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백성들아! 저 놈을 묻어버려라
모두들 숨을 죽였다.
그 순간만큼은 바람마저 움직임을 멎었다.
허공에 떠오른 무려 사람의 머리통만한 바퀴벌레 왕자를 보고 모두 할말을 잃었다.
바퀴벌레는 징그러운 날개를 퍼덕거리며 감상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금발의 소녀를 거쳐 흑의인들. 두꺼비 사내를 막 지났을 때,
“뭐, 뭐야? 저거!”
병규가 경악성을 질렀다. 순간 바퀴벌레와 그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아! 샤바!”
돌연 바퀴벌레는 세 쌍의 다리를 낙하산처럼 활짝 펴며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주인님! 샤바, 주인님이시죠? 그렇죠? 주인니이이이임!”
소름이 쫙 끼칠 정도로 정겹게(?) 소리친 바퀴벌레는 엄마와 상봉한 마르코(주. 엄마 찾아 삼만 리의 주인공)처럼 눈물을 뿌리며 병규에게 달려들었다.
바퀴벌레 왕자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손톱만한 바퀴벌레가 달려들어도 기겁을 할 판에 이놈의 무려 사람 대갈통만 한 놈. 그야말로 징그러운 놈이 사상초유의 크기로 달려드는 것이다.
“히이이이익!”
병규는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자지러졌다. 이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정신없이 물러서는 모습이 기괴하다기 보다는 불쌍하다.
“어라?”
바퀴벌레는 병규의 반응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너, 너 뭐야!”
병규가 발작적으로 소리쳐 물었다.
“누구냐니요, 주인님이 불렀잖아요. 전 주인님이 소환한 바퀴벌레 행성의 바퀴벌레 왕자예요.”
“나, 난 너 같은 거 부른 적 없어.”
“그럴 리가요.”
그때 소녀가 다가와 바퀴벌레의 등껍질을 쿡쿡 찔렀다. 바퀴벌레가 빙글 돌아서자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바퀴벌레 왕자가 전혀 징그럽지 않은 모양이다.
“나야.”
“어? 나라니?”
한국말이 서투른 소녀는 봉인이 풀린 상자를 들어 보이며 다시 짧게 말했다.
“나야.”
“설마. 네가 날 풀어줬다는 거야?”
“응.”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이상한데.”
바퀴벌레 왕자는 병규와 소녀를 번갈아 보며 혼란스러워하더니 몸 전체를 갸우뚱해 보였다.
“원래 소환사와 소환충 사이에는 유대감이랄지, 친근감이랄지 하여간 말로 표현 못할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근데 너에게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아.”
“동질감?”
“같은 부류라고 느끼는 것 말야.”
“흐음.”
소녀는 턱을 감싸며 곰곰 생각했다.
바퀴벌레 왕자의 꼼지락거리는 여섯 개 다리와 긴 더듬이는 너무도 매력적이고, 번질번질한 등껍질은 침이 꿀꺽 날 정도로 탐나지만 아무래도 저걸 안고 다니면 여기 사람들이 굉장히 싫어할 것 같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같은 부류라는 말에 묘한 반발심이 일었다.
그래서 소녀는 바닥에 떨어진 상자와 병규를 번갈아 가리키며 바퀴벌레 왕자에게 말했다.
“이 상자, 쟤꺼!”
소녀가 배신 때리는 순간,
“헉!”
병규의 입에서 숨 가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소녀가 인정하자마자 바퀴벌레 왕자는 곧바로 더듬이를 촐랑거리며 고개를 휘익 돌렸다. 곧이어 검고, 넓적하고, 다리 많고, 긴 더듬이가 출렁거리고, 밤색의 그물망 날개가 파드드득 소란스럽고, 각질의 몸뚱이가 삐거덕거리는, 그런 복합적인 징그러움을 예술의 경지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오옷! 역시 당신이 제 주인님이었군요. 샤바. 한눈에 딱 알아봤습니다. 왠지 말로 표현 못할 친근감을 받았사옵니다. 샤바샤바.”
다시 눈물을 뿌리며 달려드는 바퀴벌레 왕자.
“끄아악. 저리가! 저리가!”
병규는 광견병 걸린 강아지처럼 미쳐 발광했다.
“크흐흐. 같은 부류. 크큭. 같은 냄새가 난다고? 크크크.”
호랭이가 상황도 잊은 채 실실 쪼갠다. 반대로 병규의 얼굴은 그야말로 광인 대기 상태였다.
“주인니~ 임.”
바퀴벌레의 부르짖음이 묘하게 애달프다. 왜일까.
“흐읍. 뭐...... 냐. 이 사태는...... 흐읍.”
매사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던 오가마. 하지만 그마저도 바퀴벌레 왕자의 출현 후부터는 분위기에 휩쓸려 잠시 혼이 빠져 있었다. 이런 추태가 있나.
‘일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지?’
의기양양하게 나섰건만 어느새 오로치에게서 받은 수하들과 갓파까지 모조리 아작이 나있다. 그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이게 모두 하찮은 벌레 때문에 와들와들 떨고 있는 눈앞의 조그만 녀석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흐읍. 이노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는 음성과 함께 그의 거대한 주먹이 병규의 머리통으로 날아들었다.
부우우웅.
대포라도 날아가는 듯 요란한 파공성.
“으악.”
귀밑을 스쳐가는 날카로운 바람소리에 병규는 깜짝 놀랐다. 뭔가 진득한 것이 뺨을 타고 내려왔다. 손으로 찍어 보니 벌건 피가 묻어 나온다.
‘아차차. 그러고 보니 괴물 같은 녀석과 싸우고 있었지.’
저 망할 놈의 바퀴벌레 때문에 잠깐 잊고 있었다.
‘젠장 잊을 걸 잊어야지. 목숨이 걸린 일인데.’
다급히 몸을 일으키는 병규, 그러나 그가 채 자세를 잡기도 전에 오가마의 이격이 그의 머리를 짓누를 듯 내리꽂히고 있었다.
미처 요수의 발톱을 꺼내들 여유도 없었다. 아직 마음 가는 대로 능력이 발현되는 정도까지는 못되었던 것이다.
“으악”
다급한 김에 병규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순간,
“무엄하다. 감히 내 주인님께 무슨 짓이냐!”
검은 덩어리 하나가 빛의 속도로 날아들었다.
바퀴벌레 왕자였다.
급하게 날아온 바퀴벌레 왕자는 병규의 팔에 매달렸다. 넓적한 바퀴벌레가 팔에 매달리니 꼭 팔목에 차는 방패처럼 보였다.
“흡. 지저분한...... 벌레. 뭉개준다!”
휘이이이잉.
거친 파공음이 공기를 쥐어뜯는다. 그리고 곧바로 들려온 뼈와 살점이 으스러지는 듯한 끔찍한 파열음.
빠가각.
과연 병규와 바퀴는 한데 뭉쳐 쥐포가 되어버렸을까? 그렇게 한데 뒤섞여서 어찌어찌 말도 안 되게 부활하면 바퀴인간의 저주?
“끄으윽.”
진득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병규의 것도 바퀴벌레의 것도 아니었다. 놀랍게도 신음소리의 주인공은 무자비한 주먹을 날리던 오가마였다.
쿵쿵.
큰 족적을 남기며 뒷걸음질치는 오가마의 얼굴은 온통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바퀴벌레 왕자와 병규를 찍어 누르며 새로운 이야기의 실마리(바퀴인간의 저주?)를 제공할 듯싶었던 그의 무쇠와 같은 주먹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하게 뭉개져 있었다.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에 주먹질을 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피부는 사포질을 한 것처럼 죄다 벗겨져 있고, 손가락뼈는 가닥가닥 부러져 길게 찢겨나간 근육조직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보는 것만으로도 놀라 까무러치거나 토악질을 할 만한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그러나 오가마는 잠시 눈가를 찡그렸을 뿐, 마치 남의 일인 양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팔엔 눈길도 안 준 채 병규의 팔에 매달린 바퀴벌레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흡. 저놈의...... 벌레!”
마지막 순간, 그의 주먹이 징그러운 벌레의 등짝을 후려갈기려는 찰나, 바퀴벌레의 등껍질에서 음습한 기운이 튀어나와 그의 주먹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거였다.
물론 바퀴벌레 역시 무사하진 않았다.
“아뜨뜨뜨뜨.”
바퀴벌레 왕자는 뜨거운 화상이라도 당한 것처럼 날개를 파닥거리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별반 다른 부상은 보이지 않았다.
오가마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주먹 하나가 회생불능으로 완전히 박살난 대가가 고작 아뜨뜨?
바퀴벌레의 등껍질이 아무리 딱딱하다 한들, 그의 주먹 역시 같은 두께의 철판쯤은 무리 없이 뚫어버릴 수 있는 강권. 애초에 말도 되지 않는 결과가 아닌가.
다른 건 몰라도 고작 지저분한 벌레와의 대결에서 참패를 당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안겨주었다.
그런데 돌연한 사태에 분노한 것은 비단 그뿐이 아니었다.
“이런 발칙한 놈. 감히 이 몸의 주인님을 암살하려 하다니. 그 죄. 일벌백계의 형벌로 다스리리라.
오가마를 발가락질하며 버럭버럭 고함을 지른 자칭 바퀴벌레 왕자. 갈색의 날개를 파다닥거리며 허공을 날아오르며 힘찬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오오. 머나 먼 별의 백성들아. 너희들의 왕자가 왔으니 어서 나타나 명을 따르라. 명을 따르라.”
바퀴벌레 왕자의 음성은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방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그런 바퀴벌레의 기이한 행동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죄다 인상을 찌푸렸다.
“흐읍. ......?”
“저 놈. 또 뭐 하는 거야?”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 것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던 호랭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헌데, 마치 그런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소름이 오싹 돋는 기이한 소음의 귓가를 갉아먹어 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뭐, 뭐야. 이 소린.”
얼이 빠져있던 병규가 벌떡 일어서며 안절부절못한다. 그만큼 파도처럼 멀리서 다가오는 소음은 듣기 괴로운 것이었다. 특히 귀가 예민한 호랭이가 다른 사람보다 괴로움이 더 했다.
“윽. 미치겠다.”
호랭이는 앞발로 두 귀를 꼭 누른 채 끙끙거렸다.
그때,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방을 살피고 있던 소녀가 한쪽을 손가락질했다.
“저기.”
“뭐, 뭐야?”
병규와 호랭이는 급히 소녀가 가리킨 곳을 쳐다봤다. 하지만 웬걸. 그다지 이상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그러네. 어? 그런데 병규야. 저 건물 도색이 참 특이하지 않냐? 칙칙한 갈색이네.”
“예? 에이 설마요. 어떤 미친놈이 건물을 똥색으로 칠...... 해져 있네요. 어엇. 그러고 보니 다른 건물들도 모두 색이 시켜매요. 광택도 별로 인 것이.......”
“벼, 병규야. 아무래도 이상하다. 따, 땅도 시커매.”
“네? 헉!!”
병규의 입에서 경악성이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들 주변으로 사방 10여 미터를 제외한 거의 모든 땅이 한결같이 흑갈색으로 번질거리는 것이 아닌가.
“이, 이거 설마.”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생각. 절대로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줘.”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실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늘에 떠 있는 바퀴벌레 왕자의 호령이 떨어졌다.
“저 악적을 묻어 버려라!”
그리고 모두는 보게 되었다. 주위를 가득 뒤덮은 셀 수 없이 많은 바퀴벌레 떼가 회오리처럼 일어나 폭풍처럼 하늘을 가린 바퀴벌레들이 다시 낙뢰처럼 떨어지는 모습을.
파다다다다다다다다닥.
후두두두두두두두두두둑.
기막힌 소음과 함께 오가마는 말 그대로 바퀴벌레 무리에게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욱!”
병규의 두 볼이 둥그렇게 솟았다. 호랭이는 이미 그 옆에서 토악질을 하는 중이었다.
한 마리만 봐도 징그러워 돌아버리실 바퀴벌레가 한 무더기. 아니 집채만큼이나 모여서는 눈, 코, 입 안 가리고 전신으로 달려드니. 그 엄청난 모습이란!! 아프리카의 메뚜기 떼들은 그에 비하면 차라리 귀여울 정도다.
“착한 백성들이여. 녀석에게 지옥 끝을 보여주거라.”
마침내 바퀴벌레 왕자의 마지막 명령이 떨어졌다.
촤촤촤촤촤촤촤.......
파드드드드드드드드.......
헬기의 프로펠러 소음을 수천 배 확대시킨 것 같은 엄청난 소음이 폭풍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소음 속에서 한 덩어리처럼 뭉쳐있던 바퀴벌레가 거대한 해일처럼 일어나 파도처럼 밀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 꼼짝없이 갇혀있던 오가마는.......
“흡흡흡흡흡흡흡!!”
놀랍게도 바퀴벌레 파도 속을 열심히 헤엄치고 있었다. 징그러운 벌레 속에서 손발을 움직이며 발버둥치는 모습에서, 병규와 호랭이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절대적인 공포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감히 눈뜨고 못 볼 정도로 비참했다.
“아악!! 저건 지옥이야!!!!”
병규는 두 손으로 머릴 감싸 쥐며 절규를 터트렸다.
파도가 휩쓸고 가듯 오가마가 쓸려나간 자리엔 얇게 눌려터진 바퀴벌레 시신만이 가득 남았다.
하늘 높이 떠올라 바퀴벌레 떼를 선두 지휘하던 바퀴벌레 왕자는 더듬이를 길게 빼내며 안타까운 탄성을 질렀다.
“맙소사. 이별의 백성들은 왜 이리 약한 거지? 고작 저 정도 녀석을 날려버리는데 저렇게 많은 수가 죽으면 어쩌자는 거야? 아무래도 날 잡아서 수련 좀 시켜야겠는걸? 샤바샤바.”
금발머리 소녀로 비롯된 엄청난 사건은 그렇게 바퀴벌레 왕자(그것도 외계 생명체!)에 의해 파격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비록 사건은 끝나 버렸지만 결과는 승자 없는 패자들만의 잔치라고 할 수 있었다.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오가마는 바퀴벌레 파도(?)에 휩쓸려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렸고, 호랭이는 한쪽 구석에서 속을 뒤집고 있었으며, 하얗게 타버린 병규는 등에 붙어 있는 바퀴벌레 왕자가 ‘주인님 사랑해요~ 제 사랑을 받아주세요~ 샤바’라고 지껄이는 것도 모른 채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일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는 금발의 소녀는 바퀴벌레 왕자가 들어있었던 빈 상자를 들고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상황은 잠시 후 승용차 한 대가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급하게 정차한 차량에서 뛰듯이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특재대의 요원중의 한 명인 포이즌 마스터, 조준엽이었다.
어제 마신 술에 얼큰하게 취해있던 그는 이제야 불온한 기운을 감지하고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다.
현장을 둘러본 조준엽은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뭐, 뭐야 이거. 전쟁이라도 터진거야?”
사방에 기절해 있는 흑의인들에, 악취를 뿜고 있는 녹색 살덩이들. 게다가 저쪽편의 공장건물은 벽이 송두리째 무너져 있기까지하다. 화약 냄새만 났다면 십중팔구 테러라고 단정지었을 것이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웬 벌레들이. 에잉? 이거 다 바퀴벌레 아니야? 이 동네, 단체로 방역이라도 했나? 그럼 저기에 자빠져 있는 녀석들은 설마 방역하다가 질식해서 기절이라도 한 거라는 거야? 거참 모를 일일세.”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주위를 둘러보던 준엽은 소란의 한 중앙에서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 넌 어제 새로 들어온 신입대원이잖아. 빵꾸라고 했던가? 이봐 빵꾸. 어떻게 된 거야? 여기서 무슨 일이 터진 거야? 이 녀석 무슨 먼지를 이렇게 뒤집어썼지? 이봐. 가스폭발이라도 있었냐? 이봐. 어? 근데 이 녀석 등 뒤의 이건 또 뭐...... 엄마야! 이, 이건 또 뭐야. 바, 바퀴? 그것도 초대형 바퀴벌레잖아. 고, 고놈 참. 귀엽게 생겼구나.”
바퀴벌레 왕자를 발견한 조준엽의 눈이 반짝 빛을 발한다. 그의 능력은 독. 독을 다루는 사람인만큼 기이한 생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가 막 병규에게 쫙 달라붙은 초대현 바퀴벌레를 잡아채려고 할 때, 누군가 그의 등을 콕콕 찌르는 것이었다.
“누구냐?”
고개를 돌려보니 병규와 마찬가지로 먼지를 허옇게 뒤집어쓴 소녀 하나가 그를 멀뚱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처음엔 누군지 몰라 눈살만 찌푸리고 있던 준엽. 잠시 후 그는 하늘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퀴, 퀴니 님이 아니십니까? 아니 어쩌다 이런 꼴이 되셨습니까. 퀴니님이 어제부터 행방불명이 되셔서 지금 특재대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는 자기 딸 나이 뻘밖에 안 되는 소녀의 몸을 정성을 다해 털면서 어디 한군데 잘 못된 곳은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잠시 후, 준엽은 퀴니하고 밝혀진 소녀와 반쯤 혼이 나간 병규, 그리고 그의 애완동물(?)을 챙기고는 특재대 사무실로 직행했다.
그렇게 그 날의 소란은 주동자들이 모두 자리를 뜸으로써 대충 정리가 되었다.
바퀴벌레 왕자가 폭풍처럼 나타나 허리케인처럼 휩쓸고 지나간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사거리, 그곳에 주차된 검은색 승합차 안에서 이상한 대화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끝난 것 같군요. 끊어두었던 회선을 연결할까요?”
굵직한 사내 물음에 젊은 청년쯤으로 보이는 음성이 리드미컬하게 대답한다.
“그렇게 해. 아! 그리고 촬영된 영상은 즉각 본사로 전송하도록 하게.”
“네.”
그들의 끊어 놓았다는 회선은 다름 아닌 경찰서의 전화 회선. 사건이 그 지경에 이르도록 경찰의 출동이 없었던 것은 바로 그런 연유였다.
이들의 움직임은 실로 치밀하여 인근 경찰서로 유입되는 전화회선만 손을 봐 둔 것이 아니라 경찰서 근방에 설치된 휴대폰 용 안테나마저 모두 부서 버리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또한 소방서에서 먼지구름을 발견하고 출동하려는 것도 단순히 방역작업 중 사고라고 미리 전화를 넣어 막았다. 한마디로 사건이 벌어진 일대 구역을 외부와 철저히 차단시켜 버린 것이다.
대체 무슨 이유로.
그 후로 잠시 동안 몇 차례 단조로운 단음이 울렸다. 모든 작업이 끝난 듯 질문을 던졌던 사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영상송출 작업도 모두 끝났습니다.”
“수고했네.”
“저. 그런데.......”
“궁금 한 거라도 있나?”
“총수께서는 왜 저런 어린 소녀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걸까요? 능력자라면 넘쳐날 만큼 많으실 텐데.”
“모르지. 아마도 열도 녀석들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것으로 미루어 질문을 던진 사내보다 한참이나 상관으로 보이는 청년조차 총수의 뜻을 짐작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게 대화는 일단 끝을 맺었다. 그런데 잠시 후 사내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렸다.
“오래된 시계군요.”
청년의 시계가 굉장히 보기 드문 것이었나 보다. 청년이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골동품을 좀 좋아하는 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