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252화 (252/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52화

80. 뒷이야기 (5)

아르킨 길드의 모든 길드원이 이를 좋아하는 것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퓨이가 누구를 가장 좋아하는지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길드원들 사이에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흘러나오고, 채팅창에서는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오. 궁금하긴 하다. 퓨이는 누구를 제일 좋아할까?

-아마도 균숙자를 제일 좋아하겠지.

-균숙자는 빼고 생각해야지.

시청자들도 궁금하다는 반응을 보이자 오연우는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질문의 주인공을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퓨이 등장?!

-역시 퓨이 안 보고 가면 섭섭하지.

오연우는 빠르게 방을 뛰쳐나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퓨이를 가슴 께에 안고 되돌아왔다.

"퓨이!"

퓨이는 익숙하게 카메라 쪽을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며 귀여운 울음소리를 냈다.

-아아. 퓨이 목소리만 들어도 힐링된다.

-퓨이 너무 귀여워!

-퓨이! 퓨이! 퓨이!

오랜만에 방송에 모습을 드러낸 퓨이를 보고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사이, 오연우는 가슴에 안고 있던 퓨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퓨이야. 앞에 있는 사람들 잘 알지?"

"퓨이!"

“그러면 이 사람들 중에서 퓨이는 누가 제일 좋아?"

"퓨우우?"

누가 제일 좋냐는 질문에 퓨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퓨이의 시선이 닿자 길드원들은 긴장한 듯 딱딱한 미소를 지었다.

내심 나도 불안한 마음에 긴장하고 있는데,

-휙!

퓨이는 오연우의 품 안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바닥에 몸을 통통 튕기면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팟! 포옥!

"퓨우우. 퓨이!”

내 품에 안겨 비비적거리는 귀여운 슬라임의 모습에 내 입꼬리가 귓가에 닿을 듯이 쭉 올라갔다.

이 모습을 지켜본 나머지 길드원들은 부러움을 가득 담아 내 쪽을 바라보았다.

-역시!

-이건 어쩔 수 없지.

-나도 퓨이 한 번 안아 봤으면……

나는 품속에 퓨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크흠. 제가 퓨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고,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보니까 선택을 받은 것 같네요."

기분이 정말 좋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기에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첫 번째는 조금 뻔했던 것 같고, 두 번째도 한번 물어보도록 해볼까요? 이번에는 길드장님이 직접 퓨이에게 물어봐 주시죠."

오연우의 요청에 나는 다시 한번

퓨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퓨이야. 나는 빼고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누가 제일 좋아?"

"퓨이?"

퓨이는 다시 한번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길드원 쪽을 바라봤다.

아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신중한 모습으로 길드원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둘러보기 시작했다.

-고민한다. 고민한다.

-이게 뭐라고, 모두들 긴장한 것 좀 봐 ㅋㅋㅋ

고민이 길어지면서 길드원들의 긴장감이 고조됐다. 그 덕분에 이 짧은 침묵의 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휙!

퓨이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귀여운 슬라임이 자신의 앞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길드원들은 몸을 움찔거렸다.

포옥!

두 번째로 퓨이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결정되자 채팅창에는 아주 의외의 결과라는 반응이 나왔다.

-오옷?!

-예상했던 거랑은 많이 다르네.

-전혀 상상도 못 했다.

그 영광의 주인공은 바로 퓨이를 안은 채, 조금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는 임진혁이었다.

작고 귀여운 퓨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임진혁 특유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언밸러스한 매력을 뿜어냈다.

아무래도 통나무집에서 함께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그것과는 별개로 임진혁이 아이들을 잘 돌봐주는 것도 있었다.

거칠 것 같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아이들을 능숙하게 대했다.

최근에는 시르엘이나 피렌느에게 아이들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지 만, 그전에는 임진혁에게 많이 부탁 했었다.

그만큼 임진혁이 아이들과 사이가 좋았다.

퓨이에게 선택받지 못한 길드원들의 부러운 눈초리가 쏟아지고, 임진혁은 방송이 시작되고 난 후에 가장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퓨이를 쓰다듬었다.

-전직 형사 형님. 외모랑은 다르게 굉장히 스윗하신데.

-원래 클리셰 상으로 저런 캐릭터가 작은 동물에게 힘을 못 쓰지.

-마치 불량배가 몰래 길고양이를 돌봐주는 느낌?

"채팅창에서 그리고 아직 선택을 못 받은 길드원분들도 아쉬워하시는 것 같으니, 딱 한 번만 더 물어보도록 하죠.”

오연우가 퓨이의 세 번째 선택을 진행하려 하자, 길드원들은 의욕적으로 눈빛을 빛냈다.

마치 '남은 사람 중에서는 해볼 만 하다!' 라는 분위기였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퓨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고민이 많았던 두 번째와는 달리 거침없이 누군가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포옥!

세 번째로 선택을 받은 주인공은 바로 아주머니였다.

"어머! 어머!"

"퓨이!"

아주머니는 크게 기쁜 표정을 지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아무래도 아주머니의 맛있는 밥이 퓨이의 선택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된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선택을 받지 못한 길드원들은 크게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특히 서율희는 옆에 앉은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게 상심한 분위기를 표출했다.

“지금 후원이랑 채팅창으로 꼴찌까지 뽑아보자는 의견도 있고, 티아랑 이엘도 데려와서 해보자는 의견도 많은데요. 길드원분들의 멘탈 보호를 위해 이 질문은 여기까지만 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분위기를 빨리 읽은 오연우가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을 진정시키며 계속 진행을 이어나갔다.

****

그 뒤로도 계속 많은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가장 많은 것은 미궁에 대한 질문이었고, 전에 공략했던 드레이크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길드원 각자의 포지션이나 역할, 주력 무기에 대한 것. 함께 합을 맞춰 미궁을 공략했던 엘프에 관한 생각을 묻기도 했다.

퓨이가 좋아하는 사람을 정했던 질문 이후로 평범하고 무난한 질문이

이어지다가, 분위기를 다시 뒤엎을

문제의 질문이 후원으로 들어왔다.

[껌은고양이 뇌로 ₩50,000 후원]

- 길드원분들 중에 능력 좋은 선남, 선녀분들이 많은데. 혹시 사내 연애 없습니까?

"껌은고양이뇌로님 후원 감사드리고요. 사내 연애에 대해서 질문하셨는데. 어떻습니까? 혹시 사내 연애를 금지하는 규정이라도 있나요?"

오연우에게 질문은 받은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는데.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사내 연애를 하시는 분들이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 어?"

"......"

"......"

말이 이어질수록 뭔가 이상한 주변 분위기를 눈치챘다.

나뿐만 아니라 채팅창에서도 이 분위기를 읽어냈다.

-이거 분위기 싸한데? ㅋㅋㅋㅋㅋ

-걸렸구먼. 표정 보니까 답이 딱 나오네.

-균숙자 진심 당황한 표정 ㅋㅋㅋㅋ

-커플들아. 알아서 자수하자.

묘한 분위기 속에 김유미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윤동현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유미 씨?"

“아. 그러니까. 숨기려고 그런 건 아니고요. 미궁 공략을 준비하느라 너무 바쁜데 연애하고 있다고 말씀 드리기가 좀 그래서……”

김유미가 면목 없다는 듯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나가자, 옆에 있던 윤동현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제가 먼저 사귀자고 말했습니다. 유미 씨는 잘못 없어요. 오늘 방송 끝나고 모두 모인 자리에서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미리 말씀 못 드 려서 죄송합니다."

윤동현의 당당한 행동에 채팅창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오오! 상남자! 멋있다. 멋있어.

-살아 있네!!

-꺄아아! 너무 부럽다!

한편 갑작스럽게 밝혀진 사실에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옆을 살펴보니 서율희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반응이었다.

길드원들의 놀라움, 약간의 배신감, 그리고 장난스러운 눈빛을 한꺼번에 받던 김유미는 터질 듯이 빨개진 얼굴을 숙이며 중얼거렸다.

“저희 말고 하나 더 있는데….…”

"......?!?!"

"......?!?!"

이어지는 김유미의 폭탄 발언에 나머지 길드원들의 눈빛이 다시한번 급격하게 흔들렸다.

남은 인원이 몇 명 없어서 후보군이 극도로 좁아졌다.

처음으로 길드원들의 눈길을 끈 서율희는 자신은 아니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사람에게로 시선이 이어지고.

"언니! 그걸 왜 말해요!"

당황한 아윤이가 원망스럽게 김유미를 흘겨봤다.

잠깐!

나는 아니고, 가족인 아저씨랑 선우는 빼고, 동현씨는 유미씨랑 사귄다고 했으니까 남은 사람은......

"진혁이 형?"

"......"

"......"

“크흠…… 그렇게 됐다.”

정말 보기 드물게 얼굴을 붉힌 임진혁이 이 상황을 시인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달아 밝혀지는 길드원들의 분홍빛 비밀에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그리고 뒤에서 아저씨는 흥분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이게 무슨?!"

-ㅋㅋㅋㅋㅋㅋㅋ

-낚시꾼 아재 극대노!

-진짜 그 험난한 미궁을 클리어하는 와중에도 할 일은 다 하고 있었네.

-드라마 보는 것 같음.

-균숙자 2차 멘붕!

소리를 지르며 일어난 아저씨를 아주머니가 부드럽게 달랬다.

“당신은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둘 다 성인인데 만날 수도 있죠.”

“아빠, 그런 거 아니에요."

“뭘 그런 게 아니야. 진혁아. 이거 정말이냐?"

“...... 진지하게 만남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허허……"

아저씨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묘해지는 분위기에 오연우는 다급하게 진행을 서둘렀다.

“아… 다시 한번 후원 감사드리고요. 질문은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상황은 혼란스러웠지만, 시청자들의 흥미도는 정점을 찍고 있었다.

-오늘 방송 진짜 역대급이네 ㅋㅋㅋ

-이렇게 개꿀잼일줄은

-나중에 후기 꼭 올려줘요.

-이 멤버 그대로 2탄 가즈아!!!

****

혼란스러웠던 방송이 끝나고.

집에서는 원래 예정되어 있었던 아르킨 길드의 회식이 열렸다.

모든 길드원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수고한 시르엘과 방송을 도와주었던 피렌느까지 참여한 회식은 떠들썩하게 진행됐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회식의 가장 큰 화젯거리로 윤동현 과 김유미가 중심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와! 두 분이 사귀는 거예요?"

소식을 들은 이엘은 눈을 반짝이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시르엘과 피렌느도 크게 관심을 가지며 한 쌍의 커플을 둘러쌌다.

한편 또 다른 한 쌍의 커플은 아저씨와 함께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

"......"

"......"

아저씨는 평소와는 다르게 조용한

모습으로 연신 술잔을 입가로 가져 갔고, 술잔이 비워질 때마다 임진혁이 그 잔을 채워나갔다.

그 옆에서 아윤이는 아무 말 못 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형.”

내 옆으로 슬쩍 다가온 오연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방송 잘 된 거 맞죠?”

“…… 나도 모르겠다. 술이나 마시자."

나는 에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오연우와 함께 들고 있던 캔맥주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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