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249화 (249/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49화

80. 뒷이야기 (2)

아르킨 길드원을 방송에 부르자는 오연우의 의견에 순간 멈칫했다.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길드원들을 방송에 출연시킨다니.

"흐음……"

"힘들까요……?"

내가 복잡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지자 오연우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길드장으로 있긴 해도 이건 별개의 문제라. 권유 정도는 해볼 수 있어도 억지로 출현하게 할 수는 없어."

"그렇긴 하겠죠."

“거기다 지금은 많은 화제가 집중된 상황이라, 이런 방송에 쉽게 출연하기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

내가 연이어 부정적인 의견을 말할 때마다, 오연우는 금세 시무룩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 모습이 살짝 안쓰럽게 보여서 지나가는 말투로 가볍게 툭 한마디 던졌다.

“그래도 한 번 물어는 볼게."

"정말요?"

“네가 이렇게 준비해 왔는데. 나도

물어보는 것 정도는 해봐야지."

“정말 고마워요. 형!"

“아아,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싫어하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포기할 거야. 진짜 물어보기만 할 거니까."

“그거면 충분해요. 저도 더는 억지 안 부릴게요."

일단 한번 물어는 보겠다는 말로 오연우를 달래줬다.

나는 기운이라도 차리라는 의미로 해준 말이었는데, 녀석은 희망에 찬 얼굴로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쩝. 너무 기대는 안 했으면 좋겠는데……’

내심 성사되기 힘든 일이라 생각하고 있어서 나중에 오연우가 기대한 만큼 실망할까 봐 걱정됐다.

안되면 이미 방송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아저씨라도 다시 출현시켜보자는 마음으로 일을 진행해 보기로 했 다.

그런데.

이 일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

-라이브 방송에 출현해 달라고?

“네. 부담스러우시면 거절하셔도 되는데……”

-부담스럽기는 안 그래도 살짝 심심하던 차에 잘됐네. 그럼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출현할 수 있는 거지?

“그렇긴 한데. 억지로 참여하실 필요는…."

-잠깐만. 여보! 이번 주말에 별일 없지? 아니 세진이가 방송에 좀 출연해 달라는데.

휴대폰 너머로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대화 소리가 멀찍이 들려왔다.

왠지 모르게 점점 초조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아저씨가 아닌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세진이니?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 우리보고 방송에 나와 달라고? 그 너튜브 채널 말하는 거지?

"네. 맞아요.”

- 어머. 나도 한 번 방송에 출연해 보고 싶었는데. 잘 됐다. 우리 애들 한테도 미리 말해놓을게.

방송 출연에 생각보다 훨씬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애써 그런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내가 부탁을 하면서 이상한 티를 내면 안 되니까.

“억지로 안 나오셔도 되는데…..."

-이번 주말 맞지? 나중에 정확한 일정 나오면 제대로 알려줘. 기다리고 있을게.

-아참! 세진아 내일 낚시하러 놀러 가도 되지?

“아...... 네. 그렇게 하세요."

-허허, 고맙다. 그럼 내일 보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손쉽게 첫 번째 게스트 초대가 끝나고,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다 봤다.

'그래. 뭐 아저씨네 가족은 그럴 수 있지.'

다른 길드원들은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하며, 휴대폰 화면에 연락처를 뒤적거렸다.

다음 초대를 시도할 길드원은 윤동현.

길드의 일로 얼굴을 자주 마주치는 사이지만, 이렇게 개인적으로 통화를 시도한 적은 드물어서 약간 긴장되는 마음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길드장님?

윤동현의 첫 반응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갑자기 개인적인 통화가 걸려와서 놀란듯했다.

“아.동현씨.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아...... 네.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길드장님은 잘 지내셨죠?

“집에서 원 없이 뒹굴뒹굴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약간 어색했지만.

편안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화를 나누며 금세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평소에 개인적으로 연락하시는 일은 잘 없으셔서.

"그렇긴 하죠."

-그냥 안부를 물으시려고 연락하신 건 아닌 것 같고, 무슨 일로 연락을?

“다름이 아니라……”

나는 대본을 읽듯, 너튜브 채널 방송에 길드원을 출현시키는 것에 대해 줄줄 늘어놨다.

간략한 설명을 들은 윤동현은 확실히 아저씨나 아주머니와는 달리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흐음.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 일은 아닌 거죠?

“네. 공식적인 길드의 일은 아니니. 억지로 참여하실 필요 없어요. 부담스러우시면 거절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군요.

잠시 뜸을 들이던 윤동현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럼 저도 그 방송에 참여하겠습니다.

"네? 정말로요?"

-원래 모렛을 만나러 한 번 방문 할 생각이었는데. 겸사겸사 방송 출연도 하면 될 것 같네요.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는데 윤동현은 시원하게 참가 의사를 밝혔다.

다음으로 연락한 길드원은 김유미.

-재미있겠다! 저도 끼워주세요. 주말까지 준비하면 되는 거죠? 오랜만에 옷이나 사러 나가야겠네요. 확실히 정해지면 나중에 연락해 주세요.

그녀는 짧은 고민도 없이 바로 출연 제안을 승낙했다. 아까 아저씨, 아주머니보다 훨씬 더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그녀 다음으로 연락, 아니 직접 말로 부탁한 길드원은 임진혁이었다.

“나는 상관없어. 대신 재미있게 해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도 김유미처럼 쿨하게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방송에 대한 기대감은 없어 보였고, 그냥 자리를 채워주겠다는 의도처럼 보였다.

어떻게 하다 보니 한 명을 제외한 모든 길드원의 방송 섭외가 순조롭게 진행돼버렸다. 나는 당연히 힘든 일이라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쉽게 일이 풀려 나갔다.

남은 사람은 이제 한 명.

'아. 차라리 가장 먼저 물어볼걸......'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이 가장 부탁하기 부담스러운 사람이 남아버렸다.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

마음을 굳게 먹고 휴대폰의 그 사람 연락처를 눌러 통화를 연결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율희씨.”

-별일이네요. 세진씨가 먼저 연락을 다 하고, 무슨 일 있으신 건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나는 일단 평범하게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이끌어 나가려 했는데, 금방 그녀에게 의도를 간파당해버렸다.

-뭔가 부탁하실 일이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바로 말씀해 보세요. 우리가 괜히 쓸데없는 말로 예의를 차릴 사이는 아니잖아요.

"끄응......"

그녀는 화끈하게 빨리 본론을 꺼내 놓으라고 압박했다. 나는 잠시 앓는 소리를 내다가 조심스럽게 연락한 이유를 풀어놨다.

조용히 내 말을 듣던 그녀는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

“율희씨? 듣고 계세요?"

-그러니까 길드원들을 방송에 출연시키려 하는 중이고, 다른 길드원 들은 이미 출연하기로 했다는 거죠?

"네. 맞아요."

-근데 왜 저한테 가장 마지막으로 연락하신 거죠?

“.......”

-길드의 공식적인 행사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런 일이라면 저한테 가장 먼저 연락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

매섭게 느껴지는 그녀의 질문에 이번에는 내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조금씩 기분이 나빠지려 하니까 빨리 대답해 주실래요?

“아니. 딱히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닌데……”

-......

“그러니까 왠지 서율희씨한테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게 죄송해서요. 솔직히 다른 분들이 먼저 거절하실 줄 알았는데 다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내 변명을 들은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조금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

-세진씨. 우리 사이에 그 정도 부탁은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너무 어려워하지 마세요. 괜히 서운해지려고 하니까.

"죄송합니다."

-그래서 일정은 잡힌 건가요?

“일단 이번 주 주말로 생각하고 있어요."

-흐음. 길드원 모두가 출연할 예정이라면, 그냥 길드의 공식적인 행사로 생각하고 계획을 짜기로 하죠.

그녀는 의욕적으로 방송의 계획에 대해 생각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때 병원에서 했던 기자회견 정도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잘 된 것 같아요. 대대적으로 언론을 통해 방송에 대해서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너무 크게 일을 안 벌이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아. 세진씨. 저희가 미궁을 클리어해버린 순간부터 이미 일은 크게 벌어진 상태에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

결국,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아르킨 길드원 모두의 출연이 결정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오연우는 크게 기뻐했다.

나중에 서율희가 방송을 크게 진행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직접 전해 듣고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

너튜브 '균숙자네 퓨이' 채널에 사람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공지가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연우PD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아주 놀라운 일들로 인해서 저희 채널의 활동이 잠시 뜸했었는데요.

-이번에도 라이브 방송으로 복귀를 할 예정입니다.

-많은 분이 관심을 가지고 계실 채널 주인장의 본업(?)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궁금해하시는 모든 것을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드릴 계획입니다.

-일정은 이번 주 토요일, 저녁 7시

에 방송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구독자분들에게만 살짝 말씀드리는 건데 게스트가 출현할 예정입니다.

-조금만 더 힌트를 드리자면 모두 8명입니다.

-그럼 토요일 방송에서 찾아뵙겠습니다.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채널 커뮤니티 게시판에 공지가 올라오고,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사람이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공지 떴다!!!

-드디어 올라오는구나. 균숙자의 정체를 낱낱이 파헤칠 시간이다.

-와...... 진짜로 너튜브 방송에서 전부 다 밝힌 생각인가 보네. 기자 회견 뒤로 짧은 인터뷰도 하나 없더니.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채널 주인장의 정체와 더불어, 공지를 통해 알려진 게스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게스트가 8명? 누군데 이렇게 많이 불러온 거야?

-잠깐! 아르킨 길드가 방장 포함해서 9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ㅎㄷㄷ 설마?!

-방장이 길드장이니까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음? 벌써 토요일이 기대 되는데.

게스트에 대한 사람들의 추측과 논의가 뜨겁게 이어지던 와중, 공지가 올라오고 며칠이 지나고 방송에 관한 인터넷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균숙자네 퓨이' 너튜브 채널과 아 르킨 길드에 관해 설명하며, 이번 주에 있을 라이브 방송에 모든 길드원이 출연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기사를 올린 기자는 부길드장은 서율희를 통해 해당 내용을 확인했으며, 방송에서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이 기사는 곧바로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 퍼져나갔고.

평범한 너튜브를 이용하는 구독자 뿐만 아니라, 아르킨 길드 소식에 관심이 있던 많은 언론과 관계자들 까지 다가오는 방송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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