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능력 깨어나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난 절망으로 일그러진 세상을 보았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먹구름, 그 사이를 명멸하는 뇌전.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홯폐한 땅, 삭막한 바람, 그리고 이따금씩 내리는 붉은 비.
폭우라도 쏟아지면 핏물로 온 세상이 가득 차는 것만 같았다.
비명이 들린다.
지옥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처참한 비명성에 대지는 신음을 터트리고, 창공은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다.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세상.
그곳에 홀로 우뚝 선 높은 탑이 있었다.
마치 신의 이름으로 이 땅의 모든 절망을 한눈에 담아내는 듯, 한 폭의 지옥도 위에 삐죽 솟은 절망의 탑.
그 탑의 최고층에서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일남일녀.
그림자로 보아 사람인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이유에선지 정확한 모습은 볼 수는 없었다.
두 사람 중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늘게 떨리는 음성은 옅은 습기를 머금고 있는 듯했다.
“정말 가실 겁니까?”
금방 눈물이라도 떨굴 것 같은 애처로운 목소리. 그러나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사내는 얼음보다 차가운 심장을 품은 자였다.
처연한 그녀의 부름에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단지 우렛소리가 끊이질 않는 창밖을 우두커니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고풍스런 술잔. 그곳에서 역한 비린내가 풍긴다. 잔 속에 찰랑이는 붉은 액체의 비릿한 끈적임이란.
피!
놀랍게도 사내가 마시고 있는 것은 붉은 피였다.
“궁금하지 않니?”
돌연 사내가 물었다.
“......?”
“조용한 이곳이 활활 불타는 모습을 말이다.”
사내의 입술에 잔혹한 미소가 그려진다.
“헉헉.”
잠에서 깬 병규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위에 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무서운 꿈이다. 아니 찝찝한 꿈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온몸에 싸늘한 기운이 흐르고, 두통으로 머리마저 욱신거릴 지경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 측의 발표는.......”
잠들기 전 켜 놓은 텔레비전에선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살인마에 대한 내용을 특집으로 방송하고 있었다. 진행자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가는 살인마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에 대해 재삼 강조하며 설명하고 있었다.
“저러니 뉴스가 무섭다는 소리들을 하지.”
아프리카 지방에서 처음 시작된 이 잔혹한 살인은 인도와 일본을 거쳐 최근 우리나라에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 이상한 꿈은 저 뉴스보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휴.”
가볍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선 병규는 작은 창가에 팔을 괘고 섰다.
흐릿한 세상.
더듬더듬 책상 위에서 알이 두꺼운 안경을 찾아 코에 걸친다.
향기로운 봄바람이 귓가를 간질인다. 창밖의 풍경은 지옥 같은 꿈속의 풍경과 달리 지극히 평화로웠다. 한가롭게 떠가는 구름들, 깔깔거리며 골목길을 뛰어가는 아이들의 목소리까지.
“산책이라도 해 볼까?”
그는 옷걸이에 걸어놓은 점퍼를 꺼내들고 무작정 밖으로 향했다. 터덜터덜 밖으로 나가는 그의 등 뒤로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스로를 발칸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용의자의 인상착의는 대머리에 옷도 거의 걸치지 않았으며 마른 몸을 한 60세가량의 노인으로 알려.......”
“쓰벌.”
골목 어귀에 나서자마자 병규는 입에 욕부터 담았다.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패거리를 그곳에서 맞닥뜨리게 됐기 때문이다.
“여~ 이게 누구야.”
황급히 방향을 틀어 뒤돌아가려 했지만, 저쪽에서 먼저 손을 흔들며 속이 배배꼬이는 목소리로 병규를 불렀다.
“하하, 안녕?”병규는 안경을 고쳐 쓰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불량한 태도의 세 녀석. 이 근방에서 알아주는 양아치 녀석들이다. 세 명 중 뻐드렁니의 이도재와 돼지같이 살찐 이상철이란 녀석은 원래 중학교 때부터 설치고 다니던 녀석들이고, 뒤쪽에서 둥그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녀석은 최근에 이사 온 안세준이란 놈이다.
터덜터덜 걸어온 이도재가 그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끈적끈적하게 웃음을 흘린다.
“얼굴 좋아 보이는걸? 데이트라도 있는 거냐?”
‘데이트는 개뿔. 악몽을 꾼 사람에게.’
병규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데 뚱뚱하게 살찐 이상철이 느릿느릿 다가와서 병규를 한 번 쳐다보고 얼굴을 찡그린다.
“이 새끼 봐라. 형님들을 보고 아주 똥 먹은 개새끼 같은 얼굴이 돼 버리네.”
“넌 왜 얘만 보면 그러냐?”
“얼굴이 맘에 안 들어. 괜히 한 대 때려주고 싶거든.”
이상철은 병규의 뺨을 철썩철썩 때린다. 장난 같지 않게 힘이 실려 있다. 병규릐 뺨이 금세 붉어지더니 부풀어 오른다.
“괴롭혀주고 싶다고? 변태 같은 자식. 야야. 저리 가 있어봐. 영업하는 데 방해되니까.”
병규와 어깨동무를 한 이도재가 이상철을 밀어낸다.
물론 병규가 예뻐서 이도재가 그를 변호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들끼리 히히덕거리며 노는 것뿐이다.
결국 녀석들에게 병규는 장난감에 불과한 것이다.
주먹을 꽉 움켜쥔 병규의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녀석들과는 중학교 때부터의 악연이다. 왜 그런지 녀석들은 항상 그를 괴롭혀왔다. 괴롭히는 이유라는 것이 딱 지들 수준에 맞다.
얼굴이 지들 마음에 안 들어서니, 표정이 뭐 같다느니, 오늘은 기분이 별로라느니.......
병규를 괴롭히는 데에는 항상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이곤 했던 것이다.
병규는 녀석들이 죽도록 싫었다. 아니, 증오했다.
중학교 때엔 갑자기 전 항상 지옥에나 떨어져 버리라고 놈들에 대한 저주의 주문을 수십 번 외우다가 잠들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꿈속에선 항상 그가 녀석들을 짓뭉개주고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는데, 현실과 꿈은 매번 이렇게 다르다.
“야. 이 새끼. 얼굴 표정 정말 환상인데? 한 대 치면 울기라도 하겠다.”
이상철이 손으로 병규의 턱을 치켜올리며 얼굴을 일그러뜨려 보인다. 살이 더덕더덕 붙어 출렁거리는 녀석의 징그러운 얼굴.
병규는 그런 이상철의 얼굴을 한 대 쳐 올리고 싶다. 하지만 힘이 없다. 아니 어떻게 이 녀석을 처리한다고 해도, 곧 녀석들의 패거리에게 밟히고, 그 다음엔 전보다 훨씬 더한 곤혹스러운 일들이 연속될 것이다.
불의에 항거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다.
“야. 너 이거 할 줄 아냐?”
이도재가 디스 담배를 쓱 꺼내 보인다.
병규는 당연히 고개를 저었다.
“어이구. 고2나 되는 자식이 아직도 이걸 못해? 보물이구만. 국보급 보물이야.”
이상철이 병규의 뒤통수를 툭툭 치며 놀린다. 대체 담배 못 피우는 것과 학년이 올라가는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야. 새꺄. 애 언다. 괜히 왜 구박을 하고 그러냐?”
이상철을 말리는 척하며 주위를 휘휘 둘러본 이도재는 은근한 목소리로 병규에게 속삭였다.
“히히. 너 아직 이거 안 해 봤다고? 잘됐네. 이 기회에 너도 어른이 돼 보는 거야. 어떠냐?”
“......?”
병규는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이도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담배와 녀석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퍽.
갑자기 이도재가 병규의 머리를 툭 하고 내리친다.
“멍청한 새끼. 그렇게 삘이 안 와? 사라고오!”
이젠 노골적이다. 화들짝 놀란 병규는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졌다. 만 원짜리 한 장이 나오자 녀석이 낚아채듯 가져가 버린다.
“하하. 짜식, 이제야 말귀를 좀 알아듣네. 옜다. 라이터는 서비스다. 흐흐, 잘 피워라. 그 물건, 자라나는 청소년은 정말로 구하기 어려운 거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졸라 싸게 먹힌 거야.”
“그럼. 얼라들은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이지. 어른의 세계에 들어가는 데 만 원이라니. 캬~. 터무니없는 헐값이네. 아마 너무 좋아서 감상문이라도 한 장 써 오게 될걸. 크큭.”
키득거리며 손을 흔드는 녀석들. 병규는 속이 뒤집힐 지경이다.
하지만 녀석들보다 뒤에서 한가롭게 손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안세준 자식이 더 고까운 것은 왜 일까.
안세준.
호리호리한 키에 창백한 얼굴을 한 멀끔하게 생겨먹은 녀석. 이 녀석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짜증나는 녀석이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이도재와 이상철을 얼라들 삥이나 뜯고 다니던 쓰레기 같은 자식들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안세준이란 놈이 녀석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안세준은 무슨 기업의 사장 아들이란다. 그래서인지 돈이 좀 많은 편이다. 아니 좀 많은 정도가 아니라 펑펑 뿌려댄다. 썩은 똥물에 똥파리가 꼬이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게 녀석에겐 이도재와 이상철이라는 똥파리가 엉기게 되었다.
두 녀석이 알랑거리는 게 돈 때문인 줄도 모르고 두목이라도 된 것처럼 으스대는 안세준을 보며 병규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난갑하거나 짜증날 때 보이는 그의 버릇이다.
“기분 더러워졌네.”
뭐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괜히 시비라도 불었다간 골피 아파질 테니까.
즐거운 학창생활?
이런 날들이 어떻게 즐거울 수 있는지, 가끔씩 학교 다닐 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어른들을 볼 때면 한 달만 몸을 바꿔보자고 말을 건네고 싶다.
‘내 고통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
병규는 혼잣말을 뇌까리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산책이나 하자며 나선 길이었는데 정작 갈 만한 곳이 없었다. 몇 군데 친한 녀석들에게 전화를 해 봤지만 다들 바쁘다는 말만 해댔다. 노래방이고, 피씨방이고 혼자 갈 만한 곳은 못된다.
정작 필요할 때 같이 놀 사람도 없다니, 세상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릴없이 이곳저곳을 거닐던 병규는 학교 뒷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숲은 일개 고등학교 뒷산 정도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울창했다. 약수터까지 이어진 작은 산길만 아니라면 감히 숲으로 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보다는 괜찮은걸.”
숲 속을 걷고 있는 병규는 기분이 조금 좋아진 듯 한껏 기지개를 켰다.
언뜻 울창한 것처럼 보이던 숲이었는데 약수터까지의 산길을 의외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훤하기만 하구만. 왜들 이 숲을 나쁘게 말하는지 모르겠네.”
산을 끼고 있는 학교들이 매양 그렇듯 그가 다니는 고등학교도 공동묘지를 밀고 학교를 건립했다느니, 한밤중이면 비명소리가 들린다는 식의 여고 수준 괴담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유독 뒷산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무성했는데, 호랑이를 보았다는 사람부터, 약수를 뜨러갔던 여 선생이 일주일 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까지 해괴한 괴담이 횡행했다.
“이렇게 야트막한 산에 호랑이가 살아? 허무맹랑한 소리지.”
병규는 마치 자신이 오해를 받은 것처럼 혀를 쯧쯧 찼다. 그는 유독 산을 좋아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면 이곳을 찾곤 했다.
전나무와 소나무 사이의 그늘을 따라 얼마쯤 걷자 작은 약수터가 나왔다.
바위에 놓여진 바가지에 답답할 정도로 쨀쨀 흐르는 약수를 받아 크게 한 모금 들이켰다. 몸서리처질 정도의 냉수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뱃속을 휘젓는다.
“캬. 시원하다.”
병규는 늙은이처럼 호탕하게 한 번 소리치고 약수터 한쪽에 가 앉았다. 바람이 살랑 불어와 그의 머리칼을 날리고, 오후의 화사란 햇살은 아늑하기만 했다.
펑퍼짐한 돌 위에 앉아 주위 경관을 둘러보니 장관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늑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으, 혼자보긴 그래도 아깝군.”
이럴 때 때깔 좋은 여자친구라도 하나 있으면 참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괜스레 든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병규는 꼭 여자친구를 만들어 핑크빛 외설(?)을 저지르고 말겠다는 기특한 야심에 사로잡혔었다. 입학식 날 반반한 선배들과 얌전해 보이는 동기들을 남몰래 점찍어 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야심에 불과했고, 결국 봄방학이 끝나면 곧장 2학년이 되는 지금 시점까지도 여자친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호감을 보이는 여자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이도재와 이상철이라는 땅거지 같은 자식들에게 당하는 그를 보게 되면 이내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어? 빈 통이......?”
물을 담는 커다란 통 두 개가 약수터 앞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깨끗한 걸 보니 가져다 놓은 지 얼마 안 된 물건인 모양이다.
“신첵이라도 갔나? 누가 들고 가면 어쩌려고.”
운동도 할 겸 약수터를 찾는 게 드문 일은 아닐 테지만, 이렇게 아예 자리에서 뜨는 경우는 드물다. 하기야 물통 하나에 얼마나 한다고, 들고 다니며 운동을 할 필요는 없을 테지만 말이다.
그때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찌걱 쩝. 찍찍. 짜각. 아득.
날고기를 뜯어먹는 듯한 비릿한 소음.
‘들개가 산토끼라도 잡은 걸까?’
문득 호기심이 인 병규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약수터 뒤편의 으슥한 곳으로 들어선 병규는 얼마가지 않아 소리의 근원지를 발견했다.
사람의 등이 보인다.
병규의 미간에 여러 겹의 주름이 잡혔다.
아직 초봄이라 공기가 쌀쌀한데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은 더러운 천으로 치부만 간신히 가린 채였다. 게다가 훤하게 보이는 등은 주름투성이에 검버섯까지 가득 피어 있었다. 못해도 오륙 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인이다.
‘무슨 일이라도 당한 걸까?’
병규는 노인이 조금 걱정되었다. 이렇게 찬 날씨에 옷을 거의 입고 있지 않았고, 차라리 강변에 나앉은 노숙자가 저보다 형편이 나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도대체 지금 뭘 먹고 있는 거야.’
호기심에 잔뜩 인 병규는 여전히 등을 보이고 앉은 노인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그때 그의 기척을 느꼈는지 노인이 고개를 홱! 돌렸다.
‘헉.’
병규의 입이 쩍 벌어졌다.
노인의 입에서 뚝뚝 떨어지는 진득한 핏물 때문이었다. 그러나 입가에 흐르는 피는 노인의 손에 쥐어진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노인의 손.
그 손에 쥐여진 물컹거리는 붉은 살점. 그것은 심장이었다. 그것도 아직 펄떡펄떡 힘겹게 뛰며 붉은 핏물을 게워내고 있는 뜨거운 심장.
그제서야 병규는 노인의 앞에 가로로 누워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등산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방금 전 약수터에서 본 빈 통의 주인인 것을 눈치 챘다. 하지만 그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다. 가슴께가 길게 쭉 찢어진 채 내장을 사방에 뿌린 채 죽어있었다.
노인의 손에 들려 있는 게 죽은 사람의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가슴을 반으로 갈라놓은 채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날로 씹어 먹고 있는 충격적인 광경. 가히 공포 영화에서나 봄 직한 충격적인 영상이었다. 갑자기 꿈에서 보았던 잔인한 사내가 병규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설마 이것도 꿈? 절대로 꿈이어야 해!’
병규는 주춤주춤 물러서며 목에서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삼켰다. 가슴이 쩍 갈라진 시신. 그리고 게걸스럽게 시신의 심장을 뜯어먹는 헐벗은 대머리 노인.
집을 막 나설 때 용의자의 인상착의에 대해 주절거리던 뉴스 앵커의 말이 귓가에서 메아리친다.
‘장기매매에 관련된 조직의 소행 같다고? 망할 놈들. 감식관들은 눈이 삐었나? 장기를 파는 놈이 심장을 왜 먹는단 말야.’
병규는 속으로 뉴스 앵커에게 욕을 해대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살인마가, 발칸이라고 불린 살인마가 그를 쳐다보고 있다. 퍼렇게 빛나는 눈동자가 심장이 얼어버릴 것 같았다.
빠득.
병규는 조심스럽게 시선을 떨구고 발아래를 살폈다. 나뭇가지를 밟고 말았다.
‘망할.’
속으로 욕을 하며 조심스럽게 살인마가 있던 곳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없다.
놀랍게도 잠깐 사이, 노인이 사라졌다.
신원 불명의 시신 한 구만이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묻은 갈비뼈를 을씨년스럽게 드러내 놓고 있을 뿐이다.
‘어디로 갔지?’
병규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시선 닿는 어디에도 좀 전의 노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병규는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무심코 뒤로 돌았다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충격에 휩싸였다.
“크크크.”
발칸이, 입가에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살인마가, 누렇게 물든 눈깔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리가 덜덜 떨린다. 심장은 터질 듯 두근거리고, 눈앞은 노랗게 변해버리는 것만 같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그냥 산책 삼아 약수터에 온 것뿐인데, 지독한 꿈에, 재수 없는 녀석들을 만나질 않나, 이제는 터무니없는 살인마와 눈싸움을 하고 있다.
“좋아. 좋은 냄새구나.”
코를 벌름거리던 발칸이 입을 좌우로 쫙 찢는다. 기괴한 웃음. 뱀을 본 개구리의 심정이 이럴까. 피부에 소름이 쫙 끼친다.
“키키키키.”
흐느적흐느적 걸어오는 살인마.
쩍 벌려진 입안에 톱날 같은 누런 이빨들이 서서히 드러나 보인다.
‘도망가야 해.’
생각은 간절했지만 발바닥이 바닥에 붙었는지 도저히 떨어지지가 않았다. 살인마에게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질식할 것만 같다.
촤르르 촤르르.
가물치의 그것처럼 생긴 녀석의 가슴이 촤르르 일며 쉑쉑 하는 기분 나쁜 숨소리를 낸다.
‘괴, 괴물.’
세상의 어떤 인간도 갈비뼈 사이로 호흡을 하진 않는다.
병규는 소름이 끼쳐 미칠 것만 같았다. 녀석의 귀기 넘치는 위압감에 턱 아래로 식은땀이 물처럼 줄줄 흐른다. 이렇듯 절망스러운 하루가 자신에게 닥치다니.
게다가 이놈의 다리는 아직까지도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젠장. 움직여!”
병규는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두 주먹으로 허벅지를 퍽! 하고 내리쳤다. 충격을 가해져서인지 바짝 굳어있던 몸이 그제야 조금 풀린다.
병규는 그대로 죽자 살자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눈썹이 휘날리도록.
한참 달리며 뒤를 돌아보니 살인마는 제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썩은 미소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구역질나는 웃음. 그리고 온몸에서 묻어나오는 저 여유.
불길한 예감이 든다. 병규는 더욱 다급해졌다. 하지만 마음이 급하다고 발까지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병규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살인마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미 백 미터 정도 거리가 벌어졌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병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휘릭.
가벼운 바람소리와 함께 퍽 하는 충격이 병규의 등허리를 찔러왔다.
“으악!”
와당탕 요란스럽게 넘어진 병규는 몸부림 칠 새도 없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이럴 수가.’
녀석이 코앞에 있었다. 무려 백여 미터를 공간이동 한 것처럼 단박에 눈앞까지 미친 것이다.
“말도 안 돼!”
병규는 경악성을 질렀다. 방금 전까지 저쪽 끝에 서 있던 살인마가 어떻게 눈 한 번 깜빡이는 사이에 그를 후려갈길 수 있단 말인가.
순간이동? 어처구니없겠지만 정말로 그런 것으로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불가사이의 한 스피드다.
“키키키.”
경악하는 병규를 보던 발칸은 게걸스럽게 키득거렸다.
“발버둥치는 모습이 보기 좋은걸?”
발칸은 그물에 걸린 싱싱한 물고기를 보듯 병규를 쳐다봤다. 놈의 입가에 풍기는 느글느글한 악취.
왜 무섭다는 생각보다 역겨운 느낌이 먼저 드는지.
“네 심장이 보고 싶구나. 과연 얼마나 싱싱할까?”
기괴하게 웃으며 녀석이 손을 쭉 뻗어왔다. 병규는 움찔 놀라며 뒤로 물러섰지만 어느새 머리칼을 붙잡히고 말았다. 녀석은 80킬로크램 몸무게에 가까운 병규를 한 손으로 덜렁 들어올렸다.
“윽.”
병규는 신음을 흘렸다. 머리가죽이 통째로 뜯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붙잡힌 채 정육점 진열장에 매달린 고깃덩어리처럼 허공에 떠 있었으니 그럴 밖에.
한 손으로 병규를 들어올리다니. 노인네 같은 겉보기와 달리 발칸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 죽어.’
마음을 독하게 먹은 병규는 허공에서 대롱거리며 녀석의 배를 있는 힘껏 발로 퍽퍽 찼다. 그러나 축 처진 피부와 달리 발칸의 근육은 바위처럼 탄탄했다. 오히려 발끝이 아파왔다. 그러나 병규는 포기하지 않고 그네를 탄 것처럼 앞뒤 반동을 주며 녀석의 배와 가슴을 타고 얼굴을 후려쳤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머리칼을 움켜잡은 녀석의 팔에 원숭이처럼 매달렸다. 그리고는 놈의 앙상한 손목을 억세게 물어뜯었다. 얼마나 세게 물어뜯었는지 살갗이 벗겨지며 피가 조금 새어나와 입안에 흘렀는지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이놈이.”
병규의 반항을 느긋하게 지켜보기만 하던 발칸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온다. 급기야 표정까지 일그러지더니 거칠게 병규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친다.
“큭.”
힘없이 나동그라진 병규는 뼈마디가 부서질 것 같은 통증에도 재빨리 몸을 일으키고는 다시 죽어라 내빼기 시작했다. 다친 곳은 나중에 치료할 수 있지만 죽으면 국물도 안 남는다.
“키킥.”
도망가는 병규를 보며 발칸은 비웃음을 흘렸다.
“넌 특별히 고통스럽게 먹어주마.”
드디어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규는 고개를 돌려 발칸을 주시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병규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눈은 찢어질 듯 커져야 했다.
발칸의 발이 움직이는가 싶은 순간 녀석의 몸이 비단 천이 펼쳐지듯 쭈욱 앞으로 밀려나왔다.
‘헉.’
병규는 경악성을 질렀다. 저만큼 있던 녀석이 또 한 번 어느새 눈앞에 와 있는 것이다. 너무 빠른 움직임이라 몸이 쭉 늘어난 것처럼 보인 것이다.
단순히 빠르다는 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공할 만한 스피드.
“얌전히 있거라.”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발칸이 손을 뻗어왔다. 마치 닭장 속의 병아리를 꺼내듯 가벼운 손놀림. 그러나 병규는 이대로 당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는 땅을 구를 때 몰래 집어든 돌멩이를 발칸을 향해 힘껏 던졌다.
딱!
발칸의 이마가 깨지며 푸른 핏물이 터져 나온다.
“크윽.”
발칸이 움찔하자 병규는 곧바로 뒤돌아서며 다시 도망가기 시작했다. 살아야 한다.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그것뿐이다. 녀석의 피가 푸른색이든 무지개 색이든 일단 살고 난 후에 따져도 따져볼 일이 아니겠는가.
“이놈이.”
신경질적으로 흘러내리는 핏물을 쓱 훑어낸 살인마는 누런 이빨을 한껏 드러냈다.
발칸의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사냥감이다. 이 조그만 애송이 녀석이 유달리 그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어느새 느긋한 웃음이 입가에서 지워졌다.
그는 다시금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달아나 봤자 인간의 굼벵이 같은 움직임으론 도저히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가 몸을 움직이자 휙 하는 가벼운 바람소리가 들린다. 먼 거리를 단번에 압축하는 것 같은 엄청난 빠르기. 저 멀리 뛰어가던 병규가 어느새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잡았다.”
발칸은 게걸스럽게 웃으며 병규를 휘어잡으려 들었다. 그런데.......
“엇?”
득의에 찬 미소를 지으며 병규를 잡아채던 살인마는 나직한 경호성을 질렀다.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던 애송이가 순간 쭉 하며 앞으로 튀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명백히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가속도.
“이놈이!”
발칸은 다시 한 번 병규의 뒤를 쫓았다. 조금 전보다 더욱 빠른 속력. 그가 발을 놀릴 때마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이래도?”
발칸은 다시 한 번 우악스럽게 병규를 채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위급한 순가. 병규의 몸이 탄력적인 고무공처럼 쭈욱 앞으로 튕겨나가 버렸다. 이번엔 좀 전보다 더 빠르다.
“무슨 이런.”
살인마는 해괴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된 녀석이 달릴수록 빨라진단 말인가. 게다가 이 녀석의 움직임은 묘하게 그와 닮은 구석이 엿보였다.
“이 녀석이.”
짜증이 잔뜩 치밀어 오른 발칸은 전력을 다해 달렸다. 휘익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어느새 병규 앞을 가로막아 섰다.
“흐흐흐. 쥐새끼 같은.......”
득의의 미소를 짓던 발칸은 그러나 뒷말을 제대로 이을 수가 없었다. 앞이 가로막힌 상황에서도 병규가 속도를 줄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통박치기라도 하겠다는 기세였다.
“단숨에 쪼개주마.”
발칸은 주먹을 들어 병규를 찍어누르려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병규의 움직임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채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몸을 동그랗게 말더니 그의 옆구리 아래로 구르듯 쏜살같이 지나쳐 갔다.
“엇?”
어처구니없이 병규를 놓쳐버린 발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이렇게 어이없는 경우는 처음이다.
“끼놈.”
발칸은 괴성을 토하며 튕기듯 발을 놀렸다. 파팡 하는 파공성과 함께 다시 병규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었다. 병규가 불가사의할 정도로 빨라지긴 했지만, 아직 그의 속도엔 미치지 못했다.
“어디 다시 한 번 빠져나가 봐라!”
추악한 얼굴 가득 분노를 띠고 발칸의 갈퀴 같은 손이 병규의 머리를 찍어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손톱은 허공을 가로질러야 했다. 혹시나 또 옆구리 쪽으로 빠져나갈까 봐 상체를 잔뜩 숙이고 기다렸건만, 이 날다람쥐 같은 녀석은 오히려 그의 무릎과 가슴을 계단 밟듯이 밟고 등을 타고 넘어간 것이다.
황당할 정도로 재빠른 움직임.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발칸의 얼굴이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진다. 지금까지 별의별 인간을 다 만나 봤지만 이렇게 임기응변이 좋은 녀석은 처음이다. 게다가 갈수록 빨라지는 놈의 움직임은 또 뭐란 말인가.
일시 당황하던 살인마 발칸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놈. 갈기갈기 찢어 죽여주마.”
“헉헉.”
병규는 죽어라 달렸다. 지금 그는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주위 풍경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나가고, 휘리릭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두려울 정도였다.
얼마나 빠른지 눈이 미처 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몇 번이나 나무에 부딪힐 뻔했다.
하지만 그래도 살인마는 허깨비처럼 그를 수월하게 쫓아왔다. 거리가 좀 벌어졌다 싶으면 귀신처럼 다시 그의 눈앞에 나타나곤 했다.
촤악.
다시 한 번 녀석의 손이 머리털을 스치고 지나간다.
피부 끝이 쩌릿쩌릿하다.
짙은 음영을 드리우고 있던 오솔길이 조금 밝아진다. 숲이 끝나가는 것이다. 저 멀리 석양으로 붉게 물든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다 왔다. 이제 조금만 가면 된다.”
어떻게든 마을에 도착하면 녀석에게서 달아날 수 있을 것이다. 설마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까지 날뛰지는 않겠지.
그러나 환희의 웃음을 그리던 병규는 마을을 불과 몇 미터 앞두고 몸서리쳐지는 소음과 직면해야 했다.
그러나 환희의 웃음을 그리던 병규는 마을을 불과 몇 미터 앞두고 몸서리쳐지는 소음과 직면해야 했다.
푸욱.
등과 배가 인두로 지지는 것처럼 아파왔다. 시리도록 차가운 냉기가 등을 타고 뒷머리를 강타하더니 과격한 고통의 파도가 전신을 누빈다.
“커, 컥.”
병규는 턱을 덜덜 떨며 고개를 떨구고 제 몸을 쳐다봤다.
그의 옷이 붉게 물들어 있다.
그리고 그의 배.
벌건 손이 그의 배를 뚫고 삐죽 튀어나와 있다. 피와 주름으로 징그럽게 번들어기는 그 손은 그가 보는 앞에서 뱃속의 내장을 하나씩 끄집어내 찢어발기고, 뭉갠다. 잔인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커헉.”
입에서 피가 쏟아진다. 몸에서 힘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며 병규는 쌀자루가 무너지듯 허물어져 내렸다.
“좋아. 이제야 기분이 좋아지는군. 지렁이처럼 꿈틀대는 네 녀석의 모습이 정말 꼴좋구나. 크크크크.”
그를 내려다보며 추악한 미소를 흘리는 발칸. 침이라도 뱉고 싶지만 의식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안 돼. 아직 의식을 잃으면 안 되지. 이 몸을 그렇게 고생시켰으니 지금부터 벌어질 화려한 쇼를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할 의무가 너에게 있거든. 자 어떻게 죽여줄까? 그래. 넌 특별히 온몸을 터뜨려주마. 풍선처럼 말야. 빵 하고 터지는 소리가 아주 기분이 좋을 거야. 킥킥킥. 온몸이 터져나간 네 꼴을 과연 어떨까? 벌써부터 기대되는걸? 킥킥킥킥.”
‘망할 자식.’
저런 쓰레기 같은 녀석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고 죽어야 하다니, 돌아보면 병규 자신의 인생은 정말로 별 재미도, 의미도 없었다.
항상 당하고 산데다가 언제나 피해의식에 젖어 있었다.
어쩌다 자신의 인생이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나 싶은 심정이다.
이도재와 이상철이라는 몹쓸 녀석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부터? 아니면 가족의 외면을 참지 못하고 시골의 다 쓰러져가는 이층 목조건물로 유배 오게 된 후부터?
모를 일이다.
‘힘만 있었다면. 내게 힘이 있다면 이런 참담한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짧은 생을 살고 죽는 순간까지 후회와 참담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인 것 같다.
그때, 희미해져 가는 청각으로 작은 소란이 들려왔다.
“이놈이 감히 사람을 해치다니!”
산천초목이 몸을 떨 만큼 우렁찬 음성. 병규는 가물거리는 눈에 힘을 줬다. 우렛소리를 동반하고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집 채만한 호랑이. 그것도 잡 털 하나 섞이지 않은 거대한 백호의 모습이었다.
‘이젠 환각까지.......’
피를 게워내며 병규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그가 지은 표정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