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02)

날개도 없는 놈들이 공중전이라닛!

“3,800원입니다. 4,000원 받았습니다. 여기 200원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기계적으로 계산을 마친 병규는 편의점을 나서는 손님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이젠 제법 능숙해졌는걸.”

손님을 대하는 태도를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점장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하하. 일 주일이나 했는데 당연한 결과지요.”

일 주일 만에 비로소 일에 적응된 것 같다는 말이 무에 그리 기쁜지 병규는 가슴을 쑥 내밀어 보이며 쾌활하게 웃었다.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점장이 허허 하고 따라 웃는다.

“녀석. 자신만만해 하는 것은 좋은데, 그러다 언젠가 크게 한 방 먹을지도 모른다.”

“걱정 마세요. 사나이 병규 철학에 한방에 인생 역전한은 일은 있어도 한방에 패가망신하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하하. 네 말처럼만 되면 얼마나 좋겠냐.”

껄껄 웃은 점장은 벽에 걸린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시침은 새벽 4시를 막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 벌써 시간이 됐구나. 워킹 채워 넣고 집에 갈 준비해라.”

“네. 알겠습니다.”

앞치마를 챙겨든 병규는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백룸으로 향했다. 불황이라 그런지 냉장고의 물건들도 별로 빠지지 않았다. 금방 일을 끝낸 그는 대충 손을 씻고 밤새도록 두르고 있던 냄새나는 앞치마를 옷걸이 위로 집어던졌다.

“아우. 드디어 끝이다.”

길게 기지개를 켜자 새벽 내내 혹사당한 뼈마디가 비명을 질러댄다.

“에고. 허리야.”

“녀셕. 한창 나이에 엄살은. 그만 낑낑대고 얼른 집에나 가.”

“네네네.”

근무시간표에 근무시간을 적어 넣은 병규는 가볍게 뛰는 걸음으로 편의점을 나섰다.

“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 많이 했다.”

점장이 그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직 차기만 한 새벽. 병규는 어둠과 여명이 혼탁하게 뒤섞인 푸르스름한 도시 속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텅 빈 새벽의 도시는 참 묘한 느낌을 준다. 잠들어 있다기보다는 죽어 있는 느낌이랄까.

도시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고 말한다. 낮의 활기찬 도시와 그리고 유흥가의 현란한 네온사인만큼이나 흥청망청 녹아드는 환락의 도시.

병규도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변했다.

그가 본 도시는 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활기와 환락. 그리고 그 이면에 잠들어 있는 죽음만큼이나 고즈넉한 적막의 얼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새벽의 도시는 언제나 이렇게 숨 막히는 표정이다.

아마 동트기 전의 미묘한 어둠이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모양이다.

뿌다다다다다다.

스모그인지 안개인지 구별할 수 없는 뿌연 습막을 헤치며 병규는 스쿠터를 달렸다. 침침하게 쏟아지는 비로 시계가 좋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도로가 텅 비어 있다는 것. 이따금씩 지나다니는 택시를 제외하면 차도 거의 볼 수 없다. 비행장의 활주로처럼 훤하게 뚫려 있는 도로를 보면 누구나 질주하고 싶어지는 것이 본능이지만 그가 타고 있는 스쿠터는 시속 60Km가 한계다. 그것도 최고 속도로 계속 달리다 보면 한 시간도 못 가서 엔진이 눌어붙을 것이다.

“이 굼벵이 어떻게 좀 안 되겠냐? 차라리 내가 뛰는 게 훨씬 빠르겠다.”

점퍼의 후드에 들어가 있던 호랭이가 그의 어깨에 두 발을 턱 올리며 빈정거렸다. 원동기의 불안한 움직임에도 태연한 것을 보니 꽤 여러 번 타본 모양이다.

“일해서 돈 버는 거 기왕이면 멋들어진 차나 아니면 좀 큰 오토바이를 살 것이지. 촌스럽게 스쿠터가 뭐냐? 스쿠터가? 차라리 세발 자전거를 몰지그래?”

호랭이가 놀린다. 병규는 그저 씩 웃고 말았다. 자기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호랭이니까.

병규가 나니는 고등학교는 도시의 외곽에 자리하고 있어서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언제나 30분 정도는 스쿠터로 달려야 했다. 평소라면 새벽의 찬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것이 꽤 즐거운 레포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추적추적 비가 내려 영 꽝이다.

확실히 밤일은 몸에 좋지 않은 모양이다. 저녁부터 새벽까지의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전신이 노곤해진다.

“역시 쉬운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병규는 쓴 웃음을 머금으며 스로틀을 당겼다.

끄아아아아앙.

아스팔트를 두드린 스쿠터의 요란한 엔진음이 꼭 아이의 울음 소리 같다. 하긴 보잘것없는 출력으로 빗속을 전속력으로 달리니 힘이 부치기도 할 것이다.

소음만 심한 스쿠터로 기분을 내던 병규와 호랭이가 귀를 찢는 듯한 풀 브레이크의 날카로운 소음을 들은 것은 편의점을 출발한지 10여 분가량이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빗소리와 요란한 스쿠터의 엔진음 속에서도 사고의 굉음은 선명하게 전해져 왔다.

“사고다.”

과속을 하던 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는 사고는 흔한 편이다. 방금 사고가 났으니 어쩌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병규는 즉시 스로틀을 당겼다.

50cc 엔진이 비명을 지르며 힘겨운 질주를 시작했다. 어깨에 매달려 있는 호랭이가 관성에 밀려 후드로 곤두박질쳤다.

“너 무슨 운전을 이따위로 해!”

호랭이의 타박소리가 들렸지만 병규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사고 현장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갤로퍼 한 대가 가드레일을 뚫고 도로 밖 도랑을 뒹굴고 있었다. 다른 차와 충돌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운전미숙이거나 십중팔구 졸음운전이리라.

병규는 119에 전화를 하며 곧장 가드레일을 타 넘었다. 혹시 부살자가 있으면 차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잠깐.”

호랭이가 그의 어깨를 살짝 물으며 경고했다.

“수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병규는 달려가려던 생각을 멈추고 가드레일에 등을 기댄 후 전복된 차량을 유심히 살폈다. 핸드폰에서는 정확한 위치를 물어보는 전화요원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태흥 고등학교에서 시내 방향으로 12km 지점입니다.”

짧게 설명을 마친 병규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검은 배를 드러내며 누워 있는 갤로퍼를 응시했다. 박살난 차량의 앞 유리창 부위에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차량의 운전가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조금 자세히 살펴보니 이상하다. 어둑어둑한 논둑이어서 확신할 순 없지만 사람치고는 그림자가 너무 길었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부연 물보라 속에서 번들거리고 있는 지저분한 녹색의 광채. 옷이 그런 색깔이라면 괼장히 촌스러운 차림일 것이다.

“사람이 아니다.”

어느새 그의 어깨 위에서 갈기를 세우고 있던 호랭이가 코를 실룩거리며 작게 속삭였다. 굳이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병규 역시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경유의 알싸한 냄새에 섞여 지독한 악취가 코를 자극해 왔던 것이다.

“귀신?”

“잡귀 같은 건 아니야. 육체가 있다. 하지만 사람은 절대로 아니야.”

호랭이는 확신하듯 말했다. 멀리서 보기엔 놈은 긴팔원숭이를 쭉 늘려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떠오르는 가운데 예의 주시하고 있던 그림자에서 돌연 두 개의 녹색 광망이 떠올랐다. 놈이 이쪽을 본 것이다.

“뛰어!”

호랭이가 급히 소리쳤다. 병규는 반사적으로 가드레일을 뛰어 넘어 스쿠터 위에 올라탔다.

“왜? 무슨 일이에요?”

시동을 걸며 묻자 호랭이는 다급한 음성으로 독촉했다.

“어서 달려라. 놈의 냄새가 가까워진다.”

엔진의 불규칙한 진동이 시트로 전해져오기 무섭게 병규는 스로틀을 최대로 당겼다.

부다다다.

스쿠터가 힘겨운 비명을 지르며 조금씩 앞으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파핫 하고 길쭉한 물체가 가드레일을 넘어왔다. 병규는 기겁을 하며 튕기듯 스쿠터를 밀었다.

탕.

강한 충격에 오토바이가 휘청하더니 뒷바퀴가 주르르 미끄러진다. 놈이 스쿠터를 후여갈긴 것이다. 병규는 미끄러지는 뒷바퀴를 체중을 이용하며 강제로 바로잡으려 애썼다. 그의 발을 축으로 스쿠터의 후미가 촤르르 밀려난다. 그나마 스쿠터의 중량이 비교적 가벼운 편이라 발 하나로 간신히 제어할 수 있었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 뒤를 돌아보니 주르륵 내리는 빗속에 길쭉한 괴물이 우그러진 철판조각을 들고 있었다.

크기는 대략 3미터 이상. 개구리가 연상되는 청녹색의 지저분한 피부가 가로등 불빛에 번들거리고 있었다.

“뭘 멍하니 있는 거야. 달려!”

호랭이의 급박한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든 병규는 발을 박차며 오토바이를 밀었다. 스쿠터는 엔진이 무척이나 작은지라 출력도 보잘것없었다. 때문에 급격한 가속력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평소에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속이 탈만큼 답답하다. 반면 개구리를 닮은 괴물은 커다란 키에도 불구하고 스프링처럼 온몸이 탄력적이면서도 빨랐다.

병규는 브레이크를 잡으며 체중을 오토바이의 앞쪽으로 실어 스쿠터의 뒷바퀴를 살짝 띄웠다. 일명 잭나이프라고 불리는 재주로 제동장치와 체중이동을 이용한 묘기다.

촤아악

괴물의 갈퀴 같은 손이 도로 위의 수막을 시원하게 걷어냈다. 만약 재빨리 뒷바퀴를 들지 않았다면 무시무시한 일격에 여지없이 찌그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병규는 불안정한 자세에서 스로틀을 최대로 당겼다. 공회전하던 뒷바퀴가 헛바퀴를 돌며 아스팔트 위의 수막을 괴물의 얼굴로 쏘아댔다. 괴물이 주춤하는 사이 병규는 죽어라고 스쿠터를 달렸다.

“방금 그게 대체 뭡니까?”

벌렁거리는 가슴이 채 진정되지도 않았다.

“귀탄(鬼彈)(수신기에 등장하는 요물로, 중국 한(漢)나라시대 영창군(永昌郡)일대 강가에 출몰했다고 하는 괴물이다. 귀탄이 사는 물에는 독기가 있어 몸에 닿으면 병이 들리고 죽기까지 했다.)..... 인 것같다.”

“귀탄?”

“물속에서 사는 괴물이지.”

“물속에 사는 괴물이 왜 육지에서 설쳐대는 거예요?”

유감스럽게도 병규는 호랭이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허덕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놈이 가드레일 위를 미친듯이 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속 60km의 스쿠터를 가볍게 따라잡는 귀탄의 운동능력에 혀를 내두를 판이다.

“제길.”

병규는 급히 핸들을 꺾어 중앙선을 넘었다. 어떻게든 놈에게서 거리를 둬야 했다. 이 새벽에, 그것도 쏟아지는 폭우로 시계까지 불량한 마당에 도로를 역주행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하지만 그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모험을 해야 했다.

텅.

짧고 탄력적인 금속음. 그를 쫓아 귀탄이 가드레일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생긴 것도 개구리 같은 놈이 정말로 엄청난 점프력을 보여준다. 이 속도에서 놈에게 깔린다면 최소한 사망이다. 요행히 살아남는다 해도 놈의 요깃거리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럴 수야 없지.”

병규는 스쿠터를 옆으로 기울며 브레이크를 잡았다.

끼이익.

비에 젖은 브레이크가 비명을 지르고, 옆으로 넘어간 스쿠터가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며 파도 같은 수막을 퍼트린다. 스쿠터의 두 바퀴와 동체를 모두 이용한 급정지.

감작스레 스쿠터의 속력이 줄자 괴물은 그의 머리 위를 넘어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다. 어리둥절 뒤를 돌아보는데, 관성에 의해 물길 위를 무섭게 미끄러지던 스쿠터가 놈의 배로 거칠게 틀어박혔다.

“키엑.”

귀탄의 길쭉한 몸뚱이가 한순간 꺾여졌다. 하지만 생각보다 충격은 크지 않은 모양이다. 스쿠터를 희생해 가면서 온몸으로 처박았지만 그저 괴물을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게 만든 것이 다였다.

스쿠터의 중량은 귀탄에게 충격을 주기엔 지나치게 가벼웠다. 물론 상대가 사람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스쿠터를 몸으로 받아낸 놈은 키만 무려 3미터가 넘는 괴물이다.

“키아악.”

긴 동체를 활짝 피며 놈이 울부짖었다. 불의의 일격에 흉폭한 성정이 폭발한 것이다. 입에서 풍기는 고약한 악취가 병규의 얼굴로 그대로 쏟아졌다.

“이거나 먹어라.”

병규는 악을 지르며 놈의 배에 틀어박힌 스쿠터의 스로틀을 맹렬하게 당겼다.

츠카카칵

뒷바퀴가 빠르게 회전하며 전기톱질을 하듯 무서운 속도로 놈의 뱃가죽을 뜯어냈다. 아무리 출력이 딸리는 50cc 엔진이라지만 회전하는 바퀴의 마찰력은 상상을 불허한다. 전기톱처럼 맹렬히 회전하는 뒷바퀴에 말려 푸른 피와 문드러진 살점이 배기구 뒤쪽으로 모래처럼 흩뿌려졌다.

“키아아.”

이번에는 꽤나 충격을 받은 듯 귀탄은 두 팔을 거칠게 버둥거렸다.

“아직 끝이 아니다.”

병규는 아예 끝장을 내려는 듯 안장을 발로 힘꺽 차며 스쿠터의 뒷바퀴를 놈의 뱃속 깊숙이 틀어박았다.

“캬악.”

쾅 하는 소음과 함께 귀탄의 큰 덩치가 뒤로 주르륵 밀려나갔다. 찢겨진 뱃가죽에서 흘러나온 피와 내장이 실패에서 실이 풀리듯 놈의 궤적을 따라 아스팔트 위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저 정도면 제 아무리 괴물이라도 살 수 없을 테지.”

병규는 아스팔트 위에 볼품없이 엎어진 귀탄의 몸뚱이를 노려보며 가쁜 숨을 헐떡였다.

“너, 스쿠터를 귀신같이 다루는데?”

호랭이가 입을 좌우로 쫙 벌리며 감탄한다. 한순간이긴 했지만 병규가 보여준 기민한 움직임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대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가 스쿠터를 잘 다뤘다면 저렇게 맨땅에 처박는 무식한 짓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병규는 배수로에 처박힌 스쿠터를 끌어올리며 푸념했다. 귀탄의 몸뚱이에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순간 폭발하는 듯한 반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손을 놓은 것이다.

“젠장. 이번 달 알바비는 수리비용으로 다 날아가게 생겼네.”

스쿠터는 백미러 하나가 박살나고, 왼쪽 몸뚱이에 숨길 수 없는 긴 흉터를 남겼다. 가만 보니 핸들도 좀 휜 것 같다. 쥐꼬리만한 알바비로 수리비를 감당해야 하는 병규에게는 크나큰 비보가 아닐 수 없었다.

“저 요괴는 도대체 뭡니까?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예요?”

병규는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상대가 괴물이니 수리비를 청구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귀탄은 본래 물에 사는 요괴다. 물이 없으면 살 수 없지. 아마도 이 비를 틈 타 이곳까지 흘러온 것이겠지.”

“젠장. 어디서 저런 놈이 또 나타난 거지? 설마 호랭이가 요괴를 불러들이는 건 아녜요?”

“내가 삼장법사의 살코기로 보이냐? 저놈은 우연히 만난 것에 불과해.”

“그러니까 이상한 거죠. 보통사람들은 평생가야 요괴 같은 거 안 만나잖아요.”

“그거야 다 네놈의 팔자가 기구해서 그런 거지.”

“아이그. 내 팔자야.”

“그래. 니 팔자야.”

병규 신세한탄을 조롱하고 있던 호랭이는 문득 귀탄에 대해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굉장히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굉장히 중요한 사안 같은데 막상 생각하니 떠오르지 않았다. 뭔가 어렴풋이 떠오르려 할쯤이었다.

“저, 저게.”

경악성에 급히 병규의 손이 가리킨 곳을 쳐다본 호랭이 역시 대경실색하였다.

“죽지 않은 건가!”

까드드드드.

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차일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팔 넓이 정도로 벌어져 있던 뱃가죽은 잠깐사이 흔적도 없이 모두 나아 있었다.

“재생력.”

호랭이는 잊고 있었던 귀탄의 특징을 떠올리며 신음성을 삼켰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높은 곳에서 아래를 향해 내 쏘아지는 살기 띤 괴물의 눈빛에 병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까드드드드.

놈의 목울대가 풍선같이 부풀었다. 놈에게서 풍기는 역겨운 비린내도 한 층 짙어졌다. 문득 호랭이는 귀탄의 또 다른 특기를 떠올리고는 크게 고함을 질렀다.

“독. 피해라. 놈이 독을 쏜다.”

병규의 대응은 신속했다. 호랭이의 긴급한 외침이 들리자마자 재빠르게 옆으로 굴렀던 것이다.

쇄액 하는 채찍소리가 그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채찍이 대체 어디서.’

번개같이 일어난 병규는 채찍이라 생각한 것이 다름 아닌 괴물의 혀라는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입안에 말려있던 혀가 무려 오, 육 미터나 뻗어온 것이다. 혀라고 해서 인간의 말랑말랑한 살덩이를 떠올리면 오산이다. 놈의 혀에 스쿠터의 전조등이 박살난 것만 봐도 채찍에 버금가는 위력이 있다고 봐야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그 혀에 진득하게 묻어 있는 멀건 침이다.

치이이익.

슬쩍 스친 그의 점퍼가 검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저놈의 침에 닿으면 모든 게 녹아버린다.”

호랭이가 나직한 음성으로 경고했다.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 놈의 혀에 스치기만 해도 꼼짝없이 죽어야 할 판인데, 달리 대항할 무기도, 뾰족한 수단도 없다. 설령 피해를 입힌다 해도 엄청난 재생력으로 금세 원상복구 되어버리니 화염방사기 같은 중화기가 아닌 한 도무지 상대할 방법이 없다고 봐야 했다.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도망가는 것뿐. 문제는 놈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것. 넘어진 스쿠터를 세우고 시동을 걸 시간이 필요했다.

“젠장. 그때 그 힘만 있었어도.”

발칸과 싸울 때 나왔던 요수의 발톱만 나와 줘도 할 만할 텐데. 이상하게 처음부터 자유롭게 쓸 수 있었던 빨리 달리는 능력과 달리 요수의 발톱만은 그 후로 한 번도 나와 주지 않았다.

“서둘러.”

호랭이가 귀탄을 향해 풀쩍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마침 귀탄이 목울대를 부풀리고 있었다. 호랭이는 앙증맞은 이빨로 다짜고짜 풍선처럼 부푼 놈의 목을 물었다.

“크엑.”

내장이 배 밖으로 흘러나와도 끄떡없던 귀탄이 발버둥에 가까운 호랭이의 공격에 죽을 것처럼 괴로워했다.

“여기가 이 녀석의 약점이었군.”

놈이 괴로워하면 할수록 호랭이는 더욱 집요하게 목을 물고 할퀴었다. 귀탄이 넓적한 손으로 그를 뜯어내려 했지만 호랭이는 작은 몸을 최대로 활용하여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호랭이.”

가까스로 스쿠터에 시동을 건 병규가 호랭이를 불렀다.

“이제 그만 이별이다.”

호랭이는 작별의 선물로 놈의 목에 8줄의 사선을 그어놓고는 펄쩍 병규의 어깨 위로 돌아왔다.

부다다다.

스쿠터가 요란하게 떨며 빗물로 가득 찬 도로 위를 내달린다. 머플러에 이상이 있는지 소음이 유난히 시끄럽다. 그나마 그렇게 처박았는데도 미끄러운 빗길을 제대로 달려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전조등이 박살나버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병규는 죽어라고 어둠 속을 내달렸다. 허덕거리는 숨소리가 등 뒤를 바짝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놈을 떨구지?’

놈의 엄청난 스피드를 생각해볼 때 스쿠터로는 도저히 따돌릴 수 없었다.

그때 도로 저 멀리서 전조등 불빛이 떠올랐다. 병규의 두 눈에 그것은 천상에서 내려온 한 줄기 구원의 빛줄기와 같아 보였다.

화물차 높이 정도에서 번뜩이는 노랑 경광등. 견인차량이다. 필시 경찰의 무선을 도청하곤 서둘러 사고현장으로 달려오는 것일 것이다.

“여태 역주행을 하고 있었군.”

멀리서 비춰오는 전조등 불빛에 아스팔트를 내려다본 호랭이가 혀를 찬다. 호랭이의 말처럼 스쿠터는 중앙선의 왼편을 죽어라고 달리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든 것은 그 다음이었다. 분명 중앙선을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병규는 여전히 역주행을 계속 고집하는 것이었다.

이놈이 너무 무서운 나머지 눈깔이 뒤집혀 버렸다 걱정했지만 그도 아닌 듯했다. 병규의 두 눈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전조등에 번쩍번쩍 빛을 발하고 있었다. 결코 공포에 눈이 먼 혼탁한 눈빛이 아니었다.

‘설마 이 녀석.’

병규의 노림수를 짐작한 호랭이는 절로 표정이 굳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나 실행할 수는 없는 과감한 결단. 병규는 목숨을 건 도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노리는 도박이 성공하려면 뒤를 바짝 뒤좇아오는 귀탄의 신경을 잠시 분산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대체 무슨 수로?’

그러한 의문은 병규가 갑자기 그를 덜렁 집어 듦으로써 해소될 수 있었다. 병규가 말했다.

“호랭이. 당신 신선이죠? 신선의 능력을 믿어요!”

“그게 무슨...... 우웩!”

호랭이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병규는 쓰레기봉지 던지듯 그를 뒤로 휙 던져버렸다.

“우웨에엑.”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 호랭이는 네 발을 활짝 펼친 자세로 귀탄의 면상에 철퍼덕 부딪히고 말았다.

귀탄의 시선을 가릴 방법이란 바로 그를 내던지는 것이었다.

“망할 자식!!”

졸지에 살아 있는 연막탄이 된 호랭이는 배신감에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그가 원하건 원하지 않았건 간에 병규의 노림수는 훌륭하게 먹혀들었다. 호랭이가 온몸으로 두 눈 앞을 막아버린 덕분에 귀탄은 엄청난 속도로 아스팔트 위를 질주해 오는 견인차를 전혀 눈치 채지 못 한 것이다

등 뒤가 환해진다 싶더니 끼이이익 하는 시끄러운 소음이 해일과 같은 충격을 안고 귀탄과 호랭이를 휩쓸었다.

콰아앙.

호랭이는 공중에 붕 뜨면서 죽어라고 병규를 욕했다. 어쩌다 그런 놈을 만나 이 고생인지. 이제 딱딱한 아스팔트와 진한 접촉의 순간을 가져야 하는 순간,

“나이스 캐치.”

어느 사이엔가 달려온 병규가 그를 잽싸게 낚아챘다. 그를 덥석 끌어안은 호랭이는 눈물이 글썽이며 욕을 쏟아냈다.

“이놈아. 날 아예 죽일 작정이었냐!!”

“헤헤헤.”

병규가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신선인데 뭔가 한 가닥 할 것 같아서요. 퉤퉤.”

“이런 썩을! 도력이 봉인된 내가 무슨 한 가닥이냐! 그러다 내가 죽기라도 했으면 어떡하려고 그런게야!”

“에이. 그러니까 이렇게 구하려고 달려왔잖아요. 퉤퉤.”

“이놈. 기분 나쁘게 왜 자꾸 침을 뱉어?”

“아무래도 괴물의 살점이 입에 들어갔나 봐요.”

귀탄이 견인차와 충돌하면서 사방으로 피와 살점이 튀었는데, 그중 하나가 그의 입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그런데 놈은 어떻게 됐냐?”

호랭이의 물음에 병규는 뒤쪽을 손짓해 보였다.

견인차는 그 어마어마한 중량과 무지막지한 속력으로 괴물을 가드레일에 짓이겨버렸다.

갈기갈기 찢겨져 아스팔트 위에 빨랫감처럼 널려졌으니 제아무리 대단한 재생력이라도 이제 더는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하긴 머리통과 발 사이의 거리가 20여 미터나 떨어져 있다면 찰흙으로 만든 몸뚱이라 할지라도 원상복구는 불가능할 것이다.

빠아아아앙.

견인차가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아마도 운전사가 핸들에 고개를 처박은 채 기절한 모양이다.

둘은 털털 떨고 있는 스쿠터 위에서 마주보며 크게 웃었다. 놈을 해치웠다는 생각에 한바탕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온 기묘한 울음에 둘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까드드드드.

“헉.”

“맙소사.”

고개를 돌린 호랭이와 병규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비명이 흘러 나왔다.

엿가락처럼 길게 찢겨진 귀탄의 육편들이 마치 비디오의 역 탐색을 보는 것처럼 천천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짓이겨진 살과 피가 동그랗게 뭉치고, 골수를 쏟아내며 부러진 뼈는 언제 그랬냐 싶게 제 위치로 흘러들어 단단하게 굳어버린다.

잠깐 사이 눌러터진 계란프라이 같았던 상체는 거의 원형을 되찾은 상태였다.

“저놈 터미네이터도 아니고.”

병규는 망연자실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고생을 해서 뭉개놓았는데도 소용없다니.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하하. 믹서기에 넣고 갈아야 하나? 그래도 안 되면 어떡하지?”

그나마 연륜이 있는 호랭이는 다소 놀라기는 했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멍하니 보고만 있을 게냐. 재생을 못하게 막아야지.”

그 말에 병규는 불붙은 망아지처럼 허둥지둥 달려갔다. 막 붙기 시작한 다리를 끄집어 당겨서 저 멀리 던지기도 하고, 부글부글 끓으며 재생되는 부위에 도로변의 흙과 돌을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차가운 비를 맞으며 땀이 얼굴을 타고 흐를 때까지 열심히 뛰어 다녔지만 귀탄의 재생능력을 막을 순 없었다.

귀탄의 재생능력은 그야 말로 엄청나다란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심지어 강변으로 날려버린 다리가 순식간에 부식되어 버리더니 끊어진 몸통부 위에서 금세 새살이 솟구쳐 나올 정도였다.

거친 숨을 헐떡이며 제정신을 차렸을 때엔 거의 완벽하게 재생 된 귀탄이 그들을 내려다보며 목울대를 부풀리고 있었다.

까드드드드.

그들의 머리 위로 짙게 드리운 그림자. 도로가의 가로등을 가려 버린 3미터가 넘는 길고 홀쭉한 동체. 풍선처럼 부풀고 있는 목. 그리고 놈에게서 물씬 풍겨오는 악취.

놈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던 것이 분한 듯 길게 울부짖으며 적의를 고취시키고 있었다. 가히 압도적인 공포에 혼백이 다 달아날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지만 괴물이 눈앞에 떡 버티고 있는 바에야.

호랭이가 떨리는 음성으로 속삭였다.

“벼, 병규야. 아무래도 비장의 능력을 써야겠다.”

“비장의 능력이라니요?”

“그 왜 있잖아. 요기를 내뿜는 손톱 말이야.”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걸 알잖아요.”

“썩을. 보통 이렇게 생명의 위기 닥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숨겨진 능력이 확 튀어나와야 하는 거 아냐?”

“아마도 그게 현실과 만화책의 차인가 보죠.”

사실 누구보다 미지의 능력이 발휘되길 바라는 사람이 바로 병규였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능력이 나오게 되는지도 모르는 형편이니.

까드드드드드.

놈의 울음소리가 또 들려왔다. 더불어 길쭉한 몸이 서서히 가라 앉았다. 대부분의 육식 동물들은 먹이를 사냥하기 전에 몸을 움츠린다. 한 번의 탄력적인 도약을 위해서다. 놈 역시 사냥감을 사냥 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미세한 틈을 보이는 순간 이 절대적인 괴수는 사슴을 덮치는 한 마리의 맹수처럼 순식간에 그들을 찍어 누를 것이다.

격한 자동차의 배기음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가늘게 들리던 소음이 불과 몇 초 만에 우렛소리처럼 커지더니, 전조등의 눈부신 빛이 어느새 아스팔트 위를 산란해 왔다. 소음이 커지는 시간이 지나치게 짧았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시끄러운 자동차의 배기음이 신경 쓰였나 보다. 병규를 노리고 있던 귀탄의 고개가 휘릭 뒤로 돌아갔다.

‘이때다.’

병규는 어깨의 호랭이를 품안에 쑤셔 넣으며 즉시 죽어라고 뒤로 내뺐다. 취익 하는 파음이 다리를 쓸어오자 그는 뜀틀을 넘듯 펄쩍 뛰었다.

철퍽.

방금 전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놈의 거친 손바닥이 떨어지며 물이 사방으로 튀고, 단단한 아스팔트가 진흙처럼 터져 나갔다. 튀어 오른 몇 개의 파편이 청바지를 찢고 종아리와 허벅지에 박혀 들었지만 병규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한쪽에 쓰러진 스쿠터를 뛰어넘은 그는 가드레일에 기다란 흉터를 남긴 견인차 밑으로 미끄러지듯 숨어들었다.

콰앙.

그의 몸이 견인차 아래로 기어들자마자 묵직한 뭔가가 차의 옆면을 들이박으며 요란한 폭음을 터트렸다. 후두둑 떨어지는 쇳덩어리를 보며 병규는 욕을 씹어 삼켰다.

“죽일 놈.”

휭 하니 날아온 쇳덩이는 다름 아닌 그의 스쿠터였다. 귀탄이 집어 던진 것이다.

까드드드.

펄쩍펄쩍 뛰어온 귀탄은 차 밑으로 손을 밀어 넣으며 쭉 훑었다. 놈의 날카로운 손톱이 머리칼을 아슬아슬하게 스친다. 병규는 더 깊숙이 몸을 옮겼다. 놈은 몇 번 더 손을 휘휘 젓더니 포기한 듯 한 걸음 물러섰다.

“젠장. 신고한 지가 언제인데 경찰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아마도 그의 신고는 장난전화 정도로 취급된 모양이다. 하긴 그렇게 급하게 끊었으니. 그래도 그렇지 확인차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까드드드드드.

기묘한 울음소리가 커졌다. 밖에서 들려오는 기척이 묘하게 조용해졌다. 순간의 고요는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폭풍전야의 그것이라고나 할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살 떨리는 전율이 그의 등을 타고 머리끝까지 쭉 훑어갔다.

‘혀!’

병규는 스쿠터의 전조등을 가볍게 날려버리던 채찍 같은 놈의 혀를 떠올렸다. 그 긴 혀라면 견인차 아래까지 충분히 닿을 것이다.

“굴러라.”

호랭이의 말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병규는 몸을 마구 굴렸다. 아스팔트 위의 빗물이 뺨과 머리칼을 흥건히 적시고, 자잘한 돌조각이 등과 배를 따끔따끔 찔러왔다.

취릭.

공기를 가르는 섬뜩한 파공음이 그의 어깨 부위를 스쳤다. 코끝을 쿡 찔러오는 독한 비린내. 역시나 놈은 혀로 공격해온 것이다. 4미터 정도? 아니면 5미터? 고무줄처럼 늘어지는 놈의 혀.

이제 더 이상 견인차는 괴물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밖으로 뛰쳐나갈 수도 없으니, 병규와 호랭이는 그야말로 땅굴 속에 갇힌 오소리 신세라 할 수 있었다.

무섭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가르며 기괴한 배기음을 터트리던 스포츠카가 나타난 것은 바로 이때였다. 한순간 전조등의 불빛이 강하게 비치더니 자욱한 새벽을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음이 모참이 찢어발긴다.

끼아아악.

얼마나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았는지 젖은 노면임에도 고무 타는 냄새가 멀리까지 진동했다. 사이드까지 당겼는지 차가 옆으로 크게 틀어지며 넘어갈 듯 한쪽으로 기우뚱하면서 위태위태 정지했다.

그 충격적인 등장으로 인해 한순간 귀탕과 병규, 그리고 호랭이 모두 넋을 잃고 스포츠카를 쳐다봤다. 쇼바의 탄성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던 차가 간신히 평형을 찾자 비로소 문제의 스포츠카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뜨겁게 달구어진 보닛 위로 빗물이 증발하여 무럭무럭 수증기를 토해 내고, 네 바퀴 또한 급브레이크의 충격으로 노곤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신비스러운 배경을 깔며 나타난 스포츠카의 주인은 짧은 머리칼에 고급 양복을 쫙 빼입은 젊은 청년이었다.

“하이고. 화려하게 해치웠구만.”

주위를 휘휘 둘러본 청년은 한숨부터 푹 쉬더니 전봇대처럼 서 있는 귀탄을 보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나저나 멀리도 도망 왔네. 서울에서 사라진 놈이 뭐 먹을 게 있다고 이렇게 내륙 깊숙이 들어왔냐?”

견인차 아래에 숨어있던 병규와 호랭이는 괴물을 보고도 태연한 그의 모습에 내심 깜짝 놀랐다. 귀탄은 개구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키는 무려 3미터가 넘고, 강철도 간단히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발톱과 진득거리는 표피, 그리고 썩는 듯한 악취가 있어 심장이 약한 사람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기절할 정도로 징그럽게 생겼다.

그런 흉악한 괴물을 앞에 두고도 청년을 조금도 긴장한 구석이 없었다. 가히 천하게 다시없는 강심장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어? 꼴을보니 한 번 아작이 났었던 모양이네.”

밤송이 청년은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여명 속에서 용케 견인차에 뭉개진 괴물의 잔해를 확인하고는 어리둥절해 했다. 그는 눈앞에서 거친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귀탄은 보이지도 않는지, 느긋하게 견인차 주위에 흩어진 잔해를 살폈다.

“이놈이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달리는 차에 뛰어들었을 리는 없을 테고.......”

청년의 눈에 고철뭉치가 된 스쿠터가 잡혔다. 그는 입가가 슬쩍 들어올려졌다. 소리 없이 웃은 그는 견인차 아래로 고개를 쑥 들이밀며 병규에게 물었다.

“이거 당신 작품이요?”

살기를 뿜어대고 있는 괴물에게 등을 훤히 드러내 보이는 그의 어수룩한 행동에 병규는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나에게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당신 등 뒤나 조심해요.”

“하하. 대답을 보아하니 당신이 처리한 게 맞는 것 같군.”

그는 뭐가 그리 기쁜지 크케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 그럼 시민의 요청도 있고 하니 슬슬 용의자와 대화를 시도 해 볼까?”

그러나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귀탄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목표가 사라졌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상의에서 꺼낸 장갑을 두 손에 천천히 끼우며 천천히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을 뿐이다.

괴물은 그곳에 있었다. 엄청난 점프력으로 가로등을 넘어 무서운 속도로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기습은 좋은데 너무 높이 뛰었어.”

청년은 공중으로 솟구친 괴물을 겨냥하며 한 손을 지긋이 내밀어 보였다. 차 밑에서 몰래 훔쳐보고 있던 병규의 눈에 뻗쳐진 청년의 손에서 희끄무레한 그물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착각인가 하여 눈을 비비고 보니 이번엔 보이지 않았다.

“저 녀석. 능력자로군.”

그의 품속에 있던 호랭이가 삐죽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능력자?”

병규의 두 눈이 둥글게 떠졌다. 최근 들어 자주 듣게 되는 말 중의 하나다.

‘능력자라면 저 사람도 뭔가 독특한 능력이 있다는 소리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적어도 지금 보이고 있는 여유만은 해석이 가능해진다.

“오라를 받아라!(捕快之捕繩)”

청년이 크게 소리치며 귀탄을 향해 뻗어냈던 팔을 호쾌하게 끌어당겼다. 그러자 놀랍게도 허공에 떠 있는 귀탄이 낚시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쭉 딸려오는 것이 아닌가!

철퍼덕.

아스팔트 위로 곤두박질친 귀탄의 몸뚱이가 묵직한 비명을 터트렸다. 재생력은 엄청나도 몸뚱이 자체는 강하지 않은 듯 당장 발 하나가 찰흙덩이처럼 터져 나가며 사방이 녹색 피와 징그러운 살점들로 반죽이 되어버렸다.

끼롸롸롸!

귀탄의 미친 듯한 울부짖음이 고요한 새벽하늘을 뒤흔들었다. 피를 줄줄 흘리며 맹렬히 발버둥을 쳤지만 보이지 않는 그물에 갇힌 것처럼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접수완료.”

청년의 입가가 슬쩍 올라가며 매력적인 미소가 흘러나왔다. 병규가 그 고생을 했던 귀탄이 사내의 한 수에 허무하게 잡혀버린 순간이었다.

하지만 귀탄은 그리 순순히 당해줄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밤송이 청년이 씩 하고 미소를 그리는 순간, 썩은 악취를 풍기는 혓바닥이 먹이를 덮치는 독사처럼 그를 후려쳐왔다. 방심한 적을 노리는 불의의 기습. 그러나 청년은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으싸.”

스텝을 밟듯 경쾌한 움직임으로 독액이 잔뜩 묻은 혓바닥 공격을 피해낸 그는 혀가 미치지 않을 만큼 멀찌감치 물러섰다.

“쓸데없이 반항하지 말고 그냥 잡혀. 이번엔 꼭 널 사로잡아야 하거든? 괜히 저번처럼 죽이기라도 하면 또 우리 대장에게 귀찮은 잔소릴 들어야 한다고.”

귀탄을 상대하는 것보다 대장에게 잔소리를 듣는 게 더 두려운 모양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괴물인 귀탄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놈의 다음 행동은 그야말로 의외였다.

촤...... 촤...... 촤락.

채찍과 같은 혓바닥이 길게 쭉 뻗는가 싶더니 돌연 자신의 몸뚱이를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자해? 설마 놈은 잡히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일까.

치지지지직.

끈적끈적한 독액은 놈의 무른 표피를 삽시간에 녹여버렸다.

끼롸롸롸롸롸.......

진득한 귀탄의 비명소리가 고막을 때려온다. 괴로워할 거면 뭐하러 자해를 한 것일까. 그렇다고 놈이 자해를 즐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살 타는 고약한 냄새와 함께 뭉클 피어난 독연. 그 속에서 거대한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귀탄 청년의 능력에 묶여 꼼짝도 못하던 놈이 서서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독으로 내 오라를 끊어버린 건가? 생각보다는 똑똑하군.”

무거운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청년. 그러나 말과 달리 그의 표정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장갑을 손목까지 바짝 당기는 모습은 오히려 이렇게 돼서 잘됐다는 식의 호전적인 태도로 비춰졌다.

까드드드드.

귀탄의 울음소리. 그에 질 세라 청년도 호기 있게 외쳤다.

“와라!”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귀탄이 몸이 쏘아진 포탄처럼 날아 들었다.

가히 전광석화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재빠른 움직임. 허나 청년의 몸놀림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귀탄의 공격을 가벼운 움직임으로 피해낸 그는 훤히 드러난 놈의 등을 향해 소나기 같은 발길질을 퍼부었다.

콰두두두두.

눈부시게 호려한 발차기. 얼마나 빠른지 발그림자와 바람소리만 휭휭 들릴 뿐, 정작 발이 어디를 치고 있는지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동작 자체만 두고 봤을 때는 태권도 인 것 같은데, 그 빠름과 강력함은 대회용 태권도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비단 그의 발차기가 빠르기만 한것은 아니었다. 슬쩍슬쩍 내리치는 것 같은 타격에 귀탄의 등짝 위로 깊은 족적이 푹푹 파이고, 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소음과 함께 갈라터진 살가죽을 뚫고 푸른색의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잠깐 사이에 귀탄의 큰 몸뚱이는 이미 절반 가까이 무너져 있었다. 엄청난 재생력으로 이내 재생되고 있긴 했지만 워낙에 청년의 공격이 거세어 재생되는 양보다 박살나는 양이 훨씬 많았다.

촤락.

비에 섞여 떨어지는 무수한 발길질에 꼼짝달싹 못하던 귀탄이 제 키보다 길게 늘어나는 혀를 채찍처럼 휘둘러왔다. 독으로 번들거리는 혀. 단순히 스치기만 해도 현재의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 될 것이다.

“흥.”

가벼운 콧바람 소리와 함께 청년의 오른발이 풍차처럼 크게 휘둘러졌다. 귀를 자극하는 큰 바람소리가 부웅 일어나더니 한 마리의 독사처럼 쏘아져오던 귀탄의 혀가 허무하게 튕겨져 날아간다.

“매가 부족했구나.”

호기를 잔뜩 일으킨 청년의 공격이 한층 매서워졌다. 천지사방으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그 엄청난 공격들. 아니 엄청난 건 둘째 치고 저런 동작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기는 한 걸까?

“10단 콤보? 철권 마니아군.”

“10단 콤보? 그게 뭐냐?”

“뭐. 그런 게 있어요. 저 사람 진지한 줄 알았더니 장난기도 다분히 있네요. 그나저나 우리 이만 여기서 나가죠. 저 사람이 알아서 상황을 정리해줄 것 같은데.”

병규는 호랭이와 함께 견인차 밑에서 기어 나왔다. 둘이 옷을 툭툭 털고 있을 때쯤. 청년과 귀탄의 싸움도 대충 끝나갔다. 원래 생김새를 도저히 연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진 귀탄이 청년의 오라에 다시금 묶였다. 이번엔 입조차 열지 못할 정도로 치밀하게 감싸버렸다.

청년은 귀탄을 사로잡자마자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대장? 아. 난데. 잡았어. 아아. 걱정 마. 이번엔 틀림없이 사로 잡았으니까.”

호랭이과 병규는 그를 멀뚱히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대단한 사람이네요.”

“그래. 썩 괜찮은 능력자로구나.”

둘을 그렇게 고생하게 만들었던 괴물은 밤송이머리에겐 상대도 되지 않았다. 그 엄청난 움직임과 독으로 번들거리던 혀도 그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으니 말이다.

죽을 둥 살 둥 발악하던 것이 왠지 허탈하게 느껴졌다. 허무하게 잡혀버린 귀탄이 원망스러울 정도다.

“병규야. 아무래도 견인차 운전사 좀 살펴봐야겠구나.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나 보다.”

그제야 잠시 잊고 있었던 빠아앙 하는 경적소리가 고막을 때려 온다. 시끄러울 정도의 소음인데 여태 잊고 있었다니. 그만큼 귀탄과 청년의 싸움에 몰입해 있었다는 증거이리라.

“네.”

병규는 터덜터덜 운전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상황은 그렇게 끝났다. 적어도 그때엔 그렇게 생각되었다.

경적을 울리며 옆으로 누워있던 견인차의 후미가 거대한 쇠망치로 두들겨 맞기라도 한 것처럼 휙 미끄러지며 밤송이머리 청년을 후려갈기기 전까지는.......

“으악.”

처절한 단발마와 함께 청년의 단단한 몸이 배트에 맞은 야구공처럼 튕겨졌다.

키가가가각.

청년을 후려갈긴 견인차는 아스팔트를 벅벅 긁으며 미끄러지다 끝내 가드레일을 뚫고 도로변 도랑으로 굴러떨어졌다.

휘잉.

앞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바람. 병규는 그대로 굳어 있었다.

“뭐야?”

병규는 비명을 질렀다.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왜 멀쩡히 엎어져 있던 견인차가 갑자기 청년을 덮친 거지?

청년은? 무적으로 보이던 그가 왜 도로 저편에서 검붉은 피를 왁 하고 토하고 있을까.

아니 무게만도 몇 톤을 될 만한 견인차가 그렇게 장난감처럼 움직인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설마 청년의 오라에 잡힌 귀탄에게 염동력 같은 신기한 능력이라도 있었을까?

그때 기묘한 괴음이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까드드드드.

까득. 까드드득.

귀탄의 울음소리? 그런데 하나가 아니었다. 병규의 고개가 천천히, 고장난 목각인형의 못처럼 느리게 돌아갔다.

노란 가로등 아래,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3미터를 훌쩍 넘는 키, 코를 찌르는 역겨운 냄새.

“한 마리가 더 있었군.”

호랭이가 신음을 흘린다. 그렇다. 귀탄은 처음부터 한 마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새로 나타난 귀탄은 먼저 놈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모습도 흉악했다. 먼저의 놈이 키만 멀뚱히 큰 삐쩍 마른 녀석이라면 이 녀석은 꽤 다부진 근육질의 몸매라고 할까.

까드득. 까드득.

까드드드드.

청년에게 잡힌 녀석과 새로 나타난 녀석은 교감이 통하기라도 하듯 코를 킁킁대며 울어댔다.

까드드드드.

덩치 큰 녀석이 돌연 그를 노려보며 목을 부풀린다.

녀석의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병규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지는 것 같았다. 작은 녀석도 어쩌질 못 했는데, 이젠 그 보다 훨씬 큰 녀석이 자신을 노려본다. 이건 암담한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가히 절망적 상황이 아닌가.

“어디서 이런 요물들이.......”

호랭이의 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콰앙.

몽롱한 정신에 경종을 울리듯 갑자기 거대한 폭음과 함께 대지가 흔들렸다. 폭죽처럼 불꽃이 터지고, 폭발에서 튀어나온 묵직한 충격파로 대지가 우르릉 진동한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빛을 본 어둠처럼 사방으로 촤악 튕겨져 나갔다.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끊어진 가드레일 너머로 붉은 화염과 시커먼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견인차의 기름탱크가 폭발한 것이다. 꺼지지 않은 시동이 도로변으로 떨어지는 충격에 큰 문제를 일으킨 모양이다.

충격에 병규는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때 갑자기 호랭이가 병규의 코를 깨물며 독촉했다.

“침착해라. 지금은 혼이나 빼고 있을 상황이 아니야. 운전사. 차안에는 아직 운전사가 남아있다.”

번쩍 정신이 든 병규는 재빨리 호랭이를 잡아 어깨에 얹으며 물었다.

“그 밤송이머리는 어쩌고요?”

“녀석의 능력을 못 봤냐? 그렇게 쉽게 당할 놈이 아니야. 지금은 사고차량의 운전사를 구하는 게 먼저다.”

그럴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의 능력은 질투가 날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능력자라고는 해도 몸뚱이는 인간이다. 무른 살과 푸석푸석한 뼈로 이루어졌다는 건 보통사람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런 사람이 무쇠 덩어리인 견인차와 그렇게 심하게 충돌하고도 무사하길 바란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 아닐까?

허둥지둥 끊어진 가드레일 너머로 달려가 보니 반쯤 녹아내린 견인차가 도랑 아래에 엎어져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폭발의 충격은 차의 후미를 강타해서 운전석은 아직 무사했다. 병규는 미끄러지듯 비탈길을 내려갔다.

차량의 문짝은 구겨진 휴지조각처럼 뭉개져 있었고, 깨진 창문 너머로 피투성이??? 된 운전사가 보였다. 그러나 뭉개진 문짝과 차체가 끈적끈적하게 눌어붙어 아무리 애를 TJ도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운전자를 구하려면 강철을 잘라내는 장비가 꼭 필요했는데 119의 구조를 기다릴 만큼 느긋한 여유도 없었다. 지글지글 타는 화염이 차의 도장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운전자의 출혈도 상당한 듯 보였다.

“어쩌지.”

어쩔 줄 몰라 하던 병규는 큼지막한 돌로 차 문의 이음새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캉캉 쇳소리만 요란하게 날 뿐, 휘어진 문짝은 꿈쩍도 않았다.

“부서져. 부서지란 말이다.”

그는 원수의 가슴에 검을 박듯 악을 지르며 돌멩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겉의 철판만 조금씩 우그러질 뿐이다.

“젠장.”

허탈한 한숨이 입가에 맴돈다. 신경질적으로 돌멩이를 던져버린 그는 이번엔 맨주먹으로 문짝을 두드렸다.

“내 능력이라면 이럴 땐 나와줘야 할 것 아니냐.”

뼈끝까지 시려오는 아픔. 피가 튀었다. 아프다 못해 주먹이 저려왔다.

“나오란 말이다!”

병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명을 질렀다.

츠각.

날카로운 소음. 발악적으로 내려치던 그의 손에서 푸른 요기가 맺히는 순간 그토록 굳건하던 문짝이 면도칼에 종이짝 찢어지듯 찢겨졌다.

쇠가 이렇게 물렀던가.

손을 휘휘 저을 때마다 두부처럼 퍽퍽 쪼개진다. 물을 가른 듯 아무런 저항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얍!”

병규는 기뻐할 틈도 없이 사선으로 쭉쭉 찢겨나간 철판을 벌리고 반쯤 뭉개진 차체에서 운전자를 끄집어냈다.

다행히 운전자는 살아있었다. 생각보다 부상도 심하지 않았다. 이마가 조금 깨지고 생채기가 이곳저곳 눈에 띄었지만 생각보단 멀쩡했다. 그를 거대한 모닥불처럼 불타는 견인차에서 끌어낸 병규는 죄책감에 몸둘 바를 몰라 했다.

이유야 어떻든 이 사람은 그 때문에 불행을 겪은 셈이 아닌가. 두려움에 앞서 위기에서 벗어날 생각만 했지 누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가보죠.”

도장면 전체에 기름이라도 부은 것처럼 활활 타오르는 견인차를 응시하던 병규가 몸을 일으켰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요수의 발톱이 나오기 전까지는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상대할 자신은?”

호랭이의 물음에 병규는 손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 끝에서 한자가량 뻗어 나온 푸르스름한 요수의 발톱. 처음으로 그의 의지대로 발현된 능력이다.

“해 봐야죠.”

병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병규가 허겁지겁 끊어진 가드레일을 통해 도로 위까지 올랐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괴물과 그 커다란 덩치에 비해 하찮게까지 보이는 인간의 처절한 사투였다.

“살아있었구나.”

청년을 본 병규는 놀람과 기쁨이 반반 섞인 탄성을 흘렸다. 세상에 견인차에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처박히고도 살아있다니. 하긴 그랬으니 귀탄이 병규를 쫓아오지 않았지. 만약 그가 귀탄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감히 견인차 운전사를 구해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군분투하고 있는 청년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온 몸이 피투성이인데다 오른팔도 부러졌는지 부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 바람처럼 빠른 그의 두 다리가 지금은 노쇠한 종마처럼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거칠게 몰아붙이는 귀탄의 공세를 그저 간신히 피해 내고만 있을 뿐. 입으로 울컥울컥 넘어오는 핏물이 그의 위중한 상태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잠시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병규와 호랭이의 두 눈이 마주쳤다.

“가자.”

호랭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병규는 곧장 다리를 박찼다.

쉬엑.

주위 풍경이 무섭게 빠른 속도로 뒤쪽으로 지나가고, 저만치 있던 귀탄의 다리가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놈. 맛 좀 봐라.”

병규는 번개같이 삼보를 내디뎠다.

빠바바바방.

폭죽처럼 터지는 폭음.

질풍삼연격이 터진 것이다.

귀탄의 큰 동체가 허공을 떠오른다. 그러나 병규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타격감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놈의 몸통을 후려갈기는 느낌은 마치 무른 진흙을 두드린 것처럼 질척거리기만 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철퍼덕 엎어졌던 귀탄은 곧바로 일어선다. 그러나 병규는 바람처럼 내달리며 그대로 놈의 발목을 그었다. 요수의 발톱은 귀탄의 살과 뼈를 무른 두부처럼 파고들었다.

서걱.

서늘한 절삭음과 함께 괴성을 지르던 귀탄이 휘청하며 균형을 잃었다. 왼쪽 다리의 근육이 절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놈의 지독한 재생력이라면 이 정도의 피해는 단숨에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병규는 아예 끝장을 보기로 했다.

두 손을 좌우로 크게 펼쳐낸 채 힘을 모으자 요수의 발톱이 두 배는 더 길게 늘어나 무려 두 자가량이나 뻗었다. 더불어 힘이 팔 쪽으로 쭉쭉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요수의 발톱은 체력을 심하게 소비시키는 모양이다. 속전속결!

“이얍!”

기센 기합성과 함께 두 손을 힘껏 교차시켰다.

촤아아악.

너무도 생생한 절삭음이 귓가를 때리고 곧바로 귀탄의 비명성이 하늘을 떨쳐 울렸다.

키롸롸롸롸!

잘려나간 놈의 무릎이 우울한 푸른색 피를 쏟아내며 아스팔트 위를 데굴데굴 굴러갔다. 다리가 떨어져 나간 고통에 귀탄은 미친듯이 발버둥쳤다. 아무리 상처가 재생된다고 해도 고통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제 머리를.......”

아무래도 놈을 저지하려면 머리를 날려버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발목을 노린 것도 녀석의 머리통을 손에 닿을 수 있는 높이까지 낮추기 위해서였다. 병규는 괴로워하는 귀탄의 머리를 향해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뒤통수를 대고 누워 있는 놈의 머리통을 봤을 때, 병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이제 마지막이다. 그런데 아뿔싸! 설마 그것이 놈의 함정일 줄이야.

병규가 귀탄의 머리를 날려버리려 요수의 발톱을 치켜들었을 때, 귀탄의 두 손이 마치 촘촘한 그물처럼 좌우에서 그를 압축해 오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는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린다 해도 그 역시 놈의 두 손 사이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터져버릴 것이다.

좌우앞뒤 어디로도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병규는 무의식적으로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물론 장벽처럼 감싸 쥐여지는 손바닥을 뛰어 넘어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무의식적인 반응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무의식적으로 뛰어오른 그가 좌우에서 압축해오는 귀탄의 거대한 손바닥을 넘어 무려 사, 오 미터나 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빡!

발아래 저만치에서 무거운 소음과 함께 귀탄의 손바닥이 마주쳐졌다. 그대로 있었으면, 아니 그의 두 다리가 순간 상상을 불허할 절도의 탄성을 보이지 않았다면 그의 몸은 놈의 두 손 사이에서 단물을 짜낸 오렌지처럼 박살이 났을 것이다.

“뭐, 뭐얏!”

허공에 둥실 떠오른 병규는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수영을 하듯 허겁지겁 손발을 휘저었고, 당황한 중에도 어떻게 간신히 균형을 잡아 두 발로 무사히 떨어질 수 있었다.

삼층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진 것인데도 발끝에서 시작되어 무릎 위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탄성에 별 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다. 허벅지 아래가 탱탱한 고무로 변해버린 것 같다고나 할까. 아니 그보다는 탄성이 엄청난 스프링 같았다. 사뿐사뿐 걷는데도 통통 하고 튀어 오른다.

“히야. 나한테 이런 능력도 있었나?”

살짝살짝 발끝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무려 2미터가량 점프가 된다.

“좋아. 이 능력이라면.”

신기한 듯 몇 번 허공으로 떠오르던 병규의 두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한편 병규가 새롭게 발견한 재주에 흥미를 더해가고 있을 때, 그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호랭이는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쩍 벌어진 아가리는 벌통이 자리해도 충분할 정도였다.

‘성마. 이 녀석 요괴의 능력을 흡수하는 능력자?’

호랭이는 곧 고개를 저었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능력자들에겐 반드시 능력을 빌려주는 수호신이 있다. 하지만 세상 그 어디에도 요괴의 능력을 흡수하는 수오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호신이 없는 능력자가 존재할 수 없으니 요괴의 능력을 흡수하는 능력자 역시 존재할 수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방금 이 녀석의 점프력은.......’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방금 병규가 보인 능력이 귀탄의 능력이었다는 사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의 빠른 다리와 손에서 나온 요수의 발톱도?’

그때는 발칸의 피를 먹었었다. 발칸은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손재. 이계에서 온 괴물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요괴의 능력을 흡수하는 능력자란 말인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호랭이의 생각은 계속 이어질 수 없었다. 병규를 놓친 귀탄의 분노한 괴성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키롸롸롸롸롸!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울어 제친 놈은 거친 숨을 드르렁 마시더니 돌연 엄청난 높이로 도약하며 병규의 머리 위를 덮쳐왔다. 성난 놈의 분노가 거대한 먹구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병규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웬일인지 그의 얼굴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 넘쳤다.

“네 녀석의 짝꿍에게 당했던 것을 백 배로 앙갚음해 주마!”

거창하게 호통을 친 병규는 용수철을 누르듯 몸을 접었다가 맹렬히 펴며 그대로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휘이익 하는 바람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린다.

몸을 아래로 잡아끄는 듯한 중력의 마수에서 간신히 벗어났을 때, 그는 어느덧 10여 미터 상공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보다 조금 아래, 귀탄의 머리통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본래 가지고 있던 특유의 순발력에 탄성이 더해지자 훨씬 늦게 점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더 빨리 정점에 도달한 것이다.

까드드드드.

저 밑에 있어야 할 병규가 돌연 자신의 머리 위까지 튀어 오르자 흠칫 놀라던 귀탄이 목을 부풀렸다. 채찍같이 긴 혀를 쏘아내려는 것이다.

“아차!”

병규는 뒤늦게 귀탄의 또 다른 능력을 생각해 내고 인상을 썼다.

허공에 뜬 상태라 놈의 혓바닥을 도무지 피할 재간이 없었다.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가. 그야말로 위기의 순간.

“정신없는 녀석들. 날개도 없는 놈들이 공중전이라니 이게 무슨 미친 짓거리냐!”

호랭이가 우는소리를 하며 병규의 어깨 위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노련한 스카이다이버처럼 네 다리를 활짝 펼쳐내며 짜릿한 공중유영을 즐긴 호랭이는 앙증맞은 발톱을 세우며 풍선처럼 부푼 귀탄의 목을 물고 늘어졌다.

끼롸롸!

귀탄이 고통스럽게 발버둥을 쳤다. 역시나 큰놈이나 작은놈이나 약점은 이 목이었던 것이다.

“호랭이. 최곱니다!”

호랭이의 목숨을 건 스카이다이빙 덕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난 병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젠 네 녀석 차례다.”

“네엡!”

힘차게 대답한 병규는 어찌어찌 불안정하게 자세를 조정하며 간신히 귀탄의 머리꼭대기에 올라섰다.

“이놈. 죽어라.”

한손을 놈의 머리빡에 처박아 자세를 고정시키자마자 요기가 파도처럼 치솟는 요수의 발톱을 귀탄의 머리꼭대기에 쑤셔 박았다. 사람으로 비교하면 정수리, 즉 백회(百會)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키롸롸롸.

미친 듯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다. 사람이라면 단번에 즉사할 위치니 고통스러운 것도 당연하리라. 하지만 이 정도로는 녀석의 엄청난 재생능력을 도저히 막을 수 없다.

병규는 영혼을 불사른다는 느낌으로 귀탄의 머리통에 쳐박은 속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전신의 기력이 손을 통해 터진 독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지옥으로 꺼져버렷!!”

순간 병규의 두 눈에서 안개처럼 스며 나오던 요기가 몇 배나 짙어졌다.

추아악.

잘 드는 식칼이 고깃덩이를 싹둑 썰어낼 때의 그 섬뜩한 절삭음. 머리로 쑤셔 박은 요수의 발톱이 거대한 창처럼 솟구치며 놈의 목뼈와 뱃속의 내장을 헤집고 사타구니 사이로 삐죽 튀어나왔다.

키악!

귀탄의 큰 동체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찔 떨렸다. 뒤이어 찾아오는 경련. 발끝부터 시작해 머리 위까지 서서히 잠식해 들어오는 그 잔인한 떨림. 그러나 경련은 머리끝에 다다른 순간 거짓말처럼 멈춰버렸고, 다음으로 귀탄의 동체를 휩쓸고 온 것은 거대한 붕괴였다.

쿠쿠쿵.

귀탄의 큰 동체가 아스팔트 위로 떨어지자 고여있던 빗물이 파도처럼 일어나 사위를 휩쓸었다.

쏴아아아아아.

빗소리가 거세졌다. 단단한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 빗물이 뿌옇게 부서져 나간다.

병규는 피를 게워내며 잔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귀탄의 몸 위에 굳어버린 듯 서 있었다.

‘이번에도 제정신이 아닌가.’

호랭이가 걱정스런 얼굴로 병규를 올려다봤다. 지금껏 병규는 큰 힘을 쓸 때마다 기억도 못할 정도로 무아지경이었다. 마침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병규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웃는 듯 우는 듯 미묘한 표정으로 요수의 발톱이 솟아난 손을 들여 보였다.

“호랭이. 이거 기분 정말...... 드럽네요.”

가슴이 콱 막힌 듯한 음성. 병규는 처음으로 온전한 정신이었다. 그래서 뜨거운 피가 펄펄 끓는 살아 있는 생물의 맨살을 가르는 느낌을 너무도 생생하게 체험해야 했다. 악몽처럼 끔직한 일이었을 테지.

“휴우.”

호랭이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작은 강아지 같은 그가 한숨이라니. 평상시라면 귀엽다며 속으로 끅끅대고 웃었을 테지만 지금은 왠지 분위기가 무겁다.

“담배나 하나 줘봐.”

“...... 네.”

머뭇거리며 대답한 병규가 셔츠의 안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호랭이를 위해 항상 대신 가지고 다녔다.

주섬주섬 꺼내든 담배.

빗물에 젖어 축축했다. 하긴 그렇게 정신없이 빗속을 뛰어다녔으니. 병규는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헤. 어쩌죠? 다 젖어버렸는데.”

“젠장.”

호랭이는 발로 아스팔트 위에 고여 있는 빗물을 걷어차며 욕을 했다. 단 하나뿐인 낙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내 것이라도 피우겠소?”

병규 앞에 불쑥 내밀어진 손, 그리고 그 손에 쥐어진 막 뜯은 듯한 디스 한 갑. 어느새 다가온 밤송이머리가 그를 향해 배시시 웃음을 보인다.

청년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칼처럼 버려져 있던 외관은 봉두난발에 상거지 꼴로 변해버렸고 깔끔한 미소를 머금은 입가 역시 핏물로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이 녀석도 디스야? 젠장. 저 녀석과 처음 만날 때가 생각나는군.”

호랭이가 구시렁거린다. 하지만 연신 혀로 입술을 축이는 걸 보니 어지간히 반가운 모양이다.

청년에게 담배를 받아든 병규는 호랭이 입에 한 개비를 물려주고 불을 붙여 주었다.

“음? 담배 안 하십니까?”

“네. 호래...... 강아지가 피워서.”

병규는 어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하. 이 좋은 걸 왜 안 하는지 모르겠네.”

병규 옆에 털썩 주저앉은 청년은 담배에 불을 당겼다. 흐읍 하고 깊게 빨아들인 연기에 머릿속이 핑 하고 돈다.

“카. 역시 이 맛이야.”

몸이 노곤하게 퍼져있을 때 피우는 담배 한 모금의 쾌락. 온몸이 자르르 녹아버리는 것 같다.

“젠장할. 죽여주는구만. 이 맛에 담배를 못 끊는다니까.”

싸구려라며 꿍얼거리던 호랭이가 극찬을 한다. 질이 어쩌고 궁상맞게 따지고 들었어도 역시 없는 것보단 백 배는 좋은가 보다.

“신기한 강아지네. 담배도 피우고.”

밤송이 청년이 호랭이를 흘끔 쳐다보며 한마디한다.

빠직.

귀여운(?) 호랭이의 콧잔등에 주름살이 잡혔다. 한참 분위기를 잡고 있는데, 강아지라니! 게다가 저 피식 하는 웃음은 또 뭔가. 이런 상황에 가만히 있으면 절대 호랭이 신선님이 아니다.

“아 씨팍. 돌겠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것이 누구더러 강아지래. 죽어라 죽어.”

분통을 터트린 호랭이가 청년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생각 같아서는 본신을 드러내어 겁이라도 확 주고 싶지만 그게 맘대로 되어야 말이지.

“호. 제법 성깔도 있고.”

피식 웃은 청년이 손가락으로 호랭이의 콧잔등을 톡하고 쳤다. 원래 힘이 센 것인지 일부러 그런 것인지 바짓가랑이를 물고 들어지던 호랭이가 비질에 쓸린 낙엽처럼 데굴데굴 굴러갔다.

“아이고. 삭신이야. 아이고 호랭이 죽네. 어린놈이 신선을 죽이네. 흐윽 내가 어쩌다가 이 꼴이 됐을꼬. 신통력만 되찾으면 한방감도 안 되는 녀석에게. 아이고 억울해라.”

호랭이는 퍼질러지게 앉아 꺼이꺼이 하며 신세한탄을 했다. 그 와중에도 입에 문 담배를 뻐끔거리는 꼴이란.

“이젠 울기까지. 가지가지 하는군. 보고만 있어도 심심하진 않겠어.”

호랭이를 보며 씩 웃어 보인 청년, 문득 그는 병규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운석이오.”

“병규입니다.”

“이런 곳에서 능력자를 만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소.”

반갑다는 말일까, 아니면 의외였다는 의미일까.

털털하게 웃어 보인 그는 피우다 만 꽁초를 털어버리고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그럼 일을 마무리해 볼까.”

벌떡 몸을 일으킨 그는 아스팔트 위에 길게 늘어진 귀탄에게 걸어갔다.

“역시. 또 재생되고 있군.”

병규가 쓰러트린 귀탄의 상흔이 서서히 재생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요수의 발톱에 당한 상처는 재생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원상으로 회복될 것이다.

“세상에 머리가 완전히 터져 버렸는데도 살아있다니.”

호랭이의 입에 물려있던 담배가 툭하고 떨어졌다. 몸통을 갈라도 안 되고, 머리를 잘게 쪼개버려도 소용없다니.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괴물이 아닌가. 그가 알고 있는 귀탄은 절대로 이런 요괴가 아니었다.

‘대체 저 괴물은 뭐지?’

수백 년을 살아온 그지만 이런 엄청난 괴물이 있다는 소문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거참. 그 강아지 한 번 요란하게 짖어대네.”

오라 능력으로 머리가 쪼개진 귀탄을 꽁꽁 둘러싸 고치고 만들어 버린 이운석이 호랭이를 보며 입가를 들어올렸다. 하긴 호랭이의 말은 병규에게 만 통용되는 것이니, 심각한 혼잣말도 그에겐 그저 애 닳은 강아지의 울음소리 정도로 들렸을 테지.

“큭큭큭.”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병규의 입에서 어이없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다지 재미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왠지 웃음이 멈춰지지가 않았다.

“웃지 마. 임마!”

이번엔 병규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호랭이였다.

빵빵. 빠아아앙~. 빵빠방.

신경질적으로 울려대는 경적소리들. 한두 대만 울려도 소란스러울 텐데, 한꺼번에 수십 대가 울려대니 시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귀가 따가울 정도다.

출근길에 차가 막히는 것은 이제 수도권만의 일은 아니라서, 조금 큰 규모의 도시라면 매일 아침마다 시내로 진입하려는 차량들로 도로가 북새통을 이룬다.

전국의 도로망이 거미줄처럼 구축되어 있다지만 출근시간에 맞춰 일순간에 밀리는 차량들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러한 양상이 더욱 심했다.

가뜩이나 내륙으로 상륙한 태풍 탓에 느릿느릿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는 판에 시내로 진입하는 4차선 도로를 군경이 완벽하게 통제해 버린 것이다.

바리케이드 대신 정차해 놓은 경찰차 너머엔 중무장한 특수부대원들과 거대한 포신을 번뜩이고 있는 장갑차까지 눈에 띄었다.

분노한 운전사들이 도로를 막은 이유를 캐물었지만 외곽선 통제를 맡고 있는 경찰들은 한사코 군경합동훈련이라는 어중간한 대답을 할 뿐이었다.

“제기랄. 무슨 놈의 훈련이 도로통제까지 하는 거야?”

“간첩이라도 내려온 건가?”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통제를 담당하고 있는 군경의 심각한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외곽순환도로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했다.

군경합동훈련이라는 명목하에 통제되고 있는 안쪽은 실제 외부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엄중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반경 500m에 걸쳐 이중 삼중의 통제선과 보안통제가 이루어졌고, 사건의 중심부엔 보안등급이 굉장히 높은 요인들만 출입이 허가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현장엔 생각처럼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파손된 아스팔트와 고철덩이가 되어버린 몇몇 쇠붙이. 그리고 미친 짐승이라도 집어넣은 듯 이따금씩 쿵쿵 하고 소란스런 소음을 터트리는 거대한 트레일러 한 대가 전부였다.

“맨손으로 한 작품이란 말이죠? 이것이.”

견인차량에서 떼어온 듯한 자동차 문짝을 살피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한 손에 깁스를 한 이운석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랬지.”

여자의 시선이 다시 부서진 문짝으로 돌아갔다.

‘신력인가? 아니면 마력(魔力)? 그도 아니면 전혀 다른 이 능력?’

그런 구분을 가능케 하는 몇 가지 표증이 있지만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문짝에서는 그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순수한 힘?’

그녀의 고운 이마 위로 살짝 주름이 그어졌다. 간혹 위기에 처한 인간이 상상 이상의 기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렇다 해도 명백히 한계는 있는 법. 평범한 인간이 몇 겹이나 되는 철판을 맨손으로 찢어발길 수는 없는 것이다.

“C급 정도의 능력자 같군요.”

10여 분 가까지 면밀히 살펴본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절단면이 너무 예리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 이상의 능력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곧 자신의 평가를 수정해야 했다.

“한 가지 들은 말이 있는데.......”

이운석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아무래도 그의 힘. 괴물과 관련 있는 것 같아.”

“괴물로 변신이라도 했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물어보니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야. 그때에도 인간과 비슷한 괴물의 피를 마신 적이 있는데, 견인차의 문짝을 찢어발긴 힘은 그때 생긱 모양이더군.”

“흐음.”

그녀의 붉은 입술 사이로 나직한 침음성이 흘렸다. 이운석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말야.”

“......?”

“그가 스크래그를 박살낼 때, 한순간 놀랄 만한 점프력을 보였였거든.”

“점프요?”

“그래. 한 10여 미터 가까이 허공으로 부웅 날았지. 마치 스크래그의 점프력을 보는 것 같았어.”

“설마 몬스터의 능력을 복사해 내는 능력자? 믿을 수 없어요.”

여자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몬스터의 힘을 카피하다니. 터무니없는 소리다. 만약 정말로 요괴의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쩌면 그는 사상 초유의 M 등급일지도.......’

“그런데 그는 지금 어디 있죠?”

그녀의 음성이 조금 빨라졌다. 그녀의 은근한 재촉에 이운석은 예의 미소를 보였다.

“일단은 연락처를 확보한 뒤 집으로 돌려보냈지.”

활처럼 흰 그녀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런 특별한 능력자를 그냥 돌려보내다니. 규정상 특재대(특수재해대책본부)의 추가 요원이 도착할 때까지 신병을 확보했어야 했다. 그녀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 챈 듯 이운석이 약간의 말을 첨가했다.

“사실 그와 간단한 약속을 한 가지 했어.”

“약속이라고요?”

“돈이 궁해 보이는 것 같아서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시켜 준다고 했지.”

“네?”

그녀의 두 눈에 이번엔 의혹이 맺혔다. 좋은 아르바이트라니?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요즘 말이야.”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선 이운석이 웃음 띤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특재대에 인원이 부족하지 않아?”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미간에 물결을 이루던 주름이 활짝 펴졌다. 역시나, 이 남자는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일을 허술하게 처리하는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 보면 언제나 깔끔했다.

그를 특재대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단순히 신병을 확보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리라. 물론 병규라는 그 남자 역시 손해 볼 것은 도 없다. 오히려 그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지도.

“잘했어요.”

굳게 닫혀있던 그녀의 빨간 입술이 황홀한 미소를 그렸다.

한편 그 즈음, 병규의 자취방 화장실에서는 엄청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우왁. 혀가! 내 혀가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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