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248화 (248/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48화

80. 뒷이야기 (1)

마치 시험 기간이 끝난 학생처럼.

미궁을 공략한 뒤, 나는 계속 집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공략은 성공적이었고, 생명의 샘도 위니의 힘으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아직 '생명의 문양'에 대해서는 알아봐야 할 사실이 많았지만, 조금씩 해결해 나갈 생각이었다.

생명의 샘이 원래의 힘을 되찾고 이엘도 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쉽게 피곤하다거나, 금방 잠드는 일도 사라졌다.

아르킨 길드원들과 엘프들도 모두 편안한 휴식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미궁을 제거함으로써 국가에서 내려온 포상금은 모두 적절하게 길드원들과 엘프들에게 분배됐다.

거기다 미래 그룹의 강유환 회장도

수고했다며 꽤 많은 금액을 보내줬다.

계약에는 없는 내용이었지만 거부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였다.

미궁을 공략하고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세상은 우리가 해낸 일에 대해 떠들썩한 상황이었다.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해외 각종 언론도 이 사건에 대해 집중 보도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줄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거기다 병원에서 했던 기자회견을 끝으로, 나를 포함한 모든 길드원이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어서 더욱 심해지는 모양새였다.

그에 관해 왜곡된 정보나, 여러 가지 헛소문도 함께 나돌았는데.

뭐…...

솔직한 심정으로는 밖에서 뭐라고 떠들던 별로 상관없었다.

나에게는 숨 가쁘게 달려온 끝에 찾아온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다른 길드원들에게도 그런 말들은 신경 쓰지 말고 푹 쉬라는 말을 전해놓았다.

서율희는 약간 불만이 있는 것 같았지만, 딱히 반대 의견을 내놓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나는 아주 게으른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포근한 햇살이 가득한 오전.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보내는 아주 느긋한 시간.

약간 불편한 점이 있다면.…..

“얘들아. 너희들 안 불편해?"

"나는 괜찮아."

"저도 괜찮아요. 아빠."

"퓨이! 퓨이!"

-뀨우우.

양쪽 옆구리에는 티아와 이엘.

배 위에는 퓨이가 올라와 있었고, 다리 사이에는 세이가 자리를 잡았다.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은 아이들은 내 곁에서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미궁을 공략했을 때.

집에서 나를 걱정하고 있었던 아이들은 마음고생이 심했었는지, 내가 쉬는 동안에 항상 이렇게 달라붙어 있었다.

물론 전에도 오랫동안 놀아주지 못하면 이렇게 달라붙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끈질기게 달라 붙었다.

나 어디 안 도망간다는 말을 하면서 아이들을 진정시키려고 해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억지로 떼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 모습을 본 아저씨는.

-하하. 그렇게 아이들이 달라 붙어줄 때 고마운 줄 알아. 나중에 크면 징그럽다고 다가오지도 않으니까. 나는 오히려 부럽다 부러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고 말하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아저씨의 충고를 받아들여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상황을 받아 들이는 중이었다.

TV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뉴스 채널이 화면에 나왔다.

"어? TV 화면에 세진 아냐?"

“진짜네요. 아빠가 TV에 나와요."

"퓨우우우."

“크흠.”

며칠 전, 병원에서 했던 기자회견 영상이 TV에 나오자 아이들은 신기한 듯 감탄을 터뜨렸다.

나는 민망해서 헛기침하면서도 아이들과 같이 열심히 화면을 살폈다.

'이 정도면 꽤 괜찮게 나온 것 아닌가? 나도 화면빨을 잘 받는 것 같은데.'

내심 흡족하게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으로 화면이 돌아가자 그 생각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엘디르와 서율희의 연예인급 외모가 화면에 비치자, 자체발광하듯 화면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쩝.‥…”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화면을 보는 중에.

시르엘과 피렌느가 통나무집을 방문했다.

“세진 님. 안녕하세요. 과일을 좀 가지고 왔어요.”

“얘들아 안녕!"

둘의 등장 덕분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아이들이 살짝 옆에서 떨어져 나갔다.

시르엘은 금방 부엌에서 과일을 접시에 담아 내왔다.

자연스럽게 거실에 자리 잡은 둘은 TV 화면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세진 님 아니에요?"

"와아! TV에서 아는 사람이 나오는 건 처음 본 것 같아요. 어! 엘디르 님도 나왔네.”

두 엘프는 놀랍다는 표정을 하고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접시의 과일을 챙겨주면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다친 엘프들은 잘 지내고 있나요?"

“네, 걱정해 주신 덕분에 모두 잘

회복하고 있어요. 더는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아요."

시르엘은 내 질문에 방긋 웃으며 대답했고, 나도 따라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세진 님. 조금 있다가 이번 주에 주문해야 할 물품들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이번에도 수량이 많겠죠?"

“저번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것

같은데요."

“쩝."

이번 미궁을 공략하고 많은 엘프에게 적잖은 수당이 지급되면서, 갑자기 피렌느가 매우 바빠졌다.

새로운 문명에 빠르게 익숙해진 엘프들은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식품이나 간단한 편의성 물건 위주로 소비가 이어졌다면, 지금은 꽤 다양한 종류의 상품 소비가 이뤄졌다.

다양한 식료품부터, 전자기기, 현대의 패션 아이템까지.

엘프 마을 내에서 이런 물건들에 대한 유행이 생겨날 정도였다.

워낙 소비가 다양해지고 규모가 늘어나다 보니 피렌느는 물론 나까지 덩달아 바빠지게 생겼다.

조만간 이쪽 일을 담당할 인원을 더 구해야 할 것 같았다.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시르엘이 가져온 과일을 맛보고 있는데, TV에서 기자회견에 관련된 멘트가 흘러 나왔다.

-아르킨 길드의 전세진 길드장은 이번 미궁 공략 성공과 동시에 너튜브 채널의 운영자라는 사실도 함께 알려졌는데요.

-기자들의 추가적인 질문에 관해서는 본인의 너튜브 채널 방송을 통해 소통을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당 너튜브 채널에는 아직 아무런 계획 발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저런 말도 했었지.'

나는 뉴스를 보고 뒤늦게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뒤로 딱히 너튜브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저 이야기를 진지하게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과일을 오물거리며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는 중.

-♪~♬~♪

시기적절하게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휴대폰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하고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

“그,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통나무집을 방문한 오연우는 왠지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평소 같았으면 빨리 영상을 찍자고 호들갑을 떨었을 녀석인데, 오늘은 약간 눈치를 보면서 안절부절못한 모습이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었는데. 너는 왜 그러냐? 어디 아파?"

“아픈 건 아니고……”

“근데 갑자기 왜 이래."

내 물음에 우물쭈물하던 오연우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는 형이 다시 저를 안 불러주실 줄 알았어요.”

"내가?"

“이제 형이 비밀로 너튜브 운영하던 것도 밝혀졌으니까. 계속 영상 찍기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오연우는 지레짐작으로 내가 너튜브 활동을 접을 거로 생각했나보다.

녀석의 의기소침해진 모습이 약간 안쓰럽게 보였다.

“그런 건 나한테 물어보고 생각해야지. 연락도 안 했으면서."

“형이 굉장히 바쁜 줄 알았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난리가 났는데."

"크흠."

밖에서 난리가 나든 말든. 이 통나무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던 게 살짝 민망해졌다.

“솔직히 이번에 미궁을 공략하셨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대단한 일을 하셔서 실감이 안날 정도였거든요."

“뭘 그 정도까지야……"

“저희 아버지도 형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아침에 몇 번이고 칭찬하시던데요."

뿌듯한 마음에 미소가 지어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미궁을 공략한 건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거랑 별개로 너튜브 활동은 계속할 거야."

"정, 정말이에요?"

“기자회견 때도 너튜브에 관한 내용은 방송으로 전하겠다고 말하는거 못 봤어?"

“그냥 기자 질문에 대답하기 싫어서 하는 소리인 줄 알았죠."

“아. 물론 대답하기 귀찮았던 것도 좀 있지만...… 아무튼, 너튜브 활동은 계속할 거야."

"형.….."

"짜식이. 그래도 내가 의리가 있지, 너랑 의논도 안 하고 그냥 그만둘 줄 알았어? 평소에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조금 섭섭해.”

내가 너튜브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확실하게 말하자, 오연우는 감동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거렸다.

"고마워요. 형.”

“고맙기는. 너도 그동안 많이 도와줬잖아. 당연한 일이지."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

약간 감동적인 분위기가 채 사라지기 전에 오연우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건……?"

“우리 채널에서 다음 방송으로 할 계획서에요. 한 번 확인해 보세요.”

“너 방금까지 내가 너튜브 활동 그만할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지 않았었냐?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한 거야?"

“걱정은 걱정이고, 해야 할 일은 당연히 해야죠. 안 그래도 지금 채널에 영상 계속 안 올라와서 구독자 민심이 흉흉하다고요."

"......"

내 어이없는 표정과는 무관하게 오연우는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다행히 형이 아르킨 길드의 길드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덕분에 실망감이 기대감으로 바뀌는 중이에요. 여기 채널 커뮤니티 게시판 보세요."

오연우가 노트북으로 보여주는 채널 게시판에는 수많은 사람이 실시간으로 글을 올리는 중이었다.

-균숙자님. 아니, 아르킨 길드장님 언제 오세요?

-아. 진짜 궁금해 죽겠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요!

-여기가 그 유명한, 미궁을 공략해 낸 아르킨 길드장님이 운영하는 채널입니까?

-연우 PD 일 안 하냐? 빨리 공지 올려라.

-와…… 근데 아직도 안 믿긴다.

균숙자가 아르킨 길드의 길드장이라니.

-아르킨 길드고 나발이고, 빨리 퓨이 영상 올려줘요. 금단 증상 올 것 같아!!

게시판은 어떤 의미로 혼돈 그 자체였다.

원래 게시판을 이용하던 구독자와 이번 사건으로 유입된 사람들로 뒤죽박죽 엉망이었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기자회견 때 말했던 방송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는 점.

집에서 편하게 쉬느라 너튜브 상황을 확인 못 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이 느껴졌다.

“그래서 계획이 뭔데?"

“아무래도 생생한 이야기를 좀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

“아르킨 길드원분들을 게스트로 부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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