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셋이 필요할 것이오!
쏴아아.
지겹게도 비가 내렸다.
“우라지게 쏟아지는군.”
이 빗속에서, 그것도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캄캄한 야밤에 비상 근무를 서야 하는 형사들의 신세는 단순히 처량하다는 말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모두들 담배나 태우며 애써 짜증을 달래고 있었다.
“무슨 5월에 태풍이냐.”
건조한 봄 날씨치고는 굉장히 드문 일이다. 그것도 최대풍속이 40m/s나 되는 중형 태풍이라니. 아직 영향권에 든 것도 아닌데 안면을 때리는 바람이 대단했다. 그래서인지 현장의 형사들은 대부분 우비차림이었다. 개중의 몇이 우산을 들고 버텨보지만 바람에 날리는 빗방울에 쓰나마나고 그나마 강풍에 휘말려 우산만 못 쓰게 될 뿐이다.
“그런데 왜 접근하지 말라는 겁니까?”
덥수룩한 수염의 조형사가 꺼칠한 표정으로 전 형사에게 물었다. 조 형사와 함께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의 집 부근에서 잠복근무를 서고 있다 긴급연락을 받고 출동한 전 형사는 피로가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대답했다.
“사람이 죽었다더군.”
“살인사건이군요.”
조 형사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반문한다.
얼마 전, 세한 무역에서 겪은 기괴한 일 이후로 이 귀엽지 않은 후배는 한층 더 태도가 불량스러워진 것 같다. 지금도 하늘같은 선배가 말씀하시는데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이나 해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전 형사의 다음 말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순경 둘이 당한 모양이야.”
“엇!”
조 형사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삼켰다.
순경이 죽었다면 이것은 단순한 살해사건 이상의 문제가 된다. 순경은 모두 총을 소지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제압되었다는 것은 범인이 상당한 무장을 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설혹 별 다른 무시 없이 경찰들을 제압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경찰의 무기를 습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골치 아픈 것은 감히 경찰을 해치울 수 있는 범인의 광기다. 이 정도 되면 잡으려는 쪽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어쩐지 경비들까지 출동했다 했더니.”
조 형사가 경비라고 부르는 KNP(Korean National Police 868 Group) SWAT는 1983년에 신설된 경찰 특공대로 통상 KNP868로 불리고 있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의 특수결찰 SWAT를 모델로 만들어졌지만 워낙 조용한 나라라서 그런지 소규모의 인질극이나 납치극 외에 아직 별 다른 활동이 없었다.
월드컵과 같은 국제 행사에서 주요 인사들의 호위임무를 주로 수행했기 때문에 경찰들 사이에서는 경비라고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아직까지 별 다른 성과가 없다 해도 스틸코아탄도 막을 수 있다는 방탄조끼와 텍티컬 라이트, 레이저 사이트가 달린 MP5A5 등의 중화기로 무장한 KNP 대원들은 위험한 현장 근무에서 더없이 듬직한 아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집에 숨어 있는 범인이 대체 누군데 특수진압 차량까지 출동한 겁니까? 테러리스트라도 한 부대 입국한 모양이죠?”
조 형사의 물음에 전 형사는 담배를 입에 물며 대답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바깥 숲 쪽에는 707부대 애들까지 배치되었다고 하더군.”
“맙소사. 이건 테러 정도가 아니라 전쟁 수준이로군요.”
특전사 예하의 707 특수임무대대는 대한민국 최정예 요원들만을 모아놓은 특수부대다. 그들의 활약상은 뚜렷이 알려진 바가 없지만, 군관계자들에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특수부대를 고르라면 누구나 주저 없이 입에 올릴 부대가 바로 그들 707 특수부대다.
“이렇게 난리인데, 신기하게 똥파리들이 하나도 안 보이네.”
똥파리란 기자들을 말하는 은어다. 지저분한 곳에 파리가 보이듯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모여든다고 해서 경찰들은 기자들을 그렇게 부르곤 했다.
“보도통제가 내려졌다더군.”
“허어. 큰일은 큰일인 모양이군요.”
군부독제 체제라면 모를까, 대통령도 우습게 씹히는 문민정부 시대에 언론의 접근까지 제한할 정도면 사안의 심각성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야말로 대 무장간첩작전에 준하는 군경 여합작전이 아닌가.
“그런데 왜 진입을 않고 있죠? 인질이라도 잡고 있는 건가요?”
“그런 보고는 받지 못했다. 얼핏 들으니 협상을 요구하는 전화 따위는 아직 없었다고 하더군.”
“그럼 왜 청승맞게 비를 맞고 이렇게 대기하고 있는 겁니까? 이 정도 병력이면 테러리스트라고 한순간에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상대가 테러리스트라면 이렇듯 소총의 유효사거리 안에서 한가롭게 잡담이나 나누고 있을 수도 없을 테지만 말이다.
“한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라더군.”
“예?”
조 형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고작 한 사람 때문에 이 많은 병력이 적을 코앞에 두고도 진입을 못한다? 청승맞게 비까지 맞으면서?
어이없는 일이다. 전 형사는 후배의 얼굴이 일그러져 가는 것을 감상하며 라이터를 담배에 가져갔다. 손으로 감싸며 몇 번인가 라이터를 당겼지만 강한 바람 때문에 자꾸만 불이 꺼져 버렸다.
“젠장. 되는 일이 없군.”
라이터를 쓰레기통에 신경질적으로 던져버린 그는 짜증이 한 가득인 얼굴로 어둠 속에 음습하게 녹아든 이층 가옥을 노려봤다. 기한도 없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는 건 그 역시도 싫은 일이다.
그때 손 하나가 나타나 그의 입에 물려 있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제트엔진 같은 소음을 발하는 파란 불꽃은 바람에도 꺼지지 않았다.
“바람이 심한 날은 지포나 터보라이터가 좋지요.”
뻐끔뻐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쳐다보니 말끔한 외관의 낯선 젊은이었다. 전 형사는 버릇처럼 눈동자를 빙글 굴리며 청년을 분석했다.
나이는 대략 이십대 중반. 탄탄하게 다져진 몸을 보니 운동깨나 한 듯하다. 불을 붙여줄 때 잠깐 본 손은 크고 탄탄한 굳은살로 뒤덮여 있었다. 적어도 취미로 운동을 하는 작자는 아니란 소리다. 밤송이처럼 뻣뻣하고 짧은 머리칼은 멋이라기보다는 지독하게 실용적인 냄새를 풍겼다.
“대기한 지 얼마나 됐습니까?”
짧은 머리칼의 청년이 물었다. 그의 시선은 음산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는 전원주택에 고정되어 있었다. 뽐내지는 않았건만 강한 자신감이 청년의 전신에서 은은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무원이군.’
전 형사는 청년이 공무원일 것이라 단정했다. 그것도 젊은 나이에 꽤 높은 요직에까지 오른 엘리트.
“2시간. 먼전 온 사람들은 3시간째라더군.”
틀림없이 자신보다 계급이 높을 테지만 굳이 신분을 밝히지 않은 상대에게까지 존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래 기다리셨군요.”
전 형사에게 고개를 돌린 청년은 가지런하고 깨끗한 치아를 보이며 웃었다.
“이제 곧 돌아가실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는 느긋한 걸음으로 경찰 통제선으로 다가갔다. 완전무장한 특수 부대 요원들이 험한 표정으로 앞을 가로막았지만 그가 양복 상의를 젖혀보이자 그대로 부동자세로 굳어버렸다.
시장 바닥처럼 어수선하던 집 주변의 사람들은 그제야 청년의 존재를 확인하고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던졌다.
“사람들의 시선은 언제나 적응이 안 되는군.”
어깨를 으쓱해 보인 청년은 현관문을 부드럽게 밀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누굽니까? 저 작자는.”
조형사가 멍한 눈으로 청년이 사라진 문을 응시하며 물었다.
“모른다.”
전 형사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빙글 돌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가 세 시간이 넘도록 기다린 자가 바로 그인 것만은 확실하겠지.”
그는 자동차의 범퍼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기다리던 사람이 왔으니 굳이 비를 더 맞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 생각에서였다. 차 안의 눅눅한 훈기를 느끼고 싶었다.
“좀 쉬자.”
허나 그가 차 문을 열 때까지 조 형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계속 비를 맞을 텐가?”
전 형사가 컬컬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러나 조 형사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열려진 문 안쪽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전 형사가 그의 어깨를 짚자 그제야 고개를 돌리며 실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사람, 우산을 안 쓰고 있었는데, 옷이 전혀 비에 젖지 않았어요.”
쏴아아아아.
빗소리가 굵어졌다.
“휘유.”
현관으로 들어선 청년은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거실을 비롯한 1층의 상태는 그야말로 풍비박산. 이제 제주지역에 상륙했다는 태풍이 이 집에만 먼저 불어닥친 것처럼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꽤나 사치품으로 보이는 대형 LCD 텔레비전은 반으로 부서져 있고, 원목으로 짠 고급 탁자와 소파들은 톱질이라도 한 것처럼 박살이 나 있었다. 소파에서 터져 나온 듯한 솜뭉치와 스펀지 조각이 굵은 눈송이처럼 잔해를 덮고 있었다.
“꽤 화려하게 해치웠는걸.”
신발을 신은 채 뚜벅뚜벅 걸어 실내로 들어서자 비로소 피비린내가 확 하고 끼친다. 냄새를 날려버리려는 듯 청년은 손가락으로 코를 몇 번 훑었다.
초현실주의 작가의 거대한 작품처럼 엉망이 된 거실을 지나가는 눈초리로 쓱 훑어본 청년은 바닥에 질질 끌린 듯한 핏자국을 따라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촤촤촤촤촤.
시끄러운 물소리가 그를 반겼다.
주방 역시 반쯤 뭉개진 상태였다.
비스듬히 무너진 싱크대에서 토해진 식기들이 바닥을 어지럽히고 있었고, 활짝 열린 수도꼭지에서 쏟아진 물줄기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주부로 추정되는 시신은 물바다가 된 부엌에 깨진 사기그릇과 함께 반쯤 잠겨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발버둥친 듯 옷은 갈가리 찢겨진 채였고, 손톱도 빠지거나 꺾여 있었다. 이리저리 비틀린 그녀의 몸은 당시의 극심했던 고통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청년은 주방에서 두 가지 중요한 흔적을 발견했다.
하나는 거실의 소파를 토막 낸 것처럼 네 가닥으로 뜯겨진 벽지였고, 다른 하나는 시신의 상태였다.
시신은 머리가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다. 다만 두개골만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피부는 질펀하게 녹아 긴 머리와 함께 액체 풀처럼 바닥에 게게 눌어붙어 있었고, 근육 조각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녀의 얼굴에는 뇌와 눈알이 있어야 할 자리가 훤한 동공으로 텅 비어 있었다.
“피부를 녹이고 골수를 빨아먹었다라. 그런 악 취미를 가진 녀석이 몇 있긴 한데.”
청년은 이런 시신을 자주 접했던 듯, 당장 토악질을 해도 충분할 만큼 참혹한 광경을 앞에 두고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지갑에서 은백색의 짧은 막대를 꺼내 끈적끈적 녹아 있는 시신의 얼굴 근육에 슬쩍 찔러 넣었다.
이물질이 닿은 피부가 지독한 냄새와 함께 흰 연기를 뿜어냈다. 그 냄새만으로도 청년은 대충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띠.
과연 막대 끝에 붙은 발광램프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독이군.”
후보로 점찍었던 놈들 중에 독과 관련된 종은 딱 한 종류뿐이다.
“놈이군.”
청년은 상의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0번 버튼을 꾹 눌렀다.
“여~ 대장? 찾았어. 음....... 역시 대장의 추측대로 스크래그(Scrag)(민물트롤(Freshwater Troll). 아가미가 달린 트롤로 강에서 서식하며, 강가나 배위의 존재들을 습격하는 몬스터이다. 스크래그의 생김새는 3미터가 넘는 큰 키에 팔다리가 가늘고 긴 반면 입은 대단히 넓은 모양을 하고 있다. 독특하게도 스크래그의 재생능력은 오직 물속에서만 작용한다고 한다.)였어. 후딱 해치우고 갈게.”
랩을 하듯 흥겹게 일련의 말들을 쏟아낸 그는 대답도 듣지 않고 핸드폰의 폴더를 닫았다.
“자 그럼. 이놈들이 어디에 있을까나.”
일층에 큰 방이 두 개 있지만 별 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방에 놈들이 있었다면 굳이 그가 찾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벌써 게걸스럽게 달려들었을 테니까.
청년의 발은 자연스럽게 2층으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그는 또 한 구의 시신을 만났다.
경찰제복.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경찰인 모양이다. 그는 주방의 시신과 달리 얼굴이 멀쩡했지만 대신 가슴이 깊게 함몰되어 있었고, 등 뒤로 터져 나온 피가 제복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해머 같은 것으로 찍어낸 걸까?
청년은 조심스럽게 시신의 고개를 돌렸다. 왼쪽은 깨끗했다. 그러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관자놀이 쪽으로 손가락이 드나들만한 작은 구멍이 보였다. 드릴로 파낸 듯이 머리통 안쪽까지 뚫려 있는 상처 부위엔 으깨놓은 두부조각 같은 뇌수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역시나 골을 파먹은 흔적이다.
‘아니. 이 경우는 빨아먹은 거라고 해야겠지.’
다행이라면 이 경관은 가슴이 함몰된 최초의 일격에 심장파열로 즉사했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주방에서 본 주부의 경우처럼 자신의 골수가 남에게 빨리는 끔찍한 경험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긴 압사당하는 것도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겠지.”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안구가 돌출되었을까. 청년은 장갑을 낀 손으로 숨진 경찰의 눈알을 제자리에 넣어주고, 눈을 감겼다. 일을 마친 그는 벌떡 몸을 일으키자마자 달음질하듯 이층 계단을 한꺼번에 뛰어올랐다.
바람이 일 정도로 날쌘 동작이었지만 작은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이층엔 방이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넓은 거실과 화장실이 하나. 이층 역시 일층과 마찬가지로 아수라장이었다. 청년의 고개가 반쯤 열려진 방으로 향했다.
형광등이 깜빡깜빡 점멸하고 있는 방의 안쪽. 기묘한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찌극. 쩝. 찍. 짜각짜각.
청년은 들고양이처럼 조용한 움직임으로 방 가까이 접근했다. 그리고는 열려진 문틈 사이로 내부를 살폈다. 단출한 장식의 실내엔 집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사지를 활짝 펼친 자세로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맡에 그가 찾고 있던 것이 달라붙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거대한 개구리 같은 모양이었지만 세상의 그 어떤 개구리도 인간의 뇌수를 빨아먹지는 않는다. 괴물은 사내의 정수리에 난 구멍으로 길고 가는 혀를 쑤셔 박은 채 뇌수가 풍기는 비린내를 정신없이 탐하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청년은 일부로 소리 나게 문을 열었다.
카악.
놈의 고개가 번개같이 돌아온다. 얼굴의 반이나 차지하는 두 개의 큰 눈알과 세로로 쭉 갈라진 파충류 특이의 녹색 눈동자.
“이런 식사를 방해한 건가?”
청년은 어색하게 웃으며 문을 완전히 열었다.
까드드드드드.
놈의 목울대가 풍선같이 부풀더니 바다지 안쪽을 긁어대는 듯한 기묘한 소리를 낸다. 한밤에 누는 개구리의 울음을 백 배쯤 부풀린 것 같은 소음. 집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조금씩 풍기던 비린내가 서너 배쯤 독해졌다.
“기분이 꽤나 상했나 보군.”
까드드드드.
두 번째 울음. 이번엔 앞서와 달랐다. 울음과 함께 놈이 덤벼든 것이다. 커다란 덩치에 비해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발을 박찬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놈의 육중한 그림자가 청년의 머리를 덮어오고 있었다.
“성질도 급하셔라.”
청년은 여유 있게 웃으며 앞선 발을 슬쩍 뒤로 뺐다. 물갈퀴가 펄럭이는 괴물의 앞발이 그를 스쳐서 문짝을 후려갈겼다.
퍽.
합판으로 만든 문짝이 허무하게 뚫리며 그 뒤의 벽이 쿵하고 진동한다.
“휘유.”
괴물의 일격에 거미줄처럼 쩍쩍 금이 간 벽의 모습에 청년은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무시무시하군.”
괴물이 가볍게 휘두른 위력은 단순히 무시무시한 정도가 아니다. 스치기만 해도 뼈와 살로 된 인간의 연약한 육체 따위는 손쉽게 허물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청년의 얼굴에서는 긴장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입가에 말끔한 미소마저 맺혀있었다.
“스크래그. 한 번쯤 트롤의 종자와 붙어 보고 싶었지.”
까드드드드드.
그의 말에 호응하듯이 괴물이 긴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괴물의 녹색동체가 거대한 해일처럼 밀어닥쳤다.
콰쾅쾅. 퍼더더덕.
“내부에서 건물 철거라도 하고 있는 거야?”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가옥들. 조 형사가 황당한 표정을 금치 못했다. 그런 것은 전 형사를 비롯한 현장의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건물의 소란은 대단했고, 또 요란했다, 이따금씩 멀쩡한 벽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서 사람들이 대피하는 소동까지 빚었다.
긴박감 넘치는 고함과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총소리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기중기로 건물을 때려부수는 듯한 지금의 소음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무기를 쓰면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야?”
전 형사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아는 한 화약 냄새와 격총 소음을 동반하지 않고 이렇게 화려한 파괴의 미학을 선보일 수 있는 무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한 가지는 있다.
“혹시.......”
조 형사가 요상한 표정으로 묻는 듯한 시선을 던지자 한창 담배를 뻐끔거리던 전 형사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아마도 그도 그쪽 부류인 것 같다.”
전 형사와 조 형사가 공유하고 있는 비밀. 발칸의 일로 만났던 병규와 이한영. 이른바 능력자라 부르는 사람들이라면 맨손만으로도 충분히 저런 소란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저렇게 부서지는데 집이 온전할 수나 있을까?”
조 형사의 생각에 호응이라도 하듯 건물의 오른쪽 귀퉁이가 불안하게 흔들리더니 도미노 쓰러지듯 요란스럽게 무너져 내렸다. 장대 같은 빗줄기 속에서도 먼지구름이 몇 미터씩이나 치솟고 부서진 건물 잔해가 폭죽처럼 사방으로 비산했다.
“젠장.”
전 형사와 조 형사는 욕을 씹어 삼키며 급히 차에 탑승했다.
후두둑.
허공 높이 치솟은 잔해들이 쏟아지는 비와 함께 바리게이트 대신 주차되어 있던 경찰차 위로 떨어지자 병든 닭 울음소리 같은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귀 따갑게 울려댄다. 현장 책임자는 급히 통제선을 10미터 바깥으로 물렸다.
쏴아아아아아.
소란스러운 상황과 경쟁이라도 하듯 비가 더 거세졌다.
전 형사는 와이퍼로 앞 유리창에 부옇게 쌓인 먼지를 치우려다 생각을 달리했다. 작은 먼지 같은 것이라면 모를까 나뭇가지나 돌조각을 와이퍼로 밀었다간 유리창에 흠집만 생길 것이다.
“귀찮은 날이군.”
전 형사는 좌석 뒷자리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던 수건을 꺼내들고 차 밖으로 나섰다. 마침 조 형사도 쭈뼛하며 그를 따라 나왔다. 전 형사는 수건을 그에게 던져주었다.
“후배. 좀 닦아라.”
조 형사의 입술이 찌그러졌지만 선배의 근엄한 미소에 군말 없이 수건인지 걸레인지 불분명한 헝겊쪼가리를 받아들었다. 불성실하게 걸레질을 하고 있는 조 형사를 보고 아예 세차를 시켜 버릴까 고민하고 있는데, 절반쯤 허물어진 가옥의 현관문이 열렸다.
좀 전의 밤송이머리 청년이 배시시 웃으며 나왔다.
이층 집 하나를 송두리째 날려놓은 것치고는 의외로 그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상의가 조금 너덜너덜해지긴 했지만 현관만 남고 홀랑 다 날아간 가옥에 비할 수 있을까.
그가 모습을 보이자마자 기독타격대 뒤쪽에 대기 중이던 특수 차량에서 방사능센터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흰 가운의 사내들이 관을 닮은 긴 알루미늄 상자를 끌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청년이 현관문에서 비켜서며 그들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핀셋이 필요할 게요.”
놀라는 사내들의 표정에 희미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청년은 상의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 난리 중에도 용하게 핸드폰은 멀쩡했다. 그는 예의 0번 버튼을 눌렀다.
“잡았어. 대장. 아아. 그런데 사로잡는 건 실패했어. 아아. 시끄럽게 소리치지 말라고. 나도 최선을 다한 거니까.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생겼어. 목격된 스크래그가 모두 몇 마리라고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