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258화 (258/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58화

81. 생명의 샘으로(6)

치료법을 시험해 보기 위해 강유환 회장에게 한 부탁은 생각보다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먼저 티머시 증후군에 걸려 고통을 받고 있던 사람들에게 비밀리에 접 근했고, 많은 수의 환자에게 지원 요청을 받아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지원한 개개인의 현재 나타나는 병의 증상이나, 건강 상태, 또 다른 지병이 없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사가 뒤따랐다.

이렇게 철저하게 검사를 마친 지원자 중에서 전문 의료진의 추천에 따라 10명 정도의 후보군을 나에게 보내왔다.

대부분 티머시 증후군 증상을 보인 지 얼마 안 된, 아직 젊고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는 지원자들이었다.

좋은 목적으로 하는 일일지라도 법적으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시간이 꽤 걸릴 거라 예상했는데 정말 순식간에 부탁했던 일이 진행됐다.

"보내드린 지원자 명단이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회장님께서 다시 지원자를 뽑아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 아뇨.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런데 이 지원자 모두 혹시 모를 위험성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 거죠?"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저희 쪽에서 개인적인 합의를 마쳐놨습니다. 세진 님께서는 치료에만 신경 써주시면 됩니다."

"...... "

너무 일 처리가 완벽하다 보니 살짝 무서운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최종적으로 먼저 치료의 대상이 될 5명의 지원자가 최종적으로 선정됐다.

치료법을 시행할 날짜를 조율하고 장소를 섭외했다.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일의 성격상 이 모든 과정이 매우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

“나도 같이 갈래!"

"퓨이! 퓨이!"

“후모!”

“얘들아. 나랑 이엘은 놀러 가는 게 아니라니까."

잔뜩 심술 난 표정으로 나를 놓아주지 않는 아이들.

나는 물론이고 옆에서 지켜보던 임진혁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세진이가 중요한 일이 있어서 나가는 거야. 이렇게 떼를 쓰면 안 돼."

“저번에도 우리만 빼놓고 이엘이랑

나갔다 왔잖아.”

“허허. 이것 참."

저번에 아이들이 잠들어 있을 때․ 강유환 회장을 만나러 이엘과 잠시 나갔다 왔던 일이 화근이 되어 돌아왔다.

그때도 놀러 갔다 온 게 아니라고 설명은 했지만, 맛있는 케이크를 잔뜩 먹고 돌아온 이엘이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자기들만 빼놓고 외출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아이들.

오늘도 이엘만 데려가겠다는 말에 잔뜩 심술이 나 버렸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찾아온 시르엘과 피렌느도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얘들아. 세진 님을 너무 곤란하게 하면 안 돼."

"맞아. 오늘은 이 피렌느랑 재미있게 놀자."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못했는지 울상을 지었다.

"퓨우우우.…..”

“정말 우리도 가면 안 돼?"

“후모?”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부탁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엘도 마음이 불편한지 슬쩍슬쩍 내 눈치를 봤다.

“하아……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봐."

내가 한숨을 내쉬며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아이들은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은 내가 혼자 가버릴까 봐 팔다리를 꽉 붙잡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이혜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혜린아. 나야."

-응. 오빠. 무슨 일이야?

“오늘 가는 거에 대해서 말인데……”

나는 이혜린에게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 설명에 뒤이어 혹시 다른 아이들도 같이 데려가도 되겠냐는 내 물음에 그녀는 선뜻 대답을 내놨다.

-함께 데려와도 상관없어.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것들은 없어도, 자리는 충분하니까.

“그래? 괜찮겠어?"

- 이엘에게 주려고 준비한 간식만 좀 더 준비하면 되겠지? 그리고 차량도 더 보내놓을 테니까 다른 분들도 데려와도 상관없어.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해 주고.

“으, 응. 고맙다. 그럼 나중에 보자."

생각보다 훨씬 쉽게 허락이 떨어져서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통화를 끊었다.

-툭, 툭.

통화가 종료되자마자 달라붙어 있던 아이들은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외출하는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간절하게 바라보는지.

웃음이 나면서도 좀 더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줘야겠다고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됐다.

“오케이! 그럼 너희들도 빨리 외출 준비해, 금방 나가야 하니까."

"와아아!"

"퓨이! 퓨이!"

“후모!”

외출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괜찮으시면 같이 가실래요? 저 대신에 아이들을 봐줄 사람도 필요할 것 같은데."

“그래도 돼요? 와아! 바로 준비할게요."

“피렌느만 보내는 건 걱정되니까 저도 같이 갈게요."

옆에 아이들이 있어서 겉으로 크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시르엘과 피렌느도 외출이 기대되는지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임진혁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아무래도 시르엘과 피렌느에게만 맡기고 외출하기에는 약간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아이들과 함께 외출하게 되었다.

****

이혜린이 보내준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한 곳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이었다.

멀리서 보이는 3층짜리 건물 주위에 많은 경비요원이 사방을 삼엄하게 경계하는 중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피해갈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였지만, 아이들은 이 마저도 즐거운지 시종일관 즐거운 표정이었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경비요원의 안내를 받아 건물 안쪽으로 향했다.

겉으로 봐서는 굉장히 허름하고 오래된 느낌이었는데 내부는 굉장히 깔끔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중간중간 병원에서나 볼법한 의료 기기들과 의료진들이 쫙 깔려있었고, 보이는 방들은 하나같이 병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본격적인 준비에 없었던 긴장감이 절로 생겨날 정도였다.

안내에 따라 3층에 한 방으로 들어서자 강유환 회장과 이혜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너라. 허허. 잘들 지냈느냐?"

회장은 함께 온 아이들을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아이들 한명 한명과 인사를 나눈 뒤, 함께 온 엘프들과 임진혁과도 짧게 인사를 나눴다.

아이들을 데려온다는 소식을 미리 전해놓았기 때문인지.

방 안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과 장난감들이 가득 준비되어 있었다.

간식과 장난감에 아이들의 관심이 쏠려있는 동안, 나는 조용히 이혜린과 함께 방을 빠져나왔다.

“내가 부탁한 것들은?"

“응, 옆 방에 다 준비해 놨어. 한 번 확인해 봐.”

나는 그녀의 안내에 따라 옆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바닥에는 특수한 재료로 만들어진 커다란 회로가 그려져 있었고, 회로의 중앙에는 커다란 마정석이 설치돼 있었다.

나는 바닥의 회로와 마정석의 상태를 꼼꼼하게 체크했다.

회로는 내가 미리 전해준 대로 완벽하게 설치돼 있었고, 마정석도 흠 잡을 데 없는 최상급이었다.

체크를 끝내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혜린을 돌아봤다.

“이 정도면 완벽한 것 같다. 치료를 받을 분은?"

“몇 시간 전에 기초적인 검사를 끝내고 아래층에서 대기하고 있어. 오빠가 부르면 바로 올 거야."

"흐음. 그러면 먼저 이엘부터 불러 줄래?"

"알았어."

나는 이혜린에게 이엘을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금방 옆방에서 데리고 와줬다.

얼마나 신나게 케이크를 먹고 있었는지 입가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아주며 최대한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엘, 저번에 같이 연습했던 것 기억하지?"

“네. 아빠. 기억하고 있어요."

“긴장하지 말고. 연습했던 대로만 해줘. 이엘만 믿고 있을게."

이엘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의연한 모습에 나는 대견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사전 준비를 끝내고 이혜린에게 첫

지원자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복을 입은 30대 남자 한 명이 굉장히 긴장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이엘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의연한 모습의 이엘과 대비되어 굉장히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자, 잘, 잘 부탁드립니다."

사정없이 떨리는 목소리의 남자와 인사를 나누고 위치할 곳을 안내해 줬다.

"저기 저쪽 커다란 원 안에서 계시면 돼요."

"여기...…?"

“네. 거기 맞습니다."

이혜린은 방해하지 않기 위해 다시 방 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혹시 문제가 생기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바로 말해줘."

“알았어. 고마워 혜린아."

“행운을 빌고 있을게."

그녀가 나서자 방 안에는 나와 이엘, 환자복을 입은 남자 한 명만 남게 되었다.

이 상황이 더 긴장되는지 남자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잘 될 겁니다."

"흐읍…… 후우. 네. 알겠습니다."

심호흡을 한번 한 남자는 마음을 다잡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엘. 시작하자."

“네. 아빠."

내 신호를 받은 이엘이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엘을 주변으로 신비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그 신비한 기운에 긴장했던 남자도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방 안이 신비한 기운으로 가득 찰 때쯤, 회로의 비어있는 부분에 선명한 문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로 생명의 문양이었다.

나는 문양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회로에 의식을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의지와 반응해 회로에는 마정석의 마력이 흐르기 시작했고, 문양의 힘도 자연스럽게 회로에 스며들었다.

-우우우우웅!

마정석이 거대한 진동음과 함께 거칠게 마력을 뿜어냈다.

나는 최대한 섬세하게 그 흐름을 컨트롤하며 문양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려 노력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집중한 탓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회로를 유지하던 도중, 환자복을 입은 남자를 중심으로 생명의 기운이 모여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우우우우웅!

-드드드드득!

남자 주변으로 많은 생명의 기운이 몰릴수록.

마정석의 진동은 거칠어지고, 바닥의 회로도 크게 들썩거리며 소리를 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우우웅!! 빠직!

쉴새없이 마력을 뿜어내던 마정석에 금이 갔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아아아앗!

환자복을 입은 남자를 중심으로 강하게 생명의 기운이 몰려들었다.

순간 요동치던 생명의 기운은 모두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고, 방 안에는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눈을 감고 집중을 하던 이엘은 천천히 눈을 뜨며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환자복을 입은 남자도 멍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렸다.

“끝난…… 건가요?"

“네. 일단 치료는 다 끝났는데, 좀

어떠세요?"

"모르겠네요. 몸이 좀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으으음.”

그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잠시 뭔가를 고민하는 표정 끝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남자는 다시 긴장한 표정으로 망설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에 맞춰 남자의 손에서는 강하게 불꽃이 일어났다.

-화르르륵!

"어……”

"......?"

“된다…… 마법이 된다! 다시 마법을 쓸 수 있다고!!"

자신의 마법을 확인한 남자는 흥분한 표정으로 불꽃을 바라봤다.

방 안의 소란을 들었는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혜린과 의료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괜찮으세요?"

"으허허! 괜찮습니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다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슴이 아프지도 않아요!"

신이 난 남자의 불꽃 쇼에 이혜린과 의료진들은 멍한 표정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불꽃을 피워대던 남자는, 돌연 눈물을 주르륵 흘리더니 나와 이엘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흐윽. 큭.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크흡.”

쏟아지는 눈물을 겨우 참아가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는 남자.

나와 이엘은 그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환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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