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12/102)

4. 쟤! 나 줘

  특수재해대책본부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회의실.

 평소라면 썰렁한 한기만 가득했을 넓은 실내엔 본부장인 자영을 비롯하여 수명의 증력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공공연하게 세금도둑이라는 비하를 들으면서도 좀처럼 회의라는 것을 모르던 그들에게 오늘과 같은 분위기는 실로 범상치 않은 일이었다.

 한데 모여 앉은 그들 앞에는 병규와 퀴니가 자리하고 있었다.

 ‘미치겠네.’

 수많은 시선이 온몸에 꽂히자 병규는 온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아 미칠 것만 같았다.

 이렇게 삼엄하고 심각한 분위기라니, 마치 취조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그 만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퀴니와 둘이 앉아있다지만 실상 거의 대부분의 질문은 그에게 쏟아졌고, 대답도 혼자 해야 했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옆에 앉은 퀴니는 말이 서툰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어리기 때문인지 질문도 거의 받지 않았고, 간혹 묻더라도 병규의 대답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정도에 그쳤다.

 면담은 꽤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딱딱한 의자에 굳은 자세로 앉아있어야 했던 병규는 온몸이 석화되는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퀴니가 더 없이 부러웠다.

 조준엽의 차에 실려 특재대 본부까지 오게 된 병규는 이곳에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퀴니가 능력자라는 사실.

 그것도 유럽 능력자 연합인 가스펠(Gospel)에서 파견된 특별인사로 모종의 임무를 띠고 한국에 파견된 비밀요원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파티가 끝날 무렵, 이운석이 찾던 특별 게스트가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그녀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스펠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있었다. 그녀의 배경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국 정부에서도 은근히 그녀에 대한 예우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모두가 그녀를 존대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한 가지 기이한 것은 아무도 그녀의 능력이 무엇인지, 또 그녀의 수호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심지어 본부장인 자영조차 그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병규는 일단 헛웃음부터 터트렸다.

 세상에. 가스펠이란 곳이 단체로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어린아이를 보호자 하나 없이 무작정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버릴 수 있단 말인가. 혹시나 해서 병규는 본부장에게 퀴니의 나이를 물어봤다. 겉보기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열두 살이란다.

 확실히 또라이들만 모인 조직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병규였다.

 “생기를 흡수하는 능력자라.”

 병규의 설명이 끝나자 이운석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조준엽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받았다,

 “확실히 일본의 능력자 중에 그런 녀석이 있다고 들었다. 게다가 그 녀석은 병규가 말한 인상착의와 아주 흡사해.”

 깍지 낀 손위에 턱을 올려놓은 채 내내 심각한 표정이던 자영이 한마디 툭 던진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오가마라는 두꺼비 수호신을 가지고 있는 자인 것 같네요.”

 “맞아. 바로 그 녀석이지.”

 “그렇다면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군요. 오가마란 자는 상상도 못할 거물과 선이 닿아 있으니까요.”

 “히로부미 이토. 수사노오라는 M 급 배경을 가지고 있는 능력자.”

 “그리고 그 녀석의 부관 노릇을 하고 있는 기요타카 쿠로다도 무시할 수 없는 자예요. 야마타노 오로치라는 자의 능력은 아직까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부하들의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보아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정보부에서는 그를 최소 A 급 이상의 능력자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 이번 일을 일으킨 것이 이토가 맞다면 스크래그에 대한 것도 대충 이해가 된다. 녀석이라면 충분이 그런 괴물을 만들어낼 재력이 있지. 문제는 왜 퀴니 님을 노렸는가 하는 것인데.”

 정신없이 오고가던 대화의 맥이 갑자기 끊겨버렸다. 아무도 이토가 퀴니를 원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계속될 것 같던 침묵을 자영의 차분한 음성이 깨트렸다. 그녀의 고개가 한쪽 구석으로 돌아가자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의 시선 역시 그녀를 따른다.

 “저건 도대체 뭐죠?”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쏟아진 실내의 한 구석. 사람 머리통만한 바퀴벌레 한 마리가 긴 더듬이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오~ 이제야 날 알아봐 주는군. 샤바”

 병규의 눈치만 살살 보고 있던 바퀴벌레 왕자는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지자 마음이 흡족한 듯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려 했다. 그러나 곧바로 떨어진 병규의 날카로운 한마디.

 “찌그러져 있어.”

 바퀴벌레 왕자는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구석으로 파고들며 더듬이로 주인의 심기를 살피는 데 주력했다.

 “바퀴벌레군.”

 김한식이 웅 하고 울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바퀴벌레야.”

 이운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바퀴벌레 맞아요.”

 권예란 역시 찻잔을 나르던 손길을 멈추고 한마디 거든다.

 “바퀴벌레 맞잖아. 케케케.”

 준엽이 게걸스럽게 웃는다.

 “바퀴벌레예요. 확실해요.”

 자영이 손뼉을 마주치며 최종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

 구석에서 병규 눈치만 보고 있는 저 녀석은 지나칠 정도로 크고, 또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 아리송하긴 하지만, 명백한 바퀴벌레인 것이다.

 단지 보통의 바퀴벌레와 달리 눈이 매우 크고 동그라며 그 아래 역삼각형 모양의 입이 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소한 차이에 불과하지만 사람처럼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어찌 보면 귀엽기도 했다. 물론 취향을 몹시 타는 귀여움이겠지만.

 ‘뭐야. 왜들 이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지?’

 병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한바탕 난리라도 날 줄 알았더니.

 그러나 그거 어찌 알까. 사람들이 차마 그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을. 꾹 다문 그들의 입은 지금 사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있는 것이었으니, 그들의 속마음을 살짝 들여다 보면.......

 ‘맙소사! 설마 수호신이 바퀴였던 거야?’

 ‘오 마이 갓뜨!’

 ‘으으. 어딘지 평범하지 않다 했더니.’

 ‘혓바닥 때부터 알아봤다니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바퀴벌레라니 너무했다.’

 ‘바퀴벌레 수호신이야? 세상에 이런 괴사가 있나.’

 ‘망하려는 거야. 휴거야! 드디어 천지가 뒤바뀌려는 거야!’

 ‘젠장. 어떻게 하면 저 수호신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까? 케케.’

 ‘도대체 수호신을 어떻게 현실세계로 부를 수 있었을까?’

 ‘바퀴벌레니까 뭐든지 가능할 거야.’

 ‘그래. 바퀴벌레니까.’

 ‘바퀴벌레라면 말 돼.’

 병규가 들었다면 기절초풍할 음침한 생각들이 묘한 전파를 타고 서로의 마음속을 넘나들고 있었다.

 탁.

 자영이 두 손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요. 오늘 얘기는 이걸로 마치도록 하죠. 그리고 이 자리에서 한 가지 확실히 해둘 것은, 이번 일을 꾸민 것이 누구이건,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허락 없이 귀빈을 납치하려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특재대에 대한 명백한 도전으로 간주된다는 거예요. 잠시 후 따로 명령사항을 전해 드릴 테니 대원 여러분께서는 부디 특재대를 벗어나지 말길 바랍니다. 특별한 볼일이 있으신 분은 제게 따로 통보해주세요. 이번 사건이 끝날 때까지 모두 최선을 다해 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병규 씨?”

 “네. 네?”

 자영이 갑자기 부르자 병규는 당황하여 벌떡 일어서며 대답했다. 자영은 그런 그에게 곱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고생하셨어요. 입대하시자마자 큰일을 해내셨군요. 오늘 일은 상부에 보고해서 수당에 가산되도록 하겠어요. 자, 그리고 이건 이번에 발급된 신분증이에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세요.”

 “신분증요?”

 자영이 내미는 걸 받아보니 특수재해대책본부 소속을 알리는 카드였다. 뒤쪽에 마그네틱 처리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신용카드로서의 용도도 있는 모양이다. 카드를 찬찬히 살펴보던 병규는 하단부에 코드라고 씌어 있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저, 본부장님. 이게 뭐죠?”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COPY라고 써 있는 거요.”

 “아. 그건 병규 씨의 식별 코드예요.”

 “코드? 아이디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바로 그런 거죠. 특재대는 소수정예의 부대이기 때문에 식별번호보다는 이와 같은 식별코드로 전산등록을 하거든요.”

 “흐음. 카피라.”

 카피. 복사. 복제란 의미다. 묘하게 그의 능력과 연관되는 것 같다. 아마도 그런 뜻에서 이런 코드가 붙게 된 것일 테지.

 병규는 묘한 기분이 되었다. 그런 그를 자영이 따뜻한 말로 축하한다.

 “축하해요. 이젠 정식으로 특재대의 요원이 되신 거예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따뜻한 그녀의 목소리에 병규는 온몸이 살살 녹는 것 같았다.

 구미호에게 괜히 홀리는 게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과 다르게몽롱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저야말로.”

 “호호호.”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자영이 작게 웃었다. 어떻게 그 모습조차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하여간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사건의 전말도 밝혀지고, 새로운 임무도 내려졌다. 대원들은 하나 둘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병규 역시 엉거주춤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멀뚱멀뚱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던 퀴니가 총총걸음으로 자영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볼일이 있으세요? 퀴니 님?”

 자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를 잠시 올려다보던 퀴니는 돌연 손가락을 들어 병규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쟤. 나줘.”

 처처척.

 밖으로 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동시에 멈춰졌다. 그들의 얼굴에 동시에 떠오른 경악이란.

 ‘뭐, 뭐냐. 이 전개는?’

 병규의 턱으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 내렸다.

 퀴니의 폭탄선언 이후, 회의실은 난데없는 폭풍에 휘말려야 했다. 대원들은 하나같이 눈에 불을 켜고 퀴니를 말렸다.

 ‘저놈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라는 걱정스런 물음에서, ‘인간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라는 지극히 교과서 같은 훈계까지.

 너도나도 우르르 몰려들어 왁자지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어야 했던 병규. 그는 정말러 지금의 상황이 의아했다. 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저렇게 결사적으로 날뛰는 것일까.

 그저 한두 사람 정도 알아듣게 조용히 설명하면 될 것을. 저렇게 벌 떼처럼 왁자하게 떠드니 오히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지 않은가.

 과연 그런 이유에선지 별의별 악담을 쏟아내며 어떻게는 말려보려던 대원들의 눈물겨운 투쟁은 뚝심으로 똘똘 뭉친 십이 세 소녀에겐 전혀 무소용이었다.

 퀴니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그 어떤 말도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심지어 병규의 수호신이 바퀴벌레라는 악담을 소곤거렸을 때엔, 질색하기는커녕 오히려 두 눈을 빛내며 ‘호오~’ 라는 흡족한 감탄사를 토했을 정도다. 상황이 이쯤 이르자 모두는 두 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본부장인 자영뿐.

 “안 됩니다.”

 자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강력하게 거부를 표했다.

 “퀴니 님은 지금 무서운 적의 표적이에요. 무려 M 등급의 능력자가 당신을 노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녀의 논리 정연한 설명에 퀴니는 가볍게 인상을 찡그리며 짧게 물었다.

 “안 돼?”

 “안 됩니다.”

 자영은 단호하게 답했다.

 “알았어.”

 잠시 그녀를 올려다보면 퀴니가 빙글 몸을 돌리더니 성큼성큼 문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든 자영이 조심스렇게 물었다.

 “저. 퀴니 님. 어디 가시는 건가요? 숙소로 가시는 거면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자영이 목소리를 높이자 막 문밖을 나서던 퀴니가 힐끔 뒤를 돌아봤다. 소녀의 대답은 이번에도 짧고 간결했다.

 “나. 가출. 안녕.”

 싸아아아아악.

 자영을 비롯한 모든 요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다.

 “퀴, 퀴니 님!”

 “빠, 빨리 모, 모셔오세요.”

 대원 서넛이 허겁지겁 달려가서 몸부림치는 퀴니를 덜렁 들어왔다.

 의자에 앉혀진 퀴니는 입을 한 발이나 내민 채로 소리 없는 반항을 계속했다.

 “하아.”

 자영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난감한 한숨이 흘렀다. 대체 저 막무가내를 어떻게 말려야 할까. 그때 턱을 쓰다듬고 있던 이운석이 입을 열었다.

 “그냥 퀴니 님 요청대로 하는 건 어때요?”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들이 그의 반반한 얼굴로 일제히 꼽혀든다. 이운석은 능청스럽게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태연스레 말을 이었다.

 “퀴니 님께서 정말로 병규를 소유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아마 정이 들어서 헤어지기 싫으신 모양인데, 그렇게 좋으면 잠시 함께 있으라고 하죠 뭐.

 곧 반대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특히 사내들의 반응이 전에 없이 드셌다.

 “무슨 소리냐!”

 “팔팔한 청년이 사는 집에 어린 소녀를? 말도 안 되는 소리!”

 “네 녀석도 남자라면 알 것 아니냐. 자취생 방이 얼마나 불결한지. 오죽 했으면 수호신이 바...... 하여간 안 돼!”

 “먹는 건 또 어떻고. 일주일이 안 돼서 영양실조로 쓰러져 버리실 거야.”

 목소리 크기 경쟁이라도 하듯 목청을 높이는 사내들의 말에 병규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그들의 가만 말을 종합해보면 그의 방은 식량공급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눈 덮인 시베리아 한가운데에 고립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허구 많은 성토들 중에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독쟁이, 조준엽의 말이었다.

 “넌 뉴스도 안 보고 사냐? 치마만 두르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발정하는 게 요즘 애들이다. 저렇게 귀여운 퀴니 님이 녀석의 집에 같이 살게 돼 봐라. 아마 이틀도 안 돼서 애 엄마가 되어 버릴걸?”

 ‘애. 엄. 마!!’

 두둥.

 병규는 또 한 번 여린 가슴에 상처를 받았다. 나름대로 순진무구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해온 18년. 그러나 주위는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마음에 상처를 받자, 멍청할 정도로 순진하게만 살아온 지난 세월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아마 주위에 여자들만 없었다면 그는 ‘타락해 버릴 거야!’ 라고 외쳐버렸을 것이다.

 “호. 이틀 만에 애를? 흐흐. 재주도 좋네.”

 가뜩이나 활활 타오르는데, 호랭이가 옆에서 기름을 살살 들이 붓는다. 말도 짜증나지만 흘끔흘끔 쳐다보는 호랭이의 시선은 더 기분 나쁘다.

 그때 가만 사태의 추이를 살피고 있던 자영이 다소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퀴니 님...... 뜻대로 하는 게 좋겠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경악성들.

 “네엣?”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장.”

 “대장. 지금 제정신이야?"

 “대장님! 적들이 또 언제 퀴니 님을 노리게 될지 모르는 긴급상황입니다.”

 “모르시는 겁니까? 남자 혼자 사는 자취방이란 말입니다. 그것도 이제 한창 팔딱팔딱한(?) 나이라고요.”

 경악성들 중엔 병규의 음성도 섞여 있었다.

 “에? 그게 말이 돼요?”

 자영은 슬쩍 고개를 창밖으로 돌려 대원들의 눈빛을 피하며 뒷말을 이었다.

 “퀴니 님께서 뜻을 굽히실 생각이 없으시니 어쩔 수 없어요. 그리고 전 병규 대원을 믿어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는 불경한 짓 따윈,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죠.”

 확신에 찬 그녀의 음성에 병규는 가슴이 뭉클했다. 고작 하루 밖에 안 된 수하를 이렇게 믿어주다니. 그야말로 감동 아닌가. 그러나 그녀는 병규의 생각과 조금 다른 궁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요즘 애완동물은 머리가 좋으니까 주인이 못된 짓을 하면 아마 알아서 막겠죠.”

 분명 호랭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으드드득.

 호랭이 입에서 이빨 가는 소리가 터져 나왔음은 물론이다.

 “애~ 완~~ 동~~~ 무을?!”

 호랭이가 자영을 향해 이빨을 갈고 있을 때, 병규는 조금 불량해진 표정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쳇. 그럼 그렇지. 믿어주긴 개뿔?”

 묘하게 닮은꼴인 주인(?)과 애완견(?)이었다.

 결국 자영의 선택은 그대로 최종결정으로 굳어졌다.

 아무도 퀴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대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그녀를 보내기로 했다.

 갑자기 자영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퀴니는 특재대에서 관리하는 평범한 능력자가 아니다.

 유럽의 십여 개 국가가 인정하고 유럽의 능력자 협회인 가스펠에서 공인한 비밀특사였다. 당연히 거처를 옮기는 것 하나에도 수십 통의 전화와 팩스가 필요했고, 그보다 수십 배는 많은 허가가 필요했다.

 의외로 상부의 허가는 즉시 이루어졌다. 당사자가 원하고 있다는 한마디에 무조건 지원이라는 대답이 떨어진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퀴니가 병규의 자취방에 머무는 동안 소요될 식료품과 필수용품에 대한 비용을 계산하여 공문으로 발송하고, 호텔에 연락을 넣어 짐을 챙기게 했다.

 그리고 대원들 중에 희망자를 선발하여 병규의 자취방 주위에 배치하고, 나머지 인원은 총력을 기울여 적의 은신처를 찾는 데 주력하도록 했다. 블러드머신이라고 불리는 살아있는 전쟁영웅, 김한식은 특별히 현장에서 생포한 일본인들을 취조하는 일을 맡았다.

 그렇게 일단의 일들이 처리되고 나서야, 둥그런 찐빵모자를 쓴 퀴니가 대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병규 앞에 나타날 수 있었다.

 “뭐 어쨌든 같이 지내는 동안 잘 부탁해.”

 병규는 인형처럼 예쁜 금발의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퀴니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응.”

 병규와 퀴니의 손이 맞닿는 순간 그녀를 호위하고 있던 사내들의 표정이 일제히 찌그러졌다.

 ‘저런 죽일 놈!’

 ‘퀴니님!!!!’

 ‘바퀴벌레가아아아아!’

 ‘흑흑. 더럽혀지고 말았어.’

 ‘안 돼. 나의 여신이 바퀴벌레 따위에게.’

 절망에 가까운 그들의 절규. 겉으로 표를 내지 못 한다 뿐이지 그들은 지금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은 지금까지의 불쾌했던 감정을 일시에 털어버리고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너 이름이 퀴니라고 했지?”

 “응. 아므르 퀴니.”

 “그래. 예쁜 이름이네. 난 태병규라고 해. 앞으로 병규 오빠라고 불러. 잘 부탁한다.”

 “응. 잘 부탁. 대변기.”

 “......!!”

 쨍그랑.

 예란의 손에 들려있던 쟁반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후로 잠시 동안 회의실엔 한바탕 폭풍이 지나쳐갔다.

 그때, 한쪽 구석에서 가만 눈치만 살피고 잇던 바퀴벌레 왕자는,

 “오오. 주인님의 성함이 바로 대변기였군.”

 라는 감탄사를 흘리며 날개 안쪽에 ‘대변기’라고 정성스레 적어 넣었다고 한다.(물론 자기네 문자로)

 특재대에서 마련해 준 으리으리한 리무진에 오르며 병규가 물었다.

 “참. 비밀임무가 있다고 하던데 그게 뭐야?”

 달리 할 말도 없어서 아무생각 없이 툭하니 던진 질문이었다.

 “.......”

 병규의 물음에 퀴니는 잠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동그랗게 떠진 눈동자에 어린것은 갈등? 아니면 고뇌?

 병규는 괜히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곤란하면 말해주지 않아도.......”

 “마왕.”

 그의 말을 끊으며 퀴니가 짧게 말햇다.

 “응?”

 “퀴니. 마왕 찾아.”

 무슨 말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병규,

 “혹시 방금 전의 그 말, 네가 찾는 것이 마왕이란 소리니? 그 지옥인지 마계인지 하는 곳에서 대왕 노릇하고 있는 우중충한 괴물 말야?”

 퀴니는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하하. 너도 농담을 할 줄 아는 구나. 난 네가 우스갯소리를 전혀 못하는 줄 알았어.”

 병규는 퀴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껄껄 웃었다. 그러나 그녀는 웃지 않았다. 조금 굳은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을 뿐이다.

 하여간 그렇게 병규는 퀴니라는 새 식구를 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지방으로 향하는 리무진의 지붕 위에는 잠시 잊고 있었던 외계의 불청객이 자리를 턱하니 차지한 채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호오. 이곳의 마차는 정말 신기하군. 샤바. 물도 걸쭉하게 빛깔도 마음에 딱 드는 걸? 그야말로 신이 우리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안배한 별이 아닌가. 하하하. 이렇게 좋은 구경을 하다니. 모두 주인님 덕분이야. 샤바샤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