서히 깊어만 갔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대충 끝날 것 같았던 그날의 행사는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존재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화끈 달아오르게 되었다.

  “어라?”

  쾌활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흐릿한 시야 속으로 얇은 안테나 두 개가 아른거린다.

  “이건 뭐야?”

  쑥 잡아당기니 테이블 밑에서 사람 머리통만 한 둥글넓적한 것이 딸려 올라온다.

  “어? 이게 뭐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놈인데.”

  그녀는 눈을 지그시 모으며 그것에게 초점을 맞췄다.

  ‘헉!’

  “저, 저놈이 어느새.”

  병규와 호랭이는 저도 무르게 헛바람을 삼켰다. 저 놈의 바퀴벌레. 언제 테이블 밑에 숨어 있었던 거지? 저렇게 큰놈이 테이블 밑에 숨어드는 것을 아무도 눈치 cowl 못하다니. 정말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얼떨결에 이한영에게 딸려 나온 바퀴벌레 왕자는 부끄러운지 발을 꼼지락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저기. 주, 주인님의 대모님 되시는가 보죠? 샤바. 안녕하세요. 전 바퀴벌레 행성의 바퀴벌레 왕자라고 하는데요. 샤바. 그, 그런데 더듬이 좀 놓아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좀 예, 예민한 편이라. 샤바샤바.”

  “헉.”

  “억!”

  초대형 바퀴벌레가 사람 말을 하자 여태 무표정하던 조폭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크, 큰일이다.’

  병규는 기겁을 했다. 지금까지 저 녀석이 나타나서 일이 엉망이 되어버린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으흐음.”

  바퀴벌레 녀석에게 지그시 모아진 누님의 눈빛이 조금 이상하다. 저러다 ‘아~’ 하고 뒤로 넘어가면 그대로 박력 넘치는 형님들과 긴박감 넘치는 육박전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꿀꺽.

  그의 목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러나 우려했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돌연 이한영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던 것이다.

  “푸하하. 이 녀석 뭐야. 쇠똥만한 녀석이 말을 하잖아. 재밌는데. 하하하. 병규야. 얘도 네 친구냐?”

  “치, 친구요?”

  병규의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친구라니. 원수라면 또 모를까. 그때 간신히 그녀의 손에서 풀려난 바퀴벌레 왕자가 겸손하게 한마디했다.

  “치, 친구라니요. 샤바. 절대로 아닙니다. 전 어디까지나 주인님의 소환충에 불과합니다. 샤바샤바.”

  “소환충? 그럼 인석이 널 부르면 넌 쪼르르 나타나는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거야?”

  “그렇지요. 주인님께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은인이십니다. 절 끔찍한 봉인에서 풀어주셨고 혹여 못된 길로 빠질까 야단도 쳐 주시고, 심지어 제 백성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투자도 아낌없이 해 주시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난감할 지경이옵니다.”

  바퀴벌레 왕자는 감격에 찬 나머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아낌없는 투자라.”

  호랭이는 힐끔 병규를 쳐다봤다. 역시나 모기향처럼 하얗게 산화하고 있다. 저 특대형 해충을 없애려고 얼마나 눈물나게 노력했던가. 그런데 그 모든 노력이 모두 지 백성들을 위한 과감한 투자였단다.

  “절망할 만하지.”

  호랭이는 병규의 손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동감을 표했다.

  “야. 이 녀석. 정말 멋진 놈인데? 보스를 위한 갸륵한 마음이 구구절절이 느껴져. 그렇지 않냐?”

  “그, 그렇습니다. 누님!”

  여태 태연하던 조폭 형님들, 이번만은 잠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긴 바퀴벌레를 상대로 보스니, 갸륵한 마음이니 하는 기상천외한 말들이 튀어나왔으니 놀랄 만도 했겠지.

  “좋아. 이런 멋진 녀석에게 내가 술 한 잔 대접하지 않을 수 있나. 자, 받아라.”

  호탕하게 껄껄 웃은 이한영은 바퀴벌레 왕자에게 턱! 하고 술잔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건 이 녀석이 먹기 좀 그렇겠는걸? 야. 누가 대접 좀 들고 와.”

  부하가가져온 대접을 받은 그녀는 남아 있는 위스키를 모조리 털어 넣었다.

  “자뭇 남자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자 받아.”

  눈앞에 털썩 떨어진 대접을 난감하게 바라본 바퀴벌레 왕자는 슬쩍 병규의 눈치를 살폈다. 감히 주인 앞에서 마셔도 되는지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병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완전히 산화해 버린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아무말씀 없으신 걸 보니 괜찮다는 거겠지. 샤바?“

  병규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위스키에 입을 댄 바퀴. 한 모금 삼키자마자 팽팽하던 더듬이가 축 늘어져버린다.

  “저기...... 샤바.”

  “왜? 독하냐?”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이한영이 쀼루퉁한 표정으로 묻자 바퀴벌레는 말하기 미안한듯 주저주저 이야기를 꺼냈다.

  “좀...... 밍숭맹숭한 것 같은데 바퀴약 좀 타주시면 안 될까요? 그 레이드~ 뭐라고 하는 게 좋던데요. 샤바샤바”

  “......!”

  사람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버렸다. 놀랍도록 민감한 신경을 가진 바퀴벌레 왕자는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움찔 놀라며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한 300cc만 주셔도 되는데. 샤바.”

  휘청.

  조폭형님들의 그 든든한 자세가 조금 흔들렸다. 흠칫 놀란 바퀴. 불쌍함이 절로 느껴지는 음성으로 최후의 한마디를 던졌다.

  “고, 고추장이라도. 샤바샤바.”

  샤아아아아아아아아......

  술자리를 빙 둘러싼 조폭 형님들에게서 동시에 울려대는 10ch써라운드 핏기가시는 소리.

  묵묵히 술잔 속에 찰랑이는 술을 먹을까 말까 망설이던 호랭이가 고개를 쳐들며 한 마디한다.

  “자꾸 들으니 묘하게 정드네. 이 소리.”

  모두가 빠삭 굳어있는데 이한영이 쾌활하게 웃으며 소리친다.

  “야. 이 녀석. 비실거리게 생긴 것치고는 화끈한데? 300cc? 하하. 녀석. 그렇게 통이 작아서 어디다 쓰겠냐? 여봐라~ 준비하는 김에 그 레이~ 뭐시기라는 거 한 5,000cc 정도 가져와. 쩝. 그런데 바퀴약이라는 게 그렇게 맛있나? 이 참에 한 번 먹어봐? 여~ 잊지 말고 내가 먹을 것도 좀 챙겨 와~.”

  “쿨럭.”

  급기야 병규는 각혈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전국의 각처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이한영은 보기보다 이쪽계통에서 유명한 인물인 듯, 전국각처에서 날아든 전화로 전화통은 불이 날 지경이었다. 대부분이 며칠 전 마을로 새로 들어온 일본인이 있다거나, 얼마 전에 나타난 새로운 조직의 우두머리가 일본인 같아 보인다는 것, 또는 버려진 창고와 공장에 밤마다 불이 켜진다는 식의 보고들이었다.

  “대단하다.”

  병규는 진정으로 이한영의 능력에 대해 감탄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의 손을 빌리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걱정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연락 온 곳을 전부다 수색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자그마한 조직 하나 운영하는 정도의 사람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완이다.

  오전 중에 연락 온 곳을 집계 낸 이한영은 몇 군데 협조를 구하는 연락을 한 후, 수하들을 불러 모았다.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려는 것이다.

  “경기도 이외의 지방은 아예 포기해. 그쪽은 그쪽 애들에게 맡겨 놓으면 돼. 우리는 몇 패로 나뉘어 서울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벙위를 넓혀간다. 녀석들이 제일 처음 나타난 곳이 서울이라는 점을 볼  때, 놈들의 본거지도 서울일 확률이 높다. 수도권만 봐도 하루 만에 모두 뒤지기엔 지나치게 광범위해. 샅샅이 뒤진다는 생각은 버려라. 놈들의 조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생가해보면 분명 이상한 점이 있을 거야. 외부 경비가 철통같다던가.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이 너무 깨끗하거나 하는 것들에 주의한다. 놈들에겐 3미터가 넘는 거대한 괴물이 있다. 이런 괴물들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이동시키려면 대형 트레일러가 필수야. 쪽바리 녀석들이 일본에서 그딴 차량을 들고 왔을 리 없잖아. 그렇다고 새로 샀을 리도 없다. 기록이 남으니까.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지? 최근에 대형 트레일러가 도난 된 지역이 있는지 알아봐. 멍청한 경찰처럼 신고 된 것들만 뒤지지 마.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었으면 굳이 우리 손을 빌리지 않아도 해결됐을 거다. 너희들이 알아봐야 할 것은 장물아비들의 물건이야. 불법으로 들인 물건이라 신고도 할 수 없는 장물 말이야. 이쪽을 중심으로 알아봐. 일단 의심 가는 곳을 발견하면 재빨리 내게 연락해. 알았나?”

“네! 누님.”

  그녀의 물음에 백여 명 가까이 모인 조폭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병규는 이한영이 대해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제까지의 단순해 보이던 모습과 달리 수하들 앞에서는 무섭도록 냉철한 모습이다. 특히 사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수색 범위를 한정하는 능력은 특재대 본부장인 자영에 비견될 만했다.

  지시를 받은 조폭들과 이한영이 우르르 빵집을 나섰다. 주르르 내려가는 빵집의 셔터를 보며 병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미안합니다.”

  깊게 고개를 숙이자 눈썹을 찌푸리고 있던 이한영이 그의 턱을 살짝 툭 하고 쳤다.

  “됐어. 임마. 어차피 위장으로 하는 일이야. 그리고 말했잖아. 오늘 손해 본 만큼 나중에 네 녀석을 확실하게 부려먹어 주겠다고. 이번 일 끝나면 단단히 각오해. 알았지?”

  “네.”

  병규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보였다.

  “가자!”

  그녀가 호령하자 조폭들이 일제히 차량에 올라탔다. 그렇게 암흑가의 손에 빌린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되었다.

  

  병규는 정말로 하루 종일 뛰어다녔다. 맹세코 잠시도 쉬어본 기억이 없었다. 차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도 그는 혹시나 휙휙 지나가는 풍경 속에 놈들을 찾을 수 있을까 눈을 부라렸고, 이한영은 지도와 전화기를 품에서 잠시도 떼지 못했다.

  번화가를 제외한 서울의 거의 전 지역을 뒤지고, 이어 서서히 수색의 반경을 넓혀갔다. 서울 근교는 건물이 밀집된 지역이 드물만큼 숨어들기 적당한 곳이 많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물론 수색작업을 펼치는 그들의 피로도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다. 그러던 와중에 수색작업에 참가한 차량 하나가 교통사고가 나고, 세 명의 동료가 병원으로 실려 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망할 녀석. 운전 하나 똑바로 못하다니. 분명 어제 술에 만취해 있었을 거야. 젠장할 자식.”

  이한영은 병규가 미안해할까 봐 도리어 사고 낸 녀석을 성토했지만 그렇다고 병규의 마음이 가벼워질 수는 없었다.

  도시의 빌딩 숲으로 서서히 땅거미가 졌다.

  붉게 타오르는 서산을 바라보는 병규의 마음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하루 종일 병규와 이한영이 쏟아 부은 노력은 정말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밥은커녕 물조차 다른 지역을 이동하는 사이 잠깐잠깐 입술을 축이는 정도밖에 입에 대지 못했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녔다. 신발 밑창은 오전 중에 떨어져 나갔고, 새로 샀다는 이한영의 운동복은 땀과 먼지로 몇 년 입은 옷처럼 후줄근하게 변해버렸다.

  그렇게 애썼는데. 그렇게 기를 썼는데도 아무것도 건진 것이 없다니.

  맥이 탁 풀려 버렸다.

  병규는 전력을 다한 마라토너처럼 자동차 시트에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이거. 얼굴에 좀 덮어둬라. 그럼 피곤이 좀 가실 거야.”

  이한영이 생수로 적신 수건을 건네주었다. 그녀 역시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초롱초롱하던 눈에 핏발이 서고. 입술은 건조해서 바싹 타들어 갔다.

  그런데도 그녀는 아직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고마워요. 누님.”

  병규는 목구멍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수건을 받았다.

  차갑다.

  얼음에라도 담가두었었나 보다. 수건을 얼굴에 대자 몸서리쳐지는 냉기가 피부로 스며든다. 그런데도 얼굴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젠장!

  병규는 속으로 욕을 했다.

  젠장! 젠장! 젠장!

  이게 뭐야.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울분이 끓어올라 미칠 지경이다. 뭔가를 미친 듯이 두들겨 부수고 싶다. 병규는 손을 어깨 뒤로 뻗어 시트를 꽉 움켜잡았다. 쥐여 짜지듯 손 안에서 뭉개지는 시트의 감촉에 이빨을 질끈 깨물었다.

  젠장할!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다.

  가슴 아래 담담한 뭔가가 불길처럼 타오르는데, 콱 뱉어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할 노릇이다.

  그렇게 미칠 듯이 타오른 분노와 울분.

  드 다음 그의 어깨를 눌러온 것은 무기력이었다. 피로가 쏟아졌다. 뜨거운 얼굴이 지금은 아예 용광로 같다. 물에 젖은 수건이 뜨뜻해지자 어떻게 알았는지 누님이 다른 수건으로 갈아줬다.

  병규는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을 꼭 감고 모르는 척 있었다.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냉기를 풀풀 쏟아내는 수건으로 얼굴의 열기를 식히며 온몸을 내리누르는 무기력에 애써 저항할 때였다.

  “저, 주인님. 샤바.”

  바퀴벌레 왕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녀석은 또 지금까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거지? 하긴 상관없지. 녀석이 어디에 짱 박혀 있었건.

  ‘하긴 저 녀석도 힘들겠구나.’

  녀석도 원해서 바퀴벌레가 된 게 아닐 테고 또 생판 모르는 존재들뿐인 낯선 행성에 오고 싶지도 않았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저 대답해준 것뿐이었다.

  “...... 뭐야?”

  “저, 주인님. 요즘 계속 찾고 있던 거. 혹시 퀴니예요? 샤바.”

  “...... 그래.”

  역시나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병규는 정녕 두 귀로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퀴니라면 어디 있는지 제가 알고 있는데요. 샤바샤바.”

  “......!!”

  “뭐, 뭐라고?”

  몸을 벌떡 일으키며 병규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운전을 하던 족제비가 그만 핸들을 놓쳐 차가 중앙선을 넘어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했다.

  “무슨 일이야!”

  “같이 황천 가자 이거냐?”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나자 조폭들이 인상을 쓰며 화를 냈다. 일이 제대로 안 풀려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은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깐.”

  이한영이 목소리를 높여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방금 전에 그 조그만 친구가 뭐라 말한 것 같은데?”

  그녀의 시선은 병규의 손에 들려 있는 바퀴벌레 왕자를 향하고 있었다. 병규 역시 막 다시 물어볼 참이었다.

  “바퀴. 말해봐. 방금 뭐라고 했지” 퀴니. 퀴니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고 했어?“

  병규가 급하게 몰아붙이자 바퀴벌레 왕자는 조금 당황한 듯 더듬이를 쭉 뻗쳤다.

  “네. 샤바.”

  “어떻게 네가 안다는 거야?”

  조급한 목소리로 병규가 다시 물었다. 특재대와 누님의 손을 빌어 음으로 양으로 온 힘을 기울여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언제나 구석에 숨어있던 바퀴벌레가 퀴니의 소식을 알고 있다니. 그렇다고 바퀴가 퀴니의 뒤을 졸졸 따라다녔던 것도 아니다. 언제나 그를 몰래 따라다니지 않았던가.

  “백성들이 전파를 보내왔어요. 샤바.”

  바퀴벌레는 더듬이를 쭉 뻗었다가 번개모양으로 굽히며 대답했다.

  “백성들이라면...... 바퀴벌레?”

  “네. 샤바. 아주 멀리는 힘들어도 근방의 바퀴벌레들과는 마음이 통하지요. 영혼차원의 교신이라고 할까~ 따따미지근한 교감이라고 할까~ 하여간 말로 표현 못할 거시기한 것이 있답니다. 샤바샤바.”

  “허. 바퀴벌레끼리의 교감이라.”

  가만 얘기를 듣고 있던 사내들이 부르르 몸을 떤다. 바퀴벌레 왕자의 긴 더듬이를 보니 안테나가 떠오르기는 한데, 왠지 바퀴벌레들끼리 영혼차원의 따따미지근한 교감을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영 기분이 거시기하다.

  “그런데 퀴니가 있는 곳에 그 바퀴벌레들이 있다는 거야?”

  잠시 공황상태에 빠져있던 병규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며 물었다.

  “네.”

  “하긴 바퀴벌레가 없는 곳은 북극과 남극뿐이라고 했으니. 최고의 정보통이잖아. 우리가 바보였네. 좀 허탈한걸?”

  이한영이 쓸쓸하게 웃었다.

  “이 녀석아. 그런 게 있었으면 진작 얘길 했어야지.”

  괜히 무안해진 병규는 바퀴벌레 왕자를 퍽 소리 나게 때리며 타박했다. 그런데 바뮈벌레 왕자의 껍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단단했다. 슬쩍 툭 쳤는데, 쇠뭉치를 때린 것처럼 뼈끝까지 찌르르 시려오는 게 아닌가. 하도 아파서 눈물을 찔끔거리는데, 그의 행동을 오해한 이한영이 어깨를 두드려 주며 쾌활하게 웃는다.

  “됐다. 그게 뭐가 미안하다고 사내자식이 징징대고 우냐? 이 누님은 벌써 다 잊었다. 이렇게라도 찾았으면 됐지. 안 그러냐. 얘들아?”

  “그렇습니다. 누님.”

  병규는 차마 주먹이 아파서 그런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한참 난감해하고 있는데 바퀴벌레 왕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병규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주인밈. 샤바.”

  “왜? 바퀴.”

  “근데 제 이름은 바퀴가 아닌데요. 샤바.”

  “알았어. 바퀴.”

  “저, 그게. 마차바퀴도 바퀴고, 자동차바퀴도 바퀴고, 기차바퀴도 바퀴고, 톱니바퀴도 바퀴고, 수레바퀴도 바퀴고, 캐스터바퀴도 바퀴고, 우레탄바퀴도 바퀴고, 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제 이름은 바퀴가 아니라는 거죠. 샤바.”  바퀴벌레 왕자가 눈을 말똥말똥 뜨며 조심스레 말한다. 무슨 놈의 바퀴 눈이 저렇게 크고 동글동글한지. 외계 바퀴라 그런지 생김새가 징글징글한 지구 바퀴벌레들이랑은 많이 다르다. 언뜻 보면 눈 큰 풍뎅이 같은 게 은근슬쩍 귀엽기도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은근슬쩍 그런 것이지만.

  “알았어. 바퀴.”

  “샤, 샤바.”

  바퀴벌레 왕자는 생각했다. 참 의지력하난 굳건한 주인이라고. 하긴 대화를 하는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봐야 했지만.

  ‘언제 날 잡고 주인님께 내 아름답고 고상한 이름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야겠다. 샤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는 바퀴벌레 왕자였다.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어.’

  굳은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하던 자영은 극도로 초조해진 상태였다. 고층건물들의 거대한 그림자가 땅 위로 드러누우며 서산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을 쓸쓸히 배웅하고 있었다.

  하루.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마지막 데드라인을 넘어버렸다. 이제는 정말로 최후의 수단을 사용해야 할 때다.

  선계를 떠올리자 들끓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 선택으로 인해 과연 인간계가 어떠한 영향을 생길 것인가. 어쩌면 지금까지 수수방관하고 있던 선계가 직접적으로 인간계의 일에 간섭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자신이라는 존재자체가 선계의 간섭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대체 소울임펙트가 뭐지? 뭔데 수천 년이나 인간계의 대혼란에 초연한 모습을 보였던 선계가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단순히 능력자들이 깨어난 것 때문에 선계가 이런 급작스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 리는 없다. 아직 수행이 낮은 자영조차 이 현상이 어떤 큰 변화의 징조라는 것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생각하고, 정신을 모아 천기를 읽어보려 했지만 구미호의 엄청난 능력으로도 그 이면에 드리워진 사연을 읽어낼 수 없었다.

  이것만 해도 골치가 지끈거릴 지경인데, 또 한 가지, 지금 자여을 골치 아프게 하는 또 다른 의문은 쿠로다 키요타카의 의도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녀석들의 조직이 신풍(카미카제)이라 불리는 것도 알아내었고, 일본 내 조직의 현황과 능력자들에 대한 정보도 입수했다. 하지만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여진 신풍관련 문서들 가운데 퀴니와 연결되는 부분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대체 왜 퀴니를 납치해 갔을까.’

  마법 말고는 그다지 특이한 것도 없는데. 그나마 마법은 유럽의 몇 몇 능력자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능력이라 일부러 위험부담이 높은 그녀를 납치할 필요는 없다고 봐야 했다.

  무엇 때문에 퀴니를 노렸을까. 설마 그녀를 미끼로 유럽능력자연합인 가스펠을 움직여볼 심산으로?

  ‘절대 아니야.’

  자영은 확신했다.

  능력자들은 일반인들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릐 무력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폭력에 굶주린 군대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퀴니를 인질로 삼는다면 가스펠은 거래에 응하기 전, 일본 전체를 볼모로 잡을 것이다.

  아마 퀴니에게 작은 피해가 생길 때마다 그 대가로 일본의 도시 하나가 지도상에서 사라질 테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매혹의 능력을 가진 능력자라면 자위대의 군 장성을 구워삶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 테고, 그로 하여금 지하에 꼭꼭 숨겨둔 전술무기의 발사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것도 간단한 일일 테니까.

  시실 대혼란을 초래하기 위해 꼭 도시 단위의 죽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간단히 발전소 몇 곳만 손봐주는 정도라도 도쿄와 같은 대도시는 금세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지금 세상은 전기를 빼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기만능의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경찰과 군대가 있는데 그렇게 쉽게 될 것 같냐고? 그것은 능력자들의 능력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능력자들 가운데엔 빽빽한 지하철 내에서도 한 시간 이상 사람들의 이목에서 완벽히 사라질 수 있는 은신술의 대가도 있고, 1,000명 이상의 집단최면을 순식간에 해내는 무지막지한 능력자도 있다.

  그런 자들이라면 설사 대대병력이 깔려 있는 지역이라고 해도 제집 드나들듯이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능력자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같은 능력자뿐이라고.

  최근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능력자를 모으며 비밀조직을 형성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실제로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곳은 몇몇 나라에 불과하지만.

  만약 신풍이 정말로 가스펠을 가볍게 생각하고 일을 저지른 것이라면 사건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신풍의 참모격인 쿠로다 키요타마, 야마타노 오로치라는 수호신을 가진 그의 능력이 고작 그것밖에 안 된다는 의미일 테니. 문제는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고, 그 사갈같이 간교한 작자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지 도무지 헤어릴 수 없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였다.

  ‘이유가 어떻든 신풍, 그들이 아직 국내를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공항과 부두는 철저하게 봉쇄되었다. 물론 눈에 띄지 않는 감시망이다. 내국인들은 별 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의 감시체제 안에서 신원불명의 일본인이 내국을 빠져나갔을 가능성은 전무라고 할 수 있었다. 군부대도 준전시체제 상태로, 지금 바다는 훈련을 빙자한 군함들로 물샐틈없는 감시망이 펼쳐진 상태다.

  그런데도 그 어떤 곳에서도 신풍의 꼬리가 밟히지 않았다는 것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그들이 은신처에서 사태가 진정되길 기다리고 있다는 것.

  요는 대체 녀석들이 어디에 숨은 것일까 하는 것인데, 일 주일이 넘는 대단위의 수색에서도 아무것도 건진 것이 없었다.

  ‘어쨌든 지금은 퀴니와 선계의 일만을 생각하자.’

  이 결정이 미칠 여파를 감히 감당할 수 없지만, 아무 노력도 없이 대혼란을 맞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화벨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본부장실엔 다섯 개의 전화기가 있었는데, 지금 벨이 울리고 있는 것은 긴급한 상황에서만 사용이 허락되는 본부장실 직통전화였다.

  “네. 특재대 본부장 자영입니다.”

  자영은 심란한 마음을 잠시 억누르며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에선 익숙한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병규 씨? 지금 어디세요? 네. 아직....... 예? 뭐라고요?...... 그런. 지금 어디세요. 아니, 전화 끊지 말고 그대로 연결된 상태를 유지해주세요. 바로 조치하겠어요.”

  수화기에서 입을 뗀 자영은 급히 내선용 전화기를 들어 정보부원들에게 직통회선으로 걸려온 전화의 위치추적을 지시했다. 그리곤 다섯 대의 전화기 중 가장 우측에 있는, 검은 색의 고풍스런 전화기를 들었다. 그것은 또 어딘가로 곧장 연결되는 직통회선이었다.

  “특재대 본부장. 자영입니다. 장관님? 감히 707부대의 출동을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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