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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255화 (255/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55 화

81. 생명의 힘으로(3)

“자! 그럼 다 모인 거지?"

“네!”

"퓨이! 퓨이!"

“후모!"

내 물음에 아이들은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소풍을 떠나기 전처럼 들뜬 아이들의 모습에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세계수를 지키는 엘프 마을에 초대를 받아 방문을 하는 날. 아르킨 길드원과 오연우, 그리고 아이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거기다 호숫가에 사는 엘프들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와 함께 마을로 가게 됐고,

그 덕분에 수십 명의 인원이 몰려 들어 평소의 고요한 아침 분위기와는 다르게 북적북적했다.

대충 인원을 파악하고 엘프 마을로 향하는 입구를 개방했다.

평소에 균열 입구를 자주 보았던 아이들이나 아르킨 길드원들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엘프들은 아직도 이 광경이 신기한지 눈을 반짝였다.

아르킨 길드원, 아이들, 엘프, 마지막으로 오연우와 나까지 균열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진 님, 잘 다녀오세요!"

“약초밭은 저희가 잘 관리하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올 때 선물 가지고 올게요."

남아서 마을과 약초밭을 관리하는

엘프들에게 배웅을 받으며 나는 균열 입구를 통과했다.

입구를 빠져나오자 가장 먼저 여전히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한 엘프 마을의 풍경이 보였다.

호숫가에도 새로이 엘프 마을이 생겼지만, 아직은 이곳만큼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나타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신비로운 마을 풍경에 이어서 우리를 마중 나온 많은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한 미소를 띠고 우리를 맞이해 줬다.

심지어

“반갑…… 습니다.”

"어…… 서오세요."

엘프어가 아닌 약간 어눌한 한국말을 사용하며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오연우는 이 광경을 보고 놀랍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처음 마을을 방문했을 때랑은 정말로 천지 차이네요."

“그때는 사실 손님이라고 부르기도

뭐 했지."

엘프 경비대원들의 삼엄한 경계를 받았던 첫 방문 기억을 떠올리며, 나도 달라진 마을의 분위기를 몸소 체감했다.

“저기! 세진 님이다!"

"와아아! 세진 님!"

가장 늦게 입구를 통과한 나를 발견한 엘프들이 환호성을 지르면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다른 일행들 경우에는 외부인의 방문을 환영하는 느낌이었다면, 나에게 몰려드는 광경은 마치 연예인을 만난 팬클럽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어. 어엇!"

가장 나와 가까이 있었던 오연우는 졸지에 톱스타의 매니저가 된 것처럼 내 근처에 끼어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세진 님.”

“세진 님 덕분에 마을에 다시 세계수의 기운이 넘치게 됐습니다.”

“모두 세진 님 덕분입니다."

며칠 전에 테오른 장로가 호숫가 엘프들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내 주변으로 몰려드는 엘프 때문에 난감해하는 사이, 멀찍이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세진 님이 곤란해 하시니 모두 그만 하세요.”

"아! 루나르엘 님!"

엄한 표정을 지은 루나르엘이 나타나자 내 주위를 둘러싼 엘프들이 차츰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치이던 오연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나 역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흥분한 엘프들을 막은 루나르엘은 그대로 내 쪽을 향해 다가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하려 했는데.

-스으윽.

“루, 루나르엘 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온 그녀는 나를 그대로 폭 껴안았다.

내가 조금 더 키가 큰 탓에 약간 어정쩡한 자세로 안기는 모양새가 됐다.

얼마나 꽉 껴안았는지 그녀의 심장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올 정도였다.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에 아기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수고하셨어요. 세진 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아…… 감사합니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처럼 너무 따뜻하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스르륵 눈이 감겼다.

힘들었던 지난 일들이 모두 보상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루나르엘의 품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하는 나를 정신 차리게 해준 것은 시르엘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나와 루나르엘을 떨어뜨려 놓으며 말했다.

“어머니. 다른 손님들이 지켜보고 있어요."

“호호, 이정도로 뭘 그러니? 세진 님이 남도 아니고, 그렇죠?"

“네…… 그렇죠.”

내가 질문에 동의를 표하자 루나르엘은 마음에 든다는 듯 방긋 미소를 지었다.

반면 시르엘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시르엘. 혹시 질투하는 거니?"

"어머니!"

"......"

루나르엘은 시르엘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한편 같이 온 일행들은 이쪽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

균열 입구를 빠져나왔을 때부터 시작된 엘프들의 열렬한 환영은 엘프 마을에 들어설 때까지 쭉 계속되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귀여운 꼬마 엘프들이 예쁜 꽃으로 만든 화환을 일행에게 하나씩 전해주었다.

꼬마 엘프들은 아르킨 길드원들에게 '마을을 구한 은인'이라 칭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엘프어로 말하는 바람에 일행 대부분이 꼬마 엘프들의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들의 몸짓과 행동, 초롱초롱한 눈빛을 통해 그 순수한 마음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물론 이런 와중에도 꼬마 엘프들에게 가장 많은 화환을 전해 받은 것은 바로 나였다.

“세진 님은 마을의 영웅이에요!"

“저도 크면 세진 님을 따라 전투에 나서고 싶어요!”

"너무 멋져요!”

“으, 응. 그래. 모두 고맙구나.”

엘프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일행들과는 다르게 아이들 특유의 낯 부끄러운 존경과 선망의 외침을 감내해야만 했다.

많은 엘프에게 둘러싸여 이동한 끝에.

마지막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엘프 장로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평소에 엄숙하고 딱딱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른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래도 가장 마을의 어른답게 엘프

장로들은 점잖고 예의 바르게 아르킨 길드원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마을에 은인들이 찾아왔으니. 오늘은 마음껏 즐기도록 해라!"

"와아아아!"

"와아아아!"

엘프 장로의 선언과 함께 조용한 엘프 마을에는 유례 없을 정도로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마을 장로의 선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엘프들의 극진한 대접이 시작됐다.

처음 보는 신기한 과일부터, 엘프들의 전통요리, 거기다 아주 특별한 날에만 마실 수 있다는 오래 숙성된 엘프주까지.

처음에 일행들은 기쁜 마음으로 그 대접을 받아들였는데, 가면 갈수록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에 반해 엘프들은 작은 것이라도 직접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오히려 더 다급하게 달려들었다.

이미 예전에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던 나는 먼저 나서서 그런 엘프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너무 과한 대접은 저희가 다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은인에게 직접 대접하는 일은 저희에게는 큰 영광이라……”

“저뿐만 아니라 일행들도 내일까지 머물 예정이니 다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녁에 또 준비해 두겠습니다.”

나의 중재에 아직 대접하지 못한 엘프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물러섰다.

일행들은 그제야 좀 더 편안해진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큰일 날 뻔했네. 이제는 정말로 더 못 먹을 것 같았거든요.”

“나도 배가 끝까지 찬 느낌이야."

포만감과 고통이 뒤섞인 표정으로 배를 감싸 쥐는 아윤과 선우.

나머지 일행도 꽤 과식했는지 더는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고.

그나마 아저씨가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면서 계속 엘프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훨씬 환대를

해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이정도일 줄은......"

김유미의 말에 다른 일행들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음식 대접을 해주고, 마을 구경을 시켜주는 정도를 예상했는 데, 이렇게 모든 마을 사람이 나와서 환영해 주다니."

"아까 보셨어요? 더 못 먹겠다고 하니까 완전히 실망한 표정 짓는거? 세진 씨가 안 말렸으면 억지로라도 더 먹었을 거예요."

아까의 아찔한 상황을 떠올리며 김유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웃으며 쳐다보던 윤동현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도 길드장님의 인기에 비하면 별거 아니죠. 여기에서는 웬만한 연예인 안 부러우시겠는데요?"

"그러게. 세진아. 너는 여기에서 살아도 되겠다."

그의 말에 아저씨도 동의하며 말을 덧붙였다.

나는 멋쩍은 기분이 들어 옆에 아이들을 챙기는 척 시선을 피했다.

식사 후의 포만감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 시르엘이 다가왔다.

“모두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물음에 일행 모두가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녀는 다행이라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괜찮으시면 마을 구경을 시켜드리려고 하는데. 혹시 쉬고 싶으신 분들이 있으시면 따로 자리를 마련해 드릴게요."

"아! 혹시 자유롭게 둘러보는 건 안 될까요?"

“주변에 여러분들을 자기 집으로 납치해 대접하려는 엘프들이 많아서 같이 다니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시르엘의 무서운 경고에 더는 따로 다니고 싶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각자의 의사에 따라 휴식을 취하는 일행과 마을을 구경하는 일행으로 나뉘었다.

아이들은 당연히 마을을 구경하는 쪽으로 전부 합류했다.

나는 이미 마을을 여러 번 구경했지만, 아이들을 챙기기 위해 마을 구경을 따라나서려 했는데.

시르엘이 따로 말을 건넸다.

“세진 님은 이엘과 함께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가주실래요?"

"루나르엘 님이 계신 곳에요?”

“네. 중요한 말씀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녀의 말에 이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시르엘은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말을 덧붙였다.

“아이들은 제가 잘 챙길게요. 피렌느도 함께 가니까 너무 걱정안하셔도 될 거에요.”

“세진아. 중요한 일 있으면 가봐."

아주머니도 한마디 거들자 나는 조금은 걱정을 내려놓았다.

“부탁드릴게요. 그럼 이엘, 루나르엘 님에게 가볼까?"

“네. 아빠.”

나는 아이들에게 아주머니와 시르엘의 말을 잘 듣고 있으라 말해주고, 이엘과 함께 루나르엘의 집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엘프들을 상대해 주며 익숙하게 마을의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집 근처에 도착하자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루나르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와 이엘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오셨군요. 이엘, 음식은 맛있게 먹었니?"

“네. 맛있게 먹었어요."

“후후. 그렇구나. 나중에 내가 직접 만든 과자도 좀 맛보겠니?"

“먹을래요! 할머니가 만든 과자 먹고 싶어요.”

루나르엘은 귀여운 손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집 앞에는 그녀뿐만 아니라 엘디르와 엘프 경비대원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왔다.

적당히 인사를 받아주며 그들의 모습을 살피니 완전 무장을 한 채였다.

루나르엘, 그리고 엘디르와 경비대원들.

왠지 익숙한 상황에 나는 직감적으로 중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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