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54화
81. 생명의 힘으로(2)
-삐이이익!
나는 숲을 빠져나와 새들이 내려올 수 있을 만한 곳으로 향했다. 머리 위를 빙빙 돌던 새들은 천천히 바람을 타고 지면을 향해 내려왔다.
커다란 크기에도 아주 살포시 땅에 내려온 새들은 나를 바라보며 아는 척이라도 하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리고 새들의 등 위에서 2명의 엘프가 풀썩 뛰어내렸다.
바로 새들의 주인인 넬모란 장로와 테오른 장로였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엘프를 맞이했다.
“두 분 다 급하게 여기는 어쩐 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세계수의 엘프 마을과 균열 입구로 교류하고 있어서, 굳이 어렵게 새를 타고 찾아올 필요가 없다.
예외라고 한다면 굉장히 급한 일이 있을 때인데.
딱히 두 엘프의 표정이 다급하다거나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어서 더욱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잘 지냈는가?"
“네. 저는 뭐. 잘 지내고 있었죠."
“안녕하세요. 장로님."
"그래. 이엘도 있었구나."
가장 먼저 넬모란 장로와 인사를 나누고 옆에 있던 테오른 장로에게 시선을 돌려 인사를 건네려는데.
-와락!
예상치 못하게 테오른 장로가 나를 꽉 끌어안았다.
물론 예전보다 엘프 장로들과 많은 친분을 쌓았다지만, 과격하고 갑작스러운 그의 친근한 행동에 순간 멍해졌다.
“장로님?"
“정말 고맙네, 정말 고마워……”
"......??"
테오른 장로는 나를 끌어안고 한참이나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
통나무 집에 도착한 두 엘프 장로에게 차와 간식을 꺼내 대접했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의 몫까지 간식을 더 준비하느라 시간이 더 걸리는 와중에, 두 장로가 이곳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시르엘과 엘디르가 집으로 찾아왔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그래. 둘 다 고생이 많았어."
인사를 마친 두 엘프도 장로의 말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다 챙겨 준 나도 그들에게 합류했다.
슬쩍 분위기를 살펴보니 갑자기 이 곳으로 온 시르엘과 엘디르도 무슨 일인지 모르는 기색이었다.
한편 두 명의 엘프 장로는 시종일관 미소와 함께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더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로님들께서는 갑자기 이곳에는 무슨 일로...… 조금 있으면 주기적 으로 교류하는 날이라 번거롭게 날아오실 필요도 없었을 텐데요."
“그렇긴 하네만.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이라 한시라도 빨리 소식을 전해주고 싶어서 말이지. 넬모란 장로에게 부탁해 이렇게 찾아왔다네.”
"기쁜 소식이요?"
장로의 설명에 내가 되묻자 그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세진, 자네 덕분에 우리의 오랜
염원이었던 일이 드디어 이루어졌다네.”
"......?"
"그게 정말입니까? 장로님?!"
“물론! 루나르엘 님이 직접 확인하신 일이야."
"이럴 수가..….”
“드디어…… 드디어……”
시르엘은 두 손을 들어 입을 가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고, 엘디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혼자 중얼거렸다.
나만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덥썩!
엘디르는 평소에 무표정한 모습과 180도 달라진 흥분한 표정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세진 님.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 세진 님 덕분입니다."
“어? 어..….”
“장로님. 저는 다른 엘프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게.”
테오른 장로의 허락이 떨어지자 엘디르는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얼마나 빨랐는지 내가 뒤늦게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 그는 집 밖으로 나간 뒤였다.
나는 잠시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다 듬고 테오른 장로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장로님. 저는 이해가 잘 안 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자네와 자네의 동료, 그리고 여기 있는 엘프들이 노력해 준 덕분에 세계수가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네."
“정말 좋은 소식이긴 한데. 저는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저번에 시르엘에게 전해 듣기로는 이곳에 있던 생명의 샘을 되살렸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그건 맞습니다.”
“자네가 그 생명의 샘을 되살려준 덕분에 세계수가 조금씩 힘을 회복하고 있어. 루나르엘 님께서 세계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니 틀림없다네.”
생명의 샘을 되살린 덕분에 세계수가 회복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잘 실감이 가지 않았다.
내가 잘 이해 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자 옆에 있던 시르엘이 말을 덧붙였다.
“세진 님, 세계수와 생명의 샘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흐름은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생명의 샘이 다시 그 기운을 회복했으니 당연히 세계수도 영향을 받은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건가요?"
"네! 모두 세진 님이 노력해 주신 덕분이에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설명을 하면서도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리고 엘디르와 비슷하게 내 손을 붙잡고 고맙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테오른 장로와 넬모란 장로도 이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연속된 엘프들의 감사 표시에 조금 민망해질 정도였다.
나는 이런 부담스러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일부러 주제를 변경하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세계수는 이제 문제없는 겁니까?"
“지금까지 워낙 오랫동안 세계수의 힘이 쇠약해졌기 때문에 당분간은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걸세.”
“얼마나 걸릴까요?"
“최소 수백 년은 기다려야 할걸 세.”
"......"
쉽게 상상도 할 수 없는 회복 기간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내 반응을 본 넬모란 장로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 인간이나 우리에게는 정말 긴 시간이겠지만, 세계수에게는 찰나의 시간일 뿐이야. 정말 위험했던 순간이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짧은 시간이라고 봐야겠지."
“그렇군요. 그럼 제가 더 해야 할 일은 없는 건가요?"
“그냥 지금처럼 이곳에서 생명의 샘을 지켜주면 된다네."
생각보다 훨씬 일이 잘 풀려서 그런지 약간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생명의 샘을 되살렸던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 덕분에 생각지도 못하게 세계수의 문제도 해결됐다고 하니 얼떨떨했다.
차를 마시던 테오른 장로는 뭔가 생각이 났는지 나에게 다시 시선을 맞췄다.
"아! 그리고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네."
"말씀해주세요.”
"루나르엘 님께서 말씀하시기로는 세계수에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 혹시 괜찮다면 마을에 방문해 줄 수 있겠는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어렵지 않은 부탁에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부탁이라면 어렵지 않죠. 불러주시면 바로 가겠습니다."
내 시원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테오른 장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추가로 이건 꼭 필요한 부탁은 아닌데……”
"......?"
“자네와 함께했던 동료들도 같이 마을에 오는 건 어떤가?"
“아르킨 길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네. 마을의 엘프들은 자네 뿐만 아니라 자네의 동료들에게도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네. 이번 기회에 그들을 초대해서 조금이라도 그 보답을 해주고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아르킨 길드원들을 마을로 초대하고 싶다는 제안.
나는 잠시 길드원들을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해 봤다.
“아직 확답은 드릴 수 없고. 길드원들에게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모두 괜찮다고 한다면 마을에 함께 방문하도록 할게요."
“꼭 그렇게 해주게."
화기애애하게 분위기 속에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에 집 바깥쪽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어보니.
호숫가에 사는 모든 엘프가 집앞에 가득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기대감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진 님이다!”
"세진 님!"
“정말로 세계수가 회복을 시작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세진 님!"
마치 아까 다급하게 뛰쳐나간 엘디르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모든 엘프가 정신없이 말을 쏟아냈다.
정신없는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내 뒤쪽에서 테오른 장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엄한 목소리로 엘프들을 꾸짖었다.
“이게 무슨 무례한 행동이야. 모두 소란을 멈추거라!"
평소 같았으면 테오른 장로의 꾸짖음에 바로 물러났겠지만, 지금 엘프들의 뜨거운 열기를 제압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더 바짝 다가와 다시 질문을 던졌다.
“테오른 장로님. 그 소식이 정말
사실입니까? 정말로 세계수가 회복하기 시작한 겁니까?"
“그렇다! 루나르엘 님께서 직접 확인하셨다."
"아......"
"드디어!"
테오른 장로의 묵직한 선언에 엘프들 사이에서는 참을 수 없는 희열과 흥분이 흘러나왔다.
“이 모든 일은 세진 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두 세진 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표하도록 해라!"
"어......"
그리고 이어진 테오른 장로의 언급에 그 뜨거운 엘프의 눈빛들이 모두 나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평소와 전혀 다른 엘프들의 모습에 내가 당황하는 사이, 그들은 먹잇감에 달려드는 맹수처럼 내 주변을 감쌌다.
"으헉!"
“세진 님! 저는 세진 님이 해내실 거라는 걸 믿고 있었습니다!"
"역시 세진 님! 평생 따르겠습니다."
"세진 님! 세진 님!"
마치 광신도처럼 주변에 몰려든 엘프들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엘프 마을로 나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 후.
엘프 마을에서는 밤이 늦도록 열기가 사라지지 않았고.
나는 한 명 한 명씩 찾아오는 엘프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밤이 늦도록 강제로 대접을 받아야 했다.
****
세계수가 회복을 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받고 하루가 지난 뒤.
나는 아르킨 길드원들에게 엘프 마을로 초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억지로 가야 할 필요는 없다고 전했는데, 길드원 모두 그 초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특히 예전에 오연우와 임진혁이 엘프 마을에 방문했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서는 더욱 기대하는 것 같았다.
-세진아. 우리 가족은 모두 엘프 마을에 가기로 했다.
-저도 참여할게요. 날짜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저랑 동현 씨도!
-다 가는 것 같은데. 저도 가겠습니다.
정씨 가족을 포함해 서율희, 김유미 윤동현 커플, 마지막으로 임진혁까지 초대에 응하기로 결정됐다. 그리고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뒤늦게 오연우까지 일행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주변의 모든 사람이 함께하게 되었다.
테오른 장로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크게 기뻐하며 성대한 대접을 기대하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마을로 먼저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엘프 마을에서 연락이 오고, 정확한 방문 날짜가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